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장편 연출 작품 (TV 영화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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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2d9d2><colcolor=#b12c31> 죠스 (1975) Jaws | |
메인 포스터[1] | |
장르 | 공포, 재난, 스릴러, 서스펜스 |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
각본 | 피터 벤츨리 칼 고티렙 |
원작 | 피터 벤츨리 - 소설 《죠스》 |
제작 | 데이비드 브라운 리처드 D.자누크 |
출연 | 로이 샤이더 로버트 쇼 리처드 드레이퍼스 外 |
촬영 | 빌 버틀러 |
편집 | 베르나 필즈 |
음악 | 존 윌리엄스 |
배급사 | |
개봉일 | 1975년 6월 20일 1978년 4월 22일 |
제작비 | 900만 달러 |
전세계 박스오피스 | $471,411,300 |
북미 박스오피스 | $260,758,300 (인플레이션 적용시 $1,200,856,389[2]) |
상영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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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명의 소설 죠스를 기반으로 1975년에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연출의 미국 영화. 제48회 아카데미 시상식 편집상, 음향상, 오리지널 스코어상 수상작 / 작품상 후보작.
소설 출간 전부터 영화화가 서둘러 진행됐다. 소설 자체는 출판되기 꽤 전에 탈고됐기에 1973년 1월에 이미 출판사에 1차 원고가 인계되고, 그 직후 영화화 판권이 팔렸다. 이후 책의 최종 수정 과정에 스티븐 스필버그 본인도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3]
사실 그는 막상 영화 제작에 돌입하기 전 본작이 성공할 경우 '상어 영화 감독'으로 자신의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을까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하였고, 죠스 대신에 당시 20세기 폭스가 제작하려는 《럭키 레이디》[4]라는 영화의 감독직을 맡으려고 하였으나 본작의 배급사 유니버설 픽처스는 이미 그의 감독직 하차를 불허하는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으며 죠스의 프로듀서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이 직접 '이 영화만 개봉하면 이후엔 네가 만들고 싶은 영화 다 만들어도 돼.'라는 말로 그를 설득하고 난 후에야 제작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5]
1975년 여름 개봉 당시 영화 역사상 최고의 수익을 벌어들인 대흥행작이 되어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6] 영화는 원작 소설의 스토리와 다루는 주제에서 차이가 어느 정도 있지만, 평가는 훨씬 더 좋은 편이다.
2. 출연진
3. 상어
자세한 내용은 백상아리(죠스 시리즈) 문서 참고하십시오.4. 줄거리
뉴잉글랜드의 작은 섬마을 애미티(Amity)에서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머지않은 어느 날, 외지에서 온 크리스틴(애칭은 크리시)이라는 여대생이 행방불명되었다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7] 애미티 경찰서장 브로디(로이 샤이더 분)는 여대생의 죽음에 관련된 정황과 시체의 상태와 검시관의 보고로 상어의 공격이라는 것을 깨닫고 시장을 비롯한 시 상층부에 자세한 조사와 해안 폐쇄를 건의한다. 하지만 시장은 여름 한철 장사로 먹고 사는 관광지인 애미티에서 그러한 조치는 관광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브로디의 건의를 거부한다. 이에 브로디는 불안감을 없애지 못하면서도 거기에 수긍한다.[8] 이후 해수욕을 하던 피핀이라는 개(검은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상어에게 잡아먹히고[9], 알렉스 키트너라는 남자 어린이도 노란 레프트 위에서 놀다 상어에게 물려 수면 밑에서 희생당한다.[10] 비명이 오고 간 이후 알렉스의 어머니는 아들을 외치며 찾아보지만 피바다 위 갈기갈기 찢긴 레프트만 해변으로 둥둥 떠내려온다. 결국 에미티는 아수라장이 된다.
마을 회의에서 대책을 논의할 때 상어 전문 사냥꾼 퀸트(로버트 쇼 분)[11]가 보수로 만 달러를 지불하면 혼자서 상어를 처리해주겠다고 제의하지만 깔끔히 무시당한다.
브로디는 협조를 요청받아 애미티에 방문한 해양학자 매트 후퍼(리처드 드레이퓨스 분)와 함께 조사하면서 사건의 원흉이 거대한 상어라고 확신하여 이전보다 더 강경하게 해안 폐쇄를 시장에게 요구하려 하지만, 이미 시장은 상어에게 포상금을 걸어 일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시도한 뒤였다.[12]
시장이 상어에게 현상금을 건 게 광고로 나가자 우후죽순으로 상어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나선다. 그 중 한 무리가 뱀상어[13]를 잡아오자 시장은 식인상어를 잡았다고 선언하며 브로디와 후퍼의 반대를 무시하고[14] 사태를 마무리 짓는다. 현장에 검은 상복을 입고 나타난 알렉스의 어머니[15]는 이전에도 희생자가 있었다면서 왜 해수욕장을 폐쇄하지 않냐고 애꿎은 브로디의 따귀를 때린다. 그리고 섬은 그대로 관광객을 받아들인다.
해가 진 뒤 후퍼는 브로디와 함께 뱀상어를 해부해보는데 상어 내부에 사람의 살점은 없었다. 둘은 상어를 찾기 위해 후퍼의 배를 타고 해안으로 나갔다 어부 벤의 보트가 부서져 떠다니는 걸 발견한다. 후퍼는 배를 살피기 위해 잠수하는데, 부서진 보트에서 백상아리의 이빨을 발견하지만 벤의 시체를 보고 놀라서 해저로 떨어뜨린다. 백상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어의 이빨로 입증할 수 있었으나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러지 못하게 되어 시장은 해수욕장 폐쇄 건의를 또 무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상어는 다시 해안을 습격해 관리요원 한 명을 살해하고, 애미티의 여름 장사는 그대로 무너진다.
브로디는 퀸트를 고용하자고 시장에게 강력하게 건의해 허락을 받아내고, 후퍼와 더불어 자신도 퀸트가 소유한 배 '오르카(Orca)'[16][17] 호에 몸을 싣고, 모든 사태의 원흉인 상어를 찾아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18][19] 강력한 백상아리[20]를 맞닥뜨린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배경과 위치, 사냥 방식의 차이로 인해 지속적인 마찰을 일으키면서도[21] 압도적인 상어의 공격력에 조금씩 팀워크를 쌓아가며 대응한다.
그러나 상어의 반복되는 공격으로 배에 물이 들어차고 엔진까지 멈추어 바다 한가운데서 오고가지도 못한 상황이 된다.[22] 결국 자존심 강한 퀸트도 어쩔수 없이 후퍼의 사냥 방식을 받아들이고 후퍼는 강철 케이지에 들어가 상어를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강철 케이지는 그대로 부서지고 후퍼는 강철 케이지에서 탈출한다. 결국 배는 파손되어 천천히 가라앉고 퀸트는 물이 가득한 배에서 미끄러져 상어에게 잡아먹힌다. 브로디는 상어의 입 안에다 압축 공기통을 던진다. 오르카 호가 가라앉자 브로디는 총을 들고 망대에 올라가 상어의 입 안에 있는 공기통을 저격한다.[23] 공기통이 터져[24] 백상아리는 그대로 최후를 맞이하고, 브로디는 죽은 줄 알았던 후퍼와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배의 잔해에 매달려 섬으로 헤엄치는 걸로 영화는 끝난다.
5. 원작과의 차이점
사실 원작은 영화에 비해 좀 더 사회 비판적인 면과 지역 이기주의를 비꼬는 아웃사이더적 성향이 강하다. 매트 후퍼가 브로디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그 때문에 오르카 호의 선상 인간관계가 더 막장이 된다. 오즉했으면 원작 소설을 읽던 스필버그가 등장인물들이 너무 비호감이어서 상어가 이기길 바랬다고 말할정도 였다. 퀸트와 후퍼 사이에서 오가는 계층 간 갈등(노동자와 도시 인텔리)도 영화에서는 시간상 잠깐 드러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소설에서는 좀 더 깊게 표현하였다.결말도 많이 다르다. 퀸트는 오르카 호가 가라앉는 중에도 작살질을 계속하다, 작살에 연결된 밧줄에 발목이 묶여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가 익사한다.[25] 후퍼도 영화에선 마지막까지 살아남지만, 소설에서는 일행중 첫 번째로 사망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상어에게 고기 몇 점만 남기고 깨끗이 먹힌다. 그렇게 먹히는 모습을 브로디와 퀸트가 직접 목격함으로써 확인사살까지 해준다.
6. 제작 비화
메이킹 필름은 해당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제작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작진의 갈등은 엄청나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촬영감독 빌 버틀러는 촬영이 다 끝나자 마자 감독에게 인사도 안 하고 차를 타고 가버렸으며, 그 뒤로는 스필버그가 연출한 영화에 다시는 참여하지 않았다.[26] 그리고 제작진은 제작자에게 로봇 상어 말고 진짜 상어를 잡아와서 쓰자고 건의했다. 이를 의아해한 제작자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들이 "감독을 상어밥으로 밀어버리고 싶거든요."라고 하는 바람에 제작자는 어이를 상실했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스필버그는 정말 제작진이 등 뒤에서 칼이라도 꽂는 것은 아닐까 무서워하다가 결국 궁여지책으로 보트 위에서 성난 스태프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확성기로 지시 내리는 지경(...)까지 가서 겨우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27] 스필버그 정도 되는 천재급의 감독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완벽주의가 제작진들을 열받게 한 것으로 보이는데, 스탠리 큐브릭, 제임스 카메론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다만 이후 스필버그의 작품들에선 이런 험악한 제작비화는 더 이상 나오지 않으므로 아무래도 촬영 당시 28세에 불과했던 젊은 혈기가 한 몫한 듯하다. 또는 이때의 일을 계기로 그 후 영화 찰영장에선 스태프들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려 노력했을 수도 있다.
또한 영화 제작을 위해서 상어의 애니매트로닉스를 3개나 제작했는데, 이 애니매트로닉스들은 땅에선 잘 작동했지만 모두 촬영 시작부터 물에 들어가자마자 고장을 일으켰다. 그중 하나는 아예 가라앉아서 다시 꺼내 올리니까 상당히 망가졌다고 한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제작에 차질이 생기자 스필버그는 역발상으로 상어가 나오지 않는 상어 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해냈고[28], 실제 영화상에서도 상어는 신체 일부분만 보이다가 81분이 지나서야 전체 모습을 드러낸다. 참신한 연출과 음악을 등에 업은 이 작전은 제대로 먹혀들었고, 스필버그는 이에 대해 '쓸모없는 상어 장치가 신의 축복이었다'고 회상하였다. 본인 말로는 자신을 레이 해리하우젠보다 알프레드 히치콕에 가깝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이는 당시의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스필버그가 연출을 맡은 영화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29][30]
참고로 영화에선 모형 말고도 실제 야생 백상아리의 촬영분 역시 삽입되었다.[31] 이는 스필버그가 작동이 잘 안 되는 로봇 만으론 공포감이 충분히 조성되지 않을 것 같았기에 후퍼가 도망친 이후 케이지가 망가지는 장면에 실제 백상아리를 넣기로 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그 백상아리가 1주가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케이지를 물어뜯지 않자 촬영에 난항이 생겼을 쯤에 갑자기 훨씬 더 거대한 백상아리가 나타나서 케이지 줄에 그만 몸이 묶여 몸부림치는 장면이 찍혀 영화에 그대로 삽입된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게도 본래 케이지를 공격했어야 했던 상어는 영화에 나온 상어의 크기 설정보다 반 정도나 더 작았기에 케이지의 크기도 축소되었으며, 원근법을 사용해 실제보다 더 커보이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후퍼 역을 맡은 배우의 안전과 원근법 효과를 더 살리기 위해 실제 배우보다 키가 더 작은 모형과 대역을 번갈아가면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그 대역이 상어를 너무 무서워해 진행이 좀 더뎌졌다고 한다.[32]
7. 흥행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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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스코어 87 / 100 | 점수 8.7 / 10 | 상세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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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 97% | 관객 점수 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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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Db Top 250 206위{{{#!wiki style="display:inline-block; display:none; margin-left: 0.5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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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7.3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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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3.5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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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4.0 / 4 |
흥행은 말 그대로 대박으로, 9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미국에서만 2억 6000만 달러를 벌었다. 당시 미국 첫 개봉 흥행 수익만으론 1억 달러 흥행[33]을 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던 선입관을 깨부숴버린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블록버스터라는 말을 탄생시켰다.[34] 해외에서도 2억 10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벌어들이며 모두 합쳐 4억 7000만 달러라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이는 당시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이다.
다만 최초로 미국 내 흥행만으로 1억 달러 흥행 돌파 작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며, 두 번째가 〈대부 1〉이다.# 재개봉 흥행 포함 시 두 번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세 번째가 〈대부 1〉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39년부터 1963년까지 24년간 중간중간 여러 번의 재개봉과 장기 상영된 작품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1966년 11월, 6,750만 달러 이상의 미국 내(전 세계 총 수입 1억 2,500만 달러)의 흥행 기록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흥행 기록을 27년 만에 깼다.# 그 후 1969년 노동절[35]까지 미국에서 4년 반의 극장 개봉을 마쳤으며, 이런 가장 긴 영화 초기 상영 기간을 거쳐 1억 달러 돌파 기록을 세웠다.# 한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67년 재개봉[36]하는데, 이때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해가 바뀌어도 극장에서 내리지 않는 장기상영 방식을 썼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시 1971년까지 4년여 동안의 장기 상영 누적 수입으로 1억 달러 흥행을 돌파했고, 1971년 말에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역대 흥행 1위 자리도 다시 가져간 것이다.영상
흔히 〈대부 1〉에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흥행 기록을 33년 만에 깬'이란 수식이 많이 붙는데, 이는 〈대부 1〉은 1972년 당해에 초기 상영을 마쳤고,# 이 기록만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흥행 기록을 깼기 때문이다. 다만 엄밀히는 틀린 말로 〈사운드 오브 뮤직〉이 1966년 11월에 먼저 깬 기록을 〈대부 1〉이 1972년 12월에 다신 깬 것이다. 이런 〈대부 1〉을 블록버스터의 시초로 보는 의견도 있지만,영상 개봉 날짜를 보면 〈대부 1〉은 모두 1972년에 개봉했지만 개봉 월은 모두 제각각이다.[37] 대신 〈대부 1〉은 스튜디오와 극장이 몇 대 몇으로 수익을 나누는가의 기준을 세웠다.[38] 1972년 당시 〈대부 1〉의 미국 내 흥행 수입은 $136,381,073였지만, 극장과 나눠먹기로 스튜디오의 실질적 수입은 $86,000,000였다.
반면 〈죠스〉는 1975년 6월 20일 한날한시 전 세계 동시 개봉으로 1944년 10월 14일 만들어진 블록버스터 폭탄이란 용어[39]에 가장 부합한 공식을 만들어낸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죠스〉 개봉 전까지 역대 흥행 1위는 〈대부 1〉이었다.#
한국에는 1976년 정진우가 운영하던 우진필름에서 수입했는데, 당시 수입가가 40만 달러로 역대 최고액이라 달러 낭비란 비난을 듣고 2년이나 상영을 미루다 1978년 4월 22일에서야 뒤늦게 개봉했지만, 서울 관객 38만 8000명이라는 개봉작 흥행 2위[40]라는 당시 상당한 흥행 성적을 거둬들였으며, 일본에서는 50억 5천만 엔으로, 1970년대 및 당시 역대 일본 개봉 영화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는 상어가 나와서 깽판 치는 영화의 원조 정도로만 여겨지지만, 미국에서의 평가는 그런 차원보다 훨씬 높다. 괴수물로서는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 후보로 선정된 것[41]은 물론 그 위상이 완전히 확립된 오늘날에 와서는 상업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AFI 선정 100대 영화 1997년 48위, 2007년 56위에 선정되었다.[42] 참고로 로튼 토마토의 신선 지수는 97%. 그 엄청난 흥행과 관련 마케팅, 인상적인 캐릭터들과 각종 참신한 연출[43] 등으로 후대의 영화들에게 대단한 영감을 주었다. 또한 최소한의 음계로 긴박감 넘치는 분위기를 표현한 존 윌리엄스의 메인 테마 역시 상당한 명곡으로 손꼽혀[44], 윌리엄스가 오늘날의 명성을 얻는 데에는 이 영화의 공이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2001년부터 미국 의회도서관의 미 국립영화등기부가 이 영화를 영구 보존한다.
영화가 너무나도 완벽한 덕에 개봉한지 거의 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역사상 최고의 상어 영화로 이견없이 불리며, 그 뒤에 만든 어떠한 상어 영화들도 이 영화의 아성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그나마 딥 블루 씨가 블록버스터 영화로는 평가가 훌륭하며, 블록버스터보다는 스릴러 영화에 가깝지만 평가와 제작비 대비 수익으로 따지면 언더 워터도 꼽히는 편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평가하든 죠스가 역대 최고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후 여러번 재개봉했는데, 2022년 8월 말 재개봉에선 첫 주에 263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주 박스오피스 8위까지 올라갔다.
8. 기타
단순한 괴수물이 아닌 사회 풍자물로 강렬한 캐릭터들이 다수 존재해 몰입도가 깊다는 평이 많으며, 문제를 간파해 더 큰 참사를 막으려는 주인공 vs 이익을 위해 이를 은폐하려는 지역 유지라는 구도는 이후 하나의 클리셰로 자리잡는다.[45]워낙에 인기가 많고 센세이션에 가까운 반응을 일으킨 작품이라 전 세계적으로 해수욕장 인파를 크게 줄이는 현상까지 발생시켰다. 이 때문에 당시 해수욕장의 경영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웬수 같은 영화인 셈.[46]
여러 명장면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놀라게 하는 장면 1순위로 뽑히는 건 벤의 부서진 보트에서 잠수한 후퍼가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이다. 시체가 나오는 순간의 BGM이 마치 비명소리 같아서 더 무섭다. 유튜브 댓글을 봐도, 이 장면 때문에 트라우마 생겼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점프 스케어의 표본으로 호평받았으며, 유튜브엔 아예 이 장면만 가지고 분석 및 평가를 한 영상도 존재한다. KBS와 EBS에서도 그대로 방영했다. 다만 KBS의 첫 더빙 방영에선 나왔지만 1980년대 후반 방영 및 이후 방영에선 삭제했다.
퀸트가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의 생존자임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기 한참 전에 나온 영화지만 제대로 묘사했다. 참고로 퀸트의 유명한 독백 장면은 제작하는데 퀸트의 배우인 로버트 쇼가 꽤나 크게 기여했다. 쇼는 배우임에 동시에 뛰어난 작가이기도 했는데, 퀸트가 상어를 그렇게나 싫어하는데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 생각해서 그 장면의 대사를 쓰는데 큰 기여를 했다. 뛰어난 대사와 로버트 쇼의 명연기가 합쳐져 명장면이 만들어 졌는데, 이 장면을 보면 후퍼가 퀸트를 경외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다. 배우 리처드 드레이퍼스는 이때 자신의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 로버트 쇼의 연기에 정말로 매료가 되어 나타난 표정이라 밝혔다.
퀸트의 배인 “오르카”호는 실제 배가 아니라 모형이었다. 물론 배우들이 타야 하므로 실물 크기 모형이었으며 길이가 약 12미터인 목제 모형 선박이었다. 그냥 보트를 썼으면 훨씬 싸게 먹혔겠지만 모형(애니매트로닉) 상어가 배를 박살내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특수효과가 내장된 배가 필요했다. 모형은 두 개였는데, “오르카 1”은 모터가 달려 실제 항해하는 장면에 사용되었고 “오르카 2”는 상어의 공격으로 침몰하는 장면에 사용되었다. 영화의 오르카는 소설에 묘사되는 퀸트의 배보다 작은데, 예산 때문에 모형을 크게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덩치 큰 아저씨 세 명이 와글거리기에는 좀 작은 배였다. 브로디 역의 로이 샤이더의 “더 큰 배가 필요해”는 애드립이었다고 하는데, 중의적인 개그였던 셈이다.
영화 최후반에서 퀸트가 끔살당하는 장면 역시 유명하며, 작중 내내 부분적으로만 모습을 비춘 식인 상어가 전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국내 지상파 초기 방영에는 그대로 나왔으나 말이 많아서인지 이후 방영은 부분 삭제되어 상어에게 물리고 그냥 그대로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나왔다.
후퍼는 원래는 거대 상어를 관찰하기 위해 찾아온 해양학자지만, 상어를 죽일 준비도 해 왔으며 작살총에 맹독인 스트리크닌 용액을 넣어 상어와 대결하려 한다. 브로디도 이걸 보고 배워, 속편인 죠스 2에서 총알의 탄두에 청산가리를 발라 리볼버로 발사해 상어를 잡아보려 했다.
국내 방송에서는 1984년 1월 2일 KBS 1TV에서 신춘대작시리즈 일환으로 첫 방영했는데 스필버그 영화 중 처음으로 더빙한 영화이다. 그 뒤로도 명절 특선으로 여러 번 재방영했고, 1991년 8월 10일 KBS 《토요명화》에서 재방영한 후, 2004년 8월 1일 《명화극장》에서도 방영했다. 송두석(마틴 브로디 역), 김병관(퀸트 역), 김도현(매트 후퍼 역), 최응찬(래리 본 역), 박민아, 이윤선, 장정진 등이 더빙에 참여했다. 초기 상영 등급은 미성년자 관람불가였으나, 2000년대 초 DVD 심의에서는 12세로 떨어졌다.
그 와중에 《백상어》(Blue Water, White Death)라는 영화가 1976년에 개봉했는데, 포스터만 보면 무슨 죠스 아류작 같으나, 이 영화는 피터 짐벨이 연출한 1971년 상어 다큐멘터리 영화로 《죠스》보다 훨씬 먼저 나온 영화다. 이 영화는 서울 관객 7만 8천을 기록했다고 한다.
참고로 《죠스》에는 원작 소설가 피터 벤클리가 카메오로 출연했다. 중후반에 애미티 해변에 서서 상어 관련 뉴스를 방송하는 리포터로 나온다.
역대급 히트작임에도 필름 관리는 영 엉망이였는지, 훗날 블루레이/DCP 작업 당시 필름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스필버그 이름값 때문인지 복원 자체는 잘된 편이며, 유니버설 스튜디오 공식 유튜브 채널에 의하면 2020년 6월에 4K UHD 버전을 UHD 블루레이로 출시했다고 한다.
스필버그는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농담을 하는 줄 알고 웃었으나 이후 음악을 계속 들어보니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론 음악 덕분에 영화가 산 것 같다고 소감을 남겼다. # #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로 인해 상어의 남획이 늘어나 개체수가 줄었다며 오늘까지 후회한다고 밝혔다. 스티븐 스필버그 "'죠스' 이후 상어 남획…오늘날까지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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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장편 연출 작품 (TV 영화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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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랜드 특급 죠스 미지와의 조우 1941 레이더스 E.T. 환상특급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 컬러 퍼플 태양의 제국 영혼은 그대 곁에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후크 쥬라기 공원 쉰들러 리스트 잃어버린 세계: 쥬라기 공원 아미스타드 라이언 일병 구하기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캐치 미 이프 유 캔 터미널 우주전쟁 뮌헨 인디아나 존스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워 호스 링컨 스파이 브릿지 마이 리틀 자이언트 더 포스트 레디 플레이어 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파벨만스 더 디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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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스 | 록키 | 스타워즈 | 그리스 | 007 문레이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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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우리 눈에 익숙한 영화 죠스 포스터의 솟아오르는 상어는 백상아리가 아닌 청상아리다. 화가 로저 카스텔이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 있는 청상아리 표본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렸다고 한다. 영화 죠스 포스터의 상어는 청상아리[2] 북미 박스오피스 역대 7위 #[3] 재미있게도 영화 쥬라기 공원 역시 원작 소설 쥬라기 공원이 출판되기 전부터 스필버그가 판권을 사들여 제작했다.[4] 참고로 해당 영화는 결국 사랑은 비를 타고로 유명한 스탠리 도넨(1924~2019)이 연출하고 버트 레이놀즈, 진 핵크먼, 라이자 미넬리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1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본전치기인 2440만 달러를 버는데 그쳐 죠스와 달리 잊혀진 영화가 됐다.[5] 죠스가 성공한 이후 스필버그는 정말 자신이 만들고 싶은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1977년에 개봉한 《미지와의 조우》이며 주연은 죠스의 맷 후퍼를 연기한 리처드 드레이퍼스다.[6] 황금시간대에 최초로 TV에 광고한 영화이다.[7] 해변에 MT를 온 대학생 일행으로, 자기와 눈이 맞은 남학생을 유혹하려고 이른 아침에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하다 행방불명된다. 남학생은 과음 때문인지 물에 들어가려다 그냥 해변에 쓰러져 곯아떨어져 살았다. 배우는 스턴트우먼 출신 수잔 백클리니, 이후 스필버그의 차기작 《1941》에 수잔 백클리니가 수영하는 여인으로 등장하여 죠스를 셀프 패러디한다.[8] 시장이 검시관마저 매수해 다른 수가 없었다.[9] 개가 희생되는 장면은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바다 위에 개가 가지고 놀던 작은 나무토막이 떠다니는 장면으로 암시한다.[10] 해당 장면은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한 영국에서 굉장히 많은 비난을 받았다. 21세기에도 영화계에서는 어린이의 잔인한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을 거의 금기시하는 것은 물론 이렇게 어린이가 갈기갈기 찢기는 장면을 삽입하는 경우는 없다.[11] 후반에 상어를 잡기 위해 주인공 일행과 배를 타고 나가서 나누는 이야기 중 이 양반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그가 당시 탔던 배는 바로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 그리고 여기서 상어들에게 전우들을 잔뜩 잃은 뒤 상어 사냥에 종사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12] 이 돈을 노린 어느 두 어부는 요리에 써야 할 닭고기를 아내 몰래 들고 나와 나무로 된 부두 위에서 상어 낚시를 시도한다. 그러나 상어의 힘이 너무 세서 낚싯바늘을 연결한 줄을 묶어놓은 부두가 부서지는 바람에 부두 위에 있던 한 명이 바다로 떠내려가게 된다. 그 어부는 상어가 끌고 가던 나무토막에서 내려와 해안으로 헤엄치는데 뒤에서 그 나무토막이 어부를 쫓아오기 시작한다. 상어가 쫓아오는줄 알고 정신없이 헤엄쳐 해안에 도착하니 그 나무토막이 해안에 밀려오는데 알고 보니 상어가 쫓아온 것이 아니라 그냥 파도에 떠밀려 해안에 도착한 것이었다. 어설픈 도구로 상어를 잡으려다 미끼만 잃고 목숨만 겨우 건진 것이다.[13] 이 상어는 크기가 고작 5m 이하에 불과하다.[14] 처음에는 브로디도 그 뱀상어가 식인 상어라고 생각했지만, 후퍼는 너무 입 크기가 작다면서 해부해봐야겠다고 한다.[15] 이 배역을 맡은 리 페이로는 죠스: 더 리벤지에 카메오로 잠깐 얼굴을 보인다. 2020년에 코로나 19 합병증으로 인해 91세로 사망했다.[16] 범고래를 뜻한다. 백상아리의 천적이 범고래이고, 퀸트가 상어 사냥꾼인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적절하고 의미심장한 네이밍 센스.[17]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오르카호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죠스 라이드에 전시되었는데, 스필버그는 종종 홀로 찾아와서 몇 시간식 오르카호의 갑판에 머무르며 재난 그 자체였던 죠스의 촬영 기간 동안 생긴 트라우마를 떨쳐내고자 노력함과 동시에 추억에 잠겼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방문한지 5~6년 후 다시 방문했을때 오르카호가 단지 낡았다는 이유로 철거되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노발대발했다고. 유니버설은 영화사에 있어 의미있고 중요한 물건을 아무렇게나 폐기하는 것으로 악명높다. 자기들 권리라 뭐라고 말은 못 하지만 이 탓에 영화팬 및 관계자들의 반감이 높은 편이다.[18] 영화 내 묘사로는 약 25피트(약 7.62 m)에 3톤가량. 보통 백상아리가 4~5 m에 1~1.5톤 전후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크기다.[19]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소설에는 이에 관해 퀸트가 재미있는 말을 한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큰 물고기를 봤다고 떠들 때 그들이 말하는 크기에서 절반을 빼면 그 물고기의 실제 크기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 (낚시꾼들의 경우를 보면) 실제로도 상당히 신빙성 있는 이야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싸울 백상아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 컸다.[20] 상어가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내는 부분은 러닝타임 80분 쯤이다. 참고로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은 전체 110분 정도다.[21] 특히 전형적인 뱃사람인 퀸트와 부자집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후퍼는 처음부터 삐그덕거리며 서로의 방식을 디스한다. 막무가내로 자기 방식을 강요하는 퀸트에게 후퍼가 working class hero crap이라고 화내기까지. 나중에는 술에 취해 이런저런 인생썰을 풀다가 마음을 어느정도 연다.[22] 참고로 이전에 브로디가 무선으로 비상호출을 시도하려 했으나 상어와의 정면승부를 원하는 퀸트가 무전기를 박살내버렸다.[23] 이때 "웃어라, 이 개자식아!(Smile, you son of a bitch!)"라는 명대사를 날려준다.[24] 실제로 알루미늄 제질의 공기통은 영화 속처럼 총 한 발에 터지지 않의며, 제작진들도 원작자가 지적했기에 이 점은 알고 있었다. 다만 공기통이 터지는게 더 극적일 것이라 생각했기에 이 장면을 넣었다.[25] 완벽한 모비 딕의 오마쥬로 에이해브 선장의 최후와 연출이 같다. 작가 스스로 공인했다.[26] 참고로 버틀러는 22년 뒤에 다시 동물 재난 영화 《아나콘다》의 촬영 감독을 맡았다.[27] 또한 후술할 상어 애니매트로닉스 문제 때문에 유니버설 픽처스가 자신을 해고할까봐 상당히 두려웠다고 밝혔는데, 만약 죠스가 실패했다면 지금의 스필버그를 보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28] 원작 소설의 극초반에 사람이 공격받는 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했지만 상어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29] 예를 들자면 듀얼의 난폭 트럭 운전사, 미지와의 조우의 우주인, 쥬라기 공원의 티렉스도 일부분만 보여주다가 후반에 제대로 나온다.[30] 로저 코먼과 조 단테도 죠스 아류작 피라냐를 연출할 때 이런 점을 그대로 썼다. 반대로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 데뷔했다 이탈리아인 제작자의 농간으로 해고된 피라냐 2는 카메론이 로저 코먼에게 영화가 왜 망했냐고 물어보자 피라냐를 너무 빨리 등장시켰다는 답변을 들었다.[31] 이 장면에서 케이지에 다가오다 사라지는 부분, 케이지를 박은 뒤에 카메라에 등지느러미와 얼굴이 나오는 부분, 후퍼가 탈출한 뒤 케이지를 박살내면서 몸부림 친 뒤에 돌아가는 부분에 나오는 게 진짜 백상아리다. 스필버그에 의하면 호주의 저명한 상어 전문가이자 사진가 론 테일러와 발레리 테일러 부부의 도움을 받아 호주 연안에서 실제 상어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전에 두 부부가 샤크 케이지 없이 상어 다큐멘터리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청한 것이라고 한다.[32] 백상아리가 케이지를 망가뜨리는걸 보고는 너무 쫄아서 선실의 문을 걸어잠그고 안 나올 정도였다고... 때문에 발레리 테일러가 버터칼로 문을 따고는 출연비를 생각하라며 설득할 정도였다고 한다.[33] 정확하겐 극장과 나눠먹기 하고 남은 스튜디오의 순수익을 의미. 〈죠스〉 이전 기존 1위는 〈대부 1〉의 8,600만 달러.[34] 개봉 첫 주 409개 영화관에서 상영했다.#[35] 미국의 노동절은 그해 9월 첫째 월요일이지 5월 1일이 아니다.[36] 여담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이후 재개봉 기록도 만만치 않다..#[37] 이런 연유로 〈대부 1〉은 23주 연속 역대 최장기간 박스오피스 1위 기록도 가지고 있지만, 기네스북은 1997년 12월에 전 세계 동시 개봉한 〈타이타닉〉의 15주 연속을 공식으로 친다.#[38] 〈대부 1〉 이전엔 극장 주인마다 스튜디오에 요구하는 수익 분배율이 다 달랐고, 다음 영화 개봉 시 매번 분배율을 다시 정했다고 한다.[39] 블록버스터란 용어 자체가 한날한시에 행해지는 융단폭격 또는 그런 용도로 만든 폭탄에서 만들어진 용어다.[40] 당시 흥행 1위는 41만을 기록한 《와일드 기스》다.[41] 감독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 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사실에 대해 굉장히 분개했다고 한다. 당시 영상 다만 그 자리에 오른 감독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연출한 밀로스 포먼이다. 제4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치열한 회차로 꼽히고 있다.[42] 수십년이 지난 2000년대에도 이 영화의 줄거리를 베이스로 한 게임 '죠스 언리쉬드'가 출시된 점을 보면 알 수 있다.[43] 예를 들어 첫 희생자가 나오는 도입부의 상어의 습격 장면. 물 밑에서 보이는 상어 시점의 연출이나 공격을 하는 존재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부분 등은 당시로서는 놀랄 만큼 신선한 연출이었다. 괜히 가장 인상적인 영화 오프닝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게 아니다.[44] 공포감 넘치는 음악 외에도 간간히 나오는 웅장한 음악 역시 굉장히 호평받는다.[45] 이런 점 덕에 기예르모 델 토로도 이 작품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46] 실제 몇몇 해수욕장 운영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려고 했었다. 더불어 이 영화 때문에, 전 세계에서 상어 사냥을 명분 삼아 전혀 해가 없는 상어들도 마구잡이로 사냥당했다. 현실에서는 1년에 상어에 의한 인명피해는 10명 정도지만 상어는 한 해 많게는 1억마리 이상 사냥당한다. 그래서 상어 보호단체와 연구자들은 이 영화를 왜곡이 가득하다고 비난했고, 결국 스필버그와 벤츨리는 상어 보호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며 그들을 다독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