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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급진주의(急進主義 / Radicalism, Radical liberalism) 혹은 급진적 자유주의는 당대의 좌파 자유주의이자 진보주의의 일종으로 18세기와 19세기 서구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역할을 담당했으며, 또한 사회자유주의의 원류가 되는 사상이다.18세기 후기, 19세기 전기~중기까지만 해도 급진(적 자유)주의는 좌파로, 반동(적 보수)주의는 우파로 서로 대조되는 정치적 위치에 있었다.
2. 명칭
일반적인 현대의 급진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자유급진주의(liberal radicalism), 급진(적) 자유주의(radical liberalism)라고도 한다. 원래부터 자유주의 하위분파이기 때문에 급진적 자유주의라고도 하지만, 당시에는 단순하게 급진주의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현대에 와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급진주의'[4]와 구별하기 위해 고전적 급진주의(classical radicalism)라고도 한다.
마르크스주의 등장 이전까지 고전적 급진주의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자들이 성장하면서 이들을 "부르주아 급진주의"라고 공격하면서 자신들(마르크스주의자들)이이야 말로 진짜 급진주의자라고 칭하게 되었고, 이후 등장한 파시즘도 급진주의 우파라고 자칭되었으며, 대처나 레이건 같은 신자유주의 강경 개혁정책에도 급진주의적이라고 부르는 등, 현대 정치에서는 다양한 맥락에서 "급진주의"라는 용어를 사용되게 되었고, 따라서 이들과 정통 급진주의를 구별하기 위해 "고전적 급진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이다.
3. 성향
급진주의는 고전적인 자유주의의 한 형태이지만 일반적인 고전적 자유주의와 달리 경제적 불평등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다만 보수우파들의 중상주의, 보호무역, 고립주의 문제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고전적 자유주의와 비슷하게 반대하고 반군주의[5], 자유무역, 국제주의를 지지했다.계몽주의, 합리주의, 공화주의, 세속주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으며 우파의 배외적 내셔널리즘과 인종주의에 반대하며 자유주의적 내셔널리즘을 옹호했다. 또한 전통주의, 교권주의, 보수주의, 군주주의에 반대했다.
이렇듯 국적 불문 급진주의자들은 사회문화적으로 진보적이였으며 가부장적이며 귀족적인 당대 주류 보수 우파에 대항하며 남성, 귀족, 부르주아 뿐 아니라 여성과 노동계급에게도 선거권을 확대할 것을 주장하며 선거제도의 급진적 개혁을 추구했다. 종교적 권위를 불신하여 그것을 타파할 것을 부르짖었고, 부르주아 중심의 경제 시스템도 비판적이였는데, 특히 보수적인 부르주아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모든 인민의 자유주의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재산의 재분배를 내세웠다. 이러한 사상은 훗날 새자유주의(사회자유주의)나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로 이어지게 된다. 귀족과 기득권과의 타협을 중시했던 오를레앙주의나 휘그주의 같은 '사회보수주의적 자유주의'에 맞서 체제 개혁 또는 혁명, 피억압 시민의 권리를 외쳤다.
서구 노동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도 본래는 사회주의가 아닌 급진주의(좌파 자유주의)에 기반하였으나,[6] 20세기 초부터는 사회주의 열풍이 불면서 점차 사회주의를 수용한 경우가 많다.
4. 초급진주의
자세한 내용은 초급진주의 문서 참고하십시오.5. 현대 정치에 미친 영향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 | 노예제 폐지를 옹호했던 급진파 공화당원들 |
차티스트 운동(노동 계층 참정권 운동)에 대한 당대 만평 | 서프러제트(여성참정권 운동) 활동가들의 시위 |
또한 저런 좌파 이념이 아니더라도, 기성 체제에 도전한 18~19세기의 급진적인 자유주의 운동과 이념에서 비롯된 것들은 거의 현대문명을 창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 차티스트 운동, 서프러제트 운동 등으로 보여지는 당대 기준 '급진적' 선거개혁운동은 오늘날의 상식이나 다를 바 없는 보통 선거 원칙을 제공했다.
- 모든 급진주의자들이 공화주의자는 아니었으나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19세기의 군주국의 공화주의는 상당수가 급진주의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즉,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은 이 사상에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화국일지라도)현대 정치의 좌익 공화주의(left-wing republicanism)또한 급진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 18세기 말~19세기 노예제 폐지를 주도했다.[7]
- 노예제 외에도 인종차별에 반기를 든 초기 근대 사상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초기 급진주의자였던 로베스피에르는 당시 극도로 핍박받던 유대인을 적극 변호했었다. 또한 급진주의자들은 배우와 가수에 대한 차별 철폐에도 기여했다.
-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공화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상식으로 여겨지는 국민주권 개념도 본래 급진주의 좌파들인 자코뱅이 창시한 것이였다. 또한 방어적 민주주의를 최초로 주장한 것도 루이 앙투안 드 생쥐스트였다.[8]
- 후술할 내용처럼 초기 사회주의 이념 그 자체가 급진주의에서 파생된 사상이였다. 마르크스주의 이후 급진주의 전통과 사회주의 전통이 분리되었지만, 그들조차도 초기 사회주의로써 공상적 사회주의의 의의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샤를 푸리에, 존 스튜어트 밀 같이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닌, 완전히 동등하고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하는 인격체라는 것을 상식으로 자리잡게끔 만든, 당대 기준 급진적 사상가들도 유명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현대 기준에서 '상식'인 것이고, 당대 기준에선 보수주의자들이나 심지어 온건 자유주의자(당시 좌파)들에게는 매우 급진적이고 심지어 혁명적으로 여겨졌었다.
오늘날 살아남은 각국의 급진주의 전통의 정치 세력들은 공통적으로 동성결혼을 포함한 결혼 평등, 여성의 낙태권을 포함한 생식권, 강력한 세속주의 옹호 등의 공통된 특성들을 보인다.
6. 역사
6.1. 탄생
18세기 후반(특히 프랑스 혁명기)에는 극좌 이데올로기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에는 가면 점차 주류화되어 중도좌파정치세력으로 자리잡게 된다.최초의 급진주의 정치세력은 프랑스가 시작점이다.프랑스의 급진주의는 프랑스 혁명 시기가 그 출발점이였다. 주로 클뢰브 데 자코뱅(자코뱅주의), 클뢰브 데 코르들리에(원류포퓰리즘)[9]로 나타났는데, 이 중에서 산악파, 에베르파, 격앙파가 두드러졌다. 격앙파는 프랑스 최초의 사회주의 당파로 평가받는다. 다만 당시에는 모든 공화주의자들이 급진주의자는 아니었는데 가령 지롱드파는 공화파였으나 온건 리버럴에 가까웠다. 다만 부르봉 왕정복고와 초기 7월 왕정시기에는 거의 모든 공화주의자들은 탄압받았으며 극좌 급진 세력으로 분류되기도 했었다.
급진주의 세력의 시초는 프랑스였으나, 정작 급진주의라는 정치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영국이였다. 18세기 후반기 주요 정치인이자 좌파적 의회주의자인 찰스 제임스 폭스(Charles James Fox)가 프랑스 혁명 시기의 좌익적이고 공화주의적 개혁을 급진적으로 봤고 이것을 급진주의, 급진세력으로 정의한 것이다. 이후 휘그당 내 좌파는 스스로를 "급진주의자"로 정의하였다. 또한 이후 휘그당의 보수성을 좋아하지 않았던 급진성을 가진 자유주의자들은 개별 당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미국 독립 전쟁에 시발점이 된 책인 '상식'의 저자 토머스 페인이 당대 대표적인 급진주의자였다. 이후 미국의 급진주의 운동은 민주공화당에서 나타났다.
라틴아메리카 근현대사에서 영웅으로 손꼽히는 시몬 볼리바르도 급진주의자였다.
6.2. 전성기
프랑스 내셔널리즘은 원래 자유주의~급진주의자들이 지지하던 좌익적 의제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중도우파에게도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드레퓌스 사건 이후 상황이 달라진다. 반유대주의 반대 등 반인종주의가 좌파들의 주된 의제가 되었는데, 대부분의 우익들은 반드레퓌스파, 대다수의 좌익 리버럴 내지 급진 세력들은 드레퓌스파로 분류되었었다. 이후 프랑스의 급진주의 전통은 급진당 전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실제로 1989년 프랑스 총선에서는 아예 반드레퓌스파와 드레퓌스파로 정치 진영과 선거연합이 형성되었을 정도였다. 반드레퓌스파 소속 정당들 중에는 자유보수주의 정당들도 있었는데, 이를 보면 당시 프랑스 보수주의/우파(반(反)급진주의) 진영 전반에서 반유대주의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초기 영국 급진주의자들은 군주주의에 부정적이였고 자코뱅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에 공화주의적 성격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으나, 1800년대~1830년대 사이에 프랑스 등에서 공화주의 열망이 많이 사그라들자 급진파의 주 의제도 공화주의보다 차티스트주의[10]로 이동하게 되었다. 차티스트주의를 지지하던 급진주의자들 일부는 훗날 노동당과 페이비언 협회 형성하게 된다. 공리주의 사상가 제러미 벤담, 제임스 밀과 그의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로버트 오언 등이 대표적인 영국식 급진주의자들이였다.
미국에서 급진주의가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은 것은 앤드루 잭슨 시기이다. (노예제 이슈가 부상하기 전) 잭슨 민주주의는 노동농민을 포함한 모든 백인남성에게 투표권을 제공해야 하며, 공리주의를 주장하고 금융 기득권 타파를 주장하는 등 급진적인 주장들을 펼쳤다. 노예제 이슈가 부상한 19세기 중반에는 노예해방과 흑인권리 지지가 급진적인 의제로 다루어졌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도금 시대가 지나가고 진보 시대가 도래할 무렵이 되면 인민주의자들, 진보주의자들이 급진 세력으로 분류되었다. 이후에도 개별 사회주의 전통이 주류화되지 못한 미국에선 현대에 와서도 (유럽이나 중남미에선 거의 중도나 중도좌파 정치를 지지하는 의미로 자리잡았으나) '급진주의'는 미국에선 여전히 좌익적 의미가 강하다.[11]
의외로 일본에서도 급진주의 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들 대다수가 천황을 숭배하는 분위기였는데다가 일본 제국 자체가 공화주의를 잔인하게 탄압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단 한번도 주류가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일본의 급진적 자유주의 전통은 체제 하에서의 보수적인 리버럴 세력들과 구별되었고, 당대 또다른 반체제 사상이였던 혁명적 사회주의를 수용하기에 이른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일본의 대표적인 급진적 자유주의자(radical liberal)는 고토쿠 슈스이가 손꼽힌다. 사실 그는 10대 시절이나 20대 초만 해도 자유주의 개혁 운동가였는데, 그는 일본 초기 자유주의 정당인 자유당의 기관지인 자유신문의 영어 번역자였다. 그러나 자유당이 입헌자유당→헌정본당을 거쳐 구 자유당 주류파가 보수화되어 우익 정당인 입헌정우회를 결성했기 때문에[12] 체제 내의 자유주의 운동에 큰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기존 체제에 대항하고 반제국주의를 추구할 수단으로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따라서 그는 급진적 자유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이자 (혁명적)사회주의자 아나코 코뮤니스트로 평가받는다.[13] 이외에도 많은 일본의 급진주의자(자유주의적 공화주의자)들은 일반적인 좌파 자유주의나 사회민주주의를 넘어서 사회주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체화했기 때문에 일본의 급진주의 운동은 유럽과 달리 사회주의와 분리되지 않았다.
일본의 급진주의와 서구의 급진주의의 또다른 차이점은, 유럽의 급진주의자들이 반교권주의에 기반해 다소 반기독교적인 성격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던 반면에, 일본의 급진적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오히려 기독교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14] 서구권보다 훨씬 사회보수주의적인 일본 사회에서 기독교는 혁신|적인 정치,사회 운동과 종종 결합하곤 했다. 게다가 현재 한국과 달리 일본에선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인들이 기득권이 아닌 되려 차별받는 소수자집단이였기 때문에 이들을 대변하는 것이 좌파적 가치에 부합한 점도 있었다.
6.3. 20세기
1924년부터 1938년까지 유럽 급진주의자들이 급진주의 인터내셔널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이 조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인터내셔널에 흡수된다.20세기 초중반 들어 사회민주주의가 서구의 주요 정치세력으로 자리잡고, 기존의 급진주의자들은 사회자유주의로 대체되면서 유럽에서 급진주의를 내세우는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일부 학자들은 1940년과 1973년 사이에 유럽의 급진주의 정치 세력이 소멸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기존의 유럽 급진주의자들은 현대에 와서 사회자유주의[15], 보수자유주의[16], 진보주의[17], 사회민주주의 등으로 언급된다. 또한 미국의 급진주의자들은 현대자유주의로 계승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전후 일본에 와서는 일본 제국 시절의 주류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민주당을 결성했으나, 사실상 (일본에선 대부분이) 사회주의자들인 급진주의(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은 일본사회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사회당도 급진주의 정당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6.4. 21세기
현재도 네덜란드[18] 프랑스[19], 이탈리아[20], 덴마크[21] 등 일부 유럽 지역의 좌파 자유주의 정당들은 급진주의 전통을 지지하는데, 영미권에서는 이들을 사회자유주의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기독교 민주주의나 사회 주류 이념과 타협하기도 하는 다른 사회자유주의자들도 있는 반면에, 급진주의 전통을 고수하는 사회자유주의 정당들은 문화적으로 매우 진보적이며 반교권주의 내지 심지어 반기독교적 성격이 나타나기도 한다.중남미에서도 ‘급진주의’를 표방하는 자유주의 정당들이 있다.[22] 이념적으로 중도적 자유주의부터 사회민주주의까지 폭넓은 성향으로 존재한다.
7. 영향
현재 주요 자유주의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사회자유주의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실제로 사회자유주의는 급진적 자유주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했다. 다만 현대의 사회자유주의는 급진적 자유주의와 달리 반드시 진보주의를 담보하지는 않는다.[23]7.1.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운동과의 관계
미국에서 우파를 conservative, 범좌파를 liberal이라고 하는 것은 유럽,중남미 등 여러 지역에서 중도이념인 자유주의를 미국에서 이상하게 해석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있다. 그러나 원래(19세기)의 용례로 따지면 따지면 이러한 구분이 맞다.[24] 유럽에서도 19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conservative가 우파 이념 전반, liberal이 좌파 이념 전반을 가리킨 경우가 많았다. 그 중 radical는 강경한 좌익(내지 극좌)성향의 liberal들을 가리켰다.[25]radical 진영이 중도~중도좌파로 밀려난 것은 계급투쟁론에 기반한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가 등장하고,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파생 사상들[26]이 (북미같은 일부를 제외한) 수많은 지역에서 주류 좌익운동에 영향을 미치면서 기존의 radical(=radical liberal)이 중도의 스펙트럼으로 밀려난 것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자유주의의 진보적 성과는 긍정하면서도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그것을 넘어서고 극복할 것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 이전부터 존재했는데, 마르크스주의 이전에 계급투쟁에 기반하지 않은 사회주의 이념들을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한다. 이들 대다수가 당대에는 radicalist라고 불렸다. 실제로 프랑수아노엘 바뵈프 같은 원류공산주의(proto-communist)들도 radical이라고 불렸다. 로버트 오언은 공산주의라고 보긴 어렵지만 노동자 자주경영(workers' self-management)에 기반한 협동조합 운동과도 연계되는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이 공상적 사회주의도 당대 radicalism(좌익 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radicalist인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가 사회주의가 출현의 원인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고전적)급진주의가 사실상 일반적인 사회주의와 분리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 역사발전론의 영향이며[27], 이것이 유럽과 중남미, 그리고 전세계 수많은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보수주의=우익, radical을 포함한 자유주의=중도, 사회주의=좌익 구도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반면에 북미 지역은 이것에 영향받지 않고 마르크스주의가 주류가 되지 않았으며, 사회주의 운동 자체가 미약했기 때문에 (비마르크스주의자들인)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 같은 좌익 민주사회주의자나 심지어 멕시코 자유당(Mexican Liberal Party)같은 극좌 무정부 공산주의자들까지 자유주의자(liberal)나 급진적 자유주의자(radical liberal)이라고 불리는 것이다.[28]
물론 오늘날엔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라고 해도 자유지상주의보다 권위주의적인 케이스도 있기 때문에 전부 radicalist라고 보긴 어려울수도 있다.
8. 인물
고전적 급진주의자들 중 현대 정치에서 일반적인 좌파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사회주의,아나키즘 등의 인물은 각주로 표시되었다.세기말~세기초 정치로 인해 두 항목에 겹친 정치인들도 있다.[29]
8.1. 18세기
- 루이 앙투안 드 생쥐스트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 자크 루[아나키스트]
- 자크 르네 에베르
조르주 당통- 혁명초기에는 급진파였으나 자코뱅 산악파(특히 로베스피에르파)가 완전히 주도권을 잡은 시기에는 온건파였다. 공포정치기간에 부패혐의로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숙청당했다.- 장 자크 루소 - 급진주의의 시초라고 불리며, 온건한 자유주의자인 볼테르와 비교당하기도 한다.
- 장폴 마라
- 토머스 제퍼슨
- 토머스 페인
- 프랑수아노엘 바뵈프[사회주의자]
- 필리포 부오나로티[사회주의자]
8.2. 19세기
- 레옹 강베타
- 로버트 오언[사회주의자]
-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사회주의자]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새디어스 스티븐스 - 공화당 급진파를 대표하는 인물.
- 시몬 볼리바르
- 앙리 브리송
- 앤드루 잭슨
- 윌리엄 고드윈[아나키스트] - 아나키즘의 선구자인 그 윌리엄 고드윈 맞다. 다만 (좌파긴 하지만)사회주의보다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에 가깝다.
- 제러미 벤담
- 조르주 클레망소
- 조지 고든 바이런
- 존 스튜어트 밀
- 주세페 가리발디
- 주세페 마치니
- 찰스 섬너
- 칼 마르크스(청년 헤겔학파 시기.)
- 테오도르 몸젠
- 토머스 제퍼슨
- 토머스 힐 그린
- 프레드릭 더글러스
- 헨리 조지 - 한국에서는 지공주의로 유명하다.
8.3. 20세기
- 가브리엘 곤살레스 비델라
- 가스통 두메르그
- 고토쿠 슈스이[사회주의자]
- 라울 알폰신
- 모하마드 모사데크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 시어도어 루스벨트 -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자였으나[37], 내부적으로는 혁신주의자였다.
-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 트루도비키 소속이였는데 트루도비키는 당시 시절에 부르주아 급진주의 정당으로 여겨졌었다.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 다만 이쪽은 급진자유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 성향과 국민자유주의 성향이 모두 나타났다.
-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 우드로 윌슨
-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 조르주 클레망소 - 젊었을 시절에는 파리 코뮌을 지지하고 강베타를 비판할 정도로 급진적이였지만, 말년에는 상대적으로 보수화되어 독립 급진파(independent radicals)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 존 듀이
- 카를로 로젤리
- 프리드리히 나우만
- 후안 안토니오 리오스
8.4. 21세기
21세기 와서는 사회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문화적 자유주의, 자유지상주의, 민권운동가[38] 등등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급진주의를 철학을 자처하거나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줄었다.9. 정당
자세한 내용은 분류:급진주의 정당 문서 참고하십시오.10. 연관 개념
- 자유주의
- 자유사회주의
- 사회민주주의 -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 한정
- 합리주의
- 급진주의
- 급진민주주의
- 문화적 급진주의
- 좌파 자유지상주의
- 진보주의
- 미국의 진보주의 - 미국 진보 시대(Progressive Era)에 나타난 초기 진보주의 운동은 미국의 급진주의와 연관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우드로 윌슨이 있었으며, 인민당과 1912년 진보당 같은 정당들도 대표적이였다.
- 모더니즘
- 자코뱅주의
- 반교권주의 (Anti-clericalism)
- 공상적 사회주의 - 18~19세기엔 북미권이 아닌 유럽에서도 우파를 Conservative, 주류 좌파를 Liberal로 칭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공상적 사회주의는 Radical이나 Radical liberal의 일종으로 보기도 했다.
- 자유주의 페미니즘
- 시민 내셔널리즘
- 국제주의적 자유주의 (international liberalism)
- 민족자결주의
- 공리주의
- 세속주의
- 제퍼슨 민주주의
- 잭슨 민주주의
- 공화주의
- K 급진주의 - 아르헨티나의 로컬 이데올로기이다.
11. 관련 사건
- 미국 독립 전쟁 - 토머스 페인이 대표적. 다만 미국 독립 지지자들이 다 급진주의자들은 아니었다. 이 당시엔 왕정 vs 공화주의 느낌도 있어서 더 그렇다.
- 프랑스 혁명 -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시행되는 강경한 세속주의(라이시테) 정책은 프랑스식 급진주의의 산물이다.
- 라틴 아메리카 독립 전쟁
- 1848년 혁명
- 아일랜드 독립 전쟁
- 다이쇼 데모크라시
- 브나로드 운동 - 일제강점기 시절 계몽주의 운동.
- 러다이트 운동
- 차티스트 운동
- 여성참정권 운동
12. 같이 보기
- 급진당
- 계몽주의 - 급진주의는 철학적으로 계몽주의를 계승했다.
- 시니스트리슴
- 좌파 - 그들이 내세웠던 급진적 가치의 '일부'는 현대 기준에선 우파가 봐도 상식이지만 당대 기준에선 좌파적인 가치였다.
- 자유주의/분파
- 클뢰브 데 자코뱅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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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주의는 자유주의에서 파생된 문화적 좌익에 가까운 사상이며, 여전히 서구권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자유주의의 하위 이념으로 여겨진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특징으로 하기에 진보주의(문화적 좌파, 자유주의 하위 이데올로기)와 전혀 별개의 전통이지만, 대한민국이나 중남미같이 우익독재를 겪은 지역에서는 진보주의가 사회주의와 친연성을 가지기도 하는 반면 공산 독재를 겪은 동유럽 지역에서는 오히려 경제적 자유주의와 엮이기도 한다. |
[1] 제2대 부통령 (1797년 ~ 1801년) / 제3대 대통령 (1801년 ~ 1809년).[2] 제7대 대통령 (1829년 ~ 1837년).[3] 제25대 부통령 (1901년) / 제26대 대통령 (1901년 ~ 1909년).[4] 좌익급진주의(공산주의, 혁명적 사회주의, 좌익 테러리즘), 우익급진주의(파시즘, 반동적보수주의, 우익 테러리즘)[5] Anti-militarism. 군국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이다.[6] 당장 차티스트 운동부터가 radicalism에서 파생된 것이다.[7]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만 해도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 폐지주의가 상식이 아니었다. 18세기 말에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인 자코뱅파와 지롱드파가 폐지주의를 지지한 반면,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인 푀양파는 되려 노예제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 급진파가 있었다.[8] 물론 생 쥐스트가 주장한 방어적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그것과 차이가 많다.[9] 당시에는 포퓰리즘이라는 용어가 없었다.[10] 해당 문서에서도 나와있으나, 노동계급 남성을 포함한 모든 성인남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당시 기준) 급진적인 선거권 운동이다.[11] 가령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같은 민주당 좌파를 급진 리버럴, 급진주의자라고 부른다.[12] 정우회를 비판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자유주의 세력인 중도좌파 입헌민정당조차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긍정하는 등의 태도를 보였으나 이들은 슈스이가 사형당한 이후에 결성되었다.[13] Masako Gavin; Ben Middleton, eds. (2013). Japan and the High Treason Incident. Routledge. p. 198. "While Kōtoku's audience declined as repression increased, his fame/notoriety first as a radical liberal, then as a socialist and pacifist, and ultimately as an anarcho-communist only grew."[14] American Assembly; Willard Long Thorp, eds. (1964). Japan's School Curriculum for The 2020s: Politics, Policy, and Pedagogy. Prentice-Hall. p. 17. "It is no accident that Japanese radical liberalism and democratic socialism were both closely connected in their beginnings with the Christian movement in Japan. The first Japanese Socialist Party was born in an Americansponsored Christian church in Tokyo, and the majority of its members were Christians with intimate American connections."[15] 사회주의의 경제개입주의와 케인스 경제학을 수용한 분파[16] 사회자유주의에 구별해 자유무역, 경제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적 분파. 현대에 좌우구분이 대부분 경제적 성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중도 우파에 가깝게 평가된다. 단 급진주의 계열 보수자유주의자들은 사회문화적으로는 문화적 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대부분이다.[17] 비마르스크주의적 사회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 우파)와 사회자유주의내 더 진보적이지만 사회민주주의와는 구별되는 이들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문화적으로 좌파 성향이 두드러진다.[18] 급진파 정당 등[19] 급진당(프랑스), 좌파급진당 등[20] 이탈리아 급진파 등[21] 급진좌파당 등[22] 칠레의 사회민주급진당(Radical Socialdemócrata), 아르헨티나의 급진시민연합(Unión Cívica Radical) 등이 있다.[23] 물론 이는 18~19세기 정치 문화가 21세기보다 훨씬 보수적이였음도 감안해야 한다.[24] 어떻게 보자면 현대에는 유럽, 중남미 등에서보다 미국 등에서의 정치지형이 19세기 유럽에 더 가깝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25] 진영을 나누자면 당시에는 (극우)reactional - conservative - (중도) - liberal - radical(극좌)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26]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는 급진주의(좌익 자유주의 전통)에 속하지만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는 급진주의에 속하지 않는다. 자유주의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27] 물론 역사발전론이 마르크스주의만의 것은 아니다.[28] 멕시코 자유당과 비슷한 케이스로 19세기 영국의 극좌 아나키즘~아나코 코뮤니즘 정당인 로즈 스트리트 클럽이 있다.[29] 다만 겹치더라도 특정 세기에는 거의 족적이 없다면 그 세기 항목에는 적지않는다.[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 [사회주의자] [사회주의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 [37] 사실 이것도 좌익 내셔널리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38] 20세기 초와 그 이전까지 급진주의자들은 투표권 향상, 소수자 인권 등을 외쳤고, 당대 기준 좌파세력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민권운동은 좌우익 스펙트럼과 무관하게 기본권 향상 운동으로써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민권운동가를 급진주의자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