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참모총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발트슈테텐은 1872년 11월 9일 빈에서 오스트리아 제국군중장 게오르크 폰 발트슈테텐(Georg von Waldstätten, 1837-1918)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를 1892년에 수석으로 졸업했고, 1895년부터 1897년까지 황립 및 왕립 전쟁대학을 역시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발트슈테텐은 대령 계급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빅토어 단클기병대장의 제1군 작전참모로 복무하며 크라시니크 전투에서 단클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이후 1916년 3월에는 카를 대공의 직속 참모로 발탁되어 신설된 제20군단의 참모장을 맡았고, 같은 해 9월 말에는 제7군 참모장으로 전보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1919년 1월 1일 퇴역한 발트슈테텐은 1921년에 장인어른인 카를 푸츠 폰 롤스베르크(Karl Borromäus Ferdinand Putz von Rolsberg)가 사망하면서 모라비아에 있는 영지와 라이터스도르프(Leitersdorf) 성[1]의 관리를 발트슈테텐에게 맡겼는데, 이는 롤스베르크의 아들을 비롯한 성년 남성 가족이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발트슈테텐은 한동안 라이터스도르프의 마지막 독일인 시장을 지냈다. 이후 발트슈테텐은 1937년 7월 중장에 추서되었고, 1939년 타넨베르크 전투 25주년 기념일에는 보병장군으로 추서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고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를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으로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라이터스도르프 성이 위치한 지역도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을 되찾으면서, 나치에 협력했던 독일계 주민들에 대한 처벌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독일계 주민들이 체코인들에 의해 구금되거나 추방당했는데, 라이터스도르프의 마지막 독일계 시장을 지냈던 발트슈테텐도 체코인들에 의해 반민족 행위 혐의로 구금되어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년 만에 사면되어 석방되었지만, 감옥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그는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여생을 빈 근교의 마우어바흐(Mauerbach)에서 보내다가 거기서 1952년 1월 12일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