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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11-02 21:20:37

에밀 뒤르켐


파일:Urr5UVQ.jpg
1. 개요2. 생애3. 업적
3.1. 사회적 사실3.2. 방법론적 공헌3.3. 사회분업론3.4. 아노미 현상3.5. 자살론3.6. 행동 중심 도덕 교육3.7.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4. 트리비아

1. 개요

다비드 에밀 뒤르켐(David Émile Durkheim, 1858년 4월 15일 ~ 1917년 11월 15일)은 프랑스사회학자이다. 사회학(Sociology)이라는 이름은 오귀스트 콩트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 '사회학'이 도대체 뭘 어떻게 연구해야 하느냐에 대해서 제대로 제시한 것은 에밀 뒤르켐이 사실상 최초이며, 통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사회학의 방법론적 기조를 창시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사회학의 종주(宗主)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2. 생애

그는 유대인 랍비 가문에서 태어나 가풍의 영향으로 처음에는 랍비가 되고자 공부하였으나 10대에는 무신론자가 되었으며, 이후로도 종교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었으나 철저하게 무신론자로 변한 그에게 종교는 하나의 연구거리에 불과했다. 실제로 그의 주저인 『자살론』에서도 주된 논의는 자살에 미치는 사회적 요인 중 종교가 갖는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천주교(구교)와 개신교(신교)를 같은 기독교로 묶지 않고 그 문화에 따라 상세히 구분한 것은 그가 얼마나 종교를 절대적인 독트린을 가진 신앙체계로 본 대신 하나의 연구대상-그의 표현에 따르면 사회적 사실(Social Fact)-로 보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후기저작이자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최고의 저작으로 불리는 저서가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라는 점에서, 뒤르켐에게 종교, 나아가 인간의 '믿음'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 테마였는지 알 수 있다.

뒤르켐이 한창 공부를 하던 시기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온갖 사회 불안 요소가 팽배하던 시기였다. 그 역시 혼란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사회적 안정을 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콩트가 제시한 사회학이라는 비전이었다. 그의 박사논문이자 주 저서로 알려진 『사회분업론』은 기존의 사회주의가 노동자들을 '소외'시킨다며 경원시한 '분업'제도가 사실상 근대사회의 새로운 연대라는 주장을 제시하는데, 이는 사회학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한 포석이기도 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일에 매진하면서도 '사회적 안정/질서'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논증한 분석이다. 또한 그 유명한 아노미 개념도 이미 이 때 마련되었다.

보르도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교수직을 시작한 그는 결국 소르본 대학교의 교수로 취직했으며 여기서 '사회학과'라는 것에 최초로 재직하게 된다. 사실상 사회학을 고등교육에서 다루는 한 학문으로 정립한 셈이다. 소르본대 사회학과 교수가 된 뒤 사회학이라는 학제를 강화시키기 위해 '사회학 연보'를 창간하여 『증여론』으로 유명한 마르셀 모스(뒤르켐의 수제자이다) 등과 함께 프랑스 지성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제 3공화정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지금까지 유지되는 프랑스 교육제도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

게다가 뒤르켐은 1913년 프랑스 사회학회 초대 회장직을 역임함에 따라서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존재를 더욱 튼튼하게 굳히게 된다. 본래 모든 학문이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그 학문을 연구하는 이들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비판할 수 있는 학회가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하지만 정작 뒤르켐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인 1917년 사망하는데, 그가 지극히 사랑했던 아들을 비롯하여 『연보』의 주요 작성자들, 곧 뒤르켐 학파라 불릴 만 한 인재들을 한꺼번에 잃은 충격이 컸다고 한다.

3. 업적

3.1. 사회적 사실

뒤르켐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사회학의 근간을 이룩했다는 점이다. 한 학문이 오롯이 하나의 분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분과 고유의 연구 대상과 방법이 정립되어야만 하는데, 뒤르켐은 그 두 가지 모두를 마련했다.

우선은 연구 대상으로서 '사회사실'을 정의 내렸다. 사회 구성원은 분명 자아와 개인 의식 및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외부적인 압박으로 인해 의식과 자유에 제한이나 구속을 받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외부적 압박사회적 사실로 규정한다. 예컨대 학교는 매번 그 구성원이 교체되지만 지속적으로 구성원(학생)의 행동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므로 사회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에 따르면 분업도, 자살도, 종교(적 믿음)도 사회학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a. 사회사실은 철학과 같은 사색에 의한 연구가 아닌 경험사실에 의한 연구여야 한다는 점에서 철학과는 구분된다.
a. 사회사실은 인간 내면의 양심이나 가치관이 아닌, 어디까지나 다분히 인간 외적인 요소를 말하는 것이므로 심리학과는 구분된다.
a. 물질적인 사회적 사실 - 사회를 구성하는 물리적이고 구조적/형식적인 요소를 말한다. 종교, 국가, 법률, 인구 분포, 의사소통 경로 등이 이에 포함되며, 넓은 의미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a. 비물질적인 사회적 사실 - 도덕규범, 유행 등 추상적인 개념으로, 넓고 쉬운 의미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질적, 비물질적 사회적 사실은 구분이 모호해질 수 있는 만큼 그다지 널리 사용되는 개념적 범주 구분 유형은 아니다.

3.2. 방법론적 공헌

그는 사회학의 '대상'을 정의내렸을 뿐만 아니라 방법론 역시 정의내리기에 이른다. 그가 집필한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Les Règles de la Méthode Sociologique, Rules of Sociological Method)』 [1]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보면 대단히 소략한 통계이나마 뒤르켐이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혹은 새로운 '과학'을 구상하는데 있어 다소 애매할 수 있는 사회적인 것, 혹은 사회적 사실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게 할 수 있는 대상으로 통계수치를 접목한 것은 당시로선 대단한 혁신이었다. 비록 20세기 후반에 와서 통계 일변도의 특히 미국 사회학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며 통계적 방법의 원조로 여겨지는 뒤르켐에 대한 비판도 있는 것이 현실이나, 뒤르켐의 저작은 항상 풍부한 문헌연구를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학들의 잘못일 뿐 뒤르켐의 잘못으로 소급하는 것은 다소 억울한 측면도 있다. 실제로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는 통계 비슷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차라리 인류학 저서라고 할 정도로 당대의 연구 문헌(스스로는 직접 필드에 나가본 적이 없다)을 철저히 검토, 인용하며 자신만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3.3. 사회분업론

뒤르켐은 초기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근대 사회는 구성원들의 유기적인 유대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근대 사회가 과거 전통 사회보다 산업적인 면에서 전문적 분야에 특화된 인간들이 많아져, 상호 의존하는 케이스가 늘었기 때문이다.[2] 이것은 매우 개인주의적(진보적)이면서도 사회 질서적(보수적)이기 때문에 결국 사회분업론을 통해 이 양자가 양립할 수 있게 된다고 믿었다.

3.4. 아노미 현상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노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사회분업론에 의한 의존 관계는 바람직한 것이나, 그 와중에 전문성을 가진 개인의 욕구와 행위가 제한 없이 폭주한다거나, 사회 규범을 흔드는 사건이나 풍조가 만연해 발생하는 동요나 소요 상태를 말한다. 즉 통제와 규제가 먹히질 않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사실상 무정부상태에 가깝게 된다.

3.5. 자살론

뒤르케임은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현상이고 원인 또한 사회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정의한다. 통계 조사 결과 그는 자살의 원인이 신경쇠약이나 우울증 등의 정신병과는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유전이나 체질 등 개인 신상의 문제, 기후와 계절 등의 물질적 문제와도 관련이 없다고 한다. 그의 이론으로 자살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1. 이기적 자살 (Egoistic Suicide) - 정신병이나 왕따 등 각종 이유로 일상 현실과 사회에 적응을 못해 자살하는 경우이다[3] 즉 . 사회 통합이 너무 약해져 개인주의가 심화되었을 때 발생한다.
  2. 이타적 자살 (Altruistic Suicide) - 개인이 사회에 지나치게 밀착해 있어 사회를 위해 자살하는 상황을 말한다. 사회 통합이 너무 강해져 개인이 집단에 매몰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카미카제[4]
  3. 아노미적 자살 (Anomic Suicide) - 앞서 설명한 아노미 상태, 즉 사회 규범이 통째로 흔들리면서 그 여파로 개인의 가치관이나 기반이 무너질 때 자주 발생한다. 전쟁이나 비정상적 정권 교체 등으로 사회가 규율을 통제하지 못할 때, 예를 들어 대공황 등의 사건이 중심이 된다.
  4. 숙명적 자살 (Fatalistic Suicide) - 아노미적 자살과는 반대로 사회의 규율이 필요 이상으로 심할 때 발생할 수 있다. 군바리가 죽고싶다고 하는 입버릇도 이에 속한다. 자살론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는 것을 볼 경우 2X2도표를 채우기 위한 방책인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뒤르켐의 자살유형은 2X2도표로 그릴수가 없다!

3.6. 행동 중심 도덕 교육

뒤르켐은 교육학에서도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도덕을 사회 속에서 합의되어 원활한 생활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율로 보았으며 구성원들의 행위는 이에 따라 결정된다. 개인이 이러한 도덕을 내면화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입문하는것을 '도덕 사회화'라고 불렀다.
뒤르켐에 의하면 도덕교육의 목적은 이러한 도덕을 지키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성향(도덕성)을 심어주는 것이다. 단순히 규칙을 지키도록 세뇌하는 것이 아니다! 뒤르켐은 도덕성이 3단계에 거쳐 형성된다고 보았다.

3.7.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인류학자들은 뒤르켐을 볼때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에 주목한다. 원시종교인 호주 아룬타족의 토테미즘에 관한 민족지를 분석하여, 토테미즘에서 나타나는 집단표상이 사회의 반영물임을 증명하였다. 이는 후일 프랑스와 영국의 사회인류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4. 트리비아

학계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인명의 표기를 두고 온갖 표기가 난무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뒤르켕, 뒤르껭, 뒤르껨, 뒤르켐, 뒤르크헤임. 두루크하임, 뒤르케임, 뒬껭 등.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이다.

사실 이는 뒤르켐이 살아있을 때도 논란거리였다. 뒤르켐은 유태계 프랑스인이면서 독일어 억양이 남아있는 알자스-로렌 지방 태생으로 독일계 성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이걸 독일어로 읽어야 할지 프랑스어로 읽어야할지 혼란이 있었던 것이다. 헌데 어떤 사람이 직접 뒤르켐에게 편지를 보내 "도대체 당신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 거요?"라고 하자, 뒤르켐 본인은 친절하게도 "저는 프랑스인입니다. 뒤르켐이라고 발음해주세요"라고 답변했다고 한다.[5] 하지만 그 뒤르켐도 순수한 프랑스어식 독음이 아니고[6], 또 이름에서 정체성이 겹치면서 워낙 공적이 큰 위인이다 보니 자기 나라 사람으로 부르려는 목적으로도 두르크하임(두엌하임)/뒤르캥(뒤흐꺙)으로 부르는데 또 오펜바흐나 벵거의 경우와 같이 프랑스 국적자라도 독일계 성씨는 독일어로 읽는 경우가 많아서 더 혼란이 가중되었고 또 영미권에선 덝하임으로 불리는 등 중구난방이 되었다. 교수님들이 어디서 유학을 다녀오셨느냐에 따라 표기와 발음이 달라져서 한때 사회학과에서는 뒤르켐을 어떻게 부르는가를 두고 교수님이 유학다녀온 국가와 소속된 학파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Durkheim을 자신과 다른 독음으로 읽을 것을 고집하는 제자를 '파문'하는 교수도 있었다고 하니 흠좀무.

생전에 본인이 그렇게 뒤르켐으로 불러달라고 했건만 한국사회이론학회에서 채택한 절충안조차 이와 약간 다른 '뒤르케임'이다. 애초에 뒤르켐의 이름을 표기하는 방법에 대한 논쟁은 어문학적 정확성을 추구하는 목적은 없는, 각 학자들이 유학한 국가 및 소속된 학파 간의 자존심 대결에 가깝기 때문에 지금도 학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해서 통일은 요원한 상태이다. 여담이지만 뒤르케임이 생존할 당시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프로이센에게 패하면서 알자스는 신생 독일 제국의 땅으로 넘어가버렸고, 뒤르케임이 프랑스 국적을 선택함에 따라 졸지에 실향민이 되었다.
[1] 나중에 이 저서는 앤서니 기든스에 의해서 『사회학적 방법의 새 규칙들』(New Rules of Sociological Method)이라는 저서로 패러디 된다[2] 양복 입고 전화질 하는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그 변호사 화장실 뚫어주는 배관공도 있어야 사회가 유기적으로 잘 돈다는 얘기. 한국은 배관공 같은 직업을 똥으로 아는 풍조 때문에...[3] 그러나 정신병 등의 개인적인 병적현상, 왕따와 같이 현실과 사회에 적응을 못한다는 등의 이유라기 보다는(또 앞의 내용과도 충돌하는 지점이 존재한다) 개인이 사회와 따로 떨어져 사회로부터 개인이 너무 자유로운 경우에 발생하는 자살이 이기적 자살이다. 이기적 자살의 개인은 사회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으며 사회에 목매달지 않는다. 흔히 사회적으로 왕따가 자살하는 이유는 사회의 압력/시선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지 사회로부터 '자유'로워서 죽는게 아니다. 즉 오히려 왕따 가해자들과 세상을 왕따시킬 수 있는 왕따 대상자 개인은 역으로 자살 안 한다. 즉, '용자'는 그냥 죽고 싶어서라면 몰라도 사회의 압력때문이라는 이유로는 자살을 하지 않는다!!![4] 좋다고 돌격한 애들도 있고 강제적으로 당한 이들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집단사회(일본)가 개인(국민)보다 극도로 우선시돼 발생했다는 점은 동일하다.[5] 김종엽, 1998, 『연대와 열광』에 소개되어 있다.[6] 프랑스어에서 모음+m 음절은 뒤에 모음이 이어지지 않으면 비모음으로 읽는다.(ex: Reims -> 랭스) 그러나 외래어에 유래된 인명이나 지명은 /m/으로 읽을 수 있다. 릴리앙 튀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