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a9c5><colcolor=#191919>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육군 제국상급대장 프리드리히 폰 게오르기 Friedrich von Georgi | |
이름 | Friedrich Robert Freiherr von Georgi 프리드리히 로베르트 폰 게오르기 남작 |
출생 | 1852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 제국 보헤미아 왕관령 프라크 |
사망 | 1926년 1월 23일(향년 81세) 오스트리아 공화국 빈 |
복무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1871년 ~ 1918년) |
최종 계급 | 제국 육군 제국상급대장 (k.u.k. Generaloberst)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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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자 제국상급대장. 황립-왕립 국방성 장관을 지냈다.2. 생애
프리드리히 폰 게오르기는 1852년 1월 27일 프라그에서 작센 출신 가문의 오스트리아 제국군 대령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처럼 군인의 길을 걸은 게오르기는 하인부르크 사관학교에서 기초 군사교육을 받았고, 비너 노이슈타트의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88명중에 43등이라는 성적으로 졸업했다.[1] 1871년 소위로 임관한 후 제6보병연대에서 복무를 시작했고, 1879부터 1881년까지 빈에 위치한 황립 및 왕립 전쟁대학에서 참모장교 교육을 받았다. 이후 1882년 보스니아 반란 진압에 참여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고, 꾸준히 진급하여 1891년 소령, 1894년 중령, 1896년 대령이 되었다. 그의 진급이 빨랐던 이유는 참모본부와 전쟁성에서 보여준 뛰어난 행정능력 때문이었다. 덕분에 상관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특히 오이겐 폰 알보리(Eugen von Albori) 총독과 벡 참모총장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새로운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돋보였다고 한다.1903년 소장으로 진급한 후 1906년 황립 및 왕립 국방차관이 되었고, 1907년 중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국방장관이 되었다. 그는 당시 차기 황제가 될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콘라트 참모총장의 신임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전통적인 군 장교들과 달리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 장성이었기 때문이다.[2] 국방장관으로서 그는 군의 현대화에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장교 교육기관 설립과 영방군 전용 포병, 기병 부대 창설을 추진했다. 1911년에 보병대장으로 진급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후, 게오르기는 직접 전선에서 지휘하기를 요청했지만, 프란츠 요제프 1세는 그의 행정능력을 높이 평가해했고, 국방성 장관이라는 직책의 중요성때문에 거절당했다. 1916년 5월 16일, 제국상급대장까지 진급했다.
카를 1세가 황제에 즉위했을 때, 전임인 프란츠 요제프 1세가 그랬던 것 처럼 신임 황제 또한 게오르기의 능력을 높이 샀다. 게오르기는 재능 있고 성공적인 관료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카를 1세가 장관으로 남아달란 요청을 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1917년 3월 31일, 게오르기는 제국 의회 상원에 임명되었다. 66세의 게오르기는 더 이상 지휘권을 행사할 기회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황제에게 사임을 표명하였다. 그후 정치계를 떠나 말년을 보내다가 빈에서 사망하였다.
3. 평가
"활동적이고, 이해심이 많고, 편파적이지 않고, 극단적이지도 않고, 올바른 감각과 조직적 재능을 가진 사람"
1916년 10월 21일, 오스트리아 총리 카를 폰 슈튀르크가 암살된 후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가 게오르기를 총리 후보로 추천했을때 남긴 평가.
1916년 10월 21일, 오스트리아 총리 카를 폰 슈튀르크가 암살된 후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가 게오르기를 총리 후보로 추천했을때 남긴 평가.
게오르기는 전형적인 참모형 장교였다. 그는 실전 경험은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행정능력과 조직력으로 오스트리아군을 현대화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특히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영방군은 정규군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진보적인 사고방식으로 군 교육체계를 개혁하고 콘라트와 마찬가지로 산악전 전문부대를 창설하는 등 군의 현대화에도 기여했다. 그의 이러한 업적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카를 1세 모두로부터도 인정받았으며, 수많은 훈장과 명예직이 이를 증명했다.
4. 여담
앞서 서술했듯, 콘라트와 아우펜베르크가 게오르기의 동기였다. 그가 콘라트와 아우펜베르크만큼이나 셋과도 친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콘라트는 그와 여전히 우호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동기 셋 모두 각각 참모총장, 전쟁장관, 국방장관이 되면서 각자의 위치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1]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와 모리츠 아우펜베르크 폰 코마루프가 게오르기의 그의 동기였다.[2] 그 외에도 게오르기가 콘라트와 동기였던 점도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