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Ulrich Heinrich Emil Richard Greifelt 울리히 하인리히 에밀 리하르트 그라이펠트 |
출생 | 1896년 12월 8일 |
독일국 베를린 | |
사망 | 1949년 2월 6일 (향년 52세) |
독일 란츠베르크 | |
복무 | 슈츠슈타펠 (1933년 ~ 1945년) |
최종계급 | 슈츠슈타펠 대장 (상급집단지도자) 질서경찰 대장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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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왼쪽부터 리하르트 힐데브란트 SS대장, 하인리히 힘러 SS장관, 그라이펠트이다. |
2. 초기 행적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에서 약사였던 부모아래 태어난 그라이펠트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1914년 8월에 제48 보병연대에 배속되어 제3 근위저격병 대대에 입대했다. 1915년 3월에 사관후보생이 되어 7월에 소위로 임관했는데 1916년 8월에 항공대로 이적하여 조종사가 된 후 정찰비행을 담당하다가 패전 후 리가의 군정부에서 일했다. 전후 의용군에 참가한 그라이펠트는 베를린으로 돌아가 베를린의 전기회사에서 공장장으로 일했다.3. 나치당 입당과 슈츠슈타펠 입대
대공황의 여파로 회사가 도산하면서 실업자가 된 그는 히틀러 내각이 성립된 후인 1933년 4월 1일에 나치당에 입당해 6월 18일에 나치 친위대에 입대했다. 친위대 국가지도자였던 하인리히 힘러의 참모가 되어 친위대 본부에서 근무했다. 그라이펠트는 사상보다는 통계학에 능한 인물이었는데 1935년 6월부터 1937년 2월까지 친위대 본부의 참모장이 되어 1937년에 친위대 국가지도자의 참모부에 설치된 4개년 계획 사무국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938년 3월부터 1940년 6월까지 친위대 본부의 관방장관으로도 일했다. 4개년 계획은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인력보충을 위해 300만명에 달하는 국외거주 독일인, 독일계 국민의 귀환사업으로 1939년 7월에 이탈리아의 남 티롤지방의 독일계 민족이 독일귀환을 그라이펠트가 진두지휘했다.4. 제2차 세계 대전
그라이펠트와 친위대 지도자들[1] |
5. 전후 재판과 최후
재판에 회부된 그라이펠트 |
[1] 맨 오른쪽이 그라이펠트이다. 맨 왼쪽부터 고틀로프 베르거, 콘라트 마이어-헤틀링, 막스 토마스, 쿠르트 크노블라우흐[2], 오토 폰 욀하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