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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18:37:46

징비록(드라마)/등장인물/조선 지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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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왕실3. 조정4. 무장

1. 개요

징비록(드라마)에 등장하는 조선의 인물들 중 왕실 인물과 관직을 역임한 지배층들을 다루었다.

2. 왕실

3. 조정

3.1. 서인

징비록 시작 시점에 다수의 인원을 차지해 주도권을 잡던 붕당으로 정여립의 대동계를 이용한 음모로 동인들의 세력을 약화시켰지만 건저 문제로 선조의 노여움을 사면서 몰락하게 된다. 허나 이로 인해 조정에서 그나마 전쟁을 대비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던 세력이 사라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후 전란이 발생하면서 다시 조정에서 힘을 받게 된다.
이순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인물이다. 하지만 류성룡한테는 은근히 힘이 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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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 - 선동혁[15]
임진왜란 전, 서인의 영수. 정여립의 난(기축옥사)를 통해 유성룡과 이산해도 실각시키려 하였으나 선조의 변심으로 실패하고 만다. 실제 역사에선 류성룡과 친분이 있는 관계였지만 극중에선 정적으로만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기축옥사 이전에는 류성룡과 정철의 관계가 별로 묘사된 적이 없고, 기축옥사의 책임문제로 류성룡이 정철에게 화를 내자, 정철이 기축옥사의 피해자들도 자신과 한 때 같이 일했던 조정의 동료들이었다고 자기라고 좋아서 한 것 아니다라는 감정호소 식 변명을 한 것이 류성룡에게 먹힌걸 보면, 기축옥사 전까지는 잘 지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동인이 기축옥사와 건저문제를 계기로 류성룡의 남인과 이산해의 북인으로 갈린 이유도, 정철에 대한 입장 차 때문이었다. 또 다시 송익필이 광해군의 국본으로 삼자고 부추기자 처음에는 이미 건저를 청했다가 선조의 역린을 건드린것 때문에 망설이나 언제부터 나라의 안위보다 자신의 지위가 더 소중했냐며 분노하는 송익필의 말에 마음을 돌리고 서인들과 뜻을 모아 세자 책봉을 건의하지만 역풍을 맞고 사헌부의 감찰을 받게 된다. 결국 9화에서는 다른 서인들과 마찬가지로 실각되었다. 귀양가기 직전 자신을 찾아온 선조에게 자신이 당파를 세운것도 사실이고 광해를 세자로 마음에 두고 주청한것과 선조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진것도 사실이지만 그 서운한 마음은 선조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방계혈통으로 16살 나이에 준비없이 왕이 되어 얼마나 고생하셨고 우리가 얼마나 전하를 못살게 굴었는가 전하도 한사람의 인간이고 홀로 고통스러우며 힘들었으리라는 것을 배려하지 못해 지금에 와서는 마음이 아플만큼 후회되며 전하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위해 서둘러 국본을 정하고 사람다운 왕을 신하들이 만든 왕이 아닌 신하들과 아끼고 교감하는 내일의 왕을 만들고 싶었다며 회한을 보여주었다. 이항복과 윤두수와 달리 늦게 복직하여 몽진의 수모를 당하는 선조를 걱정하지만 이후 보이는 선조의 행보에 질리고 분조까지 결정되자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광해군을 모시며 서인들의 뜻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36화, 명나라와의 회담에 실패하고 탄핵을 받아 실각한다. 실제인물이 1593년 사망하기 때문에 심한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각 후, 윤두수를 만나 훈민가 16수[16]를 읊은 후, 쓸쓸히 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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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항복 - 최철호[17]
류성룡에게 이덕형과 죽마고우로 지냈다고 말하고 당파를 따지며 인사에 임했다고 이덕형이 류성룡의 지적을 받자 이를 거들기도 했다. 한편으로 풍신수길의 무례한 국서를 왕과 조정대신들앞에서 읽어야 하는 수난을 당했다. 도승지로서 선조의 명을 받들어 알리는 역할만 하고 있다가 8화에서는 전란 대비를 명분으로 정철과 서인들이 세자를 세우자고 주청을 하려 하자 선조의 심리상태를 정확히 읽어 내면서 이를 무리수라고 보는 선견지명을 보여주지만 결국 당론에 이기지 못하고 당과 행보를 같이 하게 된다. 더불어 괜히 이덕형에게 "이산해에게 반대만 말아달라고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바람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말았다. 이 당시 이항복의 나이가 36세. 이산해 못지 않게 선조의 의중을 잘 간파하는 편이지만 아직 젊다보니 미숙한 면이 많이 보인다.

당론은 다르지만 류성룡을 높이 평가하며 큰 뜻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인물로 10화에서는 사직하려는 류성룡을 만류하며 이덕형을 찾아가 류성룡을 도와줄 것을 설득한다. 윤두수와 함께 복귀하여 도승지로 임명된다. 그러다 류성룡을 만나던 윤두수의 말, 선조가 류성룡을 도성의 유도대장으로 임명하여 몽진 시간을 버는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을 듣고 선조에게 앞으로 명나라와의 교섭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류성룡을 어가에 합류시키도록 설득하고 이천리와 신명철과 함께 도성에 남아 싸우려는 류성룡에게 권토중래하라며 설득시킨다. 이후 윤두수와 마찬가지로 이산해의 파직을 주청하고 양위를 할 것이라는 선조의 말에 당황하며 이를 만류한다. 그리고 평양으로의 파천이 결론나면서 먼저 간 신성군등의 왕자들과 동행한다. 이후 평양에서 나름대로 임진강과 평양 방어를 준비한다. 김명원의 장계를 받은 선조가 신각을 처형하려 하자 나름 신각을 변호하나 결국 선전관이 파견되자 이를 류성룡에게 알리고 곧 이덕형이 신각의 승전을 알리자 류성룡과 함께 넋이 빠진다. 이후 명나라에 구원요청을 하자고 아뢰는 등 나름대로 전란수습에 최선을 다한다. 이후 선조의 요동행 주청에 훗날을 도모하고자 찬동하였지만 류성룡의 지적과 그동안 보인 선조의 행보에 질렸는지 이후 선조의 행보에 반대한다.

무군사로 왜적을 당장 칠지 문제로 윤두수와 류성룡이 대립하자 당장 치자는 윤두수를 지지하다가 그와 함께 무군사로 가게 되면서 류성룡에게 반감을 가지고, 이덕형과도 대립한다. 그러나 이덕형이 죽은 아내가 남긴 향낭을 건네자 우정을 확인한다. 무군사에서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무과를 실사하고 전주에도 오지 못한다고 하자 비판하는 윤두수와 달리, 정탁과 함께 이순신을 변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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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익필 - 박지일[18]
기축옥사를 배후에서 조종한 장본인. 노비로 떨어져[19] 추쇄꾼에게 쫒기는 신세로 직접 조정에 나설 수 없는 터라, 정철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서 모든 일을 꾸몄다. 결국 군사들에게 잡혀 끌려가는데, 류성룡을 만나 '난 그저 전하의 욕망에 불쏘시개를 던져줬을 뿐'이라는 드립을 쳐 어그로를 끌고 크게 웃는다. 선조가 자신들과 뜻과는 다르기 때문에, 정철한테 다음 후대를 준비할 것을 조언한다. 이산해에게 낚여서 자신의 계획을 술술 불어버렸다.[20] 참고로 이산해는 박지일이 전작품에서 연기한 이색의 7대손이다. 다시 정철에게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오히려 역폭풍으로 서인이 몰락하였고 끌려나갈 때 한양을 떠나는 정철을 쓸쓸하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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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혼 - 김효원[21]
정철과 함께 서인 강경파로 나올 때마다 정철과 함께 동인 타도의 음모를 꾸미는 역으로 나온다. 여담으로 극중의 모습과 달리 이래 봬도 사후 문묘에 배향될 정도로 거유(巨儒)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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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윤길 - 김종수[22]
조선 통신사의 정사.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의 5대손이다. 김성일과 다르게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보인다. 도요토미가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눈빛이 매서운게 위험한 인물이라 판단한다. 조선에 돌아온 뒤에는 들르는 곳마다 왜군이 쳐들어올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백성들 사이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바람에, 수많은 백성들이 피난길에 오르는 해프닝이 일어난다.[23]

3.2. 동인

징비록 시작 시점에서는 서인에게 밀려 열세인 붕당으로 서인이 조작한 정여립 모반 사건에 엮여 동인의 많은 인물들이 사망해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서인이 건저 문제로 몰락하면서 주도권을 잡게 되지만 서인에 대한 처우 문제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게 된다.

3.2.1. 북인

징비록속 북인을 설명하자면 한 마디로 가짜 북인 투성이. 1595년에 복직하는 이산해를 임진왜란 개전 시점에서 완전히 퇴장시켜 놓고는 북인 네임드가 없다는 이유로 별볼일 없는 무당파, 무존재감 류조인을 북인으로 만들었다 재야에 있는 정인홍같은 인사는 어쩔수 없다쳐도 이이첨, 남이공, 유몽인, 김신국같이 광해군대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북인인사들이 이때 신진관료층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냥 제작진의 역량 부족. 다만 남인인 김응남도 북인의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서술되어있었는데 연려실기술과 갑진만록에 나온 기록들을 보면 김응남은 북인이 맞다.
파일:external/img.kbs.co.kr/cast4_06_1.jpg* 김응남 - 홍일권[29]류성룡의 천거로 새로운 병조판서로 임명되었다. 이후 류성룡과 함께 한양 방어를 논의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선조의 질문에 파천을 수긍하는 입장을 보이며 류성룡을 설득한다. 여담으로 이 김응남이라는 인물이 보여준 행적 등에 비해 인물을 표현해낼 배우가 아깝다라는 평이 있다. 팬들 사이에선 이 배우가 이순신을 맡아도 괜찮겠다는 이야기도 슬쩍슬쩍 흘러나오던 차라...[30] 대체로 류성룡 및 기타 남인 인사들과 같이 움직이는 편이었지만, 41화에서 작미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면서 이후 류성룡과 거리를 두게 된다.[31] 실존인물은 당색이 옅은 남인인데 드라마에선 어처구니없게도 정유재란을 기점으로 북인으로 만들어 놓았다라고 서술되었있었는데 김응남은 북인이 맞다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김응남은 이산해의 매부로서 이덕형과 함께 두 사람이 북(北)을 주동하였다고 나오고 갑진만록의 기록에서 윤국형과의 대화할 때 김응남은 스스로를 북인이라고 칭하였다.[32] 이순신이 한양으로 압송되었을 때 국문을 지휘하며 이순신에게 무군지죄(無君之罪)를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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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조인 - 고인범
역사상으로 유조인은 당파와는 관계없는 인물이였고 그의 제자인 박동망, 박응복 등은 모두 서인에 해당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선 어째 북인들의 수장으로 나온다. 게다가 실제 나이는 1522년 생으로 류성룡보다 20살이나 많지만 극중에는 동년배 혹은 후배 쯤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발발 당시 이미 70세 호호노인이었다. 자기 연배대로 노인으로 등장하는 정탁보다 4살 위였고, 극중 최고참 배역인 윤두수가 실제론 1533년 생, 이산해가 1539년 생이니 유조인의 극 중 배역이 너무 젊다. 대표적 고증 오류.

역사속 유조인은 음서로 천거돼 외직을 전전하다 임진왜란 발생 후 세자를 영변까지 호종하면서 정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재감정(정3품), 형조참의를 거쳐 호판까지 오른다. 아무래도 대과 급제가 아니라 한계를 느꼈는지 나이 70줄에 당상관 신분에 과거보게 해달라고 청했다가 대간의 반대로 무산됐다. 류성룡의 정책에 반대한적이 있지만 그 논거란게 중국의 장기인 총, 포를 중시하여 조선의 전통인 궁시를 멀리해선 안된다. 마인드라서 정국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실무를 모른다는 지적만 들었다. 한 마디로 그냥 류성룡같은 거물과 마주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인물을 본작은 대간을 좌지우지하는 북인의 수장격 인사로 왜곡했다. 극 중에는 사재감정으로서 대간에 영향력이 있는 원칙주의자로 면역충군을 위해 면천법을 주장하는 류성룡에게 반상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류성룡이 도제조에 임명되어 외부의 장수들도 비변사로 불러 면천법에게 찬성하는 여론을 조성하면서 면천법이 시행된다. 정철이 명나라에서 사신으로 파견되었지만 제대로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 강화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만력제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돌아오자 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이유로 수많은 대간의 상소를 들고 와서 정철을 탄핵해 관직에서 물러나게 한다. 명나라에서 조정을 둘로 나누어 분조를 둬서 광해군을 하삼도로 보내 통치하도록 하는 하삼도 격리안을 내놓자 광해군에게 송응창의 뜻에 따를 것을 부추기고 있다.

광해군이 무군사로 하삼도로 파견되었지만 윤두수가 광해군의 허락을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일본군을 공격했는데, 이 일로 선조가 광해군에게 책임을 물어 무군사를 폐지하면서 세자에서 폐하려고 했다. 광해군이 선조의 뜻에 따르려는 척 하자 보위에 오르면 남인, 서인들에게 당한 자신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대간을 동원해서 광해군을 폐세자하면 물러나겠다고 시위한다. 44회에서는 속오군을 일을 광해군이 류성룡을 돕자 광해군에게 그가 밉지도 않느냐며 항의하지만 좋을 때도 미울 때도 있습니다 정적이라고 항상 멀리두고볼 필요는 없지요 때로는 돕기도 해야합니다 그래야 가까이에서 틈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형조참의도 좀 유연해 질 필요가 있을꺼같소라고 말하는 광해군의 말에 처음에는 당황하나 곧 광해군을 따뜻한 눈길로 쳐다본다. 극중 류성룡의 정적 중에 이산해는 하차, 홍여순은 유배, 정인홍은 재야에 있던터라 친명사대기득권층이라는 이 드라마 상 양반의 부정적인 면모를 모은 캐릭터가 필요해 그 역할을 맡은걸로 보인다.

3.2.2. 남인

4. 무장



[1] 일반적으로 '인빈 김씨'로 알려져 있는데, 인빈에 봉해진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이다. 그래서 작중에서도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귀인 김씨'로 등장한다.[2] 정원군인빈 김씨의 생존 시기까진 왕실 어른 대우받으며 잘 살았으나 인빈 사후 광해군의 의심병을 피해가지 못해 아들을 잃고 화병으로 사망하고 그 아들 능양군은 반정의 선봉에 선다.[3] 대왕의 꿈에서 관창으로 나왔다.[4] 불의 여신 정이에서는 광해군 아역을 맡았다가 이번엔 성인 광해군을 맡았다. 대왕의 꿈에서 아역 김유신으로도 열연했다.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당시 "고조선 빼고 다 살아봤다"고 너스레를 떨었을 정도로 나름 사극 출연 경력이 풍부한 배우이다.[5] 임해군이 포로로 잡히자 선조는 명나라에게서 받은 은자 5,000냥을 이용해 협상하자고 하지만, 신료들은 "그 돈으로 군사들이 겨울을 날 수 있는데, 왜 낭비하냐"며 반대한다. 거기다 이항복은 "분조를 이끄는 세자가 포로로 잡혀있으면 모를까 어째서 협상을 하려 하냐"고 결정타를 날렸다. 그말을 들은 선조광해군에게 "신료들이 다 너의 편이라 좋겠다?"며 비아냥 거린다. 거기다 뭔 사단이 나면 이게 다 세자 때문이다며 징징거리기 일쑤. 참고로 이 장면에서 광해군과 선조가 묘한 심리 싸움을 보여준다. "전하께서 장자를 잃으시는 아픔을 어찌 보겠습니까. 제가 임해군 형님 대신 볼모가 되겠습니다. 형님을 세자로 앉히십시오"하고 입가에 걸려있던 자신감 있는 미소"를 보여준다. 작중묘사를 보면 어차피 대신들이 모두 반대할 것 아니까 그리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6] 그런데 오늘날 기준으로는 아버지 선조의 명을 따르지 않고 단독행동을 하는 것을 가리켜 비뚤어졌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만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성격 파탄 정도의 평가를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세자고 뭐고 진작에 목이 떨어졌을 일이다. 일단 조선 사회는 철저히 禮에 기반을 둔 사회로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고 신하는 임금의 명에 복종하는 것이 의무도 아니고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졌는데, 아무리 세자라 해도 임금의 신하임을 생각하면 광해군이 왕명을 어기는 것은 아들로서도 신하로서도 실격이었기 때문. 더군다나 조선과 같은 전군대 군주국가에서 왕명은 곧 법이었는데, '나는 이 왕명 못 따르겠다!' 라는 것은 '나는 조선의 법 따위 무시하겠다!' 라는 소리였고 이 하나만으로 반역죄에 엮어넣을 수 있다.[7] 사실은 정말로 선위를 하려는 게 아니라 세자의 석고대죄를 유도해 시간을 벌려는 계책이었다. 류성룡도 좋은 계책이라고 말했다.[8] 하지만 이건 류성룡의 계획이었다. 극에 나온 표현대로는 명나라엔 선위를 반을 마음이 없음을 보임으로서 조정이 나뉘는걸 막고 선조도 스스로 자리를 버릴까 두려워 가볍게 여기지 않을거라고 하며 폐세자를 청하라고 오기전에 미리 서찰을 보낸것이었다.하지만 이후엔 전하에 대한 충심같은건 없다며 아비의 괴롭힘에 지쳤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였다.[9] 참고로 이 장면 직전에 류성룡인빈 김씨와 독대한 자리에서 "뒤에서 선위 상소 여론을 부추겼냐"며 추궁하다가 인빈이 발뺌하자 열받은 나머지 "자꾸 거짓말하면 천벌이 내릴 것"이라 경고했다. 바로 다음에 신성군의 낙마사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시청자들이 우스갯소리로 "드디어 류성룡이 저주까지 마스터했다"고 하기도 했다.[10] 순화군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인간이 온갖 깽판을 치고도 버틸 수 있던 이유가 아버지빽이었다.[11] 임해군과 순화군의 악행이 드라마에서 제대로 나오는 장면이 없는데, 이 둘의 악행을 그대로 묘사했으면 아마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12] <태조왕건>에서 왕건의 사촌동생 왕신 역, <명성황후>에서 민영익 역으로 나왔다.[13] 정도전에서 득보 아범 역으로 나왔다. 무엇보다 유명한 배역은 지금 평양에선에서 오백룡 대장 역.[14] kbs 공채 20기 출신으로 젊은 배우 중에서 대하드라마 출연이 잦은 편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가공인물 돌쇠를 맡았으며, 그 외에도 무인시대, 서울 1945, 천추태후 등에 출연했다. 더불어 징비록과 동시기에 상영한 영화 베테랑의 순경 역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15] 정도전에서 이지란으로 나왔고,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여진족 족장 맛니응개를, 대조영에서는 당나라의 이적, 천둥소리에서는 이이첨을 연기했다. 가장 유명한 배역은 용의 눈물에서의 이숙번. 배우 본인이 말했다시피 무관만 맡다가 정통 문관 역을 처음으로 맡게되었다. 이숙번도 역사에서는 문신이지만 사극에서는 무인에 가깝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16]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로 더 잘 알려진 시조.[17] 불멸의 이순신에서 선조 역으로 나왔으며, 왕의 얼굴에서는 정여립을 맡았다.천추태후에선 경종을 맡았다. 류성룡 역인 김상중은 제국의 아침에서 광종을 맡았다.[18] 대조영에서 부지광 역을, 정도전에서 이색을 맡았다. 참고로 2화에서 최영경이 언급되었는데, 송익필이 삼봉 정도전에 비견된 인물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도전을 봤던 시청자에게는 웃음이 나오는 부분이다.그리고 5회에서는 이색의 후손인 이산해에게 관광당했다.[19] 노비로 떨어진 이유는 복잡한 가정사(...) 때문. 송익필의 조모는 안돈후와 그의 노비에게서 태어난 얼녀였는데, 그 아들이자 송익필의 부친인 송사련은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안돈후의 손자들을 조광조의 일파로 발고해 죽게 만들었다. 이 일로 송사련은 관직을 제수받는 한편 안씨 가문의 재산도 넘겨받게 되었다. 그러나 선조가 왕위에 등극하며 조광조가 신원되자 안돈후 일가에서 신원과 재산 반환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며 안돈후의 손자들을 고발한 송사련이 탄핵을 당했다. 송씨 가문과 안씨 가문은 서로 싸움을 벌였지만 송씨 가문에서 패하고 만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송익필의 조모가 면천되었는지의 여부도 파악이 불가능해지며[이에] 그 후손들인 송익필과 그 형제들은 안씨 집안의 노비로 환속되어 버렸다. 정작 송사련은 이미 당상관을 지내다가 죽은 다음이었기 때문에 평생 고생한 것은 그 아들들 뿐 이를 문서들을 보고 다시 보면 헛웃음이 날 것이다.[20] 이 부분 연출이 탁월하다. 국본을 새로 세우는 것이 새로운 왕을 세운 후견이로서 자신의 당파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이유도 있지만, 그런 이유 뿐 아니라 정말 세자를 세워 후대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중적인 심리를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작품 내에서 송익필은 비열한 책략가이기도 하지만 책략의 바탕에 대의를 까는 선비다.[21] 명성황후에서 민승호, 근초고왕에서 진정, 천추태후에서는 채충순 역으로, 서울 1945에서는 박헌영 역으로 출연.[22] 최근 tvN 드라마 미생에서 원인터 영업본부 부장 김부련 역으로 출연.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이산해의 조상인 목은 이색을 연기했다.[23] 참고로 황윤길과 김성일이 귀국해 보고를 올린게 음력 2월인데 이때면 본격적으로 한해 농사를 시작할 시점이다. 이런식으로 백성들이 무작정 다 피난가 버리면 뒤따라오는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24] 태조 왕건에서 용검을, 정도전에서 이방우를 맡았다. 명성황후에서는 이놈을 맡았다.[25] 정도전에서 최만생 역을 맡았다 그 밖에 사극에서는 주로 중국 사신 역으로 자주 나온다.막장 드라마에 이사로 많이 나온다.[26] 무인시대 이후 오랜만에 KBS 대하드라마에 출연한다. 배우 허장강의 아들이자 허준호의 형으로 배우 본인 페이스북에서 촬영현장과 함께 배역을 밝혔다.[27]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원익을 연기했다.[28] 전작인 정도전에서 권문세족으로 끝판왕 이인임의 당여이자, 임견미와 사돈을 맺고 단짝으로 온갖 수탈로 치부를 하여 고려의 멸망을 앞당기고 자신도 비참하게 몰락하는 염흥방 역으로 출연.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나온다.[29] 무인시대에서 최충헌의 심복 김약진, 명성황후에서 홍계훈 역, 천추태후에서는 양규 역, 공주의 남자에서는 금성대군역으로 호연을 펼쳤다. 그리고 대왕의 꿈에서는 국반 갈문왕 역을 맡았다.[30] 배우의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뜨는 게 이순신이다![31] 뜬금없이 돌아선 건 아니고, 바로 앞의 40화에서 윤두수와 이항복을 무군사로 보내려는 류성룡에게 너무 독선적이라며 이의를 제기하는 부분이 있다.[32] 이른바 남북이란 말도 유래가 있다. 무자년(1588, 선조 21) 가을에 문소(聞韶)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 돌아오니, 중숙(重叔김응남의 자)이 나에게 말하기를, “근래 남북이란 말이 있는데, 그대는 들은 일이 있소?” 하므로, 내가 놀라 묻기를,“그것이 무슨 소리오?”하니, 대답하기를,“남은 이현을 우두머리로, 그 다음이 경선ㆍ자앙, 그리고 그대 등 몇 사람이며, 북은 여수(汝受 이산해(李山海))를 우두머리로, 중겸(仲謙 백유양(白惟讓))ㆍ경함(景涵 이발(李潑)) 형제 및 나까지 몇 사람이오.””[33] 명성황후에서 안동 김씨의 중진격 인물인 김병국, 근초고왕에서 고구려 대장군 고치수,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 역을 맡았다. 천추태후에서 김훈 역으로, 서울 1945에서 김일성역으로 출연. 대왕의 꿈에서는 무왕 역을 맡았다. 드라마 전우(2010년판)에서는 수용소 경비장 역을 맡았다. 디즈니 공주와 개구리의 파실리에 역을 맡기도 했다.[34]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 사신들에게 자기네 나라의 검무를 보여주다 위협을 가해 기겁하자 보다못해 "대체 이 무슨 짓이오! 지금 조선의 사신을 조롱하는 것이오!" 라며 분노했다.[35] 김수와 곽재우의 갈등을 해결한 건 김성일의 공이 크지만, 극중에선 류성룡의 활약으로 다 처리되었다.[36] 정도전에서 공양왕, 대조영의 이문, 야인시대곽영주 역을 맡았다. 재밌는건 김명민이 주연한 영화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는 정조로 나오는데, 징비록에서 장인 이산해로 나오는 이재용이 영화에서는 정조를 몰아내고 죽이려는 악역 좌의정으로 나온다. 또한 주인공 김상중의 전작인 나쁜 녀석들에서는 김동호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37] 사실 이덕형이 생각이 짧은 게 아니라 류성룡이 원리원칙 절대선역 캐릭터로 그려져서 타박받는 것이다. 인사 정책 논하면서 서인측과 입장을 조율하는건 당연한 일이고 이순신의 승진이 뒤의 결과야 어찌됐건 그 당시로선 파격적인 것이라 반대의견을 낸것이 이상할 것도 없는데 류성룡은 그저 정론만 얘기하며 타박준다. 그러나 후일 이덕형이 초당파적인 사고을 지닌 류성룡 못지않는 거물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타박들은 이덕형을 류성룡의 제자 포지션으로 잡기 위해 넣은 연출인 것으로 보인다. 또 이상할 것이 없는 게 이당시 이덕형의 나이가 30~31세다. 미숙한 면을 보여도 이상할게 없는 나이다. 문제는 이렇다고 해도 죽마고우이자 또래인 이항복에 비해서도 너무 미숙하다는 점을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덕형은 류성룡에게는 물론, 벗인 이항복에게서도 서인의 건저 동참 통문 서명을 그의 당색 때문이라고 오해했다가 핀잔만 받았지만, 이항복은 고분고분하며 서인들이 모인 정철의 집에서 통문 서명 동참에 앞서 역린을 건드리는 것에 대한 것도 우려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더 두고봐야 알겠지만 초반부터 이덕형을 너무 바보로 만들어놓은 느낌이 없지 않다.[38] 나쁜 녀석들에서 김상중이 맡은 오구탁의 후배 형사 박창준 역할을 한 적이 있다.[39] 불멸의 이순신에서 조산보 감관 임경번을 연기했다.[40] 전작 정도전에서 보수주인 황연 역을 맡았던 배우다. 태조 왕건에서 도선대사, 야인시대에서 염동진 역으로도 나왔다. 그리고 제국의 아침에선 서필 역을 맡았다. 정탁의 초상을 보면 알겠지만 외모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다.[41] 가토 기요마사 역의 이정용과 마찬가지로 불멸의 이순신과 동일 배역으로 나왔다. 여담으로 동시대를 다룬 사극이자 허균을 주역으로 한 사극 천둥소리에서 사명대사 역을 맡기도 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순신에게 존댓말을 했지만 징비록(드라마)에서는 이순신에게 반말을 한다.[42] 그러나 실제 역사를 대입하면 권율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김여물은 파직 사유가 확실히 기록되어 있는데 권율은 파직 사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김여물이 권율보다 선임자다(김여물은 1591년에 파직되었고, 권율은 1592년 봄에 의주목사로 잠시 재직했다가 얼마 안 가 파직되었다). 허나 드라마에 이를 그대로 적용시키기 어려운 이유는 김여물의 파직 이유 중 하나가 정철의 당파로 몰린 것인데 극중에서 의주목사가 파직될 때 정철은 엄연한 현역이었기 때문이다.[43] 태조 왕건에서 신숭겸 역으로 나왔다. 공교롭게도 신립은 신숭겸의 후손이며, 거기다 전장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 것까지 비슷하다. 또한 무인시대에서 최충수로 나오기도 한다.[44]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아시가루들이 열을 나누어 장전 딜레이를 줄이고 화망구성으로 명중률을 보완하는 장면이 나와 왜군이 조총운용에 관한 체계적인 전술을 확립하고 있음을 알려준다.[45] 무인으로서 행운을 받는 다는 뜻으로 사극에서 "무운을 빈다"는 말이 이 뜻이다.[46] 드라마의 각색이 아니라 징비록 원전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장면이다.[47] 그러나 이일이 왜군은 부족한 연사력을 전술로 극복했음을 알려주었음에도 그에 대한 대책은 말하지 못했다.[48] 뭔가 있어보이는 말이지만 되려 신립을 무식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이 데려온 병사들이 사실상 조선의 전부인 상황인데, 조선군의 사기가 떨어졌다고 정면승부를 걸다니 도박에서 국가의 운명을 가지고 올인하는 꼴이다. 게다가 자기가 죽음을 각오하고 아무리 적에게 피해를 입혀본들 공격을 하든 수비를 하든 후속 부대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또 드라마상에선 고니시군이 입은 피해를 과장해서 신립이 의미있는 죽음을 맞이한 양 묘사했지만, 실제 역사상에선 신립의 경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피해다운 피해는커녕 진군 속도조차 늦추지 못했다.[49] 다만 태조 왕건에서는 신검이 공산에 없었던 것으로 그려졌으므로, 신숭겸이 신검군에게 패하지는 않았다. 작중 묘사로는 견훤이 서라벌로 급히 가기 위해 대야성과 용주성을 미끼로 내주었는데, 신검은 견훤의 옷을 대신 입고 대야성을 지키고 있었다.[50] 실제로는 이일을 참수하려 했으며, 탄금대 주둔을 반대하는 인물들을 설득이 아니라 어거지로 밀어붙인거다.[51] 불멸의 이순신에서 신립역으로 나왔다. 정도전(드라마)에서는 조반 역으로도 출연했다.[52] 불멸의 이순신에서 조수창을 맡았다.[53] 대조영(드라마)에서 선겸으로 나왔다. 가장 잘 알려진 배역은 김형사(야인시대).[54] 근초고왕에서 사기 역, 대왕의 꿈에서는 김춘추의 둘째아들 김인문 역으로 출연했다.[55] 정도전(드라마)에서는 이숙번 역으로 출연했다.[56] 주몽(드라마)에서 부분노 역으로 나왔다.[57] 뮤지컬에서 유명한 배우.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 곽 장군을 맡았다.[58] 단 이 때 1594년에 권준이 거제도로 사냥을 갔다가 왜군의 습격을 받아 부하들을 잃은 죄로 일시 파직되었기때문에 고증에 맞다고 할 수 있다. 이 후 다시 복직되고 1596년에 경상우수사로 승진하지만 1년뒤 이순신이 파직되고 원균이 통제사가 되면서 사직했다가 칠천량해전 후 충청수사가 되지만 한강일대를 방어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이순신과의 인연이 멀어졌다.[59] 불멸의 이순신에서 가공인물 정일수를 맡았다.[60] 근초고왕에서 유리왕 역을 맡았고, 펀치에서 대통령 비서실장 김성찬 역을 맡았다.[61] 불멸의 이순신에서 가공인물 서한수를 맡았다.[62] 2010년판 전우에서 소대장인 김중산 소위로 출연했다.[63] 흥양은 오늘날의 전라남도 고흥군이다.[64]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일역을 맡았다. 불멸과 본작 모두에서 이순신을 괴롭히고 반목하는 역으로 출연. 참고로 이일재씨의 외모는 사료속 '원균'과는 백만광년 정도 차이가 나서 시청자들로부터 원균이 너무 잘생겼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나마도 불멸에서 원균을 맡은 최재성은 미남이긴 했지만 나잇살은 좀 붙은 상태였는데, 이일재는 너무 말라서 원균에 대한 기록과 더 심하게 차이난다. 하지만 원균 특유의 음흉함과 찌질함은 그나마 잘살렸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