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2:52:06

존 스튜어트 밀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자유론
, 공리주의(책)
,
,
,
,



서양 철학사
근대 철학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wiki style="margin:-16px -11px;"<tablewidth=100%> 고대 철학 중세 철학 근대 철학 현대 철학 }}}
<colbgcolor=#545454><colcolor=#ffffff> 16-18세기
에라스뮈스 · 모어 · 마키아벨리 · 몽테뉴 · 브루노
합리주의 · 스피노자 · 말브랑슈 · 라이프니츠
경험주의 베이컨 · 홉스 · 로크 · 버클리 ·
계몽주의 몽테스키외 · 볼테르 · 루소 · 디드로 · 엘베시우스
칸트 / 신칸트주의
19세기
피히테 · 셸링 / 낭만주의: 헤르더 · 슐라이어마허 / 초월주의(미국): 에머슨 · 소로
헤겔 / 청년 헤겔학파: 포이어바흐 · 슈티르너
공리주의 벤담 ·
실증주의 콩트 · 마흐 / 사회학: 뒤르켐 · 베버
사회주의 아나키즘: 프루동 · 바쿠닌 · 크로포트킨
마르크스주의: · 엥겔스
키르케고르 · 쇼펜하우어 · 딜타이 · 베르그송
니체
}}}}}}}}} ||
<colbgcolor=#000><colcolor=#fff> The Honourable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파일:존 스튜어트 밀의 모습.jpg
출생 1806년 5월 20일
영국 잉글랜드 미들섹스 펜톤빌
사망 1873년 5월 8일 (향년 66세)
프랑스 제3공화국 아비뇽 보클뤼즈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철학자, 경제학자, 정치인
서명 파일:존 스튜어트 밀 서명.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기타 정보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0><colcolor=#fff> 모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경력 동인도 회사 (1823-1858)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총장 (1865-1868)
웨스트민스터 지역구 국회의원 (1865-1868)
정당
사상 자유주의[1], 급진주의, 사회주의[2]
대표작 자유론, 공리주의
종교 무종교(불가지론)
배우자 해리엇 테일러
Harriet Taylor[3] (1851년 ~ 1858년, 사별)
}}}}}}}}}

1. 개요2. 생애
2.1. 천재의 유년기2.2. 정신적 위기2.3. 정치인으로서의 삶
3. 사상
3.1. 자유론
3.1.1. 서론3.1.2. 사상과 토론의 자유
3.1.2.1. 기존 정설이 틀린 경우3.1.2.2. 기존 정설이 옳은 경우3.1.2.3. 기존 정설과 반대 의견 모두가 옳은 경우3.1.2.4. 토론에 대한 보충 논의
3.1.3. 행복의 요소로서의 개성3.1.4.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가지는 권한의 한계
3.2. 질적 공리주의3.3. 공개투표론
4. 영재 공부법5. 주요 저서6. 어록7. 여담

[clearfix]

1. 개요

영국철학자, 경제학자, 정치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자유주의 이론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현대 자유주의 담론의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4] 또한 제러미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질적 공리주의' 윤리를 주장하였다. 당대에는 경제학자로 훨씬 유명했으며, 현실정치에도 직접 뛰어들어 노동자의 권리와 여성참정권 운동[5]에 힘썼던 정치인이기도 하다.

2. 생애

2.1. 천재의 유년기

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 5월 20일 런던 북부 교외에 있는 펜턴빌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인 제임스 밀과 해리엇 배로(Harriet Barrow)[6]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존 스튜어트 밀은 어려서부터 당시 최고의 석학 중 한명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직접 영재교육을 받았고, 그는 그 영재교육을 어렵지 않게 소화할 정도로 비상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3세에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했고(아버지가 손수 단어장을 만들어주고 옆에서 붙들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게 했다.), 다섯 살 때 이미 그리스의 고전들을 독파했다. 여섯 살 때 기하학과 대수를 익혔고, 일곱 살 때 플라톤을 원서로 읽었다. 여덟 살 때 라틴어를 공부했고 열 살 때 아이작 뉴턴의 저서를 공부하고 로마정부의 기본이념에 관한 책을 썼다. 그리고 10살이 안 되었을 당시에 취미처럼 흔히 하던 것 중에는 라틴어로 고전 읽기와 동생들에게 자신이 3살 때부터 배운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열한 살 무렵에는 물리학과 화학에 관한 논문들을 섭렵했으며 열두 살 때 아리스토텔레스, 열세 살 때 애덤 스미스를 공부했고, 열여섯 살에 계몽주의 철학을 섭렵했다. 그리하여 열일곱 번째 생일이 지나기 전에 이미 아버지 제임스 밀의 서재를 드나들던 철학자 제러미 벤담,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 등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토론할 정도가 되었으며, 논문을 출간하고 신문과 잡지에 자신의 글을 투고하기도 하는 등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존 스튜어트 밀이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 제임스 밀은 결핵에 걸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제임스는 아들이 한시바삐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동인도 회사에 취직하기를 원했고,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동인도 회사에 서기로 입사하여 인도에 보내는 통신문을 책임지는 수석조사관의 일을 맡았다. 이후 1858년 동인도회사가 폐지되는 52살의 나이까지, 밀은 무려 35년간을 이곳에서 근무한다. 동인도 회사는 돈을 많이 줄 뿐만 아니라 근무 시간은 하루 6시간 정도에 불과한데, 심지어 그 중 절반의 시간은 자신의 저술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웠기 때문에, 밀은 신문과 잡지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글을 발표할 수 있었다. 특히,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 잡지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많은 논평과 글을 실었고, 공리주의를 통해 스스로 "세계의 개혁자"가 되길 열망했다.

2.2. 정신적 위기

10대 때 남들이 평생 할 공부를 이미 끝냈고, 인간 정신의 한계를 본 것 때문인지, 20살이 되고서는 결국 정신적으로 탈이 나게 된다. 갑자기 모든 것이 시시해져 버린 것이다. 밀은 세계의 진보라는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내 인생의 목적 ㅡ 내가 바란 제도와 사상 변화 ㅡ 모두가 실현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이 과연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까?" 밀의 마음 속에서 "아니다"라는 분명한 대답이 들려왔다. 밀은 삶의 목적을 잃어버려 그 어떤 즐거움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그로인해 몇 달 동안이나 절망에 빠져 우울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밀이 생각해봤을 때 그 원인은 '분석적 생각' 때문이었다. 분석은 우리로 하여금 우연하게 밀착된 여러 이념들을 정신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여, 관념이 가지는 편견의 모든 결과를 약화시키고 그 편견을 타파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바로 그 장점 때문에 그 관념이 가지는 '감정'마저 약화시키는 경향을 지니고, 그것은 사람의 욕망과 쾌락을 두려울 정도로 손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분석의 습관은, 신중한 사색과 통찰력에 대해서는 유리하지만, 정열과 미덕의 밑바닥에 언제나 잠재되어 있는 해충" [7]같은 것이라고 밀은 생각했고, 스스로가 그 분석적 습관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매몰되었다고 느꼈다.

그러한 무미건조하고 우울한 생각이 변하게 된 것은, 마르몽텔의 《회상기》[8]를 읽으면서 부터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가족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자하는 그 광경이 밀에게 직접 보이는 듯 생생하게 전해졌고, 밀은 그 장면에서 불현듯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 무렵 읽었던 워즈워스콜리지의 시들도 감성의 회복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밀은 메말라 버린 줄만 알았던 자신의 감정이 문학작품을 통해 다시 느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밀의 짐은 가벼워지기 시작해서, 그 뒤 몇 번 되돌아가기도 했고 그것이 몇 달 이어지기도 했지만, 다시는 과거처럼 우울한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다. 이 시기 경험으로 밀의 행복관은 180도 바뀌게 된다. 행복은 그것을 인생의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목적으로 하면서 그 지나가는 길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즉, 과정 그 자체에 그 의미가 있는 시나 예술이야말로, '분석적 생각'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무기라는 사실을 밀은 깨닫게 된 것이다.
행복이 모든 행동의 시금석이요, 인생의 목적이라는 확신이 흔들린 적은 정말로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목적이 이것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지 않아야만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행복 이외의 다른 어떤 목적 ㅡ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서, 인류의 진보에서, 심지어 어떤 예술이나 취미에서,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 이상적인 목적으로서 뒤따라오는 것 ㅡ 에 정신을 집중하는 사람만이 행복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요컨대 그들은 행복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목표로 하면서 부차적으로 행복을 찾는다.

인생의 즐거움들은 제일 목표로 삼지 않고 지나가는 길에 취할 때야 비로소 유쾌한 것이 되기에 층분하다. 즐거움을 제일 목표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곧 불충분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날카로운 검토를 당해낼 수가 없다. 그대가 행복한가 안 한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 그리하면 그대는 곧 행복하지 않게 되고 만다. 단 하나의 가능성은, 행복이 아니라 행복과 무관한 어떤 목적을 마치 인생의 목표인듯이 여기는 것이다. 그대의 자아의식, 그대의 검토, 그대의 자문자답에서, 스스로를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어라. 그리고 만약 다행스럽게도 상황이 된다면, 그대는 행복을 곱씹거나 그것을 고민하지 않아도, 상상 속에서 미리 대처하거나 까다롭게 따져서 그만 날려버리지 않아도, 그대가 호흡하는 공기와 함께 행복을 들이마시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이제 내 인생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9]
이러는 와중에 24살의 밀은 해리엇 테일러[10]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당시 밀은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고 감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해리엇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해리엇은 그녀를 한사람의 동료로서 대우해준 밀에게 자연스레 끌렸다. 문제는 해리엇이 밀과 만났을 땐 이미 그녀가 3명의 자녀를 가진 유부녀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플라토닉 러브를 유지했으나, 곧 주변 사람들에게 추문의 대상이 되었고 아버지, 형제, 친구, 스승 모두 그의 사랑에 반대했다. 특히 어머니가 극렬하게 반대했는데, 그는 자신의 사랑을 반대한 그 모두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점차 사회적으로 고립되어갔다. 한편 해리엇은 남편과 별거를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남편 존 테일러(John Taylor)는 이혼할 생각이 없었고, 이후 밀과 해리엇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정신적 사랑만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해리엇 테일러의 남편 존 테일러가 암으로 사망하고 난 이후에야 밀은 해리엇과 그녀의 딸들을 보살펴주기 위해서 해리엇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7년 뒤, 요양차 들렸던 프랑스 아비뇽에서 해리엇이 폐출혈로 사망하면서 밀의 잠시나마의 행복도 그것으로 끝났다.

2.3. 정치인으로서의 삶

해리엇과의 교제는 밀의 생각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밀은 페미니즘과 심지어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보다 온건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은 이후의 저작인 《경제학 원리》, 《여성의 종속》[11], 《자유론》에도 반영된다. 아내 해리엇이 죽은 뒤로는 여생을 오로지 문필 생활로 보내려고 마음먹었으나 여러 책들을 통해 경제학자이자 정치평론가로서 밀의 명성이 높아지자, 웨스트민스터 지역 시민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밀이 입후보할 것을 요청했고, 밀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밀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자신은 의원이 되고 싶다는 개인적 희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후보자는 선거운동을 하거나 자금을 부담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나아가 당선되더라도 지역구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당시 대다수가 반대하던 여성 참정권도 계속해서 주장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밀이 이런 말을 했다는 뉴스를 들은 당시의 비평가들은 "전능한 신도 이렇게는 당선될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노동자들이 모인 집회에서 어떤 반대자가 밀이 예전에 썼던 "노동자는 거짓말쟁이"라는 팸플릿을 가져와 그것이 진정 밀 자신이 쓴 것이냐고 물었는데, 밀은 곧바로 "그렇습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의외로 밀의 솔직함을 높히 평가했으며, 지지자들의 열광적이고 자발적인 봉사에 의해 밀은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하원의원이 된 밀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극도로 심화된 계급 격차와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개선하고자 노동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노동자들을 포함한 보통선거권을 주장하면서도 다수의 중우정치를 우려하여 복수투표제[12][13]를 주장하기도 했고, 여성평등과 여성해방을 주장하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당시의 남성 정치인들과 사상가들에게 많은 조롱과 모욕을 당했다. 밀은 이후 《여성의 종속》이라는 책을 써서 여성의 무능함이 당시의 의미없는 여성 교육에서 비롯되었음을 논증한다.[14] 또한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에는 아일랜드를 돕자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현지인들을 고려한 아일랜드 토지 개혁안을 내놓기도 하는 등, 의회에 있는 3년간 진보적인 정치활동을 정력적으로 수행하였다. 그 결과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 입장을 가진 시민들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밀이 하원의원 재선에 실패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재선에 실패한 뒤로는 자신의 아내 해리엇 테일러가 묻혀있는 프랑스 아비뇽에 머무면서 자서전 집필에만 열중했다. 이 자서전의 집필이 끝나가던 1870년 경부터 밀의 건강은 눈에 띌 정도로 나빠졌고 자주 병상에 누웠다. 1873년 5월, 그는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고 또 만년에는 생활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식물 채집 여행 도중에 풍토병에 걸려 그달 8일에 별세했다. 죽던 날 밤, 그는 "나의 일은 끝났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3. 사상

3.1. 자유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자유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1.1. 서론

밀이 『자유론』에서 다루고자 하는 바는 "철학적 필연론"의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의지의 자유"가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 대해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과 그 한계에 관한 것, 즉 '시민적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를 말하려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기에 자유라는 것은 지배자들의 권력 남용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기에 들어와서 대중 정당이 권력을 가지게 되자, 지배자는 국민의 생각에 따라 권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고, 지배자의 권력이 곧 자신의 권력임을 알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의 권력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 생각에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권력을 행사하는 '국민'이 그 권력 행사의 대상인 '국민'과 언제나 동일한 것도 아니었고, '자치'라는 것도 각자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국민의 의지라는 것도 실제로는 국민 중에서 가장 수가 많거나 가장 능동적인 집단, 즉 다수파나 힘 있는 세력의 의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회가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이 커짐에 따라, 동시에 그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다수의 의견이 폭군이 되어 소수의 자유를 억압하는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게 됐다. 다수파의 의견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이제 무제한적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다수파의 의견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 원인을 살펴보면, 온갖 다양한 요인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이성을 통해 결정하기도 하고, 그들의 선입견이나 미신으로 결정되기도 하며, 그들의 사회적인 호감들이나 반감들, 또는 그들의 개인적인 시기나 질투, 오만함이나 경멸의 감정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사실 그 중,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그러한 이해관게 자체보다는 거기에서 생겨난 공감들과 반감들이 역사적으로 더 큰 역할을 해왔다. 심지어 한 사회의 이해관계와 별 관계가 없거나 전혀 관계가 없었던 공감들과 반감들도 그 사회의 도덕률을 결정하는 데 마찬가지로 큰 힘으로 작용해왔다.

이렇게 한 사회에서 어떤 힘 있는 세력이 공감하는 것과 반감하는 것들은, 모든 사람이 지켜야 되는 것으로 강제되는 규범을 실제적으로 결정해온 주된 요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감과 반감의 감정에 의해서 아주 강력하게 밑받침되고 있는 법과 여론을 통해,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개개인을 부당하게 통제하고자 하는 경향이 점차 확대되어가고 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사회가 개인을 강제로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권력에 제한을 두고, 그 제한을 정당화할 수 있는 간단한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3.1.2. 사상과 토론의 자유

3.1.2.1. 기존 정설이 틀린 경우
사회가 한 개인의 의견 표현을 침묵시키는 것은 어떤 까닭으로 옳지 않은가? 첫째로,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에 대해 완벽한 확신을 가지며 그들의 의견에 따라 개인의 생각과 표현을 강제하려고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판단이 언제나 옳다는 보장은 없다. 모든 시대에서 사람들은 확신에 찬 많은 의견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음 시대에서 그 의견들은 틀린 정도가 아니라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과거에 일반적으로 인정되던 많은 의견들이 현재에 의해 부정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많은 의견들도 미래에 의해 부정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다른 시대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다른 분파들과, 다른 계층들과, 다른 정당들은 그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자명할 것이다. 따라서 그 문제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다른 모든 개인에게서 박탈하고서는, 그들 자신만이 인류 전체를 대신해서 그 문제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반론이 곧바로 제기될 수 있다. 판단력이 잘못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 판단력을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과연 정당한가? 정부가 국가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금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오류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틀릴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맡겨진 의무를 양심과 확신에 따라 행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의견에 의거해서 행동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이익은 방치되어 버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도 이행할 수 없게 될 것이지 않는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의 삶의 목적들을 이루는 데 필요한 행동들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데 충분한 확실성은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 우리 자신의 행동을 위한 올바른 지침이라는 것을 전제할 수 있고, 또한 전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 반론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어떤 의견을 처음부터 올바른 것으로 전제하고서 반박할 기회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 것과, 그 의견을 반박할 모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견이 반박되지 않아서 올바른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사실, 인간의 판단이 지니는 모든 힘과 가치는 그 판단이 틀렸을 때에 바로잡을 수 있다는 데 달려 있다. 인간이 만들어냈던 모든 훌륭한 것들의 원천도 다름 아닌 자신의 잘못들을 고쳐나가는 인간의 특질에 있었다. 따라서 어떤 의견이 우리 사회의 행동을 위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더라도, 경험과 토론을 통해 그 의견을 반박함으로써 그 의견에 포함된 잘못들을 고쳐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경험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고, 그 사실과 근거들이 인간의 지성에 어떤 효과를 미치기 위해서는 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사람들의 판단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의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거나 취약점을 지적해주는 것을 피하기는커녕 도리어 기꺼이 반기는 태도로, 적어도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며 자신의 의견을 비판하는 모든 말들을 경청하고 그 비판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다시 설명하고 나서 거기에 대한 그들의 논평을 또다시 들어보는 식으로,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빛을 밝혀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차단하지 않는 사람의 판단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개인이나 집단의 판단보다 더 나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언제든지 틀릴 수 있는 존재인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확실성이고, 그러한 최선의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상한 것은, 사람들은 자유로운 토론이 최선의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특정한 부분에 있어서는 그러한 토론 자체를 막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유로운 토론이 옳고 타당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특정한 원칙이나 교리는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반대하는 의견들을 침묵시키고 일체의 토론을 차단시키는 것이 특별히 잘못된 것으로 인식되지 않을 정도다. 심지어 과거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침묵시키기 위해서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해악을 가하기도 했었다. 오늘날에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불관용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정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게 하고 위장하게 만들며, 결국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지성 세계의 기존 질서와 평화를 확보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 지성의 도덕적인 용기 전체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들이 자신들이 발견한 참된 원리들과 근거들을 자신의 가슴속에만 간직한 채로, 대중 앞에서 말할 때에는 속으로는 잘못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존 질서에 속한 논리를 마치 자신의 결론인 것처럼 말해야 아무 탈이 없는 그런 사회에서는, 전에 사상계를 찬란하게 빛냈던 지성들, 즉 일관된 논리로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두려움 없이 표현했던 지성들이 나올 수 없다. 인류에게 중요하고 큰 문제들에 대한 논쟁이 활활 타오를 때에만, 인간의 지성은 그 토대로부터 뒤흔들리게 되고, 그 충격은 지극히 평범한 지성을 지닌 사람들에게조차 가해져서, 그들 지성이 다함께 고양될 수 있다.
3.1.2.2. 기존 정설이 옳은 경우
둘째로, 사람들의 의견이 결론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그 의견의 옳고 그름에 대한 전면적이고 자유로우며 무제한한 토론이 허용되지 않으면, 그 의견은 살아 있는 진리가 아니라 단지 죽은 독단적 의견으로 취급될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몇몇 사람들은 권위 있는 사람으로부터 어떤 가르침을 받아서 한 번 그 의견이 옳다고 믿어버리면 그 의견이 왜 옳은 것인지 그 근거들을 전혀 알지 못해도 아무 상관이 없으며, 마치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그 의견에 대해 문제제기를 허용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고 단지 해만 될 뿐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올바른 의견이라고 할지라도, 그 의견이 인간의 지성이 아닌, 근거와 증거가 없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이성적인 존재인 인간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전문가가 나서서 사람들에게 올바른 의견과 함께 그 의견의 근거들까지 모두 다 가르쳐주면 되지 않느냐? 물론 분명히 하나의 정답이 있어서, 옳고 그름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없는 수학 같은 분야에서는 이 말이 의심할 여지 없이 옳다. 그러나 도덕이나 종교, 정치나 사회관계, 인생사 같이 무한히 더 복잡한 문제들을 살필 때에는, 어떤 의견이 옳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논증의 대부분이 그 의견을 반대하는 의견들의 근거와 증거를 반박하는 데 할애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따라서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근거와 증거만 이해한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제대로 그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논증을 연구하는 일 못지않게, 자신의 논쟁 상대의 주장을 연구하는 일에도 언제나 똑같이 힘을 기울여야 한다.

상대방의 논거들을 듣고자 하는 경우에도, 자기 쪽 진영의 시각에서 그 논거들을 이해하고 그 이해에 입각한 반박을 제시한 내용을 듣는다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그 논거들을 제대로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 아니다. 실제로 믿고 있고,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진지하게 옹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 반박의 논거들을 들어야 한다. 그들이 가장 자신 있어 하고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논거들을 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현안의 진상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인지 전체적으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오늘날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주장과 그 근거들은 거침 없이 제시하면서도, 그들과 다른 의견을 펴는 사람들의 주장과 그 근거들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을 깊이 들여다본 적도 없고, 그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경청해서 숙고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한다면 그들 자신이 제시한 주장에 대해서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어떤 문제의 진실은 양쪽의 의견을 똑같이 공정하게 경청하여 양쪽이 제시하는 모든 근거들을 알고 난 뒤, 그 근거들을 가장 강력한 빛 안에서 심혈을 기울여 살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다. 도덕 및 인간과 관련된 문제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훈련이 필수적이다.

이런 훈련을 위해 자유로운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의견들의 근거만을 알지 못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의견들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되어 그 의견들이 가지는 도덕적 가치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리고, 결국 이로 인해 사람의 인격과 성품에도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된다. 즉, 그 의견은 사람들 속에서 생생한 진리의 실체를 만들어내어 살아있는 신념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그저 그 의견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말이 기계적으로 암기되어 입으로만 반복할 뿐이라서, 그 의견이 사람들에게 남긴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그 껍데기 속에 들어 있는 진정한 알맹이는 그들 속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인류 역사 속에서 이런 일은 무수히 벌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 분명히 옳아서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의 근거들을 정말 진지하게 연구하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논리를 펴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이 오늘날의 경향이다. 적극적으로 어떤 진리들을 제시함이 없이 어떤 이론이나 실천 속에 내재하는 약점이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을 오늘날의 사람들이 보게 되면 그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못마땅하게 여긴다. 물론 그러한 부정적인 비판은 적극적으로 어떤 진리들을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그 결과물이 보잘것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적극적인 지식이나 확신이 진정으로 가치가 있음을 확증해주고 그 토대를 더 공고하게 해주는 수단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그런 일을 해준다면, 우리는 기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런 기회가 저절로 생겨났는데도, 그 기회를 날려버린다면 그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기존 의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는 사람이 있거나, 법이나 여론이 허락할 때만이라도 그렇게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3.1.2.3. 기존 정설과 반대 의견 모두가 옳은 경우
지금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이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인류의 지성이 아주 높은 수준에 진입할 때까지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토론이 벌어지는 것이 유익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이 유익한 주된 이유들 중 기존 정설이 틀린 경우와 기존 정설이 옳은 경우에 대해서만 고찰했고, 나머지 한 경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언급하지 않았다. 기존 정설이 틀린 경우에 인류는 오류를 진리로 대체할 기회를 빼앗긴 것이며, 기존 정설이 옳은 경우에 인류는 오류와의 충돌을 통해서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고 더욱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아주 유익한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하지만 두 개의 서로 상반되는 의견들 중에서 어느 한 쪽이 옳고 다른 한 쪽이 틀리는 경우보다는, 둘 모두가 부분적인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경우에 기존 정설은 단지 부분적인 진리만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진리의 나머지 부분은 기존의 정설과 다른 의견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기존 정설이 바른 토대에 의거하고 있을 때조차도 진리 전체의 일부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진리 전체 중에서 그 정설이 배제해버린 여러 부분들을 반영하고 있는 온갖 의견들은, 비록 그 의견들 속에 부분적인 진리와 함께 많은 오류와 혼동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소중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인생사를 공평하게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 진리와 오류가 혼합된 의견을 말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의 그런 의견이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진리의 일부만을 볼 수 있게 해준 경우에, 그 사람이 진리에 오류를 혼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도 그 사람처럼 진리의 일부만을 보고 진리와 오류가 혼합된 의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실천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들과 관련된 진리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화해시키고 결합시키는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충분히 큰 포용력을 지니고서 모든 것을 다 고려하여 공정하고 정확하게 그러한 조정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자유로운 토론이 무제한적으로 허용된다고 해도, 부분적인 진리가 마치 진리의 전체인 양 분파주의적으로 되는 것을 막아주는게 아니라, 도리어 흔히 그런 경향을 더 강화시키고 악화시킬 수도 있다. 다양한 의견들이 진리를 드러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반대자들에 의해 주장된 의견이라는 이유로 더욱더 맹렬하게 반대를 받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진리의 일부를 가지고서 진리의 전체인 것처럼 오직 그들만의 진리라고 고집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용납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비판하고 나선 사람들이 이번에는 자신들이 마치 유일한 진리인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것은 통탄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용납되어야 한다. 진리의 절반을 담고 있는 어떤 의견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억압되고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가공할 해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도 찬반 양론을 모두 들을 수밖에 없는 곳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 하지만 오직 한 쪽의 의견만을 들을 수 있는 곳에서는, 그 의견 속에 들어 있는 오류들이 진리로 여겨지고 굳어져서 편견으로 자리 잡게 되고, 그 편견만이 마치 진리 전체인 양 과장됨으로써, 그 의견 중에서 진리인 부분은 진리로서의 효과를 지닐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논증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오직 믿음만을 강요하는 저 독단적인 편견을 막기 위해서라도, 차라리 양 진영이 서로를 반대하는 기치를 높이 세우고서 그 기치 아래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는, 그런 거칠고 험악한 과정을 거쳐서 조정 작업이 이루어지는 게 낫다. 그런 조정 과정에서 각각 진리의 어느 부분을 반영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그것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로 여겨야 한다.
3.1.2.4. 토론에 대한 보충 논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토론하는 사상의 자유를 끝마치기 전에,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이 적절하게 절제되어 있어서 공정한 토론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조건 아래에서만 모든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저런 많은 이유들을 들어서, 이 경계선을 어느 지점에 설정해야 한다고 못박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떤 의견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넘어서서, 궤변을 일삼고, 사실들이나 근거들을 은폐하며, 자신의 주장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거짓으로 제시하고, 반대 의견을 왜곡해서 제시하지만, 그런 것들을 모를 리가 없고 얼마든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을 고려해 보았을 때에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이 모든 짓을 심지어 대단히 악질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끊임없이 일상적으로 저질러왔다는 데 있다.

게다가 그들은 독설이나 야유, 인신공격 등의 무기를 통해서 기존 정설과 반대되는 의견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을 악하고 비도덕적인 사람들로 낙인 찍는다. 하지만 반대로 소수의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은 수적으로 소수여서 별 영향력이 없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정당하게 대우해주는 사람이 그들 자신 밖에는 없어서, 그들이 지배적인 다수의 의견을 공격하는 데 그러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이 문제의 성격상 불가능하다. 만일 그들이 그런 무기들을 사용한다면, 그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뿐더러, 도리어 지배적인 의견을 지닌 자들에게 그들과 그들의 의견이 악하고 비도덕적인 것이라는 낙인 찍힐 빌미만 제공하게 된다. 지배적인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들은 일반적으로 순화된 언어를 사용하여 불필요한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때에만, 사람들은 마지못해 그 의견들을 들어준다. 반면에, 지배적인 의견을 지닌 다수는 언어폭력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들은 반대 의견을 개진할 수도 없고,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경청할 수도 없다.

따라서 진리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런 언어폭력의 사용을 저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소수의 언어폭력보다는 다수의 언어폭력을 막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하다. 물론 법과 권력이 이 둘 중 어느 쪽도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론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개별적인 사례에 대한 상황에 따라 판단을 내려야 한다.

여론은 먼저, 지배적인 의견이든 소수의 의견이든, 정직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악의적이거나 자신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고집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전혀 용납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모든 사람을 단죄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어떤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의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좋지 않게 바라보고서, 그와 그의 의견을 악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끝으로, 어떤 사람이 어떤 의견을 지니고 있든, 자신의 반대자들과 그들의 의견들이 진정으로 어떤 것인지를 아무런 사심 없이 경청하고서, 그들에게 불리한 것들을 부풀리거나 그들에게 유리한 것들을 은폐하지 않는 가운데, 그들의 의견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밝히는 모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여야 한다.

3.1.3. 행복의 요소로서의 개성

이제 우리가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바로 그 동일한 이유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견에 따라 행동하는 데 자유로워야 하는가, 즉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육체적이거나 도덕적인 방해 없이 자신의 의견을 삶 속에서 실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하는가의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물론, 행동을 하는 것이 의견을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 인간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모든 결과를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모든 행위는 비판적인 여론을 통해서,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통제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안이 좀 더 중대한 경우에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

하지만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일을 통해 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과만 관련된 일에서 자신의 취향과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동일한 이유에서, 자신의 책임 아래 자신의 의견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자유가 제약 없이 허용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는 것이 유익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다양한 삶의 실험들이 존재하는 것이 유익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이 되지 않는 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개성들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각자가 시도해 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서로 다른 생활방식의 가치를 실천적으로 자유롭게 증명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회가 사람들의 개성을 이전보다 훨씬 더 잘 통제하고 있다. 오늘날 대중을 이루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평범한 것에서 벗어나 어떤 특별한 것을 하고 싶어하는 성향이나 욕구가 별로 강하지 않다. 개인이든 가족이든,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일들에서만이 아니라 오직 자신과만 관련된 일들에서조차도, 내가 무엇을 더 선호하고, 나의 개성과 성향에 맞는 것이 무엇이며, 나의 능력을 최고로 발전시키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인지를 자기 자신에게 묻지 않는다. 그런 것들 대신에, 그들은 나의 위치에 어울리는 것이 무엇이고, 나와 같은 지위와 경제적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것이 무엇이며, 나 보다 더 나은 지위와 경제적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를 묻는다.

그저 즐겁기 위해서 하는 일조차도, 남들이 무엇을 하며 즐겁게 노는지를 먼저 생각하고서, 사람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서 한다. 사람들은 이제 동일한 것들을 읽고, 동일한 것들을 들으며, 동일한 것들을 보고, 동일한 곳들을 간다. 사람들이 희망하는 것이나 염려하는 것들도 동일하다. 사람들은 동일한 권리들과 자유들을 누리고, 그런 것들을 누리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도 동일하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할 뿐이다. 그들은 범죄를 꺼리는 것과 동일한 수준에서 특이한 취향이나 튀는 행동을 꺼린다. 그들은 군중 속에 묻혀 있기를 좋아한다. 그들 각자가 타고난 본성을 따르지 않는 것이 습관화되고, 그래서 어떤 것을 강력하게 원하는 마음도 없어지며, 이로서 그들 자신 속에서 생겨난 어떤 의견이나 감정, 즉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의견이나 감정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된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타고난 자질과 능력들은 결국 말라서 시들어버리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힘은 죽어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간 본성의 상태로서 바람직한 것인가, 아니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가?

물론, 인류의 관습이나 경험에 의해 확인된 결과들이 자신의 삶이나 행위에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듯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처구니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한 유익을 얻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특정한 관습이 옳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적절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단지 관습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관습을 따라 어떤 일을 행하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한다는 이유로 그 일을 행한다면,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능력들은 전혀 훈련될 수 없을 것이다. 인지, 판단, 독특한 감정, 정신 활동은 물론이고 심지어 도덕적 선호 같은 인간의 능력들은 오직 행동의 선택을 통해서만 훈련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일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정하는 사람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능력을 사용하여 그 능력을 훈련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보기 위해서 관찰력을 사용해야 하고, 미리 내다보기 위해서 추리력과 판단력을 사용해야 하며, 결정을 하기 위한 자료들을 모으기 위해서 활동력을 사용해야 하고, 결정하기 위해서 분별력을 사용해야 하며, 결정을 내린 후에는 자신이 신중하게 결정한 것을 실현해내기 위해서 확고한 의지력과 자제력을 사용해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이성을 토대로 하지 않은 의견을 갖는 경우에는, 그의 이성은 더 이상 강화되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약해지게 되며, 사람이 자신의 감정과 성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것이 그의 감정과 성격에 큰 타격을 주어서 처음에는 적극적이고 활기찼던 사람도 곧장 활기를 잃고는 무기력해지고 만다.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바쳐서 완성해나가고 찬란하게 꽃피워 나가는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을 완성해 나가고 찬란하게 꽃피워 나가는 일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된 자동기계들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집을 지어주고 곡물을 길러주며 전쟁도 해주고 재판도 해주며, 심지어 교회를 짓고 기도하는 것도 대신해주는 것이 가능해서,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그런 자동기계로 대체해버릴 수 있다면, 그것이 이득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어떤 정해진 모형을 따라 만들어져서 정해진 곳에 배치되어 정해진 일을 정확히 해내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을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내면의 힘을 따라 사방으로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킨 정도에 비례해서 그만큼 더 자기 자신에게 가치를 지니게 되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개개인의 삶이 만개하여 풍성해지면, 그 개개인들로 이루어지는 사회도 풍성해지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하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하나의 틀에 맞추려고 해서는 안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더군다나 온갖 다양한 식물들이 동일한 자연 조건과 기후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적인 발전을 위해 필요로 하는 조건들도 서로 달라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도덕적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게 된다면 그런 조건에서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동일한 생활방식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건강하게 작용해서 그의 모든 능력들을 최고로 발전시키고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반면에, 어떤 사람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으로 작용해서 그의 모든 내면의 삶을 불안정하게 하거나 파괴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 고통을 느끼는 예민함의 정도, 그런 것들에 대해 반응하는 육체와 정신의 기제 같은 것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맞게 개개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면, 자신이 본래 누릴 수 있게 되어 있던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고 각자의 본성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정신적이고 도덕적이며 미적인 최고의 발전도 달성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일과 관련한 우리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가진다는 것은 결코 위험한 일도 아니고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해악을 가져다줄 덫도 아니다. 사회의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이 악하게 행동하는 것은 그들의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양심이 약하기 때문이다. 충동이 강하면, 반드시 양심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그런 필연적인 연결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욕망과 충동은 신념과 절제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인간의 한 부분이며, 어떤 사람의 욕망과 감정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력하고 더 다양하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질을 더 풍부하게 지니고 있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나쁜 짓을 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더 많은 좋은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한 충동은 활력의 또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활력은 나쁘게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활력이 없고 무감각한 사람이 아닌, 활력이 있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더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언제나 사실이다.

3.1.4.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가지는 권한의 한계

개인에 대한 사회의 권한은 어느 지점에서 시작되는가? 인간의 삶 중에서 어디까지가 개인에게 속하고, 어디부터가 사회에 속하는가? 사회 속에서 살고 사회의 보호를 받는 한, 모든 사람은 그 혜택에 대해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일련의 행위 규범을 지켜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첫 번째는, 서로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명시적인 법규나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에 따라 개개인의 권리로 인정된 특정한 이익들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개개인은 사회나 그 구성원들을 어떤 침해나 해코지로부터 방어하는 데 필요한 과업들과 희생들 중에서 공평한 원리에 의거해서 정해진 자신의 몫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이런 의무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강제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이행하게 만드는 것은 정당하다. 사회는 자신의 모든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응징해야 하고, 명백한 징벌의 목적으로 그에게 고통을 가해야 하며, 그 징벌이 충분히 혹독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정당한 권리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나 피해를 가하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거나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다른 사람들에 대해 부당한 방법이나 착취를 통해 이득을 얻는 것, 다른 사람이 해악을 입을 것을 알면서도 이기적인 동기에서 돕지 않는 것 ㅡ 이런 행동들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들이고, 그 사람을 범죄자로서 법정에 세우고서 심판을 받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여론이나 사회적인 압박 등과 같은 여러 방법들을 동원해서 응징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한 개인의 행동이 법적으로 보장된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그들의 복리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잘못이 있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 법적으로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사회가 여론을 통해 그 사람을 벌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행동이 오직 자기 자신의 이익에만 영향을 미치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에는, 사회가 그 행동에 개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아예 제기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것은 전적으로 개개인에게 맡겨져야 한다.

어느 누구도, 아니 아무리 많은 사람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기에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려고 하는데,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자신이 행복하고 잘되는 것에 대해 가장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당사자다. 인격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3자가 어떤 사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관심은 당사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관심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 또한 사회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동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 사람 자체에 대해 갖는 관심은 단편적이고 지극히 간접적이다. 반면에, 아주 평범한 남자나 여자도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형편에 대해서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그 누구보다도 더 월등하게 잘 안다. 하지만 사회가 오직 당사자의 이해관계에만 관련이 있는 개개인의 판단과 계획에 직접 개입하고자 한다면, 사회는 단지 제3자로서 밖에서 피상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까닭에 개개인의 사정과 형편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그 개입은 얼마든지 잘못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의 그러한 부분은 각 개인의 개성이 발휘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으로 두어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개인의 판단을 돕기 위해 그가 고려해야 할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말해줄 수 있고, 그 개인의 의지에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권면들을 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심리적인 압박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그 개인이어야 한다. 그 개인이 다른 사람들의 조언과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행동해서 온갖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저질러진 잘못들로 인한 해악보다는, 그 개인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판단하고 결정해서 그 개인에게 강제했을 때의 해악이 훨씬 더 크다.

자기 자신과 관련해서 어떤 사람이 현명하고 지혜롭게 처신하지 못하거나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나타내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했을 경우에, 우리는 그의 행동에 대한 우리 자신의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도 되고,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었던 그 행동만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멀리해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그 사람의 삶을 불편하게 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모든 벌을 이미 받고 있거나 앞으로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 사람의 삶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이미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가 그의 잘못에 대해 의도적으로 응징을 가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그의 삶을 더욱더 망쳐놓는 것은 옳지 않다. 그를 응징하려고 하기보다는, 그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그 자신이 겪고 있는 해악들을 피하거나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이미 받고 있는 벌을 덜어주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동정, 아니 아마도 혐오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분노나 적개심의 대상이어서는 안 된다. 그를 사회의 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그에게 관심을 보여줌으로써 호의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에게 정당하게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그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혹독한 징벌은 그를 내버려 두는 것이고, 그것 이상으로 무엇인가 응징을 가하고자 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게 되면, 그 행동은 자기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회 전체에도 해악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사회와 완전히 따로 떨어져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 그러나 사회가 개인의 '모든 것'을 결정하도록 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스스로의 분별에 따라 행동하도록 방치하는 쪽이, 사회가 어떤 방법으로든 개인을 통제하는 경우보다 대체로 더 훌륭한 행동을 산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악을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을 최대한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명백한' 해악을 입혔거나 그럴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그런 행동은 도덕이나 법의 규제 아래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개인이 어떤 행동을 통해서 특정한 공적 의무를 어기지도 않았고, 자기 자신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이렇다 할 만한 해악을 끼치지도 않았는데, 단지 그 행동이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쳤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정되는 경우에는, 인간의 자유라는 좀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사회는 그런 불편함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3.2. 질적 공리주의

윤리학에 있어서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항상 논란이 되어 왔다.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차례대로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몰두했지만, 오히려 여러 분파나 학파로 갈라져서는 서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만 했다. 칸트는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타고난 능력이 있어서 이성의 명령에 따르기만 한다면 행위의 도덕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경험주의자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관찰과 경험을 통해 귀납적으로 결정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추상적인 일반론을 도덕의 기초로 삼았기 때문에 도덕 기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요구하는 대중들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밀은 도덕이 추상적인 원리들로부터 형식적인 명제만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덕적 행동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밀은 추상적인 일반론은 뒤로 하고, 구체적인 행동에 어떤 규칙이 적절한지를 살펴본다. 모든 행동은 어떤 목적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행동의 규칙은 당연하게도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특성과 색깔이 정해진다. 그리고 추구하는 목적은 수만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도덕의 세부 내용을 살펴볼 때 대체로 행동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야말로 도덕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자 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어떤 목적이든지 간에 행동이 행복을 가져다줘야 그 행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도덕적으로도 권유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벤담이 '최대 행복의 원리(the great happiness principle)'라고 일컬은 공리의 원리(the principle of utility)는, 정작 그것을 가장 조롱하며 거부했던 사람들조차도 결국엔 공리주의 논증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공리(utility) 또는 최대 행복의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받아들이는 이 이론은 행복을 증진시킬수록 옳은 행동이고, 행복과 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할수록 그릇된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행복이란 '고통의 부재'와 '쾌락'을 의미하고, 불행은 쾌락의 결핍과 고통을 의미한다. 즉, 쾌락의 획득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상태가 목적으로서 유일하게 바람직하다는게 바로 공리주의다. 그리고 공리주의가 사회에 적용되었을 때, 그 '윤리관'는 우리에게, 행위자 자신만의 행복 뿐만이 아니라 관련된 모든 사람의 행복을 추구할 것을 요구한다. 만약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공리주의는 그 행위자에게 사심없는 방관자처럼 엄격한 중립을 지킬 것을 요청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이것만 따라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의 양심과 편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며, 일부 몇몇 사람의 이익이나 행복에 신경 쓰면 그만이다. 다만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과 사건들에 있어서 서로 다른 도덕 원칙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경우에, 그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해주는 제1원리로서 공리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밀의 주장인 것이다.

이러한 도덕은 사회의 '교육'과 '여론'을 통해, 양심이라는 도덕 감정을 기름으로써 습득될 수 있다. 또는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이미 인간 본성 속에 있는 강한 결속력인 '사회 감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타인의 이익과 점차 동일시하거나 적어도 배려하는 마음은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관심'과 '공감'이라는 가장 강력한 동기에 자극을 받아 그 자신의 도덕 감정을 표출하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다른 사람들도 이 감정을 갖도록 독려한다. 그 결과, 아주 작은 감정의 싹이라도 공감은 점차 확산하게 되고, 교육의 영향에 힘입어 보호받고 자라나게 된다. 여기에다 외부 징벌이라는 강력한 요인으로 감정을 유도하고 강화시키면서, 개인과 사회의 이해를 조화시키는 도덕의 그물망이 마침내 만들어진다. 우리 자신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이런 방식의 생각들은, 문명이 발전하고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점점 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15]

하지만 이런 인생론은 많은 사람, 그 중에서도 감정과 목적을 가장 존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뿌리 깊은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인생에서 쾌락보다 더 높은 목적이 없다는 생각은, 그들에게는 아주 천박하고 비굴한 생각처럼 보여진다. 그것은 돼지에게나 어울리는 이론이라고, 그 옛날 에피쿠로스학파 사람들도 많이 들었던 비난을 할런지도 모른다. 이런 공격을 받았을 때 에피쿠로스학파 사람들은 인간 본성을 비하해서 설명하는 쪽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자신들을 비난하는 쪽이라고 줄곧 응수해왔다. 그 비난이야말로 인간을, 돼지가 누릴 수 있는 쾌락 이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는 존재로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돼지가 누릴 수 있는 쾌락 이상의 즐거움이란 무엇이고, 어떤 쾌락이 다른 쾌락보다 더 질적으로 가치가 있는 쾌락인가? 그것에 대한 밀의 대답은, "두 가지 쾌락 중에서 양쪽을 다 경험한 사람들 모두가 혹은 거의 대다수가 더 선호하는 쾌락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바람직한 쾌락"이라는 것이다.[16] 두 가지 쾌락을 모두 잘 알고, 똑같이 통찰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존재의 방식을 훨씬 더 선호할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는 육체의 쾌락보다 정신의 쾌락을 선택할 것이라고 밀은 확신한다. 인간에게는 동물적인 욕정보다 훨씬 고귀한 능력이 있고, 일단 그런 능력을 자각한다면 인간은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는 경우 행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쾌락보다 '지적인 쾌락', '감정과 상상 속의 즐거움', '타인을 돕는 것에서 느끼는 뿌듯함' 등 더 높은 질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dignity)에 해당한다.

당연하게도 누군가는 지성과 교양보다 짐승이 누리는 쾌락을 선택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선택 ㅡ 교양 있는 사람이 막무가내로 변한다거나, 다정다감하고 양심적인 사람이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가 아주 극도로 불행한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저질 쾌락에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지 그것이 자신을 보다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낮은 수준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만족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반면, 높은 수준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만족할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에, 뛰어난 사람이 저급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행복과 만족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뛰어난 사람일수록 행복해지기 위해 더 많은 게 필요하고 고통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며 분명 더 많은 이유로 쉽사리 고통에 빠지지만, 이런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사람은 결코 스스로의 존엄을 부정하는 존재임을 느끼는 상황 속에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저급한 쾌락을 지속적으로 만족시키고자 동물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궁핍한 인간이 낫고, 만족해하는 멍청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게 낫다. 만약 바보나 돼지가 그들의 쾌락이 더 좋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단지 그 문제에서 그들이 가지는 면만 알기 때문이다. 그 비교의 다른 당사자는 양측면을 안다.

3.3. 공개투표론

비밀 투표에 대한 밀의 비판은 1861년작이자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정치저작 《대표정부론》 제10장에서 전개되었다. (...)밀은 최소한 투표에 관해서는 마치 루소(Jean-Jacques Rouseau)를 연상시키는 논리에 근거하여 비밀 투표를 비판하는데, 개인의 투표란 자신이 “선택권을 갖는 어떤 것”이 아니라 “공공선이 무엇인가에 관한 그의 최선의 의견이자, 최대한의 양심적 의견”의 관점에서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밀 투표는 이 “공적 기능”을 왜곡하여 “자기만의 이익, 쾌락, 변덕”에 따라서 투표하게 하며, 이러한 사적 동기는 시민 개개인을 “작은 규모에서의 폭군이나 압제자가 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489). 따라서 비밀 투표는 개인들이 공적 시민으로서가 아닌 사적 “개인으로서 혹은 계급의 일원”으로서, 이기적이고 “해로운 이익(sinister interest)과 신뢰하기 힘든 감정” 에 따라 투표하도록 허용하고 조장한다는 것이 밀의 주장이다(491). 그리고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공개된 방식의 투표제를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철기.(2018). 《비밀 투표는 ‘민주적’인가?》, 104쪽 [17]

밀은 그의 저서 《대표정부론》(1861)에서 비밀 투표제를 비판하고 공개투표제을 주장하였다.

투표는 공중의 감시와 비판 하에서 수행되어야 하며 비밀투표가 개개인들을 사익에 근거한 투표를 하게 해서 그들을 ‘작은 폭군들’ 로 만들어서 폭정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밀의 이런 공개투표이론은 《자유론》에서 자유주의적 관점을 옹호했던 것과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실 19세기 초반까지의 선거제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회개혁가들은 오히려 비밀투표보다는 공개투표를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18] 그전까지는 오히려 비밀투표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비밀투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는 자유주의 사상가들 사이에서도 오히려 공개투표가 투표자의 의무로서 당연한 투표법이었다.

밀이 당시에 공개투표론을 옹호하던 것은 당시 19세기 자유주의적 사회개혁가들이 주장하던 ‘왕실 비밀주의의 폐지’, ‘언론의 자유’ 같은 공개성과 토론을 통해서 사회가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과 관련되어 있었다.[19]
공개 토론 원칙에 따르면 개인은 타인의 비판에 대해서, 그것이 무엇이든 청취를 할 수 있는 열린 태도의 개인이다. “누군가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는 경우”라는 것은 “그가 자신의 의견과 처신에 대한 비판에 자신의 마음을 열어 놓고” 있는 경우인데, 특히 자신에 대해 가해지는 비판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것에 대해 청취할” 준비가 된 경우라는 것이다(Mill 1977b, 232). 이는 공개 투표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데, 투표 할 때 내리는 결정의 근거가 되는 판단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기 위해서는 결국 의회에서 표결하는 의원과 마찬가지로 유권자 또한 자신의 결정을 옹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비판에 대해서도 언제나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홍철기.(2018). 《비밀 투표는 ‘민주적’인가?》, 109쪽 [20]

4. 영재 공부법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업적뿐만 아니라 공부법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존 스튜어트 밀은 공부를 많이 했던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고 감사했다. 본인의 자서전을 읽는다면 첫 장에서 이미 그가 아버지의 교육을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아버지 제임스 밀이 자신의 교육에 할애한 시간에 대해 희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을 정도로 아버지가 자신에게 투자한 것을 감사히 여겼다. 위에 서술했다시피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영어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했을 3살 짜리 어린 아이에게 그리스어까지 이해시키면서 단어장을 만들어 가르치는 것은, 학자인 사람으로서는 굉장한 시간 낭비였을 수도 있음을 밀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기 쉬운 오해가 있는데, 어린 나이에 남들이 볼 때 과도한 양을 공부시켰다 하여 제임스 밀의 교육을 주입식 교육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제임스 밀의 교육은 주입식 교육의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방침은 주입식 교육과 완전히 정반대였다. 무엇보다도 그 수혜자인 존 스튜어트 밀 스스로가, 아버지는 그가 배운 것이 기억력 연습으로 끝나게 두지 않았으며 자신이 받은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자서전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자신이 받았던 교육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일이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을 정도다.

아버지 제임스 밀은 되도록이면 자신이 아들을 가르치기 전에 아들이 스스로 그러한 개념들을 이해하게 만들기 위해 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홀로 생각하게 두었고, 아들이 다방면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 전까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체적인 교육방식은 이러하였다. 가르치려고 하는 학문과 관련된 책을 이것저것 주며 여러 번 읽게 만들고 그 안에 담긴 저자의 뜻을 완전히 파악하게 했으며, 그에 대한 의견 그리고 이해도를 정확히 측정할 만한 질문을 던지는 질의응답 식으로 교육하였다. 10살이 넘어가며 존 스튜어트 밀이 어느 정도 학자 수준의 지성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이때부터는 질의응답을 통한 확인보다는 서로 여러 가지 논점에 대하여 말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표현력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명한 고전 시들을 읽고 또한 자신만의 시를 쓰도록 하였으며 물리학이나 화학같은 자연과학의 분야에 대해서도 논문을 읽고 그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정도의 공부를 시켰다. 또한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동생들을 틈나는 대로 가르치게 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기가 별로 뛰어나지 않다는 생각에 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였으나, 훗날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아버지 제임스 쪽에서 아들에게 시킨 공부도 많았지만, 그 밖에 존 스튜어트 밀 스스로가 한 공부 역시 많았다. 그도 사람인 만큼 싫어하는 공부도 있었는데 산술(算術) 수업을 싫어했다고 한다.

제임스 밀의 교육은 토론식이나 문답식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둘 사이의 잦은 담론을 통해 아들에게 지식을 이해시키고 이를 제대로 이해하여 다시 자신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도록 했다. 또한 항상 공부와 관련된 책들만 던져준 것은 아니며 아라비안 나이트돈키호테 같은 재미있는 작품들도 역시 빌려다 주었다고 하니, 제임스 밀은 주입식 교육 방식을 고집한 완고한 아버지가 아닌, 다양한 방법을 통해 다방면으로 아들의 학습을 돕고, 아들의 여가 생활 역시 지원해 준 훌륭한 아버지인 것이다. 다만 교육법 자체는 훌륭했으나, 엄한 아버지였던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똑똑한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들이 겸손하지 않게 될 것을 늘 경계하였기 때문에, 결국 존 스튜어트 밀은 어린 시절에 자신이 남들보다 특출난 면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듯 하다. 또한 즐길 시간은 있었지만 쉬는 날은 없었다고 한다.

오늘날 꽤 유명한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도 이 어린 나이의 밀과 정치경제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그의 집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21] 그전에 리카도의 저서들을 완전히 독파하여 아버지와 깊은 토론을 나누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는 편견이 있지만 일단 외우지 않으면 뭐든 더 깊이 파내려 갈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외우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 추가로 매일 매일 아버지가 주는 숙제를 하였고, 이미 당대의 대학자였던 아버지와 함께 숙제의 내용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했으므로 사고력이 한없이 키워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공부했음에도 늘 아버지의 생각에 비해서는 미치지 못하는 바가 조금씩 있었기 때문에, 18살 때에는 자기가 아직도 모자라다는 생각에서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깊게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우스운 것은 자기를 가르칠 대학 교수들보다 밀이 더 똑똑했다는 것이다. 제임스 밀은 당시 인정받는 학자였고 데이비드 리카도는 경제학 발전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엄청난 인물이었는데, 이런 인물들과 꾸준히 토론을 해왔으니 일반 교수들이 존 스튜어트 밀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이 받은 교육에 대해 아쉬운 면 역시 가감없이 서술하였는데, 자신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다른 또래들에게서 나쁜 영향을 받거나 세상의 나쁜 부분에 물드는 것을 경계했고, 이를 위해 또래들이 주로 관심을 쏟는 예체능 방면으로는 아들이 부족한 면이 있어도 그냥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이처럼 한 부분에 스탯을 몰빵한 탓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은 결과적으로 성장 과정에서 지적 정신 활동 이외의 부분에서는 거의 자극을 받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또 제임스 밀의 교육법은 평균 이상의 것이긴 했지만 그의 교육법에서 큰 허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들과 자신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에 따르면, 스탯을 몰빵한 자신은 결국 손재주 등의 일상적인 일에 서투르게 되어서 "부주의하고 똑똑하지 못하며 또 대체로 생각이 느릿하다고 늘 꾸중을 들었다."라고 한다. 원체 제임스 밀이 다방면에서 뛰어난 사람이었기에, 아들을 가르칠 때 자신이 큰 노력 없이 얻게 된 것은 아들도 그럴 것이었다고 생각한 듯 하다. 덕분에 제임스는 아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엄하게 경고하고 꾸짖기는 하였으나, 정작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에게 부족하게 된 부분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22]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이 받은 교육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며, 자신은 오히려 타고난 재주에 있어서는 평균 이하였으며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그렇기에 이러한 교육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낭비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많은 분량의 지식을 주입받은 대부분의 소년ㆍ청년은 정신 능력이 강화되기보다는 오히려 많은 지식 때문에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진 셈이 되고, 남들을 따라할 줄 밖에 모르는 앵무새가 되기 쉬우며 남들이 만든 길 위에서만 자신들의 지식을 써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5. 주요 저서

제목 발간 연도
<colbgcolor=#fff,#1f2023> 논리학 체계
A System of Logic
<colbgcolor=#fff,#1f2023> 1843년
정치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1848년
자유론
On Liberty[23]
1859년
대의정부론
Considerations on Representative Government
1861년
공리주의
Utilitarianism
1863년
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
1869년
자서전[24]
Autobiography
1873년
사회주의
Socialism
1879년[25]

이 밖에 수많은 저술을 지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저술은 『자유론』과 『공리주의』다. 『자유론』은 이후 현대 정치철학의 쟁점이 되는 자유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논하는 기념비적인 저서이고, 『공리주의』는 제러미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하는 명저이다.

6. 어록

만족하는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만족하는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
《공리주의》 [26]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동일한 의견이고 그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해도, 인류에게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이는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전 인류를 침묵하게 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유론》 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 [27]
이 시대에는 단지 순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단지 관습에 무릎 꿇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로 도와주는 것이다. 여론의 폭정은 바로 별난 행동(eccentricity[28])을 비난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저 폭정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별나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별난 행동은 개성의 힘이 풍부했을 때와 장소에서 언제나 풍부했다. 그리고 사회 속 별난 행동의 양은 일반적으로 그 사회가 품을 수 있는 특별한 재능, 정신적 활력 그리고 도덕적 용기의 양에 비례했다. 이제 별나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 시대의 주된 위험을 나타낸다.
《자유론》 [29]
진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그저 그것들을 붙들고 있는 저들의 옳은 판단들 보다도, 적당한 공부와 준비를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한 사람의 오류들에 의해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자유론》 2장 [30]
어느 누구도 자신이 참여하지 않고 의견을 내지 않으면 손해보지 않을 것이라는 기만으로 자신의 양심을 달래지 마라. 착한 사람이 구경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보다 나쁜 사람이 그들의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 더 필요한 것은 없다.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한 취임 연설 [31]
신념을 지닌 한 사람은 단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흔아홉 명과 같은 사회적 힘이 있다.
《대의정부론》 [32]
더 이상 법의 힘에 의해 노예가 되거나 하인이 되지 않고, 대다수는 빈곤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 (...중략...) 이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투쟁해 온 거의 모든 것들과 대등한 악이라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이 믿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사회주의》 [33]
얻기 위해 기꺼이 싸울게 없는 사람, 자신의 안전보다 더 신경 쓸게 없는 사람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의 노력으로 그렇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지 않는 한 자유로울 기회가 없는 비참한 사람이다.
『미국에서의 항쟁』 [34]
어떤 역경이 있을지라도, 지지자들의 무리가 작더라도, 온 힘을 다해 싸워라. 당신이 옳다면, 저 작은 무리가 수많은 사람들로 증가할 때가 올 것이다. 당신은 적어도 기억에 남을만한 어떤 기초를 놓게 될 것이고, 당신은 —비록 그렇게 큰 보상을 필요로 하거나 기대해서는 안 되겠지만,— 당신이 시작했을 때 단지 그 과정에서 몇 단계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거라고 희망했던 저 일이 완성되는 것을 볼 여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를 위한 연설 [35]

7. 여담

파일:Mill's_logic_or_Franchise_for_females_1867.jpg
밀의 논리; 즉, 여성을 위한 선거권
  " '이 사람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세요." [39]
}}} ||

[1]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는 왕정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했던 초기 자유주의가 아닌, 대중과 여론의 강압으로부터의 자유주의를 말한다. 민주주의 내에서는 다수결을 통해 소수에 대한 다수의 도덕적ㆍ법적 강압이 종종 행사되는데, 이로부터의 사상과 개성의 자유를 주장한 것이다. 말년에 밀은 사회주의를 조건부로 받아들여 사회자유주의적인 측면을 보이기도 한다.[2]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부르며 사회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인 자유사회주의 경향을 보였다. 다만 공산주의는 극단적 사회주의라 부르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동자 자주 관리를 이상향으로 보았다.[3] 출생명 '해리엇 하디'(Harriet Hardy)[4] 유럽에 카를 마르크스가 있다면, 영미권에는 존 스튜어트 밀이 있다고 할 정도다. 밀의 자유론은 후대의 자유주의 영미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이사야 벌린, 존 롤스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철학자와 정치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어떻든 간에 그의 자유론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5] 의회 역사상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한 두 번째 국회의원이다. 첫번째는 급진주의 선구자 헨리 헌트(Henry Hunt, 1773–1835).[6] 성씨가 과채류 등을 파는 행상의 수레고분(무덤의 한 종류) 등을 뜻하는 영단어 barrow와 철자가 동일하다.[7]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박홍규 옮김. 문예출판사. 2019. p.156[8] 프랑스의 극작가 Jean François Marmontel(1723~1799)의 『Memoires d'un Père, pour Servir A L'Instruction de Ses Enfants, (1800~1806)』[9] I never, indeed, wavered in the conviction that happiness is the test of all rules of conduct, and the end of life. But I now thought that this end was only to be attained by not making it the direct end. Those only are happy (I thought) who have their minds fixed on some object other than their own happiness ; on the happiness of others, on the improvement of mankind, even on some art or pursuit, followed not as a means, but as itself an ideal end. Aiming thus at something else, they find happiness by the way. The enjoyments of life (such was now my theory) are sufficient to make it a pleasant thing, when they are taken en passant, with- out being made a principal object. Once make them so, and they are immediately felt to be insufficient. They will not bear a scrutinizing examination. Ask yourself whether you are happy, and you cease to be so. The only chance is to treat, not happiness, but some end external to it, as the purpose of life. Let your self-consciousness, your scrutiny, your self- interrogation, exhaust themselves on that ; and if otherwise fortunately circumstanced you will inhale happiness with the air you breathe, without dwelling on it or thinking about it, without either forestalling it in imagination, or putting it to flight by fatal questioning. This theory now became the basis of my philosophy of life. ( John Stuart Mill, Autobiography (1873) p.142-143)[10] Harriet Taylor (1807년 ~ 1858년). 존 스튜어트 밀과 재혼 후에는 해리엇 테일러 밀(Harriet Taylor Mill). 공교롭게도 그의 어머니와 이름이 동일하다.[11] The Subjection of Women (1869)[12] plural voting. 모두에게 투표권을 주되, 교양 정도 등의 자격조건을 두고 자격조건을 갖춘 사람들에게 2~3표를 주는 선거 제도. 차등 선거라고도 한다.[13] 실제로 영국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대졸자 및 기업가에게 투표 개수에 대한 특례를 부여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그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 특히 급진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일부 좌파로부터 엘리트 민주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훗날 이 주장을 철회하였다.[14] 이 책은 잔 다르크엘리자베스 1세를 예로 들어 여성도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man'이 인류를 뜻하는 용법으로 쓰이는 한, 이를 남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는 용법을 반대하고 있다. 밀의 이러한 주장은 후에 영국의 여성참정권론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15]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큰글자책)』, 2022, 정미화 번역, 이소노미아, p.100[16]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큰글자책)』, 2022, 정미화 번역, 이소노미아, p.42[17] 홍철기. (2018). 비밀 투표는 ‘민주적’인가?. 정치사상연구, 24(1), 101-129[18] 홍철기. (2018). 비밀 투표는 ‘민주적’인가?. 정치사상연구, 24(1), 102쪽[19] 홍철기. (2018). 비밀 투표는 ‘민주적’인가?. 정치사상연구, 24(1), 117~118쪽[20] 홍철기. (2018). 비밀 투표는 ‘민주적’인가?. 정치사상연구, 24(1), 101-129[21] 애초에 데이비드 리카도는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 제임스 밀과 친한 사이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서전에서, 너무도 겸손한 리카도가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펴낼 수 있도록 자신의 아버지가 용기를 북돋아주었다고 회고했다.[22] 많은 어른들이 자식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지만, 부모가 된 사람들은 자식들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훨씬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이다.[23] 영어 원문: #1 #2[24] 국내에 3개의 한글번역본이 존재한다. 배영원이 범우사에서 출판한 번역본이랑 최명관(1926년 생)이 창 출판사에서 낸 번역본은, 너무 오래전에 번역한 것을 재탕하는 것이라, 번역의 수준이 매우 저질이다. 영어 원본과 비교하면 글을 만들어 냈다고 봐야할 정도로 처참하다. 박홍규가 문예출판사에서 출판한 번역본은 그나마 낫지만[25] 존 스튜어트 밀은 1873년에 사망했고, 책 『사회주의』는 사후에 발간되었다.[26] "It is better to be a human dissatisfied than a pig satisfied; better to be Socrates dissatisfied than a fool satisfied." 출처[27] "If all mankind minus one, were of one opinion, and only one person were of the contrary opinion, mankind would be no more justified in silencing that one person, than he, if he had the power, would be justified in silencing mankind."[28] eccentricity: 별난 행동, 엉뚱한 행동, 남다른 행동, 괴짜, 기벽, 기행.[29] "In this age, the mere example of non-conformity, the mere refusal to bend the knee to custom, is itself a service. Precisely because the tyranny of opinion is such as to make eccentricity a reproach, it is desirable, in order to break through that tyranny, that people should be eccentric. Eccentricity has always abounded when and where strength of character has abounded; and the amount of eccentricity in a society has generally been proportional to the amount of genius, mental vigor, and moral courage which it contained. That so few now dare to be eccentric, marks the chief danger of the time."[30] "Truth gains more even by the errors of one who, with due study and preparation, thinks for himself, than by the true opinions of those who only hold them because they do not suffer themselves to think."[31] "Let not any one pacify his conscience by the delusion that he can do no harm if he takes no part, and forms no opinion. Bad men need nothing more to compass their ends, than that good men should look on and do nothing." (Inaugural Address Delivered to the University of St. Andrews, Feb. 1st 1867 (1867) p. 36.)[32] "One person with a belief is a social power equal to ninety-nine who have only interests." 출처[33] "No longer enslaved or made dependent by force of law, the great majority are so by force of poverty; they are still chained to a place, to an occupation, and to conformity with the will of an employer, and debarred, by the accident of birth both from the enjoyments, and from the mental and moral advantages, which others inherit without exertion and independently of desert. That this is an evil equal to almost any of those against which mankind have hitherto struggled, the poor are not wrong in believing." (John Stuart Mill, Chapters On Socialism, London, 1879, ‘Introductory’)[34] "A man who has nothing which he is willing to fight for, nothing which he cares more about than he does about his personal safety, is a miserable creature who has no chance of being free, unless made and kept so by the exertions of better men than himself." ("The Contest in America," Fraser’s Magazine (February 1862); later published in Dissertations and Discussions (1868), vol.1 p. 26)[35] 1867년 6월 29일 토요일, 런던 세인트 제임스 홀에서 미국의 노예해방운동가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 변호사를 기리기 위해 열린 공개 조찬회에 존 스튜어트 밀이 했던 연설. 원문은 다음과 같다. "Fight on with all your strength against whatever odds, and with however small a band of supporters. If you are right, the time will come when that small band will swell into a multitude: you will at least lay the foundations of something memorable, and you may...—though you ought not to need or expect so great a reward—be spared to see that work completed which, when you began it, you only hoped it might be given to you to help forward a few stages on its way." (John Stuart Mill, William Lloyd Garrison, in The Collected Works of John Stuart Mill, Toronto, 1988, vol. 28, p. 202) #[36] 존 스튜어트 밀은 본인의 저서 《정치경제학 원론》이 당대 최고 지성들이 모인 옥스퍼드 대학 경제학 수업에서 교과서로 쓰였고, 본인이 죽은 뒤에도 계속 교과서로 쓰였을 정도로 유명인이였지만, 마르크스는 친구 돈(주로 프리드리히 엥겔스)으로 혹은 물려받은 유산으로 놀고 먹는 한량이었다. 물론 마르크스가 무턱대고 놀고먹기만 한 건 아니고, 사실 1851년부터 1862년도까지 당시 미국 제1신문사인 뉴욕 트리뷴의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칼럼과 기사를 작성하고, 그 이후로 자본론 저술이나 사회주의 운동가들가 만나는 등 나름대로 활동을 하기는 했기 때문에 듣보잡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인물이지만, 어쨌든 주로 메이저에서 놀았던 스튜어트 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마이너였기 때문에 스스로 초라해보인다는 느낌은 가졌을 것이다.[37] "Meeting of the General Council", 2 August 1870, MEGA, I, xxi, p.814.[38] 구하원 『제국의 정당화, 여성의 타자화_인도 통치와 여성에 대한 제임스 밀과 존 스튜어트 밀의 글을 중심으로_』, 인도철학 제65집(2022.08), 225~256쪽[39] 1867년, 밀이 정부 개혁 법안에서 "man"이라는 단어를 "person"으로 대체하자는 발의안을 제출한 후, 삽화가 존 테니얼(John Tenniel)이 비꼬는 의미에서 그린 풍자화이다. 아래의 정확한 영문은 "MILL'S LOGIC; OR, FRANCHISE FOR FEMALES. "PRAY CLEAR THE WAY, THERE, FOR THESE-A-PERSONS."[40] "What I stated was, that the Conservative party was, by the law of its constitution, necessarily the stupidest party. Now, I do not retract this assertion; but I did not mean that Conservatives are generally stupid; I meant, that stupid persons are generally Conservative." (In a Parliamentary debate with the Conservative MP, John Pakington (May 31, 1866). Hansard, vol 183, col 1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