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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30 08:10:01

[삼국지] 조조군의 천리마/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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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인공 일가3. 조조 세력
3.1. 조조3.2. 조조의 아내3.3. 조조 일가3.4. 하후씨 일가3.5. 조조의 친척 일가3.6. 장수진3.7. 참모진3.8. 그 외
4. 한 황실5. 여포 세력6. 원술 세력7. 원소 세력
7.1. 원소 일가7.2. 장수진7.3. 참모진
8. 유비 세력
8.1. 유비 일가8.2. 장수진8.3. 참모진
9. 손견 세력
9.1. 손씨 일가9.2. 장수진9.3. 참모진
10. 유표 세력11. 유장 세력12. 서량 세력13. 한중 세력14. 기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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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웹소설 [삼국지] 조조군의 천리마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2. 주인공 일가

2.1. 조휴

어느 날 갑자기 조휴가 되어버린 삼국지 덕후 주인공.
후한
(조조)
연주 병조종사 (兵曹從事)
기도위 (騎都尉)
군사교위 (軍師校尉)
성문교위 (城門校尉)
무군중랑장 (撫軍中郞將)
비장군 (卑將軍)
편장군(偏將軍)
영군장군(領軍將軍)
전장군(前將軍)
거기장군(車騎將軍)
대사마(大司馬)
자는 문열-> 자열.[1] 원래는 삼국지를 매우 좋아하는 삼국지 덕후 현대인이었으나 어떤 설문조사를 한 이후 갑작스럽게 삼국시대에 떨어지게 되었다. 작중 설정으론 174년생.[2]

삼국 시대에 떨어지고 20살 무렵까지는 자신의 출생 등을 전혀 모른 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오군에서 농사를 짓고, 도적떼를 피하며 험난하게 살아갔으나[3], 20살이 되기 직전 아버지의 전우를 스승으로 삼아 글과 무예를 배우고, 20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이름과 자를 알게 된다.[4] 이후 어머니와 스승의 곁을 떠나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과 그 일가를 찾아가던 중 우연히 수적의 습격을 받고, 이때 같이 수적의 습격을 막아낸 협객 서서와 친분을 가지게 된다. 그 뒤 당시 서주의 독립호족인 노숙의 도움을 받아서[5] 그 집안의 협객 20명을 지원 받아 조숭 일가를 만나고, 족보를 확인한 후 조숭에게 환영받는다. 그렇게 조숭 일가에 합류 후 원 역사에서 조숭 일가를 참살한 장개가 조숭 일가를 습격하지만, 서서와 함께 장개로부터 조숭 일가를 지켜내고 조조군에 들어가게 된다.

장수로서의 강함은 상당한 편으로, 작중 세계관 최강자급으로 꼽히는 관우-장비-여포-전위 급에는 못미치나 그 아래 수준의 상대들과의 싸움에선 크게 밀리지 않는다. 조순의 휘하에서 호표기 훈련을 받으며 마장마술 실력이 급상승했고, 여기에 유비가 서주에서 쫓겨나 조조의 세력에 의탁할 당시 유비에게 마장마술, 장비에게 돌격 후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법, 관우에게 일대일 상황에서의 창술 및 검술을 배워 더욱 강해졌다. 강함에 대해 매우 엄격한 관우가 자신이 인정할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작중에서도 대적할 이가 거의 없는 강자.[6]

현대인 출신에 삼국지 덕후라서 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조조의 평판 상승과 천하 제패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손을 쓰는 모습이 간간이 나오는데, 이 중에서도 최고의 업적은 조조 최대의 악업이자 후대에도 조위 빠들마저 쉴드치지 못하고 당대에도 조조의 평판을 나락으로 처박은[7][8] 서주 대학살을 막아낸 것이다. 대신 벌어진 사건이 서주의 백성들을 연주로 이주시켜 그대로 흡수한 서주 대이동으로, 우리가 잃은 금은보화가 가득 담긴 수레 100대만큼 곡식과 누에 작물로 갚게 하자고 제안해서 통과된 것이다.[9] 어느 때나 마찬가지지만 삼국지 시기는 난세이기에 물자의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이 더더욱 중요한데, 이를 충당할 수 있으니 조조도 제안을 승인한다. 덕분에 조조의 이미지 박살도 막았고, 예나 지금이나 중요 자원인 인력 수급을 했으며, 추후 흉년이나 홍수 같은 자연적인 요소가 아니라면 사람이 사는데 있어 필수적인 의와 식에 들어가는 곡식과 누에 작물을 풍족히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조휴의 업적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업적으로 꼽히며, 실제로 관도대전이 한창 진행중인 211화에서 언급되길 연주에서 둔전으로 대량의 군량미가 생산되고 있으며 서주가 초토화되지 않아 소금과 철을 풍족히 얻고 있다고 언급된다.

두번째 업적은 완성 전투의 참극을 막고 장수를 완전하게 포섭했다는 것이다. 원 역사에서 조조는 당시 상중이던 장수의 형수 추씨 부인을 취하려다가 장수의 분노를 사서 기습당했고 그 전투에서 대패한 건 물론, 전위와 조앙, 조안민을 모두 잃었다.[10] 이를 알기에 조휴는 조조랑 추씨가 만나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았으나, 조안민의 트롤링으로 결국 조조가 추씨를 보러 가게 된다. 물론 만반의 준비를 해도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완성의 항복 여부가 진짜인지 확인한다는 핑계로 조조보다 앞서 장수 일가를 만났고, 이때 추씨를 만나 그녀를 설득해 한동안 외출할 때 일부러 기괴하게 화장시켜[11] 조조가 추씨 대신 다른 시비를 데려간다.[12][13] 물론 장수는 숙모는 무사했더라도 숙부의 사당을 헤집은 것과 사당 일을 하는 시녀를 술시중 하라고 데려간 사실 때문에 불쾌해했지만, 가후가 옆에서 잘 달래고 조휴가 조조의 행동에 대해서 대신 사과했으며 장수 본인도 숙모를 재혼시킬 생각은 있었기에 그냥저냥 넘어갔다. 이후 건방지게 황제를 참칭한 원술 토벌 때 가후를 통해 군량과 병사를 지원하고, 의대조 사건 때는 장수가 스스로 군을 이끌고 지원을 온 것은 물론 추씨를 조조에게 데려와 재혼시켰고 관도대전이 한창인 211화에서 장수가 있는 완성과 여강성이 장강 이북 방어선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고 나온다.

세번째 업적은 동승과 유협이 합심한 조조 세력 죽이기가 실패로 돌아간 후, 당시 회임 중이던 동승의 딸 동귀인의 처형 집행을 막은 것이다. 본디 조조는 동 귀인도 동승의 여식인데다 동 귀인이 낳은 애가 제 가족이 죽은 것을 나중에 알면 분란을 일으킬 것이라 여겨서 가차없이 죽이려 했으나, 조휴는 고작 애 하나일 뿐이고 집안도 몰살되었으며,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고[14] 그 애가 장성해도 백부님은 여전히 건재하시고 우리 집안이 더욱 강성해질건데 이쪽은 멸문한 가문의 황실 서자일뿐이라고 설득했다. 여기에 완성의 참극을 피해 살아남은 맏아들 조앙마저도 중간에 끼어들어 조휴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자[15] 결국 조조마저 백기를 들고 동귀인을 처형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삼공, 삼사, 외조, 내조, 원로들 모두 황실의 충신이라면서 죄다 귀머거리에 벙어리인데 자신의 행동이 옳지 못하다 막는 건 내 아들들뿐이냐며 비웃어준다.[16]

그 외에도 원래라면 죽었을 인재들을 찾아 그 인재들이 죽지 않게 하거나, 병영의 위생[17]을 철저히 관리해 열외인원이 나오지 않게 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한다. 여기에 군을 이끄는 장수로서 부하들과 병사들의 관리 및 신상필벌도 잘 해내고 있어서 조휴 휘하의 병사들은 모두 조휴에게 충성심이 높다.

서주 정벌이 끝난 후에 조조가 조휴가 어디 정벌할 때마다 아내 하나씩 늘어나겠다며 놀리고, 이에 조휴가 노린건 아니나 이름난 집안의 절색 미녀인데 집안이 몰락했다보니 처가 등쌀이 없어 편하다고 했는데, 하필 이 말을 들은 조조가 이상한 스위치가 눌리는 바람에[18] 비리 혐의 조사랍시고 자기 처가등을 신나게 들쑤셨다. 정 부인, 변 부인이 걸렸고[19] 조홍도 집안에서 도박장을 연 것 때문에 측근인 황보경이 잡혀가는 등 조씨+하후씨가 다 난리가 났다.[20] 결국 자기 입방정으로 집안에 풍파가 몰아친거라 여긴 조휴가 조숭에게 상담을 하고 조숭과 그의 애첩이자 위홍 상단 출신인 아유[21]에게 답을 듣는다.[22]

여러가지를 알려주고 조숭은 정보료로 수춘 밑 여강의 영지 버섯을 요구하는데, 여기서 계책이 떠오른 조휴는 숙부들을 모아서 여강성과 환성 등에 남은 원술의 잔당을 박살내자고 제안한다. 전쟁을 핑계로 허도를 떠나 화를 피하잔 이야기인데, 조홍이 자금 문제를 지적하자 연주 숙모님 포함 연주의 귀부인들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계를 만들었는데 그 자금이 차압되었고 그외에도 안민의 아버지인 둘째 숙부가 호족 갈취 혐의로 갈취한 재산 차압, 변 백모님의 아우인 도향후도 뇌물 수수 혐의로 재산 차압 상태인데 그게 다 검은 돈이니 그 돈을 군자금으로 털어 증거를 날려 억류된 분들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게 하자고 제안해서 급한 불을 끈다. 그럼에도 이 사건으로 무려 50개 가문이 처벌을 받았는데, 그것도 적당히 넘겨줄 수가 없는 큰 죄를 지은 건만 처벌했다.[23] 그러나 이 사건에서 복귀인의 가문인 중산대부 복완의 집도 휘말렸고, 유협은 동탁이라는 희대의 악적에 시달린터라 조조도 동탁처럼 변해가는 거라고 두려워한 나머지 동탁에게 시달린 트라우마가 재발, 조조도 동탁과 다를 바 없는 악적이라 보게 되어 동승과 모의해 의대조 사건이 터지게 된다. 사건은 원역대로 실패했으나, 조휴와 조앙이 나선 덕분에 임신 중인 동귀인은 처형을 면하고 해산일까지 형을 유예했다.

관도대전이 터지기 전에 원소가 진림의 붓을 빌려 조씨 3대를 싸잡아 모욕하는 글을 써보내고[24] 이에 조씨+하후씨 모두 뒤집어지고 조조가 조휴에게 답신을 맡기는데[25] 조휴가 읊은 그 내용이 실로 걸작이다.[26]
대장군 겸 기주목인 업후 원소에게 보내는 전언.
대장군은 본디 4대에 걸쳐 삼공을 배출한 명문 원가의 장자이며, 의협심이 깊고 충과 효를 갖춘 당대의 기린아시오.
어린 시절 효심이 깊아 부친과 모친의 임종에 각각 3년 상을 치러 6년동안 돌아가신 부모를 부양했으니 당대의 효자이며 유자의 상징이라 할 수 있소.[27]

삼년 상으로 효를 알리고 역적 동탁을 토벌하는데 충을 알린 시대의 기린아는 어찌 이리도 변했는가? 그대의 총기는 황하의 강물처럼 혼탁해졌고, 마음속의 의협심은 북망산에 파묻었으며 명석한 지모는 이미 흑산적의 두건 색깔과 같이 어두워진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천자께서 하사하신 부월의 피맛을 보고 맹수가 되었단 말인가?[28]

맹자께서 말하시길 인간은 본디 선하게 태어났고, 그대 또한 효와 충으로 선함을 가진 영웅이었거늘 어찌 이다지도 비열한 격문을 써보내는 모략이 생겼고, 어찌 이다지도 감정이 타락 하였는가? 한낮 저잣거리의 왈패들도 싸우다가 이런식으로 집안 모욕은 하지 않는 법이다.[29]

군자는 예를 갖출 때야 군자인 것이다. 그대가 정녕 사세삼공의 명가 원가의 품격을 갖췄다면 이런 필부와 같은 모욕을 삼갈 것이고, 천자께서 하사하신 부월을 가지고 그런 모욕적인 격문을 쓴 자의 목을 내리쳐서 상호간의 존중을 이뤄야 할 것이다. 천자께서 계신 허도에서 사공부가 대장군에게 보내는 진심이다.
이에 대해서 현대인 출신이라 협곡에서 단련된 패드립이라고 드립치는 댓글도 있다. 이 걸걸한 입담은 나중에 원소의 둘째 아들인 원희, 원소의 조카인 고간과의 싸움에서도 잘 드러나며, 말빨의 연장선상으로 상대에 대한 도발 및 티배깅에도 능하다. 이 도발에 제대로 걸린 게 손책, 주유, 그리고 고간.[30]
이게 누구신가! 원가에서 가장 못난 오리새끼인 원희가 죽으려고 황하를 내려왔구나![31]

원희야! 저승에 있는 네 형이 너를 부르나보구나. 내가 이 자리에 온 순간, 넌 살아서 황하 이북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지난번 안량, 문추, 순우경 뒤에 숨어서 손가락만 까딱이던 필부 놈아! 냉큼 나와서 웃통 벗고 사죄를 하던지, 아니면 달려와보거라. 열합 안에 그 모가지를 쳐 주마!

하북을 차지한 큰 도적놈의 아들아, 네 아비가 죽어서도 그 큰 땅을 차지할 수 있을 성싶더냐? 아니, 네놈의 실력으로는 성 하나도 간수하기 힘들거다.[32]
205화에서 원희 상대로 한 도발.
원희란 놈이 어머니를 버리고, 천하절색의 명문가 부인을 버린 것을 보니 필시 그놈은 패륜아이면서 미인 말고 추녀를 좋아하는 이상한 성벽을 가진 놈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놈과 친족인 고간 네놈도 그 상판떼기가 궁금하긴 하구나!

아직도 그 지지리도 못난 개돼지 원상과 원희를 따를 것이면 이것을 잘 보거라! 오죽 못난 놈들이면, '남편의 구실도 할 줄 모르는 놈' 대신 나에게 '순종 맹약의 증표'로 벽옥의 비녀를 바쳤구나? 이 전투 끝나고 가서 '지고지순한 견소저 셋'과 회포를 풀리라!
227화에서 고간 상대로 한 도발.

하북 정벌이 한창이던 건안 9년, 조씨 일가의 큰 어른인 조숭이 노환으로 인해 향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조씨 일가이니 조문을 가겠다고 말을 꺼내는데, 문제는 하북에서 장례식 장소인 허도까지 왔다갔다 하는 데에만 시간이 엄청 소요되어서 자칫 전장에 제때 돌아갈 수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가겠다고 결정하여 이야기를 넌지시 견복 쪽에 꺼냈고, 이에 견씨 자매들이 장례에 쓸 금루옥의를 만들때 보태라며 남은 가산과 장신구를 내어준다. 이후 하후돈에게 허도로 가겠다고 하자 하후돈은 여기서 허도까지 천리길이라며 만류하나, 조휴의 의지를 본 곽가는 하북의 전황을 적은 보고서를 건네서 효심도 있고 최전방의 상황을 상주인 승상께 보고하는 전령으로 프레임을 씌워준다. 하후돈에겐 추모 시를 적어 주라는 건 덤. 그렇게 잠도 안자고 미친듯이 천리길을 달려 허도에 도착하고[33] 당연히 문상 온 이들은 모두 깜짝 놀란다. 물론 이러한 행동이 지탄받을 이유는 전혀 없었기에[34] 조조를 비롯한 일가 모두 조휴에게 고마움을 표했고[35], 공융은 전쟁보다 효심을 앞세워 오니 이는 후대에 기록될거라고 감탄했으며[36], 돌아온 후 하후돈과 곽가, 양수도 고생했다며 조휴를 칭찬했다. 더불어 조휴의 행동을 본 가후가 그에게 확실히 미래가 있다고 보았는지 주령과 더불어 조휴를 돕고자 같이 하북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가후는 유부인을 설득 반, 협박 반 해서 원희와 절연하고 견강을 원가랑 갈라서게 하여 조휴가 강탈복 세 자매와 문제 없이 결혼할 수 있게 해줬다. 이후 이 천리조문은 사방에 퍼져서 조휴의 명성이 되었다.

237화에서 그간의 공적을 인정받아 처음으로 후작의 직위를 받았고[37], 형주 도양에 위치한 영지를 받아 도양정후로 봉해졌다. 조조가 받은 김에 아내들과 같이 가서 땅을 보라고 권해서 조휴는 원경, 여명, 복은이랑 동행하고 여기에 유엽이 같이 붙어서 도양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장수와 장간을 통해 형주의 움직임과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간자들의 침투에 대해 알게 되는데, 절묘하게도 장간이 찾아와 이야기를 들은 직후 살수들이 조휴를 습격해온다. 그리고 살수 중 하나를 심문해본 결과 형주의 괴씨 일족의 누군가가 도양과 의양 일대를 정찰하고 군의 움직임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는 것을 알아낸다. 다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라서 알아낸 바들을 조조에게 전하는 한편, 장간에게 형주 내부에서 수경 선생과 제갈씨 성을 쓰는 이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조조를 지지하는 파를 최대한 지원해줄 것을 부탁한다.

254화에서 순욱의 제안으로 정보 부서가 새로 신설되면서 조조는 조휴도 그쪽으로 들어가도 괜찮을 거라 여겨 제안하나, 조휴는 정보와 감찰 쪽보단 군무 쪽에 좀 더 마음이 있어서 다른 생각을 넌지시 말하고, 조조는 이에 크게 웃곤 너도 오랜 시간 비장군이었으니 직책을 올리고 추후 호표기-청주병-함진영의 통합 사령부서가 만들어지면 그곳에 너를 넣어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255화에서 조비의 진언으로 유비 암살과 형주 원정을 동시에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조휴는 남양 쪽으로 내려가 조인, 조순 등과 함께 형주 원정에 나서기로 한다.

그런데 형주 원정에 가기 전, 유비 암살 작전을 진행하는 곽가가 유비의 암살 관련 암시를 유비 측에게 알릴 것을 종용하는 서신이 장간을 통해 조휴에게 몰래 도착한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대교의 딸 강미가 곽가가 보낸 또 다른 서신을 가져다주는데, 마침 도착한 교사부의 하후상이 조휴를 몰래 불러 일전에 장간이 보낸 것은 교사부 내에서 제대로 된 일처리 수습의 과도기라 경황없이 보낸 거라고 사과한다. 즉, 이번에 강미를 통해 보낸 게 곽가가 제대로 전달하는 밀명이라는 것. 그리고 그 내용은 먼저 보낸 내용을 꼭 따르고, 의문이 들겠지만 교사부의 책략이니 나를 믿는만큼 움직이면 결실이 있을 거다라는 내용이 곽가의 말투로 적혀있었다. 이에 조휴도 곽가를 믿고 움직여서 유비가 머무는 신야로 진군, 그곳에서 관우를 다시 만난다. 관우의 초대를 받아 다시 유비와 장비와도 재회하고, 간단히 술자리를 가지면서 조휴는 곽가의 말대로 유비의 목숨이 노려지고 있음을 넌지시 알린다. 이후 259화에서 하후돈이 신야 쪽을 공격하고 물러난 뒤 조인이 자신이 받은 교사부 내용을 알려주고, 그 내용을 들은 후 그간 있었던 일을 토대로 교사부의 유비 암살 계획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어느 정도 추론해낸다. 그리고 261화에서 조인과 하후상을 통해 유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지나, 일단 정신줄을 잡고 신야 쪽 방어를 맡으러 간다.

신야 쪽에서 관우가 군사를 일으키고, 관우는 조조군에 대한 분노도 없진 않았으나 실행범인 채모와 그 형제들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컸고, 조휴와의 인연 때문에 조조군에게는 분풀이하지 않고 바로 번성으로 향한다. 그렇게 관우와 헤어진 뒤 조휴는 형주 북서부의 상용과 주변 현들을 정리하고 형주의 명사들과 호족들을 포섭하기 시작하고, 황승언을 통해 제갈량을 만나 그가 조언한 내용을 따라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함부로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형주의 명사와 호족들에게도 지지를 받게 되었다. 여기에 채옥 모녀가 타고 있던 거대 몽충함을 확보하여 그 안에 있던 채옥 모녀와 호위대장 문빙은 물론, 채모의 비첩 200명까지 조조에게 데려간다. 그 뒤 양양과 번성에서 유비군이 강릉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추격에 나서고, 추격 중 유봉의 두 여동생이 있는 마차를 나포한다. 일단 둘은 일가 쪽으로 보내두고 다시 추격전에 돌입하는데, 유비군의 저항이 거세서 전만과 하후충이 부상을 입고 다른 조조군의 장수들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포구 쪽까지 추격하는 데에 성공하나, 장비를 막던 조비가 중상을 입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태가 된 것은 물론, 유봉을 추격하게 보낸 하후무는 조비 부상에 눈이 돌아가 유봉 추격을 관두고 조비를 구원하러 가는 대형 실책을 저질러버린다.

이로 인해 조비의 부상 문제까지 더해져 조조는 하후무와 이전을 당장 죽이겠다고 날뛰지만, 곽가와 다른 장수들이 필사적으로 제지해서 일단 진정하고 조비의 목숨에 따라 둘의 처형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다. 그리고 다행히 조비가 목숨을 건졌지만, 유봉을 놓치는 우를 범한 하후무는 꼼짝없이 곤장을 맞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조휴는 본인이 하후무의 위에 자신이 거적을 깔고 누워서 자기가 대신 곤장을 맞으면서 형벌을 집행한다. 그러나 아무리 갑옷을 입은 상태여도 곤장 50대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기에, 형이 끝난 직후 바로 쓰러져 치료를 받는다. 이후 치료받아 깨어난 후 견복과 대교가 내려온 것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상황을 들은 후 수긍하고, 포로로 잡은 유청-유백 자매를 첩으로 맞이한 뒤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 그 뒤 향후 어디로 갈 것인지 묻는 조조에게 형남 4군의 평정을 제안하나, 천하통일의 대업이 눈앞에 다가오자 마음이 동한 조조는 조비가 제안한 강동 진출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조조가 천하의 패권을 쥐어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다른 세력들은 모두 조조를 필사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한다. 조휴가 노숙을 통해 최후통첩을 전했음에도 손권은 결사항전을 선언하며 적벽 쪽 1군을 기습하고, 익주로 도망친 유비 세력은 유장의 지원과 법정의 배치로 익주와 형주의 최전선인 백제성에서 병력을 모으기 시작했으며, 서량의 마등과 관중제장은 아예 장안과 안정군 쪽으로 내려와 무력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다.[38] 조조는 이에 조휴를 적벽으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조휴는 처음부터 적벽 쪽 진출에 회의적이었지만 조조의 명을 받은 이상 최대한 패배 리스크를 줄이고 아군을 살리기 위해 1군 부도독으로 임명받아 적벽으로 가게 된다.

적벽대전에선 하후돈과 함께 군을 이끌면서 처음으로 대군을 이끈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적벽대전의 과정과 결말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엄청 머리를 쓰고 고뇌하는 모습이 나온다. 특히나 유비의 사망으로 역사가 이미 비틀린 와중에 방통이 주유의 브레인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고생했다. 그럼에도 그간 전장에서 뛰어온 경험과 삼국지 덕후로서의 지식을 앞세워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참모들과 상의해 여러 방안을 마련해둔다. 덕분에 상대방의 거짓 투항과 화공에 대비하여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건 물론 동오 측의 장수들을 여럿 참살하여 상대에게도 큰 손해를 입혔다. 다만 처음으로 대군을 이끌면서 많이 무리했는지, 전쟁 직후 피로로 쌍코피가 터지며 며칠 동안 기절한다. 이후 채옥 모녀의 간호를 받아 몸을 회복한 후에 허도로 귀환, 편장군에서 영군장군으로 승진하고 도양정후를 반납하는 대신 강릉후의 칭호를 받아 새로운 영지를 받았다. 더불어 그토록 기다리던 제갈량이 세 번째로 조휴를 방문하여 그를 따르게 되었다.

적벽대전 당시 심하게 고생한 영향으로 한동안은 집에서 쉬다가, 손권의 기습으로 뺏겼던 여강 일부를 되찾은 뒤 대치하는 동안 형남 4군 정벌을 위해 제갈량, 이전과 같이 내려간다. 그러나 강하 쪽에서 주유도 서진하여 장사군을 먼저 점령하는 바람에 4군 전체 점령은 실패했다. 그래도 무릉과 영릉, 계양을 점령하고 제갈량의 지인인 마량과 장완을 데려왔으며, 장사군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황충도 항복해오면서 여러 인재들을 데려온다. 이 뒤로는 다시 잠깐 휴식기를 가지면서 서량의 관중제장 세력과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서량 세력과의 전투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장합과 함께 장안을 점령한 관중제장의 군세를 막아내고, 조조 쪽에 합류한 뒤에는 마초와 일기토를 벌여 판정승, 방덕 상대로 우위를 보이는 등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전쟁 승리를 이끈다. 이후 마등 일가의 처형을 위해 그들을 끌어냈을 때 자기 여동생인 마지를 칼받이삼아 자신을 죽이려 드는 마철에게 크게 분노, 마지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옆구리를 찔리지만 그 대가로 마철을 묵사발내버린다. 그 후 마지를 정식으로 첩으로 들인 뒤 새 이름을 지어준다.

조조가 위공에 즉위한 이후, 마초가 장비와 손을 잡고 다시 내려오기 시작하고, 손권이 강동 쪽에서 전선을 구축하고 북진을 준비하기 시작했으며, 유장 세력은 형주 쪽으로 진출을 노리기 시작한다. 이에 조조는 조휴를 조앙과 같이 서량 전선에 파견하고, 조휴는 조앙이 장안 쪽을 맡는 동안 안정과 진창 쪽으로 진출, 장비와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승리하고 진창성을 함락한다. 그리고 장비와 마지막 해후를 나눈 뒤 그의 마지막 최후와 유언을 전달받고 조앙 쪽으로 내려가 마초의 후미를 쳐 그를 사살한다. 그러나 서량에서의 승리 이후 안타깝게도 숙부인 조순이 382화에서 병으로 사망했고, 호표기의 훈련을 맡을 대장으로 조휴가 거론되나 이후 찾아온 조앙이 말한 바에 따르면 조순이 그간 맡은 직책을 전부 나눠서 분배하고 호표기를 위공의 직속으로 하는 방안을 제안해서 조휴가 호표기 훈련대장을 맡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앙이 생각한 방침이 받아들여졌고 조휴는 그대로 업성에 머물게 된다.

384화부터는 이제 집안에서도 이름값과 직책, 공적을 갖춘 어른이 되었는지 어린 조카나 동생들을 부탁받는 입장이 되었다. 조조를 만나고 온 뒤 업성에 있는 위홍의 기루를 지나치는데, 화연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가는 위홍의 모습을 보게 되고, 위홍의 조카인 위진을 만나게 된다. 위진의 안내를 받아 오랜만에 위홍의 기루에서 식사를 하던 중, 위진은 요 사이 사대부들 중 몇몇이 동굴의 종유석, 석영과 자수정을 빻은 가루, 업성 북쪽의 황토흙 가루를 술에 타서 먹는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그 중엔 위공의 일가와 관계된 분도 있다는 말을 하고, 조휴는 단약의 정체와 그 단약을 먹는 위공의 일가가 누군지 눈치채고 바로 움직인다.

하지만 한 집안 사람을 무작정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민하던 중 저잣거리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조휴가 급히 그곳에 가보니 온갖 퇴폐적이고 음란한 잔치가 열리고 있었고 거기엔 조휴가 의심하던 인물, 하안이 있었다. 조휴는 화가 나서 하안을 그대로 기절시키고, 다음 날 조앙이 급히 찾아와 무슨 일인지 묻자 조휴는 오석산을 보여주며 이건 계속 복용하면 금단 증상으로 사람이 미치는 독이고, 하안이 어제 벌인 짓거리를 말해준다. 하필 조조가 천식 기운으로 정무를 쉬는 중이라 그의 귀에 들어가면 큰일이 날 상황이라 조앙과 조휴는 처리를 고민하게 된다. 때마침 조비도 찾아와서 어제 하안 외에도 누규의 아들 누예, 사마팔달의 여섯째인 사마진도 있었다고 말하자 결국 뚜껑이 열린 조휴는 이것들을 진짜 작정하고 조져야겠다고 결심한다. 문제는 조휴가 파악해본 결과 하안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정의 청류와 탁류를 막론하고 상당히 많은 사대부들이 엮였고, 그들 중 상당수가 향후 미래를 이끌 젊은 인재들이라 조휴가 작정하고 조지면 위나라의 미래가 그대로 절단나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39]

조휴는 고심을 하던 중 양수와 화흠 등을 통해 조언을 듣고 자신의 장인어른인 복완을 떠올리고, 복완을 찾아가서 재판장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하고 다행히 복완이 이를 받아들여 오석산 사건에 대한 재판을 맡는다. 그 결과 정치적 의도로 해석되지도 않고, 오석산도 금지되고, 하안을 비롯해 처벌 여부에 고심을 앓은 이들도 적절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건안 17년 조조가 위왕의 자리에 오르면서 대규모 인사이동이 벌어지는데, 조휴는 영군장군에서 전장군으로 승진하고 호표기의 대장에 개부의동삼사 자격을 얻어 공식적으로 전장군부를 만들어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다.

395화에서 하후돈과 함께 한중 원정에 나서고, 양평관을 공략하기 위해 샛길을 찾는 과정에서 귀신들린 병사들이 생기는 등 어려움을 겪으나 장간의 도움을 받아 양평관 뒤쪽으로 빠져나와 공격, 399화에서 양평관을 함락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날 병사들을 쉬게 하던 중, 장로의 딸 장예가 찾아와 자기자신을 인질 겸 처첩으로 바치겠다며 일가의 안전을 요청해오고, 조휴는 이를 받아들여 장예의 도움을 받아 한중의 백성들을 포섭하고 지역을 차례차례 점령하는 한편, 익주에서 올라오는 유봉의 군대를 쫓아내고 장로 일가도 안전하게 데려온다. 그리고 장로가 딸을 부탁하면서 장예를 15번째 아내로 데려오게 되었다.

이후 조식이 원역처럼 백마문을 내달리는 사고를 치는 일이 생겼고, 순욱과 조조의 보이지 않는 갈등 등의 문제가 있었으나 다행히 잘 봉합되어 조식은 처형을 면하고 군공을 통해 죄를 용서받을 기회를 얻었고, 순욱은 조조가 향후 걸어갈 길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자 그의 곁에 남게 된다. 그리고 조조가 강동으로 친히 원정을 나서게 되자, 조휴 역시 원정군에 포함되어 강동 땅으로 향한다. 그러나 적벽대전과 형남 원정 때와 달리 작정하고 존버 모드에 돌입한 강동군의 결사적인 항전과 방어, 우기가 자주 찾아오는 계절 문제, 수군의 상대적 약세, 우기로 인해 확산되는 전염병 문제 등으로 인해 양측은 피말리는 소모전이 이어진다. 그렇게 양측의 소모전이 지속되던 중, 강동군 쪽에 투항을 하려는 자가 오게 되지만, 조휴는 육손이 직접 투항한다는 것에 말이 안된다며 투항의사를 밝히러 온 주방을 돌려보내나, 조조가 이를 받아들여 직접 가자 양안을 포위해 점령하려 한다. 그렇게 양안을 점령하는데 성공한 조휴는 양안을 지키던 손교를 그대로 참수한 후, 곧바로 군을 이끌고 석정으로 간다. 이를 전위가 병사들이 지쳐 제대로 싸우지 못할 것이라며 말리지만, 오히려 석정에 자신이 왔음을 알리기만 하면 된다며 그대로 낙오된 병사들은 낙오시키며 석정에 다다른다.

그렇게 석정에 도착하고, 조조와 합류하여 하루 휴식 후 총공격을 감행한다. 그리고 주유의 항전에 맞서며 결국 검을 부러뜨리며 예전의 검이었다면 몰랐을 거라며 주유를 무릎 꿇리는 데에 성공한다. 이후 주유는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려다가 사망하나, 조조군과 손권군 모두 전염병으로 인해 더 이상 전쟁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휴전으로 이어진다.[40] 이후 휴전을 맺으면서 손권이 볼모 역할로 자신의 여동생인 손인을 조휴의 집에 보내면서 손인과 그 휘하 시녀단들을 집에 들이게 되었다. 손인이 정사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에 철저히 손님으로만 대하면서 자신의 부재 시 장합에게 가족을 부탁하는 등 대비를 해둔다.

437화에서 다른 부인들과 함께 손인이 성 밖으로 나갔다는 말에 급히 따라나서나, 다행히 장합도 동행하고 손인도 얌전히 다과를 먹고 있었다. 이후 업성 곳곳을 돌던 중 외딴 곳까지 손인이 따라오고, 손인은 검을 빼들며 조휴와 대련을 벌인다. 그러나 손인은 일가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동귀어진까지 각오하고 업성에 왔지만 그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포기하고 법대로 자신을 죽이라고 청한다. 조휴는 그 모습에서 더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지, 손인을 살려두고 손님으로 계속 상방에 머물게 했다.

건안 19년, 40세의 나이가 되어 440화부터는 익주 원정을 준비하게 된다. 그에 따라 전위-전만 부자, 장방, 제갈량, 양수, 서서, 하후충-하후무 형제, 서황, 장합, 주령, 정의, 황충 등 그간 많은 시간을 함께 해온 이들+전장에서의 인연으로 조휴와 교분이 생긴 이들을 전부 불러모아 정군산 쪽으로 진군하기 시작한다. 익주 측이 험한 지형과 법정의 계책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버티면서 조휴를 요새 밖으로 끌어내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정이 조휴의 가족에게도 손을 쓸 수 있다는 암시를 남기는 계책을 쓰는 바람에 조휴의 어그로를 거하게 끌게 되었고, 조휴는 이에 도발에 걸린 척 하면서 적의 복병을 찾아내게 하는 한편 파서 쪽을 막고 있던 장합과 교대해 파서 쪽을 칠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법정은 하후충+하후무만 있는 요새를 점령하려 했으나 장합이 도착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유인 후 소모전을 유도할 복병들도 소모되는 바람에 손해를 본다.

하지만 익주 측도 돌격 역할을 맡은 조운과 방패 역할을 맡은 오의의 힘으로 버티고 있어서 조휴도 쉽게 나아가지는 못한다. 이에 오의 측을 도발하고 조운의 힘을 소모시키기 위해 오의를 말로 도발하는 한편 거짓 소문으로 조운이 힘을 더 빼게 만든 다음, 그렇게 힘이 빠진 조운의 군대를 전위 측이 공격하고 자신은 오의를 몰아내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부상을 입은 조운을 전위가 마무리한 뒤 성도로 곧바로 진군하여 길목을 막던 장임을 잡아 참수하고, 성도를 포위한 뒤엔 성도 인근의 광도현을 공격해 그곳을 지키는 양회와 위연을 참하는 데에 성공한다. 결국 전세가 급격히 기울어지자 익주 측에서 장송을 보내서 화친(이라지만 사실상 항복)을 청해오고, 조휴는 굳이 서신을 다시 쓰고 할 거 없이 자신이 직접 가서 익주목의 인장과 문서를 받아오겠다고 청한다. 당연히 하후연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막으려 하나, 조휴는 유봉과의 문제도 있었기에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이에 제갈량이 조휴랑 같이 동행하기로 한다. 456화에서 정식으로 항복을 받아내고, 유봉의 시신은 수급을 취하지 않고 성도 인근에 장례를 치르게 한다.

익주 원정이 끝난 뒤 바로 복귀하지 않고, 채옹의 자택에서 머물고 있던 채염과 만나서 홍농과 낙양 허도까지 쭉 같이 둘러보고 업성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업성 귀환 전 홍농 쪽에 들렀을 때 귀신이 있다는 미인의 묘비에 대한 소문을 듣는데, 태수 가규의 설명을 듣고 그것이 헌제의 형인 홍농왕의 아내로 알려진 당비의 묘일 가능성이 생긴다. 본래라면 삿된 믿음이라며 사람들을 쫓아내고 묘를 파내야 했지만 자칫 정말로 당비의 무덤이면 엄청난 대죄가 되기에, 조휴는 제를 올린 뒤 이 사실을 허도에 있는 헌제에게 직접 보고한다. 이후 업성으로 복귀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순유가 병으로 사망하는 슬픔을 겪고, 연이은 공신들의 죽음으로 조조가 크게 흔들리자 다른 주변 친척 어른들+곽가와 논의해서 조조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길 권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은 연주에서 조휴는 조조에게 위왕의 자리를 세자에게 넘겨주고 천하통일을 맡겨달라고 진언한다.

조조는 그 말에 상당히 열받아했지만 결국 고민 끝에 양위를 선언하게 되었고, 대신 조휴에겐 향후 2년 안에 강동을 점령하고 실패하면 목을 칠 것이며, 선양 관련 논의 역시 자신은 모르는 것이니 알아서 해보라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이후 조휴는 헌제랑 황후 조절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헌제 일가의 안전은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며 그 어떠한 숙청도 없을 것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한나라와 헌제가 이렇게까지 몰리게 된 것은 헌제의 잘못이 아니라고 진언한다. 헌제는 본디 찬탈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죽을 생각이었으나 조휴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꿔 선양을 정식으로 진행하고, 산양공으로 임명받게 되었으며 조휴는 그런 헌제의 황제로서의 마지막 모습을 배웅한다.

위나라가 정식으로 건국되어 조앙이 즉위하고, 조휴는 1등공신 중 하나임을 인정받아 직책이 거기장군으로 오른다. 그리고 조앙의 명령을 받아 천하통일을 마무리짓기 위해 강동 원정을 이끄는 대도독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강동으로 향한다. 이전과 달리 본인이 지휘관의 입장이 되어 연설을 하고, 강동 정벌을 위해 형주의 함대가 적벽을 넘어 강하와 장사군을 공격하면 우금과 서황, 하후충은 환현으로, 장방은 유수구를 통해 진격하게 한다. 더불어 가후의 조언으로 적군의 보루인 시상에서 오군으로 우회해 들어가는 길목을 확보하기 위해 장합과 함께 움직인다. 강동군도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물량 앞에 장사는 없었고, 문빙의 형주 함대 쪽에서 승전보가 전해지자 조휴는 곧바로 환현을 통해 나아가 시상을 포위하고, 장합에게 노산 공략을 맡긴다.

시상에 있는 대도독 여몽과 부도독 주연의 부대가 포위된 와중에도 결사항전을 벌이나 노산 쪽을 지키던 방통이 장합의 화살에 맞아 절명하고, 그로 인해 시상에서 우회할 수 있는 진격로를 확보한 와중에 제 2군을 이끄는 황충과 장료, 전위 등이 도착해 위군의 전력은 더욱 든든해진다. 조휴는 이에 3일 정도 휴식을 취하고 이를 대놓고 시상의 강동군에게 보여줘서 도발하기로 결정하나, 가후의 묘책으로 기한을 5일로 더 늘린다. 그리고 나흘째 밤 시상을 지키는 장수 중 하나인 반장이 항복 요청을 해오는 편지를 보내오고, 조휴가 이를 받아들이자 반장이 내분을 일으켜 여몽과 주연을 공격하여 성문을 열어놓는다. 그러나 와중에 여몽은 반장과 그 부하들을 죄다 죽였고, 주연은 서황에게 죽어서 항복한 이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실패한다. 이후 아직 숨이 붙은 여몽과 마지막 대화를 나눈 뒤 그의 죽음을 지켜보고, 장합과 합류해 말릉으로 진격하여 태수 고옹의 항복을 받아내고 손권에게 항복할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손권이 고옹의 문서를 받은 후 항복하기로 결정하면서 드디어 강동을 정벌하는 데에 성공,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다.[41]

천하통일의 공신으로 조앙에게 엄청난 포상을 받고, 조조와 만나 드디어 네가 천명을 만들었다며 칭찬을 들은 후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가족들과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한다.[42] 조휴 본인은 이제 쉬고 싶은지 작위만 받고 그 외의 관직은 거절할 생각인 모양. 그러나 집에 찾아온 조앙이 더 높은 관직을 제안하면서 조휴를 치세의 시기에도 곁에 두고 싶어했고, 조휴도 황제의 제안을 마냥 거절하는 건 무리였기에 수도에서 좀 떨어진 곳을 복구하고 땅을 개발하겠다고 말하여 본인의 고향인 오군을 개발하기로 한다. 이에 조앙이 바로 직책을 내리는데, 무려 대사마 겸 녹상서사 겸 양주자사 가절월에 오왕이라는 어마어마한 겸직을 내려버린다. 그렇게 오군에서 시작된 조휴의 여정은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오군으로 오왕이 되어 돌아오면서 마무리된다.

작중 주인공은 삼국지 시대에 빠르게 적응해서 조휴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기에 현대의 삶이나 물건을 그리워하는 모습은 딱히 없으나, 가끔씩 현대의 물건을 만들도록 주문하거나[43] 현대인 시절의 지식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다만 초기엔 현대 용어인 착각계를 꺼냈다가 순욱이 무슨 계책인가 싶어 진지하게 연구하게 했고 장막이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죽은 걸 두고 역사대로라고 무심코 중얼거렸다가 조앙의 물음에 아차하면서 급히 수습하는 등 현대인 티가 나는 모습이 나오곤 했다.

또한 여복이 많은 편으로, 본편 완료 시점에서 16명이다. 장안에서 이각과 곽사의 추격을 피해 데려온 정실부인 채염, 둘째 부인은 원술의 딸 원경, 셋째 부인은 여포의 딸 여명, 넷째와 다섯째는 강동이교 교설란-교설화 자매, 여섯째는 원역에서 헌제 유협의 두번째 아내인 복황후의 동생 복은, 일곱째는 원역에서 조비의 첫 아내로 유명한 견복, 여덟째와 아홉째는 견복의 언니들인 견강과 견탈, 열번째와 열한번째는 유표의 후처 채옥과 채옥의 딸인 유정, 열두번째와 열세번째는 유봉의 쌍둥이 누이이자 유비의 양녀인 유청과 유백, 열네번째는 마등의 서녀인 마운록[44], 열다섯번째는 한녕 오두미도의 지도자 장로의 딸인 장예, 열여섯번째는 손권의 여동생 손인이다.[45][46]

어디 갈때마다 부인이 하나씩 늘다보니 숙부인 조홍은 조휴가 최소 10명의 여성을 데려올 거라고 농담한 바 있는데,[47] 아직 장강 이남은 본격적으로 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9명[48]이었다가 형양 원정을 마치고 바로 10명을 넘겨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여담으로 주인공임에도 일러스트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281화에서 견복과의 투샷 형식으로 처음 일러스트가 나왔는데, 얼굴이 다소 가려졌음에도 상당히 잘생긴 인상으로 나왔다. 게다가 장수답게 몸도 엄청 좋은 건 덤. 이후 400화가 넘은 후 새 일러스트가 나왔는데, 처음 일러보단 훨씬 투박하고 무인스러운 느낌이 강해졌다.

2.2. 아내

천하를 누비며 미녀들을 손에 넣고 안락하게 살겠다는 조휴의 소망(?) 때문인지 모두 굉장한 미인들이다. 보통 정처와 후처들 사이에서 분란이나 암투가 생기는 일이 많지만, 조휴의 정실인 채염이 축첩에 관대하고 후에 들어온 부인들을 잘 챙겨주는데다 조휴 본인이 모든 아내들을 사랑하고 집안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엄하게 막고 있어서 집안 사람들끼리 모두 가깝게 지낸다.

조휴가 아내들을 사랑하는 만큼, 아내들 역시 조휴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깊은 편이다. 채염이나 강탈복 자매, 이교 자매, 마운록처럼 조휴가 위기에서 구해준 아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복 과정에서 붙잡혀서 아내가 된 이들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사이가 멀어도 조휴 쪽에서 진심을 다해 아내를 챙겨주고 노력하면서 사이가 가까워졌다.[49]

2.2.1. 채염

파일:채염.png


원 역사에서도 알려진 채옹의 딸. 우아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미인으로[50], 장안에서 여동생 채림과 함께 살고 있었으나 이각곽사가 장악한 장안에서 하루하루 희롱당하며 정절을 위협받는 신세였다.[51] 이각과 곽사로부터 황가를 데리고 피하려는 동승의 소문을 들은 조휴가 조조가 협천자를 내세울 기회가 생겼다고 여겨 장안으로 갔을 때 처음 만나게 되었고, 조휴는 채염과 동생 채정희도 같이 장안을 탈출하자고 제안한다.

채염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본 역사와 다르게 황제의 탈출 때 이각과 곽사뿐만 아니라 남흉노군[52]까지 몰려오면서 위기에 놓이지만 다행히 이전에 조휴가 미리 같이 온 전위에게 귀띔해서 홍농 쪽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배들을 준비시켜두게 했고[53], 덕분에 이각과 곽사의 추격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나 조조와 합류할 수 있었다.

조휴가 여자 경험과 별개로 아직 결혼하지 못한 상황에서 처음으로 혼인을 제안했고, 채염은 처음 구혼을 받았을 때는 보류했으나 이미 이전부터 받아들일 생각이었기에[54] 무사히 이각과 곽사를 따돌리고 조조 쪽에 도착한 후에 조휴의 구혼을 받아들여 합방하고 조휴의 첫 아내가 된다.[55] 결혼 후엔 아내들 중 연장자이자 언니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내외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조휴의 정실이다.[56][57] 채옹의 딸답게 글과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자녀들의 글공부 선생님 역할도 한다.

꾸준히 조휴와 관계를 가졌음에도 아이를 가지지 못하였으나, 의대조 사건 이후 조조에게 명령받은 무기한 근신(을 빙자한 휴가) 때 며칠이고 엄청나게 한 끝에 임신에 성공, 조휴의 부인들 중 가장 먼저 아들을 출산했다. 이후 부인들 중 가장 먼저 2번째 임신을 하고 아들을 출산하는 등, 작중 처첩들 중 유일하게 아들만 둘을 낳아서 정실로써의 자리는 굳건하다.[58] 다만 조휴의 정실부인임에도 대외활동은 일체 하지 않고 안주인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족한 대외활동은 대외활동에 적극적인 다른 아내들(주로 견복과 복은)이 보완하고 있다.

그러다가 제갈량이 조휴를 따르게 되면서 황부인과 가깝게 지내게 되자 친구가 생겼는지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밖에 나가기 시작했다. 주로 황부인과 만나거나, 혹은 다른 집안 부인들과 만나 찻잎을 선물받아 그것을 끓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우려서 차를 즐기는 중. 본인도 눈을 돌리니 재미난 게 많았다며 시문 말고도 다른 것을 즐기게 된 것을 좋게 생각하는 중. 그리고 조조의 위공 즉위 무렵에 동작대에서 몰래 관계를 가졌는데, 이때 회임했는지 383화에서 현재 셋째 임신 중이라고 언급된다.[59] 405화에서 셋째는 딸이면 좋겠다고 말하나 업성의 기운(?) 때문인지 셋째도 아들로 태어난다.

440화에서 조휴가 익주 원정에 나서게 되면서 장안 쪽으로 가게 되는데, 조휴에게 먼저 동행하고 싶다고 청해서 다른 부인들 모두 놀란다.[60] 그렇게 장안에 가면서 조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장안에서 좋은 기억은 조휴를 만나면서 시작된 거라며 여전한 애정을 드러낸다. 한편으론 이번 전투의 중요성을 알기에, 돌아가면 청백 자매와도 많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며 큰언니다운 모습을 보인다. 이후 법정 측이 채염에게 손을 쓸 것이라는 암시가 나왔고 실제로 채염의 물건이 법정 측의 정찰병의 손에서 나오는데, 사실 진짜 납치한 건 아니고 위군의 전령으로 위장하게 한 뒤 남편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물건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식으로 속여서 물건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61]

익주 원정 종료 후 조휴에게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미안해하고, 겸사겸사 장안과 홍농을 거쳐 낙양과 허도에 들린 뒤 업성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홍농에서 당비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묘의 소문을 듣고 조휴가 묘를 찾은 뒤 채염에게 시문을 지어 넋을 기릴 것을 부탁하고, 낙양에서는 그리운 풍경과 추억을 그리는 등 간만에 둘만의 신혼여행을 즐긴다. 익주 원정 종료 후 위나라의 건국, 조휴의 강동 원정으로 천하가 통일되면서 드디어 난세가 종식되고 치세가 찾아오자, 조앙은 조휴를 오왕으로 봉하고 강남 지역의 개발을 맡기게 된다. 이에 따라 채염은 오왕 조휴의 왕비가 되었으며 다른 부인들 모두와 얼싸안고 크게 기뻐했다.

2.2.2.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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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의 딸이자 원요의 누이. 전국옥새를 손에 넣고 중나라의 황제를 칭한 원술의 일가가 조조군과 유비군 연합에 패퇴하여 수춘에서 도망칠 당시 조휴의 추격을 받아 사로잡힌다. 본래라면 원술 일가는 모조리 사형이었지만, 원경은 조휴가 아내로 들이면서 살아남았고 조조가 수도에 돌아왔을 당시 원경을 알아본 이들에게 쟤는 원소의 딸이라고 지록위마를 시전해서 넘어가게 된다.[62] 약간 철부지같은 면모도 있지만 자신과 사용인들을 구해준 조휴에게는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 여명과는 묘하게 투닥거리는 편.

조휴의 아내들이 모두 미모가 대단하지만, 원경의 경우는 하체가 특히 매력적이라고 묘사된다. 여명은 아예 그녀를 이름이 아니라 '왕궁뎅이'라고 부를 정도고, 독자들 사이에서는 꿀물 황제의 딸 아니랄까봐 하체가 꿀단지라고 불린다. 또한 명문 원가의 여식+한때나마 황가의 공주님이었던 경험이 더해져서인지 예법을 비롯한 자녀교육에 매우 능하다. 조휴가 도양정후에 봉해지고 영지를 보러갈때 원경, 여명, 딸 조윤, 조미화랑 같이 갔는데 이때 인사 예법을 두 딸들에게 가르쳤고 250화에서 정 부인의 사망 후 장례식장에서 조조와 조앙의 고생을 덜고자 야간 상주 역을 하겠다고 나선 조충에게 상주의 예법을 가르쳐 준다.

형주 원정에 나서기 전 완성에서 조휴와 관계를 가진 끝에 271화에서 둘째를 임신했다고 언급되었다. 적벽대전 종료 무렵에는 출산을 앞둔 상태인데, 문제는 적벽대전이 끝나고 2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손권이 여강을 기습했고, 그 기습작전에 일전에 조휴가 살려서 보낸 원술의 아들 원요도 가담해서[63] 원경이 알게 되면 매우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교공이 무사히 풀려나고 이후 조조군의 반격으로 빼앗긴 군현 중 일부를 되찾았으며, 원요의 가담 여부도 원경에겐 알려지지 않은 모양. 그 후 331화에서 아들을 출산했다고 언급된다.

위나라 건국 이후 산양공이 된 헌제 일가가 임지로 떠나게 되자 조휴가 자신의 아들들 중 견복의 아들인 조주와 원경의 아들인 조이를 헌제 일가에 붙여 평생 그들을 지키고 함께하게 한다. 원경은 처음엔 꺼렸으나 주기적으로 아들을 보러갈 수 있는 걸 조건으로 받아들였다고. 그 와중에 아들과 헤어지자 몇 년 후에 너 닮은 자식을 만들어서 오라는(...) 등 자식바보의 모습을 보인다.[64] 조휴가 강동 정벌을 마치고 돌아온 후 오라비 원요와 어머니 진부인의 소식을 듣고 다행스러워하며 조휴의 배려에 감사를 표한다.

2.2.3.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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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의 딸. 어린 나이부터 목검을 집어들고 휘둘렀다고 할 정도로 무술에 재능을 보였으며, 조조군과 원술과의 전투 당시 원요를 추격하던 조휴를 살수로 위장한 채 습격한다. 본인은 아무리 동맹이라도 원요같은 놈을 지키는 것에 불만을 보였으며[65], 조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붙을 기회를 노리는 등 호승심을 보인다.

하비성 전투로 여포가 목숨을 잃은 후 어머니 엄씨와 같이 탈출해 산속에 숨어드나, 어머니마저 병으로 죽은 뒤로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진다.[66] 그런 와중에도 무서운 무예를 뽐내며 날뛰었고, 결국 조휴가 직접 개입해 여명을 제압하고 그녀를 데려오게 된다. 이후 여명은 살기 위해서 조휴의 아내가 되기로 하지만, 조휴 성격상 무리하게 여명을 몰아붙이거나 학대하지 않고 잘 대해주었으며 채염 역시 여명을 많이 신경써주기에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고 몸 상태도 좋아진다. 머리카락은 여전히 하얗지만.[67]

채염이 대내외적인 조휴의 정실이자 아내들 중 서열 1위라면, 여명은 아내들 중 무력 서열 1위다. 여포의 딸답게 무예가 엄청나게 뛰어나서 조씨 일가+하후씨 일가의 아들들(하후상, 하후충, 하후무, 조진, 조창)의 대련 상대를 해주는데, 나이 차가 있다고는 해도 이들을 모두 쉽게 압도했다. 그래서 조휴가 없을 때는 본인이 직접 칼을 들고 집안의 안전을 지키는 역할도 하고 있는 모양.

교설화와 함께 늦게 임신했고[68] 210화에서 마침내 딸을 낳았는데, 하필이면 역아라 난산 끝에 출산했다.[69] 게다가 젖이 잘 안나와서 수유도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원경이 대신 먹였다. 이후 255화에서 둘째를 임신했으며, 288화에서 딸을 출산했다. 다행히 이번엔 별 탈 없이 무사히 출산에 성공했으며, 적벽대전 이후 돌아온 조휴가 딸의 이름을 지어주자 다음에는 아들로 낳고 싶다며 여전히 자식 욕심을 보인다.

아내들 대부분이 조휴와 신뢰 및 애정 관계가 굳건하고 정실인 채염이 축첩에 너그러운 편이라 대부분은 조휴가 아내가 늘어도 별 말은 하지 않는데, 여명의 경우는 조휴의 여성 편력(?)을 그리 반기지 않는 편이다. 다만 데려온 사람에 대한 질투라기보단, 남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조휴가 형남 원정을 갈 땐 여자 데려오지 말라고 약속까지 걸었고, 조휴도 그 당시 영릉 정복 후 장완이 여동생을 받아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 거절하고 대신 그녀의 혼삿길을 알아봐주었다. 하지만 한중 정벌 후 장로의 딸 장예를 데려오자 결국 데려온거냐며 삐져서 조휴가 달래야 했다.[70] 그리고 그날 환부인의 두 아들들이 결혼하여 잔치가 열린 직후 집에 돌아오자, 앞으로 3년 안에 채언니처럼 아들 셋 가지고 싶다며 달라붙는다. 하지만 직후 조식이 친 사고와 조조의 강동 친정으로 조휴가 바로 떠나는 바람에 당분간은 힘들어보였는데, 그 이전에 임신에 성공했는지 433화에서 아들을 낳았다.

433화에서 볼모 겸 식객으로 강동에서 손인과 그 휘하 호위대가 도착하는데, 호위대의 시건방진 행동에 화가 났는지 마운록과 같이 대치하며 가마 안의 손인에게 당장 나오라고 압박하는 등 오랜만에 여포의 딸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무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71] 이후 손인이 조휴 앞에서 예를 갖추면서도 칼을 차고 돌아다니는 등 대놓고 기싸움을 벌이는 듯한 모습 때문에 계속 경계하고 있는 중. 손인이 내부 분탕을 치는 걸 포기하면서 갈등 관계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여담으로 부인들 중 유일하게 조휴를 상대로 서로 반말을 하고 호칭도 그냥 남편이라 부른다. 또한 밤일 관련으로는 조휴랑 궁합이 좋은지, 어지간하면 침대에서 질 일이 없는 조휴가 고전하는 몇 없는 인물이다.[72] 또한 다른 사람을 부를 때 이름이 아니라 별명 내지는 다른 호칭을 써서 부르는 일이 많으며 조씨 일가의 사람들을 부를 때조차 이름으로는 잘 부르지 않는다.[73][74]

2.2.4. 교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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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이교 자매 중 언니이자 대교.
여강의 대표 호족 중 하나인 교공의 장녀이자 교설란의 언니. 조조군이 원술 격퇴 이후 그 잔당을 흡수하기 위해 조홍과 조휴가 군을 이끌고 여강성에 가게 되었는데, 여강의 대호족인 교공의 집에서 그 딸을 정략혼의 목적으로 거두게 된다. 원래 강동군의 손책주유가 자신과 여동생을 노린다는 건 알았으나, 이름만 들었지 얼굴도 모르는데, 조휴를 보고는 눈앞의 저 남자가 더 낫다며[75] 남편감으로 맞이한다. 이후, 관도대전 때 조조군의 부족한 군사비를 조휴의 부탁으로 아버지 교공에게 요청해 집안 재산을 군량미 구입 용도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완전한 조씨 며느리가 된다.[76]

여명과 함께 임신 후발주자인데, 역아라서 난산을 겪은 여명과 달리 이쪽은 9개월만에 아이가 나오려 하는 조산이었다. 게다가 진통이 엄청 심해서 출산 내내 엄청나게 힘들어했는데, 다행히 출산 후 몸 상태는 건강했고 수유에도 문제가 없어서 한시름 놓게 되었다. 276화에서 견복과 함께 강릉으로 내려와 조휴의 수발을 드는 한편, 조휴가 새로 들인 유청-유백 자매를 받아주면서 밤일 관련 교육 및 꿀팁들을 전수해주고 둘의 초야 때 겸사겸사 자신도 조휴랑 관계를 갖는다.

이후 적벽으로 발령받은 조휴가 적벽 전방에 머물면서 적진을 도발하기 위해[77] 일부러 불러서 머물게 하려 했으나 하필 둘째를 임신한 상태여서 강릉에 있는 다른 부인들과 함께 조인 일가의 보살핌을 받는다.[78] 적벽대전 종료 후 아버지인 교공이 있는 여강 일대가 손권에게 점령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다.

다행히 교공은 육손이 풀어주어서 무사히 복귀했고 이후 손권의 진격도 합비에서 막히면서 한숨을 돌렸다. 이후로는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잘 지내면서 쌍둥이 출산 이후 소식이 없는 소교가 임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많이 주선해준다. 331화에서 아들을 출산했으나, 이후 노환으로 아버지인 교공이 사망하는 슬픔을 겪는다.[79]

여담으로 조휴 피셜 아내들 중 가장 육식녀라고 한다. 여동생인 소교도 육식녀인데 대교 앞에선 한 수 접어줄 정도며, 그래서인지 조휴와 할 때는 언제나 먼저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유혹하며 엄청 격렬하게 임하는 편이다. 또한 셈에 밝은 편이라 집안의 재물이나 장물 등을 철저히 조사하고 회계로 정리해두고 있다고.

2.2.5. 교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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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이교 자매 중 동생이자 소교.
교공의 두 딸 중 하나이자 교설화의 여동생. 여강에 온 조조 세력에 호의적인 아버지 교공의 명에 의해 정략혼을 준비했으나, 언니 대교가 조휴를 가지려 하자 자기도 조휴랑 결혼하겠다며 투닥거린다. 다만 교공은 애초부터 둘 모두 조휴에게 보낼 생각이었고, 양수가 잉첩(媵妾)[80]의 사례를 들며 둘 다 조휴와 결혼할 수 있음을 알려줬기에 언니와 똑같이 조휴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이후 언니보다 먼저 임신해서 쌍둥이 딸들의 엄마가 된다.

이후 형주 점령을 위해 내려온 조휴를 따라갔다가 완성에 머물고 그냥저냥 언급만 되다가, 조휴가 적벽대전을 앞두고 전방에서 발령을 받았을 때, 강하성에 대도독으로 있는 주유가 책략을 부리자, 역공을 위해서 주유의 여인이 될뻔한, 소교가 장군 조휴와 함께 적벽 전방에 있고 살림을 차렸다.라는 소문을 퍼트리게 해서 본의아니게 상대 사령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장치가 되었다.[81] 적벽대전 종료 후에는 언니와 함께 조휴가 받은 재물을 분류 및 정리하고 선물로 줄 것들을 따로 빼두는 한편, 새로 생긴다는 부인회에도 이를 전달하기로 한다.

시문 대회 이후 조휴와 관계를 가진 끝에 323화에서 임신했으며, 337화에서 셋째 딸을 출산했다. 그러나 이후 아버지인 교공이 노환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고, 여강으로 내려가 빈소를 지킨다. 자녀들이 많아진 후에는 아이들 교육에 많이 신경을 쓰는지 대교보다 오히려 더 극성스러워졌다. 그래서인지 익주 원정 이후 선화와 문화에게 혼담 요청이 들어오자 조휴에게 이것저것 확인하고 물어보며 신경을 쓰는 한편 다시금 부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한다.

2.2.6. 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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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구 복완의 차녀이자, 헌제의 부인 복황후의 동생.
조휴의 6번째 부인. 아버지는 한 황실의 외척인 복완이며, 그녀의 언니는 현 황제인 헌제 유협의 아내인 복황후이다.[82] 의대조 사건 이후 동승동귀비를 포함해 수많은 관료와 호족이 숙청당하자 다음엔 자신과 일가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복완이 가문만은 살리기 위해 측실의 딸인 복은을 바치고 조조에게 사돈을 맺을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복은은 복황후와 자매이긴 해도 측실의 소생이라서 속내가 보이는 개수작이라 여긴 조조는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실제 얼굴을 본 자리에서 조휴가 외모가 매우 출중한 복은을 마음에 들어하는 기색을 보이자 곧바로 으로 데려가도 된다는 말과 함께 결국에는 부인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로 인해서 조조가 복씨 일가는 '국구의 자리도 포기하고, 조조의 세력을 지지할테니 살려만 달라.'는 요청에 복완이 지방 주목으로 배치되고, 그 아들들이 중앙 조정을 떠나 지방관으로 좌천되나, 어쨌든 가문은 살렸다.[83]

조휴의 아내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폭유를 가지고 있다.[84] 또한 결혼의 목적이 가문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입장과 처지를 잘 알고 있고, 그러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의사를 조휴에게 밝히는 등 지금까지의 아내들 중 가장 정략혼에 가까운 사이이다. 물론 조휴는 정략혼과 별개로 복은을 마음에 들어하며 잘 대해주고 있고, 복은도 조휴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242화에서 태기가 있다고 언급이 나오더니 243화에서 임신한 것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249화에서 아들을 출산했는데, 정부인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출산 직후부터 급히 움직이느라 잘못하면 아이가 죽을 뻔했다. 다행히 안정을 찾았고, 이후엔 복완의 아내인 번부인이 직접 와서 복은의 산후조리를 돕기로 했으며 조휴도 제대로 축하도 해주지 못한 복은이 마음에 걸렸는지 미안해하고, 직접 복은의 아들 이름을 백이라고 지어준다. 다행히 조휴와 번부인의 도움으로 우울감도 사라지고 몸 상태도 좋아져서 253화 시점에선 완전히 회복되었다.

적벽대전 이후 새로 부인회가 생기게 되었는데, 정실인 채염이 대외활동보다 안주인 역할에 집중하는 편이라 자신 대신 복은을 부인회 멤버로 추천한다. 서녀라곤 해도 집안이 황제의 외척 가문인데다 언니는 현재 황제의 후궁이라 배경은 충분하고, 마침 아들을 키우면서 바깥을 그리워하는 눈치여서 채염이 이를 보고 복은을 보내기로 한 것. 헌데 부인회에 처음 참석한 날부터 조진의 부인인 화부인에게서 손권의 여강 침공과 교공을 비롯한 이들이 붙잡힌 것을 듣게 되었고, 복은은 이걸 어찌 알려야 할지 고민하다 자리를 옮겨 견복에게만 이를 털어놓고 논의하게 된다. 그러나 하필 복은과 견복의 뒤를 몰래 따라온 대교가 이를 들어버렸고, 소식을 듣고 사색이 된 대교와 소교가 이를 조휴에게 울면서 묻자 조휴는 복은이 입을 잘못 놀렸다고 여겨 격분한다. 다행히 견복이 자초지종을 설명해서 조휴도 복은을 책망하지 않고 누구에게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만 들은 뒤, 집안 단속 차원에서 부인회에는 아프다는 핑계로 가지 말 것을 권한다.

상황이 안정된 이후에는 다시 모임에 나가고 있으며, 관중제장의 난 이후 돌아온 조휴에게 넌지시 둘째를 가지고 싶다며 어필했고, 마운록이 마등의 장례 이후 초야를 치를 때 여명과 같이 들어와 관계를 가진다.

2.2.7. 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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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 중산 견씨의 견복. 견씨자매의 막내.
하북의 유명 호족 가문인 중산 견씨 일가의 세 자매들 중 막내. 세 자매 모두 엄청난 미인으로 유명하지만 견복의 경우는 그 중에서도 오국태, 초선, 채염과 더불어 관상가들이 뽑은 4대 미녀 중 하나이다.[85] 본작에선 초반부터 등장하는데, 조휴가 원소에게 보내는 사절로 하북으로 갔을 당시 견씨 일가의 차남인 견엄이 죽었고, 견복은 언니들과 같이 조문객을 맞고 장례를 보조하고 있었다. 이때 조휴가 원소를 보러 가기 전 장례식장의 곡소리를 듣고 우연히 들렀고, 전혀 상관없는 과객임에도 순욱이 준 향초를 피우고 애도를 표한 건 물론, 가지고 있던 패물들을 모두 부조금으로 전달했다. 이때 일로 견복은 조휴에게 일가 모두가 은혜를 입었다고 여겨 매우 감사해했고, 조휴를 마음에 두게 되었는지 훗날 원소 측에서 원희와 사돈을 맺을 것을 요청했을 때 다른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이후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 215화에서 드디어 다시 등장, 조조군의 북상 소식으로 어수선한 와중에 사람을 보내 견씨 일가와 연이 있는 청하 최씨와 하간 장씨 집안 사람들을 불러모아 같이 지내도록 한다.[86] 동시에 집을 제외한 가산을 전부 정리했는데, 그렇게 마련한 자금을 언니 견강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어 전쟁에 보태겠다는 의견을 표하여 최소한 숙청에서 벗어날 수 있는 면죄부를 마련해둔다. 이렇게 재산들을 처분했음에도 몇 년은 살 수 있는 양식을 따로 마련하고 오빠 견요가 받는 녹봉까지 계산해두는 등, 상당히 철두철미하고 지모가 돋보이는 인물.

220화에서 업성이 조조의 손에 떨어졌고, 221화에서 드디어 조휴와 다시 재회한다. 8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조휴를 보자마자 굉장히 오랜만에 오는 귀한 손님이라며 바로 알아보고 환영했으며, 혹시 모를 약탈에 대비해 일가 모두와 함께 업성 안으로 이주한다. 조휴에게 깊은 마음을 품고 있던 만큼 결혼하는 것은 확정이었으나, 문제는 견복이 요구한 조건은 사실상 견씨 일가 전체를 다 받아들여 흡수해야 하는 조건이었고 하필 견복의 큰언니인 견강이 원소의 차남인 원희와 결혼한 상태라 결혼이 한참 늦어지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물밑에서 움직인 가후 덕분에 견강이 원희와 이혼하고 원씨 일가에서 나오게 되어 조휴에게 재가할 수 있게 되었다.

226화에서 조휴가 병주로 파견되면서 잠시 헤어지게 되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옥비녀를 행운의 증표를 겸해서 주고, 이 덕분(?)인지 조휴는 병주에서도 엄청난 공훈을 세우며 병주 정복 후 당당히 업성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231화에서 본인 포함한 3자매가 조휴가 떠난 사이 엄청나게 공들여서 준비한 뒤 조휴를 맞이하고 초야를 치렀으며, 237화에서 임신이 확인되었다.[87] 2차 하북 원정 무렵 아들을 출산했는데, 어머니를 닮았는지 금발에 아주 잘생긴 외모라고 한다.

254화에서 위씨 상단 쪽에 조조가 사별 이후 정실로 누굴 들일지 물어봤다는 게 드러났는데, 당연히 조휴는 기겁하나 알고 보니 하후돈의 부인인 허부인이 먼저 요청한 것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정부인 사후 다른 조조의 부인들이나 일가의 백모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며 집안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조휴가 대체 어디까지 언급된 거냐고 물어보자, 변부인을 두고 환부인과 윤부인, 두부인, 추부인이 눈치싸움을 하는 중이며 견복은 그 사이에서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중이었다고. 이야기를 들은 조휴는 집안 내부의 암투가 물밑에서 복잡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견복을 더 책망하진 않았으나, 여기까지만 생각하자며 이 문제는 더 언급하거나 생각하지 말 것을 권해서 견복도 이를 받아들인다.

276화에서 강릉으로 대교와 함께 내려와 하후무 대신 곤장을 맞은 조휴의 수발을 드는 한편, 은연중에 둘째 욕심을 부리며 여러 번 관계를 가진다. 이는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조휴가 외정을 자주 나가니 외롭지 않도록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는 것도 있다고. 그리고 288화에서 대교, 청백남매와 함께 임신이 확인되었으며 331화에서 딸을 출산했다.

조조의 위공 즉위 이후 조휴가 서량 전선으로 파견되었을 때 같이 동관으로 갔으며, 마침 오빠인 견요와 집안 어른인 견초도 서량 쪽으로 와서 견씨 집안들이 오랜만에 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러나 장비군과의 전투 중 견요가 장비에게 중상을 입고, 견복은 큰 충격을 받은 와중에도 견요의 치료에 힘쓰면서 조휴에게 밖의 일을 부탁한다며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 견요의 치료가 성공하여 목숨을 건졌고 견복도 오라비가 살아난 것에 다행스러워한다.

유수구 전투가 휴전으로 일단 멈춘 사이 손권 쪽에서 볼모로 자신의 누이인 손인을 조휴의 집으로 보내는데, 손인이 무장을 한 호위 역의 시녀들을 50명이나 대동했음에도 기죽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면서 대하는 강심장을 보여준다.[88] 이후로도 손인 측과의 소통 역할을 언니들과 같이 맡고 있는데, 손인 쪽에선 견복을 경계하고 있고, 조휴도 이를 얼핏 보았기에 손인이 이상하게 견복을 견제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황제가 조앙에게 선양한 후 산양공이 되어 떠날 때 아들인 조주를 보내주는데, 몰락한 한나라의 황제여도 옛 황가와 교분을 쌓고 이어질 수 있는 기회이기에 조주가 헌제 일가를 따라가는 것을 찬성했다.

여담으로 견씨 3자매는 얼굴에 점이 있는 것이 특징인데, 견복의 경우 오른쪽 눈 밑에 눈물점이 있다. 그리고 자매들 모두 얼굴 외에도 몸 안 어딘가에 점이 있는데, 견복의 경우는 이곳에 점이 있다. 또한 다른 아내들에 대한 질투심을 드러내진 않으나 기회가 생길 때마다 조휴와 끈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매우 능숙하게 유혹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점 때문인지 몰라도 조휴 상대로 밤일에 매우 적극적인 대교-소교 자매가 견씨 3자매와 경쟁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2.2.8. 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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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 중산 견씨 자매의 맏이.
중산 견씨 일가의 장녀이자 원희의 前 부인. 나이는 채염과 동갑이며, 이전에 원소 측에서 원희와 견복의 혼인을 주선했을 때 견복이 이를 거절하자 자기가 대신 나서서 원희와 혼인하여 원가의 며느리가 되었다. 그러나 원희는 견강을 박대하며 사실상 남남으로 지냈고, 그것도 모자라 유주 자사로 임명되었을 때 견강을 기주에 남기고 살림을 따로 차려 첩들을 들였다고 한다. 이 탓에 말이 부부지 그냥 남남과 다를 게 없었고 사이도 매우 나빴으며, 원희의 이런 행동 때문에 오죽하면 시어머니인 유부인이 안쓰럽게 여겨서 견강을 더 챙겨주었다고.

조조군이 업성 점령 후, 조휴가 후원으로 들어가 유부인과 만났을 때 유부인의 곁에 얼굴을 파묻고 숨어있다가 조휴가 본인을 소개할 때 이름을 듣고 예전에 조문을 왔던 인물임을 기억해내고 급하게 조휴에게 달라붙어 집안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하필 유부인이 보는 앞에서 이러는 바람에 조휴도 유부인도 당황하는 와중에 조조가 들어오면서 가까스로 진정하고, 이후 조조가 허유가 업성 일대를 돌며 쓸어버릴 예정이라는 말에 조휴가 급하게 견강을 데리고 장합의 안내를 받아 견씨 일가로 향한다. 다행히 장합이 지름길을 알아서 허유보다 먼저 도착했고, 견강은 집안 사람들 모두 무사해서 다행스러워한다. 이후 견복이 내건 조건에 따라 조휴와 맺어지게 되었는데, 문제는 밑의 여동생들과 달리 아직 원희와 명목상 부부관계라 조휴가 그냥 데려갈 경우 지탄받을 것이 뻔했다. 그로 인해 고심하던 중 조휴가 조숭의 조문을 위해 천리길을 달려갔다가 돌아오는 효의 극치를 보여주고, 이를 눈여겨본 가후가 그를 따라갔다가 상황을 안 후 유부인을 만나 원희와 견강의 이혼을 유도한 덕분에 견강은 원희와 갈라져 재가를 할 수 있게 된다.[89]

원가 며느리 시절에는 다소 조용하고 겁이 많은 모습을 보였으나, 실제 성격은 견복과 비슷하게 요망한 면모가 있으며 상당히 적극적인 편이다. 일례로 조휴가 농담조로 가문의 이름값도 기울어져가고 자산도 전부 정리한 지금 무엇이 남았냐고 묻자 딱 하나 남은 게 있다며 웃옷을 풀어헤쳐 가슴골을 드러내며 유혹하곤 이젠 언제든 자길 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거나, 초야 중에 원희 이야기가 나오자 그 새끼는 남자 구실도 못한다며 욕하는 등 직설적이고 과감한 면모가 돋보이는 편. 결혼 이후에는 가장 먼저 임신한 견복을 도와주는 한편, 견탈과 함께 적극적으로 조휴에게 달라붙는 중이다. 그 덕분인지 255화에서 조휴의 아이를 임신했으며, 288화에서 딸을 출산했다.

마운록의 초야 때 각을 잡고 들어와 한껏 즐긴 이후, 405화에서 장예가 새 부인으로 오자 장난삼아 조휴를 놀리려고 자기가 이젠 총애를 못받는다며 우는 시늉을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장난이고 실제로는 여전히 끈끈한 사이.

여담으로 얼굴, 정확히는 왼쪽 입가에 애교점이 있다. 그리고 배꼽 옆 아랫배에도 점이 있다.

2.2.9. 견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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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 중산 견씨 자매의 차녀.
중산 견씨 일가의 차녀. 자매들 중 가장 풍만한 몸매를 가진 미인으로, 조휴 피셜 복은과 맞먹는다고 한다. 다만 성격은 자매들 중 가장 소심하고 낯가림도 심한 편이라 평소에는 견복이나 견강에게 많이 의지하고, 조휴를 보았을 때도 놀라서 견강의 뒤에 숨어버렸다. 그래도 조휴가 과거 집안의 장례에 참석했을 때를 기억하고 있기에 소심하긴 해도 태도는 호의적인 편이며, 나중에 조휴가 천릿길 조문을 하러 가게 되었을 때는 다른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패물과 금붙이들을 주며 장례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자매들과 뜻을 같이한다. 226화에서 견강이 원가에서 나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지만 오히려 좋아하며 조휴를 유혹하는 언니의 모습에 기겁하지만, 그런 와중에 자기도 부끄러워하면서 어설프게 견강을 따라하는 등 할 건 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휴가 병주 전선에 가게 된다는 말을 듣고 눈치를 보다가 견강과 같이 옷을 벗으려 하나 어차피 기정사실이고 승상도 곧 오시니까 그때까지만 참자고 만류하여 수긍하고, 조휴의 복귀까지 초야를 위해 엄청나게 준비하며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231화에서 조휴가 병주 점령 후 복귀하자 단단히 준비를 한 상태로 그를 맞이해 초야를 치른다. 초야를 치를 때 평생 아껴주고 사랑해달라며 애정 표현을 하는데, 견탈의 소심한 성격 때문에 평소에는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90]

언니랑 동생과 달리 관계를 가져도 임신 소식이 없다가 시문 대회 이후 소교, 채옥, 유정과 같이 관계를 가진 끝에 323화에서 드디어 임신에 성공, 337화에서 딸을 낳았다. 이후 견강과 마찬가지로 마운록의 초야 때 기회를 노리고 조휴를 찾아온다.

여담으로 얼굴의 왼쪽 뺨에 애교점이 있으며, 가슴골에도 눈에 띄는 점이 있다.

2.2.10. 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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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목 유표의 전처이자 채모의 누이.
유표의 후처이자 채모의 누나로, 원역사의 채부인. 형주에서 유명한 호족인 채씨 일가 출신으로, 아주 젊은 나이임에도 장간이 형주의 마녀라고 부를 정도로 무시무시하다고 표현한다.[91] 왜 이런 표현을 했냐면, 상단이 들어갈 때 수시로 물건들과 행선지를 조사하고, 취급 품목도 제한하는데 그것도 모자라 장사한 금액의 절반 가까이 떼어가서 그렇다고. 상단의 수익을 손대는 것도 있지만 허튼 짓을 못하게 철저하게 감시하니 장간 입장에서는 치가 떨릴 수밖에 없으며, 정보 역시 극도로 제한되어서 채부인의 손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눈으로 보고 귀로만 들은 이야기 뿐이라고 한다.

외모는 골드미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인으로, 몸관리도 철저히 했는지 군살없는 몸매를 가지고 있으며 키도 상당히 크다.[92] 나이는 직접 나오지 않았지만 연상의 첩을 거두는 건 어떠냐는 조조의 말에 조휴가 자기보다 다섯살 연상의 부인도 취하는 자가 있는데 그에 비하면 자신은 궁합도 안보는 차이라고 한 걸 보면 5살 미만의 차이로 연상인 모양이다.[93]

256화에서 처음으로 직접 등장, 채모에게 상황을 전달받고 조조의 군세가 오는 것과 동시에 다른 조직이 일가를 통해 접견했다는 말에 오히려 재밌다고 표현하는 등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암시한다. 채모가 유종을 위해서는 유비를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자 채부인은 그걸 조조 쪽도 원하는 것이냐고 묻고, 만약 실패하면 유비 측이 우리를 노리게 될 것이라며 자신있는 거냐고 채모의 의중을 떠본다. 이에 채모가 기회 자체는 여러 번 있을 것 같으나 유표의 의중 때문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요사이 형주목은 내가 옆에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 걱정 말라고 말하곤 오랜만에 뱃놀이나 한번 가야겠다고 말을 꺼내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258화에서 한수의 지류인 교하일대에서 유람선을 띄운 걸 발견한 조휴에게 자신을 채모의 아내라며 신분을 숨기고 조휴를 만나 형주의 상황을 알려주고 조조와 적대하지 않을 것이며 유비를 암살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이후 채모와의 대화로 조비를 만난 뒤로 조휴를 보니 승상 조조에게는 야심만만한 아들이 많은 것 같다며 서로 재는 모습을 보인다.

262화에서 유비가 채모의 아버지 조문에 참여했을 때 암살당하자, 채모를 만나 자초지종을 듣고 어떻게 빈소에서 그런 짓을 한 거냐며 크게 나무란다. 채모가 계속 기회를 놓친 마당에 확실히 끝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며 정당화하지만 빈소에 피를 뿌린 게 문제라며 유자들이 돌아설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럼에도 채모는 고집을 꺾지 않고 남양의 조인과 조휴가 움직이지 않는 중인 반면 조비가 뒤에서 우릴 돕겠다고 한 이상 누구 손을 잡을지도 확실하다며 다시금 채옥을 설득한다. 결국 채옥은 일단 채모의 의견을 듣긴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고 느꼈는지[94] 직접 장강과 한수 인근 호족들을 포섭하겠다며 문빙과 함께 움직이기로 한다.

그러나 265화에서 채모가 관우-장비의 거짓 후퇴에 속아 추격했다가 복병에 중상을 입고 얼마 안 가 사망하고, 자신은 문빙과 딸 유정, 채모의 첩들과 함께 몽충함으로 피난을 시도하지만 그 사이를 치고 들어온 조휴에게 붙잡힌다.그리고 조휴는 오야코동을 먹으려 한다. 265화의 소제목도 유종의 미가 아니라 유종애 미인 건 덤. 일단은 조휴가 귀빈으로 대우하며 모시고 있지만 사실상 인질과 다름없는 상태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이며, 조휴가 모녀 모두를 노리는 것마냥 압박을 가해오자 결국 폭발하여 한수에서 우리 일가가 오면 비참하게 죽이겠다고 화를 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채씨 일가는 대다수가 죽었고, 번성과 양양 모두 함락된 상태였으며, 그녀가 후계로 지지한 유종마저 손권군과의 전투 중 사망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채씨 일가는 형주에서 유비를 암살하고 이후 벌어진 전쟁에서 보인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 탓에 백성들에게는 원망받고 유자와 호족들에게는 상종 못할 악인으로 취급받게 되었다.[95]

채옥은 그럴 리가 없다며 부정하지만 유종의 죽음을 듣고 이미 평정심이 무너지고 있었고, 조휴의 비꼬는 말에 분노하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짓을 해도 당신들은 유자들과 호족들에게 천벌이라고 조롱이나 안당하면 다행일 거라고 쐐기를 박자 절망하여 주저앉고 눈물을 흘린다. 결국 채옥은 살기 위해서는 조휴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밖에 답이 없게 되었고, 조휴가 조조에게 돌아갈 무렵에는 완전히 포기했는지 모녀가 나란히 조휴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이후 조조의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조휴의 첩이 되면서 역사적인(?) 조휴의 10번째 아내이자 최초의 연상 아내가 되었으며 269화에서 바로 관계를 가진다.

272화에서 채옥과 유정 모녀를 취한 게 형주의 유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는데, 모녀덮밥 문제보다는 채옥이 형주를 망친 악녀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평이 나쁘다는 게 문제였다. 미색만 보고 첩으로 취했다는 것을 두고서 '죽어 마땅한 악녀를 어찌 거두었냐'는 것 때문에 집 밖에도 못나가는 신세가 되었다고.[96] 본인도 양양으로 돌아간다 해도 절대 자신이 일상으로 못돌아간다는 걸 알고, 조휴의 영지에 집을 크게 짓고 거기서 다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는 등, 사실상 조휴에게 모든 걸 의탁하게 되었다.

적벽대전 이후 조휴가 무리한 여파로 기절해 양양으로 오자, 지아비가 혼절해 사경을 헤매는데 부인으로서 오는 게 맞지 않겠냐는 조조의 말을 듣고 유정과 같이 양양으로 와서 조휴를 간호했다. 334화에서 딸 유정과 함께 임신했음이 밝혀졌는데, 본인은 괜히 임신한 걸 티내고 싶지 않았고 30 넘은 나이에 또 임신할 줄 몰랐는지 당혹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던 모양. 물론 조휴는 경사라며 좋아했고 본인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군말없이 조휴의 스킨십을 받아줬다. 365화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대교 때와 마찬가지로 조산이었는데다가 우량아라서 고생을 했다. 이후 391화에서 둘째를 임신했다고 언급되며, 한중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후 양수와 조휴의 대화에서 조휴의 아들이 아홉이라는 걸로 볼 때 아들을 출산한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후 유정이 채옥과 조휴의 둘째 아들을 데리고 나와 보여주면서 채염의 셋째 출산 이후 아홉째 아들로 태어난 게 확인되었다.

여담으로 첫 등장부터 일러스트가 있어서 조휴나 조조의 첩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다만 채모의 작중 나이가 조휴랑 비슷하고, 채부인은 채모의 누나라서 그간 조휴가 아내로 들인 여성들의 연령을 생각하면 조조의 첩이 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일전에 조조와 욕망을 공유한 조휴는 그에 충실하게 움직여서 모두가 생각했지만 설마 했던 그 경우를 정말 실현해버렸고, 조조도 나보다 더하다며 감탄 아닌 감탄을 했다. 그리고 아내가 된 이후엔 조휴한테 아줌마라고 불리면 여전히 고양이마냥 날을 세우긴 하지만, 남편으로는 조휴를 믿어서인지 그가 부상을 당해 실려오자 또 과부가 되는 줄 알았다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늦깎이 사랑에 빠진 것처럼 자기 딸보다 스킨십을 더 부끄러워하는 등 기본적으로 순한 성격이 많은 조휴의 부인들 중 가장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중이다.

2.2.11. 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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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목 유표와 채옥의 딸이자 유표의 마지막 혈육.
유표와 채옥의 딸. 마치 젊은 시절의 채옥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 작은 채옥이라 불리기도 한다. 조휴가 상용군과 주변 일대를 정리하던 중 발견한 몽충함에서 문빙과 어머니랑 같이 붙잡혔고, 어머니랑 같이 사실상의 인질 신세가 된다. 조휴가 채옥을 승상과 협상 자리에 앉을 채씨 가문의 대표자이자 귀빈으로 일단은 대우 중이라 유정도 마찬가지로 잘 대해주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채옥에게 눈독을 들이는 조휴에게 자신이 첩으로 들어갈테니 남편을 잃은지 얼마 안된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아달라 하는 등 효심과 강단있는 성격을 보여준다. 하지만 채씨 일가가 형주에서 완전히 입지를 잃고, 지지세력도 전부 사라진데다 그들이 후계자로 지지하던 유종도 사망하면서 완전히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기에 조휴의 첩이 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조휴가 조조에게 돌아갈 때 즈음엔 어머니와 함께 조휴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모녀가 동시에 조휴의 첩이 된다.[97]

조휴 쪽에 온 뒤로는 대련하고 몸을 씻기 위해 상의를 벗고 있던 조휴의 몸을 우연히 보고 도망가는 사고가 있었으나 이것 외에는 그럭저럭 무난하게 잘 지내고, 그 후 조조의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조휴의 첩이 된다. 그리고 269화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조휴의 방에 들어왔다가 어머니와 밤일을 치르는 것을 보고 당황하지만 조휴가 손을 잡고 끌어오자 저항하지 않고 바로 그에게 안긴다. 첫경험 중에 유별나게 조휴의 몸을 만지고 쓰다듬는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 사실은 근육 페티시가 있으며 조휴의 상반신 근육을 우연히 본 뒤로는 그것에 꽂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로는 오히려 엄마보다 더 적극적으로 조휴랑 몸을 섞으며 본인 페티시도 충족하고 밤일도 즐기게 되었으며, 334화에서 채옥과 함께 임신하게 된다. 이후 언급은 없었으나 365화에서 채옥이 조산으로 아이를 낳았고, 368화에서 유정도 딸을 출산한 게 언급되어서 365~368화 사이 즈음에 출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어머니와 같이 조휴의 아내가 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자신의 자녀들과 어머니의 자녀들의 족보가 상당히 꼬였다.[98] 물론 그런 점을 떠나서 어머니와는 여전히 가깝게 지내고 있으며, 아이들을 상당히 잘 돌보는지 본인의 자녀 외의 다른 자녀들도 굉장히 잘 챙겨준다고 한다.

2.2.12. 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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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봉의 쌍둥이 여동생 중 언니. 흑발에 거유, 유순한 눈매를 가진 미인이다. 유봉과 함께 유비의 양녀로 입적했으나, 유비가 암살당하고 관우가 유비의 복수를 마치고 떠나게 되는 등 심란한 상황이 이어지자 자매인 유백과 함께 불안함을 느낀다. 그런 둘에게 관우가 서찰을 하나 남겨뒀는데, 이를 조조에게 보여준다면 살 방법이 있을 거라고. 일단은 유봉의 뜻을 따라 강릉으로 같이 내려가나, 조조군의 추격으로 유청과 유백이 탄 마차가 그대로 붙잡히게 된다. 꼼짝없이 잡혀갈 위기에 놓이자 관우의 서찰을 보이며 정식으로 귀순하겠다고 요청하는데, 공교롭게도 둘을 붙잡은 인물이 바로 조휴였다.

이후 유비 세력 추격이 끝난 뒤 신상필벌에 따라 조휴가 하후무의 벌을 대신 받고 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때 마침 조휴의 아내들인 견복과 대교가 내려와서 안면을 트고, 조조의 명에 따라 조휴의 수발을 들게 된다.[99] 그리고 281화에서 유백과 함께 첫경험을 가지고, 288화에서 동생과 함께 임신한다. 조휴가 초야 이후로는 거의 바로 적벽으로 가야 했기에 사실상 초야 때 임신을 한 셈. 331화에서 딸을 출산했다고 언급된다.

아내들 중에선 유백과 함께 등장 비중이 낮은 편이나, 짧게짧게 다른 아내들과 계속 같이 나오며 소소하게 분량을 챙겨가고 있다. 440화부터 조휴가 익주의 유장+유비 세력을 정벌하러 떠나게 되었는데, 채염과 달리 유청과 유백은 따라갈 의사가 없었고 유봉과 가족들의 죽음 역시 이미 담담하게 받아들인 상태였다. 오히려 조휴에게 부디 무사히만 돌아와달라며 조휴에게 모든 것을 전부 바친 상황.

자매인 유백과는 일란성 쌍둥이라 외모 구별이 거의 되지 않는다. 성격도 대체로 비슷한 편이고, 둘 모두와 밤일을 가진 조휴 피셜로 몸의 느낌도 비슷한 편이라고 한다. 다만 유청 쪽이 동생보다 조금 더 수줍음이 많고 차분한 편.

2.2.13. 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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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의 쌍둥이 여동생. 언니와 마찬가지로 유봉이 유비의 양자로 들어갈 때 유청과 같이 양녀로 들어간다. 유비 사후 유봉이 남은 유비 세력과 함께 익주로 떠나기로 결정한 반면, 유청과 유백은 먼 길을 떠나는 것보단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고 싶어했다. 그런 둘의 심중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관우가 서찰 하나를 맡겼는데, 나중에 이 둘이 강릉으로 내려가던 중 조조군의 추격에 걸려 붙잡히게 되자 관우가 준 서찰을 보이며 언니랑 같이 귀순한다. 운 좋게도 마침 둘을 잡은 인물이 조휴였기에 둘은 조휴의 첩으로 들어가서 첫경험을 치렀으며, 288화에서 언니와 함께 임신이 확인되어 남군의 조인 쪽에서 머물다가 같이 조휴의 집으로 올라갔고, 331화에서 딸을 출산했다고 언급된다.

언니 유청과 비슷하게 비중이 높지는 않으나, 언니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행동력이 있는 성격이다. 그래서 비교적 조용히 지내는 유청과 달리, 유백은 마운록의 초야 무렵 다른 부인들이 각을 보고 조휴랑 관계를 가질 때 본인도 들어오는 등 좀 더 적극적인 밤생활을 보내는 중이다. 440화부터 조휴가 익주로 원정을 가게 되었을 땐 언니와 이미 뜻을 같이하여 조휴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집에 남는다.

여담으로 언니와 일란성 쌍둥이라 외모 차이가 없다시피하다. 그래서 조휴도 둘을 계속 헷갈렸는데, 둘을 구별하기 위해 유백의 음모를 싹 밀어버려서 제모 여부에 따라 쌍둥이를 구별하기로 한다. 근데 이러면 평소엔 못 알아본다-

2.2.14. 마운록[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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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의 막내딸이자 한문의 약혼녀로, 측실 소생이다. 본명은 '마지'이며, 작중에서는 아지 혹은 지아 라고 불린다.[101] 외모는 마등과 닮았으나 중원 사람보다는 서역 쪽 사람들을 닮은 금발의 백인 미녀로 묘사되며, 조용하고 감정 표현이 없는 편이다. 말수도 상당히 적은 편.

마등의 유일한 딸이지만 측실 소생이라는 점 때문인지 형제인 마휴와 마철에게는 늘 구박당하며 거의 노비 취급을 받고 있으며, 말 한마디 했다가 뺨을 맞기도 하는 등 고생을 심하게 한다. 마등의 수발을 들긴 하지만 마등이 딱히 잘 챙겨주는 것도 아닌지, 사실상 낳고 같이 자랐다는 것을 빼면 가족이 아니라 남남이라 봐도 무방하며 마지 본인도 가족에게 딱히 애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102]

어릴 때부터 말을 탄다는 서량 출신이라서인지 무력이 뛰어나고 말을 잘 타며, 그래서인지 업성에 온 뒤로는 여명과 잘 어울리는 편이다. 조휴에게는 서량에 가면 다 죽을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경고를 해주는데, 아마도 자기 일가의 미래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그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103] 그리고 서량군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량군이 패퇴하여 물러난 뒤 마휴, 마철과 함께 압송되어 둘에게 칼받이로 이용당해[104] 죽을 위기에 놓이나, 조휴에게 상처없이 제압된다. 그렇게 살아남은 후, 자기 가족의 칼부림으로 다친 조휴의 수발을 들게 되었고, 조휴와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이나마 말문을 튼다.

이후 마지의 이름을 듣고 이복형제라곤 해도 이름을 너무 대충 지었다고 생각한 조휴는 자신에게 오면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제안하고, 마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후 구름을 두른 사슴이란 뜻의 "운록"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면서 마운록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105] 조휴의 첩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등이 사망하면서 장례식과 초야를 같이 치르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초야 날에 다른 부인들도 조휴와의 동침을 노리고 들어와서 로맨틱한 초야라기보단 난교처럼 전개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휴와 만족스러운 첫경험을 가졌고 다른 부인들과도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391화에서 임신했으며, 433화에서 아들을 낳았다.

2.2.15. 장예

장로의 두 딸 중 하나로, 본명은 장기예. 아버지 장로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라서 하늘의 움직임을 읽고 미래를 일부 보는 등, 진짜 도사나 무녀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다. 성격은 초연한듯 하면서도 도사답게 상당히 예리하고 통찰력이 있어서, 조휴의 성향을 한눈에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잘 표현해서, 조휴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당돌하다고 평할 정도다.

조조군이 한중으로 오기 시작할 무렵 기도를 올려 미래를 엿보았는데, 아버지와 형제자매들과 마찬가지로 천마와 기마대를 이끄는 장수의 모습을 보았으나 갑작스레 난입한 숙부 장위의 쿠데타로 인해 유폐된다. 그리고 조조군이 양평관을 함락한 이후, 양평관에 직접 찾아와 조휴에게 인사를 올린다. 목적은 가문을 안전하게 살리고 오두미도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며, 이를 위해 조휴에게 자기 자신을 인질 겸 첩으로 바치기 위해서였다.[106] 그리고 무려 오자마자 바로 조휴와 관계를 맺어버리고, 심지어 그 조휴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엄청나게 했다. 이후 자신은 조휴의 곁에 머물 것이고, 한녕에 있는 동안 좨주들을 자비로 대하여 이끌어준다면 오두미도의 신도들은 장군의 움직임에 따라 복종과 저항이 달라질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후 장예의 도움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점령을 이어가던 중, 남쪽에서 유봉이 장로 일가가 숨어든 파중 쪽으로 진출해 장로 일가를 사로잡고 일대의 세력을 흡수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익주의 움직임을 이미 염려하고 있던 조휴가 장예의 도움으로 날이 좋을 때를 잡아 더 빠르게 움직여 유봉을 쫓아냈고, 장로 일가도 해를 입은 것 없이 멀쩡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이후 장로는 정식으로 항복했고, 조휴에게 장예를 맡기면서 한중 원정은 마무리된다. 장예 본인은 이제 여한이 없다며 조휴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조휴의 15번째 아내가 되었으나, 도사의 힘은 한녕 땅에서만 유효하기 때문에 업성으로 같이 가게 되면 더 이상 도사가 아닌 평범한 여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본인은 이에 개의치 않고 이젠 한 사람의 여인으로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405화에서 업성으로 와 조휴의 다른 부인들과도 인사를 나누는데, 다들 조휴 놀릴 심산으로 삐지거나 입이 튀어나오는 등의 반응이 있었지만 애당초 다른 축첩을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는 조휴 일가답게 금방 받아들여진다. 더불어 조휴와 미친듯이 관계를 가지면서 선보인 방중술들을 조휴의 아내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전파한다.[107] 한중에서 업성으로 오면서 도사의 힘은 쓸 수 없게 되었어도 시문 작성, 요리, 육아 등 다방면에 재능이 많아서 다른 부인들과도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며, 413화에서 아버지인 장로가 예견한 내용(조만간 큰 별이 떨어질 것이며, 그 별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없다)을 조휴에게 전해준다.

여담으로, 조휴가 현대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낼 뻔한 인물이다. 천리마의 상을 가지고 있는데 머릿속엔 그 나이를 넘어선 영겁의 시간과 지혜가 있다고 말해서 조휴가 순간 움찔했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까진 몰랐는지 더 얘기하진 않았다.

2.2.16. 손인

손권의 여동생. 휴전의 대가로 볼모로 보내지게 되며 등장한다.[108] 붉은 머릿결을 가진 미녀로 묘사되며, 말이 볼모지만 어지간한 남성보다 더 괄괄하고 난폭한 성격인데다 무력이 매우 강해서, 가서 누구 목을 치면 되는 거냐고 물을 정도로 겁없는 성격이다. 오히려 오빠인 손권이 당황해서 그런 짓을 벌이면 네 목숨을 장담 못한다고 만류할 정도.

위나라로 가기 전 자신의 호위 역할을 겸하는 시녀들을 수발을 드는 이들로 속여서 50명만 데려가겠다고 말하고, 잘못하면 더 큰 사달이 날 수 있다며 걱정하는 손권에게 시간을 더 끌 수도 있을 거라며 고집을 부린다. 결국 손권도 그녀의 생각을 받아들여서 그렇게 위나라로 보내게 된다.[109] 이후 업성에 도착한 후 조휴의 집에 식객으로 보내지게 되는데, 본인의 호위대를 데리고 집 앞에 도착하나 정작 조휴가 없어서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이에 호위대를 앞세워서 기선을 제압하려고 했으나 손인의 행동에 분노한 여명과 마운록이 당장이라도 죽일 기세로 노려보아서 황당해한다. 기세에서 오히려 호위대가 밀리는 기색을 보이던 중 조휴가 도착하고, 여명이 한 명 오는 거 아니었냐며 설마 쟤네 전부 다 받아줄 거냐는 말을 하자 화가 난 호위대 여성들이 움직이려 하는 것에 일단 만류하고 급히 가마 밖으로 나와 조휴에게 인사를 올린다.

이후 조휴의 집안 구조와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움직일지 계산하는 한편, 여러 명의 아내를 둔 조휴를 여차하면 자기가 젊은 나이와 미모를 앞세워서 홀려버리겠다고 생각한다. 마침 호위대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여기 가주는 미색에 약한 게 분명하다고 진언하나, 당장은 여명과 마운록에게 경계 대상으로 찍힌 상태라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생활이 될 것 같다고 자각한다. 그래도 그 와중에 숨거나 빠질 생각도 없었기에, 여명과 마운록의 압박에도 허리에 칼을 찬 채 웃으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한다.

그렇게 아침 일찍 시녀들과 운동을 하며 다시금 기를 세우려 하지만, 여명의 둘째딸 란에게 아줌마들 그래도 우리 엄마보다 약하다며 디스당한다. 이에 상당히 기가 꺾여 침울해 하는 답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나, 사실 아줌마 취급을 당해서 그런 거였다(...) 그래도 이후 조휴에게 사냥을 허락받자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표범 등을 잡아와 선물하는 등 일단은 원만한 관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조휴의 자녀들을 스캔하면서 뭔가를 생각하는 등 불길함이 증폭되고 있는 상태.

첫 등장 이후의 행보를 보면 정사의 손부인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어서 이후 조휴의 집안에서 무슨 사고를 칠지 주목받고 있다. 조휴도 이를 의식하기에 장합에게 자신이 자리를 비울 경우 가족들의 보호를 요청하는 등 손인 측의 행보를 이미 주시하며 대비하고 있는 중. 다만 손인 측도 집안 분위기나 본인 상황을 아예 모르는 바보는 아니기에, 조휴 앞에선 예를 갖추고 있으며 부인들과도 가급적 척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110]

436화에서 유정과의 대화로 채옥과 유정이 누구의 아내와 딸이었다가 조휴에게 온 것인지 알고, 이후 조휴의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성밖을 나가며 조휴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를 안 조휴가 곧장 손인과 가족들을 쫒아나오지만, 다행히 가족들의 곁에는 장합도 있었고 아무런 문제 없이 하백의 제단에서 다과회를 하고 있었다. 조휴를 만난 손인은 시녀들을 조휴의 가족들의 곁에 전부 보낸 뒤 조휴와 단둘이 대면하고, 조휴에게 기습적으로 검을 빼들며 달려든다. 그러나 조휴에게 공격이 전부 막히며 조휴는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냐 묻고, 이에 손인도 그냥 알고 싶었을 뿐이라며 대련을 시작한다. 대련 중에 대화를 나누며 문답 끝에 조휴가 자신이 살기를 드러냈음에도 무시하며 없는 일로 치겠다 하자 마음을 다잡았는지 시녀들을 전부 강동으로 돌려보낸다.

시녀들이 돌아가고 439화부터는 새로운 사람들을 뽑아서 지내고 있는데, 아무리 마음을 잡았다곤 하나 자기 고향과 가족들에겐 두번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체감했는지 신세 한탄이 잦아졌다고 한다.[111] 이후 441화에서 조휴가 원정에 나서게 되자 인사를 하면서 이제 자신의 고향을 멸하러 가는 것이냐고 물으나, 조휴가 자신이 가는 곳은 익주라고 말하자 당연히 조휴가 강동 원정의 선봉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굳었다가 이내 허탈하게 웃음을 흘린다.

이후로는 얌전하게 식객으로만 지내고 있으며 조휴의 가족들과도 무난하게 잘 지낸다. 그리고 조앙이 위의 초대 황제로 즉위 후 조휴에게 강동 정벌을 맡기자, 떠나기 전 조휴를 찾아와 이전에 자신에게 한 약속[112]은 아직 유효한지 묻는다. 아마도 손오 세력이 멸망하면 갈 곳이 없어지기에 조휴의 처로 들어갈 생각도 하고 있는 것으로 모양.[113] 그리고 조휴가 강동과 교주를 정벌하고 돌아오면서 천하의 통일과 손권의 일가가 모두 무사하다는 것을 알려주자, 그 자리에서 바로 절을 올리고 바로 초야를 치르며 16번째 부인이 되었다.

2.3. 자식

2.3.1. 아들

2.3.2.

2.4. 친인척

3. 조조 세력

3.1. 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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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 조조.

본작의 또 다른 주연이자 주인공에게는 백부 겸 양부. 전임 자사 유대의 사망 이후 진궁, 변양 등의 연주 호족들의 추대로 인해 연주목의 자리에 오른 상태였다.

성격은 상당히 즉흥적인 편으로, 융통성과 이성도 갖추고 있긴 해도 상당히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그 탓에 한번 열받으면 주변 사람들이 조조를 말리느라 고생한다. 그래도 원 역사와 달리 가족들은 모두 살았고, 가족들을 위협한 서주목 도겸을 치러 갈 때 학살이 아닌 서주 백성들을 강제 이주시켜서 서주 도적들이 뺏어간 만큼 둔전을 시켜서 노역으로 갚게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여포에게 패퇴한 유비를 포섭하려다 안 되자 토사구팽을 하려 했으나 아버지 조숭이 그랬다간 중원만 바라보는 지방 군웅들이 우릴 전부 적으로 돌린다는 조언에 원역사대로 좌장군에 임명해 달래는 등 주변 말을 안듣는 독불장군 스타일은 아니다. 심지어 의대조 사건으로 뚜껑이 열린 상태에서 관련자들을 다 족치겠다며 무장 상태로 황궁으로 들어가려 하자 순욱이 황제 앞에선 무장 해제가 예의라고 말렸는데[116], 당연히 처음엔 무슨 헛소리냐며 듣지 않으려 하지만 순욱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폐하는 무사하셔야 하고 조씨 일가는 예법을 따라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하자, 결국 머리를 식히고 검을 전위에게 넘기고 갑옷도 벗은 뒤 무기는 호위들만 가지라고 하면서 맨몸으로 들어갔다.

즉, 아무리 폭주해도 친족이나 참모가 브레이크를 잡아주면 빠르게 머리를 식히고 감정을 추스를 수 있기에 주변에 좋은 인재나 간언자들이 많을수록 지도자로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타입. 조휴가 개입하여 아버지 조숭을 포함한 일가 참살이나, 완성에서 조앙을 잃은 일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여유가 생기고, 남의 말을 어느 정도 들어주는 성격이 된 것도 크다.

작중 무력과 정치력 모두 상당한 수준으로, 무력의 경우 복양에서 장막, 장초가 난을 일으켜 자객을 통해 기습하자 그 자리에서 술잔을 던져 장초의 얼굴을 박살내고[117], 검을 뽑아 자객들을 직접 베어버리거나, 언제나 전장에 나가서 본인이 직접 선봉으로 검을 든 채 돌격하는 등 군재가 상당하다. 정치력은 연주목 시절부터 협천자 이후까지 굉장히 뛰어나다는 게 부각되는데, 예시로 일부러 폐허가 된 낙양에서 조숭의 집만 복구해서 거기에 헌제를 모시는 퍼포먼스를 벌이거나[118], 양표를 비롯한 조정 내의 정적을 갖은 혐의로 실각시킨 다음 그 아들 양수를 사공부에 중용해서 인질 겸 수하로 써먹거나, 숙청을 할 때 일부러 조앙, 조휴 등의 아들들을 미리 다른 임무로 지방에 보내, 정쟁의 피를 안 묻히겠다며 악업을 하는 자들만 따로 쓰는 것이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오군에서 일어나 자신의 아버지인 조숭을 구해준 족자 조휴를 흥미롭게 여기며, 집의 정방으로 거둬 아들과 같이 키운다. 조휴 덕에 그의 최대 악업인 서주대학살, 회임중인 동귀인 사형, 완성 전투의 추태 등은 없어졌지만 자신을 추대한 연주 호족 변양이 연주를 홀대한다면서 비난하자 바로 그를 암살하고, 변양의 아들이 석연찮은 죽음을 맞았는데 그 배후로 지목[119]되어 본인을 몰아내려는 반란이 벌어지자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을 행한 바 있다. 이후 협천자의 상황에도 그 성격으로 자기 눈에 거슬리는 양표 등 기존의 권신들 상대로도 조정 기강 한 번 잡겠다고 하면서 원소-원술 세력의 끄나풀이라는 누명을 씌워 대리시에 잡아들여 심문하고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거나, 동승 일파를 치기 전 50개 가문을 무작위로 비리혐의로 몰아 쳐내는 등 정치적 숙청은 굉장히 자주 하는 편이다.[120][121]

이런저런 일들은 겪었지만 조휴의 은밀한 개입에 더해 여러 행운과 본인의 능력이 더해지면서 원 역사보다 빠르게 연주와 예주를 안정화시키고 협천자를 행하게 되었으며, 서주를 손에 넣고 하북의 원소와도 결전을 치른 끝에 승리하며 중원의 패자로 자리한다. 그러나 하북 원정을 치르는 과정에서 아버지 조숭과 정실부인인 정부인이 연이어 세상을 뜨는 아픔을 겪는다. 조숭의 사망은 노환에 따른 자연사였지만, 정부인의 경우는 가지고 있던 지병이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약해지자 덩달아 악화된 것이라 정부인의 진찰을 하던 화타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발 살려달라며 엄청나게 절박한 모습을 보였다. 정부인과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간 못되게 굴었다며 씁쓸해하는 정부인에게 내가 잘못한 거라며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는 모습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 그러나 조조의 바람이 무색하게 정부인은 그날을 넘기지 못했고, 조조는 슬퍼하다가 며칠 간 식음을 전폐하곤 조휴에게 채염을 불러오게 하여 추모곡을 하나 연주해달라고 부탁한다.

장례 후 화타가 조씨와 하후씨 일가 자녀들을 한번 더 살피고, 조조는 그의 노력을 알기에 부인이 죽었다고 화풀이하지 않고 그를 보내준다. 이후 장남 조앙이 삼년상을 치르겠다고 하자, 결국 수락해주었다고 하며 한동안은 허탈해하면서도 아픔을 잊으려는지 일에만 집중한다고 한다. 그러던 중 삼년상을 지내기 시작한 조앙에 대해 조비가 그의 효심을 알리고자 시를 쓰고 삼년상 사실을 알렸는데, 조앙이 치르는 삼년상이 예법과 완전히 같지 않다는 이유로 가짜 삼년상이라고 따지는 유학자들이 나온다. 안그래도 부인의 죽음으로 심란하고 예민하던 찰나에 장남의 정성을 깎아내리는 것에 조조는 극도로 분노했고, 그딴 것들이 유학자이고 그딴 사상이 나라의 근본이라면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며 조앙의 삼년상에 대해 허튼 소리를 한 유학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처형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유학자들의 집안까지 박살내버린다. 이번 일이 조조의 흑화가 시작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조휴가 모조리 처형한다는 말에 놀란 기색을 보인 것을 보면 적절한 선에서 조조를 말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조가 유학자들은 물론 그 일가까지 조지는 것을 들은 순욱과 공융이 자비를 청하지만, 조조는 "그 유자들 가운데 천하의 난세를 종식시킬 인재가 하나라도 있나?"고 물으며 직접 나서서 천하의 안정에 힘쓰지도 않는 주제에 뒤에서 유학과 도리만 가지고 조롱을 일삼지 않냐며 화가 단단히 단 상태였다. 이야기를 들은 조휴가 유학자들을 전부 죽이면 그 대체제로 누굴 등용할 것인지 묻고, 그 동안의 승상은 대책을 가지고 행동했지만 지금은 그게 없이 행동한다며 대안 없이 감정적으로 벌이는 행동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이에 조조는 뭔가 생각해둔 게 있었는지 아래와 같이 말한다.
유학이 전부가 아니고, 법가와 도가 또한 하나만 밀어줄 수 없는 거다. 그래, 사상의 문제이면서도 결국 사람의 문제다! 해서 입발린 소리만 하는 놈들 대신 정말로 실무에 필요한 자들이 있어야 한다. 주둥아리 대신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는 자들!

즉, 학문보다 실무가 우선이고, 재능이 있다면 제자백가를 떠나 인재로서 등용하겠다는, 유재시거의 뜻을 표명한다. 이 말을 들은 순욱은 몰라도, 유학자인 공융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기에 반문하나 이에 대해선 조조의 뜻이 굳건했고, 순욱은 인재를 아끼는 입장은 알겠으나 그렇다 해도 그 시작이 유학자 학살로 시작되는 건 안된다며 남은 자들이라도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언한다. 이에 조조는 그 또한 나머지 사람들 중 그들을 구명할 재능을 가진 자가 있다면 그리 하겠다고 말하며, 유재시거와 별개로 유학자들이 아들의 삼년상에 시비를 건 것에 대한 앙금은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앙에게 물품을 제공하여 시비의 원인이 된(?) 사마랑이 찾아와 대화를 나눈 끝에 겨우 뜻을 굽히고 유학자들을 풀어주게 한 뒤, 사마랑을 승상부에서 일하게 한다.

유학자들 문제로 한바탕 일을 겪은 것에 더해 조숭과 정부인이 연달아 세상을 뜨는 등 허도에서 안좋은 일들을 많이 겪다 보니, 더 이상은 허도에 머물고 싶지 않아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 조조의 모습을 본 조휴는 위홍에게 부탁하여 업성 주변의 유물들을 찾게 하여 예로부터 길조의 상징인 구리 참새(동작)을 업성 쪽에서 발견하고, 이를 조조에게 보여준다. 조조는 이에 천도는 어려워도 승상부라도 업성에 옮겨보기로 결심하고, 그 뒤 조휴가 황제에게 하북의 완전한 복속과 안정화를 위해 업후의 자리를 따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상소를 올려 이를 승인받는다. 조조는 이러한 결정을 아주 마음에 들어하고, 업성에 온 뒤 한결 마음이 편해진 모습을 보인다. 한편으론 아직 삼년상을 치르고 있는 조앙을 걱정하는데, 이에 대해 조휴가 몰래 사람을 시켜 묘소 주변에 먹을 수 있는 풀들의 씨앗을 뿌리게 했다고 하자 아주 기특해한다.

하북 평정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형주 점령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조비가 나서서 유비 암살을 제안하자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일단 해보도록 한다. 그리고 정말로 유비 암살에 성공하자, 하후상을 통해 다음 작전을 전달한다. 내용은 관우와 채모의 군세가 혈전을 벌이는 걸 굳이 돕지 말고 지켜보되, 둘 중 어느 쪽이든 포섭할 수 있다면 포섭하라는 것이었다.[122] 그리고 조휴가 포섭하는 것을 넘어 아예 채옥과 그녀의 딸을 첩으로 들이자 나보다 더하다며 경악하면서도, 채씨 일가가 형주에서의 입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바람에 이들을 포섭할 가치가 없어진데다 조휴와의 약속도 있으니 그냥 넘어갔다.[123]

유비 사후 심란해하면서도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유비 세력이 훗날을 도모하고자 강릉으로 이동하려는 것을 듣고 곧바로 추격을 준비한다. 문제는 조조의 예상과 달리 유비가 죽었음에도 그곳에서 유비 세력이 백성의 지지세를 엄청 끌어모아서, 그들의 잔여 세력에 백성들까지 더해져 무려 10만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에 조조는 유비가 죽었다고 자기가 너무 여유를 부렸다며 곧바로 조비로 하여금 수군을 이끌고 강릉으로 먼저 가게 하고, 남은 이들과 함께 번성으로 바로 내려가면서 동시에 유비 세력을 추격하게 한다. 그러나 유비가 죽었음에도 장비와 조운, 유봉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저항은 만만하지 않았고, 결국 그 과정에서 전만과 하후충 등이 부상을 입는 건 물론 조운에게 본진 한복판이 휘저어지는 굴욕까지 겪는다. 그럼에도 추격을 이어가던 중 포구를 막던 조비가 장비에게 중상을 입고 위독한 상황에 놓이고, 설상가상으로 유봉을 추격하던 하후무가 조비의 소식을 듣고 앞뒤 안재고 유봉 추격을 포기한 뒤 조비 쪽으로 오는 바람에 유봉까지 놓쳐버리자 극대노하여 하후무와 이전을 죽이려고 든다.

이에 다른 장수들이 만류하나 요지부동이었고, 결국 곽가가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자신이 작전의 입안자이니 자신을 처벌하라며 중상자를 살릴 수를 강구해야지 처벌부터 하면 어쩌자는 거냐 강수를 둔 끝에 조비가 회복한 후에 처벌을 결정하기로 한다. 그리고 조비가 기적적으로 눈을 떠서 이전은 졸백으로 강등시키고, 하후무는 곤장 50대로 형을 집행하려 한다. 하후무에게 등쪽에 부상이 있어 일단 회복한 후에 형을 집행하자고 주변이 간청하나, 이번만은 조조도 완고했으며 조휴에게 곤장을 넘겨주면서 걱정되면 거적이라도 하나 얹어주고 패라며 형을 집행시킨다. 이에 조휴는 자신이 거적을 입고 있으니 자신이 얹어져도 된다는 논리로 자신이 하후무 위로 올라가는 식으로 하후무 대신 곤장을 맞고, 형 집행 후 조조는 조휴도 치료를 받게 하는 한편 조휴가 붙잡은 유비의 두 딸은 조휴의 첩으로 보내 수발을 들게 한다.

형북 점령 이후의 행보에 대해 논하면서 조비가 주장한 강동 정벌과, 조휴가 주장한 형남 정벌을 두고 고민한다. 그러나 조비가 말한 대업, 즉 천하통일에 대한 욕망 때문인지 강동 쪽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다만 현재 조조군은 수군의 양성과 수전 훈련이 급선무라 이를 위한 준비가 우선이었고, 곽가의 제안으로 인해 직접 전방에 나서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리고 곽가가 조조를 양양에 머물게 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다른 세력의 기습에 대한 대비였다. 실제로 강동 쪽에서 손권이 항전을 선언한 것이 들려올 무렵, 익주 쪽에서 유장의 지원을 받은 유비 세력이 백제성에 배치되었고, 여기에 더해 잠잠하게 있던 서량의 마등과 관중제장들까지 장안 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조조군이 말 그대로 사방에서 공격받는 상황이 되었기에, 곽가와 참모진들이 군을 나누어 1군만 적벽으로 보낸 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조조는 상황을 들었음에도 천하통일의 대업을 놓칠 수는 없었기에 조휴를 적벽으로 배치하기로 결정하고, 조인에게 익주 방면의 방위를, 조홍에게 관중 쪽 방어를 맡긴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해가 지나기 전에 승부를 낼 것을 종용하였으나, 하후돈과 조휴가 이끄는 1군은 오군의 화공과 각종 계책을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가며 피해를 최소화하고 여러 장수들을 잡아냈으나 그 과정에서 수군도 피해를 입어서 조조의 바람처럼 바로 강동으로 넘어가긴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온 힘을 다한 가신들을 격려했고, 특히 조휴에겐 적벽의 영웅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적벽대전 종료 후 2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손권이 여강 쪽을 기습하자 대노하여 합비 쪽으로 오군이 올라오는 걸 막기 위해 장군들을 소집한다. 다행히 하후연과 장료 등을 보내서 합비로 올라오는 오군을 막아내고, 뺏겼던 여강의 일부 군현도 되찾는다.

작중 주인공 조휴가 정말 존경하면서, 약점을 잘 보이지 않던 철인과 같은 모습이었으나 정부인과의 사별과, 형주 점령전 때 유비가 죽고, 초토화된 형주에 무혈입성하는 순간부터 이전의 총기가 사라지고 조급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특히 예전보다 더욱 다혈질적인 성격에 화를 버럭버럭 내서 그걸 말리는 순욱, 곽가, 조휴 등이 더욱 고생한다. 본인 또한 아는지 지금의 상황을 두고서 천하 대업을 위해 마지막 내딛은 발이 수렁에 빠지고, 그걸 빼려니 반대쪽 발이 빠진다.등으로 정말 눈앞에 보일듯 하는 천하통일이 안되는데다가 본인의 나이와 사별 트라우마로 인해서 점점 노쇠해가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조휴의 대비로 적벽에서의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도 오나라 측 장수들을 다수 참살하는 전공을 세우는 활약을 하자, 자신이 조휴의 말을 안 들었으면 수십만 대군을 잃고, 장강은 넘는다는 건 엄두도 못냈을 거라며 10만의 병사들로 하여금 조휴를 찬양하게 하며, 곽가에게도 자신이 이번에 너무 성급했음을 인정하고, 대대적인 재정비에 들어간다.

그러던 중 서량의 마등이 귀의를 해오나, 서량을 맡으며 하사받은 부절을 잃어버렸다 하는 등 횡설수설한 모습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도착한 마등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자 조휴와 참모진과 같이 이를 의심한다. 그후 마초가 한수와 함께 서량의 세력을 규합해 기어이 공격해오자 이를 토벌하려 한다. 그러나 마초가 오히려 기습을 걸어 하마터면 죽을 뻔한다. 다행히 허저의 혼신을 다한 경호로 목숨을 건진다. 그후 누규의 얼음성 책략과 조휴의 마초와의 일기토에서 사실상 승리로 승세가 기울자 슈퍼 겁쟁이한수 측에서 휴전을 제의하자 아들 죽을 때 피눈물 흘린 놈이 이제 와서 휴전이냐며 비웃고, 이를 받아들이는 척하며 이간책을 쓰기로 한다. 그리고 이간책이 먹혀들 것 같자 조휴에게 마등의 막내딸 마지를 마음대로 하라 허락을 내리고, 한수 쪽이 낙양으로 가기 위해 마초와 갈라진 사이 마초의 본영을 공격해 그들을 와해시키고 포판과 위수 등을 되찾는다. 다만 공세종말점이 와서 장안 수복은 뒤로 미루게 되었고, 마초와 한수가 공격하는 틈을 타 허도에서 반란을 획책하던 황규 등의 대신들을 처형하려 한다. 하지만 그 무렵에 황후가 된 본인의 딸 조절이 임신한 상태라서 처형일은 조절의 출산 이후로 미룬다.

이후 동작대 완공과 더불어 정식으로 위공의 자리에 오르고, 이로 인해 남은 4개의 세력(파촉, 한중, 서량, 강동)이 모두 조조 상대로 칼을 겨누게 되었으며 이들 중 서량과 강동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조는 이에 자기가 나서려고 했으나 참모진의 만류로 자식들과 새로운 세대의 인재들에게 전선을 맡겼고, 조휴와 조앙이 나선 서량 쪽에선 마초를 사살하고 장비는 자결, 빼앗겼던 장안과 안정을 비롯한 군현들을 수복하며 대승을 거둔다. 여기에 만총과 조비 등이 나선 강동 전선에서도 적의 공세를 방어하고 사령관 주유에게 화살을 쏘아 부상을 입히는 등 승리를 거두지만, 호표기의 훈련대장을 맡았던 조순이 병으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는다. 여기에 양아들인 하안이 마약인 오석산을 사대부들 사이에 퍼지게 하는 바람에 큰 소동이 생겨 집안은 물론 청류와 탁류파 선비들 모두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등, 천하통일을 앞두고 내부에서 문제가 연달아 악재가 터지자 어처구니없어한다. 다행히 조휴의 장인이자 한 황실의 큰어른인 복완이 최대한 공정하면서 조조에게도 납득할만한 재판을 내려서 문제는 해결되었고, 여기에 조조의 권신화를 경계하는 청류파 세력이 크게 쓸려나가서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도 가능해졌다.

건안 17년, 회차로는 391화에서 드디어 위왕의 자리에 오르고, 대대적인 관직 개편 및 인사이동을 단행한다.[124] 그러나 즉위 직후부터 낭야왕 유희의 강동 망명 시도 사건이 터지는 등 즉위 직후부터 피바람이 불 뻔했으나, 황후가 된 딸 조절이 딸을 무사히 출산하고, 같은 날 장남 조앙에게서 셋째로 아들이 태어나자 기분이 풀려서 최대한 너그러운 조치를 취한다. 이후 395화에서 하후돈에게 장안으로 보낼 군을 편성하라는 명을 내렸고, 그에 따라 장료와 조비는 강동으로 가고, 하후돈은 조휴랑 같이 한중의 장로를 치기로 한다. 그리고 하후돈과 조휴가 이끄는 한중 원정부대가 중간에 유봉이 올라오긴 했지만 그들을 패퇴시키고 무사히 한중을 복속시킨 뒤 돌아왔고, 강동 전선으로 떠난 조비와 장료 역시 손권군의 공세를 막아내고 역공을 펼쳐 대승을 거둔다.

내부적으로 조식의 사고 수습과 후계 문제로 등의 일로 골머리를 앓고 바깥으로는 손권과 익주의 세력이 여전히 저항해서 천하통일을 보기도 전에 화병으로 죽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으나 그나마 조식의 일을 어떻게든 처리하고, 순욱과의 대담을 통해 조앙과 조비의 후계 경쟁 구도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한시름 놓게 되자 마음 편히 조앙을 후계자로 선정하고 천하통일을 위한 마지막 걸음을 위해 강동과 익주 양측으로 대군을 동원한다. 그리고 익주로 원정을 간 하후연과 조휴의 부대가 유장의 항복을 받아내고 유봉 세력 역시 유봉의 자결로 와해되면서 강동만이 최후의 저항 세력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순유가 병으로 사망하고 점점 대의를 함께하기로 약속한 이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자 심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피폐해지면서 결국 휴식 차원에서 잠시 동군으로 휴가를 간다. 그리고 거기서 조휴와 곽가에게 조앙에게 양위하고 쉴 것을 권유받자 굉장히 열받아서 당장이라도 목을 칠 것처럼 화를 낸다.

하지만 결국 양위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남은 천하통일의 과업을 후대에게 맡기게 되었고, 그에 따라 선양을 비롯한 찬탈의 업도 같이 넘기게 되었다. 대신 처음으로 이 얘길 꺼낸 조휴에겐 2년 안에 강동을 점령하고 그러지 못하면 목을 치겠다는 으름장을 놓은 상태. 그리고 양위한 후 상왕으로 물러나며 그간의 스트레스도 같이 내려놔서 그런지 어느정도 건강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조앙의 즉위 이후로는 태상황이 되었으며 그 와중에 첩과의 사이에서 또 자식이 태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481화에서 진정한 통일을 이룩하면서 이젠 정말로 마음 편히 은퇴 라이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본작의 조조는 정사 및 연의의 모습과 비슷한 면이 많으나, 조휴의 개입 등으로 흑화의 원인이 된 사건들 내지는 흑역사의 상당수가 개변 내지는 없는 일이 되면서 간웅의 면모보단 한나라의 권신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고 한나라 이후의 야심이 없는 것은 아닌 게, 본인의 말로는 천명을 믿으며 자신의 천명은 난세를 종식시키기 위해 한나라의 유씨 황족들이 나를 추대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유비를 오래 둘 수 없다고 본 조휴나 다른 이들과 달리 끝까지 유비를 믿고 자신의 밑에 두고 싶어한 것도 이것 때문. 또한 사람을 대할 때 중요한 것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한 공유를 강조한다. 조조 본인은 상술했듯 난세의 천명을 자신의 욕망으로 생각하는데, 정말로 마음을 터놓고 대할 자들에게는 욕망, 즉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는 중용하지 않고 자신과 똑같이 그 자의 욕망에 대해 묻고, 그것에 공감대를 얻고는 더욱 중용한다.[125]

여담으로 원 역사의 조조와 마찬가지로 이쪽도 여성편력이 심한 편인데, 그로 인해 정실부인 정부인과 첩을 들일 때마다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곤 했다. 그나마 조카 조휴의 은밀한 서포트 덕에 어느 순간부터는 부부관계에 대해서 상호 존중으로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3.2. 조조의 아내

3.3. 조조 일가

3.4. 하후씨 일가

3.5. 조조의 친척 일가

3.6. 장수진

3.7. 참모진

3.8. 그 외

4. 한 황실

5. 여포 세력

6. 원술 세력

7. 원소 세력

7.1. 원소 일가

7.2. 장수진

7.3. 참모진

8. 유비 세력

8.1. 유비 일가

8.2. 장수진

8.3. 참모진

9. 손견 세력[322]

9.1. 손씨 일가

9.2. 장수진

9.3. 참모진

10. 유표 세력

11. 유장 세력

12. 서량 세력

13. 한중 세력

14. 기타 인물



[1] 조조가 자신의 양아들로 삼으면서 자를 바꿨다. 조조의 아들들은 자에 아들 자(子)를 돌림자로 쓰기에 이에 맞춘 것이며, 서열은 적장자인 조앙 다음인 차남. 나이만 보면 조휴가 1살 많지만, 군주인 조조의 후계 문제와도 관련이 있기에 결과적으로 조앙 아래의 둘째다.[2] 원래 역사보다 전개가 조금 빨라져서 여러 사건들이 원역보다 1년 가량 앞당겨졌는데, 그에 따라 적벽대전도 208년이 아닌 207년에 벌어졌다.[3] 말이 삼국지 시대에 떨어진거지, 아무 배경이 없으면 그냥 고대 난세에 백성으로 떨어진 처지인지라 살기 위해서 강제로 단련했다고 한다.[4] 실제 역사의 조휴 역시 조씨 일가의 집성촌인 패국 초현이 아닌 강동 오군 출신이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개명하여 조조의 거병 때 합류한다.[5] 조휴는 노숙의 이름을 듣고 그를 포섭하려 했으나, 아쉽게도 노숙은 이미 주유와 약조를 한 상태라 거절한다.[6] 작중 조휴가 본인보다 강하다고 평한 4명을 제외하고 일기토에서 호각을 이룬 인물은 조운손책, 장료, 장합 정도가 전부고, 고순, 문빙, 문추 등의 장수들을 상대로는 우위를 점했다.[7] 정사와 연의에서 제갈량이 형주로 내려간 계기가 서주 대학살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고, 실제로 이 대학살로 인해 진궁과 장막이 조조 세력에서 나가고 연주 전체가 조조 세력을 내쫒아 한순간에 근거지를 잃는 등 타격이 컸다. 정사에서도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며 쓴 한중왕표에서 조조를 동탁과 형님 아우할 학살자라고 신랄하게 씹었다.[8] 또한 후대에 나오는 삼국지 관련 창작물에서도 99%는 등장하며 호되게 까이는 게 바로 서주대학살이다. 한 예로 네이버 웹툰에 연재된 삼국지톡에서는 대학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조조의 악행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줬고, 이 대학살로 인해 제갈량과 노숙 등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평생 조조 세력을 적대했다고 언급한다.[9] 물론 정욱은 영 맘에 안들어했다. 이는 속전속결이 중요한 전장인데 진군 속도가 크게 느려지기 때문.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게 되었으니 손해는 아니었다.[10] 게다가 장남인 조앙이 죽은 것을 들은 정부인이 조조를 크게 원망하여 친가로 돌아가버린 뒤 다시는 조조를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10살의 나이로 완성에 종군한 조비 역시 조앙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항간에 조비가 삐뚤어진게 이 사건으로 형을 잃어서라는 말이 있을 전도로 큰 사건이었다.[11] 교포화장처럼 눈가와 피부를 검게 칠하는 등 일부러 이상하게 화장하도록 했고, 실제로 이 작전은 적중해서 추씨가 아닌 그녀를 보조하던 시비중 미색이 뛰어난 여인을 대신 데려갔다.[12] 나중에 상황을 들은 하후연은 완성 전투에서 추씨를 제외한 장수 일가가 전멸해서 상중인 추씨를 취해도 뒷말이 나올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장수가 스스로 제 숙모를 바친것도 아니고, 추씨가 제발로 조조에게 재혼한다고 찾아온 것도 아님을 지적하며 항복한 자들 앞에서 그 가족을 능욕하면 누가 충성하겠냐고 조안민을 꾸중했다. 만약 조휴가 먼저 손을 대지 않았으면 내가 점령지에서 벌어진 군기문란의 죄목으로 곤장을 쳤을 거라고 했고, 안민도 이야기를 듣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보면 원역에서 조조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13] 사실 어떻게 보면 서주 대학살을 막은 것 그 이상으로 엄청난 공훈이다. 조앙은 조조의 장남인 동시에 조조의 1부인인 정부인이 친아들처럼 길렀기에 정통성과 명분이 가장 확고했다. 조비와 그 아래 형제들은 정실이 아닌 2부인 변씨 소생이라 후에 조조의 후계자로 나서기엔 정통성이나 명분 면에서 조앙만큼 지지받기 어려웠고, 실제로 조조는 말년까지 후계 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고심했으며 조비는 형제들을 엄청나게 경계하고 핍박했다. 이것만 봐도 조앙의 죽음이 얼마나 치명적인 문제인지는 답이 나오는 셈. 즉, 서주 대이동이 당대와 후대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조조에 대한 평판을 바꿨다면, 추씨 부인 건은 조조 세력의 후계 구도가 어그러지는 것을 막고 조앙의 입지를 보다 탄탄히 하면서 조조 일가의 분열 위기도 막은 것이다.[14] 고대 중국인만큼 의학이 덜 발달해서 별의 별 이유로 요절할 수 있다. 아무리 화타가 있어도 그 화타가 전국을 떠돌아 다니다시피 하니 필요할 때 찾을 수 없고 화타 수준의 의술을 가진 의사는 드무니 문제가 생기면 죽는다고 봐야 할 정도.[15] 원래 조휴는 자기 혼자 독박 쓰려 했는데 조앙이 나서자 니가 왜 나서냐며 속으로 크게 당황한다. 나서도 아들과 조카의 경계에 있고 방계 혈족인 자신이 나서야지 친자인 조앙이 나사면 부자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조앙은 지금 아버지께서 노하시면 너 혼자 독박을 쓰는데 그 꼴을 볼 수 없고, 넌 내 형제이니 매를 맞아도 같이 맞자고 설득한다.[16] 아이러니하게도 동귀인은 조휴의 말대로 일가가 몰살당하고 자신도 죽다 살아났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처형될 시한부 삶이란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극도로 쇠약해져 출산 중 난산으로 인해 요절하고 태아도 사산되는 비극을 맞았다. 어쨌건 조조가 동승이 죽인 일이 계기는 맞는데다가, 그 시기도 절묘했기에 시중에선 '조조가 일부러 난산을 유도해 동귀인과 아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17] 당시 위생상 절대 좋다고는 못할 환경을 보고 이를 뜯어고쳤고, 이게 좋은 효과를 보자 다른 부대에도 도입되며, 적벽대전에선 술을 끓여 주변 강변에 부어서 방역을 했다.[18] 심상치 않음을 느낀 조휴가 당신은 조조이지 이방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이방원이냐면 이방원이 즉위 후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외척을 갈아댔기 때문이다.[19] 정 부인은 여동생이 연주 호족 귀부인들과 큰 규모의 계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비리 혐의가 생겼고 변 부인의 남동생 도향후는 뇌물 수수 혐의로 걸렸다. 이 때문에 정 부인이 내가 첩 많이 들이는 걸로 바가지 긁는다고 이런 식으로 보복하기냐고 난리였고 조조는 그거 아니라고 잡아때다가 결국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는등 아주 난리였다.[20] 다만 황보경은 조홍을 등에 업었답시고 악행을 많이 저질러서 결국 처벌을 받았다. 황보숭의 먼 친척이라 거뒀는데 저잣거리에서 허구한 날 패싸움에 부녀자 간음에 보통 날뛴게 아니라고 한다.[21] 위자시절부터 있어서 현 상단주 위홍보다 고참이다.[22] 대리시 심문이라도 신분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신분이 높거나 관직이 높을 경우 다과상 차려놓고 평화롭게 하하 웃으며 조사를 진행한다며 과거 대리시를 가본 썰을 알려주었는데, 실제로 정 부인의 여동생인 하후연의 부인도 이 사건에 말려들었는데 하후연의 부인을 조사하는 담당자가 하후연이 참모로 키운다고 데려간 서서였다. 얘기를 들은 조휴도 이건 그냥 차 한잔 대접하며 '잠잠해질 때까지 여기 피신하십시오.'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23] 조휴는 처음에 50명인줄 알았다가 50개 가문이란 말에 기겁했는데, 그 순욱이 최소한의 선이라고 했고 처형된 자들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의 죄인들이 본보기로 처형된거고 나머지는 전부 석방되었다고 한다. 50개 가문의 가주와 그 자식들이 떼거지로 죽는 수준까지 가는 건 반대라 유력자 일가의 방계친족, 식객, 정략혼으로 이어진 외가 등으로 최대한 가지치기를 한 거라고 언급한다.[24] 조부 중상시 조등을 환제 시절 다른 환관들과 한통속이 되어 선황의 눈과 귀를 가리고 문고리 권력이 되어 부정한 제물을 모으고 극악무도한 짓을 일삼고 등등으로 모욕함은 물론이고 조조의 아버지 조숭은 문전걸식하던 건달놈이 환관놈 양자가 되더니 뇌물로 관직을 사고 삼공의 자리를 도적질 하여 사직의 큰 우환이 되었으며 조조 역시 환관의 자손으로 인덕이 없고 교활하다 운운하며 아주 빅엿을 먹여놨다.[25] 공융이 대필했다.[26] 사실 마음 같아선 원소가 보낸 것처럼 '원가의 노비 자식이 자존감 채운답시고 삼년상 두번으로 애비가 둘임을 인증하고, 그래서 한입으로 두말 한다!' 같이 패드립으로 돌려주려 했으나 최대한 품위를 지켜서 까는 쪽으로 선회했다.[27] 이때 조홍이 누가 원소놈 칭찬만 쓰라 했냐고 발끈하나 조조가 조용히 하라고 일갈한다.[28] 이 대목에서 조조가 빵 터진다.[29] 여기서 조씨+하후씨들 모두 웃음을 참고 공융도 살벌한 돌려까기에 혀를 내두른다.[30] 손책과 주유는 본디 여강 진출을 꾀하면서 교공의 딸들과 결혼할 의사를 표했으나 교공은 결국 조휴를 택했고, 조휴는 둘과 첫날 밤을 치른 후 남은 속옷을 화살에 매달아 손책과 주유 진영에 활로 쏘아보내는 미친 도발로 둘의 공세가 한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고간의 경우 그의 사촌인 원희가 가족들을 버리고 도망친 것을 꼬집으면서 유부인이 절연하고 견강의 이혼을 허가하여 내가 견강을 데려갔다고 도발하고, 이에 술렁거림이 심해지자 화룡점정으로 견복이 맡긴 옥비녀를 보여주며 너네 잡고 견씨 자매들과 회포 풀겠다고 속을 뒤집어놓는다.[31] 실제로도 원희가 가장 못나다는 평이 많다.[32] 이를 갈며 참던 원희가 결국 뚜껑이 열려 튀어 나왔다.[33] 말을 타고 여양까지 가서 새 말로 갈아타고, 황하에서 백마성까지 가는 보급선을 타고 내려온 뒤 백마에서 말로 갈아타고 복양에서 다시 갈아타는 식으로 폭주하다시피 달렸다. 전쟁중이라 여기 저기 보급 기지가 깔려 있었기에 수시로 말을 갈아 탈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지 평상시라면 적토급의 천리마가 있지 않고서야 절대 못할 짓이었다.[34] 문상객 중 한 명이 전장에서 이탈했다고 언급하나 바로 다른 문상객이 이건 이탈이 아니고 효심이라고 태클을 건다.[35] 조조가 자신이 전장에서 탈거라고 그렇게 아끼던 적토마의 새끼를 내줬다.[36] 다들 알다시피 공융은 공자의 후손으로 충, 예, 효를 중요시한다. 그 공융이 보기에도 조휴의 행동은 대단한 수준이란 것이다.[37] 완전히 처음은 아니다. 193화에서 복은을 들일 때 복완의 상소로 관내후의 직위를 받았다. 다만 본인만의 봉토이자 영지를 받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38] 그나마 일전에 곽가와 참모들의 만류로 조조가 전방에 나서지 않고 후방인 양양에 머물면서 최전방의 1군만 적벽으로 보냈기에 익주 쪽의 기습 대비는 가능했고 조인까지 배치했으며, 관중 쪽의 문제는 조홍을 보내어 대비하게 했다.[39] 게다가 조휴는 조조의 휘하라 잘못 움직이면 정치적 의도로 해석될 우려도 있었다.[40] 게다가 순욱이 전쟁터에서 병으로 숨지고 장수진들 중에도 병에 걸린 이들이 많았다.[41] 손권의 후속 요청으로 회계 이남의 반란을 진압하고 교주까지 편입했다고 한다.[42] 포상과 별개로 조앙이 강릉후 이상의 작위를 내릴 가능성이 있는데, 공작 혹은 왕작급의 작위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43] 족발을 만들게 한 것이 대표적. 채염이 첫 임신 당시 입덧이 너무 심해 어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을 해서 조리법을 알려주고 만들어달라 부탁했는데, 채염은 물론이고 다른 아내들도 입에 잘 맞아서 맛있게 잘 먹었다. 그 외엔 의대조 이후 조조가 휴가를 명했을 때 고기 구울 용도로 그릴을 만들어보거나, 아내들과의 성생활을 위해 입힐 옷 정도가 전부.[44] 원래 이름은 마지였으나 조휴의 첩으로 들어온 후 이름을 새로 받았다.[45] 묘하게 몰락영애 속성의 아내들이 많아서 조조나 조홍 등은 그런 쪽이 네 취향인 거냐며 놀리기도 했다. 독자들도 어디 정벌할 때마다 부인 하나씩 들어오겠다고 드립을 치는 중. 조홍은 그렇다쳐도 유부녀 콜렉터인 조조가 할 말은 아닌거 같지만[46] 여명은 본인을 뺀 일가가 전부 죽었고, 채옥+유정 모녀는 본인들만 조휴의 첩으로 들어가 살아남고 남은 채씨 일가와 유표의 일가 친척들은 대다수가 사망하거나 형주 일대에서 상종 못할 악인 취급을 받게 되었으며, 원경과 청백 자매는 조휴에게 사로잡혀 가족들과 헤어졌다. 마운록은 애초부터 가족에게 박대당했고 도구 취급당해 죽을 뻔한 것을 조휴가 첩으로 들였고, 강탈복 자매와 채염은 본인들이 가문을 살려야 하는 입장이었으나 이미 가세가 많이 기운 상태였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장예와 손인 역시 일가를 살리기 위해 조휴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47] 정확하게는 언제 10명을 넘을지를 가지고 조조와 내기를 했다. 조홍은 3년 이내에 걸었다고...[48] 그래서 조조가 조홍과의 내기 내용을 바꿨다. 2배로 하는 대신 형주 점령전까지 첩 열 다섯을 만들거라는데 걸었다고.[49] 단, 예외적으로 채옥은 조휴에게 다소 험한(?) 취급을 받았다.[50] 작중에서 관상가들이 꼽은 내조로 왕을 만들 상을 가졌다는 4대 미녀인 채염-오국태-초선-견복 중 하나이다.[51] 이각이 몇 번이고 자기 측실로 들어오라 했지만 강제로 채염을 취하지는 못했는데, 다른 미인을 그런 식으로 취하려다 그 미인이 독주를 마시고 자결해버린 적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이런 식의 위협이 하루에도 몇번씩, 매일매일 벌어졌기에 동생인 채림은 언니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을 극도로 경계했다.[52] 흉노 선우 어부라가 이끄는 군대로, 훗날 조휴가 재침공을 한 어부라의 아들이자 원 역사의 채염을 취한 좌현왕 유표를 전투 중에 참살한다.[53] 원 역사에서는 조각배 한 척을 겨우 구해 동승복완이 황제와 귀인 둘만 겨우 탈출시키고 나머지 인원이 배에 타려고 하자 칼을 휘둘러 떼어놓은 것인데, 조휴는 미리 알고서 다수의 쾌속선과 뱃사공을 준비시켰다.[54] 아직 어지러운 상황이기도 하고, 최대한 예쁜 모습으로 조휴를 맞이하고 싶어 대답을 보류했었던 거라고.[55] 조조가 협천자 이후 평소 존경하던 채옹의 딸 둘도 같이 탈출했단 말에, 채씨 일가 이야기를 해주며, 맘에 들면 당장 가서 부부의 연을 맺으라고 부추기고, 결혼식 때는 즉석에서 시를 지어 축사를 해줬다.[56] 상냥한 성격에 더해 질투심도 없어서 조휴가 미혼 시절에 관계를 가진 기녀들을 본인이 먼저 불러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곁에서 교류하는 건 물론, 후에 줄줄이 들어오는 히로인들 상대로도 질투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조휴도 그런 채염의 모습에 자신이 정말 아내를 잘 만났다며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된다.조조가 대놓고, 네 아내는 첩을 들여도 투기를 안하니 그게 성공한 인생이라면서 자조한다.[57] 224화에서 조휴가 조숭의 장례식에 문상 온다고 폭주하다시피 달려왔을 때, 호족들을 복속시키기 위해 정략혼을 한다고 들었다며 조휴가 좋아하는 요리와 마음을 맞출 말을 적었다며 서책을 준다. 새로운 부인을 들이는 건데도 질투 없이 조휴의 취향에 맞춰 잘 모셔 달라는 의미의 서책을 준 것이니, 이 정도면 가히 엄청난 포용력을 보여준 셈.[58] 조휴 성격상 수많은 미녀를 첩으로 들여도, 아들을 낳아주고 첫 부인인 채염은 각별하게 생각하니 불화도 없다.[59] 숨어서 몰래 하는 것이었기에 그날만큼은 엄청 조마조마했었다고 한다.[60] 본래 장기전을 염두에 둘 경우 처나 첩을 자유로이 데려가는 게 위국의 방침이긴 하나, 채염은 그간 안주인의 역할에만 충실해서 어딘가로 가겠다고 한 적이 없었다.[61] 법정 역시 실제로 납치할 생각은 전혀 없고, 우리가 여차하면 장안을 기습할 수도 있다는 식의 암시를 남겨 조휴가 후방을 계속 신경쓰게 만들려는 게 목적이었다.[62] 조조는 원술의 딸을 원소의 딸이라고 중신들 앞에서 대놓고 말하면서, “혹 그래도 저 아이가 의심스러우면 우리집으로 찾아오시오, 내가 친히 가르쳐 주겠소.”라고 경고한다.[63] 당연하지만 원요가 자의로 가담하진 않았다.[64] 헌제에겐 딸이 둘 있는데, 조주랑 조이하고 비슷한 나이대라 소꿉친구처럼 자라서 나중에 미래를 알아서 결정하라고 보낸 거라고 한다.[65] 고순을 대동해 조조군의 추격을 뿌리치자마자, 저런 못난 놈을 내가 왜 구해야 하냐면서 자기 정략혼 대상이라는 걸 극혐했다.[66] 이 당시 원래 검은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새 버리고, 죽은 눈으로 변해 서주의 백호라는 악명으로 불린다. 또한 눈썹 아래의 모든 털들이 전부 빠졌고, 정신적 충격의 영향으로 몸의 체질이 변해 음기가 거의 사라지고 양기를 잘 받아들이지 못해 임신이 어려운 체질이 되었다.[67] 이 하얀 머리 때문에 원경은 여명을 '석영머리'라고 부른다. 상술했듯 여명은 원경을 왕궁뎅이라 부른다.[68] 상술했듯이 가족을 잃은 충격에 체질이 변해 몸 안의 음기가 증발 수준으로 사라지고 양기를 받아들이질 못해서 임신이 안된거라고 한다. 그래도 음기를 서서히 회복중이라 곧 가능할 거라고 했으니 다행. 심지어 그 화타마저 어렵게 들어선 태아라고 했으니 말 다했다.[69] 머리가 아니라 발이 먼저 나오려고 해서 발바닥에 침을 놔 다시 들어가게 하는 긴급조치로 가까스로 머리를 다시 나오게 했는데, 방향이 바뀐 뒤로는 다행히 순산했다고.[70] 정확히는 약속을 핑계로 조휴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재밌어하며 괴롭히는 것에 가깝다.[71] 손인은 호위대들로 기세를 눌러줄 심산으로 그들의 행동을 일부러 방치했는데, 이 둘의 기세에 호위대가 되려 밀렸다.[72] 조휴의 말에 따르면 명기의 소유자라고 한다. 처음 할 때 여명기라고 부를 정도 여기에 여포 딸답게 체력도 좋은데다 자식 욕심도 많아서 엄청 적극적으로 임하는데다, 여명 본인의 체질상 임신이 어려운지라 여러 번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조휴의 체력을 가장 많이 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73] 참고로 아직 성인이 되기 전의 조비를 부른 호칭이 '맹덕 아저씨네 아들놈'이었다(...) 이조차도 원래는 애새끼라고 부르려다가 조휴 때문에 정정한 것. 다만 이때는 의대조 사건 때 조비가 공명심에 취해 나대서 애새끼라고 씹은 것이긴 하다.[74] 조휴의 다른 아내들을 부를 때 쓰는 별명들도 눈에 보이는 특징에서 따온 직설적인 별명들이며, 유일하게 안주인인 채염만 큰언니 내지는 채언니 라고 높여서 부른다. 참고로 현재 나온 별명은 다음과 같다. 원경=왕궁뎅이, 채옥=아줌마(...), 복은=왕가슴, 견자매=점순이, 마운록=백사슴. 다만 강탈복 자매 모두 점순이라서 견강이 큰 점순이, 견탈이 중간 점순이, 견복이 막내 점순이가 될 수도 있다.[75] 이때 조휴는 양수와 동행했는데, 자기가 조휴를 고를테니 저 비리비리한 서생은 동생 소교가 선택하라고 투닥거렸다.[76] 교공 입장에선 귀한 두 딸은 물론이고, 재산까지 거의 다 조조에게 바치고 여강태수 자리 하나를 받았으나, 이후 장강 이남의 동오군 세력을 막아내어 목숨을 건지니 '난세의 호족이 다 이런법이다.'며 아낌없이 조조군을 지원한다.[77] 강동군 총사령관이 주유고 하필 대교와 소교가 형주에 머무니 일부러 장군부에 불러 수발이나 들면서 도발용으로 퍼트리려 했다.[78] 형주 점령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니 각 장군들에게 아내을 대동하는 것을 허락한 조조로 인해 조인도 부인을 데리고 내려온 상태였다.[79] 자매 모두 아버지와 예전부터 각별했지만 대교가 특히 그랬기에 소교보다 더 힘들어했고, 그로 인해 소교가 언니 대신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빈소를 주로 지켰다.[80] 고대에 정략혼으로 딸을 시집보낼때,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자매 하나를 딸려보내는데, 그걸 잉첩제도라고 한다.[81] 주유 입장에서는 원역사 NTR에 당시 여강성 공방전때 손책과 패퇴한 기억이 있어서 치를 떨고 있었다.[82] 작중엔 헌제가 동귀인 일가 몰살 이후, 조조가 딸인 조절을 입궁시켜서 황후로 승격하지 못하고 귀인이라 불린다.[83] 복완의 장남 복덕은 옹주로, 차남과 삼남은 복완의 고향인 서주 낭야국의 관리로 떠나고, 복완 본인도 유비의 이탈 이후 예주목 자리를 가져 허도를 떠난다.[84] 이 시점 조휴의 아내들 중 대교가 가장 거유이고, 채염이 그와 거의 동급인데, 복은은 그 둘보다 더 크다고 언급한다. 다른 아내들에게 직설적인 별명을 붙여 부르는 여명 또한 그녀를 '왕가슴'이라고 부른다. 이후 조휴의 부인이 된 이들을 전부 포함해도 견탈 정도가 복은과 비슷 내지 그 이상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85] 위홍이 말하길 상단은 후한 13개주 대륙을 누비다보니 그 지역 호족들과 군웅들의 환심을 사려고 관상가들까지 대동하고 그 자녀들을 돌본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관상이 좋은 한나라 4대미녀로 왕을 만들 여인의 상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오국태는 남편 손견이 추존황제가 되고, 아들 둘이 장사환왕 손책과, 오나라 초대 황제 손권이고, 초선은 황제의 권력을 누린 동탁과 여포, 이후 관우에게 재가를 하여 관성대제의 부인이 되었고, 채염은 원 역사에서 흉노의 왕인 선우 유표의 부인, 견복은 위나라 초대 황제 조비의 아내로 초선 빼고는 원래 왕의 부인이 되었다.[86] 두 집안 모두 숙청의 위기에 놓여있는 상태였다.[87] 지금까지의 아내들 중 최단 기간 임신이다.[88] 참고로 손인은 그 이전까지 여차하면 자기가 나이와 미모를 앞세워 조휴를 꼬실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견복을 보고 자신감이 흔들렸다고 한다.[89] 본인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는지 명목상 원가에서 쫓겨난 것임에도 표정이 밝았으며 오히려 이렇게 되길 기다렸다는 얼굴이었다.[90] 이후에도 조휴와 밤일을 가질 때 유달리 직접적인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걸 보면, 평소에는 확실히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표현에 서툰 모양이다.[91] 이전에 형주 쪽 사절로 파견되었던 양수도 채부인을 표현하길 엄청난 외모를 가진 고고한 여왕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92] 조휴의 아내들 중 가장 장신이라고 조휴 본인이 언급한다.[93] 272화에서 이 몸과 얼굴이 어떻게 삼...이라고 하다가 입이 막혔고, 형주 원정 시점에서 조휴 나이가 30-31세 정도임을 감안하면 34-35세 정도로 추측된다.[94] 실제로 유비 암살 이후 곽가와 조조가 '채씨 일가를 보호하고 협상에 임할 대표자를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시 말해 미리 손을 쓰지 않으면 대표자를 구하지 못할 정도로 채씨 일가 상당수가 죽을 거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후 채모와 그 형제들은 물론, 한수 쪽에 있던 채씨 일가 대부분은 분노한 관우-장비에게 모조리 사망했으며 양양으로 피신한 채씨들 역시 양양이 점령당하면서 대부분이 처형당해 일가의 대표를 뽑고 할 상황조차 아니게 되었다.[95] 유비를 그런 식으로 암살한 것, 이후 발발한 전쟁에서 그간 모은 재물을 모아 도망치기 바쁜 모습을 보인 탓에 완전히 입지를 잃었다고 환계를 통해 언급된다.[96] 이 문제는 신야로 찾아온 황승언의 도움으로 더 이상의 뒷말은 나오지 않게 되었다. 다만 채씨 일가가 저지른 짓이 없는 일이 되지는 않기에 채옥 모녀는 더 이상 양양 쪽에 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조휴의 영지인 도양정으로 옮겨가기로 결정한다.[97] 그래도 대놓고 모녀를 동시에 취한다는 것은 조조 입장에서도 좀 걸렸는지, 유정을 보고는 대뜸 채부인과 닮았는데, 사촌자매 아니냐? 식으로 에둘러서 모녀가 아닌 자매라 언급하면서 허락해준다. 심지어 유정을 보고, 조조가 이복오빠인 유종의 아내가 채씨라는데, 그 처자냐? 면서 졸지에 새언니 취급을 받게 된다.[98] 채옥은 유정의 어머니라서 채옥과 조휴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은 유정에겐 남동생인 동시에 서자이기도 하다.[99] 사실 말이 수발이지 조조가 그냥 첩으로 들이라고 허락한 것이기에 조휴가 너무 머리가 꽃밭인 게 아니냐고 묻자, 본래 자신과 유백은 오라비인 유봉을 따라가기보단 고향인 장사현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봉은 익주로 떠나기로 결정한 상태였고, 유청과 유백은 본래 집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휴에게 잡히자 관우가 준 서찰을 협상 카드로 삼아 의탁하게 된 것이다.[100] 조휴가 새로 지어준 이름이다.[101] 아(阿)+이름을 붙이는 중국식 애칭이다.[102] 실제로 마등의 장례식 때 마지는 향을 태우고 절을 올렸지만 슬픈 표정도 짓지 않고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조휴는 그런 마지의 모습을 보며 애증이 가득하지만 증오의 감정이 더 강해보인다고 독백한다.[103] 이후 조휴가 이것을 다시 물어봤을 때, 자기 일가가 죽거나 침공한 자가 죽거나 둘 중 하나가 벌어질 것이라는 의미로 드러났다.[104] 칼을 뽑으려는 조휴의 앞에 마지를 내던져 칼을 뽑지 못하게 만드는 사이 마지와 조휴를 한번에 찔러 같이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마철의 더러운 수작을 간파한 조휴가 마지를 넘어뜨려 제압하는 동시에 자신의 옆구리 쪽에만 공격을 허용했다.[105] 현대에 전해진 마운록의 이름에서 록은 말이름 록(騄) 자를 쓰지만 본작에선 사슴 록(鹿) 자를 쓴다.[106] 다른 자매인 기영이 와도 되는 일인데 굳이 본인이 온 이유는, 기영의 이름은 옥의 기운을 뜻하는데 조휴에겐 이미 이 있으니 꽃의 기운인 자기가 온 것이라고.[107] 조휴와의 성생활에 적극적인 이교자매와 여명뿐만 아니라 비교적 수줍음이 많은 명가 출신인 복은과 원경도 같이 배우고 있었다.[108] 주유의 유언대로 휴전을 맺는 데엔 성공했기에 그동안 다시 방어선을 구축하고 힘을 모은 뒤 다시 전쟁을 시작하면 손인을 되찾을 생각이라고.[109] 이 정도면 말이 볼모나 식객이지, 사실상 손권이 내부에 침입시킨 스파이나 분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110] 실제로 대교와 소교는 입이 좀 걸걸하긴 하지만 보기보다 소녀감성이라고 평했다.[111] 본인은 동귀어진도 각오하고 들어왔지만, 조휴와의 대련에서 일가가 결국 몰락할 운명이라는 것을 느꼈을 테니 그 과정에서 느낀 무력감이 상상 이상으로 컸을 것이다.[112] 대련이 끝난 이후 조휴는 손인에게 거처를 앞으로 이곳으로 삼아도 좋다고 말했었다.[113] 채염은 손인이 한 말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는지 손인을 손님 방이 아니라 정방에 옮겨서 그곳에서 지낼 수 있게 조치했다.[114] 참고로 주나라에 쓰는 두루 주(周)자는 주유 일가의 성씨이기도 하다.[115] 당연하지만 아들이 현대인이었다가 조휴로 환생했다는 건 모른다.[116] 실제로 검리상전이라는 특혜를 받은 신하만이 황제 앞에서 무기를 패용할 수 있다. 그리고 검리상전은 못해도 승상 이상만이 가능하다.[117] 흔히 도자기로 만든 유리 술잔이 아닌, 금속으로 된 삼발이 술잔이다.[118] 할아버지 조등의 집에 황제를 모시고, 아버지 조숭을 통해 황제를 보좌하고, 자신이 군을 일으켜서 낙양을 수비하고, 아들 조앙을 황제에게 소개시키는 등, 대놓고 조씨 일가가 4대에 걸쳐 한황실을 보좌한다. 라는 프로파간다를 천하에 알린 것이었다.[119] 본인도 조사하고, 정말로 사고라고 하지만, 작중에서 조조가 불행한 일이라 말하면서 의뭉스럽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암살의 가능성도 많다.[120] 저 50개 가문의 비리 혐의 조사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서주 정벌 시점에서 조휴의 아내들이 하나같이 몰락 영애 속성이라 서주 정벌이 끝난 시점인 125화에서 이를 두고 놀리는데 이에 대해 조휴가 노린 건 아니나 이름난 집안의 절색 미녀인데 집안이 몰락했다보니 처가 등쌀이 없어 편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조조가 이상한 스위치가 눌리는 바람에 비리 혐의 조사랍시고 자기 처가와 친족등을 신나게 들쑤셨던 것. 정실 정부인의 처가는 물론이고 변부인의 집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곽가는 처가와 친족 조사는 핑계고 조정 신료들 상대로 칼춤 추는 거라고 꼬집었다.[121] 그래도 순욱이 말하길 처형된 자들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의 죄인들이 본보기로 처형된거고 나머지는 전부 석방되었으며, 50개 가문의 가주와 그 자식들이 떼거지로 죽는 수준까지 가는 건 반대라 유력자 일가의 방계친족, 식객, 정략혼으로 이어진 외가 등 최대한 가지치기를 해서 본보기를 보인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대상에 복귀인의 아버지인 중산대부 복완의 집안도 말려들어 재산을 조사받고 대리시에 생사가 갈릴뻔 했다고 한다. 물론 진짜 복완의 친족 중에서 그릇된 판단을 한 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유협은 망탁조의 4인방으로 꼽히는 악적 동탁에게 워낙 시달린터라 조조의 숙청에 트라우마가 도져서 조조를 동탁 수준의 악적으로 찍고 의대조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122] 일전에 조비와 조휴에게만 채씨 일가를 죽이지 말라고 전달한 바 있기에, 관우의 군세에 채모를 비롯한 형주군이 패퇴하기 시작하면 그들을 포섭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123] 이에 곽가가 그럼 승상은 승상이 거둔 채모의 첩 200명을 다시 풀어줄거냐고 묻자, 조조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린다(...).[124] 원역에선 건안 18년에야 위공에 오르고, 건안 21년에 위왕이 되었지만 일이 워낙 잘 풀렸기에 위공에 오른 시점이 빨라졌고, 그에 따라 위왕 즉위도 훨씬 앞당겨졌다.[125] 곽가는 조조에게 한나라의 구습이 아닌 탈권위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을 공유했고, 위홍은 자신의 가문을 여인의 몸으로 살린다는 대업이라는 욕망을 공유했는데, 주인공인 조휴는 세상을 누비며 미인들을 손에 넣으며 공을 세워 안락하게 살고 싶다는 지극히 세속적인 욕망을 말했다.(...) 다만 그 자체는 사내로서 생각할만한 욕망이기에 조조도 바로 뜻을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조휴가 첩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 응원해준다.[126] 그동안은 첩을 들여도 변변찮은 신분이라 넘어갔지만, 대장군 하진의 며느리이자 과부로 조조에게 재가한 윤부인하안과 같이 정방에 들어왔을 때는 상당히 경계했다. 자기 말고도 조조에게 명문 호족출신의 부인이 생겼으니 막 대할 수가 없었던 것.[127] 만일 정부인이 조비와 조진을 남 보듯이 했다면 아예 신경도 안썼을 것이다. 저렇게 반대했다는 건 본인이 낳은 자식만 아닐 뿐이지 그들 역시 자녀로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냥 바가지 긁히는 거라 여기며 짜증내던 조조도 조휴가 이를 언급하자 그간 얼자 취급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화를 가라앉힌다.[128] 그 이전까지 건강 관련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람이 갑작스레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과 함께 크게 앓아누웠다는 것 때문에 예전 변양과 그 아들의 사망처럼 누군가가 정부인의 죽음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이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정부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조비가 덩달아 의심을 받았으나, 하술하듯 조비의 이미지 때문에 생긴 오해였다.[129] 조조의 술상을 차릴때, 정부인이 직접 조조의 술안주로 을 잡아 요리하라 시키니 군말없이 닭장으로 가서 직접 닭을 잡고 요리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조휴도 '그래도 2부인인데 너무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130] 사실 말이 시어머니-며느리지, 나이로 치면 채염과 몇살 차이 안나는 자매 수준이다. 조조가 어린 첩을 들여서 생긴 일이고, 이것 때문에 하후돈이나 조홍등이 손주보다 어린 삼촌들을 만들면 어쩌냐?며 은근히 깐다.물론 조조는 신경도 안쓰고, 손녀보다 어린 숙모를 기어이 만들었다.[131] 윤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추부인은 장수의 아들이자 본인에겐 종손인 장천이 오석산을 흡입하고 있었으며, 두부인은 조조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오석산 게이트 주범인 하안과 결혼 예정이었다.[132] 처음 재혼 이후로 정방에 있던 조휴에게 먼저 인사하며 자신을 소개할 때, 조휴는 겉모습은 온화해보이지만 속으로는 강단이 있어보인다면서 무서워한다.[133] 삼년상 같은 예법이 아니라, 사별이나 이혼한 여인이 그 기간 동안에 임신여부를 가리기 위해 일부러 1년간의 공백기를 가지는 거다.[134] 여포가 서주 호족들의 부인이나 첩 중 미녀들만 골라 강제로 뺏어가 후원의 하렘에 가뒀다고 한다. 강제로 임자 있는 여인들 납치해 하렘을 만들었단 얘기인데, 여색을 즐기는 조조도 여포의 행실을 들은 뒤 진나라의 영호해나 상나라의 폭군 주왕 정도나 할 짓이라며 혀를 내둘렀다.[135] 우연찮게 점령지에서 뒷정리를 보고하려는 관우와도 마주쳤는데, 이때 관우도 두씨를 보고 순간 흠칫해서 머뭇거렸으나 조조가 옆에 있는 초선을 보고 반한 거라 오해를 해서 두씨 대신 초선을 재혼 상대로 보냈다.[136] 사실 이건 의대조 사건에 앞서 조조 일가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황제와 동승 일파의 수작이었다.[137] 궤장은 황제가 신하에게 하사하는 지팡이로 본래 조정에 츨사한 사람은 70세가 되면 자동 은퇴이며 궤장을 하사 받으면 은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궤장을 받지 않고도 은퇴를 하지 않으면 '노인네 욕심이 도가 지나치다.' 라고 욕 먹었다고.[138] 유부인 소생의 서자이다. 다만 유부인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서 홀로 남겨진 조앙을 자식이 없던 정부인이 거둬서 친아들처럼 키웠다.[139] 다만 이후에는 항렬상 조휴가 나이가 많아도 동생 포지션이 되었다. 정부인 역시도 장남이 조앙이면, 차남이 조휴라면서 나이에 상관없이 항렬상 형제로 잡혔고, 조휴와 조앙 역시 그냥 서로 말을 트면서 지낸다.[140] 본인의 말로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조조가 새 부인을 들일 때마다, 어머니 정부인과 하도 싸우는 모습을 많이 봐서 아버지같이 여러 처첩 거느리는 짓은 도저히 못하겠다며 여인과의 관계를 꺼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채림과 결혼 후에도 첩은 하나도 들이지 않고 있는 중.[141] 당연히 조휴를 통해 소식을 들은 정부인도 매우 기뻐했다. 장남에 본인의 유일한 아들이라서 혼사에 유달리 더 신경을 썼는데, 채정희는 나이는 조금 어린 편이지만 집안의 명성과 본인의 몸가짐 모두 바른 편이라 정부인에게도 며느리로 부족함이 없었고, 바로 자수와의 혼인을 허락하고 몇년간 신부수업을 시켰다.[142] 조휴는 조앙이 후계자다보니 연공서열을 따지는 거라 그러려니 한다면서 넘어갔고, 결국 원소 사후 하북점령전까지 가서야 장군직을 달았다.[143] 원소가 50대 초반에 일찍 간 것도 FM대로 한 6년상으로 몸이 심하게 망가진 상태에서 관도대전의 패전으로 인한 충격 때문이란 추측이 우세하다면 말 다했다.[144] 조휴의 천리행 조문은 하북 정벌전이란 특수 상황상 잠도 못자고 말을 타고 천리길을 달려와서 조문후 쉬지도 못하고 다시 천리길을 달려 돌아가는, 3년상에 맞먹는 고행이었다. 허도로 올때는 전쟁중이라 보급 기지가 다수 깔린 상황이어서 보급 기지마다 말을 갈아타는 식으로 이동했고 돌아갈땐 조조가 내준 적토마 2세를 타고 돌아갔다. 적토마 2세답게 전혀 지치지 않은건 덤.[145] 조조가 맨날 첩문제로 정부인과 싸워대는 꼴을 보고 자라서 첩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146] 따로 혼인 압박을 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조앙에게 하후설을 맡긴 셈이라, 조앙도 차마 거절은 못했다.[147] 그만큼 공사를 대규모로 벌이기에 황실의 예산은 가능한 줄였다고 한다.[148] 이름의 경우, 언니인 채소희 채염이 붉은옥 염(琰)자를 쓰는데, 본인은 아름다울 옥 림(琳)을 써서, 채옹이 딸들 이름에 적옥과 청옥으로 돌림자를 썼다고 언급한다.[149] 말을 타고, 선두에 서서 기병 수천기를 이끄는 갑옷을 입은 청년 장수라는 이미지가 딱 백마 탄 왕자를 본 얼굴이었다고 한다.[150] 사실 다른 첩들도 임신은 못했다.[151] 조조가 조앙과 조휴의 딸들을 모두 데려오라 한다음 갓 목만 가누는 어린 딸아이 넷을 두고 꽃 화()돌림자를 써서 지화, 선화, 미화, 문화라는 이름을 지어줬다.[152] 자기 친모인 변부인이 정부인의 명령에 하녀들이나 하는 닭을 잡고 요리하는 걸 보고 대놓고 큰어머니는 우리와 어머니를 굉장히 못마땅해하는 것 같다.라면서 악감정을 가졌다. 참고로 저 젓가락 투척 사건이 6~7세쯤인데 이때 내 어머니는 나를 위해 배 아프셨던 분이고 하녀가 아니며 큰 어머니는 내 어머니가 아니라고 일갈했다고 조앙이 이야기 해줬다.[153] 자기 어머니 선물 주겠답시고, 형수의 집에 들어가 글씨를 훔친 거니 조조도 이야기를 듣고 바로 뺨을 후려쳤는데, 그 상황에서 변부인을 보고는 조앙과 조휴에게도 아우들 관리 못한다면서 한 대씩 때렸다.[154] 마침 조비뿐만 아니라 하후씨 일가의 자녀들도 글과 서예를 익힐 때가 되어서 채염이 아이들을 담당하게 된다.[155] 참고로 이때 조휴의 앞에서 공융의 제자가 되기 전까지 문재를 가진 분에게 배우질 못해 독학의 한계를 느꼈다는 실언을 했다가 호되게 혼났다. 그도 그럴게 이는 비문을 훔치려고 했던 조비를 용서해준 것으로도 모자라 글까지 가르쳐준 형수 채염을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채염은 중원 최고의 문장가라 불렸던 채백개의 후예다.[156] 공융이 조씨 일가를 정치적으로 파멸시킬 계획을 품고 계획적으로 조비에게 접근했다는 것 때문에 향후 조비의 행보가 최악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는 상태다.[157] 11살의 나이에 장수의 완성을 점령하러 가는 길에 종군한다니 군말없이 따라가려 했고, 큰형인 조앙이 복양 태수로 떠나자 자신이 직접 조조의 호위를 맡으면서 황실을 누비며 어깨 힘이 들어갔고, 의대조 사건 때 동승의 군대가 조조의 집을 포위하자 아버지와 큰형이 없으니 자기가 나서야 한다면서 대뜸 포위한 동승군을 향해 칼을 뽑고 달려나가는 바람에 조인의 속을 썩였다. 조비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여명도 애새끼가 사고 쳤다고 씹었을 정도. 또한 정실부인이라 큰어머니뻘의 정부인이 자기 엄마 변부인을 핍박하는 걸 하나하나 가슴에 담아두고 자신이 뭔가 집안에 일을 하려고 먼저 나서기도 했다.[158] 조식이 시를 잘 쓰는등 문과형 인물이라 묻혔지 조비도 한 문장 한다. 조식이 동작대 완공후 동작대부라는 시를 짓자 조비도 등대부라는 시를 짓는다.[159] 참고로 그가 데려온 인물 중에는 원역사에서 조비가 신뢰했던 조위사우의 일원인 주삭과 오질, 사마의가 있었다.[160] 처음에 조비가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조조가 헛소리 하면 얻어 터질줄 알으라고 했고 유비를 암살하자고 말을 꺼내자 조조는 조휴에게 말 채찍을 가져 오라고 한뒤 얻어 터질 준비 됐냐고 할 정도였다.[161] 만약에 성공한다면 형주의 혼란은 극에 달할테니 두 세력 중 하나가 남으면 그 남은 세력을 쳐서 형주를 그대로 삼켜버리면 그만이기 때문. 실패할 수도 있지만 형주의 군권을 잡고 있는 채모를 비롯한 채씨 일가는 애초부터 조조에게 항복할 생각을 품고 있기에 전쟁으로 밀고 내려가면 형주 측이 막을 방법도 마땅히 없다.[162] 조비가 이렇게 공훈을 세우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음험한 계책까지 준비하여 유비를 암살하는 데에 공헌하는 동안, 조휴는 상대적으로 너무 쉽고 편하게 그에 못지 않은 공훈들을 세워서 독자들은 이겨야 한다 vs 딸깍으로 비유했다.[163] 일각에선 유비의 암살 전개 및 조비의 행보 등을 보면서 향후 결말 무렵에는 조비가 최종 보스가 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164] 이제부터 공격할 남형주와 강동 모두 장강을 끼고 있어서 수군이 중요한 포인트인데, 조조군은 수전에 능숙한 장수가 없고 수군을 제대로 육성한 적도 없다.[165] 수정전엔 결국 누군가의 계책을 받아 오질과 주삭을 보내 조휴의 신경을 제대로 긁어버려 조휴에게 양다리에 조인트를 까였다. 이 작품의 조비가 측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비교적 신중하게 움직이는 편인데다, 기껏해야 조비의 부관격인 오질과 주삭이 조휴 상대로 저렇게 건방지게 구는 것이 말이 안된다며 독자들에게 내용 관련 비판을 크게 받아 수정되었다.[166] 참고로 조비는 하안을 자로 부르지 않고 그냥 이름을 그대로 불렀다. 원역에서도 조비는 하안을 싫어해 가짜 아들이라고 경멸했다고 하는데, 본작에서도 아버지가 들인 양자라 봐줄 뿐 형제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이후 조휴가 엄중한 수사와 처벌 의사를 표했을 때 조앙은 사대부와 집안 사람인 하안까지 엮였기에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조비는 분명 조가의 사람이라곤 하나 법을 어긴 죄인이라며 처벌에 찬성했다.[167] 주인공인 조휴도 조비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하고 있다. 254화에서 조비가 정보와 감찰을 맡은 교사부에 가고 싶다 하자, 이에 조휴는 조조 개인의 친위대 역할을 할 군무부의 창설을 제안하고 그곳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168] 알아서 몸가짐을 조심했기에 배가 부르기 전까지는 시어머니인 변부인도 몰랐다고 한다.[169] 일단 조인이 엄하게 단련을 시켜주기로 했고, 조창 본인도 조앙과 조휴처럼 용맹한 장수가 되겠다는 마음이 강해서 통제가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170] 여기에 채염도 초대를 받았다고 하는데, 채염은 최근 다도에 재미를 붙여서 정중히 사양했다고.[171] 현대의 지식대로면 갑각류 알러지가 도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172] 이로 인해 화타도 자칫 억울하게 처형당할 수 있던 상황에서 살아남았고, 조충도 목숨을 건졌으니 조휴가 둘 모두 살린 셈.[173] 실제 역사에서 비만 체형이라는 조진의 일화답게, 정방에서 가족들이 식사를 할 때 유독 고기를 좋아해서 조조가 먹는 모습만 봐도 장군감이 될거라면서 흐뭇해했다.[174] 공교롭게도 조비는 하북의 영천 순씨 파벌인 순심의 딸, 조진은 화씨 호족인 화흠의 조카딸을 취한 게 되어 하북 명사와 호족들과 반 강제적인 정략혼이 되어 하북 세력을 흡수한 게 되었다.[175] 조조가 처음 협천자로 황제를 보호할 때, 하후돈이 복완동승처럼 너도 딸 하나 입궁시켜서 국구 자리를 하라고 하니, 그 애 나이 알고서 하는 말이냐면서 넘겼지만, 동귀인을 포함한 동승 일파 숙청 때는 조조가 주저없이 그 어린 딸을 입궁시키려 했다.[176] 복완은 서열에 상관없이 자기 딸인 복귀인 대신, 조조의 딸인 조절을 황후로 추천하겠다고 선언하며 복귀인의 동생이자, 자기 둘째딸인 복은을 조조 일가에 보낸다.[177] 조헌의 어머니는 정부인과 변부인 이전에 조조가 들였던 첩이라고 한다. 집안이 따로 이름난 집안도 아니고, 조앙과 조절과도 어머니가 달라서 누구도 감싸주질 못했다고 한다.[178] 조명이 결혼할 상대인 정의가 이름난 선비이긴 하나 사시에 추한 외모를 가졌다는 말에, 아무리 대단한 지식의 사람이라도, 내 동생에게 혼인할 자의 외모가 그리 추하면 나도 생각해봐야겠다... 라면서 조비와 같은 생각을 가졌다.[179] 하후무는 기가 센 연상의 여성이 취향이라 조명은 여기에 맞지 않으며, 반대로 조명은 듬직한 남자가 취향인데 하후무는 얼굴은 괜찮으나 본인의 능력은 아직 미숙하여 듬직함과는 거리가 있다.[180] 조명의 나이가 대략 조앙과 처음 만난 채림 정도인지 한 3년 정도만 기다려보자고 제안했다.[181] 하필 직전에 하안의 어머니인 윤부인이 자신과 조조 사이에서 낳은 어린 아들뿐만 아니라 하안도 잘 부탁한다고 말해서 조휴는 하안을 비롯한 집안의 형제와 친척들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윤부인이 부탁한 그 하안이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니 조휴 입장에선 화가 날 수밖에 없다.[182] 정황상 하안은 장중경이 썼다는 것만 주워듣고 무조건 좋다 여겨 오석산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183] 조조와 두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184] 조조가 출정한다는 것을 알렸을 때, 하후연, 조홍, 조인 등은 군을 정비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하후돈은 출정 소식을 들어도, 내 역할은 선봉 출정시 뒤에서 거점 잡고 보급이 업무니 서두를 일 없다.면서 군영에서 탱자탱자 놀자판이었다. 다만, 그러면서도 보급 역할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185] 조휴와 같이 싸우다, 조휴가 위험하자 그대로 달려들어 여포의 일격을 머리부터 맞아 무쇠로 만든 투구가 천 갈래로 깨지고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186] 사실 완전히 실명은 아니라 초점이 안 맞고 뿌옇게 보이는 수준이라지만 제대로 된 안과 의학 기술이 없는 이 시대엔 실명이나 다름 없다.[187] 그에게 무술을 가르친 여명은 하후충은 그럭저럭이라고 평한 반면, 하후무는 좀 그렇다고 말한다.[188] 원역사에서도 하후무와 청하공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189] 물론 하후무의 원역사를 아는 조휴는 그렇게 의욕만 앞서다간 목숨 날아간다며 과거 조진과 조앙, 그리고 자신의 일화를 이야기해주며 전쟁이 단순한 군공 세우자고 있는 곳이 아닌, 정말로 위험한 곳임을 상기시켜준다.[190] 사실 하후무가 조비를 구하러 가는 것 자체는 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원래 하후무가 받은 명령은 유봉 추격이었는데, 그 명령을 버리고 이동했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하다 못해 이전에게 추격을 부탁하고 본인만 구조를 하러 갔거나, 반대로 본인이 추격을 이행하고 이전만 보내는 식으로 대응했다면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하후무는 이번이 실질적인 첫 전장인데다 지휘관으로서의 능력과 경험도 미숙했기에 참사가 연쇄적으로 일어나 조조군 입장에서 최악의 결말을 맞게 되었다.[191]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었던 일희와 달리 오히려 본인이 더욱 슬퍼했다고.[192] 본인의 부인이 다름아닌 조조의 본처 정부인의 동생이어서, 겹사돈이기도 하다.[193] 장비는 나름 하후설을 괜찮게 보았고 하후설도 장비를 익덕공이라고 부르며 잘 따르는 편이었다. 그래서 피란을 가게 되자 장비도 티내지는 않았지만 뭔가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194] 조휴는 하후씨가 땔감 주우러 갔다가 납치되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는지, 마당에서 기를 수 있는 묘목의 씨앗들을 주며 밖에 나가는 것보단 텃밭 가꾸는 걸 해보라고 말하며 보냈다.[195] 아내인 채림이 나이가 곧 30인데다 본인 스스로 이제 넷째 임신은 못할 것 같다며 몸에 부담을 느끼고 있어서, 만일 임신 중인 셋째도 아들이 아닐 경우엔 후처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196] 이 딸은 조숭 일가가 습격을 받았을 때 집에 불이 나서 나오지 못하고 죽을 위기에 처했었는데, 당시 서서가 불길 속에서 그녀를 구해내 밖으로 나왔다. 이 일로 조덕의 딸은 서서에게 푹 빠졌고, 6년이 지난 후까지도 연심을 간직하고 있다가 결국 서서와 결혼하게 되었다.[197] 정사에서 조안민은 아버지가 정확히 누구인지 불명이며 본명 역시 불명이다. 다만 당시 시대상을 고려할 때 안민은 자일 가능성이 높다. 본작에서는 이름을 따로 설정한 것.[198] 그렇다고 본인의 무력이 절대 떨어지는 건 아니어서, 전장에 나서면 확실하게 선봉에서 통솔하는 역할이다.[199] 하후연이나 조인에 비해선 군재나 무재가 한 수 아래라는 평을 받지만 그렇다고 크게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만일 한없이 무재가 부족했다면 조조가 아예 전장에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200] 실제로 조휴와 같이 조순을 찾아간 뒤 조앙은 기병대장으로서 실력이 급상승했으며, 조휴 역시 원래도 싹수가 있던 실력이 더 좋아졌다.[201] 서량 원정 이후 초군에 돌아왔을 때 피를 몇되나 토했고 화타가 급히 수술을 했으나 배에서 썩은 살덩이가 몇개나 나왔다고 한다. 아마도 암으로 추측된다.[202] 나머지 1명은 이전의 사촌형인 이정. 다만 이정은 여포군과의 전투 중 입은 부상으로 더 이상 전장에 나서기 어려워져서 현재는 고향으로 돌아갔다.[203] 본래 부관을 맡았던 장방이 아버지 장연의 뒤를 이어 신임 정북장군이자 병주 자사가 되면서 떠나고, 전위의 아들 전만도 도위로 승진해 떠나면서 그 역할을 이전이 대신 맡게 된 것이다.[204] 조조가 '네가 나의 악래다.'라고 한 말에 악래가 누군지도 모르고, '저한테 자를 붙여주신 겁니까? 전악래라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가 조조와 조휴가 배를 잡고 웃는다. 이후 따로 자가 없이 교위 직책을 받아 그냥 전 교위라 불린다.[205] 작중 복양으로 가기 전 하후돈이 내 휘하 군관 중에서 대장기를 혼자 한손으로 드는 놈이 있는데 소개해주겠다.라고 등장을 암시했다.[206] 여포-관우-장비-전위다. 작품의 주인공이 지는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삼국지물인지라 독자들도 저 넷은 납득한다는 분위기.[207] 실제 역사의 서황은 백파적이 점령한 하동군 출신이나, 그걸로 백파적이라기엔 관우 또한 하동군 출신이다.[208] 죄인의 형벌과 수감을 담당하는 곳. 조선시대의 의금부를 생각하면 된다.[209] 이후 조앙이 마휴를 베었고 허저에 대한 묘사는 따로 나오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무기가 아니라 청옥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든, 급조된 흉기라서 큰 부상을 입진 않았다.[210] 여남성은 지켰지만, 본인이 직접 군을 이끌고 나와 유비군을 추격하다 관우-장비에게 당했다고 한다.[211] 다만 배경이 배경인지라 조조한테는 큰 신뢰를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는 원 역사의 주령이 조조에게 신뢰받지 못했던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212] 다만 이 시점에서 흑산적 세력은 크게 줄어서 장연의 휘하에 있는 병력 정도만 남았다고 가후가 언급한다.[213] 조휴는 물론, 병주 점령 이후 만난 조인 역시 장방을 보고 얼굴 보고 달려들 여식들이 한가득일 거라고 평하는 등 굉장히 잘생긴 모양이다. 심지어 장연의 아들이라는 말에 마뜩찮아하던 조조가 외모를 보고 생각을 바꿨을 정도.[214] 조휴가 직접 죽이려 했고 공이 많이 필요하다며 아쉬워했으나, 아버지의 말에 따라 고간을 참한 공은 조휴에게 돌렸다.[215] 그러나 210년 기준으로 160년생인 유비와 그보다 한두살 어리다고 여겨지는 관우보다 몇살 많다면 50대 초반이다. 실제 정사 기준으로 한중 공방전당시 유비와 관우 나이가 56-57세였으니, 황충이 그보다 나이가 많다면 그럭저럭 노익장이라는 말이 나올법 하다.[216] 이 사실이 전해졌을텐데도 마초가 일단 죽이지는 않고 아들 조월과 같이 가두기만 했다.[217] 그 사이 아들 하나를 낳아 조씨 일가의 외손주가 생겼다.[218] 조조는 이미 양표의 아들 양수가 굉장히 영특하단 소문을 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지식은 모르겠으나, 효심은 있는 놈'이라면서 좋게 봐준다. 사실, 조휴한테 한 부탁도 일부러 조조 일가가 입궁하는 곳에 떡하니 엎드려서 자기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탄원을 조조 일가 앞에서 의도적으로 한 것이니, 머리가 좋은 건 맞다.[219] 연의의 그 유명한 계륵 사건. 쓸데없이 나댔다가 목이 달아났으며 정사에선 조씨 집안의 후계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조조의 눈 밖에 나서 목이 달아난다. 아무튼 연의든 정사든 낄때 끼고 빠질때 빠질 줄 몰라서 화를 당한 건 같다. 사실 연의의 계륵도 평소 조조의 눈 밖에 날 짓을 자주 해서 스텍을 쌓아왔고 계륵때 한방에 터진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220] 양수의 이러한 과감함을 본 독자들은 삼국지 시대에 어쌔신 크리드를 찍었다거나, 벨튀로 적장 목까지 챙겼다고 드립을 쳤다.[221] 형주 내부의 호족들과 명사들은 인척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함부로 누굴 죽이거나 하면 생각지도 못한 다른 이들의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제갈량은 인척으로 엮인 인과관계를 무엇보다 정확히 알아둬야 함을 간접적으로 알린 것이다.[222] 공교롭게도 연의에서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기 위해 삼고초려의 정성을 들였었는데, 여기서도 제갈량이 세 번 조휴와 만나게 되는 게 확정이라 역삼고초려라는 드립이 나왔다.[223] 무작정 거절하기엔 조조와 관계가 나빠지고 그를 소개한 조휴의 체면도 깎게 되는데, 그렇다고 조명을 받아주기엔 본부인인 황씨보다 더 위세가 좋은 후처라는 모순이 생긴다. 다만 조조는 제갈량의 재능과 학식을 보고 저 정도면 내 딸이 후처여도 상관없다고 할 정도로 제갈량을 진심으로 자신의 일가에 들이고 싶어했다.[224] 실제 제갈량은 아들을 47세라는 늦은 나이에 간신히 얻었으며, 그 이전에는 후사를 위해 조카인 제갈교를 입양하기도 했다.[225] 김의는 무릉 태수 김선의 아들로, 아버지가 조휴에게 죽은 것 때문에 당시 종군하여 조휴를 도운 제갈량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226] 본래는 형주 지역에서 유명한 문인, 송충의 제자인 반준과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반준은 장선과 결혼한다는 서찰을 보낸 이후 갑작스럽게 유비의 죽음 소식을 듣자 그의 의지를 잇겠다며 익주로 가버리는 바람에 장선은 신랑 얼굴도 못보고 그대로 파혼을 당해버렸다. 이 일로 장완은 반준에게 엄청나게 분노해 자로 부르지도 않고 '반준 그 새끼'라고 욕하며 부를 정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참고로 원 역사에서 반준은 실제로 장완의 누이와 결혼했다.[227] 조조 역시 열이 받은 상태나 순욱의 말을 듣고는 그 말도 옳다면서 그 자리에서 갑옷을 벗고 검도 내려 놓은 뒤 자렴, 묘재, 자수, 자열에게도 무장 해제를 지시하고 검은 전위, 허저 등의 호위들에게만 차고 다니라며 맨몸으로 황궁에 들어간다.[228] 조조가 오늘 전투 끝내고 철군한다니, 그게 가능하냐고 의구심을 갖는 조휴에게 '왜 명령이 떨어졌는데 감히 의심을 하냐? 친족이라고 봐주는 거 없다.' 식으로 FM적인 군인의 모습을 보인다. 또한 합류 초기 조숭 일가가 큰 일을 당할뻔한 걸 두고 서주에 피로 보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조휴가 백성들의 대 이주를 제안하자 가장 먼저 반대했다.[229] 순욱은 작중 술보다 차를 더 즐기고 여성을 가까이하는 모습도 나오지 않았으나, 순유는 위씨 상단을 통해 소개받은 아무라는 애첩을 끼고 놀고 술도 즐기는 등 조조와 여러모로 닮은 편이다.[230] 주인공 조휴와 갓 결혼한 채염의 신혼집에도 대뜸와서 술상을 차려달라고 하고, 대가로 대외 정보 등을 제공해준다.[231] 여강 태수 유훈의 딸로, 손책에게 잡혀서 결혼했었다가 그가 젊은 나이에 죽으면서 화타가 제자로 거둬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아직 나이도 젊고 해서 이참에 재가를 시켜주는 겸 곽가에게 보내준 것.[232] 만약 조조가 고집을 부려 30만의 대군을 한데 적벽으로 모았으면 원 역사의 적벽대전 이상으로 끔찍한 참사가 났을 것이다.[233] 원 역사의 추씨를 범하는 일은 없어도, 조조가 한 짓은 술에 취해 남의 집안 가주를 모신 사당에 들어가서 한바탕 헤집고 그 안에 시중드는 하녀까지 술시중하라고 데려간거니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다.[234] 이 설득은 제대로 먹혀서 장수는 이후 조조의 원술 공격 당시 군량을 지원해주는 한편, 동승 일파의 쿠데타 시도 때 지원을 오면서 조조를 확실하게 지원해주었다. 그리고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정식으로 추씨가 조조와 재혼하면서 장수와 조조 모두 윈윈하게 되었다.[235] 견복은 자신 외의 두 언니도 같이 데려가달라고 조건을 걸었는데, 견강은 원희와 명목상 부부라서 원희가 갑자기 죽거나 하는 게 아닌 이상 임자 있는 여성을 억지로 들이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멀리 갈 거 없이 조조가 장수의 숙모 추씨를 맞이할 때는 장제가 죽어서 1년상 중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바로 첩으로 들이지 못하고 기다렸는데, 여긴 원희가 멀쩡히 살아있어서 더더욱 불가능했다.[236] 하북은 북방의 이민족들과 이어져 있는 곳이고, 원소는 이전부터 북방 이민족들을 포섭하고 교류하며 하북에서 안정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그리고 원소 사후 원상은 병력이 부족해졌기에 북방의 오환족한테 손을 벌릴 것이고,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를 조정에 공표하고 상소를 올리면 외적을 끌어들여 조정을 치려고 하는 자를 토벌한다는 확실한 명분이 생기게 된다. 더구나 이 이야기를 하북에서 내려온 명사들이나 지금도 하북에 머무는 유자들에게 전할 경우, 원가의 이름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237] 변덕스러운 날씨, 적의 화공 우려로 인한 배 관리 및 연환의 어려움, 정예 수군 양성 이전에 단기결전을 펼치길 원하는 조조의 의지.[238] 조휴의 첫 여성 경험도 위홍이 붙여준 기녀 화연이었으며, 이후 복양에서 지역 호족들을 통해 정을 통한 대연, 묘묘, 금련 등의 미녀들도 위씨 상단에 들어온 후에는 조휴만을 전담한다.[239] 동작대 일화를 떠올린 조휴가 업성 주변에서 나올 것 같아 위홍에게 부탁했다.[240] 위홍이 교사부가 아닌 조휴가 있는 군무부로 위진을 넣어줄 것을 요청할 정도다.[241] 위진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조휴가 빠르게 오석산 사건에 개입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에 아주 큰 도움을 준 셈이다.[242] 본래라면 노 대인을 비롯한 연주 호족들은 반란에 가담한 죄로 모조리 처형되었겠지만, 그들은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자산과 상단 유통권을 위씨 상단 쪽으로 통합하고 가족들을 진류로 보냈다고 한다. 조조는 이를 받아주되, 대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휴와 하후돈을 살릴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고.[243] 조조도 너무 황당해 조사해봤는데 정말 아무 개입이 없는 우연한 사고였다. 그런데 하필 변양 사망 직후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조조에게 의심이 확 쏠려버린 것. 그러나 변양도 독살했으나, 대외적으로는 노환으로 인한 급사고, 변양의 아들 또한 조조가 아이고~ 이것 참 애석한 일이로구나~식의 반응을 보이면 정황상 암살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44] 소교 이야기를 꺼내게 한 건 조휴의 요청이었는데, 이야기를 들은 주유는 그 자리에서 술잔을 바로 깨버렸지만 한 방 크게 먹었다며 웃었다고 한다. 오히려 장간의 목을 치겠다고 몇몇 장수들(황개, 진무, 능통)이 격분했다고.[245] 신기하게도 짐승들은 귀신이 있다며 난리치는 사람들과 달리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246] 조조의 아들 조앙과 동명이인이나, 조씨 일가가 아니라 조운의 조와 같은 성씨이다.[247] 정사와 행보가 많이 달라지긴 했으나 오히려 더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여성의 몸으로 아이를 데리고 맨몸으로 천수에서 조휴가 있는 곳까지 도망쳐온 것이다.[248] 그간 조앙과 조휴가 끊임없이 간자들을 투입하여 확인하려 했음에도 서량군의 강경한 정보 통제로 늘 실패로 돌아갔는데, 왕이가 고급 정보들을 가져온 덕에 대처하기가 한결 편해졌다.[249] 처음엔 자리를 내주고 죽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조휴가 천하를 마지막까지 지켜봐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한실에 대한 숙청은 자신이 막겠다고 설득했다.[250] 둘의 나이가 헌제의 두 딸과 비슷한 연배라 겸사겸사 친하게 지내며 맺어지게 하려는 의도도 있는 모양이다.[251] 현대에도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듯이 한 명에게 권력이 쏠리는 현상을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 그나마 민주적인 절차나 제도가 있는 현대에서도 그러한데, 권력을 잡으면 그야말로 무소불위 수준으로 휘두르는 것도 가능했던 고대에는 더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다.[252] 내용은 쉽게 자신과 광대패들의 관계를 부정하는 일종의 해명이었다. 예형과 친한 건 맞지만 광대패들의 모욕과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고, 만일 자신이 욕을 할 거면 당사자를 욕하지 굳이 아내를 욕하지는 않는다고.[253] 정확히는 예형이 그 특유의 지랄맞은 혓바닥을 놀리며 조씨와 하후씨 일가를 조롱하고 죽으면, 그 뒤에 필시 허도에는 피바람이 불고 빈 자리가 생길 테니 그때 공융이 그 빈 자리에 들어가서 조씨 일가의 내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조조의 자식 중 정실의 배다른 자식 내지는 장남과 대립할 마음을 품은 자를 찾아내어 후계자 문제로 내분을 일으키도록 종용하여 조씨 일가를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계책이다.[254] 안그래도 공명심이 강한데다 특유의 지랄맞은 성질머리 때문에 가장 엇나갈 가능성이 높은 편인데, 작정하고 내부에서 후계자 내분을 일으키려는 공융에게 조비는 가장 좋은 타겟이다.[255] 다만 공융의 충동질이 먹힐지는 미지수인데, 원 역사면 모를까 지금 조조의 집안은 적장자인 조앙의 정통성이 확고하기 때문. 게다가 조앙은 실적과 능력은 물론 인격적으로도 흠이 없어서 조비가 비빌 구석이 사실상 없다. 더구나 현대인이 환생한 지금의 조휴가 조비를 주시하고 있기에 섣부르게 허튼 짓을 했다간 공융의 목이 먼저 달아날 수도 있다.[256] 공융도 원소의 6년상 이후 너무 기준이 높아진 3년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257] 공융은 원역과 마찬가지로 허도 기준으로 천리 밖에는 그 어떤 제후도 임명해선 안된다는 조례를 내려달라는 이야기를 황제에게 직접 상소했는데, 이 부분은 사실 조조가 무시해버리면 그만이긴 했다. 진짜 문제는 한나라에서 황실의 성을 쓰지 않는 자가 받는 국공의 작위는 역적 왕망이었고, 동탁조차 국공을 탐한 적은 없다는 말을 공연히 하고 다니며 조조를 돌려깠다는 것. 그로 인해 조조도 도저히 공융의 모욕을 견뎌줄 수가 없었고, 마침 공융이 3년 전에 유자로서 삼년상을 치르는 건 효가 아니라, 보여주기식 고행이며 그것에 대해 거짓된 명성을 만드는 건 폐단이라고 쓴 적이 있었다. 이는 삼년상을 치른 조앙의 정성을 깎는 것과 다를 게 없었기에 어사대부에서 이 글을 문제삼아 공융을 불효자로 몰아가 불효죄가 적용된 거라고.[258] 어사대와 대리시에서 시문이나 선물 하나 주고받은 것도 철저히 조사해 공융과 관련된 자들에게 중형을 내릴 예정이었다. 즉, 조휴도 공융이 쓴 추모시를 받았기에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던 것.[259] 현실에서도 재능에 비해 저급한 인성과 품행을 지닌 이들이 많기에 공융의 유재시거가 가진 위험성 지적에 대해서는 독자들도 많은 공감을 했다. 당장 전세계의 연예계를 보면 재능이나 실력은 뛰어난데 인성과 품행에 문제가 있어 논란과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연예인들이 있다. 조조와 뜻이 다르고 비뚤어진 언행을 보인 공융이지만 학자답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잘 짚은 셈.[260] 특히 양표의 경우, 반 조조파의 인물이면서, 양표의 부인이 원술의 누이인지라, 조정에서 가장 원가와 닿아있다는 명목으로 대리시에서 더욱 혹독하게 심문을 받고, 자기 일파가 조조에게 전부 날아간다.[261] 조비에게는 이런저런 말은 많아도 공자의 후손인 공융, 조식에게는 사돈을 맺겠다며 초빙한 하북의 명사 최염이 있는데, 조앙은 어려서 무재만 가르쳤지 글도 자신이 가르쳐줘서 제대로 된 명사 스승이 없다고 했다.[262] 낭야왕의 가족들은 잡힐 위기에 놓이자 마차 행렬 안에서 독주를 먹고 자결했다.[263] 내용은 위왕과 한 황실에 대적하고 역적의 세력에 합류하기 위해 식솔들도 내던지며 난을 일으키다 죽은 낭야왕 유희에 대한 효수와, 낭야국을 박탈하고 행정을 개편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엔 광무제의 후예인 한나라 유씨 일족인 유엽과 유화가 지지 의사를 표했다.[264] 마침 조조는 예전에 조휴에게 천명이 있다면 한나라 유씨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추대하여 난세를 안정시키고 대업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었다.[265] 이와 정반대의 경우가 바로 관우. 이쪽은 상대의 목숨을 일격에 끊어버릴 생각으로 공격해온다고 한다.[266] 1. 진궁을 포함해 서주에 있던 처형당한 장수들의 식솔을 처벌하는 연좌제 금지, 2. 서주에 있던 내 직속부하들에게 퇴직금을 두둑히 주고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달라, 3. 자신은 적군을 점령하는 공격 임무는 안 받겠다. 외적에 맞서서 방어하는 태수 혹은 군사들을 훈련하는 교관의 역할만 하고 싶다.[267] 다만 장초가 조휴가 머무는 집에 숨어들어가 물건을 빼돌리려는 것은 제지했는데, 이는 진궁이 조휴 개인에 대해서는 나름 좋게 평가하고 있어서 그렇다.[268] 사실 장막과 장초도 조조가 원소에게 자신들을 죽이라는 의뢰를 받았다는 것과 별개로 변양의 독살까지는 조조 짓이라고 확신은 못하고 의심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후 그 아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완전히 조조의 짓으로 확신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된 것.[269] 후에 조조가 정말로 찬탈자의 길을 걸었다면 진궁의 저주가 사실이 되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조조는 위왕의 자리까지는 올랐으나 그 이상으로 가지 않고 아들 조앙에게 선양과 천하통일의 업을 넘겼다. 더불어 가장 크게 대립할 뻔한 순욱과도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의중을 알게 되면서 자신과 함께했던 이들을 스스로 내치는 일도 없게 되었다.[270] 왕을 만들 여성의 상으로 불린 4명의 여성 중 한 명이다. 나머지 3명은 손견의 부인이자 손책-손권의 어머니인 오국태, 그리고 현재 조휴의 부인이 된 채염과 견복이다.[271] 참고로 이 일화는 조휴가 당시 옥중에 갇혀 있던 고순에게 전달해주는데, 고순은 이 이야기를 듣고 조씨 일가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었다며 크게 웃었고, 이후 조휴와 조조를 믿어보기로 결정한 뒤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여 투항한다.[272] 그 전에도 여러 호족 가문을 습격해서 재물을 강도질 했다고 한다.[273] 원 역사에서도 유가과 법가의 한나라에서 도가의 도참사상으로 천명을 운운하며 칭제를 했던지라 오히려 문맹인 백성들을 다스리는 건 유학자보다 도사들이 더 낫다고 판단한 거다.[274] 원요는 조휴를 그 귀신같은 창술을 쓰던 기병대장으로 기억하고 있었다.[275] 그나마 원상은 장료의 군세까지 가세하면서 발이 묶였다는 변명이라도 가능하지만 원희는 그런 것도 없다.[276] 유일하게 가족과 떨어진 여동생 원경도 조휴의 부인이 되어서 아이를 낳고 허도에서 잘 살고 있고, 노숙을 통해 서찰도 주고받았으니 한결 마음이 놓일 것이다.[277] 손권의 둘째 아들이 원요의 딸과 결혼했다고 한다.[278] 여강군을 조조가 점령하는데, 역적 원술의 잔당이 남아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연좌제의 칼날을 피할 수 없으니, 일족을 데리고 장강 이남으로 내려가 새 삶을 사시라고 조언한다. 참고로 실제 양수의 어머니는 원술의 누나여서, 양수에게 진부인은 외숙모가 된다.[279] 관도대전의 첫 전투인 백마성 침공에서 3만이 안 되니, 병력을 추가해 5만, 거기서 안량과 문추가 죽으니 내친김에 10만을 통째로 내려보내 15만의 대군이 관도성을 포위한다.[280] 죽은 아들 놓고 군에 연설을 하는 게, 뭔가 떠오른다는 댓글 반응이 있다.[281] 첫 백마전투의 조휴 부상과, 호표기 격퇴에도 승전을 자축하자, 저수적장이 살아돌아갔으니, 장수를 잡지 못하면 완승이 아닙니다.라고 간언해도 이겼으니 된게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데, 이런 안이함이 결국 발목을 잡은 것이다.[282] "세상에 어떤 아비가 죽은 자식을 위해 제단에 올리고 그 시신을 태운단 말입니까?" 라는 순유의 대사가 원소의 원담에 대한 취급 및 평가를 드러낸다.[283] 협천자 이후 원소에게 대장군태위 작위를 두고 업성에 사절로 가다가 우연히 인근 중산현에 있는 견복의 오빠 장례식에 참여해 남은 가족들 잘 살라고, 가지고 온 돈을 모두 털어 부조했다. 이후 재기한 견씨 일가는 지나가다 집안을 후원해준 조휴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여긴다.[284] 몇 년간 별거 중인데다 원희는 유주로 가서 첩을 들였고, 견강 역시 정략혼이라 시부모 봉양만 하는 중이라고. 225화에서 드러난 바로는 견복과의 결혼을 원했으나 견복이 상술한 이유로 원씨와의 혼담을 거절해서 견강이랑 대신 결혼하게 되는데, 원희는 그렇게 결혼한 견강에게 만족을 못하고 매우 박대한 건 물론 아예 살림을 따로 차렸다고 한다. 그리고 남겨진 견강은 유부인에게 시비마냥 떠넘겨버린 채 지금에 이른 것. 오죽하면 유부인조차 원희의 짓거리가 못난 짓인 걸 알아서 견강을 안쓰럽게 보고 챙겨주려 노력했다.[285] 적 세력 군주의 아들이고 조휴와 자주 격돌해 당하는 포지션이라는 점에서 원술의 아들인 원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286] 엄밀히 말해 유부인은 원희의 친모는 아니지만, 현 시점 유일한 원가의 적모이고 호적상으로는 원희의 어머니이며, 견강 역시 사실상 남남이라 해도 법적으로는 그의 아내이다. 그런데도 적진에 어머니와 아내를 버리고 도망치는 건 누가 봐도 무책임한 행동이다.[287] 순욱은 원상의 군재가 나이에 비해 뛰어나다는 것은 맞지만, 딱 그 정도이지 원소를 대신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다.[288] 자기 아버지인 원소와 똑같이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그냥 자신이 전방에 나서 힘으로 격퇴하면 병사들의 사기도 오르고 호응하니 알아서 이긴다는 안이한 마인드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289] 그나마 원희처럼 전황이 나빠지자 본거지로 후퇴해버리는 막장짓까진 안했지만, 가족이 잡혀도 아무런 대응을 안하는 모습을 보여서 유엽은 생각이 있으면 군마든 재물이든 준비해 협상할 자세라도 취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290] 원상이 군주로서의 식견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도 이러한 무능한 결정에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옆에 붙어있는 책사가 위씨 상단에게 구워삶아져 자기 이익만 좇고 있는 곽도라는 점도 원인일 것으로 보인다.[291] 원가 중에서도 조조 측에 귀순 의사를 밝힌 이들과, 사망한 고간의 여인들은 전부 원소의 고향인 여남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중산 견씨 일족을 비롯한 하북의 호족과 명사들 대다수가 조조 측에 귀순한 것은 불문에 부치게 되었으니, 원상 입장에선 말이 휴전이지 진 거나 다름없다.[292] 오환의 두령인 답돈이 원소와 사돈이기 때문. 실제로 둘을 받아들인 후 답돈은 원씨 세력을 지지하며 조조군에게 선전포고를 한다.[293] 사실 고간이 탐욕스러운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전쟁에는 언제나 물자가 많이 필요하다. 특히 병주는 척박한 지역이라 물자가 더욱 절실하기에 고간이 지원을 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294] 가후의 말에 따르면 고간은 굉장히 탐욕스럽고 물욕이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부하들도 마찬가지로 물욕이 심해 뇌물이나 재물에 매우 약하다고 하며, 가후는 과거 유표군의 후원을 받아 완성에 있던 시절 간자를 보낼 때 뇌물을 써서 고간의 부대를 통과했다고 한다.[295] 그나마 본작에선 원소 사후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조조가 하북으로 침공해 업성을 점령해서 해당 첩들은 모두 조조가 데려가게 되었다.[296] 조휴도 만약 안량과 문추가 아닌 장합과 처음부터 맞붙었다면 졌을 것이라며 장합을 고평가한다.[297] 조휴가 견복 일가의 장례식 이후에 주령에게 부탁해서 견씨 자매들을 보살펴 주라 했는데, 이후 주령이 조조군에게 귀순하면서, 자신 대신에 믿을 만한 절친에게 견씨 자매를 맡겼다.라고 했는데, 정황상 그게 장합이었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장합은 자신의 처와 자식들이 견씨 자매들과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298] 조휴는 당시엔 누구인지 모르고 나중에 조조가 설명해준 후에야 그가 저수임을 알게 되었다.[299] 물론 업성에 있던 허유의 일가는 모조리 참수당했다.[300] 곽가도 조조에게 다소 무례하게 나오지만, 조조를 승상이라 높여부르거나 존댓말을 사용하는데 반해 이쪽은 그런거 없이 아만이라고 부르며, 반말을 하며 조조를 하대하듯 대한다.[301] 이 말을 들은 조휴는 이놈이 알면서 자기 찾을 때까지 기다린 거라고 의심한다. 만일 맞다면 허유는 자신의 군공 욕심 때문에 일부러 효과적인 전략을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니 사실상 내부 분탕과 다를 게 없기 때문.[302] 물증은 없으나 조비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상태라 일단 조휴의 말대로 직접 조조에게 보고하러 가기로 한다.[303] 설령 살았어도 조비가 이전에 자신이 본 것을 보고한 상태였고, 그에 따라 허유랑 동행했던 전위와 양수도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러니 허유가 맞아서 죽지 않았더라도 조사를 받고 내용이 사실로 밝혀진 뒤 처형되었을 것이다.[304] 허유가 아주 멍청한 짓을 한 건데, 위홍은 정황상 조조가 취한 여자다. 위홍의 기루에서 연회를 열때 항상 위홍이 조조의 옆에 앉기 때문.[305] 다만 곽가하고 사이는 나쁜지 곽가의 말로는 영천의 종친회에서나 오다가다 한 번 보고 말 사람이라면서 곽도의 언급을 꺼렸다. 사실상 같은 집성촌의 종친이어도 사이는 남만 못한듯.[306] 원래도 화려한 차림이긴 한데 최근엔 유달리 더 화려했고, 하북이 아닌 중원에서 볼법한 패물과 장식들이 있었다고 한다.[307] 타당해 보이지만 결국 파고들어보면 적의 예봉을 피하고 쉬운 전장을 골라가는 것이라 눈앞의 작은 승리만 보는 근시안적인 전략이다. 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실제로 승리를 얻어내긴 했으나, 다른 전장에서 이 한번의 승리를 대가로 3패를 당하며 곽도의 전략이 잘못됬음을 빠짐없이 보여준다.[308] 제법 나이가 있음에도 직접 전방에 나선다는 점 때문에 조조군의 정욱과 비슷한 면이 있다.[309] 실제 역사에서의 심배 또한 봉기가 과거 신평-곽도에게 음해를 당할 때 도와준 적이 있으나, 봉기가 원담파에 들어가자 곧바로 손절해서 원담군의 지원요청을 무시해 봉기를 죽게 만들었다.[310] 조휴는 일전에 백부님이 통제가 가능한 선에서의 인재를 받으라고 조언하며 예형의 예를 들었는데, 진림에 대해서는 마음에 드시면 뜻을 받아 쓰면 될거라고 조언한다.[311] 장군 중에 악진과 이전이 죽었고, 행정가와 선비들 중에서도 진림을 포함해 모개와 왕찬, 서간, 응창 등이 모두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312] 마장마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유비도 유주 출신이라 말탈 일이 많아 마장마술에 능한 편이니, 조순에 이은 두 번째 마장마술 스승인 셈.[313] 장남 유기의 후계자 자리를 굳히려는 의도도 있었다.[314] 짐새의 독으로 살해 당하면 이렇게 부른다.[315] 조조가 상서령을 순욱으로 앉히려고 상서령 양표를 숙청하고, 표기장군, 거기장군, 위장군에 있는 동승, 왕자복, 오자란, 충집 등의 식솔들의 비리혐의로 잡아넣었다.[316] 장비가 부인과 일찍 사별했다고 한다.[317] 본작에서는 비록 하비성에 포위된 상태이나 여포와 1:1의 승부를 벌여서 기어이 그를 죽이고, 조조군에 의탁하던 시절 전위, 장료, 조인등을 보고 내 수준에 못 미치는 놈들이라며 실제 셋보다 더 군공을 세웠다. 여기에 조휴의 부탁을 받아 장강을 누비다 순찰을 나온 손책을 1:1로 싸워 압도적으로 쳐바르고 주태, 진무, 동습 등의 수하들과도 다수로 싸우려 했다. 심지어 관도대전에서의 안량과의 승부도 원 역사보다 더 어려웠는데, 백마성 포위에서 정예군을 힘으로 뚫고 목을 쳐낼 정도로 원 역사보다 훨씬 세게 나왔다.[318] 연의에서야 무력이 왔다갔다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사에서 관우의 무력은 장비와 더불어 으뜸이라 할만하다. 장비와 함께 만인지적이라 불리우며, 관장지용이라는 두 사람의 용맹을 칭송하는 고사성어가 생길 정도로, 인중여포 마중적토라고 불리우는 여포조차 만인지적이라고 불리지는 않는다는 걸 보면 관우의 무력을 알 수 있다.[319] 더 쫓아가 그들을 죽이기엔 유비와 장비 쪽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조조군의 군세를 생각하면 관우 혼자 돌진하는 건 자살행위기도 했다.[320] 수검과 암검이 있는데, 수검은 유봉에게 있고 조휴에게 준 건 암검이다.[321] 정확히는 강릉을 거쳐 익주에 있는 유장 쪽으로 갈 생각이다.[322] 손견 사후 손책이, 손책 사후 손권이 이어받는다.[323] 원 역사보다 더욱 급하고 과격해졌는데, 이유는 원래 결혼 상대였던 대교와 소교를 조휴에게 빼앗겨 이에 제대로 도발당해 덤벼들었다가 그대로 패배했고, 이 치욕을 갚으려고 여강 태수 유훈을 죽이고 그 딸을 부인으로 삼은 후 여강을 차지하려고 했으나 천리행을 하고 있다가 조휴의 장인인 교공에게 부탁을 받아 순찰을 돌고 있던 관우에게 덤볐다가 크게 깨져 진출이 막힌 뒤로 장강 이북으로 올라가지 못해, 자신의 대외문제를 내부 결속으로 다지려고 더욱 잔혹한 숙청을 벌였다고 한다.[324] 처음에 화타의 조치로 제때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독화살의 영향으로 몸이 푸르딩딩하게 변해 위독한 상태에 놓여 다시 화타를 불렀으나, 결국 사망하고 만다.[325] 애초에 목적이 황조를 죽이는 것이었고 조조군과 충돌하는 건 손권 입장에서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326] 강동 손씨 일가의 안전보장, 점령지의 첫 세금을 면제하는 관례를 지켜줄 것, 회계 이남의 산월족과 건안 일대의 호족들을 소탕해줄 것.[327] 조휴의 개입 이전에 역사가 변한 부분인데, 여기서 노숙은 주유랑 친구로 나오지만 이 때 노숙은 주유랑 얼굴도 본 적이 없으며 몇 년후에나 주유랑 처음 만나는데다가 노숙은 손책 사후에야 손권을 따르는 것으로 손가를 따르기 시작한다. 때문에 독자들은 처음에 손가의 언급이 없었기에 따르기로 한 인물이 원역사처럼 정보(동명이인)인줄 알았고, 그 친구가 유엽인줄 알았다.[328] 작중에서는 이미 자신이 서주 출신이면서도 서주목 도겸에게 출사하지 않고, 용병 사업과 같은 협객들을 이끌고 주변인들을 돕는 역할을 하면서, 은밀히 가산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조조군이 서주에 침공하자 즉시 가산을 정리하고 남쪽으로 내려갔고, 원래 원술이 자신의 군사로 초빙하려 했으나, 그를 거절하고 대신 원술 산하로 의탁한 손책 세력 중에서 주유와 의기투합해서 그와 같은 길을 걸을 생각이었다며, 당시 손책을 따르게 된 이야기를 한다. 만약 노숙이 여기서 원술의 제안을 받아 군사가 되었다면 군재가 전무했던 원술 세력이 크게 바뀌었을 거다.[329] 적벽으로 온 조조의 1군을 상대로 2할 가량의 병사와 함선을 잃게 하는 등 전과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조군은 시간을 들여 병력을 복구할 수 있는 반면, 오군은 병력은 그렇다 해도 장수 6명(황개, 황병, 진무, 주치, 송겸, 여범)을 잃었다. 이러면 당장 조조군이 강동으로 오는 건 막을 수 있어도, 향후의 싸움에서는 더한 악조건 속에서 싸워야 한다.[330] 한나라의 역적이 아닌 위나라의 왕이니 역적도 아니고, 무인이란 자가 자기가 찬 검을 적장에게 던져서 자결하라 주니 무인도 아니라며 맨몸인 조조에게 받은 검을 들고 돌진했다.[331] 애초부터 공훈보다는 옛 집안의 땅을 찾는 것이 목표라서 굳이 죽이지 않은 거라고 한다.[332] 이 시점에서 조조가 목표로 하고 있는 상대가 서량의 관중제장들이라서 손권 측과 화친을 맺어서 후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반대로 손권 쪽도 계속 무리하게 조조와 대치를 이어가기는 어려웠기에 화친을 맺어서 시간을 벌어야 했다.[333] 250화 이후 기준으로 205년이라 했으니, 142년생인 유표는 63세인데, 당시 수명으로 봤을 때는 충분히 노인이고, 실제 역사에서도 병을 앓다 66세에 사망했다.[334] 당연히 이 일에 대해 괴량과 괴월은 물론, 누나인 채옥조차 조문 자리에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해 나무라지만 이미 채모는 움직이지 않는 조인과 조휴 대신 후방에서 자신들을 돕겠다고 한 조비의 손을 잡겠다고 결심한 상태였다.[335] 조휴가 제갈량과 만났을 때 번성의 전황과 채모가 어떻게 할지 물었었는데, 제갈량은 번성의 전황에 대해서 농성에서 관우와 장비가 밀리면 필시 유인책을 쓸 것이고, 거기에 만약 번성 측이 속으면 그대로 함정에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채모에 대해서는 그가 자신이 저지른 짓이 부끄러운 것임을 안다면 스스로 떠날 것이고, 아니라면 거만해져서 스스로 화를 입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채모는 형주의 실권을 장악하고 거만해진 나머지 관우와 장비의 함정에 그대로 걸려 목숨을 잃었다. 제갈량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은 셈.[336] 고순은 본인의 능력과 인품 모두 뛰어났지만 하필 주군인 여포가 희대의 개망나니라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다 펼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능력과 인품 모두 갖췄는데 윗사람을 잘못 만난 것. 그러나 문빙은 유표보다 채모의 수족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미 충성심 면에서 고순과 비교조차 불허하고, 그렇다고 그가 따르는 채모가 좋은 인물도 아니다. 적이긴 해도 한때 좋은 인연을 가졌던 숙부격 인물인 유비를 비열한 수단으로 죽인 채모를 조휴로선 절대 좋게 볼 수가 없으며, 무엇보다 유비를 죽인 이후의 행보도 어리석기 짝이 없어서 고작 그런 인물을 따르는 문빙이 조휴한텐 한심하게 보였을 것이다.[337] 채씨 일가를 그야말로 죽일 놈들 취급하며 씹었지만, 그나마 채씨 일가 중 황승언과 결혼한 채옥의 언니는 큰마님이라고 부르며 좋게 보았다. 그분이 계셨다면 그래도 달랐을 거라고.[338] 그래도 형양 쪽에서 조조군이 혹시라도 밀고 들어올 때를 대비하여 방비를 해뒀다고 생각하면 나쁠 것은 없다.[339] 일단 조휴는 바로 죽이지 않고 제갈량의 말대로 유배를 보낸 뒤 장안에 돌아가 채염이 정말로 낙심했다면 그때 가서 처리하기로 한다.[340] 과거 유비군이 의탁할 때 지금 유장은 대가 약하고 가만히 있으면 먹잇감이 될 테니 유비군 잔당이 결속해 조조에게 항전 의지를 보이자고 주장한 게 장송이기 때문.[341] 당시에 1:1 결투에서 난입하는 건 장수에게 있어서 이기더라도 절대 좋은 소리 못 듣는 치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마초도 붙잡히면서도 놓으라고 소리치며 몸부림을 쳤다.[342] 게다가 마초 본인의 가족들이 전부 조휴에게 인질로 붙잡히고, 조휴가 진창을 점령한 뒤 기산까지 진출해 후방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다.[343] 작중에서도 조조가 지 아들 잃었다고 피눈물 흘리면서 죽일듯이 달려들던 놈이, 갑자기 화의를 제안한다라며 비웃었다.[344] 내부에서 마등이 시랑 황규에 내통하여 허도 쪽에서 반란을 일으킬 계획이라고 언급되는데, 여기에 같이 호응할 생각으로 낙양에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345] 정략결혼이었으나 죽으면서 마지를 부르며 사망한다거나 마초의 형제들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마지같은 여성이 취향으로 보이며 진심으로 사랑한 것으로 보인다.[346] 여담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 일러스트 상으론 귀갑묶기로 묶여져 있어서 독자들이 누군진 몰라도 참 잘 묶었다며 칭찬(?)했다.[347] 비슷한 시기 복완도 노환으로 사망해서 조휴는 두 장인어른을 모두 잃는 아픔을 겪었다.[348] 이는 조휴와 제갈량이 꾸민 거짓 공세 준비였다.[349] 참고로 이 여인은 여강 태수 유훈의 딸이자 손책의 전처이다. 손책이 급사하는 바람에 화타를 따라가 그의 조수 역할을 하며 어깨 너머로 의술을 배웠지만, 아직 젊은 나이라 화타도 재가를 시켜줄 생각이었던 것.[350] 라는 건 사실 핑계고, 조조가 시문과 음악, 서예 등 다양한 문화 분야를 망라해 발전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학 쪽도 책을 정리하고자 화타를 불렀는데, 아내의 병을 핑계로 화타가 이를 거절해왔다. 그래서 조조는 화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볼 겸 거짓이면 그를 처벌할 심산이었다.[351] 명사와 유자를 천시하고 무뢰한과 협잡꾼들만 끌어모은 양양의 젊은 망나니라고 사정없이 깠다. 그놈 때문에 형주가 불바다가 된 거라며, 언젠가는 이렇게 일이 터질 줄 알았다고.[352] 이번에 채모가 저지른 짓 때문에 속앓이를 심하게 하고 있다고 하며, 유비를 조문 자리에서 암살하여 전란을 만든 채모와 형제들의 행보를 옳지 못하다고 말하면서도 혈육의 정 때문에 그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맏이로써 씁쓸하다고 말한다.[353] 참고로 강노포를 본 방통은 솜씨를 보고 포원의 실력임을 확신하고 공명이 그를 보내준 걸 눈치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