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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22:42:17

경험


1. 개요2. 경험과 지식의 관계3. 관련 문서

1. 개요

경험(經驗) 「명사」
「1」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2」『철학』객관적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하여 깨닫게 되는 내용. -국립국어원
주로 1번의 의미로 많이 쓰이며, 쉽게 말하자면 개인이 기억할 수 있는 과거 전부를 뜻한다. 즉, 이런 '삶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갈 때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 개인별로 겪어온 과정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없는 경험도 존재하며, 그렇기에 남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이를 뜻하는 사자성어로 타산지석, 반면교사가 있다. 영어로 'undergo'는 어떤 것을 겪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본어로는 [ruby(経験, ruby=けいけん)]이라고 한다.

2. 경험과 지식의 관계

세상 사람들은 모두 뜻이 달라 한 사람이 한 가지 뜻을 가지고 있어, 열 사람이 있다면 열 가지 뜻, 백 명이 있다면 백 가지 뜻, 천 명이 있다면 천 가지 뜻이 있게 될 것이며, 사람의 수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되면 곧 그 이른바 뜻이라는 것도 역시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두 자기의 뜻은 옳다 하고 남의 뜻은 그르다고 하게 된다. 그러므로 심한 자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심하지 않은 자도 다투는 일이 흔하게 된다.
― 《묵자》 상동편
"A mule, though he should have made ten campaigns under prince Eugene, would not have improved in his tactics."
"어떤 노새가 오이겐 공 밑에서 전투를 열 번이나 참가했다 한들, 전술 능력을 함양하지는 못했을 걸세."
프리드리히 대왕의 어록으로 전해지는 경구[1]

보통 젊은 세대에게 경험이라는 명제가 괄시/모욕당하거나 철저히 외면받는 이유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뒤따르며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2] 반면 지식은 이미 타인이 고통을 겪고 판단을 마친 수많은 경험들을 앉아서 머리만 좀 쓰면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고통이 덜하여 무척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3] 그러나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대표되는 경험에 매몰된 태도가 비난을 받듯 간접 경험일 뿐인 지식을 절대선으로 성역화하는 경향도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이성에 의한 철학적 사유는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게 조화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며, 지식만 많은 사람은 현실과 동떨어진 말만 그럴싸한 공염불을 외고, 경험만 많은 사람은 분명 맞는 말인데 설득력이 부족해 곤욕을 치르거나 반대로 벽창호처럼 (직위나 경력 등을 같이 내세워서) 자기 말만 옳다고 우기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경험이 많을수록 다양한 상황을 겪어봤을 확률이 높고 경력이 길수록 그 긴 기간 동안 여러 변화를 접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 따라서 흔한 편견과는 달리 경력이 길고 경험이 많은 베테랑일수록 오히려 돌발 상황이나 시대적 변화에 능숙하게 대처할 뿐만 아니라 변화의 중요성을 잘 아는 경우도 많고, 주어진 환경과 자산 내에서 보다 나은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직감적으로 잡아내어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긴다.[4] 반면 경험이 적은 사람은 돌발상황이나 변화를 겪은 적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지식과 경험의 틀에 갇혀 오히려 더 경직된 태도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경험이 많은 사람보다 당황하거나 실수하는 일이 잦고 가진 지식과 자산을 어떻게 배치해서 운용해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느리다. 경험의 대소가 판단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반드시 아니지만 판단의 신속함을 가리는데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작용한다. 때문에 미군도 소부대 전술행동 지휘는 경험이 많아 신속한 판단력과 임기응변을 보일 수 있는 노련한 부사관들이 맡지만,[5] 대전략을 세우고 대부대를 지휘하는 전략 단위는 지식을 많이 쌓은 장교들이 맡는 것이다.[6] 이들도 누구가 우월하고 열등한지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임무에 따라 필요한 능력이 다른 것 뿐이고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존중한다. 물론 가장 완성된 군인이라 하면 지식까지 겸비한 부사관, 경험을 다망하게 쌓은 장교이며 따라서 이들도 자신이 가진 경험/지식 중 하나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두루 갖추려 노력한다. 역사적으로도 일류로 꼽히는 위인들은 지식과 경험을 모두 중시했으며 이를 무시한 자는 잘해야 2류 취급을 받거나 실패할 뿐이었다.

때문에 흔히 노땅들을 관광보내는 명민하고 젊은 카리스마를 망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건 최소한 40대는 되어야 가능한 소리고 일반적으로는 경력이 일천한 20~30대에 그런 포텐셜을 보여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조숙한 천채형 위인은 인류 지성의 최상위권만 모아놓은 역사적 위인 중에서도 상당히 적은 유형이다. 위인들 중에도 이순신 장군처럼 갖은 고초와 자기 연마를 거친 뒤에야 대기만성해 이름을 빛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반면에 경험의 양이 많아지면 그 경험에 집착하기도 쉬워지고, 그에 따라 지식을 철저히 배제한 채 해당 경험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수 있다. 단편적인 경험만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며 관점의 다양성을 배척하고 경험을 강요하는 태도로 이어지면, 그 경험이 충분히 다각도로 고려되지 않은 단편적 경험이거나 혹은 시대가 변하여 경험의 가치가 퇴색되었을 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7] 경험이 적은 사람은 도리어 고정관념이 적고 자유롭게 생각하다보니 이런 면에서는 의외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방안을 내놓기도 한다.

경험주의는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얻고 또 판단한다. 물론 현대 과학이나 인문학에도 실험이나 유물, 표본조사로 대표되는 경험적 자료를 가장 상등의 가치로 두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는 한다. 그러나 경험에 의한 방법은, 현상에는 언제나 예외가 존재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학습을 사전에 해둘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혹은 개인이 경험한 특수한 경험을 보편적인 경험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인간 개인의 경험은 시간과 감각 능력의 제한으로 인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잠도 안 자고 온갖 경험을 섭렵한다면 풍부한 예를 통해 개연성을 최대한 높일 수야 있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고, 인간의 기억력 문제와 더불어 수명이 불로장생도 아니기에 이 또한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또한 인간의 감각 능력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표면적인 현상 역시 잘못 관찰될 수 있다.

이렇듯 단순한 개인 경험의 농축만으로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그 보완책이 필요하며, 그것으로 지식과 학문에 의한 간접적이지만 더 넓은 경험의 보충이 있다.[8] 다만 간접 경험의 총망라인 지식은 개인이 보지 못했던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배우지만 그 본질을 다양한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올바른지에 대한 유연한 판단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경험의 한계는 지식으로 보완될 수 있으며 지식의 한계는 경험에서 나오는 유연성을 통해 보완될 수 있다. 지식과 경험이 조화를 이루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예는 역사 속에서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때문에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경험이 완전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지식과 대안적 경험이 존재할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경험보다 나을 수 있음을 항상 가슴에 담아두는 태도가 필요하다. 반대로 지식을 중시하는 사람일지라도 경험이 없는 지식은 마찬가지로 단편적이고 완고하며 경직된 불완전한 것임을 유념하고 다양한 경험을 두려워하지말고 섭렵해 지식을 완성시켜나가려는 태도를 가져야한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지식은 분명 중요하지만 거기에 지식을 습득하는 각 개인의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체험이 더해져야만 진정한 완성이 이루어진다.

결론적으로 경험과 지식은 누가 더 우월하고 열등한지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둘 다 추구하여 서로 보완시켜나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3. 관련 문서


[1] 1789년에 등장한 최초의 판본에 따르자면 대왕이 프랑스군의 샤를 루이 오귀스트 푸케 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다른 판본들에서는 모리스 드 삭스 원수의 어록이라고도 한다. 어느 판본이든지 간에 이론에 대한 학습과 논리적 사유 없이 경험만 아무리 쌓은들 발전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2] 즉 경험을 긍정하면 그에 따르는 고통과 인내도 마땅히 감내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너무나 두렵고 귀찮기 때문에 반동으로 경험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함으로써 고통과 인내를 회피하고, 덩달아 깨달은 나, 이성적인 나, 합리적인 나라는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문제도 원인을 파고 들면 역으로 경험 많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경험이 적을 젊은 세대를 상대로 경험을 내세워서 공격하는 태도가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이를 잘 반영하는 레파토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이다.[3] 사실 이것도 교양 수준의 지식이나 가능하지, 전공심화 수준 이상의 지식은 고통이 덜하다고 설명할 수 없다.[4] 경험이 많은 사람의 행동이 신속한 이유는 분석-판단-검토-실행 중 판단, 검토 단계가 매우 짧기 때문이다. 인간의 수많은 경험은 휘발되어 날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강한 인상을 남겼거나 가까운 경험은 의식에, 약한 인상을 남겼거나 오래된 경험은 무의식에 저장된다. 때문에 다양한 경험이 많으면 판단과 검토에 지식 서적을 뒤적이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이 의식/무의식 속의 정보 검색을 통해 보다 적합한 결론을 쉽게 도출해낼 수 있게 된다. 이 기반 정보가 의식에서 나오는 경우에는 임기응변과 재치로 불리고, 무의식에서 나오는 경우에는 육감 혹은 직감이라고 불리는 것이다.[5]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최전선에서는 최선의 결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속하고 명료한 결론이고, 이로 인해 최선의 결과가 도출되지 않더라도 70% 정도만 달성하면 만족하고 성과로 쳐준다.[6] 당연하지만 작전술/전략 단위에서는 시간을 들이더라도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기를 요구한다.[7] 개인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다.[8] 흔히 경험과 지식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고 적대하는 개념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결국 지식과 학문이라는 것도 수많은 개인의 경험이 모이고 뭉친 총망라이자 집대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부정확한 경험이 상당수 걸러지고 합리적이고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경험들이 남아 뭉친 것이지만, 이 또한 일반론적인 경험의 집산이기 때문에 각 개인의 특수한 상황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변용과 절충이 필요해진다. 이 변용과 절충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을 활용하는 각 개인의 또다른 지식, 즉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