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3abcf><colcolor=#ffffff>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스펜서 Diana, Princess of Wales | |
이름 |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 (Diana Frances Spencer) |
출생 | 1961년 7월 1일 |
잉글랜드 노퍽주 샌드링엄 파크하우스 | |
사망 | 1997년 8월 31일 (향년 36세) |
프랑스 파리 13구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대학병원 | |
신체 | 178cm |
학력 | 리들스워스 홀 (졸업) 웨스트 히스 여자고등학교 (유급)[1] |
배우자 | 찰스 3세 (1981년 결혼 / 1996년 이혼) |
자녀 | 장남 윌리엄, 차남 해리 |
아버지 | 제8대 스펜서 백작 존 스펜서 |
어머니 | 프랜시스 로슈[2] |
형제 | 큰언니 사라[3], 작은언니 제인[4], 오빠 존[5], 남동생 찰스 |
종교 | 성공회 (잉글랜드 국교회)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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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전 왕세자비. 현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전 배우자이자 현 영국 왕세자 웨일스 공 윌리엄,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의 어머니이다.다이애나는 찰스가 왕세자였던 시절 결혼하였으나 찰스와 카밀라 파커 보울스의 불륜으로 인한 순탄치 못한 왕실 생활과 불화 끝에 1992년부터 별거에 돌입한 후 1996년에 이혼했다. 이혼 다음 해인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들의 추격을 피하다가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여 전 세계적인 애도를 받았다.
왕세자비 시절은 물론이고 이혼 이후에도 자신이 가진 대중적 영향력을 활용하여 봉사와 자선활동에 헌신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민중의 왕세자비(People's Princess), 영국의 장미(England's Rose)라고 불리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이는 아름다운 외모와 훌륭한 인품, 활발한 봉사 활동 등으로 많은 국민들이 사랑했던 왕세자비라는 의미에서 붙은 호칭이다.
2. 작위
결혼한 후 쓰던 문장 | 이혼 이후의 문장[6] | 모노그램 |
- 아너러블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 The Honourable Diana Frances Spencer (1961년 7월 1일 ~ 1975년 6월 9일)
- 레이디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 Lady Diana Frances Spencer (1975년 6월 9일 ~ 1981년 7월 29일)[7]
- 웨일스 공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of Wales (1981년 7월 29일 ~ 1996년 8월 28일)
- 체스터 백작부인 Countess of Chester (1981년 7월 29일 ~ 1996년 8월 28일)
- 콘월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Cornwall (1981년 7월 29일 ~ 1996년 8월 28일)
-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Rothesay (1981년 7월 29일 ~ 1996년 8월 28일)
- 캐릭 백작부인 Countess of Carrick (1981년 7월 29일 ~ 1996년 8월 28일)
- 렌프루 남작부인 Baroness of Renfrew (1981년 7월 29일 ~ 1996년 8월 28일)
- 아일스의 레이디 Lady of the Isles (1981년 7월 29일 ~ 1996년 8월 28일)
- 스코틀랜드 공비 Princess of Scotland (1981년 7월 29일 ~ 1996년 8월 28일)
-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Diana, Princess of Wales (1996년 8월 28일 ~ 1997년 8월 31일)
1996년 찰스와 이혼 이후에는 영국 왕세자비를 뜻하는 웨일스 공비 호칭을 제외한 다른 호칭은 쓰이지 않게 되었으며 전하 경칭 역시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는 영국 왕실의 일원이 아니게 되었지만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왕실 특성상 두 왕자들의 어머니로서 왕세자비 칭호만큼은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3. 본가
스펜서 가문의 문장[8] |
스펜서 가문의 영지이자 저택 올소프 |
• 31개의 침실을 포함한 90여개의 방 보유.
• 10만 제곱피트의 규모. 심지어 주변 토지는 제외.
• 박물관 수준의 진귀한 국보급 예술 작품과 골동품들 및 1892년부터 수집된 1만여권의 책이 있는 도서관 보유.
• 넬슨 만델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윈스턴 처칠 등 수많은 유명인사와 정재계 및 상류층들이 머무른 장소
외가는 '퍼모이 남작 가문'으로 어머니 프랜시스 로슈 4대 퍼모이 남작 모리스 로슈의 차녀였다. 프랜시스의 할아버지가 미국의 백만장자 상속녀와 결혼해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연이은 사업 실패와 사치로 가문 영지를 잃었기 때문에 아들 내외인 퍼모이 남작 부부는 엘리자베스 2세의 배려로 왕실 별장 샌드링엄 하우스에 근처의 저택에서 지냈고 이곳이 프랜시스의 친정집이 되었다. 현재 퍼모이 남작가의 당주는 다이애나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모습을 비췄던 외사촌 남동생인 6대 퍼모이 남작 모리스 로슈인데 그는 슬하에 딸만 두 명이라 가문을 물려 줄 아들이 없기 때문에 현재 남동생 에드먼드가 그의 상속인이자 7대 퍼모이 남작이 될 예정이다.• 10만 제곱피트의 규모. 심지어 주변 토지는 제외.
• 박물관 수준의 진귀한 국보급 예술 작품과 골동품들 및 1892년부터 수집된 1만여권의 책이 있는 도서관 보유.
• 넬슨 만델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윈스턴 처칠 등 수많은 유명인사와 정재계 및 상류층들이 머무른 장소
1954년 다이애나 부모의 결혼식 |
게다가 친가와 외가 모두 왕실과 돈독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다이애나의 외할머니인 퍼모이 남작부인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의 절친이고 아버지 존 스펜서는 엘리자베스 2세의 시종무관이었다. 또한 엘리자베스 2세는 필름 카메라로 직접 가족과 친지들의 모습의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 중 하나였는데 여왕이 직접 찍은 사진과 개인 비디오에 왕족들과 함께 뒷마당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존 스펜서의 젊은 시절 모습이 남아있다. 이런 인연으로 다이애나의 작은언니 제인 스펜서는 켄트 공작 에드워드 공자의 결혼식 때 그의 대녀 자격으로 프린세스 로열 앤과 함께 화동을 섰고, 남동생 9대 스펜서 백작 찰스 스펜서는 엘리자베스 2세의 대자였다. 다이애나는 어린시절부터 여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과 가깝게 지냈으며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와 함께 켄싱턴 궁 정원에서 놀았다고 한다.
다만 현재는 다이애나의 남동생인 찰스 스펜서의 연이은 사업 실패 탓에 가문의 재산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며 설상가상으로 그의 난잡한 사생활#까지 겹쳐 가문의 평판이 떨어지고 있다는 여론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찰스 스펜서의 맏이이자 장녀로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의 외사촌여동생인 캐서린 엘리너 '키티' 스펜서도 비판을 받고 있는데 키티는 다른 귀족 가문의 자녀들과 달리 별다른 논란은 일으키지 않았지만 나이차이는 이모뻘이 되는 먼 친척으로 마찬가지로 금수저 모델이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샤넬의 뮤즈이자 슈퍼모델이 되어 한계를 극복 및 모범적인 사생활을 보인 스텔라 테넌트와 달리 모델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업계에서 인정도 그다지 많이 받고 있지 않았는데 아버지 찰스 스펜서보다도 5살 연상(키티 자신에게는 30살 연상)의 남아공 출신 패션 사업가 마이클 루이스와 2021년 결혼하여 이미 성인이 된 의붓아들 3명을 두게 되었고 2023년에는 딸 아테나를 출산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패션 업계는 물론 영국 대중들 사이에서도 키티에게 축하는 커녕 키티가 다른 대다수의 금수저 모델들처럼 자신의 능력이 아닌 집안의 힘으로 모델이 되었기 때문에 결혼 전에도 여론과 평가가 그다지 좋지 못했는지라 아버지보다 연상에 이혼 경력과 전처를 통해 성인이 된 아들이 3명이나 있는 남자를 남편으로 선택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정략결혼 내지는 취집이라거나 백작 가문인 집안의 힘도 모자라 패션 사업을 하는 남편의 힘까지 빌려서 어떻게든 모델로 성공하고 싶어서 안달난 것이 아니냐는 등 부정적인 반응과 지적들이 적지않게 나오고 있다.
4. 생애
자세한 내용은 다이애나 스펜서/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5. 가족관계
5.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웨일스 공비 다이애나 (Diana, Princess of Wales) | <colbgcolor=#fff3e4,#331c00> 제8대 스펜서 백작 존 스펜서 (John Spencer, 8th Earl Spencer) | <colbgcolor=#ffffe4,#323300> 제7대 스펜서 백작 앨버트 스펜서 (Albert Spencer, 7th Earl Spencer) | |
제6대 스펜서 백작 찰스 스펜서 (Charles Spencer, 6th Earl Spencer) | |||
마거릿 배어링 (Margaret Baring) | |||
신시아 해밀턴 (Cynthia Hamilton) | |||
제3대 애버콘 공작 제임스 해밀턴 (James Hamilton, 3rd Duke of Abercorn) | |||
로잘린드 빙엄 (Rosalind Bingham) | |||
프랜시스 로슈 (Frances Roche) | |||
제4대 퍼모이 남작 모리스 로슈 (Maurice Roche, 4th Baron Fermoy) | |||
제3대 퍼모이 남작 제임스 로슈 (James Roche, 3rd Baron Fermoy) | |||
프랜시스 워크 (Frances Work) | |||
루스 길 (Ruth Gill) | |||
윌리엄 길 (William Gill) | |||
루스 리틀존 (Ruth Littlejohn) |
5.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배우자 / 자녀 |
찰스 3세 (Charles III) | |||
1남 | 웨일스 공 윌리엄 (William, Prince of Wales) | 1982년 6월 21일 ([age(1982-06-21)]세) | 캐서린 미들턴 슬하 2남 1녀[9] |
2남 |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 (Prince Harry, Duke of Sussex) | 1984년 9월 15일 ([age(1984-09-15)]세) | 메건 마클 슬하 1남 1녀[10] |
5.2.1. 두 아들을 향한 사랑
장남 윌리엄 왕자와 함께 |
차남 해리 왕자와 함께 |
찰스와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 이후 결국 1992년부터는 별거하게 됐고 이로 인해 왕실에서 입지가 좁아지면서 아들들의 유모에 대한 다이애나의 경계심은 더욱 커져만 갔는데 찰스 왕세자와 별거에 합의한 후부터는 주요 왕족 지위에서 배제되면서 다이애나에게 유일하게 보장된 지위는 장래 왕의 모후뿐이었기 때문에 아들들에 대한 애착이 과도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별거하고 있는 찰스가 아들들이 자신에게 올 때면 아들들을 대신 봐줄 유모인 알렉산드라 '티기' 레게버크를 따로 고용했을 때 두드러졌다. 티기는 찰스의 여동생 앤 공주의 시녀의 딸이자 귀족 가문 태생 여성으로 왕실 유모로 취업했을 때 다이애나와 비슷한 외모를 지녀 화제가 되었으며 한때 유치원을 운영했을 정도로 육아 전문가였던만큼 윌리엄과 해리 두 왕자를 아주 잘 돌봐 주었고 유모를 넘어서 또 다른 어머니, 누나 같은 존재가 됐다. 문제는 다이애나는 자신의 자리를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티기가 들어오자 왕실이 자신에게서 아들들만 뺏고 자신을 내쫓을 거라고 오해하며 두려워한 나머지 티기를 몹시 경계하고 심지어 폭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는데 티기가 찰스와 불륜을 저질렀고 찰스의 아이를 임신하자 낙태해서 증거를 인멸했다는 주장까지 했던 것. 이에 티기는 말도 안 되는 오해라고 해명하며 다이애나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다이애나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다이애나가 경계가 무색하게도 티기는 다이애나 사후에도 몇 년 동안 다이애나의 윌리엄과 해리의 유모로 있었으며 다이애나가 사망한 직후에도 윌리엄과 해리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이후 티기는 결혼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남편의 이름이 찰스이고 찰스와 다이애나가 윌리엄과 해리를 낳은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 둘을 낳았다. 이에 윌리엄과 해리는 티기의 아들들의 대부가 되어 주었으며 티기의 아들들은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 화동을 서고 티기는 해리 왕자의 아들인 아치의 대모가 되어주는 등 여전히 교류를 이어가고 있으며 다이애나를 이해한다는 인터뷰를 하는 등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결혼 초기에도 다이애나는 윌리엄이 아기였던 시절 윌리엄이 자신보다 첫 번째 유모인 바바라 반스를 더욱 좋아해서 일어나자마자 엉금엉금 기어가 반스의 침대로 파고들고 자신보다 반스에게 의존하자 반스를 해고했기도 했는데 반스는 어린 나이에 임신한 다이애나를 안쓰럽게 여긴 시이모이자 엘리자베스 2세의 여동생인 마거릿 공주가 직접 골라 추천해준 인물이었던지라 마거릿은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로 여기며 상당히 불쾌해 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반스는 티기와 달리 윌리엄이 성인이 된 후로도 현재까지 서로 다시 만남을 가진 적은 없다.
이렇듯 다이애나는 유모들을 경계할 정도로 아들들을 직접 헌신적으로 돌보는 데에 열성적이라 아들들의 학교 행사에서도 평범하게 참여했는데 1991년 차남 해리의 가을 운동회 때 어머니들의 달리기 대회에서 치마를 입은 채로 열심히 맨발로 뛰어 2등으로 완주한 일화가 있다.
장남 윌리엄 왕자, 차남 해리 왕자와 함께 |
또한 아들들을 평소에는 매우 사랑해도 아이들이 버릇없게 굴면 이를 따끔하게 훈육하며 제지하는 여느 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적으로 1990년 윌리엄 왕자가 초등학교 운동회 도중 버릇없이 행동하고 운동회가 끝날 때 즈음 집에 가려할 때 윌리엄이 눈치를 보며 도망가자 결국 다이애나가 멀리서 달려와 윌리엄의 엉덩이를 때리며 차로 끌고가서 크게 혼냈으며 이때 윌리엄은 끌려가면서 친구들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이밖에도 작은아들 해리 왕자가 어린 시절 자신의 인터뷰 도중 계속 소리를 내며 방해하자 다이애나가 진지한 모습으로 해리에게 조용히 하고 가만히 앉아있으라면서 제지하기도 했고# 해리가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 계속 자신을 치며 장난치는 사촌동생 요크의 베아트리스 공녀를 때렸을 때도 바로 제지했다.#
6. 대중매체에서
노래- 《Candle in the Wind 1997》(1997)
엘튼 존이 발표한 다이애나의 추모곡.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 《Falling Down》(2007[11], 2009[12])
영국의 록 밴드 오아시스의 곡으로 Dig Out Your Soul의 7번째 트랙이자 29번째 싱글. 2009년 해체를 앞두고 2024년 재결합을 하기 이전까지 발표했던 마지막 싱글이었다.
가사도 그렇고 뮤직비디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은 없으나 영국 왕실에서 결혼으로 맺어진 왕가의 일원, 불륜, 그리고 뮤직비디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찰스 3세까지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삶을 비유적으로 다룬 것이 아니냐는 것. 그러나 마거릿 공주에 더 가깝다는 반론도 있는데 이는 다이애나가 오아시스 멤버들에게 경멸받을 만큼 문란한 생활을 하고 다닌 것은 아니었으며 배우의 외모도 마거릿 공주와 닮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뮤직 비디오를 감독한 위즈가 "윌리엄과 해리에게 일종의 가상 남매로 이모할머니인 마거릿 공주를 설정했다"고 밝혀# 영국 왕실의 이면을 혼합한 곡과 뮤직비디오로 보는 게 맞을 듯 하다.
영화
- 《백 투 더 퓨처 2》 (1989)
작중 미래인 2015년 10월 21일 USA 투데이 신문 1면을 보면 '워싱턴이 다이애나 왕비의 미국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는 문구가 있다. 실제로는 다이애나는 본작의 개봉 8년 후 1997년에 사망했고 찰스는 개봉 25년 후 2022년에 왕위에 오른다.
- 《더 퀸》(2006) : 로렌스 버그
다이애나의 사망 당시 주인공 엘리자베스 2세를 비롯한 영국 왕실 일원들과 다이애나의 사망 몇달전 총리가 된 또 다른 주인공 토니 블레어와 그의 아내 셰리 블레어의 심리 묘사와 반응을 다루며 엘리자베스 2세가 다이애나의 대국민 추도사 메시지를 발표하기까지의 내용을 다룬 작품이다. 작중 초반부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모습으로 짧게 등장하며 사망한 이후에도 계속 언급되며 영상, 자료화면 등을 통해 모습을 비춘다. 비중은 적지만 엄연한 이 작품의 중요 인물이자 스토리의 핵심축으로서 국민들은 다이애나에 동정적이지만 토니 블레어가 비서진들을 힐난하며 나오는 연출 등에서는 그렇게 좋게 묘사되지도 않는 등 비교적 중립적으로 묘사된다.
작품의 평가는 평단과 관객들의 평가 모두 호평을 받았으며 엘리자베스 2세를 맡은 헬렌 미렌은 이듬해 2007년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 《다이애나》 (2013) : 나오미 왓츠
다이애나의 전체적인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가 아닌 다이애나와 그녀의 연인들 중 한 명이었던 파키스탄계 외과의사 하스낫 칸의 연애사를 다룬 로맨스 영화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혹평을 받았다.
감독은 다운폴로 대호평을 받았던 올리버 히르비겔임에도 연출부터 평이 좋지 않았고 배우인 나오미 왓츠는 훌륭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이지만 다이애나와 외모 싱크로율은 물론 연기의 평가도 좋지 못했는데 오죽하면 최고의 영화와 영화인들을 시상하는 일반적인 영화제와 정반대로 조롱의 의도로 최악의 영화와 영화인들을 시상하는 골든 라즈베리 어워드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을 정도였다.
결국 제작비가 1500만 달러가 들었으나 수익이 2200만 달러에 그치며 흥행에도 실패한 것은 덤.
참고로 다이애나의 마지막 연인이자 같이 사고를 당했던 도디 알파예드는 작중 다이애나가 하스낫 칸과 헤어진 이후 최후반부에 5분 정도밖에 안 나오며 다이애나의 아들들인 윌리엄과 해리, 찰스 3세와 엘리자베스 2세 등 왕실의 주요 일원들은 마지막 장면인 다이애나의 장례식에서 지나가듯 한 컷 나오는게 전부이다. 또한 하스낫 칸에 대해서도 실제로 하스낫이 다이애나가 찰스와 이혼 이후 만난 수많은 남자들 중 재혼을 생각했을 정도로 가까웠던 사이였다고는 하지만 다이애나의 진정한 사랑이자 구원자로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미지로 묘사한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는데 정작 하스낫 칸은 감상 후 대다수의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혹평을 남겼으며 비판했다고 한다.
- 《찰스 3세》 (2017) : 케이트 브라이벤
BBC Two에서 방영되었던 TV 영화. 제작진들이 왕실 쪽 사생활에 대한 인맥과 지식이 있는지 방영 이후 현실과 상당히 들어맞고 미래를 상당수 예측하여[13] 화제가 된 대체역사물이다.
당연히 다이애나 본인은 작중 시점에서는 이미 고인이라 찰스와 윌리엄에게 영혼 내지 환영으로 짧게 등장하는데 남편이었던 찰스에게는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며 원망하지만 윌리엄에게는 좋은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한다.
다이애나의 죽음은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작중 모든 인물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찰스의 아킬레스건이자 작중 찰스가 벌인 의회 해산과 더불어 비판과 퇴위 요구를 받는 원인으로 결국 왕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찰스는 윌리엄에게 양위하며 영국 역사상 가장 길게 재위한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와 정반대로 영국 역사상 가장 짧게 재위한 군주가 되었다.
작품의 평가는 그저 그런 편이며 이 작품이 방영하고 5년 후 2022년에 찰스는 비로소 왕이 되었고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찰스 3세라는 왕호를 선택하였다.
- 《스펜서》 (2021) : 크리스틴 스튜어트[14]
위의 2013년 영화 다이애나와 달리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다만 이 작품은 도입부에서 '실제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삶을 토대로 창작한 이야기'라는 전제 하에 찰스와 별거를 목전에 둔 다이애나의 심리를 토대로 오리지널 스토리를 창작하여 다룬 작품으로 실제 다이애나의 인생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다.
또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훌륭한 연기력과 준수한 작품성과 별개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다이애나와 외모 싱크로율은 상술한 나오미 왓츠와 마찬가지로 떨어지는 편.
드라마
- 《더 크라운》 시즌 4~6 (2020~2023) : 엠마 코린(시즌 4)[15], 엘리자베스 데비키[16](시즌 5~6)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루는 전기 드라마이지만 다이애나의 전체적인 생애를 가장 자세하고 사실에 가깝게 다룬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즌 4~6에서 주역으로 등장하며 시즌 1~2의 마거릿, 시즌 3의 찰스와 더불어 사실상 시즌 4~6의 진 주인공.
시즌 4에서는 밝고 발랄한 모습의 소녀로 첫 등장한다. 카밀라와 결혼에 실패한 찰스가 '과거사가 깨끗하고 정숙한 여성'을 왕세자비로 찾던 중 자신의 기준에 딱 맞고 명문가 귀족 출신이기까지 한 다이애나를 신붓감으로 낙점한다. 다이애나의 친가와 외가까지 나서서 왕세자와의 교제를 부추기고 왕실 일원들도 둘의 만남을 흡족해하자 계속 찰스와 만남을 이어가다가 결국 찰스의 프러포즈를 받는데 처음에는 왕세자비가 되는 것에 대해 얼떨떨하지만 자신을 향한 국민들의 응원에 기뻐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폐쇄적이고 숨막히는 왕실에서의 생활, 여왕을 포함한 왕실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대를 받는다. 그나마 찰스 왕세자의 이모인 마거릿 공주만이 자신의 다사다난했던 결혼생활 때문에 다이애나의 결혼이 비극으로 전개될 것임을 눈치채고 경고하며 시아버지인 필립 공은 어느정도 도와주려고 하지만 왕대비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시누이인 앤 공주는 다이애나의 인기를 시기하는 모습을 보이며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는 별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게다가 시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는 오히려 다이애나의 탓을 하며 역정을 내는 것은 덤.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부분인데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는 남편 조지 6세가 어마어마한 애처가여서 두 사람 다 서로 죽고 못 살았을 정도였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딱히 불행하지 않았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결혼 초기 필립 공의 염문설 때문에 마음고생은 했어도 아들인 찰스처럼 결혼생활 내내 그런것도 아닌데다 필립 공 쪽에서 대놓고 외도를 저지를 수 있는 위치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두 모녀가 다이애나를 질책할 입장이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찰스의 불륜과 열폭이 이어진다. 카밀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건 물론이고 두 사람의 커플 팔찌를 결혼 3일 전에 주문해서 다이애나의 속을 박박 긁고 결혼 후에도 수시로 카밀라가 사는 곳을 방문한다. 거기에 자기 자신이 6주간 해외 순방을 할 때는 단 한번도 연락을 안 하면서, 정작 호주 순방 중에는 다이애나에 대한 시시콜콜한 불만을 불륜녀인 카밀라에게 열심히 알린다. 그래도 이 순방 중에 다이애나와 진솔하게 대화하면서 부부간의 사이가 잠시 좋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이애나가 호주 국민들에게 열렬한 환영과 인기를 누리고 호주인들이 찰스에 대해서는 "그분도 좋아요. 다이애나가 사랑하는 사람이면 그럴 이유가 있겠죠."라고 말하여 주인공이어야 할 자신이 부속으로 취급받는 것에 열폭해 다시 냉랭해진다. 결국 그로 인해 폭식과 거식증 증세가 반복되고 스트레스를 받아 피폐해져 가는 과정이 묘사지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민들을 비롯한 외부인들에게는 엄청난 인기와 추앙을 받은 당시의 분위기도 함께 묘사된다. 여기까지가 시즌 4까지의 내용.
시즌 5에서는 찰스와 관계가 파탄이 나며 결혼 11년만에 별거 선언, 마틴 바시르를 통해 웨일스 공비와의 인터뷰를 통해 찰스와 카밀라의 불륜을 전국적으로 폭로하기도 하며 찰스와 부부간의 불화가 겉잡을 수 없게 되어 별거를 선언하고 결국 별거한지 4년만 및 별거 기간을 포함한 결혼 15년만에 찰스와 이혼하지만 한편으로는 윌리엄과 해리의 어머니로서 분투하는 눈물겨운 모성애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밖에도 제임스 휴이트, 하스낫 칸을 비롯한 남자들과 맞바람 및 연애, 자신의 전기 작가인 앤드류 모튼과 마지막 연인 도디 알파예드와 만남 등 사생활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언급 및 묘사되었다.
시즌 6에서는 파트1을 오로지 다이애나의 생애 마지막 순간들에 할애하여 다루고 있는데 도디 알파예드와 연애를 비롯하여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파파라치들의 스토킹으로 고통받는 등 생애 마지막 순간들이 묘사되며 결국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들을 피하려다가 교통사고로 도디와 함께 사망하고 만다.
다이애나의 사망 소식을 접한 찰스는 진심으로 통곡하며 다이애나의 시신을 직접 운구하는데 자신의 시신을 싣고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영혼 내지는 환영으로 등장해 찰스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며 화해하는 장면으로 극에서 퇴장, 사망 이후 엘리자베스 2세는 상술한 더 퀸과 마찬가지로 다이애나의 사망에 조의를 표하는 대국민 메세지를 발표하고 영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추모가 쏟아졌던 장례식이 나오며 이후로도 종종 언급된다.
다큐멘터리
- 《다이애나 - 그녀 자신의 목소리》 (2017)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다이애나의 서거 20주기를 맞아 생전 다이애나의 비공개 인터뷰와 영상들을 모아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이다.
비디오 게임
- 《파파라치》 (1997)
G.O.D.D.이라는 집단이 제작한 게임. 다이애나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1인칭 시점에서 파파라치들의 카메라를 피해야 하는 게임이다.
제작년도로 미루어봤을때 다이애나 사망 사건 이슈에 편승하기 위해서 만든 게임으로 고인드립, 불근신 게임으로 봐도 무방하며 아무튼 다이애나 사망 사건이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다보니 한국에서도 PC통신 자료실 게임이나 PC/PC게임잡지부록 CD 등을 통해 드문드문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플레이 영상
뮤지컬
- 《다이애나: 더 뮤지컬》 (2021)
본 조비의 키보디스트 데이비드 브라이언이 음악을 맡은 다이애나의 전체적인 삶을 다룬 뮤지컬.
다만 평가는 브라이언의 전작이자 토니상까지 수상한 멤피스와 달리 혹평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상술했듯 2013년 영화 다이애나에서 골든 라즈베리 어워드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뻔한 나오미 왓츠와 달리 이 작품은 골든 라즈베리 어워드 작품상을 수상했을 정도.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다이애나의 생애를 다룸에 있어서도 2013년 영화보다도 낮다는 평가도 많다.
7. 여담
뉴욕에서 만난 테레사 수녀와 다이애나 | 앙골라를 방문해 대인지뢰 제거 현장을 찾은 다이애나 |
- 왕세자비 시절부터 자선사업과 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다이애나는 이혼한 뒤 1년밖에 더 살지 못했음에도 더욱 활발한 행보를 보이며 아프리카 빈민촌 구호와 적십자 활동 등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이애나가 관여했던 다양한 봉사활동 가운데서도 특히 애착을 가졌던 사업은 대인지뢰 제거 운동이었다. 그녀가 사망한 1997년 하순에는 대인지뢰 금지 국제운동본부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다시금 주목을 받기도 했으며 아들 해리 왕자도 어머니인 다이애나 사후에 참여하기도 했다.
- 상술했듯 사랑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랐던 어린 시절 때문에 아들들에 대한 애정이 강했는데 왕자들이 자신보다 유모들이나 시종들과 더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특히 싫어했다고 한다. 이런 면모는 왕실로 성인이 되자마자 시집을 와서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첫 아이이자 후계자 윌리엄을 낳았을 때에 상당히 심했다고 한다. 왕실에서 외로운 생활을 했던 다이애나 본인은 윌리엄만이 가장 소중했을 시기였다. 왕세자비가 되기 전에도 유치원 보모를 자처했을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했는데 자신의 아이를 낳았으며 더군다나 결혼 1년 만에 대를 이을 왕세손을 출산함으로써 다이애나의 입지가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후계자로서도 소중한 아이였을 것이다. 당연히 둘째인 해리에게도 윌리엄 못지않게 애정을 주었으며 여담이지만 다이애나는 윌리엄과 해리의 성격 차이에 대한 질문에 윌리엄은 외모는 자신을 닮았지만 성격은 찰스를 닮았고 형이라서 그런지 윌리엄은 장난을 치다가도 야단을 치면 말을 들어 듬직한 부분도 있지만 해리는 외모는 찰스를 닮았지만 성격은 자신을 닮았고 동생이라서 그런지 야단을 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안 들을 때가 많은 말썽쟁이인 부분이 많다고 밝힌 바 있다.
- 마이클 잭슨과 만났던 적이 있었다. 1988년 잭슨은 Bad World Tour를 위해 영국을 방문했고 콘서트 직전 다이애나와 찰스를 만나 45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때 한 가지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다이애나는 잭슨에게 그의 히트곡 'Dirty Diana'에 대해 물었다. 이 곡에서 Diana는 실제로는 그루피를 가리키는데 우연히도 이름이 같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결례를 끼칠 가능성을 고려하여 당시 세트 리스트에서 제외된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제외시켰냐는 다이애나의 질문에 잭슨은 그녀를 위해 당시 콘서트의 세트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고 답했으나 다이애나는 자신은 이 곡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만류했고 결국 해당 곡은 예정대로 콘서트에서 공연되었다. 이후 잭슨은 HIStory World Tour를 돌던 중 다이애나의 사망을 접하자 콘서트를 하다가 다이애나의 사진을 무대 스크린에 띄우고 Heal the World를 부르며 조의를 표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잭슨과 다이애나 두 사람은 두 명 모두 20세기 가장 유명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많은 공감대가 있었고 각자의 아픔을 이해했다고 하며 역사상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힌 남녀라는 점, 불행한 과거사, 이혼 경력, 파파라치들로 고통 받았다는 점, 아이들을 매우 아끼고 사랑했다는 점, 요절 등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 루치아노 파바로티와도 친분이 있었는데 파바로티의 영국 공연 당시 쏟아지는 비 때문에 모두가 우산을 쓰고 공연을 보느라 앞줄의 관객을 제외하고는 관객들이 파바로티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자 파바로티가 대단히 강한 비가 아니니 가급적 우산을 치우고 공연을 볼 것을 부탁했고 다이애나가 솔선수범해서 우산을 접으면서 관객들이 모두 우산을 치워 성공적으로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공연 후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었고 훗날 다이애나가 사망한 이후 파바로티는 다이애나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 1992년 11월, 찰스와 부부 동반 공무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여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 영부인이었던 김옥숙과 회동 및 만찬을 가진 바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미 남편 찰스와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고 공개 석상에서조차 불편한 티를 냈는데 다름아닌 공식적으로 별거를 선언한 시점이 바로 방한 2달 후 1992년 새해였다. 청와대 영빈관 만찬 영상을 보면 찰스가 환영 만찬의 답사를 읽을 때 다이애나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며 그나마 최대한 신경써서 편집한 대한뉴스 영상에서조차도 영 좋지 않은 표정으로 일관한다. 다만 서울공항에 착륙하는 16초 지점에서 꽃다발을 주는 남자아이에게 밝은 미소로 화답했으며 주한영국대사관에서의 일정을 다룬 53초 지점 역시 환영을 나온 여자아이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나서 밝은 미소로 손을 꼭 잡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고 6.25 전쟁 영국군 참전기념비 방문 일정을 다룬 1분 21초부터 봤을 때 역시 환영을 나온 아이들을 보며 모처럼 미소를 짓는다. 이 장면들이 해당 영상에서 다이애나가 웃는 모습이 포착된 몇 안되는 장면들이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아이들을 각별히 좋아하는지라 찰스와 불편한 일정 속에서 잠시나마 마음을 달랬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당시의 대한민국 방문은 찰스, 다이애나 두 사람이 부부로서 함께 수행한 마지막 공무였던 셈이고 때문에 지금까지도 둘의 비극적인 관계를 설명할 때마다 종종 회자되기도 하며 다이애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한민국 방문이었다.
- 키가 178cm의 장신으로 현대에도 여성 모델 수준의 큰 키이다. 또한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답게 패션 센스도 평균 이상으로 갖췄는데 항상 다리 뒤쪽으로 봉제선이 있는 팬티스타킹 중에서도 발뒷꿈치에 장식이 달린 원 포인트 스타킹을 즐겨 신었다. 이혼한 이후에도 한때 영국 왕실의 구성원이었고 유행을 만드는 패션센스로 인해 언제나 파파라치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다만 정작 다이애나 본인은 신체에 대해 가슴은 작고 몸매는 통통하지만 키는 너무 크다며 키는 조금만 줄고 가슴은 더 컸으면 좋았겠다며 자주 푸념했다고 한다. 마릴린 먼로를 외모 면에 있어서 닮고 싶은 롤모델로 언급하기도 했을 정도. 그나마 패션 센스와 자신의 각선미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 훌륭한 패션 센스로 인해 주목받은 핸드백도 있다. 크리스찬 디올의 레이디 디올 백.# 레이디 디올 백의 원래 이름은 슈슈백이었는데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의 영부인 베르나데트 시라크가 다이애나에게 슈슈백을 선물하자 가방이 마음에 들었던 다이애나가 색상과 재질별로 여러가지 슈슈백을 크리스찬 디올에 주문을 해서 자주 들고 다녀서 주목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슈슈백이 레이디 다이애나 백으로 불리면서 상당한 주목을 받음과 동시에 디올 측에서 다이애나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레이디 디올 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외에도 페라가모의 다이애나 클러치, 토즈의 디(Di) 백 역시 다이애나의 이름을 따서 판매중인 가방이며 2021년 재출시된 구찌의 다이애나 백도 다이애나가 들고 다닌 적이 있었던 가방을 다시 출시한거라 다이애나 스펜서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은 가방이다.
- 다이애나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힘쓴 적은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게이인 엘튼 존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LGBT 커뮤니티에서도 인정받는 인사이기도 하다. 사실 엘튼 존과 친분만이 아니라 에이즈 발견 초기의 환자와 의료진들과 장갑도 끼지 않고 악수한 일이 가장 크게 작용했는데 당시에는 의사들도 에이즈 환자는 진찰하지 않겠다는 일부 여론이 있었을 정도로 에이즈는 꺼려지는 병이었으나 다이애나, 엘튼 존, 마이클 잭슨, 라이언 화이트의 활동 등으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이때문에 다이애나의 죽음이 알려지자 수많은 성소수자들 역시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단적으로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에서도 작중에서 게이인 캐머런 터커가 "그때 난 제정신이 아니었어.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을 접했을 때라고."라며 다이애나를 언급한다.
- 상술한 성소수자들만이 아닌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존경을 받고 있으며 롤모델로 종종 언급되기도 한다. 심지어 왕실 폐지를 주장하는 영국 내 공화주의자들도 왕실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다이애나는 크게 비판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동정하는 편.
- 2017년에 서거 20주기를 맞아 켄싱턴 궁에 다이애나의 모습을 새긴 동상이 세워졌다.# 3년 후 2020년에는 생전에 즐겨 입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검은 양' 문양의 스웨터가 26년 만에 재출시 되었다.#
- 팬 서비스가 매우 훌륭했다. 싸인 요청에 거절하는 법이 거의 없었고 팬레터에 답장을 잘 해주었으며 스스럼없이 먼저 악수를 건네거나 포옹을 해주기도 했는데 이러한 다이애나의 진심 어린 팬서비스들은 다이애나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로 영국 왕실 일원들의 팬서비스가 다이애나를 기점으로 더욱 친근해지고 좋아졌다는 증언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다이애나의 아들들인 윌리엄과 해리 모두 성인이 된 현재 팬서비스가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이애나의 사망 이후 나락으로 떨어진 왕실에 대한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왕실 일원들인 엘리자베스 2세, 필립 공 등의 팬서비스도 더 좋아졌고 찰스와 카밀라 역시 다이애나의 팬들에게 더 이상 밉보이지 않으려는 노력 및 이미지 회복 및 쇄신을 위해 팬서비스에 적극 임하여 현재 영국 왕실의 이미지는 다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편.
사진에 대해서는 파파라치들 때문에 다소 경계하기는 했고 말년에는 거부하는 일도 있었으나 셀카 요청이나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는 팬들의 요청도 잘 들어주었다.
- 현재 각 국가별 재임중인 지도자들 상당수와 비교해도 다이애나 쪽이 더 어린 케이스가 많다.
당장 남편이었던 찰스 3세보다 13살 연하이고 미국의 45대 대통령을 역임한 동시에 47대 대통령까지 된 도널드 트럼프와는 무려 15살 차이가 나는데다가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윤석열과 비교해도 다이애나가 1살 연하이며 독일의 총리인 올라프 숄츠와 일본의 총리인 이시바 시게루에게 다이애나는 3살, 4살 연하이다. 중국의 주석인 시진핑과 러시아의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도 각각 다이애나보다 8살, 9살이나 연상인 것은 덤. 그나마 현재 영국의 총리로 재임 중인 키어 스타머는 다이애나에게 1살 연하, 캐나다 총리인 쥐스탱 트뤼도는 10살 연하, 프랑스의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과 이탈리아의 총리인 조르자 멜로니는 16살 연하이다.
- 한편으로는 일각에서 다이애나는 프랑스 왕국 부르봉 왕조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와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생애를 살아간 왕가의 여성으로서 현재까지도 많은 동정을 받고 있지만 좋지 못했던 면모들, 실책들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묻혀버리며 지나치게 과대평가+완전무결+우상화/신격화되어 성녀처럼 여겨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비판적인 의견이나 주장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다이애나는 결점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기본적으로 평소에는 좋은 사람이었으며 상냥하고 헌신적인 성격이었지만 서민친화적인 이미지로 알려져있는 것과 정반대로 다이애나는 백작 가문의 딸이자 왕세자비로서 자신의 신분에 대한 특권의식과 계급의식에 있어서는 확고하여 이러한 의식에 있어서 다른 영국 왕가의 일원들 및 귀족들과 그들의 자녀들과 다를 바 없거나 그들보다 더 심한 면도 있었다고 하며 특히 어린 시절의 가정 환경으로 인해 자존감은 낮았지만 자부심 및 자존심은 매우 높아서 자신의 이미지 및 권위를 조금이라도 건드리거나 손상하면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고 자신에 대한 진심어린 비판이나 충고 역시 듣기 싫다며 성질을 내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식으로 묵살하는 등 상당한 다혈질이자 독선적인 완고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찰스와 결혼 생활을 15년간 지속했던 이유는 상술했듯 어머니인 자신의 부재속에 성장하게 될 아들들인 윌리엄과 해리를 진심으로 걱정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왕세자비라는 직위와 그에 따른 권력들 및 혜택들을 쉽게 포기하기 힘들었던 것도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찰스와 카밀라의 불륜만 아니었다면 없었을 일이었겠지만 상술한 윌리엄과 해리가 자신의 유일한 기댈 곳이자 아무리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워 예민해졌다고는 해도 상술한 다혈질적인 면모까지 겹쳐져 윌리엄과 해리가 다이애나 자신이 아닌 상술한 티기나 반스를 비롯해 유모들이나 시종들과 가까워졌다 싶으면 독단적으로 해고했던 행동들이나 자신의 시종들이나 보좌관들 등 주변인들에게 화풀이를 했다는 증언들도 상당히 남아있는 등, 다른 왕족들이나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갑질들로 구설수에 오른적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다이애나는 사생활에 있어서 바람을 핀 상대가 그나마 카밀라가 전부였던 찰스와 달리 다이애나는 수많은 남자들과 맞바람을 피우고 찰스와 별거 및 이혼 이후에도 수많은 남자들에게 구애를 하거나 염문을 뿌리며 열애설이 퍼지고 실제로도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며 자주 갈아치운 화려한 연애사 역시 지적을 받기도 한다.
특히 맞바람 및 연애사에 있어서 맞바람은 찰스와 카밀라의 불륜 때문에 참다못해 저지른 행동이었고 다이애나만의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및 연애사에 대해서는 개인의 사생활이라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옹호론 및 반론도 있으나 다이애나의 문제는 다름아닌 이미 연인, 약혼녀, 아내가 있었던 남자들을 만나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것.
물론 상대 남자들도 자신의 연인, 약혼녀, 아내를 두고 다이애나와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다이애나만 비판을 받아야 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다이애나가 명확하게 비판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라면 서양권 상류층들은 불륜 상대가 자신처럼 배우자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는 하지만[17] 이러한 불륜의 고통에 대하여 다이애나 자신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로남불의 마인드로 자신이 만난 남자들의 연인, 약혼녀, 아내에게 있어서 카밀라와 마찬가지로 그녀들의 남자들과 불륜을 저지른 내연녀로 그녀들에게 자신이 찰스와 카밀라에게 당한 것과 같은 피해와 고통을 주며 그들의 가정/가족에 불화를 일으키거나 파괴하기도 했다는 점[18], 아버지인 찰스의 불륜에 충격과 상처를 입은 윌리엄과 해리에게 어머니로서 위로가 아닌 찰스에 대한 복수로 맞바람을 선택해 아들들에게 설상가상으로 더 큰 충격과 상처를 더 안겨주었다는 점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다이애나 본인의 잘못이자 실책으로 다이애나 역시 상술한 특권의식 및 계급의식과 갑질 사례들에서도 보듯 상류층으로서 신분의 한계는 벗어나거나 극복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아무튼 아무래도 가인박명+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대표되는 생애로 상술한 갑질들, 맞바람과 연애사들은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 않았거나 사생활은 별개로 치는 경우가 많은 서양권이라 쉬쉬하며 묻히는 경우가 많으며 언급되더라도 별다른 지적을 받지는 않았지만 만약 지금까지 생존했다면 다이애나는 사생활과 처신에 있어서 찰스와 카밀라 못지않게 비판 여론도 상당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하며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행동이자 결국 본인의 이미지와 일생에 있어서 사실상 몇 안되는 오점으로 평가받을 여지도 있으며 결론적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다이애나는 어떤 면에서는 가해자인 찰스[19]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인생에서 평생 이어진 애정결핍으로 인한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다이애나에 대한 비판 의견들을 찰스와 카밀라의 팬들 및 다이애나의 안티들의 지적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의외로 다이애나의 팬들 사이에서도 다이애나가 가정 환경의 피해자이자 평생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던만큼 보상 심리로 진정한 사랑을 갈구했던 불쌍한 사람이라는 안타까움에서 거론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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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중퇴이다. 후술할 내용과 같이 공부엔 소질이 없어 중학교 졸업 자격을 따지 못해 최종학력은 초졸.[2] 1936년 1월 20일 ~ 2004년 6월 3일, 향년 68세. 사인은 뇌종양. 공교롭게도 조지 5세의 기일에 태어났고 조지 5세의 생일에 사망했다. 전 남편 존 스펜서는 다이애나가 사망하기 5년 전인 1992년에 이미 사망했으나 그녀는 다이애나가 죽고도 7년을 더 살았다.[3] 1955년 3월 19일 ~[4] 펠로우스 남작부인. 1957년 2월 11일 ~[5] 1960년 1월 12일생. 생후 10시간 만에 요절했다.[6] 왕가를 상징하는 왼편의 상징들이 빠지고, 가운데의 기존 스펜서 가의 문장을 미혼을 상징하는 마름모꼴로 바꾸었다.[7]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아버지가 스펜서 백작위를 승계하면서 백작의 딸이 되자 레이디의 경칭을 받았다.[8] 다이애나의 개인 문장에 들어가 있는 조개 3개가 스펜서 가문의 문장이다.[9] 웨일스의 조지 공자, 웨일스의 샬럿 공녀, 웨일스의 루이 공자[10] 서식스의 아치 공자, 서식스의 릴리벳 공녀[11] Dig Out Your Soul에 수록된 시기.[12] 동명의 싱글에 수록된 시기.[13] 단적으로 캐서린 미들턴과 그녀의 가문인 미들턴 가문은 상당히 권력욕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또한 해리 왕자는 극 중 흑인 공화주의자와 연애 및 결혼을 하는데 이 작품이 방영하고 1년 후 실제로도 방영 이후 왕실에 비판적인 입장인 흑백 혼혈의 미국인인 메건 마클과 결혼하였던 것 등.[14] 이 배역으로 2022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골든 글로브상 드라마 부분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15] 이 배역으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골든 글로브 드라마 시리즈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었다.[16] 현재까지 다이애나를 맡은 배우들 중 외모 싱크로율, 연기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실제 다이애나에 가장 가깝다는 호평을 받고 있으며 이 배역으로 골든 글로브 드라마 시리즈 여우조연상, 에미상 여우조연상 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다.[17] 당장 같은 영국 왕실의 찰스와 카밀라, 마거릿과 피터 사운센드만 봐도 알 수 있다.[18] 단적으로 럭비 선수인 윌 칼링은 다이애나와 불륜으로 첫 아내인 줄리아와 이혼했으며 다이애나 자신의 최후까지 함께 있었던 마지막 연인으로 알려진 도디 알파예드도 이혼 이후 새 약혼녀가 따로 있었다.[19] 실제로 찰스는 아기 시절 외조부인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즉위하게 되어 국왕으로서 업무를 배우기 바빴고 자신과 바로 밑의 여동생 앤 공주와 달리 왕위에 오른 이후 태어난 늦둥이 두 남동생들인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를 편애한 어머니의 사랑은 물론이고 아버지 필립 마운트배튼은 평생동안 수많은 망언 논란과 본인은 극구 부인했으며 사실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엘리자베스 2세와 결혼 초기에 몇 번의 불륜 루머/스캔들이 있었긴해도 엘리자베스 2세와 죽을 때까지 해로하며 열심히 내조했던 좋은 남편이자 유일한 딸인 앤 공주를 매우 아꼈고 찰스의 아들들이자 필립 공 자신에게는 손주들인 윌리엄과 해리에게도 좋은 할아버지였으며 심지어 다이애나에게 시댁에서 몇 안되는 자신의 편이었다는 점 등 다른 가족들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정작 찰스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여 필립 공이 죽기 직전에 가서야 부자간의 진정한 화해를 하는 등 아버지의 사랑도 많이 받지 못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왕세자임에도 어린 학창시절 친구가 딱히 없었고 되려 다른 학생들에게 다른 왕따를 당하는 외로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나마 찰스의 몇 안되는 편이었던 작은할아버지 루이 마운트배튼은 IRA의 폭탄 테러로 한창 찰스가 사춘기로 예민했던 시절 어처구니없이 암살당했던 것은 덤. 찰스는 카밀라와 불륜으로 다이애나에게 상처를 준 행동은 용납하지 못할 잘못으로 다이애나의 인생을 망친 가해자이지만 이러한 찰스의 태도에는 부모에게 사랑을 잘 받지 못하여 역시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몰랐던 다이애나와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애정결핍이 깔려 있었다는 분석도 적지않게 많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애정결핍에 대한 공통점으로 어쩌면 다이애나와 찰스가 동병상련으로 이러한 아픔을 치유 및 극복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의견도 소수이지만 나올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