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징비록(드라마)에 등장하는 조선의 인물들 중 왕실 인물과 관직을 역임한 지배층들을 다루었다.2. 왕실
- 선조(징비록)
- 의인왕후 박씨 - 황인영
3화에서 임해군, 광해군과 함께 선조의 병문안을 오는 것으로 첫 등장. 20년이 넘게 아이를 낳지 못한 비운의 왕비. 왕자 중 광해군과 가장 친밀하며, 직접 말은 안하지만 그를 세자감으로 여기는 듯. 광해가 선조의 의중에 신성군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자 책상을 치며 화를 냈다. 보통 드라마에서 단순히 선한 인물로 나오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에서는 광해군을 세자로 세우려는 인물로 나온다. 이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그녀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광해군을 세자로 세움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14회에서 임시세자책봉 움직임이 조정에서 보여지자 광해군을 위로하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말한다. 역시 15화에서 신립의 패전소식을 들은 후 광해군에게 더욱 마음을 다 잡으며 백성들을 지키라 충고를 한다. 22화에선 선조가 내린 은자를 분조를 이끄는 광해군에게 지원하였다고 말하며 요긴하게 쓰겠다던 인빈 김씨를 꾸짖는다.
선조의 정비인데도 선조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극중 12화에서야 처음 나왔다. 선조와 의인왕후의 관계를 반영한 듯하다. 오랫동안 별 비중이 없다가 28회에서 류성룡이 인빈 김씨와 설전을 벌이는 자리에 와서 "정사에 관여하는 일을 또 한다면 내명부의 법도로 용서치 않을 것"이라며 인빈 김씨에게 경고한다.
사족으로, 의인왕후 역을 맡았던 황인영은 선조 역의 김태우가 나온 KBS 2TV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이신우(이요원 분) 역에 한때 거론된 바 있었다. - 귀인 김씨[1] - 김혜은
사실상 이 드라마의 여성인물 중 가장 비중도 많고 주연에도 포함되듯 비중이나 분량으로는 징비록의 히로인이라봐도 무방하다. 극 초반에는 귀인으로 등장한다. 선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선조에게 조언한다. 한편으론 자신의 소생인 신성군을 세자로 세우기 위한 야심도 가지고 있다. 선조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라 그런지 의인왕후보다도 먼저 등장했다. 작중 등장 빈도도 의인왕후보다 높다. 그리고 기존의 악녀 이미지보다는 정치인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9화에서는 임해군과 광해군을 불러놓고 혹시 세자로 책봉되어 왕이 되더라도 신성군을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광해군의 속을 알 수 없다면서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13화에서 전쟁을 천재지변에 비유하며 선조의 입지를 강화하는 기회로 여기고 있으며 14화에서 악화되는 전황에 임시세자책봉 움직임이 보여지자 볼모의 위협 등 전쟁 중의 세자가 가지는 위험성을 생각해 광해군이 되길 바라고 있다. 15화에서 신립의 패전소식을 듣고 달려와 무서움을 토로하는 신성군을 위로하며 왕실과 대신들의 반대로 파천을 못하게 된 것에 망연자실해 하는 선조에게 도성사수를 결정하게 하면서 대신들이 현실을 파악하고 파천여론을 조성하게 하라 충고를 하여 더욱 선조의 총애를 받는다. 17화에서 류성룡을 제거해야 되다는 오라버니인 김공량의 말에 류성룡의 주장대로 대비를 했어야 한다고 하며 선조도 왕실의 권위를 위해 이산해를 희생시켰으나 류성룡의 말에 동의하고 있을거라 한다. 이후 선조의 요동행에 반대하며 류성룡이 필부라는 소리까지 하는 것에 놀라고 선조의 은자하사를 유일하게 감사히 받다 의인왕후의 지적으로 백성들의 위무로 내놓는다. 이후 사실상 요동행이 물건너가서 상심에 빠진 선조에게 왕권을 지키라는 하늘의 뜻이라며 위로하면서 분조를 합할 것을 넌지시 말한다. 그러나 아들인 신성군이 사망하면서 그후의 행보는 거의 없을 정도로 활동이 축약할 예정이다.
여담으로 이상할 정도로 선조의 정치적 브레인 역을 맡는 연출이 많이 나온다. 실제 인빈 김씨가 정치에 관여하긴 커녕 본인에 대한 기록조차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34화에서는 신성군의 죽음으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 자신의 상황을 타파하고자 선조와 광해군 양쪽에 정치적으로 양다리를 걸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45화에서는 광해군한테 자신과 정원군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광해군한테 완전히 줄을 갈아탔다. 훗날 이 사람의 손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본다면 재미있는 부분.[2] - 임해군 - 윤홍빈[3]
선조에 반대하는 신하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다. 6화에서 선조의 평은 "포악한 성품으로 마음에 안 든다" 하였다. 어머니 공빈 김씨가 인빈 김씨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 인빈을 미워한다. 14화에서 세자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고 "세자가 되면 인질이 될 수가 있다"고 말한다. 이복 남동생 신성군과 함께 간촐한 세자 책봉식에 참석하고 축하하지만,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된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대놓고 보여지며, 하례식에서도 비아냥거리며 선조가 전란 후 세자를 다시 정식으로 세울거라는 말에 기대하며 썩소를 짓는다. 근왕병을 모집하라는 선조의 명에 함경도로 떠난다. 24화에서 성난 순왜들에게 잡혀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진다. 가토 앞에서 괜한 고자세를 취하다 두들겨 맞고 나서야 결국 굴복, 항복권유문서를 작성한다. 50화에서 "어차피 광해군은 임시 세자였으니 전란도 끝난 이때 새로 세자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선조가 작미법으로 백성들이 내는 세금의 양을 묻자 1섬이라며 정몽준의 버스비 70원급 발언을 해 선조로부터 "그래서 네가 안 된다"는 소리만 들었다. - 광해군 - 노영학[4]
평안도 각지에 역병이 퍼졌을 당시에 임해군은 역병에 감염될까봐 서둘러 돌아간 반면, 광해군은 역병에 걸린 병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에 윤두수는 광해군이 왕재로 적합하다 판단하게 되었다. 정작 광해군 본인은 적모(嫡母)인 의인왕후가 서둘러 적장자를 낳길 바라며 왕이 되고 싶지 않아 하는데 이는 선조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왕의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6화에서 선조는 음흉하여 속내를 알 수 없다고 평하였다. 자신이 세자감으로 물망에 오르자 사저를 구해 궐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선조가 왕자를 궐내에 두는건 곁에서 감시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오히려 의심을 더 살 거라며 의인왕후가 만류하자 한발 물러났다. 선조가 광해군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는 자신과 가장 닮은 아들이라는 생각 때문 일종의 동족혐오와 비슷한 감정을 지닌것으로 묘사되었다. 이후 전란상황에서 선조가 자신을 임시세자로 세우려고 할거라며 반포기상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인왕후의 충고와 지지에 다시 힘을 내어 백성과 조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세자물망에 오른다. 간촐한 세자책봉식에서 국란극복을 다짐한다. 그러나 선조에게 하례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전쟁극복 의지를 결연하게 다짐하지만 그말을 듣던 선조가 광해군에게 전쟁통에 임시로 세운 세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비아냥거리며 경계를 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나타낸다. 하례 후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과 마음의 상처로 눈물을 흘리며 전란을 끝낸 후 세자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어하고 있다. 사야가의 투항에 대해 이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고 주장하고 분조를 이끌면서 왜군의 점령지인 강원도로 이동하여 의병들과 관군들을 격려하려 하는 등 전란 극복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며 류성룡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아버지인 선조의 견제에 마음고생이 심하다.[5]
임해군이 항복권유문서를 받아 임해군을 포로로 사로잡힌 사실을 알게되나 임해군 구출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임해군을 버린다. 자신을 찾아온 내관에게 "내가 동복형제도 구하지 않는 냉혈한으로 보이느냐? 만약 임해 형님이랑 순화군을 구할 마음이 있었다면 협상이라도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난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구나. 차라리 왕자가 적에게 죽어서 백성들이 분노하고 궐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구나. 되체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이냐? 날 이렇게 만든건 바로 주상전하다! 난 주상전하가 밉다! 참으로 원망스럽다!"며 선조에게 애증의 감정을 드러낸다. 작중 드라마의 묘사를 보면 드라마 초기에는 순한 성격이었으나 선조의 압박과 세자로서의 책임감에 성격이 점점 비뚤어져가고 있다[6].
심유경과 고니시 유키나가의 회담 이후 50일간의 휴전명령이 떨어지자, 왜적에게 반격을 가할 타이밍에 아무것도 못하게 되자 답답해 한다. 그러던차에 비격진천뢰를 투입해 기습공격에 나서자는 류성룡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이후 선조가 송응창의 압박에 따라 선위를 하기로 하자[7] 그 의도를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분고분 선조의 의중대로 따르던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옆에서 유조인이 계속 충동질 하는 것도 있지만 이제는 정말로 진절머리가 난 모양이다. 망설이고 있는데 류성룡이 와서 "나라를 명에 바칠 셈이냐"며 화를 내자 "그럼 나는 언제까지 전하의 정치에 이용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어차피 난이 끝나고나면 이용가치가 없어진 저를 폐세자 시키시겠죠. 그럴바에야 차라리 지금 폐세자 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예. 석고대죄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발 폐세자 시켜달라고 간청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여태까지의 울분을 쏟아낸다. 류성룡도 여태까지와는 다른 태도에 적잖이 놀란 모습을 보인다.[8]
결국 석고대죄하여 선조가 선위를 거두게 만든다. 이후 사헌의 의견대로 무군사가 되어 하삼도로 파견된다. 비록 분조 때와 달리 권한이 적기는 하지만, 가능한 민심을 수습하고 군사를 조련하며 하삼도 전반의 행정을 관리하고자 하고 있다. 군사를 징발하는 과정도 강제 징집 보다는 무군사 호위병력 선발 명목으로 무과를 통해 선발하려 한다. 이순신에게도 자신의 이런 의중을 알리고 무과를 치를 병사들을 전주감영으로 보내라고 한다. 하지만 이순신이 적과 대치중인 최일선의 병력을 다른 곳으로 뺄 수는 없으니 수군 자체 과거로 대체해 달라 장계를 보내자. 이를 윤두수, 정탁, 이항복과 의논한다. 이 과정에서 윤두수가 통제영에 다녀와서 "이순신이 월권(수군 자체 과거, 통행증 발급 등)을 저지르고 있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나오자, 자신은 오히려 그런 이순신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선조의 견제가 점점 심해져서 고립되던 와중에, 마침 북인도 조정 내에서 찬밥 신세에 불과한터라 광해군과 북인의 이해 관계가 맞아 연합하게 되며, 류성룡을 위시한 남인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광해군 본인은 딱히 류성룡을 견제하려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 데다가 심지어 류조인과 이이첨의 류성룡 견제 발언에도 다소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종화에선 왕이 되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선조가 죽는 것은 류성룡이 파직하고 한참 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 신성군 - 승용
6화에 최초 등장. 5화에서 선조가 하소연하러 온 인빈 김씨에게 "신성군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며 신성군이 의중에 있음을 표현하였다. 6화에서 신성군은 아직 어려 세자 감이 아니라고 평하였지만, 앞서 언급된 형들에 비하면 어린 나이는 세월이 가면 해결되기에 문제점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묘사되었다. 12화에서도 선조가 다른 왕자의 말은 무시하면서 신성군의 말에는 화색을 띄며 "네가 장성할 때까진 강건할 거니 걱정 말라"고 답하는 등 유독 편애를 받는 모습이 나왔다. 어린 나이에 신립 장군의 딸과 혼인하여 그의 사위가 되지만, 신성군과 신립 모두 임진왜란 때 사망 크리... 신립의 패전과 장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인빈 김씨에게 찾아와 무서움을 토로한다. 그래도 16화에서 광해군의 세자 책봉식에 참석하고, 선조와의 하례 자리에서는 광해군에게 진심어린 표정으로 축하인사를 한다. 임진왜란 발발 이후 결국 28화에서 사망한다.[9] - 순화군 - 김태용
16화에서 선조가 파천 이후의 계획을 말하면서 첫 언급. 사실 선조는 신성군만큼은 아니어도 순화군도 아꼈기에 적어도 어느 정도 언급정도는 되어야 했다.[10] 또한 광해군 세자 책봉식과 선조와의 하례식에서도 등장하지 않아 앞으로도 어쩌다가 언급되는 일은 있어도 배우가 캐스팅되어 극중에 모습을 비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였으나 24화에서 첫등장. 임해군과 함께 가토 앞으로 끌려간다.
여담으로 임진왜란 당시 순화군이 함경도에서 진짜 사이코패스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깽판을 쳤는데 이 당시 나이가 12세였다[11].
- 김공량 - 김광영[12]
인빈 김씨의 남동생. 이산해에게 "정철이 광해군을 세자로 세우려하고 그러면 귀인 김씨와 신성군이 무사치 못할 거"라는 말을 듣고 누나에게 달려가 이를 알린다. 이후 내수사의 별좌로 있으면서 홍여순과 병조의 군량을 빼돌려 지역특산물로 바꾸는 비리를 저지르며 류성룡을 탄핵을 은근히 바라는 모습을 나타내는 탐욕적인 모습을 비춘다. 그러나 이덕형에게 모든 사실이 발각되자 뇌물로 매수하려 하나 이덕형의 주먹에 코피만 터뜨렸고 어쩔 수 없이 쌀 2만석을 좌수영에게 보내게 된다. 이후 왜군의 부산진 상륙에 대해 누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를 왜구의 난으로 여긴다. 그리고 "신성군의 장인인 신립이 토벌을 해서 큰공을 세워야 신성군이 세자가 된다"며 정치적 계산을 하는 탐욕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14화에서 임시세자를 세우자는 논의가 조정에서 일자 대부분의 대신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광해군이 될 것을 노심초사한다. 15화에서 누이인 인빈 김씨의 명으로 한양의 상황을 선조에게 보고한다. 17화에서는 "사약이나 유배 등 류성룡을 제거해야 된다"고 인빈 김씨에게 말한다. 누이의 명으로 분조에 잠입, 광해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보고한다.
- 대전내관 - 이춘식(배우)[13]
선조를 모시는 내관. 3회에서 정철의 주변을 감시하다가 송익필이 집에 드나든 걸 선조에게 보고하여 선조가 서인과의 기싸움에서 누를 단초를 제공한다. 이후 실어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지는 선조의 모습에 의관을 찾거나 선조의 부름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워낙 왕의 비중이 높은 드라마이다보니 화면구성 자체부터 필수적인 역할이기도 하고, 또 늘상 왕과 가장 가까이에 있어 극중에선 선조의 이해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충분한 배역상의 가치가 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시도때도 없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고양된 "전하!!!" 만을 부르짖는다거나, 그나마 있는 몇몇 대사들도 과장된 데다 과도한 얼굴 떨림이나 시선 처리 등 연기과잉이 심해서 그런 필수적인 강점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때때로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다. 이 배우는 원래 연기력이 뛰어나지 못하고 과잉된데다가, 객관적으로 저 "즈어어어언하" 하는 대사가 많아도 너무 많다. 걍 드라마 장면 채울라고 나온다고 느껴질 정도라서 차라리 정말 등장 안하거나 평범한 내시1 정도의 배역으로 한두컷씩만 나오는 게 낫다.
- 인빈 김씨의 상궁 - 백현숙
- 어의 - 박규점
3. 조정
3.1. 서인
징비록 시작 시점에 다수의 인원을 차지해 주도권을 잡던 붕당으로 정여립의 대동계를 이용한 음모로 동인들의 세력을 약화시켰지만 건저 문제로 선조의 노여움을 사면서 몰락하게 된다. 허나 이로 인해 조정에서 그나마 전쟁을 대비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던 세력이 사라지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후 전란이 발생하면서 다시 조정에서 힘을 받게 된다.이순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인물이다. 하지만 류성룡한테는 은근히 힘이 되는 역할을 한다.
* 정철 - 선동혁[15]
임진왜란 전, 서인의 영수. 정여립의 난(기축옥사)를 통해 유성룡과 이산해도 실각시키려 하였으나 선조의 변심으로 실패하고 만다. 실제 역사에선 류성룡과 친분이 있는 관계였지만 극중에선 정적으로만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기축옥사 이전에는 류성룡과 정철의 관계가 별로 묘사된 적이 없고, 기축옥사의 책임문제로 류성룡이 정철에게 화를 내자, 정철이 기축옥사의 피해자들도 자신과 한 때 같이 일했던 조정의 동료들이었다고 자기라고 좋아서 한 것 아니다라는 감정호소 식 변명을 한 것이 류성룡에게 먹힌걸 보면, 기축옥사 전까지는 잘 지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동인이 기축옥사와 건저문제를 계기로 류성룡의 남인과 이산해의 북인으로 갈린 이유도, 정철에 대한 입장 차 때문이었다. 또 다시 송익필이 광해군의 국본으로 삼자고 부추기자 처음에는 이미 건저를 청했다가 선조의 역린을 건드린것 때문에 망설이나 언제부터 나라의 안위보다 자신의 지위가 더 소중했냐며 분노하는 송익필의 말에 마음을 돌리고 서인들과 뜻을 모아 세자 책봉을 건의하지만 역풍을 맞고 사헌부의 감찰을 받게 된다. 결국 9화에서는 다른 서인들과 마찬가지로 실각되었다. 귀양가기 직전 자신을 찾아온 선조에게 자신이 당파를 세운것도 사실이고 광해를 세자로 마음에 두고 주청한것과 선조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진것도 사실이지만 그 서운한 마음은 선조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방계혈통으로 16살 나이에 준비없이 왕이 되어 얼마나 고생하셨고 우리가 얼마나 전하를 못살게 굴었는가 전하도 한사람의 인간이고 홀로 고통스러우며 힘들었으리라는 것을 배려하지 못해 지금에 와서는 마음이 아플만큼 후회되며 전하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위해 서둘러 국본을 정하고 사람다운 왕을 신하들이 만든 왕이 아닌 신하들과 아끼고 교감하는 내일의 왕을 만들고 싶었다며 회한을 보여주었다. 이항복과 윤두수와 달리 늦게 복직하여 몽진의 수모를 당하는 선조를 걱정하지만 이후 보이는 선조의 행보에 질리고 분조까지 결정되자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광해군을 모시며 서인들의 뜻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36화, 명나라와의 회담에 실패하고 탄핵을 받아 실각한다. 실제인물이 1593년 사망하기 때문에 심한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각 후, 윤두수를 만나 훈민가 16수[16]를 읊은 후, 쓸쓸히 퇴장한다.
* 이항복 - 최철호[17]
류성룡에게 이덕형과 죽마고우로 지냈다고 말하고 당파를 따지며 인사에 임했다고 이덕형이 류성룡의 지적을 받자 이를 거들기도 했다. 한편으로 풍신수길의 무례한 국서를 왕과 조정대신들앞에서 읽어야 하는 수난을 당했다. 도승지로서 선조의 명을 받들어 알리는 역할만 하고 있다가 8화에서는 전란 대비를 명분으로 정철과 서인들이 세자를 세우자고 주청을 하려 하자 선조의 심리상태를 정확히 읽어 내면서 이를 무리수라고 보는 선견지명을 보여주지만 결국 당론에 이기지 못하고 당과 행보를 같이 하게 된다. 더불어 괜히 이덕형에게 "이산해에게 반대만 말아달라고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바람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말았다. 이 당시 이항복의 나이가 36세. 이산해 못지 않게 선조의 의중을 잘 간파하는 편이지만 아직 젊다보니 미숙한 면이 많이 보인다.
당론은 다르지만 류성룡을 높이 평가하며 큰 뜻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인물로 10화에서는 사직하려는 류성룡을 만류하며 이덕형을 찾아가 류성룡을 도와줄 것을 설득한다. 윤두수와 함께 복귀하여 도승지로 임명된다. 그러다 류성룡을 만나던 윤두수의 말, 선조가 류성룡을 도성의 유도대장으로 임명하여 몽진 시간을 버는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을 듣고 선조에게 앞으로 명나라와의 교섭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류성룡을 어가에 합류시키도록 설득하고 이천리와 신명철과 함께 도성에 남아 싸우려는 류성룡에게 권토중래하라며 설득시킨다. 이후 윤두수와 마찬가지로 이산해의 파직을 주청하고 양위를 할 것이라는 선조의 말에 당황하며 이를 만류한다. 그리고 평양으로의 파천이 결론나면서 먼저 간 신성군등의 왕자들과 동행한다. 이후 평양에서 나름대로 임진강과 평양 방어를 준비한다. 김명원의 장계를 받은 선조가 신각을 처형하려 하자 나름 신각을 변호하나 결국 선전관이 파견되자 이를 류성룡에게 알리고 곧 이덕형이 신각의 승전을 알리자 류성룡과 함께 넋이 빠진다. 이후 명나라에 구원요청을 하자고 아뢰는 등 나름대로 전란수습에 최선을 다한다. 이후 선조의 요동행 주청에 훗날을 도모하고자 찬동하였지만 류성룡의 지적과 그동안 보인 선조의 행보에 질렸는지 이후 선조의 행보에 반대한다.
무군사로 왜적을 당장 칠지 문제로 윤두수와 류성룡이 대립하자 당장 치자는 윤두수를 지지하다가 그와 함께 무군사로 가게 되면서 류성룡에게 반감을 가지고, 이덕형과도 대립한다. 그러나 이덕형이 죽은 아내가 남긴 향낭을 건네자 우정을 확인한다. 무군사에서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무과를 실사하고 전주에도 오지 못한다고 하자 비판하는 윤두수와 달리, 정탁과 함께 이순신을 변호한다.
* 송익필 - 박지일[18]
기축옥사를 배후에서 조종한 장본인. 노비로 떨어져[19] 추쇄꾼에게 쫒기는 신세로 직접 조정에 나설 수 없는 터라, 정철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서 모든 일을 꾸몄다. 결국 군사들에게 잡혀 끌려가는데, 류성룡을 만나 '난 그저 전하의 욕망에 불쏘시개를 던져줬을 뿐'이라는 드립을 쳐 어그로를 끌고 크게 웃는다. 선조가 자신들과 뜻과는 다르기 때문에, 정철한테 다음 후대를 준비할 것을 조언한다. 이산해에게 낚여서 자신의 계획을 술술 불어버렸다.[20] 참고로 이산해는 박지일이 전작품에서 연기한 이색의 7대손이다. 다시 정철에게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오히려 역폭풍으로 서인이 몰락하였고 끌려나갈 때 한양을 떠나는 정철을 쓸쓸하게 본다.
* 성혼 - 김효원[21]
정철과 함께 서인 강경파로 나올 때마다 정철과 함께 동인 타도의 음모를 꾸미는 역으로 나온다. 여담으로 극중의 모습과 달리 이래 봬도 사후 문묘에 배향될 정도로 거유(巨儒)인 인물이다.
* 황윤길 - 김종수[22]
조선 통신사의 정사.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의 5대손이다. 김성일과 다르게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보인다. 도요토미가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눈빛이 매서운게 위험한 인물이라 판단한다. 조선에 돌아온 뒤에는 들르는 곳마다 왜군이 쳐들어올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백성들 사이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바람에, 수많은 백성들이 피난길에 오르는 해프닝이 일어난다.[23]
- 조헌 - 강인기[24]
1화에서 통신사 파견에 반대하며 다른 유생들과 함께 광화문 앞에서 그 유명한 도끼상소를 한다. 8화에서 정철의 집에 머여 광해군을 세자로 주청하자는 정철의 의견에 동조한다. 그러나 정작 그의 행적 중 가장 중요한 2차 금산 전투는 언급도 없이 스킵되어 서인의 정치공작에동조하는 모습만 보이고 등장 끝이다.
- 한응인 - 이정성[25]
명나라에서 조선이 일본과 짜고 공격한다고 믿자 이를 해명하기 위해 명나라에 파견되어 이를 해명하려고 한다. 이후 귀국한 뒤 김명원을 신뢰하지 못한 선조에 의해 제도체철사로 임명되어 임진강 방어의 전권을 맡고 지휘권에 대해 항의하는 김명원에게 복귀하지 않는 신각을 빌미로 무능함을 지적한다. 19화에서 선조와 자신의 의견, 선제공격하자는 의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김명원과 부장들에게 이각을 본보기로 처단하면서 통제를 하고 가토의 훼이크에 속아 군사 대부분을 이끌고 추격을 하다 군사들을 전멸시키고 임진강 방어선을 내주고 만다.
3.2. 동인
징비록 시작 시점에서는 서인에게 밀려 열세인 붕당으로 서인이 조작한 정여립 모반 사건에 엮여 동인의 많은 인물들이 사망해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서인이 건저 문제로 몰락하면서 주도권을 잡게 되지만 서인에 대한 처우 문제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게 된다.- 정여립
대동계의 수장. 대동계가 군사 훈련을 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것으로 등장하며, 서인에서 파견한 자가 이를 지켜본 후에 정철 등에게 군사 규모가 500명 정도 되어보인다고 보고했다. 정철은 이를 듣고 정여립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준다고 했으며, 송익필은 정여립에 대한 장계가 도착하면 벼 베기가 시작될 것이라면서 기축옥사를 예고한다. 선조에게 정여립이 역모를 일으킨다는 장계가 도착하자 왕 역할을 못한다고 자책하고 있던 선조는 정여립을 당장 데려오라면서 크게 분노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정여립의 난으로 죽었는데, 드라마 상에서는 정사(조선왕조실록)의 기록대로 칼을 거꾸로 세우고 자살한 것처럼 묘사하였다. 그의 죽음은 기축옥사라는 큰 파장의 시초가 되었다. - 정언신 - 박칠용
동인의 원로. 정언지의 동생. 우의정으로 종계변무가 성사된 것에 대해 시역을 저질러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는 오명을 벗고 종계를 바로잡은 공은 어느 선대 왕께서도 해내지 못한 것이라 했으며, 개국 이래 200년 만의 경사로 대국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면서 대명회전이 당도하면 명나라에 사은사를 보내자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다가 1589년에 사신을 보내면서 비변사에서 이에 대해 논의하는데, 일본에 대해 "끈질긴 놈들"이라고 한다. 또한 "사신을 보내 학문과 예를 전하지 않은 것이 150년이고, 만약 우리의 문화가 전해졌다면 풍신수길이 자신의 왕을 시역하는 일이 벌어졌겠냐"고 한다. 류성룡이 "일본에 대해 사신을 보내 정탐해야 한다"고 하자 "그런 일은 대마도주를 통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산해가 "대마도는 옛날과는 다르다, 우리보다 풍신수길을 두려워할 것"이라 하자 사신을 보내는 것에 찬성하면서도 "주상(선조)께서 허락할지 걱정된다"면서 "오히려 역정을 낼 것"이라 염려한다.
그러던 중에 정여립의 난이 벌어지고 정언신은 정여립과 친척 관계인 9촌이라는 이유라는 상소로 인해 파직되었으며, 그 소식을 신명철이 류성룡에게 전달했다. 정철의 모함을 받아 기축옥사에 엮여 체포되면서 고문을 받았다. 실제 역사에서 정언신은 옥사 초기 위관을 맡았다가 사건을 축소, 은폐시키려 한다는 의혹을 사서 결국 탄핵을 받았으며, 난에 연루되어 사형을 받았다가 형을 감하여 유배되었다가 유배지에서 죽었다. - 정언지 - 허기호[26]
정언신의 형. 이조참판으로 일본에서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다가 1589년에 사신을 보냈는데, 비변사에서 이에 대해 논의하자 풍신수길이라는 자는 위험한 자라면서 그런 인물과 국교를 맺을 수 없다고 했다. 정철의 모함을 받아 기축옥사에 엮여 체포되면서 고문을 받았는데, 이 때 신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참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유배갔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복권되었다.
- 최영경 - 윤덕용[27]
재야의 거물. 기축옥사에 엮여 옥에 갇히면서 류성룡이 면회를 오자 자신을 정여립의 상장인 길삼봉이라 무고했다면서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인 불사이군을 새기고 살아왔지만 삼봉이라는 함정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류성룡이 무고가 밝혀질 것이라면서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위로하자 류성룡에게 조심해야 한다면서 오히려 나서지 못하게 하고, 모든 것은 주상(선조)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신 끝에 사망하고 최영경을 포함한 이발, 백유양 등 동인에서 영향력이 높던 인물들이 대거 죽임을 당했다.
3.2.1. 북인
징비록속 북인을 설명하자면 한 마디로 가짜 북인 투성이. 1595년에 복직하는 이산해를 임진왜란 개전 시점에서 완전히 퇴장시켜 놓고는 북인 네임드가 없다는 이유로 별볼일 없는 무당파, 무존재감 류조인을 북인으로 만들었다 재야에 있는 정인홍같은 인사는 어쩔수 없다쳐도 이이첨, 남이공, 유몽인, 김신국같이 광해군대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북인인사들이 이때 신진관료층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냥 제작진의 역량 부족. 다만 남인인 김응남도 북인의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서술되어있었는데 연려실기술과 갑진만록에 나온 기록들을 보면 김응남은 북인이 맞다.- 이산해(징비록)
- 홍여순 - 김민상 [28]
김공량과 짝짜꿍하여 나라 재산인 병조의 군량미를 뒤에서 처묵처묵하는 전형적인 탐관+간신배이다. 비격진천뢰와 거북선의 제작을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류성룡의 말을 무시하다가 대사헌 이덕형에게 군량미 횡령을 들켜서 거북선을 지원해주게 된다. 병조판서임에도 불구하고 선조의 수군폐지론에 동조하다가 이산해에게 일침을 듣고 그의 의견에 따르게 되나 싶더니 선조의 되물음에 수군을 폐지하자고 한 신하들도 있었다는 것을 일러 바친다. 그리고 거북선의 건조에 대해 모른다며 왕명을 어긴 이순신과 류성룡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령을 방어하여 고니시군의 북상을 막는다는 계획을 비변사에 설명하고 순변사로 임명된 이일과 함께 경군을 모집하나 불려나온 사람들 모두 과거준비등의 이유를 대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였고 그의 비리를 문제삼는 유생들의 의견도 있어서 이를 전하는 류성룡과 이덕형에 의해 파직되었다. 그러나 호조판서로 복권되고 사야가의 투항에 윤두수처럼 모두 처형하고 이를 본보기로 아군의 사기를 향상시키자고 하는 등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조에게 조언을 하는 류성룡에게 "파직된 상태면 잠자코 가만히 있으라"며 비아냥을 거린다.
결국 의주로 파천이 결정됨에 따라 역대 임금들의 신주(神主, 위패)를 모시다가 그동안 그가 저지른 비리와 전쟁 중의 행보에 분노한 평양 백성들에게 발길질을 당하며 백성들이 선조에게 시선이 돌아간 사이에 신주를 버리고 그 자리에서 도망간다. 이상하게도, 역대 임금들의 신주를 몸을 던져서라도 애써 지키기는커녕 버리고 달아난 건 상당한 죄목임에도 처벌받지 않고 계속 파천에 동행한다. 간사하고 탐욕스럽다 보니 만력제가 하사한 은자를 선조가 나눠 주겠다 하니 혼자 큰 소리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하다 대신들의 따가운 시선들이 집중되자 뻘쭘해진다. 게다가 다른 신하들은 남인 서인할 거 없이 분조에 보내자는 등 국난 극복에 써야한다고 하여 그 찌질함이 더 크게 보인다. 이후 분조를 다시 합치라는 선조의 명령에 혼자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라 했다가 또 대신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28회에서는 선조가 선위 선언을 하자 이를 받아들일지 말지 대신들이 의논할 때 홍여순은 빠져 있고, 나중에 혼자 선위는 안 된다고 말하다가 싸한 분위기에 뻘쭘해진다. 29회에서 선조에게 대신들이 선위를 받아들이려 했다며 고자질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선조가 군국기무를 누가 맡으면 좋겠냐 하자 자신이 적임자라고 하나, 선조에게 "너 지금 나 놀리냐? 넌 가만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라며 전면으로 디스당한다. 그나마 31화에서 벽제관 전투 이후 철군하려는 명군을 말리려다 이일 등이 구타당한 사건이 터지자 전 대신과 함께 이를 항의하는 것에 동조하기도 한다.
* 김응남 - 홍일권[29]류성룡의 천거로 새로운 병조판서로 임명되었다. 이후 류성룡과 함께 한양 방어를 논의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선조의 질문에 파천을 수긍하는 입장을 보이며 류성룡을 설득한다. 여담으로 이 김응남이라는 인물이 보여준 행적 등에 비해 인물을 표현해낼 배우가 아깝다라는 평이 있다. 팬들 사이에선 이 배우가 이순신을 맡아도 괜찮겠다는 이야기도 슬쩍슬쩍 흘러나오던 차라...[30] 대체로 류성룡 및 기타 남인 인사들과 같이 움직이는 편이었지만, 41화에서 작미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면서 이후 류성룡과 거리를 두게 된다.[31] 실존인물은 당색이 옅은 남인인데 드라마에선 어처구니없게도 정유재란을 기점으로 북인으로 만들어 놓았다라고 서술되었있었는데 김응남은 북인이 맞다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김응남은 이산해의 매부로서 이덕형과 함께 두 사람이 북(北)을 주동하였다고 나오고 갑진만록의 기록에서 윤국형과의 대화할 때 김응남은 스스로를 북인이라고 칭하였다.[32] 이순신이 한양으로 압송되었을 때 국문을 지휘하며 이순신에게 무군지죄(無君之罪)를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 유조인 - 고인범
역사상으로 유조인은 당파와는 관계없는 인물이였고 그의 제자인 박동망, 박응복 등은 모두 서인에 해당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선 어째 북인들의 수장으로 나온다. 게다가 실제 나이는 1522년 생으로 류성룡보다 20살이나 많지만 극중에는 동년배 혹은 후배 쯤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발발 당시 이미 70세 호호노인이었다. 자기 연배대로 노인으로 등장하는 정탁보다 4살 위였고, 극중 최고참 배역인 윤두수가 실제론 1533년 생, 이산해가 1539년 생이니 유조인의 극 중 배역이 너무 젊다. 대표적 고증 오류.
역사속 유조인은 음서로 천거돼 외직을 전전하다 임진왜란 발생 후 세자를 영변까지 호종하면서 정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재감정(정3품), 형조참의를 거쳐 호판까지 오른다. 아무래도 대과 급제가 아니라 한계를 느꼈는지 나이 70줄에 당상관 신분에 과거보게 해달라고 청했다가 대간의 반대로 무산됐다. 류성룡의 정책에 반대한적이 있지만 그 논거란게 중국의 장기인 총, 포를 중시하여 조선의 전통인 궁시를 멀리해선 안된다. 마인드라서 정국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실무를 모른다는 지적만 들었다. 한 마디로 그냥 류성룡같은 거물과 마주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인물을 본작은 대간을 좌지우지하는 북인의 수장격 인사로 왜곡했다. 극 중에는 사재감정으로서 대간에 영향력이 있는 원칙주의자로 면역충군을 위해 면천법을 주장하는 류성룡에게 반상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류성룡이 도제조에 임명되어 외부의 장수들도 비변사로 불러 면천법에게 찬성하는 여론을 조성하면서 면천법이 시행된다. 정철이 명나라에서 사신으로 파견되었지만 제대로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 강화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만력제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돌아오자 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이유로 수많은 대간의 상소를 들고 와서 정철을 탄핵해 관직에서 물러나게 한다. 명나라에서 조정을 둘로 나누어 분조를 둬서 광해군을 하삼도로 보내 통치하도록 하는 하삼도 격리안을 내놓자 광해군에게 송응창의 뜻에 따를 것을 부추기고 있다.
광해군이 무군사로 하삼도로 파견되었지만 윤두수가 광해군의 허락을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일본군을 공격했는데, 이 일로 선조가 광해군에게 책임을 물어 무군사를 폐지하면서 세자에서 폐하려고 했다. 광해군이 선조의 뜻에 따르려는 척 하자 보위에 오르면 남인, 서인들에게 당한 자신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대간을 동원해서 광해군을 폐세자하면 물러나겠다고 시위한다. 44회에서는 속오군을 일을 광해군이 류성룡을 돕자 광해군에게 그가 밉지도 않느냐며 항의하지만 좋을 때도 미울 때도 있습니다 정적이라고 항상 멀리두고볼 필요는 없지요 때로는 돕기도 해야합니다 그래야 가까이에서 틈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형조참의도 좀 유연해 질 필요가 있을꺼같소라고 말하는 광해군의 말에 처음에는 당황하나 곧 광해군을 따뜻한 눈길로 쳐다본다. 극중 류성룡의 정적 중에 이산해는 하차, 홍여순은 유배, 정인홍은 재야에 있던터라 친명사대기득권층이라는 이 드라마 상 양반의 부정적인 면모를 모은 캐릭터가 필요해 그 역할을 맡은걸로 보인다.
- 이이첨 - 고세원
광해군의 친위대장. 류조인이 광해군에게 천거하면서 그의 재능에 대해 칭찬하고 왜적이 공격할 때 세조의 영정을 지켰다고 언급하며, 광해군이 그를 시험하기 위해 김덕령을 구하려는 행동에 대해 묻자 지켜낼 힘도 없으면서 뛰어드는 것은 객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하거나, 김덕령이 역적이 아님을 알지만 의병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선조의 덫에 걸릴 것이냐고 지적하는 등의 냉철한 지략가로서 모습을 보인다. 이에 기축옥사와 북인 등용을 놓고 광해군을 부추기며, 후일에 류성룡을 탄핵 시키는데 선봉장 역할을 한다.
3.2.2. 남인
- 류성룡(징비록)
- 김성일 - 박철호[33]
조선 통신사의 부사. 같은 이황 문하의 제자인 류성룡에겐 '사형'으로 불린다. 당파싸움에 찌든 간신 모리배로 폄하된 과거 전기류에서의 묘사와 달리 실제 인물의 기록처럼 강직한 성품이 제대로 묘사된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부터 도요토미가 왕이 아닌 일개 신하라는 사실에 자신들을 속였다고 생각하여 불쾌감을 드러냈으며, 도요토미를 비롯해 휘하 장수들의 예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무례함에 화를 감추지 못했다.[34] 조선으로 돌아온 뒤 일본은 절대 조선을 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말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면 그 진의를 숨기고 은밀하게 행동할 것인데, 드러내놓고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것은 그저 허풍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지만, 이는 도요토미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또한 정사 황윤길이 전쟁이 일어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바람에 민중이 동요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작중에서 잘 표현되었듯 황윤길의 말 때문에 수많은 백성이 동요했고, 김성일은 이 혼란을 수습하고자 이러한 말을 했다 볼 수 있다. 본 작품은 지금까지 역사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황윤길, 김성일의 의견대립'을 굉장히 객관적으로 잘 그려냈다. 일반적으로 김성일은 단지 '당쟁에 따라 서인 황윤길과는 반대로 말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본작에서는 그의 강직한 성품과 FM적 사고를 보여주며, 왜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 개연성이 있게 그려냈다. 이는 지금까지 드라마와 역사서적에서 간과했던 꽤 중요한 이야기이며, 실제 김성일은 왜란이 터지자 전란 수습에 앞장섰다는 점을 봐도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전란의 책임을 지고 서울로 압송이 되어가며 패전한 김수와 만나 자신의 죄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곧 류성룡의 간언에 설득된 선조의 명으로 경상도초유사에 임명되자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며 전란을 수습할 것을 다짐한다. 그 다짐대로 경상도에서 전란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는 후일 진주대첩에도 큰 영향을 주고 류성룡에게 곽재우의 의병부대가 일어난 것을 알려준다. 아무튼 이때까진 왜란의 최전선에서 구군분투한 그의 공적을 제대로 다룬 최초의 사극이 될 줄 알았으나 이후론 아예 안나온다. 그의 활동과 공적은 모두 묻히거나 류성룡에게 빼앗기고[35] 피크라 할 수 있는 진주대첩에서도 완전히 잊혀졌다. - 이덕형 - 남성진[36]
이산해의 사위. 선의사로서 소 요시토시와 현소를 마중나왔고 그리고 요시토시가 진상품외의 물건을 건내자 거부했지만 곧 처음으로 조총을 본다. 6회까진 매번 류성룡의 심기를 거스르는 의견을 내어 제가 생각이 짦았습니다라는 대사만 하는 중. 원래는 이렇게까지 꿀릴 인물이 아니건만.[37] 세자 책봉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하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고 이산해에게 침묵해달라는 말만 전달해준다. 이산해와 류성룡이 북인과 남인으로 갈라지는데 이덕형은 어느새 아무 고민도 없이 남인 쪽에 붙어있었다. 이후 "제가 생각이 짫았습니다" 신세를 벗어나려는지 축성과 군역을 중단하라는 선조의 명에 따라 류성룡이 이장손과 함께 추진하던 비격진천뢰 연구와 전라 좌수영의 거북선 건조가 예산 문제에 시달리자 이항복의 설득에 응하여 류성룡의 조력자로 나선다. 그리고 대사헌이라는 자신의 직위를 십분 활용해 류성룡과 대립각을 세우던 병조판서 홍여순와 별장을 설득시키는데 성공하며 한 건 올리신다. 조운수송을 이유로 들어 이원익과 함께 류성룡의 의견을 동조하며 수군 폐지를 반대한다. 요시토시의 의견에 따라 고니시가 사로잡은 역관을 시켜 이덕형과 강화협상을 하려 하자 선조의 만류에도 적어도, 군 정비와 북방의 군대 남하의 시간을 벌기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협상을 하러 떠난다. 고니시에게 향하다 패잔병들을 통해 신립의 패전 소식을 접하고 자신을 호위하던 신명철과 이천리에게 소식을 전하라며 돌려보낸 뒤 역관을 따라 계속 향하나 이후 소식이 두절이 되었으며 마침내 다시 돌아왔지만 한양이 점령당했다는 비보를 전하는 것으로 다시 출현하였다. 그래도 류성룡에게 근왕병의 소식등을 전하였고 다시 파천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임진강 방어를 준비하고 유배되는 장인인 이산해를 걱정하며 안타까워 한다. 이후 최초의 승전보라며 기뻐하면서 신각의 승전보를 이항복과 류성룡에게 알리나 이미 행재소의 상황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고 당연히 행재소의 상황을 모르는 이덕형은 두사람의 반응에 당황해한다. 이후 겐쇼와 함께 물건너간 회담을 하면서 적반하장격인 일본측에 분노하며 일본군의 패전을 말하며 그자리에서 나온다. 이후 선조가 요동행을 결정하는 상황까지 이르러 명나라로 파견되나 명나라의 문전박대를 말하면서 선조의 이후 행보에 대해 다른 대신들과 함께 반대를 한다. 무군사가 당장 왜군을 칠지 문제로 윤두수와 류성룡이 대립하자 이덕형은 시기상조로는 류성룡을 지지하면서 윤두수를 지지하는 이항복과도 의견이 대립한다. 그러나 이항복이 무군사로 떠나기 전에 죽은 아내가 남긴 향낭을 건네며 먼 길 잘 다녀오라며 격려하여 우정은 변치 않은 걸 확인한다. - 이원익 - 김정학[38]
정철을 비롯한 서인의 실각과 함께 호조판서로 처음 등장했다. 기본적인 입장은 남인인 류성룡의 입장을 따르고 있으나, 북인인 이산해의 입장도 생각하면서 어느 정도 절충하는 형식의 입장을 내고 있다. 괜히 류성룡 실각 이후에도 정승반열에 오르고, 대북(북인)이 세운 광해군과 서인이 세운 인조가 모두 첫 영의정으로 그를 택한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15화에서 파천을 생각하는 선조의 발언에 반대를 했으나 이후 선조가 몰래 불러서 신세한탄을 연기하자 이에 속아 충성을 다짐하면서 최홍원과 함께 각각 평안도와 황해도로 향한다. 이후 18화에서 다시 모습을 보이며 나름 평양과 임진강에서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후 윤두수와 김명원과 함께 평양성 방어를 맡았으나 결국 평양을 내준다. 이후 선조가 요동행을 선언하면서부터 다른 대신들과 함께 선조의 행보에 제동을 건다.
- 허성 - 강철성
조선통신사의 서장관.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을 보좌한다. 왜인으로 변장하여 왜국이 남만인들의 문화를 교류하는 것을 중점으로 두고, 당색이 다른 정사 황윤길의 의견에 동조하여 전쟁이 일어난다 말하였다. 참고로 이 사람의 남동생이 허균이고 여동생은 허난설헌이다.
- 김수 - 이우석[39]
경상도 관찰사. 류성룡이 하삼도의 민심을 보러 두 차례 지방을 순시하면서 지방의 상황을 보고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경상도의 군을 모으는 등 전란 수습에 나서고 있다. 자신에게 투항한다며 부하들을 이끌고 온 사야가를 믿지 않다가 부하들과 자신의 무장을 해체하는 모습에 믿기로 하며 조정에 이와 관련된 상소를 보낸다. 이광과 함께 삼도근왕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싸우려는데, 권율이 전투를 피하고 평양을 합류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자 머릿수를 근거로 크게 반대했다가 용인에서 패한다. 곽재우가 관가의 무기를 의병에 쓰려고 하는 것에 대립했으며, 곽재우가 성주목사가 된 이후에도 명군의 허락없이 단독으로 움직여서는 안된다면서 일본군과 싸우려는 곽재우와 대립했으며, 정철에 이어서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송응창이 일본군을 물러갔다고 속이면서 강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력제에게 알린다.
- 정탁- 이대로[40]
분조를 이끌고 있던 광해군을 돕는다. 나중에 선조의 압력때문에 조정대신들 대부분은 물론 류성룡마저 이순신을 깔때 이원익과 더불어 죽을 각오하고 이순신을 옹호했던 사람이다. 선조에게 신구차(伸救箚)를 올려 결국 이순신을 죽이려던 선조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4. 무장
- 권율 - 김영기[41]"마지막 밥이라니, 그런 소리 말게. 나와 같이 늦은 저녁밥을 먹을지 누가 알겠나?"
처음 등장은 하지 않았지만 의주목사로 추천받는 것으로 언급되었다. 참고로 만력제가 의주의 축성을 문제 삼으며 의주목사를 파직하라고 하는데, 이후의 작중 상황으로 봐서 권율이 아니라 김여물이다.[42] 광주목사로서 삼도근왕병에 합류하였다. 용인 전투 직전 이광과 수뇌부들이 일본군을 섣불리 공격하려고 하자 최대한 전투를 피하면서 평양으로 가서 합류하자고 했지만 이광, 김수 등이 이를 무시했으며, 결국 삼도근왕병은 패배하고 권율은 황진과 함께 병력을 수습했다. 회의 당시 신중론을 펼치는 권율에게 '나이가 많으면 겁도 늘다더니.'라는 식으로 비하당하는데, 권율은 임진년 당시 56세(1537년생)로 당시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상당한 노인이었다. 의병들과 연합하여 전라도 방어 작전을 실행하여 성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사한 고경명 부자를 애도한다.
31회에 전라도 순찰사로 1만을 이끌고 북상하여 수원 독왕산성에 주둔하다가 조명연합군의 한양 공격시 내응하란 류성룡의 연락을 받고 4천을 이끌고 행주산성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공격의지가 꺾여 내려오지 않은 명군 때문에 오히려 3만의 일본군으로 부터 행주산성이 집중공격받는 위기에 처했으나, 권율의 뛰어난 통솔력과 정예 병사들의 선전 끝에 이를 크게 물리쳤다. 전투가 끝나고 다친 병사들과 백성들을 위로하는 모습이 나왔다. 33회에서 이여송이 행주 전투가 자신의 지휘권을 무시한 처사라며 류성룡을 파직시키라 선조를 압박하자, 행주의 일전은 이여송을 흠모해 일익을 담당하고자 자신의 판단아래 행주산성으로 이동했다가 벌어진 일이라며 행주 대첩의 공은 이여송에게 있다는 장계를 올려 이여송을 구슬린다. 이후 류성룡과 서울로 입성한다. 48회에서 육군과 명군의 지원 없이는 수군을 움직이지 않겠다는 원균을 소환하여 곤장을 치면서, 진작에 '어명이 잘못되었더라도 따르는 것이 장수의 도리다'라며 무모한 돌진을 감행했다가 털리고 소극적으로 나오는 원균을 디스하면서 어명이니 당장 출전하라고 명한다.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이 찾아와 수군 출전을 막아 달라고 부탁하지만, 본인도 어명을 받드는 입장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이후 직산에서 한양으로 진격하는 왜군들을 격퇴하는 대승을 거두면서 다시 전황을 바꾸는 데 일조한다. - 신립 - 김형일[43]
2화에서 첫등장. 조총의 성능을 시험하는 장면에서 조총의 위력을 걱정하는 류성룡에게 쏘기 전에 기마부대로 적들을 쓸어버리겠다고 호언한다. 근거없는 만용은 아니고 조총은 위력은 강하지만 재장전하는데 오래 걸리니 그 틈을 노리겠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선조에 다시 시범을 보이도록 해달라고 주청하고 이를 위해 포수가 조총을 장전하는 동안 세 발의 화살을 쏴보이면서 여기가 전장이었다면 포수를 죽였을 거라고 호언한다. 영상에서도 상대가 조총을 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장전할 때를 노려 공격하는 모습이 나온다.[44] 한마디로 패기나 만용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와 경험을 기반으로 말한것이다. 원전 징비록이 신립을 비롯한 조선의 무장들을 전반적으로 무능하게 묘사하고있는데 드라마에선 나름 중립적으로 묘사하는 듯하다. 기왕하는 김에 습기에 취약함, 활보다 짧았던 사정거리 떨어지는 명중률, 중장갑 병력이 적은 조선군의 특성까지 거론하여 전쟁 이전 조선이 조총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은것은 아쉬운 장면. 그리고 3화에서 실제로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 세작들과 교전하는데, 조총의 긴 장전 시간과 발사 딜레이, 그리고 도화선의 불빛을 이용해 어둠 속에서 활과 칼로 세작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에 이일과 함께 전면적인 개혁을 하려는 류성룡을 입장에 난색을 표하면서도 나름대로 전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11화에서는 수군 폐지에 대해 수군과 육군의 지휘체계 통합을 주장하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 관아의 무기와 훈련 상태를 점검하는데 오합지졸과도 같은 군대 모습에 한심해하며 비리를 저지른 수령들을 엄벌에 처한다.
박홍으로부터 온 장계에 대해 소 요시토시를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3화에서 일본군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양면에서 공격하여 재승방략을 무력화 시키지 않고 부산진 한곳으로 몰린 점을 이유로 이산해와 함께 규모가 큰 왜구의 노략질로 판단하였으며 기마군을 이끌고 내려가겠다고 자원을 한다. 근심하는 선조에게 전장으로 나갈 것을 자원하는 류성룡이 야전경험이 없음을 지적하며 목숨을 다바쳐 적을 맞아 싸우겠다며 전장에 나갈 것을 자원하였고 이에 기뻐하며 기대하는 선조로부터 도순변사로 임명된다. 전장으로 나가기 전 궐에서 이덕형과 이원익 그리고 이산해로부터 무운[45]의 예를 받으며 인사를 올리는데 그의 머리에 쓰여져있던 관모가 땅에 떨어진다.[46] 이후 류성룡이 감투를 주워 건내주며 조령에서 방어하라는 의견과 무운을 빌자 이를 고려해가며 현지 상황을 봐가며 전략을 세우겠다고 답변하며 인사를 하고 궐을 나가 자신의 기마군을 사열하고 사기를 고취시킨뒤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향한다. 이후 이일이 합류할 때는 조령에서 진을 쳤지만 상주함락 소식을 듣고 충주로 옮긴 상태였다. 이일이 조총의 위력에 대해 설명하며 조령에서 방어전을 펼칠 것을 건의하자 주특기인 기병의 기동력과 힘을 이용하는데 조령의 지형 특성상 기병의 운용에 불리한 점, 조총의 재장전 시간 문제[47], 남하하면서 모은 군사들의 훈련상태, 다시 진을 펼칠시에 발생될 시간 문제, 조령에서의 방어시 적의 우회진격 가능성등 많은 점을 고려하여 조령보다 한양으로 반드시 지나는 길목인 충주, 탄금대를 전장으로 선택한 결정을 굳히며 걱정하는 이일에게 승리를 장담한다. 그리고 마침내 고니시군과 마주하게 되며 일전을 준비한다. 전투를 준비하면서 종사관인 김여물에게 일본군이 어떤 전술을 쓸지에 대해 묻고 중앙과 좌우로 병력이 분산될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며 오히려 그것이 대군을 정면에서 충돌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면서 조총에 대한 대책으로 말들의 간격을 최대한 벌려 총알의 타격을 최소화 한뒤에 조총의 유효사거리 밖에서 화살로 적을 분산할 계획을 세우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한 모습을 보인다. 덤으로 조령과 한강방어 역시 염두에 두었으나 조선전체의 사기와 적의 기선을 꺾기 위해 전면승부를 택하였고 패배할지라도 적에게 최대한 피해를 입혀 한강방어선 구축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며 탄금대를 전장으로 택한 또다른 이유를 말한다.[48] 마침내 일본군의 공격을 보고 모든 군사들을 이끌고 돌격을 하지만 결국 패전을 하였고 김여물과 함께 일본군을 죽이면서 남한강이 발밑에 보이는 절벽으로 몰린다. 이를 지켜보는 고니시에게 정정당당하게 둘이서 결투를 벌이자 하나 고니시가 조총사격 지시로 답하는 것을 보고 김여물과 함께 강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김형일과 이광기는 태조 왕건에서 신숭겸과 신검으로 나왔는데 그때도 후백제군이 승리하고 신숭겸이 패해 죽었다는 것이다.[49] 극중 신립은 역대 신립 중 가장 개성이 떨어진다. 각종 사료, 무엇보다도 류성룡 자신이 남긴 징비록에서 나타나는 신립은 그야말로 독불장군인데, 여기서는 침착한 장수처럼 묘사된다. 패전한 이일을 격려하고, 탄금대 주둔을 자기 나름대로 조리있게 설명하여 반대하는 인물들을 납득시킨다.[50] 극중에서 신립이 화를 내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 대중에게 알려진 이미지와는 상당히 괴리감이 큰 인물 중 하나. 본래는 중립적인 인물로 묘사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정도가 심해 되려 미화가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장수들에게 자신의 전략을 말하는 장면은 하나같이 청자들에게 (탄금대 전투에 대한) 변명을 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전투 개시 직전에 이일에게 탄금대를 전장으로 선택한 이유를 다시 주절주절 설명하는 모습은 개연성도 없고 설득력도 없어서 거의 설명충 수준이다. - 이일 - 서현철
포도대장의 신분으로 대체 원균은 뭐하고 있었는가?!란 대사를 날리면서 등장한다. 벼락 승진한 이순신에 대해 조사하던 윤두수에게 이순신을 모함했던 죄를 묻지 않는 대가로 그의 강직함에 대해 증언하게 된다. 이후에는 조정에서 신립과 함께 전면적인 개혁을 하려는 류성룡을 입장에 난색을 표하고 수군 폐지에 대한 회의에서 그동안 조운선 호위만 맡은 것을 언급하며 폐지를 주장한다. 13화에서 이산해와 신립과 같이 규모가 큰 왜구정도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를 토벌하는데 신립까지 갈 이유가 없다며 자신이 나아가겠다고 청하였고 순변사로 임명되어 홍여순과 함게 경군을 모으나 다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며칠 동안 내려가질 못한다. 간신히 병력을 모아 내려갔으나 대구에 집결했던 경상도의 군사들은 경군이 도착하는 시간이 지체되면서 식량부족에 가까워 지는 일본군의 두려움을 겪은 탓에 전부 도망을 쳐 대구를 내어 준 상태였다... 이 사실을 모른채 상주 근처 관아의 평야에서 군사 훈련을 하며 오합지졸의 경군에 한탄한다. 곧, 고니시군의 주둔 상황을 알리는 백성을 첩자로 여기다 그 백성의 요청으로 하루를 기다리지만 일본군의 소식이 없자 그 백성을 참한다. 그러나 이는 정찰 나갔던 군관들이 두려움에 쌓여, 비록 제대로 보지는 못했으나 일본군을 목격한 것을 알리지 않게 되었고 결국 기습을 당하면서 투구가 탄환에 맞고 떨어지자 두려움에 쌓여 기어서 도망간다... 이후 신립과 합류하여 조종의 위력과 장전시간의 문제점을 해결해 버린 일본군의 전술운용을 말하며 조령에서 방어할 것을 건의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후 신립과 같이 탄금대에서 고니시 군을 맞이한다. 이후 전투에 참여했으나 패하여 몇몇 패잔병들과 함께 패주하는 과정에서 가토의 진영에서 탈영하여 조선쪽에 투항하기위해 지도를 보면서 길을 헤매던 사야가 일행과 우연히 조우한다. 하지만 멈추라는 사야가의 외침에 놀라 산속으로 도망친다. 도망치는 것을 부끄러워 하며 차라리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여 명예를 지키자는 부하 병사의 말에 "살아야 복수를 할 수 있다"면서 갑옷을 벗으라 지시를 한다. 이후 19화에서 임진강 방어전에 다시 등장하여 김명원과 이각처럼 한응인을 공격적인 전략에 우려를 표하지만 한응인이 군권을 쥐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르며 가토군을 추격하다 패하여 혼자 살아돌아온다. 이후 광해군의 분조에 합류해 호위 역할을 맡는다. 절대선인 류성룡은 그를 마뜩찮아 했으나 광해군이 한번 더 기회를 주겠다는 말에 납득하고 대신 이일을 불러 한번만 더 도망가면 자기 손으로 베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본작에서 가장 크게 폄하된 인물로 실존 인물은 조선 군사사에 한 획을 그운 군사 이론가로 왜란때 알아서 불리한 조건을 택한 신립과 달리 불가항력으로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싸웠고 그 후에도 어떻게든 싸워보려 한 인물인데 드라마에선 순 겁쟁이에 네타 캐릭터로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신립보다 선배에 류성룡보다도 4살위였는데 작중 류성룡은 완전 아랫사람 취급이다. 소수의 병사들을 이끌고 평양성으로 들어가던 우키다 히데이에를 공격해 대승을 거두지만 우키다를 잡는 건 실패한다. 본 목적인 우키다 체포가 실패하여 류성룡 등에게 호통을 들었으나 얻은 수급의 전공이 자연스럽게 백성들의 사기진작에 효과를 주었고 결정적으로 이 공적을 선조의 권위로 연결시켜주는 일장연설을 한 덕분에 선조에게 직접 공을 치하받으며 유야무야 잘 넘어갔다. 이후 평양성 전투 전초전에서는 소 요시토시를 습격하다가 칼을 놓쳐 그야말로 개싸움을 벌였다. 31화에선 벽제관 전투에서 패후 철군하려는 이여송을 설득하려다 명 장수들에게 짓밟히는 수모를 당한다. 그야말로 개그 캐릭터. - 김명원 - 임병기
이덕형의 보고로 한강과 한강방어선을 담당했으나 방어선을 버리고 도주한걸로 처음 언급된다. 18화에서 도원수로서 임진강 방어를 맡는다. 그러나 한강과 한양에서 후퇴한 일로 선조의 신뢰를 잃어 나이 어린 한응인에게 전권을 빼앗겨 지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불만을 품는다. 게다가 부원수 신각에게 복귀를 명하나 김명원에게 실망한 신각은 거부하여 더욱 난처하게 된다. 결국 이에 분개하여 조정에 장계를 보내 신각을 죽게 만든다. 이후 임진강에서 화포등의 화력으로 방어전을 펼치고 반격을 하자고 주장하나 한응인에게 이미 모든 군권을 빼앗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혼자 소수의 병력으로 임진강에 남아있다가 살아돌아온 이일에게서 패전소식을 듣는다. 다시 평양성 방어에도 참가하나 당연히 평양성도 함락되었으며 이후 류성룡과 함께 파병온 조승훈의 명나라 병사들을 접대하면서 류성룡과 마찬가지로 자신만만한 조승훈에게 일본군의 전력을 가벼이 보지 마라며 걱정한다. 이후는 도원수로서 도제찰사 류성룡을 보좌하며 조선군 전반의 행정을 관리한다. 33화에서는 부총병 조승훈에게 칼을 뽑으려던 권율을 필사적으로 만류한다.
- 박홍 - 차기환[51]
경상좌수사로 자국의 전쟁 준비상황을 알리는 평의지에게 "공손하게 하던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일단 장계를 올린다. 정발의 연락을 받고 부산진성에 합류하여 지휘를 하였으나 결국 성이 함락되려하자 급히 군량을 불태우고 빠져나간다.
- 정발 - 김홍표[52]
군사훈련 목적으로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고 참여한 병사들과 회식을 하는 장면으로 첫 등장. 사냥을 끝내고 복귀하던 중 상륙을 위해 다가오는 일본군 전선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대마도에서 보낸 세견선(무역선)으로 생각했으나 엄청난 규모의 전선들을 보고 왜구들이 침공임을 눈치챈다. 이에 재빨리 백성들을 부산진성으로 소개시키고 성문을 걸어 잠궈 전투 태세를 갖춘다. 그리고 이 사실을 경상좌수사 박홍과 경상우수사 원균 그리고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알린다. 박홍이 도착했을 때는 부산진에 상륙한 자들이 왜구가 아니라 본토에서 온 일본군임을 파악하였다. 곧, 일본군의 공격에 명을 내려 총통과 화살을 통한 원거리 공격으로 선전을 하였으나 수적 열세와 조총의 화력을 버텨내지 못하고 성문이 뚫려버린다. 부하들이 몸을 피할것을 권했으나 거부하고 시가지에서 최후까지 싸우다가 일본군 병사들의 조총 난사로 치명성을 입는다. 백성들이 도륙당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서 다시 싸우려 하다 일본군 병사의 칼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한다. 후대 기록에서 '흑의장군'이라 기록된 것을 반영했는지 검은색 갑옷을 착용했다.
- 송상현 - 김동석[53]
동래부 부사로 추천받는 것으로 언급되다가 왜군이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왜군의 후방을 기습하려는 이각에게 동래성에게 들어와서 싸울 것을 권하지만 묵살당하며, 고니시가 길을 빌려달라고 하자 이를 거절하는 서신을 보낸다. 전투 직전에 자신을 따라준 부하를 위로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너의 부하가 되겠다고 하는데, 부하가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부하들에게 인덕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왜군의 공격에 버티지 못해 성이 함락되고 홀로 왜군의 병사들과 싸우지만 전사하는데, 죽을 때 갑옷 위에 조복을 걸치고 전하를 부르짖는 장면은 실제 기록의 반영이다.
- 이각 - 박우열
경상좌병사로 일본군이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송상현과 일본군을 막는 것에 의견 충돌을 보이는데, 이각은 일본군의 후방을 기습하자고 주장했고 수적으로 불리하여 이는 효과가 없다는 송상현의 말을 뿌리치고 자신은 소산역에 진을 치고 기습을 하겠다면서 성을 나간다. 이후 임진강에서 일본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김명원과 함께 때를 기다렸다가 일본군을 공격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장했으며, 일본군을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한응인에게 항명하면서 어가나 호위하겠다는 말을 하다가 한응인에게 죽임을 당한다.
- 김여물 - 송용호
전 의주목사로서 축성을 하다 만력제의 요구에 따라 파직되어 옥에 갇혀있었으나 류성룡의 천거로 풀려난다. 종사관으로서 신립의 부장이 되어 기마군을 이끌고 왜군의 북상을 막기 위해 남쪽으로 향하며, 신립이 충주로 진을 옮긴 것에 대해 이일이 조총의 장전 시간을 상회하는 일본군의 전술 운용에 대해 언급하면서 옮길 것을 권하자 이일의 말을 듣고 동의하면서 조령으로 옮길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신립은 여러 문제에 대해 언급해 충주에서 그대로 싸우기로 결정하였고 이에 따라 탄금대에서 신립과 이일과 함께 고니시군을 맞이한다. 이후 신립이 적의 생각에 대해 묻자 일본군과 같은 생각을 추정해낸다. 이후 전투를 벌이나 패전을 하였고 신립과 함께 일본군들을 죽이면서 남한강이 발밑에 있는 절벽으로 몰린다. 이후 자신과 같이 싸워준 것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말하는 신립에게 같이 싸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한 뒤 신립과 함께 남한강으로 뛰어내려 자결한다. - 송희립 - 전승빈[54]
출전에 관해 논의를 하는 부장들의 회의에 참석하고 바다에서 혼자 있는 이순신에게 찾아가서 결론을 내려줄 것을 부탁하며, 이후에 이순신을 따라 여러 해전에 참전한다. - 정운 - 조순창[55]
출전에 관해 논의를 하는 부장들의 회의에서 출정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이후 부산포 해전이 짤막하게 등장하며 전사한다. 평소 함대의 선봉장을 맡아 유인하는 역을 주로 맡았으며, 술자리의 모습으로 보아 호방하고, 소탈하며, 쾌활한 성격이었던걸로 보인다.
- 이광 - 정종현
전라감사로 일본군을 공격하기 위해 삼도근왕병을 일으켰으며,군사가 5만명이나 된다는 이유로 싸움을 되도록이면 피해 조정에게 합류해야 된다는 권율의 의견에 반대한 김수를 옹호했으며, 결국 섣불리 일본군을 공격했다가 기습을 받고 패했다.
- 신각 - 박경환[56]
이덕형의 보고에서 김명원과 함께 한양과 한강방어선을 맡았으나 도주한 걸로 처음 언급된다. 그리고 18화에서 상관인 김명원에 크게 실망감을 느껴 복귀명령을 거부한채 양주에 주둔하며 해유령에서 가토가 선조를 잡기위해 선조의 다음 도피처를 알아보로 보낸 소규모의 척후부대를 격퇴하고 그 수급들을 평양으로 보낸다. 그러나 김명원의 장계를 받은 선조가 상관의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선진관을 파견하였고 이에 의문과 불만을 가진 부하들을 진정시키고 담담히 처형을 당한다. 물론 신각의 승전보와 왜군 수급을 뒤늦게 확인한 선조는 멘붕하며 선전관을 다시 파견해서 처형하라는 명을 물리라고 소리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 박진
경상도 안강에서 신명철과 이천리, 이장손으로부터 처음으로 생성된 비격진천뢰들을 받아 경주성 탈환에 사용하며, 신명철, 이천리 등이 군사들과 함께 일본군을 공격해 정면에서 혼란을 일으키자 후방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공격했다.
- 권준 - 김법래[57]
순천도호부사로 명나라에서 수군의 군기를 순시한다는 명목으로 와서 심유경이 군량을 명군에게 보내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자 명군에게 군량을 가장 많이 보냈다고 항변했다. 극중에서는 정운이 극중 퇴장하자 바로 투입되었으며, 도호부사인데 입고 있는 관복은 푸른색이 아닌 이순신과 같은 붉은색이라는 고증오류가 있다. 해전신도 하나도 없고 그리고 배흥립이 등장하자 더이상 극중에 나오지 않는다.[58]
- 이봉수 - 김진서[59]
전라좌수영 훈련원의 주부. 화약을 제조하기 위한 염초를 제작하는 것에 성공한다. 원균이 부임하자 원균에 무능력함에 항의했으며 곤장을 맞기도 했다. 나중에 이순신이 복귀하자 누구보다 좋아했다.
- 김시민 - 박정우[60]
진주목사로 곽재우, 최경회가 이끄는 의병과 힘을 합쳐 진주로 쳐들어 온 왜군을 사력을 다해 막아내 진주성 수성에 성공하나 왜적의 총탄에 맞아 전투 후 사경을 헤매다 숨을 거둔다.
- 이시언 - 송창곤
황해도 좌방어사로 류성룡의 지시에 따라 고니시군의 퇴로에 매복하여 습격하려 한다.
- 김경로 - 양재원
황해도 우방어사로 역시 류성룡의 지시로 고니시군의 퇴로에 매복한다. 그러나 이여송에 대한 문책에 두려움이 커 철수한다.
- 조경 - 김주호[61]
조방장으로 권율과 함께 행주산성에서 일본군과 맞서며, 모든 것이 열세인 상황인지라 승리할 수 있을 확률이 1할이라거나 총공세 직전에 먹은 식사에 대해 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될 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권율의 독려를 받고 행주산성에서 일본군과 맞선다.
- 이빈 - 박진형
경기 수사로 일본군이 전 병력을 이끌고 행주산성을 총공세로 나아가기 직전에 원군으로 나타나 권율, 조경과 함께 일본군에게 맞서 싸웠다.
- 정사준 - 이건
군관으로 조총을 견본으로 해서 정철을 두들겨내 조총에 뒤지지 않는 총신을 가진 천자총통을 만들어냈으며, 이순신이 보고를 받기 전에 또 무슨 사고를 쳤냐고 묻는 것을 보면 평소에는 연구와 관련된 사고가 많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 배흥립 - 이주석[62]
흥양[63]현감으로 윤두수가 자신의 이름을 빌어 육군과 수군이 일본군을 협동 공격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오자 수군에서 이를 상의했는데, 선조 또는 광해군의 명령이 아니면서 이순신을 의심하고 있는 윤두수가 보낸 것이라 수락할 수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었기에 수군의 배 절반에 해당하는 50척을 보내 적당히 싸우는 척만 하자고 진언한다. 권준과 마찬가지로, 도호부사보다도 낮은 현감인데도 붉은색 관복을 입고 나온 고증오류가 있다.
- 원균 - 이일재[64] 6화에서 이일에 의해 이름만 언급되는데 디스당한다. 그리고 21화에서 팀킬과 안하무인격인 태도가 하급자들에게 언급되면서 결국에는 빼고 출정하자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씹힌다. 이순신 역시 참고 있다가 언젠가는 엄중히 경고하겠다고 말할 뿐. 43회에서 장문포 해전에 대해 이순신이 소극적이었다는 장계를 올린 게 언급되고, 전라좌수영 장수들이 더이상 참으면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이순신이 소환해 수군을 분열시키지 말라고 경고받는 것으로 첫 등장했다. 이후 이순신과 원균의 불화가 조정에서도 논의되면서 이항복의 주장으로 충청병사로 전출된다. 48화 왜군의 배 600여척을 치라는 명령으로 출정한다. 하지만 패배로 인해 원균은 한산도로 퇴각하고 그 소식을 들은 선조는 진노했다. 다시 출정하라는 어명을 내려 원균에게 전했지만 원균은 겁을 먹었는지 전열을 가담아야 한다.라고 도원수 권율에게 전하지만 오히려 권율은 원균을 불러 곤장을 치고 당장 어명이니까 출정하라고 한다. 원균은 승패는 하늘이 정하는법!.. 이라며 참전하지만 조선 수군의 흑역사인 칠천량 해전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조선수군과 200여척 그리고 자신까지 전사한다. 다행인건 경상우수사였던 배설이 12척을 가지고 퇴각했다.
- 신명철 - 이관훈
류성룡의 심복 군관. 류성룡의 지시에 따라 주로 이천리와 함께 정탐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 송상현의 부장 - 박병철
송상현의 명에 따라 일본군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자신을 따라 준 것에 고마워 하는 송상현에게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라 한다. 전투 장면이 생략되면서 더이상 나오지 않으나 추정상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 최 군관 - 최왕순
- 정운의 부장 - 홍기준
한산도 대첩에서 등장한다.https://youtu.be/eWjbxA9evxU
[1] 일반적으로 '인빈 김씨'로 알려져 있는데, 인빈에 봉해진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이다. 그래서 작중에서도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귀인 김씨'로 등장한다.[2] 정원군은 인빈 김씨의 생존 시기까진 왕실 어른 대우받으며 잘 살았으나 인빈 사후 광해군의 의심병을 피해가지 못해 아들을 잃고 화병으로 사망하고 그 아들 능양군은 반정의 선봉에 선다.[3] 대왕의 꿈에서 관창으로 나왔다.[4] 불의 여신 정이에서는 광해군 아역을 맡았다가 이번엔 성인 광해군을 맡았다. 대왕의 꿈에서 아역 김유신으로도 열연했다.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당시 "고조선 빼고 다 살아봤다"고 너스레를 떨었을 정도로 나름 사극 출연 경력이 풍부한 배우이다.[5] 임해군이 포로로 잡히자 선조는 명나라에게서 받은 은자 5,000냥을 이용해 협상하자고 하지만, 신료들은 "그 돈으로 군사들이 겨울을 날 수 있는데, 왜 낭비하냐"며 반대한다. 거기다 이항복은 "분조를 이끄는 세자가 포로로 잡혀있으면 모를까 어째서 협상을 하려 하냐"고 결정타를 날렸다. 그말을 들은 선조는 광해군에게 "신료들이 다 너의 편이라 좋겠다?"며 비아냥 거린다. 거기다 뭔 사단이 나면 이게 다 세자 때문이다며 징징거리기 일쑤. 참고로 이 장면에서 광해군과 선조가 묘한 심리 싸움을 보여준다. "전하께서 장자를 잃으시는 아픔을 어찌 보겠습니까. 제가 임해군 형님 대신 볼모가 되겠습니다. 형님을 세자로 앉히십시오"하고 입가에 걸려있던 자신감 있는 미소"를 보여준다. 작중묘사를 보면 어차피 대신들이 모두 반대할 것 아니까 그리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6] 그런데 오늘날 기준으로는 아버지 선조의 명을 따르지 않고 단독행동을 하는 것을 가리켜 비뚤어졌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만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성격 파탄 정도의 평가를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세자고 뭐고 진작에 목이 떨어졌을 일이다. 일단 조선 사회는 철저히 禮에 기반을 둔 사회로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고 신하는 임금의 명에 복종하는 것이 의무도 아니고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졌는데, 아무리 세자라 해도 임금의 신하임을 생각하면 광해군이 왕명을 어기는 것은 아들로서도 신하로서도 실격이었기 때문. 더군다나 조선과 같은 전군대 군주국가에서 왕명은 곧 법이었는데, '나는 이 왕명 못 따르겠다!' 라는 것은 '나는 조선의 법 따위 무시하겠다!' 라는 소리였고 이 하나만으로 반역죄에 엮어넣을 수 있다.[7] 사실은 정말로 선위를 하려는 게 아니라 세자의 석고대죄를 유도해 시간을 벌려는 계책이었다. 류성룡도 좋은 계책이라고 말했다.[8] 하지만 이건 류성룡의 계획이었다. 극에 나온 표현대로는 명나라엔 선위를 반을 마음이 없음을 보임으로서 조정이 나뉘는걸 막고 선조도 스스로 자리를 버릴까 두려워 가볍게 여기지 않을거라고 하며 폐세자를 청하라고 오기전에 미리 서찰을 보낸것이었다.하지만 이후엔 전하에 대한 충심같은건 없다며 아비의 괴롭힘에 지쳤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였다.[9] 참고로 이 장면 직전에 류성룡이 인빈 김씨와 독대한 자리에서 "뒤에서 선위 상소 여론을 부추겼냐"며 추궁하다가 인빈이 발뺌하자 열받은 나머지 "자꾸 거짓말하면 천벌이 내릴 것"이라 경고했다. 바로 다음에 신성군의 낙마사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시청자들이 우스갯소리로 "드디어 류성룡이 저주까지 마스터했다"고 하기도 했다.[10] 순화군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인간이 온갖 깽판을 치고도 버틸 수 있던 이유가 아버지빽이었다.[11] 임해군과 순화군의 악행이 드라마에서 제대로 나오는 장면이 없는데, 이 둘의 악행을 그대로 묘사했으면 아마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12] <태조왕건>에서 왕건의 사촌동생 왕신 역, <명성황후>에서 민영익 역으로 나왔다.[13] 정도전에서 득보 아범 역으로 나왔다. 무엇보다 유명한 배역은 지금 평양에선에서 오백룡 대장 역.[14] kbs 공채 20기 출신으로 젊은 배우 중에서 대하드라마 출연이 잦은 편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가공인물 돌쇠를 맡았으며, 그 외에도 무인시대, 서울 1945, 천추태후 등에 출연했다. 더불어 징비록과 동시기에 상영한 영화 베테랑의 순경 역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15] 정도전에서 이지란으로 나왔고,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여진족 족장 맛니응개를, 대조영에서는 당나라의 이적, 천둥소리에서는 이이첨을 연기했다. 가장 유명한 배역은 용의 눈물에서의 이숙번. 배우 본인이 말했다시피 무관만 맡다가 정통 문관 역을 처음으로 맡게되었다. 이숙번도 역사에서는 문신이지만 사극에서는 무인에 가깝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16]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로 더 잘 알려진 시조.[17] 불멸의 이순신에서 선조 역으로 나왔으며, 왕의 얼굴에서는 정여립을 맡았다.천추태후에선 경종을 맡았다. 류성룡 역인 김상중은 제국의 아침에서 광종을 맡았다.[18] 대조영에서 부지광 역을, 정도전에서 이색을 맡았다. 참고로 2화에서 최영경이 언급되었는데, 송익필이 삼봉 정도전에 비견된 인물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도전을 봤던 시청자에게는 웃음이 나오는 부분이다.그리고 5회에서는 이색의 후손인 이산해에게 관광당했다.[19] 노비로 떨어진 이유는 복잡한 가정사(...) 때문. 송익필의 조모는 안돈후와 그의 노비에게서 태어난 얼녀였는데, 그 아들이자 송익필의 부친인 송사련은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안돈후의 손자들을 조광조의 일파로 발고해 죽게 만들었다. 이 일로 송사련은 관직을 제수받는 한편 안씨 가문의 재산도 넘겨받게 되었다. 그러나 선조가 왕위에 등극하며 조광조가 신원되자 안돈후 일가에서 신원과 재산 반환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며 안돈후의 손자들을 고발한 송사련이 탄핵을 당했다. 송씨 가문과 안씨 가문은 서로 싸움을 벌였지만 송씨 가문에서 패하고 만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송익필의 조모가 면천되었는지의 여부도 파악이 불가능해지며[이에] 그 후손들인 송익필과 그 형제들은 안씨 집안의 노비로 환속되어 버렸다. 정작 송사련은 이미 당상관을 지내다가 죽은 다음이었기 때문에 평생 고생한 것은 그 아들들 뿐 이를 이 문서들을 보고 다시 보면 헛웃음이 날 것이다.[20] 이 부분 연출이 탁월하다. 국본을 새로 세우는 것이 새로운 왕을 세운 후견이로서 자신의 당파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이유도 있지만, 그런 이유 뿐 아니라 정말 세자를 세워 후대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중적인 심리를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작품 내에서 송익필은 비열한 책략가이기도 하지만 책략의 바탕에 대의를 까는 선비다.[21] 명성황후에서 민승호, 근초고왕에서 진정, 천추태후에서는 채충순 역으로, 서울 1945에서는 박헌영 역으로 출연.[22] 최근 tvN 드라마 미생에서 원인터 영업본부 부장 김부련 역으로 출연.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이산해의 조상인 목은 이색을 연기했다.[23] 참고로 황윤길과 김성일이 귀국해 보고를 올린게 음력 2월인데 이때면 본격적으로 한해 농사를 시작할 시점이다. 이런식으로 백성들이 무작정 다 피난가 버리면 뒤따라오는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24] 태조 왕건에서 용검을, 정도전에서 이방우를 맡았다. 명성황후에서는 이놈을 맡았다.[25] 정도전에서 최만생 역을 맡았다 그 밖에 사극에서는 주로 중국 사신 역으로 자주 나온다.막장 드라마에 이사로 많이 나온다.[26] 무인시대 이후 오랜만에 KBS 대하드라마에 출연한다. 배우 허장강의 아들이자 허준호의 형으로 배우 본인 페이스북에서 촬영현장과 함께 배역을 밝혔다.[27]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원익을 연기했다.[28] 전작인 정도전에서 권문세족으로 끝판왕 이인임의 당여이자, 임견미와 사돈을 맺고 단짝으로 온갖 수탈로 치부를 하여 고려의 멸망을 앞당기고 자신도 비참하게 몰락하는 염흥방 역으로 출연.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나온다.[29] 무인시대에서 최충헌의 심복 김약진, 명성황후에서 홍계훈 역, 천추태후에서는 양규 역, 공주의 남자에서는 금성대군역으로 호연을 펼쳤다. 그리고 대왕의 꿈에서는 국반 갈문왕 역을 맡았다.[30] 배우의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뜨는 게 이순신이다![31] 뜬금없이 돌아선 건 아니고, 바로 앞의 40화에서 윤두수와 이항복을 무군사로 보내려는 류성룡에게 너무 독선적이라며 이의를 제기하는 부분이 있다.[32] 이른바 남북이란 말도 유래가 있다. 무자년(1588, 선조 21) 가을에 문소(聞韶)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 돌아오니, 중숙(重叔김응남의 자)이 나에게 말하기를, “근래 남북이란 말이 있는데, 그대는 들은 일이 있소?” 하므로, 내가 놀라 묻기를,“그것이 무슨 소리오?”하니, 대답하기를,“남은 이현을 우두머리로, 그 다음이 경선ㆍ자앙, 그리고 그대 등 몇 사람이며, 북은 여수(汝受 이산해(李山海))를 우두머리로, 중겸(仲謙 백유양(白惟讓))ㆍ경함(景涵 이발(李潑)) 형제 및 나까지 몇 사람이오.””[33] 명성황후에서 안동 김씨의 중진격 인물인 김병국, 근초고왕에서 고구려 대장군 고치수,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 역을 맡았다. 천추태후에서 김훈 역으로, 서울 1945에서 김일성역으로 출연. 대왕의 꿈에서는 무왕 역을 맡았다. 드라마 전우(2010년판)에서는 수용소 경비장 역을 맡았다. 디즈니 공주와 개구리의 파실리에 역을 맡기도 했다.[34]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 사신들에게 자기네 나라의 검무를 보여주다 위협을 가해 기겁하자 보다못해 "대체 이 무슨 짓이오! 지금 조선의 사신을 조롱하는 것이오!" 라며 분노했다.[35] 김수와 곽재우의 갈등을 해결한 건 김성일의 공이 크지만, 극중에선 류성룡의 활약으로 다 처리되었다.[36] 정도전에서 공양왕, 대조영의 이문, 야인시대의 곽영주 역을 맡았다. 재밌는건 김명민이 주연한 영화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는 정조로 나오는데, 징비록에서 장인 이산해로 나오는 이재용이 영화에서는 정조를 몰아내고 죽이려는 악역 좌의정으로 나온다. 또한 주인공 김상중의 전작인 나쁜 녀석들에서는 김동호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37] 사실 이덕형이 생각이 짧은 게 아니라 류성룡이 원리원칙 절대선역 캐릭터로 그려져서 타박받는 것이다. 인사 정책 논하면서 서인측과 입장을 조율하는건 당연한 일이고 이순신의 승진이 뒤의 결과야 어찌됐건 그 당시로선 파격적인 것이라 반대의견을 낸것이 이상할 것도 없는데 류성룡은 그저 정론만 얘기하며 타박준다. 그러나 후일 이덕형이 초당파적인 사고을 지닌 류성룡 못지않는 거물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타박들은 이덕형을 류성룡의 제자 포지션으로 잡기 위해 넣은 연출인 것으로 보인다. 또 이상할 것이 없는 게 이당시 이덕형의 나이가 30~31세다. 미숙한 면을 보여도 이상할게 없는 나이다. 문제는 이렇다고 해도 죽마고우이자 또래인 이항복에 비해서도 너무 미숙하다는 점을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덕형은 류성룡에게는 물론, 벗인 이항복에게서도 서인의 건저 동참 통문 서명을 그의 당색 때문이라고 오해했다가 핀잔만 받았지만, 이항복은 고분고분하며 서인들이 모인 정철의 집에서 통문 서명 동참에 앞서 역린을 건드리는 것에 대한 것도 우려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더 두고봐야 알겠지만 초반부터 이덕형을 너무 바보로 만들어놓은 느낌이 없지 않다.[38] 나쁜 녀석들에서 김상중이 맡은 오구탁의 후배 형사 박창준 역할을 한 적이 있다.[39] 불멸의 이순신에서 조산보 감관 임경번을 연기했다.[40] 전작 정도전에서 보수주인 황연 역을 맡았던 배우다. 태조 왕건에서 도선대사, 야인시대에서 염동진 역으로도 나왔다. 그리고 제국의 아침에선 서필 역을 맡았다. 정탁의 초상을 보면 알겠지만 외모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다.[41] 가토 기요마사 역의 이정용과 마찬가지로 불멸의 이순신과 동일 배역으로 나왔다. 여담으로 동시대를 다룬 사극이자 허균을 주역으로 한 사극 천둥소리에서 사명대사 역을 맡기도 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순신에게 존댓말을 했지만 징비록(드라마)에서는 이순신에게 반말을 한다.[42] 그러나 실제 역사를 대입하면 권율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김여물은 파직 사유가 확실히 기록되어 있는데 권율은 파직 사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김여물이 권율보다 선임자다(김여물은 1591년에 파직되었고, 권율은 1592년 봄에 의주목사로 잠시 재직했다가 얼마 안 가 파직되었다). 허나 드라마에 이를 그대로 적용시키기 어려운 이유는 김여물의 파직 이유 중 하나가 정철의 당파로 몰린 것인데 극중에서 의주목사가 파직될 때 정철은 엄연한 현역이었기 때문이다.[43] 태조 왕건에서 신숭겸 역으로 나왔다. 공교롭게도 신립은 신숭겸의 후손이며, 거기다 전장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 것까지 비슷하다. 또한 무인시대에서 최충수로 나오기도 한다.[44]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아시가루들이 열을 나누어 장전 딜레이를 줄이고 화망구성으로 명중률을 보완하는 장면이 나와 왜군이 조총운용에 관한 체계적인 전술을 확립하고 있음을 알려준다.[45] 무인으로서 행운을 받는 다는 뜻으로 사극에서 "무운을 빈다"는 말이 이 뜻이다.[46] 드라마의 각색이 아니라 징비록 원전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장면이다.[47] 그러나 이일이 왜군은 부족한 연사력을 전술로 극복했음을 알려주었음에도 그에 대한 대책은 말하지 못했다.[48] 뭔가 있어보이는 말이지만 되려 신립을 무식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이 데려온 병사들이 사실상 조선의 전부인 상황인데, 조선군의 사기가 떨어졌다고 정면승부를 걸다니 도박에서 국가의 운명을 가지고 올인하는 꼴이다. 게다가 자기가 죽음을 각오하고 아무리 적에게 피해를 입혀본들 공격을 하든 수비를 하든 후속 부대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또 드라마상에선 고니시군이 입은 피해를 과장해서 신립이 의미있는 죽음을 맞이한 양 묘사했지만, 실제 역사상에선 신립의 경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피해다운 피해는커녕 진군 속도조차 늦추지 못했다.[49] 다만 태조 왕건에서는 신검이 공산에 없었던 것으로 그려졌으므로, 신숭겸이 신검군에게 패하지는 않았다. 작중 묘사로는 견훤이 서라벌로 급히 가기 위해 대야성과 용주성을 미끼로 내주었는데, 신검은 견훤의 옷을 대신 입고 대야성을 지키고 있었다.[50] 실제로는 이일을 참수하려 했으며, 탄금대 주둔을 반대하는 인물들을 설득이 아니라 어거지로 밀어붙인거다.[51] 불멸의 이순신에서 신립역으로 나왔다. 정도전(드라마)에서는 조반 역으로도 출연했다.[52] 불멸의 이순신에서 조수창을 맡았다.[53] 대조영(드라마)에서 선겸으로 나왔다. 가장 잘 알려진 배역은 김형사(야인시대).[54] 근초고왕에서 사기 역, 대왕의 꿈에서는 김춘추의 둘째아들 김인문 역으로 출연했다.[55] 정도전(드라마)에서는 이숙번 역으로 출연했다.[56] 주몽(드라마)에서 부분노 역으로 나왔다.[57] 뮤지컬에서 유명한 배우.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 곽 장군을 맡았다.[58] 단 이 때 1594년에 권준이 거제도로 사냥을 갔다가 왜군의 습격을 받아 부하들을 잃은 죄로 일시 파직되었기때문에 고증에 맞다고 할 수 있다. 이 후 다시 복직되고 1596년에 경상우수사로 승진하지만 1년뒤 이순신이 파직되고 원균이 통제사가 되면서 사직했다가 칠천량해전 후 충청수사가 되지만 한강일대를 방어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이순신과의 인연이 멀어졌다.[59] 불멸의 이순신에서 가공인물 정일수를 맡았다.[60] 근초고왕에서 유리왕 역을 맡았고, 펀치에서 대통령 비서실장 김성찬 역을 맡았다.[61] 불멸의 이순신에서 가공인물 서한수를 맡았다.[62] 2010년판 전우에서 소대장인 김중산 소위로 출연했다.[63] 흥양은 오늘날의 전라남도 고흥군이다.[64]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일역을 맡았다. 불멸과 본작 모두에서 이순신을 괴롭히고 반목하는 역으로 출연. 참고로 이일재씨의 외모는 사료속 '원균'과는 백만광년 정도 차이가 나서 시청자들로부터 원균이 너무 잘생겼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나마도 불멸에서 원균을 맡은 최재성은 미남이긴 했지만 나잇살은 좀 붙은 상태였는데, 이일재는 너무 말라서 원균에 대한 기록과 더 심하게 차이난다. 하지만 원균 특유의 음흉함과 찌질함은 그나마 잘살렸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