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대 말버러 공작
<colbgcolor=#FFD9D2><colcolor=#000> 제3대 말버러 공작 찰스 스펜서 Charles Spencer, 3rd Duke of Marlborough | |
이름 | 찰스 스펜서 (Charles Spencer) |
출생 | 1706년 11월 22일 |
사망 | 1758년 10월 20일 (향년 51세) |
배우자 | 엘리자베스 트레버 (1732년 결혼) |
자녀 | 다이애나, 엘리자베스, 조지, 찰스, 로버트 |
아버지 | 제3대 선덜랜드 백작 찰스 스펜서 |
어머니 | 레이디 앤 처칠[1] |
형제 | 로버트, 앤, 존[2], 다이애나 |
1.1. 개요
영국의 장성. 제3대 말버러 공작. 7년 전쟁 시기 프랑스 해안에 대한 영국군의 상륙 작전을 이끌었다.1.2. 일생
스펜서는 1706년 11월 22일 노스햄트셔 주 알토르페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3대 선덜랜드 백작 찰스 스펜서와 제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의 둘째 딸인 앤 처칠의 차남이었다. 1729년 9월 15일, 스펜서는 앞서 선덜랜드 백작이 되었던 형 로버트가 요절하면서 제5대 선덜랜드 백작이 되었다. 이후 1732년에는 트레버 남작 토머스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해 3남 2녀를 낳았고, 1733년 10월 24일 이모 헨리에타[3]로부터 말버러 칭호를 물려받아 제3대 말버러 공작이 되었다. 이후 그는 선덜랜드 백작 지위와 재산을 동생 존에게 양도했다.1734년 1월, 스펜서는 로버트 월폴 경의 정적들이 결성한 리버티 클럽의 회원이 되었고 1738년 3월 30일엔 제38 보병대대 대령이 되었으며, 8월 11일엔 침전 근위관이 되었다. 1739년 1월 26일, 스펜서는 옥스퍼드셔와 버킹엄셔의 주지사가 되었고 9월 1일 제1 로얄 드래곤 부대의 대령이 되었으며, 1741년 3월 20일엔 가터 기사단에 입단했다. 1743년 6월 27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참가한 그는 데팅겐 전투에 참가해 자신의 부대를 이끌었다.
1744년 1월, 스펜서는 왕립 협회의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2월엔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자코바이트 반란 진압 작전에 참여했다. 1745년 3월30일, 스펜서는 소장으로 진급했고 1747년 9월 15일에 중장으로 진급했다. 또한 1749년 6월 12일엔 왕실 가정 장관이 되었으며, 1755년 1월9일부터 12월21일까지 옥새 상서를 맡았고 12월 21일엔 가터 기사단장이 되었다. 1757년, 스펜서는 조지 사크빌 경과 월드그레이브 장군과 함께 프랑스의 로슈포르 항구에 대한 영국군의 상륙 작전이 실패한 것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고, 애당초 작전 자체가 무리였다고 판단해 작전에 참여한 에드워드 호크 등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758년, 스펜서는 프랑스 해안 상륙 작전에 투입된 영국군을 지휘했다. 그는 5월 23일 아일 오브 와이트에 도착한 후 그곳에 본부를 설치하고 6월 1일에 원정대를 출항시켜 6월 5일 캉칼 만에 도착했다. 그날 오전 11시, 해군 사령관 리처드 하우는 스펜서와 왓슨 대령과 함께 그레스 호를 타고 캉칼 만의 예정 상륙 장소를 정찰했다. 오후 1시 배로 돌아온 그들은 상륙을 결정했고, 영국군은 6월 6일에 상륙을 완료했다. 6월 7일 새벽, 3여단을 제외한 영국군 전체가 생 말로를 향해 2개 대열로 행진했다. 6월 9일 여러 마을을 불태우며 생 말로 요새로 진군한 스펜서는 요새의 방비가 매우 강해서 함락시키는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캉칼 만으로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그는 프랑스군의 추격을 회피해 6월 12일 캉칼 만에서 전 병사들을 배에 싣고 7월 4일에 아일 오브 와이트로 돌아갔다. 당시 영국 내부에서는 그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후 그를 대신해 프랑스 해안에 대한 2차 상륙 작전을 감행한 토머스 블라이 중장의 영국 육군이 생 카스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사람들은 스펜서가 옳았다는 걸 인정했다.
아일 오브 와이트로돌아온 스펜서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디난트가 지휘하는 영국-하노버-헤센-브라운슈바이크 연합군에 가다하기 위해 파견된 영국군 분견대 1만 2천 명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8월 21일 연합군과 합세한 그는 9월 4일 뒬멘으로 진군했다. 그러나 10월 20일, 스펜서는 뮌스터에서 이질에 걸려 급사했다. 향년 52세. 그 뒤를 이어 조지 사크빌이 영국군 지휘를 맡았으나 민덴 전투에서 명령 불복종을 일삼다가 경질되었고 그랜빌 후작 존 메너즈가 후임자로 부임했다.
1.3. 여담
역대 스펜서 백작들은 동생 존 스펜서의 후손들이다.2. 9대 스펜서 백작
스펜서 백작 | ||||
8대 존 스펜서 | ← | 9대 찰스 스펜서 | → | (재위중) |
<colbgcolor=#FFE49E><colcolor=#000> 제9대 스펜서 백작 찰스 스펜서 Charles Spencer, 9th Earl Spencer | |
이름 | 찰스 에드워드 모리스 스펜서 (Charles Edward Maurice Spencer) |
출생 | 1964년 5월 20일 ([age(1964-05-20)]세) |
잉글랜드 런던 | |
학력 | 이튼 칼리지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 |
배우자 | 빅토리아 락우드 (1989년 결혼 / 1997년 이혼) |
캐롤라인 프로이드 (2001년 결혼 / 2009년 이혼) | |
카렌 고든 (2011년 결혼 / 2024년 이혼) | |
자녀 | 키티, 일라이자, 카티야, 루이, 에드먼드, 라라, 샬럿 |
아버지 | 제8대 스펜서 백작 존 스펜서 |
어머니 | 프랜시스 로슈 |
형제 | 누나 사라, 제인, 다이애나, 형 존[4] |
다이애나 비의 남동생이자 현 영국 국왕인 찰스 3세의 전 처남인 동시에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의 외삼촌.
그가 태어나기 직전에는 스펜서 백작위를 물려줄 후계자가 아무도 없어서[5] 작위가 단절될 뻔했다가 태어난 귀한 아들이었다. 1992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백작위를 승계받았다.
명문가로 유명한 스펜서 백작 가문이지만 찰스가 거듭해서 사업 실패를 한 탓에, 재산이 거의 바닥이라고 한다. 맏이인 키티 스펜서는 아버지보다도 5살 많은 남아공 출신 섬유사업가와 결혼해 이미 성인인 의붓아들 3명을 두게 되었다. 2023년 딸 아테나를 출산했다.
결혼을 3번 했다. 1989년 빅토리아 록우드와 결혼해서 1남 3녀(키티, 일라이자, 카티야, 울소프 자작 루이)를 두었으나 1997년 이혼했다. 두번째로 2001년 캐롤라인 프로이드[6]와 결혼해 1남 1녀(에드먼드, 라라)를 두었다가 2009년 이혼했고, 2011년 캐런 고든과 결혼해 1녀(샬럿)를 두었으나 2024년 6월 이혼을 발표했다.
세번째 이혼 발표 2주 후, <Rabbit Hole Detectives>의 공동 호스트이자 고고학자 Cat Jarman와의 연애 중임을 밝혔다.
[1] 제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의 차녀다.[2] 제1대 스펜서 백작 존 스펜서의 아버지[3] 외조부인 존 처칠의 첫째 딸로 공작위를 물려받았다.[4] 형 존이 요절함으로써 실질적인 장남이었다.[5] 영국 귀족 작위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여자의 승계를 인정하지 않는다.[6] 두 사람 모두에게 재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