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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7:22

객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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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
2.1. 이성에 대한 옹호2.2. 이타주의와 도덕주의 비판2.3. 낭만주의
2.3.1. 삶에 대한 감성2.3.2. 인간은 의지력을 갖고 있는가?
3. 어록4. 외부 링크5. 둘러보기


Objectivism

1. 개요

아인 랜드가 창시한 이념으로. '이성(Fundamental Principles)'이 직관과 본능, 선험적 지식보다 우선시되는 입장이다. 또한 아인 랜드는 자신의 사상의 중심이 되는 객관주의를 통해 개인주의시장자유를 주장하였다. 그녀의 철학을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객관주의자(Objectivist)라고 부른다.

아인 랜드는 자신이 자유지상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대 자유지상주의 운동을 아나키즘이라고 칭하며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를 취했으나, 현대에서 객관주의는 일반적으로 우파 자유지상주의적 이념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고전적 자유주의로도 분류된다.

2. 설명

2.1. 이성에 대한 옹호

객관주의에 따르면 이성이란 단순히 인간의 특출한 속성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 즉 인간의 근본적 생존수단이다. 따라서 이성이 작용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모두 인간의 삶에 필요한 것이다.

이성은 감각으로 인지한 것들을 개념으로 바꿈으로써 작용한다. 이러한 과정은 궁극적으로 가장 폭넓은 통합(이는 인간에게 그 자신이 속해 있는 우주에 대한 지식과 그 자신의 지식수단에 대해, 그리고 그 자신의 정당한 가치에 대해 지식을 주는 것이다)을 요구한다고 아인 랜드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형이상학, 인식론 및 윤리, 즉 다시 말해 철학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그 자신의 본질적 성향으로 인해, 또한 실제적 목적, 즉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기 위해 철학을 필요로 한다. 현대의 신(新)신비주의적 문화 속에서 객관주의가 이성을 옹호하는 것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만큼이나 오늘날 철학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독특한 것이다. 아인 랜드에게 있어 철학이란 인간 삶에서의 근본적인 요인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성격과 정신, 국가들의 운명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어떤 철학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람이나 국가는 선하게, 혹은 악하게 된다. 아인 랜드에 따르면 한 인간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철학을 갖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과연 어떤 철학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사람에 따라 그의 철학이 의식적이고 명료하며 논리적이고, 따라서 실제적일 수 있는 반면, 마구잡이에 정체를 알 수 없고 모순적이며, 따라서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2. 이타주의와 도덕주의 비판

객관주의자들은 이타주의와 도덕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하며 반대한다. 아래 어록에도 나와있지만 이타주의는 결국 사회, 집단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사상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전체주의적 사상은 타인에 처지에 대해 이해하고 간섭하려는 이타주의에서 시작되었다. 이타주의, 도덕주의, 존재론의 동일성 중심주의가 정치적 전체주의의 원인이라고 본다. 객관주의자들은 이타주의는 한국식 표현으로 오지랖에 불과하다고 보며, 이기주의가 역설적으로, 그나마 가장 도덕적인 선을 지향하는 것이라 보는 편이다.

2.3. 낭만주의

인류 역사의 흐름을 볼 때 심리학이나 윤리학 혹은 예술 같은 분야에서는 자연과학 분야에서와는 달리 객관주의적 태도가 지배적이지 못했다. 인간의 관념과 의식에서는 객관적 법칙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 이후 랜드와 그를 따르는 철학자들이 한 역할은 바로 객관주의적 방식이 자연과학 이외의 다른 모든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객관주의적 방식을 통하여 랜드는 ‘객관주의자 윤리학’이라는 글에서 윤리학과 도덕성의 기초를 설명했으며, 나다니엘 브랜든은 ‘자존감의 심리학’이라는 글에서 인간심리의 기초를 확인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 같은 방법을 통해 해리 브라운은 경제학의 본질을, 존 호스퍼스머리 로스바드는 정치학의 특성을 설명했다.

1969년에 출판된 랜드의 <낭만주의 선언>은 바로 이런 객관주의적 방법론을 예술론에 적용한 대표적인 저작이다. 랜드는 예술 영역도 자연과학처럼 객관적인 원리나 원칙에 의해 인식되고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술은 극히 정서적인 산물이면서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에 관계하는 인간의 정서는 인간의 가치나 필요성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을 수 없으며, 예술은 확실히 목적이 있고 인간의 의식적 욕구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예술가의 형이상학적 가치판단에 따라 본질을 선택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며, 따라서 ‘예술은 인간이 가진 개념을 지각적인 수준의 의식으로 끌어와서, 개념을 마치 지각된 대상인 것처럼 직접 파악하도록 만든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심리인식론의 기능이며 인간 삶에 있어서 갖는 중요성의 이유(그리고 객관주의 미학의 핵심)’라고 랜드는 말한다.

2.3.1. 삶에 대한 감성

아인 랜드는 예술가의 창조행위와 예술작품에 대한 독자 혹은 감상자의 반응에 작용하는 잠재의식적인 기제에는 소위 ‘삶에 대한 감성(sense of life)’이라고 부르는 심리학적인 현상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개념화되기 이전의 형이상학적 등가물이며, 인간과 존재에 대한 정서적이고 잠재의식적인 평가’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그 사람의 ‘모든 생각과 정서와 행동 속에, 그의 모든 반응 속에, 모든 선택과 가치 속에, 저절로 나오는 그의 모든 몸짓 속에, 움직이고, 말하고 미소 짓는 방식 속에, 그의 총체적 성격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삶에 대한 감성’을 특별한 직관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생각하고 비합리적인 통찰력에 의해서만 감지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랜드는 이것은 사실과 반대라고 말하며, 그것이 정신의 의식적인 판단에 의해 보강되고 그 판단과 결합할 때 가장 고양되고 확실한 형태의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랜드는 ‘삶에 대한 감성’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 인간존재의 두 영역으로 예술과 사랑을 꼽았다.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대상은 상대방의 ‘삶에 대한 감성’, 즉 그 사람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자세나 방식이며, 그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고 그의 거대한 목표나 가장 사소한 행동에도 반영되며 그의 영혼의 스타일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을 창조하는 가치가 구체화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철학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예술은 그 예술가의 ‘삶에 대한 감성’의 목소리로서, 독자나 작품의 감상자가 그에 반응하는 것은 낭만적 사랑과 똑같이 그 목소리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작품 속에 자신의 벌거벗은 영혼을 드러내게 되며, 독자가 예술가의 영혼에 반응할 때 독자도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게 된다.

2.3.2. 인간은 의지력을 갖고 있는가?

랜드는 낭만주의가 19세기의 산물로서, 인간정신의 힘을 확인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인간의 사고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 자본주의라는 두 영향의 결과라고 말한다. 인간의 자유로운 에너지에 의한 진보를 믿었던 낭만주의자들은 미학적으로 볼 때 혁신가들로서 당시의 기성질서인 고전주의에 대항했다. 고전주의는 일련의 독단적이고 구체적인 문학상의 규칙들을 고안해내고 예술가들에게 창조보다는 전범에 따르기를 가르쳤던 유파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왜 이런 규범들이 필요한 것인지 제대로 대답을 못함에도 불구하고 고전주의는 이성의 대변자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낭만주의의 본질을 이성의 우월성에 대한 옹호자들인 고전주의자들에 대항한 것으로서 정서적 우월성에 기초한 미학적 유파라고 잘못 정의한 사람들의 주장이 오늘날까지 지속되어왔는데, 그것은 비본질적인 요소들에 의한 비철학적인 정의의 결과라고 랜드는 판단한다. 이런 점에서 랜드의 입장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고전주의/낭만주의의 정의와는 판이한 성격을 지닌다. 랜드에 의하면 낭만주의자들이 예술에 도입한 것은 가치의 우월성이었고, 그것은 인간의 의지력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낭만주의자들은 철학적으로 볼 때 (가치의 뿌리인)의지의 옹호자들이지 (단순히 그 결과인)정서의 옹호자들은 아니었다.’ 또한 자유의지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이 대부분 반(反)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으므로 의지가 신비주의와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낭만주의자들 자신도 자신들의 가치체계가 이성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느낌’이라는 견지에서 인간의 개성을 위해 싸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오류 때문에 부차적인 또 다른 오류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자본주의가 사실상 자유와 개성, 그리고 가치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체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본주의를 ‘프티 부르주아’ 체제로 여기며 자본주의를 자신들의 적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어떤 낭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옹호자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관심을 중세로 되돌려 그 악몽의 시대를 미화하기도 하며, 또 비이성적인 종교에 도달함으로써 낭만주의가 현실과 점차 괴리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나타난 자연주의는 랜드에 의하면 인간의 의지를 부정하고, 인간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지배되는 무력한 존재로 보았다. 따라서 작가들은 자신들 주위에서 관찰되는 것을 그저 충실히 그려내는 데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랜드는 그런 점에서 자연주의가 도덕적 판단으로부터의 도피이며, 현대의 문화적 파산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랜드는 오늘날의 이러한 문화적,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는 돌파구는 이성에 기초한 낭만주의의 부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어록

자, 이제 여러분들이 나의 철학, 즉 객관주의가 여러분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자 한다면, 간단히 설명하겠다. 물론 한 번의 강연으로 내 철학 전체를 소개하겠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단지 여러분들에게 이기주의의 이성적 도덕성이라는 말로써, 이타주의의 반대라는 말로써 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종류의 도덕성이 인간에게 필요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설명하고자 할뿐이다. 우선 그 설명을 하기 전에 서두로서, 나는 대다수의 철학자들(특히 오늘날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의 도덕성이 이성의 영역 밖에 있다고, 이성적 도덕성이란 정의될 수 없다고, 또 인간에게는 도덕성에 대한 실제적 요구가 없다고 항상 주장해왔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도덕성이란 인간존재에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련의 신비적 호사 내지는 독단적인 사회적 변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그 어느 누구도 왜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하는지를 증명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성적으로 봤을 때 도덕적이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도덕성의 본질과 근간을 움츠린 아틀라스에서보다 더 잘 요약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그 책의 내용을 다른 말로 풀이하기보다는 내가 주장하는 도덕성의 본성, 기본, 증거에 부합되는 부분을 그대로 읽어주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도구이다. 생명은 그에게 주어졌으되, 생존까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육신은 받았으되 그 육신의 지탱까지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정신은 부여받았으되 그 내용까지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살아 있기 위해 인간은 행동해야 하고, 행동하기 전에 그는 그의 행위의 성격과 목적을 알아야 한다. 먹을 것과,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지식 없이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다. 일정한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려는 수단 없이는 인간은 도랑을 팔 수도, 원자핵 파괴장치를 만들 수도 없다.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은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생각한다는 것은 선택행위이다. 여러분들이 그처럼 무분별하게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열쇠는(사실 누구나 지니고 살아가는 뻔히 아는 비밀이면서 단지 이름붙여 얘기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은 결단력 있는 의식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성은 자동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사고는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다. 논리의 연결은 본능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여러분들의 위와 폐, 심장의 기능은 자동적이다. 그러나 여러분 정신의 작용은 그렇지 않다. 여러분 삶의 매시간, 매 사건마다 사고를 하건 사고를 회피하건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본성, 즉 이성이 여러분들의 생존수단이라는 사실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따라서 여러분이 인간인 한 '살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질문은 '생각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질문과 동일한 것이 된다."

"결단력 있는 의식의 존재에게는 자동적 행동진로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행위들을 이끌어줄 가치규범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행위를 통해 얻고 지켜가고자 하는 것이 바로 '가치'이며, 인간은 '덕'이라는 행동을 통해 그 가치를 얻고 지켜가게 된다. 가치는 무엇에 대한 가치이며 무엇을 위한 가치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전제로 한다. '가치'는 어떤 대안에 직면했을 때 행위의 기준과 목적과 필요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이 없는 경우, 가치 또한 있을 수 없다."

"우주에는 단지 하나의 근본적 대안이 있을 뿐이다. 존재냐 비존재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그것은 단 하나의 실체군(實體群), 즉 살아 있는 유기체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무생물의 존재는 무조건적이지만, 생명체의 존재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특수한 행위방향에 의거해 있다. 물질의 경우, 형태는 변화하되 사라지지는 않는다. 물질은 파괴시킬 수 없는 것이다. 끊임없는 대안, 즉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를 마주하는 것은 오로지 생명체들뿐이다. 생명이란 자기보존적이며 자기발생적인 행위이다. 만일 생명체가 이러한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그것은 죽게 된다. 그것의 화학적 구성요소는 그대로 남되 그 생명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오직 생명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만 가치라는 개념이 가능해진다. 오로지 살아 있는 실체에 대해서만 어떤 것이 선하고 악해질 수 있는 것이다."

"살기 위해 식물은 스스로 영양을 조달해야 한다. 태양빛과 물, 그리고 그것이 필요로 하는 화학물질이 바로 식물이 그 본성상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식물의 생명이 바로 그 행위를 이끌고 있는 가치의 기준인 것이다. 그러나 식물에게는 행동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그것이 마주하게 되는 여건에는 여러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지만 그 기능 면에는 대안이 없는 것이다. 식물은 그 자체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행위할 뿐 스스로의 파멸을 위해 행동할 수는 없다."

"동물은 그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갖추고 있다. 감각을 통해 동물은 자동적인 행동규범, 즉 무엇이 좋고 무엇이 해로운가를 자동적으로 알게 된다. 동물에게는 그러한 자신의 지식을 전파하거나, 피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자신이 가진 지식이 적당치 않은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 그 동물은 죽게 된다. 그러나 그 동물이 살아 있는 한 그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지식에 의거해 행동한다. 자동적인 안전감각을 갖고 있으되 선택할 수 있는 힘은 결여하고 있으므로, 동물은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무시할 수 없고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선택할 수 없으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생존을 위한 어떤 자동적 규범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생명체와 인간이 분명히 다른 점은 '결단적 선택'에 의해 그가 여러 대안들을 마주해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에게는 무엇이 그 자신에게 이롭고 무엇이 해로운지, 어떤 가치에 그의 삶이 의존하고 있는지, 어떤 행위방침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자동적 지식이 없다. 자기보존의 '본능'이라는 것이 분명 인간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본능이란 틀림없는 자동적인 유형의 지식을 의미한다. 욕망은 본능이 아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여러분들에게 사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자체도 자동적이 아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지니고 있는 비밀스러운 악은 여러분에게 그처럼 살고자 하는 욕망 바로 그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곧 삶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삶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지식을 주지도 않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지식을 획득해야 하고, 사고의 과정(자연이 그에게 이를 행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을 통해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파괴자로 행동할 힘을 갖고 있고, 사실 그것이 역사의 대부분을 통해 인간이 행해온 바이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 불려왔지만 이성이란 선택의 문제이다. 인간의 본성이 인간에게 제의하는 대안이란 이성적 존재가 되느냐, 아니면 자살하는 동물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은 선택에 의해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선택에 의해 한 가치로서의 삶을 붙잡아야 한다. 인간은 선택에 의해 그것을 지탱해야 한다. 인간은 선택에 의해 삶이 요구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그의 덕목들을 실천해야 한다."

"선택에 의해 수용된 가치규범이 곧 도덕의 규범이다."

"여러분들이 그 누구이건 여러분들은 지금 내 얘기를 듣고 있고, 나는 여러분 내부에 부패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 그 인간의 잔재에게, 즉 여러분의 정신에게 얘기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얘기한다. 여기, 인간에게 적합한 도덕성, 즉 이성의 도덕성이 있다고, 또 인간의 삶이 그 가치의 기준이라고."

"이성적 존재의 삶에 적합한 모든 것은 선하며, 그것을 파괴시키는 것은 모두 악이다."

"인간의 본성에 의해 요구되는 인간의 삶이란 분별없는 금수나 약탈하는 흉한, 혹은 살금살금 배회하는 신비주의자의 삶이 아니다. 그것은 강요나 사기에 의한 삶이 아니라 성취라는 수단에 의한 삶, 생각하는 존재의 삶이다. 그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얻어내는 생존이 아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단 한 가지의 대가, 즉 이성을 지불할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도덕성의 기준이지만 여러분의 삶은 도덕성의 목적이다. 만일 이 지상에서 존재하는 것이 여러분의 목적이라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삶이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보존하고, 충족시키고, 즐기기 위해 인간에게 적합한 기준에 의해 여러분의 행위와 가치를 선택해야만 한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것이 바로 객관주의가 여러분에게 제공하는 바이다.
믿음과 힘 : 현대세계의 파괴자들, 1960, 아인 랜드
수세기 동안 인간이 지녀왔으되 오늘날 무너져버린 가치가 세 가지 있는데, 바로 신비주의, 집단주의, 이타주의이다. 문화적 힘으로서의 신비주의는 르네상스 때 죽어버렸고, 정치적 이상으로서의 집단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죽어버렸다. 이타주의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한번도 살아 있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서구문명의 핏속에 든 죽음의 독이며, 사람들은 믿지도 또 실천하지도 않을 정도로까지만 그것을 회생시켰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에 붙들리고 말았고, 이제 그것은 그들이 대면하고 이겨야 할 살인마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내려야 할 근본적 선택이다. 문명을 회생시키려 할 때, 사람들이 거부해야 할 것이 바로 이타주의 도덕인 것이다.

여러분들 중에는 이미 내가 쓸 다음 문장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은 바로 도덕적 위기의 시대이다. 그렇다, 여러분들은 당신들의 악에 대한 벌을 참아내고 있다. 당신들의 도덕적 규범은 그 정점, 즉 그 진로의 끝에 놓인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계속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도덕성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도덕성이 뭔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도덕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선택(각자 삶의 목적과 진로를 결정짓는)과 행위를 이끌기 위한 가치규범이다. 그것은 인간이 옳고 그른 것, 선하고 악한 것을 판단하게 하는 수단이다.

그렇다면 이타주의의 도덕적 규범은 무엇인가? 이타주의의 근본원칙은 인간이 그 스스로를 위해 살 권리가 없다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만이 그의 존재를 정당화시켜 주는 유일한 방편이라는 것, 그리고 자기희생이야말로 최고의 도덕적 의무이자 덕이요 가치라는 것이다.

이타주의를 친절이나 선의, 혹은 다른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존중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것들은 결과일 뿐 근본적인 것은 아니며, 사실 이타주의는 바로 그런 것들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타주의의 단순화시킬 수 없는 근본, 즉 절대적인 기초는 자기희생인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기를 바침, 자기를 버림, 자기부정, 자기파괴 등이다. 이때 자기는 악의 표본인 데 반해 자기를 버림은 선의 표본이 된다.

거지에게 동냥 한 푼을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와 같은 피상적인 문제 뒤에 숨어버리지 마라. 그것은 문제의 핵이 아니다. 문제는 거지에게 동냥 한 푼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권리를 여러분들이 갖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러분들을 향해 다가서기로 선택한 어떤 거지로부터 여러분의 삶을 한 푼씩에 계속 사들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가 여러분들의 인생과 여러분들 존재의 도덕적 목적에 대해 첫번째 저당권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희생적인 동물이라고 간주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긍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대답하겠지만, 이타주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제 여기에 이타주의의 도덕성이 존재하지 못하게 싹 쓸어버릴 수 있는, 그리고 이타주의가 견뎌낼 수 없는 하나의 단어, 단 한 마디의 말이 있다. 왜 인간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왜 인간은 희생적인 동물이 되어야 하는가? 왜 그러한 것이 좋은가? 여러분, 그에 대해서는 철학의 역사 전체에 걸쳐 어떤 현세적 이유도 지금껏 주어져본 적이 없다.

도덕주의자들이 그런 현세적 이유를 없애버리도록 허용하는 것은 오로지 신비주의뿐이다. 이타주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혹은 좀더 정확히 얘기해서 그것을 정당화할 필요에서 도망가기 위해 항상 대동시켜 온 것은 비현세적이고 초현실적이며 비이성적인 신비주의였다. 사람들은 비이성적인 것을 정당화시키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믿고 받아들일 뿐이다. 대다수의 도덕주의자들(그들의 희생자들은 거의 빼고)이 깨닫고 있는 것은 이성과 이타주의가 서로 조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성 대 이타주의, 이것이 바로 서구문명의 근본적 모순이며, 조만간 폭발해야 하는 갈등이다.
믿음과 힘 : 현대세계의 파괴자들, 1960년, 아인 랜드
인간권리의 근원은 신성한 법도 입법부의 법도 아니며 동일률 law of identity이다. A는 A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권리는 인간의 적절한 생존을 위해서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생존의 조건이다.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정당하며, 자신의 자유로운 판단으로 행동하는 것이 정당하며, 자신의 가치를 위해서 일하고 자기노동의 산출물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정당하다. 지구상에서의 삶이 인간의 목적이라면 이성적 존재로 살아갈 권리를 인간은 가지고 있다. 본성이 인간으로 하여금 비합리적이지 못하게 한다.
집단주의의 도덕적 근간인 이타주의에 맞서 싸우지 않는 한, 우리가 집단주의에 맞서 싸울 수는 없다. 우리가 이타주의의 인식론적인 근거인 비이성주의에 맞서 싸우지 않는 한 이타주의에 맞서 싸울 수 없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위해 싸우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느 것과 맞서 싸울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성의 최우위성, 그리고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견해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맞서 싸우자, 1971년, 아인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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