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28 15:00:26

솔리두스

히피르피론에서 넘어옴
[[고대 로마|
파일:Capitoline_Wolf_of_Roman_Kingdom.svg.png파일:투명.png파일:로마 제국 깃발.svg파일:투명.png파일:라바룸.svg
로마
관련 문서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A00201><colcolor=#FAE572> 체제 고대 로마 (로마 왕국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서로마 제국 · 동로마 제국 · 니케아 제국
역사 로마 왕국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역사 · 동로마 제국/역사
분할국 갈리아 제국 · 팔미라 제국
잔존국 귀네드 왕국 · 수아송 왕국 · 알타바 왕국 · 트라페준타 제국 ·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 테오도로 공국 · 모레아 전제군주국
상징 SPQR · 아퀼라 · 파스케스 · 크리스토그램 · 보주 · 쌍두수리
정치 고대 로마의 정치제도 · 로마 국왕 · 집정관 · 독재관 · 감찰관 · 법무관 · 조영관 · 프라이펙투스 우르비 · 원로원 · 쿠리아 민회 · 쿠르수스 호노룸 · 켄투리아회 · 평민회 · 트리부스회 · 파트리키 · 플레브스 · 노빌레스 · 노부스 호모 · 푸블리카니 · 포테스타스 · 시빌라 예언서 · 성산 사건 · 옵티마테스 · 포풀라레스 · 루카 회담 · 삼두정치 · 로마 황제 · 카이사르(칭호) · 아우구스투스(칭호) · 기원전 23년 로마 헌정위기 · 피소 음모 · 네 명의 집정관 사건 · 사두정치 · 337년 콘스탄티누스 황족 학살 사건 · 동로마 제국/작위 및 관직 · 녹색당과 청색당 · 바실레프스 · 포르피로게니투스 · 데스포티스
법률 로마법 · 로마 시민권 · 해방노예 · 모스 마이오룸 · 십이표법 · 호르텐시우스 법 · 원로원 최종 권고 · 클리엔텔라 · 라티푼디움 · 밀라노 칙령 · 테살로니카 칙령 · 로마법 대전 · 금인 칙서
군사 로마군 · 글라디우스 · 필룸 · 스파타 · 스쿠툼 · 파르마 · 케트라투스 · 펠타스트 · 마니풀라 · 레기온 · 켄투리오 · 프라이토리아니 · 하스타티 · 벨리테스 · 프린키페스 · 트리아리 · 임페리움 · 임페라토르 · 에퀴테스 · 기병장관 · 레가투스 · 트리부누스 밀리툼 · 트리부스회 · 테스투도 · 스폴리아 오피마 · 10분의 1형 · 로리카 ·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 팔라티나 · 코미타텐세스 · 리미타네이 · 동로마군 · 테마 제도 (군관구) · 프로니아 제도 · 타그마 · 불사 부대 · 바르다리오타이 · 아르콘토풀레 · 에테리아 · 바랑인 친위대 · 투르코폴레스 · 그리스의 불
행정구역 수도 (로마 · 콘스탄티노폴리스) · 분할 수도 (니코메디아 · 메디올라눔 · 라벤나) · 고대 로마/지방행정 · 속주 · 라벤나 총독부 · 아프리카 총독부 · 테마 제도 (군관구) · 프로니아 제도
종교 로마 신화 · 아우구르 · 플라멘 · 폰티펙스 막시무스 · 베스타
미트라 · 마니교
기독교 · 마르키온파 · 아담파 · 도나투스파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 · 밀라노 칙령 · 총대주교 (펜타르키아: 교황 ·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 예루살렘 총대주교) · 제1차 니케아 공의회 · 아리우스파 · 테살로니카 칙령 · 테오도시우스의 이교 박해 ·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 에페소 공의회 · 네스토리우스파 · 칼케돈 공의회 · 단성론 · 아카키오스 분열 ·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 퀴니섹스툼 공의회· 제2차 니케아 공의회 · 성상 파괴주의 · 포티오스 분열 ·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 헤시카즘 · 호람딘 · 동서 대분열 · 가톨릭 · 정교회 · 아르세니오스 분열
문화 라틴어 (민중 라틴어) · 코이네 그리스어 · 로마 미술 · 비잔틴 미술 · 네오비잔틴 · 로마력 · 율리우스력 · 우주력 · 로마식 작명법 (가족성) · 라틴 축제 · 루디 로마니 · 사투르날리아 · 루페르칼리아 · 고대 로마/성문화 · 빵과 서커스 · 검투사 · 세스타스 · 전차경주 · 개선식 · 로마 인빅타 · 가룸
문헌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 갈리아 전기 · 내전기 · 파불라 · 아이네이스 · 변신 이야기 · 신약성경 · 박물지 · 게르만족의 기원과 위치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비블리오테케 · 명상록 ·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군사학 논고 · 수다 · 제국의 통치에 관하여 · 알렉시아스
건축 경기장 (아레나 \[베로나 아레나] · 콜로세움 · 키르쿠스 막시무스) · 궁전 (팔라티노 황궁 · 펠릭스 로물리아나) · 동상 (바를레타의 거상) · 로마 가도 (아피아 가도 · 플라미니아 가도) · 무덤 (아우구스투스 영묘) · 성벽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 하드리아누스 방벽 · 안토니누스 방벽) · 성채 (산탄젤로 성) · 수도교 · 인술라 · 종교 시설 (성묘교회 · 아야 소피아 · 판테온) · 포룸 (포로 로마노)
도시 유적: 다라 · 두가 · 두라 에우로포스 · 렙티스 마그나 · 마다우로스 · 마크타르 · 메리다 · 베트셰안 · 부스라 · 불라 레기아 · 사브라타 · 샤흐바 · 셀축 · 셰르셸 · 수사 · 수페툴라 · 시데 · 아스펜도스 · 아파메아 · 아프로디시아스 · 안티오키아 · 엘젬 · 엘케프 · 우티카 · 움카이스 · 제라시 · 제밀라 · 카나와트 · 카이사레아 · 크산투스 · 테베사 · 티파자 · 팀가드 · 폼페이
경제 데나리우스 · 세스테르티우스 · 아우레우스 · 솔리두스
외교 로마 제국-중국 관계 · 동로마 제국/외교
정체성 로마인 · 동로마 제국/정체성 · 제3의 로마
창작물 동로마 제국/창작물 }}}}}}}}}


파일:hb_04.35.18.jpg
위의 이미지는 콘스탄티누스 2세 시대의 것이다.

1. 개요

1. 개요

라틴어: solidus
그리스어: νόμισμα

솔리두스는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었던 금화이다. 기존의 아우레우스 금화를 대체하여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에 도입되어 이후 1000여년간 사용되었다. 금 함유량은 4.48g으로, 원칙적으로 순금이었지만 당대 정제기술의 한계로 순도는 95.8%이다.

이 금화를 제국 동방의 그리스어권에서는 '돈'이라는 뜻의 노미스마(nómisma / νόμισμα)라고 불렀고, 동로마 제국 시기에는 솔리두스와 노미스마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지중해권에서는 비잔티움에서 유래한 베잔트(bezant)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회계단위이자 일종의 기축 통화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10세기 말이 되면 재원조달을 위한 경량금화인 테타르테론(Tetarteron / τεταρτηρόν)이 생겨나면서 점차 소량으로 생산되어 희귀해졌고, 11세기 중엽부터는 순도 하락이 시작되어 미하일 7세 시기에 이르면 금화의 순도가 1/4로 떨어지는 등 가치가 결정적으로 폭락하였다. 이에 알렉시오스 1세는 1092년에 화폐개혁을 단행하였고, 구 노미스마가 지니던 최고액 금화의 지위를 대략 '고도로 정련된 화폐'라는 의미의 신(新) 노미스마인 노미스마 히피르피론(hypérpyron / νόμισμα ὑπέρπυρον)로 대체하였다. 하지만 히피르피론은 구 노미스마만큼 대량으로 주조되진 않았으며, 납세용 화폐도 좀더 저렴한 합금인 금동, 은동화로 바뀌었다. 이러한 식으로 제국 정부는 소액화를 통해 현금화율을 일정 이상으로 유지하려 노력하였으며, 때문에 제국의 경제권은 노미스마로 상징되는 금본위제도에서 은본위제도로 점차 옮겨갔다.

이렇게 11세기 말 시작된 제국의 화폐 질서 혼란기를 종식시킨 신 화폐체제의 대표주자인 히피르피론은 구 노미스마의 7/8의 순도를 지녀 콤니노스-앙겔로스 시대가 끝나는 1204년 이전까지 대략 7할 이상의 순도를 가지며 안정된 가치를 유지하였다. 통일 제국 경제권이 붕괴하는 라틴 제국 시기, 망명 정권하 하위 화폐들의 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5할 이상의 순도를 유지하였다. 팔레올로고스 왕조 시대 제국의 상황이 악화되며 완전히 은본위 사회로 접어들었음에도 제국의 자존심으로서 소량이나마 유통되던 히피르피론은 14세기 말에 이르러 제국의 금 수급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장부상의 단어로만 남게 되었으며, 1453년 제국이 멸망하면서 명맥이 완전히 끊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