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참모총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아달베르트 소르시히 폰 제베린은 1860년 4월 17일 오스트리아 제국페스트에서 태어났다. 소르시히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소르시히의 할아버지는 1822년 귀족 작위를 받았다. 소르시히는 드레스덴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처음에는 해군에 입대하려 했으나 1875년 제25야전사냥병대대에 입대했다. 생도학교를 거쳐 1878년 보병으로 전과했고, 소위로서 보스니아 점령전쟁에 참전했다.
1888년부터 1890년까지 비너노이슈타트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에서 헝가리어 교관으로 근무했고, 1889년에는 대위로 진급했다. 중대장을 거쳐 1895년부터는 제24향토보병연대와 제9향토보병연대에서 복무했다. 1898년 9월에는 페치의 향토생도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1906년 대령으로 진급하여 제8향토보병연대장이 되었고, 1911년 소장, 1912년에는 제82향토보병여단장이 되었다.
1914년 3월 부다페스트 시위병사령관이 되었고, 11월에는 중장으로 진급했다. 1915년 9월에는 2~3개의 헝가리 향토후비보병여단으로 구성된 집단의 지휘관이 되어 세르비아 전역에 참전했다. 부대의 산악전 훈련 부족과 보급 문제에도 불구하고 선전했다. 1916년 1월에는 로브첸(Lovćen) 점령전에 참여했고, 2월에는 자신의 부대가 제63보병사단으로 개편된 후 두라초 점령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같은 해 9월에는 볼히니아에서 제70향토보병사단을 지휘하여 브루실로프 공세 당시 러시아 제국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10월에는 트란실바니아 국경 방어를 위해 전환되어 1917년 2월에는 임시 군단급 부대를 지휘하며 러시아군의 공격을 저지했고, 8월에는 몰다비아 진공작전에 참여했다. 1918년 1월에는 베네토의 제6군단장이 되었고, 5월에는 보병대장으로 진급했다. 7월에는 카샤우 군관구사령관이 되었다. 1919년 1월 1일부로 퇴역했다. 군 복무 중 레오폴트 훈장 사령관십자를 비롯한 여러 훈장을 수여받았다. 전역 후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지내다가 1930년 12월 30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