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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00:14:42

예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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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hinese_dragon_asset_heraldry.svg.png 동아시아상상의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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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예렌.jpg
예렌 상상화
1. 개요2. 미접촉부족 관련 도시전설
2.1. 진실

1. 개요

파일:야인.jpg 파일:모인.jpg
예렌 동상
중국에 살고 있다고 하는 예티와 유사한 크립티드. 한자로는 野人, 또는 毛人. 즉, 야인, 모인이며 이를 중국어로 읽은 게 예렌이다.[1]

요괴와 크립티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생명체.

전국시대(기원전 340년경)부터 당나라(서기 618~907년)까지 주로 꾸준히 전해졌고 중국 중남부의 오지와 동굴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키는 2~3m가 넘고 황갈색이나 검붉은 털이 온몸에(특히 두피 부분이 길다) 북실북실하게 나 있는 유인원의 모습이라고 한다. 팽창된 눈과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팔과 큰발을 지녔고 험한 산림 지역[2]을 능숙히 다닐 수 있고 어마무시한 괴력과 악력을 가진 초인들로 중국의 신비동물학자들은 원인의 후손이라고 추측 중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전해지길 '야인 / 모인'은 원숭이처럼 온몸에 털이 난 사람들로, 원래 만리장성의 건설에 강제 동원된 인부들로 진시황의 폭정과 전쟁, 만리장성의 가혹한 강제 노동환경과 강도를 피해 산림 속으로 달아났고 그렇게 도망친 이들이 하나로 모여 모든 문물과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열매 채집과 동물 사냥을 하면서 원시인과 원숭이처럼 살아간 탓에 몸집이 커지고 온몸에 털이 증가해 자라나는 등, 신체가 짐승처럼 변이되었고 자손대대로 숨어지내며 계속 구시대의 교육을 받고 지금도 진나라 시대이고 진시황은 불로불사의 비결을 통해 불사의 비밀을 깨우쳐 불로장생 중이며 수많은 시간과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만리장성을 쌓고있으며 만약 자신들이 발각되면 또 다시 강제 부역을 해야한다고 믿고있는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전설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이 실제로 이들을 목격했다고 하며 그외에도 포획했거나 사살했다는 기록과 이들에게 살해당한 걸로 추정되는 실종이나 가축과 재산 피해 등의 사건사고와 마을사람들의 유해/유골들이 발견되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정확한지는 의문이다.

불로불사의 괴물들이고 '진시황, 장성'이란 말만 들어도 도망친다고 하며 사람을 만나면 처음엔 경계하다 위험한 자가 아니면 경계를 풀고는 고어로 "진시황은 이제 죽었나? / 진시황은 아직 살아있나?, 만리장성은 이제 다 쌓아졌나? / 이미 완성되었나? / 아직도 계속 쌓고있나? / 얼마나 쌓아졌나?"라고 물어본다고 한다. 때론 종의 번식을 위해 마을로 처들어와 가축들과 식량을 훔치는 동시에 남자/여자를 납치해 강간하거나 강제 결혼을 시킨다고 전해진다.[3]

'만리장성을 쌓아라'라고 노동요를 부르면 도망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문단에서 상세하게 다룬다. 《수신기(搜神記)》를 보면 중국 남부 후베이성 방현(房縣)의 방산(房山)에 산다는 모인(毛人)이라는 괴물이 나온다. 그런데 그 괴물은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던 시절에 가혹한 강제 노동을 견디다 못해 멀리 산속으로 도망친 사람들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모인은 강건해서 어떠한 무기로도 죽일 수 없었는데 딱 한 가지 방법으로는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모여 손뼉을 치면서 “어서 만리장성을 쌓아라! 빨리 높게높게 쌓아라~”라고 노동요를 외치면 겁을 먹고 멀리 달아난다는 것이다.[4]

이야기에 따라서 사람들이 몰려오면 자신들을 잡으려고 온다 생각해 위의 노동요를 부르며 산림 속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중국에선 이들을 찾기 위해 현상금을 걸기도 했으며 조사팀까지 꾸려 탐사에 나섰지만 그 어떤 흔적도 못 찾았다고 한다. 이에 학자들은 불곰, 아시아흑곰, 원숭이, 오랑우탄, 긴팔원숭이 등을 잘못 본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예렌이 발견되는 중국 중남부에선 오랑우탄은 오래 전 멸종했고, 불곰도 서식하지 않았기에 실질적으론 흑곰과 원숭이, 긴팔원숭이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

2. 미접촉부족 관련 도시전설

다음은 한국 인터넷에서 "진시황은 아직 살아있습니까?"라는 이름으로 떠돌았던 예렌[5]에 대한 도시전설이다. 원본 링크[6]
교수님에게 들은 기묘한 이야기가 있어.

음, 일단 그 교수님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줄게.
교수님은 중국어학과 교수님이셔.
그런데 단순히 중국어만 하시는게 아니라
중국의 문화나 지역 역사 같은 것도 굉장히 해박하셔.[7]
지금은 나이가 많으시지만
젊었을 때는 직접 중국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대.
이건 지금으로부터 몇십년전,
그러니까 교수님이 아직 젊었을 적의 이야기야

지금은 중국여행을 하는게 쉽지만
92년 한중수교 이전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어.
중국공산주의국가였고
실제로 종북주의자들이 중국을 루트로 북한에 가거나
주체사상을 배워오는 경우가 왕왕있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과거에는
중국을 방문하려면 굉장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고
비용도 장난이 아니게 많이 들었어.
그래서 교수님은 자신과 뜻이 많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조금 편법을 준비했어.
한국->중국으로 가는게 아니라
한국-> 동남아 -> 중국으로 가는 루트를 타는 거였지.

아, 오해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미리 말하는거야.
우리 교수님이 중국을 여행하고자 했던 것은
순수하게 학자로서의 열의 때문이었어.
당시 중국은 미지의 세계나 다름 없었고
대학생들이나 학자들도 진짜 몇십년전에 나오는 교제로 공부하고 있었대
그러다보니 중국 문화 연구는 상당히 열악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중국 여행을 계획한거지 무슨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건 아니야

그런데 문제가 생긴게
처음에는 한국 -> 동남아 -> 중국[8]으로 가려고 했는데
동남아 (라오슨필리핀인가 미안, 기억이 안나...)[9]
입국 심사가 탈락한거야.
당시 한국은 못사는 나라였고 그 때문에 불법취업문제가 심했나봐.

그래서 교수님은 다시 일본을 거쳐 가는 루트를 세워.
잘은 모르지만 일본에서 동남아로 가는 것은 수월했나봐.
교수님과 친구 분들은 그 말만 믿고 일본으로 갔대.
그런데 거기서도 입국 심사 탈락......

그래서 흑흑 우린 다 망했어...이러고 있는데
재일동포 한 분이 자신과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대.
그 분은 일본과 동남아를 오가면서 보따리 장사? 비슷한 걸 했는데
그 쪽 관리들이 엄청 썩어 있어서
적당히 뇌물 좀 찔러 주면 장사꾼들 세넷명 쯤은 눈감아 준다는거야.

그 말에 혹한 교수님과 친구분들은 단방에 오케이!! 하면서 따라갔데.
사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고 말이야.
다행이 방법이 통해서 동남아까지는 무사히 도착을 했어.
그런데 당시 무슨 일이 있어서....[10]
(미안 교수님이 역사적 사건을 다 설명해 주면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기억이 안나 젠장. 교양이라서 대충 들었거든)
중국 입국이 또 힘들어졌나봐.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잖아?
악이 박친 교수님은 불법적인 루트까지 찾기 시작했고
중국까지 무사히 데랴다 준다는 브로커를 만났어.

브로커가 말한 루트는 대강 이랬어.
\'우린 강을 통해 밀림을 지난 다음에 중국의 한 작은 마을에 도착할 거다.[11] 거기까지 데려다 주겠다.'
거기가 무슨 지방이라고 했더라...
어쨌든 좀 울창한 밀림지역이고 중국 공안도 잘 안찾는 오지래.
그래서 오가는게 쉬울 것이라고 하는 거야.
그렇게 교수님과 친구분들은 동남아에서 중국까지 밀입국을 시도하게 돼.

브로커는 트럭과 지게차를 번갈아서 타고 가는데
처음에는 자신을 일본의 가전제품 같은 것을 들고 가는 상인이라고 소개했데.
알다시피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은 외부 고가 사치품에 굉장히 민감하거든.
하지만 공산당 상류층은 알게모르게 그런 사치품을 사 모으는 것을 즐긴데
그래서 그게 상당히 돈벌이가 된다고 하더라고.
교수님과 친구분들은 그 말만 믿고 따라갔고.
그런데 동행한지 한 4일 즘 되었을 즘에
정말 우연히 짐을 뒤지다가 그 사람이 뭘 밀수하는지 발견했대.

그건 다름 아닌 \'마약'이었어.
일본의 전자제품을 밀수한다는 것은 순 뻥이었던거지.
이쯤되자 점점 브로커와 함께 있는게 불안하기 시작했어.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말하자면
중국은 마약에 굉장히 민감해.
아편전쟁 이후로 마약은 가지고만 있으면 외국인 내국인 할 것 없이 그냥 사형이야.

이쯤되자 교수님과 친구분들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만약 잘못 걸리면 자기들도 끌려가서 그 즉시 사형인데다가
그 브로커라는 사람 총도 가지고 있었거든.
만약 실수로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입막음을 하려고 죽음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어.

몇십년전 중국이라고 생각해 줘.
그 나라는 심심하면 사형 내리는 나라니까.
거기다가 밀입국자라면 얄짤없겠지.

그래서 일단 이 사람에게서 도망치자는 계획을 세웠어.
마침 밀림을 지나고 있었는데 사람도 잘 안다녀서
어디 멀리 숨어버리면 못쫓아 올것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새벽에 자고 있을 틈을 봐서
그냥 앞도 안보고 숲으로 도망쳤대.
...

그런데 그 때 교수님이랑 친구 분들이 살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커서 ㅋㅋㅋ
진짜 앞만 보고 도망치다보니 길을 잃었대
농담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보니 숲 한 복판이었던거야.

\'부릅뜨니 숲이었어' - 이거 교수님이 한 드립이야!!!

당시 교수님과 친구 분들은 그냥 숲에 숨어 있다가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거야.
하지만 오지 밀림이 그리 쉬운 곳이 아니었어.
그래서 헤매고 헤매다가 우연히 강을 발견했대.
강 근처에는 보통 마을 사람들이 몰려 사니까
일단 강을 좀 따라가보자 하고는
무작장 강만 따라서 갔어

당시 교수님과 친구 분들은 먹을 만한게 전혀 없었어.
다행히 근처가 밀림이라 나무 열매라던가 물고기나 가재가 있어서
그럭저럭 배는 채울 수 있었대.
그런데 문제가 바로 \'물'이었어.

중국은 물이 굉장히 좋지 않아.
황하강 들어봤지? 강 자체에 뿌옇게 흙먼지가 끼어 있어.
그래서 물을 끓여 먹는 차 문화가 발달한 거래.[12]

일단 목이 마르니까 근처의 강물을 마셨는데
이것 때문에 매일 설사에 시달렸데
급기야 탈수까지 왔고
밀림을 헤맨지 한 삼사일 쯤 후에는 정말 죽기 일보 직전이었어

그런데 운이 좋은 것인지 강을 한참 따라가던 중에
저 멀리 아이들이 발가벗고 노는 게 보였대.
죽기 일보 직전에 사람을 만나니까 너무 반가운거야.
그래서 어떻게든 도움을 청해야 겠다 싶어서
막 달려갔는데
아이들이 선생님과 친구분들을 보자마자 미친듯이 도망을 간거야.
그런데 이게 그냥 순간 놀라고 무서워서 도망치는게 아니라
무슨 맹수나 산짐승을 보고 놀라서 도망치는 것 같았대

그런데 교수님은
\'여기서 저 아이들을 놓치면 난 죽는다'라는 생각이 불연듯 들어서
그냥 뛰는 아이들을 보고 무작정 쫓아갔어.
물론 교수님과 친구분들은 탈수로 힘이 없었지만 어른이었고
아이들을 앞지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
그래서 아이들을 쫓아 막 달려갔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어디 벼랑 틈으로 숨은 거야.
그래서 따라가보니까 거기에 조그마한 촌락이 있던거야

그런데 그 마을이 무슨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 당시 시골마을 보는 것 같았대
막 벽도 황토벽이고 지붕도 초가집이고....
갑자기 아이들이 놀라서 달려오자 마을 어른들도 놀랐는지
우르르 몰려왔나봐.
교수님과 친구 분들은 그냥 사람이 있다는 것에 반가워서
막 붙잡고 도와달라고 통 사정을 했대.

교수님도 처음에는 식인종 생각을 하셨어.

교수님은 중국 여행을 계획하셨을 정도로
웬만한 통용 중국어도 능통하고 한자도 많이 아셔.
그런데 아는 중국어를 총 동원해도 도저히 그 사람들이랑 말이 안 통하는 거야.[13]
하지만 일단 지금 꼴이 말이 아닌데다가
바디랭귀지로 힘들어 죽겠다 식으로 대강 하니까
마을 사람들이 점차 경계를 풀고 물이나 먹을 것을 가져다 줬어.

그렇게 정신을 좀 차리고 나니까 그 마을의 촌장? 비스무리 한 사람이 왔대.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너무 방언이 심해서 도저히 못알아 듣겠는거야.
분명 이게 중국어 같은데 중국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런데 이 촌장이 계속 뭐 한가지만 말하더래.
\'찌뿌지워화워찌우잉?' -> 미안, 교수님이 대강 이런 뉘앙스라고 말만 하셨어. 그냥 알아 들을 수 없는 중국어라고 생각해줘.

그냥 무슨 말만 해도

\'찌뿌지워화워찌우잉?'

배고프다고해도

\'찌뿌지워화워찌우잉?'

여기가 어디냐고 해도

\'찌뿌지워화워찌우잉?'

이 말만 계속 하는 거야.

그래서 도저히 말이 안통하니까 답답해서
교수님이 메모장이랑 볼펜을 꺼냈데.
일단 그들도 어느 정도 글자는 쓸 수 있으니까
한자로 필답을 하려고 햇던거지
잘은 모르지만 과거에 언어가 안통할때
한자 문화권에서는 종종 이렇게 한자를 통해 필담을 했대

촌로는 볼펜이랑 메모장을 신기해 하면서
뭐라고 막 열심히 썼대
그런데 웃긴게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사람들이 쓰는 한자도 정말 듣도보도못한 한자라서
뭐라고 쓰긴 쓴 것 같은데 진짜 알아보지를 못한거야.

한 몇시간 쯤 이렇게 되니까 양 쪽 둘다 지쳐서
그냥 모든 걸 포기했어

그래서 일단은 그 마을에서 묵기로 했는데
그 사람들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대.

일단 교수님이랑 친구분들이 입고 있던 물건을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했대
그리고 남자고 여자고 그냥 털이 수북해서 무슨 원숭이를 보는 것 같았다는 거야. (우리 주위에도 털 많은 사람들 간혹 있잖아.)
근처에 나무나 벼랑이 많아서 그런지 다들 그런데를 도구 없이 척척 올라가는 등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륙의 기상을 보여 준 게지...

막상 먹고 자는게 해결 되니까
잊고 있던 학구열이 떠오른 교수님이랑 친구 분은 이것이 기회다 싶어서 마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데.
딱히 말리는 사람도 없고 말이야.
특히 이 사람들이 무슨 노동요? 비슷한걸 불렀는데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최대한 비슷하게 외웠대. 나중에 도움이 될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며칠동안 지내다보니까 체력이 조금 회복이 됐는데
그 마을 촌장이 다시 부른 거야.
그리고는 막 열성 넘치는 바디랭귀지로 이야기를 하는데

대강 알아챈 뜻을 간추려 보면

너 괜찮다.
여기 살아라.
내 딸 준다.

였대....

잘은 모르지만 오지마을 같은 곳에서는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해서
이렇게 잘못 흘러들어온 외국인과 결혼 시키는 경우가 있나봐.

그런데 이런 오지 마을에서 결혼해서 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교수님은 당연히 어이가 없어서 거짓말로
자신은 이미 결혼을 했다고 대강 바디랭기지로 설명을 했어.
그런데 오히려 태연하게

결혼? 그게 어때서?
둘째 마누라로 내 딸을 맞아라.

라고 좀 더 강압적으로 나간거지.
그래서 슬슬 무서워진 교수님과 친구분들은
그냥 여기를 떠나겠다 라고 대강 설명을 했대
그런데 촌장은 막 화를 내면서

너네들 못가
여기서 살아
안 그럼 죽음

이라고 좀 무시무시한 얼굴로 협박을 했나봐

그래서 교수님은
아놔 ㅅㅂ 내가 여기까지 와서 또 죽게 생겼네 싶어서
다시 작당모의를 했대.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이 밭일을 한 틈을 타서
또 다시 밀림으로 튀었어.
다행히 먹을 걸 좀 챙겨와서 저번처럼 마냥 굶주리지도 않았고.
잡히면 그냥 여기서 꼼짝 못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또 다시 밀림으로 간 거야.
그리고 한 며칠간 밀림을 헤매고 있었는데
운좋게 숲에서 동남아 사냥꾼을 만날 수 있었대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빌었고
다행히 밀림을 빠져나와 동남아에서 일본을 거쳐 무사히 한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어.
그리고 중국에서의 추억은 젊었을 적 개고생한 추억으로 한동안 남아 있었지.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

중국 소수민족에게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자신의 딸이나 아내를 빌려주는 일도 있었고
만약 그것을 거절하면 자신을 모독한다고 생각해 칼부림이 나는 일도 있었던 모양이야.

그 후로 교수님은 학자 활동을 하면서 몇번인가 중국을 더 방문했대.
물론 이번에는 죽도록 고생하지 않는 합법적인 루트로 말이야.[14]
그리고 드디어 한중수교가 맺어지면서
정식으로 중국도 여행하고 문물도 주고 받는 뭐 그런 일이 일어났어.

그런데 그 즈음에 어떤 중국 교수가 중국의 지방 방언이나 한자 같은 걸 연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거야.
그래서 좋은 자료같은걸 찾는 다는 이야기가 있었어,
교수님은 마침 그 때 메모장에 써놓은 한자나 자신이 들은 문화 같은 이야기를 하면 좋아하겠다 하고 연구회장에서 직접 만나서 그 이야기를 했어.
물론 그 교수는 굉장히 흥미로워했고 말이야.

그런데 그 중국교수도 메모장에 써있는 한자를 도저히 모르겠다는거야.
그래서 다른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기 시작햇어.
그 중 한 교수가 주의깊게 그 글을 읽어보더니 이것을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봤어
교수님은 내가 젊었을 적에 이래저래 해서 고생해서 마을 들어갔더니 그랬습니다 ㅋ 하고 그냥 쿨하게 이야기 했대.

그런데 중국교수의 말로는 이건 그냥 소수민족 한자가 아니라는 거야.
이 한자는, 지금은 사멸한 진나라시대 때 통용되던 고대한자라는 거지.
그리고 번역해본 바에 의하면 메모장에는 진나라 한자로 빼곡하게,

\'진시황은 죽었습니까?'
\'진시황은 죽었습니까?'
\'진시황은 죽었습니까?'
\'진시황은 죽었습니까?'
\'만리장성은 얼마나 쌓았습니까?'
\'만리장성은 얼마나 쌓았습니까?'
\'만리장성은 얼마나 쌓았습니까?'
\'만리장성은 얼마나 쌓았습니까?'

라고 쓰여져 있었대................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자들은 한번 발칵 뒤집혔는데
중국에는 전설처럼 모인(毛人)의 설화가 전해 내려온대.
일종의 상상의 동물인데..
진나라시대 때 만리장성 부역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숲으로 들어가서 마치 원시인처럼 털로 뒤덮여서 살고 있대.
그들은 자손대대로 숨어 살면서
아직도 진나라 시대 때라고 믿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아직도 만리장성을 쌓고 있고 자신들도 발각되면
그 부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대.....

진나라가 망한 뒤에 무려 몇천년간 말이야...

그 후에 교수님은 다시 문화 연구를 위해 중국을 다니다가
어디 만주 지방 쪽을 들르셨대.
그런데 거기서 만주어중국어가 굉장히 유창한 할머니 한분을 만났나봐.
만주어는 지금 사멸위기인데다가 하는 사람도 얼마 없어서 문제가 있는 언어야.
당시에도 상황이 비슷했고,
어쨌든 그 할머니를 자주 찾아뵈면서 이런 저런 연구를 하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유독 귀에 익은 노래를 하는거야.
그 때 마을에서 들었던 그 노동요였던거지.
그런데 가사가 만주어였어
뜻을 대강 해석하자면

만리장성을 쌓아라
높게높게 쌓아라~ 뭐 대강 이런 뜻이었대.
그래서 할머니에게
(여기서부터는 귀찮으니 대강 대화문만 쓸게)

\'그 노래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어머니와 언니들한테 배웠다'
\'만주 노래인가요?'
\'아니다, 중국인 노래다. 가사만 만주어다.'
\'오래 불리던 노래인가요.'
\'그렇다.'
\'어떤 중국인이 가르쳐줬습니까'
\'모른다. 그런데 이거 중국인이 가르쳐준게 아니다. 먼 옛날에 원숭이들이 가르쳐준 노래라고 한다.'
라고 했대...

원숭이들이 모인을 가르키는 것인지는 교수님도 몰랐대
그냥 전설은 전설이니까.

나도 이 이야기가 진실인지 어디인지는 몰라.
하지만 교수님이 거짓말을 괜히 지어낼 분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거리를 따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모습으로 남아 있던게 아닐까 싶어.
만약 근처에 있었다면 진나라가 망한 뒤에 자연스럽게 그들도 중국대륙에 섞여 들어갔겠지.
하지만 노역을 피해 최대한 멀리 도망치다보니까
그런 오지 숲속까지 찾아 들게 되고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외부와 격리된채 그런 모습으로 아직까지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일단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끝이야.
스레인 이상 이 글을 믿어달라고 막 주장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봐.

아직도 드넓은 중국 대륙 어딘가에는
지금도 진시황이 살아있고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 몰라.
그들에게 있어 만리장성 노역은 몇천년간 이어지고 있겠지...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말이야.....

2.1. 진실

당연하지만 이 글은 현재는 폐쇄된 구 스레딕에서 지어낸 픽션이다.

괴담 자체에 허술한 설정구멍이 매우 많다. 냉전 시대에도 동남아가 아닌 홍콩을 거쳐 가는 게 훨씬 안전하고 편하고 저렴하며 빨랐다. 오히려 냉전 시대에 중국과 접경해 있던 국가인 버마, 베트남, 라오스 등은 모두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동남아로 가는 것이 더 위험했다.[15] 애초에 괴담의 전제 중 하나인 관련 교재의 부실함은 홍콩이나 마카오, 대만[16][17]을 통해 나오는 교재를 매우 쉽고 빠르게 한국으로 반입 가능했다는 점으로 반박이 가능하다.

오히려 그 시절에는 재일교포를 따라가는 게 더 위험했는데 당시 교포 사회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조선적들은 대부분이 친북 성향이었고 1970년대 초반부터 대한민국 국적자가 교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기 시작한 상황이라고 한들 조총련의 위세가 아직 꺾이기 전이기에 조총련과 북한에 포섭된 공작원들이 일본에서 빈번히 활동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조총련에 의해 17명의 일본인이 납북된 전적이 있고 북한의 영향력이 적은 서방권에서조차도 북한에 의한 한국인 납북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중국어 학과 교수가 전서를 못 알아본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게 전서는 현대 한자와 구분되는 아예 다른 문자가 아니라 서체다. 물론 자형의 괴리가 현대와 심하거나 격리되어 살던 모인 공동체 내부에서 자형이 변형되었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전자는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다시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고 후자는 아예 해석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때문에 중국어 학과 교수가 전서를 못 알아본다는 것은 마치 국문학과 교수가 이두, 향찰을 못 알아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넓디넓은 중국 대륙에서 아직 발견되지 못하고 고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미지의 민족이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문제는 이 도시전설의 배경이 중국과 동남아 국가인 버마, 베트남의 접경지대라는 점이다.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 당시 중국군의 베트남 국경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침공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이런 미접촉부족이 있다면 진작의 발견되었어야 정상이고 1991년까지도 고지전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수상한 존재들이 있었다면 진작에 중국이나 베트남 정부에 의해 조사되고 접근이 통제되었을 것이다.

중국-라오스·버마 국경은 구릉과 산맥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도망자들이 들어가기도, 들어가서 살아남기도 어려운 곳이며 중국-버마 국경에서는 수많은 게릴라들이 활동하고 있고 현재도 와방(佤邦, Wa State)이라는 중국계 미승인국가가 세워져 있는 마당에 이런 미접촉부족이 존재하기도 힘들다. 애초에 라오스와 버마와의 국경이 위치한 윈난 지방은 진나라의 세력권에도 포함되지 않던 지역으로 삼국지연의에서 맹획국왕으로 나오고 정글과 독천으로 뒤덮인 남만이라고 부르는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이를 보면 비록 진시황 시대까진 아니더라도 700년 전 원나라 시대의 한족들에게도 운남성은 오지로 여겨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운남성 일대는 진나라 건국으로부터 불과 몇백 년 정도 이전인 춘추전국시대에도 초나라의 장군인 장교가 정벌을 시도했다가 초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눌러앉아 버렸을 정도인 파촉 지방에 버금가는 오지였는데 이런 미지의 습지 정글로 들어갈 사람이 몇이나 되며 살아남을 사람은 또 그 중에 몇이나 될까? 괜히 정글녹색 지옥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그곳엔 호랑이표범이 우글거리고 독초전갈이나 지네를 비롯한 독충, 코브라, 비단뱀, 왕도마뱀, 악어가 넘쳐나며 식수를 얻을 수 있는 강과 웅덩이에는 주혈흡충을 비롯한 기생충들이 가득 차 있고 말라리아라는 풍토병도 돌며 농사조차도 제대로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지력이 매우 낮고 많은 양을 먹어치우는 코끼리코뿔소까지 있어 애초부터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불가능하다.[18] 따라서 애초부터 진나라 시절 도망친 농민들이 이곳에 정착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설령 앞서 말한 오지라는 단점을 역이용하여 운남성 오지에 정착했더라도 길어 봤자 3대를 넘기지 못하고 모두 전멸했을 것이다.

이 괴담은 괴담의 시초가 모티브가 되었던 중국의 모인 설화와도 대립되는데 해당 설화에서는 모인에게 "장성을 쌓아라"라고 말한다면 도망간다고 나와 있으나 정작 이들은 자신들의 노동요로 해당 구절을 사용하고 있는, 마치 흡혈귀가 마늘을 먹는 것과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동남아와의 접경지대에 산다는 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어떻게 직선거리로 2,000km 이상 떨어진 만주에 사는 만주족 노파가 알 수 있겠는가? 원본 설화에서는 호북성(후베이성)에 산다는 이들이 어떻게 동남아와 중국의 접경지대에 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것이 실화라면 단순히 그냥 학회가 발칵 뒤집히고 끝날 일이 아니다. 언어학, 인류학, 역사학 등 사회과학의 별별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을 단순히 '놀라운 일이 있다'라고 넘어갈 수 있겠는가? 노스 센티널 아일랜드의 원주민들인 센티널족과 달리 이 모인들은 어느 정도 우호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대화도 통한다. 대충 생각해 봐도 옛 전설 속에 있던 잊혀진 존재가 발견된 것으로, 누군가 오지에서 아틀란티스 유적의 일부를 찾아내거나 살아남은 (현생 조류를 제외한) 공룡을 찾아낸 것이나 다름없는 사건이다. 이런 발견이 있었다면 관련 논문이 적어도 수십 편은 쏟아져 나왔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 괴담은 현실성이 제로에 수렴하는 도시전설일 뿐 결코 현실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중간에 언급된 특이한 뉘앙스의 언어는 상고한어의 발음과 그럭저럭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19] 고대 중국 문화에 대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재학생이 강의 시간에 대충 주워들은 상고한어 관련 정보로 이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거나, 이야기를 전했다는 교수가 실존인물이라면 소양이 부족했을 학생들을 상대로 흥미를 돋구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을 확률이 가장 높아 보인다. 교수들 사이에서 조금씩 들었던 썰들을 모아 모두 자신이 겪은 일이라고 합쳤을 확률이 가장 높다.

진시황을 피해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의 구도가 무릉도원 일화와 유사하며 진시황의 폭정과 만리장성의 가혹한 환경 및 무리한 노동으로 인해 생겨난 맹강녀 이야기와도 유사점이 있다.


[1] 실제 발음은 예런에 가깝다. 한어병음 표기시 yěrén.[2] 높은 산, 절벽, 물살이 센 강, 가시덤불, 돌밭, 위태로운 산길, 험한 산골짜기, 가파른 멧부리, 깊은 물 등.[3] 특히 피해자는 여성이 많다.[4] 출처:<전쟁이 발명한 과학기술의 역사>, 도현신 지음[5] 본문에서는 모인(毛人)으로 언급[6] 원글의 출처였던 스레딕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원글을 카피한 오늘의 유머 게시글로 링크된다.[7] 중국어뿐만 아니라 특정 외국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해당 언어권의 문화나 역사 등에 대해 비전공자보다 해박한 게 보통이다. 숙어나 관용구와 같은 심화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8] 정황상 라오스미얀마를 거쳐 중국 윈난성으로 들어가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9] 운남성과 만나있는 동남아 국가로는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이 있다. 그러나 라오스와 베트남은 모두 순한 맛이라지만 엄연히 공산 국가고 이 글에서 다루는 시점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둘 다 냉전 시기에 내전을 겪은 나라이며 미얀마도 1988년까지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존속했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면 원문의 필자가 잊어버렸다고 주장하는 동남아 국가를 특정하기 힘들다. 물론 이런 문제는 아마 주작썰이라 작성자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잘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10] 정황상 1983년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이나 1985년중국 해군 어뢰정 망명사건일 가능성이 높다.[11] 정황상 윈난성 남부 일대로 추정된다.[12] 황하강 수질 때문에 차 문화가 발달한 것을 사실이지만 교수 일행이 떠돌고 있는 곳이 운남성으로 추정되는 만큼 황하가 아닌 메콩강이나 그냥 동네 작은 강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13] 중국에는 다양한 사투리가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별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르다.(그냥 같은 계열 다른 언어 수준) 운남성은 사투리가 있긴 하지만 표준중국어의 바탕인 관화에 분류된다. 즉 광둥성이나 상하이 같은 지역과 달리 표준중국어와 상대적으로 유사하다.[14] 정황상 1986 서울 아시안 게임1988 서울 올림픽에 중국이 참가하면서 한중관계 개선이 시작된 시기로 추정된다.[15]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중국은 최소한 통일되고 중앙집권화된 정부를 가지고 있었고 한국인에 대한 반감도 적었으나 베트남을 제외한 라오스나 버마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와중이었고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의 기억으로 인해 한국인에게 극도로 적대적이었으며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 이후 중국-베트남 관계가 냉각되었을 때라 중국으로 밀입국할 경우 간첩으로 몰려 사살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16] 당시 대만은 중화문명의 총본산을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일부 부문에 대해서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상당한 문화유산과 자료가 소실된 대륙보다 더 자세한 정보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었다.[17] 1992년 한중수교 이전에 중국어 어학연수를 희망하던 학생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코스는 대만의 국어중심(國語中心)에서 단기연수를 받는 것이었다.[18] 특히 대규모로 문명을 일구기에는 아주 불리한 지형이기 때문이다.[19] 상고한어의 발음은 현대 중국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성조가 들쑥날쑥하고 물흐르는 것 같은 부드러운 발음과는 전혀 다르다. 다만 저 교수가 이야기한 문장은 "知不知我話我口音(내 말, 내 사투리 알아듣겠어?)"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근대 관화 발음을 바탕으로 적당히 급조했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