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참모총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가브리엘은 1861년 12월 17일 오스트리아 제국령이었던 브륀에서 트란실바니아 지방 출신 루마니아계 가문으로 추정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브리엘은 1883년 비너노이슈타트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가브리엘은 1888년 중위로 진급해 참모부로 전출되었고, 1891년에 대위가 되었다. 그리고 1893년에는 군사 공로 메달을 수훈했다. 1900년에는 프란츠 요제프 1세로부터 프란츠 요제프 훈장 3등급을 받고 작위를 하사받았다. 1908년에는 소장으로, 1912년 6월 13일에는 중장으로 진급했다. 1914년 7월에는 트레비네(Trebinje)에 주둔한 제2산악여단장에 임명되었다.
사라예보 사건 직후인 1914년 8월, 가브리엘은 휘하 부대를 이끌고 세르비아 원정에 참전해 작전 성공에 기여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해 10월 1일 레오폴트 훈장 기사작위장을 받았다. 1915년 5월 이탈리아 왕국이 협상국 편으로 참전하자, 이탈리아 국경 지역으로 전선을 옮겨 제48보병사단장에 임명되었다. 1915년 10월 제3차 이손초 전투에서 사단을 효과적으로 지휘해 승리를 이끌었고, 그 공로로 군사 십자훈장 2등급을 받았다.
1916년에도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해 맹활약했다. 5월에는 철십자 훈장 2등급, 8월에는 철관 훈장 2등급을 각각 수여받았다. 11월에는 레오폴트 훈장 지휘관장까지 영예를 안았다. 카를 1세 황제는 1917년 11월 가브리엘의 공적을 기려 남작 작위를 하사하고 '폰 가브리엘'로 성을 격상시켰다. 전쟁 말기인 1918년 5월에는 인스브루크에 위치한 제14군단장에 임명되었다. 1918년 제국 해체 이후 완전히 현역에서 물러난 가브리엘은 인스브루크에 정착해 여생을 보냈다. 1944년 11월 21일 그곳에서 82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