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구석(九錫)은 '중국에서, 천자가 특히 공로가 큰 제후와 대신에게 하사하던 아홉 가지 물품'이다.본래는 군주가 큰 공을 세우거나 크게 신임하는 신하에게 내리는 특전으로 시작했으나, 전한의 왕망 이후 국공 작위가 내려지는 것과 더불어 선양이라는 미명 하의 찬탈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원래 구석은 주나라 시절 제후에게 내리는 제도를 기원으로 한다.
以九儀之命, 正邦國之位. 一命受職, 再命受服, 三命受位, 四命受器, 五命賜則, 六命賜官, 七命賜國, 八命作牧, 九命作伯.
(이구의지명 정배국지위 일명수직 재명수복 삼명수위 사명수기 오명사칙 육명사관 칠명사국 팔명작목 구명작백)
구의(九儀)의 명으로 방국(邦國)의 지위를 바로 잡는다. 첫 번째 명은 직책을 주고, 두 번째 명은 의복을 주고, 세 번째 명은 작위를 주고, 네 번째 명은 제기를 주고, 다섯째 명은 봉지(則)를 주고, 여섯째 명은 관(官)을 주고, 일곱째 명은 국(國)을 주고, 여덟째 명은 목(牧)으로 삼고, 아홉째 명은 백(伯)으로 삼는다.
주례주소(周禮註疏)[1]
(이구의지명 정배국지위 일명수직 재명수복 삼명수위 사명수기 오명사칙 육명사관 칠명사국 팔명작목 구명작백)
구의(九儀)의 명으로 방국(邦國)의 지위를 바로 잡는다. 첫 번째 명은 직책을 주고, 두 번째 명은 의복을 주고, 세 번째 명은 작위를 주고, 네 번째 명은 제기를 주고, 다섯째 명은 봉지(則)를 주고, 여섯째 명은 관(官)을 주고, 일곱째 명은 국(國)을 주고, 여덟째 명은 목(牧)으로 삼고, 아홉째 명은 백(伯)으로 삼는다.
주례주소(周禮註疏)[1]
《한서》에 나열된 구석의 특전은 다음과 같다.
- 거마(車馬)
행차할 때 항시 두 대의 수레가 움직이는데, 그중 큰 수레는 제후 본인이 타고 작은 수레는 무장을 한 호위병들을 태운다. 그 수레들을 이끄는 짐승들은 검은 소 두 필, 누런 말 여덟 필인데, 이는 황제의 행차에 준하는 격식이다. - 의복(衣服)
곤복과 면류관을 착용하고 붉은 신발을 신는다. 이는 왕의 예복(禮服)에 준하는 복식이다. - 악기(樂器)
조정이나 집에서 음곡(音曲)이나 가무(歌舞)를 감상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는 황제나 왕의 행사에 준하는 격식이다. 천자 앞에서는 팔일무(八佾舞),[2] 왕 앞에서는 육일무(六佾舞)[3]를 추도록 한다.[4] - 주호(朱戶)
거처하는 집의 대문과 나무기둥에 붉은색을 칠하도록 한다. 이 역시 일반 신하들은 사용할 수 없는 천자의 격식이다. - 납폐(納陛)
궁중에서 신발을 신고 전상에 오르내릴 수 있다. 원래 전상(殿上)에 오르려면 당연히 신발을 벗어야 된다. - 호분(虎賁)
천자처럼 늘 곁을 따라다니며 호위하는 3백 명 가량의 호분 병력을 사사로이 부릴 수 있다. - 궁시(弓矢)
역적을 마음대로 토벌해도 좋다는 권한의 상징으로 붉은 활 한 벌, 붉은 화살 백 개, 검은 활 열 벌, 검은 화살 3천 개를 하사한다. 여기서 구석의 성격을 고찰해 봐야 하는데, 구석을 받은 사람은 의전상 군주와 동격이다. 즉, 말은 '역적 토벌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구석 취득자의 반대파를 취득자가 맘대로 숙청해도 되는 권리인 것. - 부월(斧鉞)
왕의 의장행사에 쓰이는 도끼로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다만 이것은 구석으로서가 아니라도 출정하는 장수에게 군권을 맡긴다는 의미로 주는 경우도 많았다. '출정하는 장수에게 부월, 절월(節鉞)을 주었다'는 표현을 쓰는데, 절월은 권위를 상징하는 부절과 생사권을 의미하는 부월을 합쳐 이르는 것으로, 출정하는 장수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 거창규찬(秬鬯圭瓚)
검은 수수로 빚은 술인 거창과 옥으로 만든 제기인 규찬을 조상의 제사에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천자의 태묘 제사 때 사용되는 것이다.
2. 실상
이 모든 것들이 천자의 예에 버금가는 격식이라 웬만큼 큰 공을 세우지 않는다면 감히 생각해보기도 어려운 특전이지만 의미가 퇴색되면서 실권자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역사상 전한의 왕망, 후한의 조조, 조위의 사마소, 서진의 사마륜, 동진의 환현, 유유, 유송의 소도성, 양의 진패선, 북주의 양견, 수의 이연, 대월의 막당중이 하사받은 바 있다. 이들의 면면을 잘 보면, 잠시 황위를 찬탈했다가 폐위당하고 주살당한 사마륜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본인이나 자식 대에서 새 왕조를 열게 되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왕망이나 환현처럼 얼마 못 가 망한 경우도 있지만.고대 중국에서는 어린 황제를 보좌하는 직위로서 보정대신(輔政大臣)이라는 직위가 있었는데, 어린 황제가 연달아 즉위한 전한 후기부터는 이 직위가 황제를 대신하면서 비정상적으로 권력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전한(왕망), 후한(조조), 위(사마의) 등이 모두 이 보정 직위를 맡고 있다가 왕조를 찬탈했다. 이 셋에 동탁을 더해 망탁조의라 부르기도 한다. 조조와 사마의는 각각 아들 조비와 손자 사마염이 찬탈하여 왕조를 창업했지만 사실상 본인들이 창업의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되려 미숙한 황제를 위해 분골쇄신한 제갈량 같은 사람은 왕이 되어 구석을 받으라는 이엄의 요청을 거부했다.[5]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구석의 수여란 단순히 황제가 보정대신을 신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왕권을 거의 내준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보통 승상, 대장군, 상국 등 최고위 관직을 달거나 공, 왕의 지위에 올라 하사받았는데, 구석을 하사받는 것은 찬탈이 가시화될 정도로 수상자의 권위가 올라갔다고 보면 된다. 이 때문에 삼국지에서 조조와 순욱 사이에 구석을 받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 바 있고, 사마의가 조방에게 구석을 수여받았으나 사양한 반면[6] 사마소는 아예 구석을 거절하는 척하면서 황제의 권위를 망가뜨려버렸다. 이에 앞서 사마사 때 관구검의 난이 일어났고 사마소 때 제갈탄의 난이 일어나지만 모두 참패하고 얼마 안 가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이 결국 제위를 찬탈하고 만다.
타국에게 구석을 내리는 행동은 일종의 주종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는 손권으로 조위로부터 구석을 받기도 했고 칭제 이후 공손연에게 연왕의 작위와 구석을 내린 걸[7] 들 수 있다.
그러다가 당나라가 멸망하고 각 지방의 실권을 쥐고 있던 절도사들의 세상이 되어 사실상 왕이나 황제를 마음대로 자칭하자 구석은 별 의미가 없어지고, 결국 북송 조광윤이 후주 공제에게서 선양받은 이후 선양과 함께 구석도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3. 수여자 목록
중국에서 구석의 직위를 하사받은 인물은 다음과 같다.수여국 | 수령자 | 소속국[8] |
전한 | 왕망 | 신 |
후한 | 조조 | 조위 |
조위 | 손권 | 동오 |
조위 | 사마소 | 서진 |
서진 | 사마륜 | |
서진 | 사마경 | |
서진 | 사마월 | |
서진 | 진민 | |
전량 | 장무 | |
전조 | 석륵 | 후조 |
후조 | 석호 | |
후조 | 석준 | |
북진 | 걸복건귀 | |
후진 | 초종 | 초촉 |
동진 | 환현 | 환초 |
동진 | 유유 | 유송 |
유송 | 소도성 | 남제 |
남제 | 소연 | 양 |
양 | 후경 | 후한 |
양 | 진패선 | 남진 |
북위 | 고양 | 북제 |
북주 | 양견 | 수 |
수 | 왕세충 | 왕정 |
수 | 이연 | 당 |
4. 유사품
4.1. 기타 특전
그 외에 공적이 큰 신하를 예우하는 의미로 몇가지 특전이 내려지기도 했는데, 구석과 마찬가지로 전한 말기 이후로는 조정을 장악한 권신 전용의 특혜로 성질이 바뀌었다. 간혹 구석의 특전 중 하나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보인다.- 검리상전(劍履上殿)
칼을 차고 전상(殿上)에 올라갈 수 있다. 원래 전상에서는 군주를 지키는 금군을 제외하고 무기 소지 자체가 안 된다. - 입조불추(入朝不趨)
황제의 어전에 입조할 때 종종걸음으로 걷지 않아도 된다. - 알찬불명(謁讚不名)
입조 때 환관이 관직과 이름을 말하지 않고도 입조할 수 있다. - 조회불배(朝會不拜)
조회할 때 절하지 않아도 된다. 위의 세 특전은 전한 초기의 상국인 소하가 최초로 받았으나, 조회불배는 사마의가 구석을 사양하면서 받은 사례가 시초이다. - 출경입필(出警入蹕)
황제가 행차할 때 경계를 서고 다른 사람들의 내왕을 막는다는 뜻으로, 개념 자체는 현대에서도 가끔 대통령이 이동할 때 종종 벌어지는 교통통제 같은 것이다. 위의 세 특전과는 달리 구석이라는 특전과 함께 따라다니는 성질을 갖는다. 사실상 대외에 누가 실권자인지를 뻔히 알 수 있게 해주는 모양새를 갖기에, 이 특전을 권신이 가진 시점에서 선양이든 찬탈이든 그 진행속도는 대단히 빨라진다. - 단서철권(丹書鐵券)
여러 특전 중 그나마 잘 알려진 것으로 본래는 공신들의 공로를 인정한 증명서 비슷한 것이었으나, 점점 면책특권과 같은 성질을 가지게 되었다. 역모를 제외한 다른 죄로 처벌받지 않게 되며, 다른 특전들과 마찬가지로 초기 공이 있던 자에게 내리던것이 점점 양준처럼 외척이나 권신들이 단서철권이나 면사패를 받고 날뛰는 것으로 변질된다. 상기한 특전들에 비해 자주 뿌려졌기에(특히 개국 초기) 이에 비례하여 권위는 약간 떨어지는 편.
사실상 찬탈의 전 단계로 구석을 받는 이들은 대체로 공(公)으로 봉해진 뒤에 왕(王)을 거쳤고 이러한 봉작을 명분으로 봉국(封國)을 받았다. 왕망이 처음으로 안한공(安漢公)으로 책봉되었고, 조조가 위공(魏公)을 거친 뒤에 위왕(魏王)으로 승격되어 이러한 관례를 완성(...)했다. 이후의 왕조에서는 이미 공작이나 왕작을 받은 경우에는 자신이 세우려는 왕조의 국호를 미리 정해놓고 새로운 왕작으로 셀프 승격하거나 셀프 개봉(改封)했다. 이렇게 세워지는 봉국에는 독립된 조정(朝廷)이 운영되었기에 실질적으로 다음 왕조를 개창하는 예비 조정 역할을 했다. 사실상 나라 안에 자기 구역을 만든거나 다름이 없는셈. 이 시점에서 선양이든 찬탈이든간에 아무튼 왕조는 확실히 바뀔 것임이 확정된다.
참고로 고대 중국에서는 제후가 자기만의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운영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는 구석의 특전을 받았기에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제후로 책봉되는 자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였으며, 단지 천자가 운영하는 격식과 차등이 있었을 뿐이다. 종묘의 경우 천자는 7묘(七廟)였고 제후는 5묘(五廟)로 차이가 있었고, 사직은 신분에 따라 지낼 수 있는 제사와 그 규모에 차등이 있었다. 구석을 받아 실질적으로 찬탈이 가시화되는 단계에 이른 이들도 정식으로 천자가 되기 전까지는 7묘를 세운다거나 천자 전용의 제례를 치르지는 않았다.
4.2. 궤장
자세한 내용은 궤장 문서 참고하십시오.궤장(几杖)은 70세 이상의 늙은 신하에게 군주가 하사하는 최고의 예우이다. 신하가 연령을 이유로 은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의 특전이었다.
4.3. 우에스기의 칠면허
일본에선 비슷한 사례(?)로 우에스기의 칠면허(上杉の七免許)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하얀색 우산집 사용
- 양탄자 장식 말안장 사용
- 서화의 감정 서명 허가
- 옻칠한 가마 사용
- 국화 문양, 오동 문양 사용 허가
- 붉은색 우산 사용
- 오야카타 칭호 허가
5. 대중매체
일부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보물로 등장한다. 삼국지 7 이후 시리즈부터 자칭이 아닌 한제로부터 공(公)에 임명되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뿐이기 때문에 맨 처음 공에 임명된 사람이 갖게 되며 보물이기 때문에 보물 소유자를 죽이거나 몰수하면 가질 수 있다. 9가지 특전을 하나의 보물로 묶어 취급하며 능력치 상승은 없지만 특기를 부여하거나[9] 명성 등을 올려주기도 한다. 조조가 위공에 임명된 217년 이후 시나리오에서는 조조, 조비, 조예 등 위나라 세력이 대를 이어 가지고 있다.
[1] 정현(삼국지)의 "주례주"를 기초로 하여 당(唐)나라의 가공언(賈公彦, ? ~ ?)이 만든 주석서[2] 나라의 큰 제사 때 추는 춤으로 악생(樂生) 64인을 8열로 정렬시켜 아악(雅樂)에 맞추어 추게 하는 문무(文武)나 무무(武舞)로 규모(規模)가 매우 크다.[3] 팔일무와 비슷하지만 악생 36인을 6열로 정렬시키는 것이다. 즉, 규모 차이.[4] 이외에도 대부는 사일무, 사는 이일무를 추게 되어있다. 이와 관련해서 논어 팔일편에 "孔子 謂季氏 八佾 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라고 하여서 노나라의 계씨(노 환공의 후손으로 노나라를 좌지우지하던 세 가문인 '삼환' 중 가장 강력한 가문이었다.)가 대부의 신분으로 집에서 팔일무를 시켰다고 공자가 꾸짖는 내용이 나온다.[5] 다만 아주 정중하게 거부한 건 아니고 지금은 구석 같은 걸 받을 때가 아니다, 위나라를 평정하고 한실부흥에 성공한다면 구석이 아니라 십석이라도 받겠다며 완곡적으로 거부했다.[6] 구석은 사양했으나 조회불배(朝會不拜)는 받았다.[7] 그러나 재물만 탐한 공손연은 사신을 목 베어 위나라로 보냄으로서 파토가 났다.[8] 수여국의 속국 자격으로 받거나 수령 후 왕조가 교체된 경우에만 기재[9] 삼국지 8 한정으로 「인덕」 특기 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