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width=400px><table align=right><tablebgcolor=#FFFFFF,#191919><tablebordercolor=#CC0000><#CC0000><width=100> ||<-2><:><#CC0000>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명칭 | 한국어 | 백제성 |
간체 | 白帝城 | |
번체 | 白帝城 | |
영어 | Baidicheng | |
분류 | 고건축 (古建筑) | |
시대 | 명 ~ 청[1] | |
일련번호 | 6-0692-3-395 | |
주소 | 중화인민공화국 충칭시 펑제현 바이디진 重庆市奉节县白帝镇 | |
등재 | 2006년 | |
차수 | 제6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 |
국가 지정 명승지 등급 | AAAA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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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蜀主窺吳幸三峽, 崩年亦在永安宮.
翠華想像空山裏, 玉殿虛無野寺中.
古廟杉松巢水鶴, 歲時伏臘走村翁.
武侯祀屋長隣近, 一體君臣祭祀同.
촉의 군주는 오나라를 치러 삼협으로 행차했다가 돌아가신 해에도 영안궁에 계셨네.
화려한 천자의 깃발을 텅 빈 산 속에서 상상하니 대궐은 간 곳 없고 아무 것도 없는 들판의 절만 남았네.
옛 사당의 삼나무와 소나무에는 황새가 둥지 틀고, 매해 삼복과 납일이면 마을 노인들 부산하네.
무후의 사당도 늘 이웃에 있어 한 몸 된 임금과 신하가 함께 제사를 받네.
영회고적 이수 제1수[2]
두보(杜甫)
翠華想像空山裏, 玉殿虛無野寺中.
古廟杉松巢水鶴, 歲時伏臘走村翁.
武侯祀屋長隣近, 一體君臣祭祀同.
촉의 군주는 오나라를 치러 삼협으로 행차했다가 돌아가신 해에도 영안궁에 계셨네.
화려한 천자의 깃발을 텅 빈 산 속에서 상상하니 대궐은 간 곳 없고 아무 것도 없는 들판의 절만 남았네.
옛 사당의 삼나무와 소나무에는 황새가 둥지 틀고, 매해 삼복과 납일이면 마을 노인들 부산하네.
무후의 사당도 늘 이웃에 있어 한 몸 된 임금과 신하가 함께 제사를 받네.
영회고적 이수 제1수[2]
두보(杜甫)
중국 충칭시 펑제현에 위치한 지명이다. 펑제현 동쪽으로 약 8k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며, 장강삼협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다. 이곳의 한쪽 면은 바이디산(白帝山)에 맞대고 있고 나머지 세 방향은 물이 굽이치는 높은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정면으로는 장강의 취탕샤(瞿塘峡)가 위치한다. 한자로는 白帝城이며, 한반도의 고대 국가인 백제(百濟)와는 한자부터 다르다.
2. 소개
2.1. 역사
본래 이름은 자양성(子陽城)이며, 신나라 군벌이었던 공손술이 당시 이 곳에 있는 우물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는데 그 모습이 마치 흰 용과 같아, 자신을 백제(白帝)라 참칭하고 이 성을 지었다. 공손술이 광무제에게 토벌된 후 사람들이 사당을 지었다.이후 어복현(漁復縣)에 속했으며, 촉한의 황제인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오나라에 패해 이곳으로 피신하여 계속 머물렀다. 그가 세상을 떠나며 제갈량과 이엄에게 탁고한 곳이기도 하다. 유비는 이 곳을 영안현으로 고치고 자신이 머물던 곳을 영안궁이라 불렀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그냥 바이디성(백제성)이라 불린다.
촉한 멸망 이후 나헌이 보협에 대항해 이 곳을 수비한다.
2.2. 관광
싼샤 댐(삼협 댐)이 있는 장강 삼협 안에 포함되는 지역인 만큼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원래 백제성이 있는 곳은 3면이 강과 맞닿는 육지의 반도였으나, 싼샤 댐 때문에 주위가 수몰지구가 되면서 섬이 되었다. 당연히 절경이지만 삼협 댐 건설 전에는 더더욱 웅장했다고 전한다. 사람과 자동차를 실어나르는 대형 크루즈가 운행 중이다. 2000년 충칭시의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2006년부터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2008년 5월 1일에 백제성풍우랑교가 개통되어서 다시 배 없이 갈 수 있게 되었다. 현존하는 백제성은 바이디산에 있는 '백제묘(白帝廟)'이며, 명나라와 청나라 당시에 유적을 복원하였다. 또한 이 곳의 지하에는 3겹으로 이루어진 과거 백제성의 성벽이 묻혀있으며, 고고학자들의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이곳은 장강삼협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기에 이백, 두보, 백거이, 유우석, 소식, 황정견(黃庭堅), 범성대(范成大), 육유(陸游) 등 명문장가들이 이곳을 들러 시를 지었다. 그래서 '시성(詩城)'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사당 내에는 유비가 임종할 당시를 재현한 대형 인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제갈량을 모시는 무후사(武侯祠) 또한 위치한다. 이외에 이곳의 한가운데에는 유우석의 석상이 있으며, 유우석이 지은 죽지사(竹枝詞)가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