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일반참모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지몬 슈베르트너는 오스트리아 제국군소장 율리우스 슈베르트너(Julius Schwerdtner, 1824-1905)의 아들로 빈에서 태어났다. 그라츠와 레오벤(Leoben)의 육군기술학교에서 수학했고 1874년 프레스부르크의 제72보병연대 소위로 임관했다. 1878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점령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인스브루크 생도학교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1884년부터 1886년까지 빈의 황립 및 왕립 전쟁대학에서 수학했고, 중위 진급과 함께 참모장교가 되었다. 이후 렘베르크와 올뮈츠에서 근무했으며 1889년 대위로 진급했다. 1892년부터 요제포프(Josefov)의 제9군단 참모장교가 되었고, 소령 진급 후 1895년 프셰미실의 제10군단으로 전속되었다. 1898년 중령, 1901년 대령으로 진급했고 1902년부터 1908년 에게르의 제5보병연대장을 지냈다.
1908년 5월 1일 소장으로 진급하여 올뮈츠의 제9보병여단장이 되었다. 1912년 중장으로 진급해 같은 도시에서 제5보병사단장을 지냈다. 1914년 3월 프라크의 제8군단 부사령관이 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대부분의 부대가 동부전선으로 떠나자 보헤미아 군관구사령관으로서 프라크에 남았다. 체코 출신 병사들의 반란 움직임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1915년 9월 1일 보병대장 칭호를 받았으나 같은 해 11월 예편했다.
1892년 올뮈츠에서 소장 프란츠 카라이슬 폰 카라이스(Franz Karaisl von Karais, 1830-1890)의 딸인 안나(Anna, 1874년생) 남작부인과 결혼했다. 아들 율리우스(Julius, 1895-1979)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장교로 참전했다. 슈베르트너는 은퇴 후에는 프라하, 그라츠, 빈에서 지냈고, 말년에는 클라겐푸르트로 이주해 그곳에서 사망했다. 안나비흘(Annabichl) 중앙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