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colcolor=#000000,#dddddd> 프리드리히 나우만 Friedrich Naumann | |
본명 | 요제프 프리드리히 나우만 Joseph Friedrich Naumann |
출생 | 1860년 3월 25일 |
작센 왕국 라이프치히 그로스푀스나[1] 슈툄탈[2] | |
사망 | 1919년 8월 24일 (향년 59세) |
바이마르 공화국 뤼베크 트라베뮌데[3] | |
국적 | [[독일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바이마르 공화국 |
가족 | 배우자 마리아 막달레나 치머만[4] |
직업 | 정치인, 신학자, 목사 |
사상 | 고전적 자유주의[5], 기독교 사회주의 사회자유주의, 독일 내셔널리즘[6] |
종교 | 기독교 ,(개신교 루터교회), |
정당 | 국민사회협회 ,(1896년 ~ 1903년), 자유사상가 연합 (급진연합) ,(1903년 ~ 1910년), 진보인민당 ,(1910년 ~ 1918년), ,(1918년 ~ 191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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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제국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자유주의 정치인이였다.2. 생애
프로이센 시절 사회주의와 기독교적 가치의 결합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적 계급투쟁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계열 중도좌파 정당인 국민사회협회를 조직한 바 있다. 말년에 독일 민주당 당원이였다.3. 사상
계급협조에 기반한 기독교 좌파와 개혁적 자유주의 성향을 보였다. 사회적 자유주의, 사회적 기독교[7] 성향을 보였다. 부유한 자본가와 가난한 노동자간의 계급적인 불화, 노동착취, 마르크스주의적 폭력을 막기 위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과 자유주의적 협동조합주의에 기반한 사회개혁을 지지하였다.4. 여담
-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자유민주당(독일) 산하 프리드리히 나우만 자유재단의 그 인물이다.
[1] Großpösna[2] Störmthal[3] Travemünde[4] Maria Magdalena Zimmerman[5] 급진주의에 가깝다.[6] 나우만은 당대 좌파자유주의자들 중에서 내셔널리즘 성향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국민자유주의자라고 보긴 애매한게 당시 독일에서 국민자유주의는 우파자유주의와 동의어였기 때문에 좌파자유주의적 내셔널리스트라고 칭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 제국 시절에는 제국주의적 주장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반(反)아르메니아인, 반유대주의 논란도 있었다.[7] 복음주의자였다. 비슷한 케이스로 여성참정권 지지, 재산 분배, 협동조합주의를 옹호했던 자주의,진보주의 개혁가이자 동시에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있다.(다만 프리드리히 나우만은 세속적 공화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에 기독교 근본주의자는 전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