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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 휘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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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 |||||
국가 | 폴란드 | ||||
시간대 | (UTC+1/+2) | ||||
주 | 포트카르파츠키에 | ||||
인문환경 | |||||
면적 | 46.18km² | ||||
인구 | 56,466명[1] | ||||
인구밀도 | 1,230.3명/km² |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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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도시.2. 역사
크라쿠프 다음으로 2번째로 오래된 폴란드의 도시이다. 8세기부터 서슬라브 민족이 이 곳에 요새를 짓고 살았다.981년, 키예프 루스의 블라디미르 1세가 이 지역을 차지하였다.
1018년, 다시 폴란드 왕국이 탈환했으나 1031년 다시 키예프 루스의 땅이 되었다.
1340년, 카지미에시 3세가 다시 이 지역을 탈환하였다.
1389년,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워가 도시로 승격시켰다.
16세기, 무역을 통해 도시는 크게 성장했고 근처 도시인 르부프와 더불어 폴란드인, 유대인, 독일인, 체코인, 아르메니아인 등 여러 민족이 도시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다 17세기에 스웨덴이 침공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몰락하면서 도시 또한 성장을 멈추었다.
제1차 폴란드 분할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의 땅이 되었고 산하국인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에 속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 제국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프셰미실 요새를 상대로 프셰미실 공방전을 펼쳤다.
전후, 폴란드 제2공화국과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사이의 영토 분쟁 지역이 되었다.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과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을 거쳐 프셰미실은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나치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결정하면서 빠르게 군대를 진격시켰고 1939년 9월 11일부터 9월 14일까지 이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폴란드군이 독일 국방군에게 패배하면서 나치 독일령이 되었다. 1944년 7월 27일, 소련군이 독일군을 물리치면서 도시는 소련이 차지하였다. 1945년 8월 16일, 모스크바에서 소련과 폴란드 사이의 국경 협정이 체결되면서 도시에서 몇 km 떨어진 곳에 국경을 긋는 커즌선이 계획되었으나 결론적으로는 15km 가량 떨어진 곳에 국경을 긋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2022년 7월 1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생긴 난민들을 보호하던 도시였다며 구원자 도시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3. 자매 도시
[1] 2022년 12월 31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