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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7년 12월 14일 ([age(1947-12-14)]세) |
브라질 합중국 미나스제라이스주 벨루오리존치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재임기간 | 제36대 대통령 |
2011년 1월 1일 ~ 2016년 8월 31일 | |
정당 | |
학력 | 미나스제라이스 연방대학교 히우그란지두술 연방대학교 |
종교 | 가톨릭 |
신장 | 170cm |
배우자 | 클라우지우 갈레누 리냐레스(1967~1969) 카를로스 아라우주(1969~2000)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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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제36대 대통령이자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1]전임 대통령 룰라 다 시우바[2]의 후광으로 2010년에 대통령에 당선되고, 2014년에는 재선에 성공하였으나, 2016년 8월 탄핵되었다.[3][4]
2. 대통령 당선 이전
아버지 페드루 호세프(Pedro Rouseff, 1900~1962)는 불가리아인으로 불가리아 공산당에서 활동하다 탄압을 받아서 1929년 프랑스를 거쳐 브라질로 망명, 이후 정착한 사람이다.[5][6] 그리고 브라질에서 교사였던 지우마 다 시우바를 만나 호세프를 비롯해 3남매를 봤다. 오빠 이고르는 변호사였다. 여동생이 하나 있었으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1947년 12월 14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주의 주도 벨루오리존치에서 태어난 그녀는,196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COLINA와 VAR-Palmares와 같은 반정부 무장투쟁조직에서 활동하다가 1970년부터 1972년까지 2년간 감옥에 수감되었다. 수감 당시 그녀는 20살 남짓한 미나스제라이스 연방대학교 학생이었으며, 20여 일 간의 극심한 고문을 버티는 등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7] 석방된 이후 긴급조치 5호 때문에 미나스제라이스연방대학교로 복학하지 못하였고, 대신 히우그란지두술 연방대학교에 다시 들어가서 1977년 경제학 학사학위를 취득했다.[8]
민주화 이후 1980년대 브라질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고, 이후 2002년까지 포르투알레그리시 재무국장과 히우그란지두술 주 정부 에너지부장관을 맡으면서 행정관료로써 노하우를 쌓아갔다. 그리고 2001년 노동자당으로 당적변경함으로써 룰라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룰라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호세프는 2003년에 자원부 장관으로 재직하였고 2005년에 정무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관 재직 시절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해 브라질의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추진력 있고 유능한 관료로 인정받았다.
중앙정부 관료의 커리어에서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엔 상당한 우연이 작용했는데, 2005년 룰라대통령의 재선 1년을 앞두고 야당의원 매수사건이 보도되면서 룰라 정부가 레임덕에 빠지는 일이 있었다. 룰라 1기 행정부의 주제 디리세우 정무장관이 사임했고 호세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2006년 룰라가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하면서 PAC라 불리는 경제성장촉진 프로그램의 입안과 가동을 주관하면서 룰라대통령으로부터 '브라질 경제성장의 어머니'란 칭송을 듣기도 했다.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대선가도를 향해 달리면서 이미지 쇄신에 많은 노력을 들였는데, 이전까지만해도 지우마의 이미지는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도수높은 안경과 옷차림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며 단지 행정각료라는 이미지가 훨씬 강했다. 대선을 의식하고 렌즈나, 보톡스 시술을 받아 대중에게 다가가기 부드러운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유세현장에서 림프종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가 빠진 채 나타난 모습은 브라질 국민에 각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성공적인 장관 재임 경험이 정작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는 도움이 안 되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다수의 정당이 난립하는 브라질 정치계에서 지도자는 고도의 갈등 조율 능력을 필수로 갖춰야 한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정치게임에서 자유로운 장관직에서는 그런 조율능력을 갈고 닦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또한 자원부 장관 재직 당시엔 강력한 조직 장악력과 다소 공격적인 업무스타일로 동료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호세프는 지방행정처에서 일했을 때와 달리 집권 이후 중앙정부에서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재선 이후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재정지출 축소 등을 감행하면서 사실상 국민과 여야당을 포함한 다수의 세력들이 호세프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았다. [9]
다만 호세프의 역량 부족 문제를 떠나, 그녀의 탄핵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행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부패 스캔들 수사로 연립여당 의원들의 정치 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하자, 평소에 호세프에게 불만을 가졌던 의원들이 그녀에게 책임을 덮어씌웠다. 탄핵을 주도한 인물인 쿠냐 전 하원의장은 부패 스캔들로 위기에 처하자 호세프와 노동자당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연정에서 탈퇴하고 그 동안 쌓아온 정재계 및 언론계의 인맥들을 총동원해서 하원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3. 대통령 재임시절
2010년 대선에서 노동자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고, 초기에는 인지도가 부족했지만 80%가까운 지지율을 보여줬던 룰라의 지원에 힘입어 결선 투표에서 56%를 득표해 승리하였고, 집권 초기에는 룰라를 따라 지지율이 80%에 달하기도 하였다.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남성우월주의 사상이 강한 국가임에도, 이혼한 경력이 있는 여성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단 사실은 브라질 정치의 선진화라는 평가를 받는다.2011년 1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직무를 시작하였을 때, 관계장관회의를 할땐 꼭 도시락을 지참하여 집무실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등 추진력이 강한 대통령 이미지를 앞세웠다. 흔히 생각하는 남미의 정치방식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집권 초기 또 다른 별명으로는 '청소부'가 있는데, 정치적 대부인 룰라 대통령과 측근들이 연루되었던 멘살라웅(mensalão) 사건[10]에 꽤나 단호한 입장을 비추면서 노동당이 저지른 행위와 개인을 완벽히 분리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2013년 6월 시내버스 요금 인상안 반대로 촉발되어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대규모시위 앞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경찰의 과잉진압이 논란이 되자, 지우마 대통령은 '정부 시책에 당당히 의견을 밝히는 우리 국민이 자랑스럽다'는 담화문을 발표해 정치개혁을 위한 국민투표를 시행하는 등 큰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지우마 행정부의 국정목표는 '빈곤이 없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이다. 룰라 대통령의 후계자를 표방하면서 대선주자로 부상했던 그녀가 역시 룰라행정부의 성격을 그대로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룰라의 영향력이 워낙 강해 국정 운영에 있어 잘하면 룰라의 후광, 못하면 능력 부족으로 평가될 부분이 크기 때문에 집권 1기시절에는 꽤나 많은 고심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룰라 행정부시절은 전 세계가 브라질에 집중할정도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줬으나 그럼에도 지우마의 집권시기엔 브라질은 월드컵 개최 비용 문제로 삐걱거렸고 원자재 가격도 점차 하락세를 보이면서 경제가 침체되자 지지율이 추락하고 각종 시위에 시달렸다.[11] 반발 속에 치러진 월드컵 기간 동안 브라질이 예상대로 호성적을 거두면서 시위는 진정되었고 다시 지지율을 회복하는 듯 했으나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인 네이마르가 부상을 당하고, 이후 브라질 대표팀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에 7:1로 패하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의 문제가 다시 부각되었고, 월드컵에 너무 신경 쓰느라 브라질의 도시 빈민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3.1. 재선과 탄핵 위기
2014년 대선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재선에 성공하였지만 이후에 브라질 석유 공사의 비리 문제, 여전한 원자재값 하락으로 인한 경제 침체까지 겹치며 탄핵 위기에 밀려들게 되었다. 특히 원자재값 하락으로 세수가 급감한 데 반해 이자율은 높게 책정했기 때문에 그간 문제가 덜했던 재정 적자 문제가 심각해졌고[12] 이로 인해 국제 금융 시장에서도 거의 퇴출될 위기에 처해서[13] 보수적인 긴축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지만 효과가 별로 없기 때문에 교체했고 그 덕택에 헤알화는 떨어졌다. 이 때문에 구조 조정에 반대하는 노조가 호세프 정부에 대항해 대대적으로 파업을 일으키고 브라질의 각종 언론들로부터 실컷 까였다.2015년 8월 지지율이 한자리 수(8%)를 기록
2015년 12월에 탄핵 절차가 진행되었지만, 대법원에서 탄핵 투표를 하려면 비공개가 아닌 공개로 하라고 제동을 걸어 일단은 한숨 돌리긴 했었다. 게다가 때마침 탄핵을 주도한 쿠냐 하원의장 본인이 브라질 석유공사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게 폭로되며 보수 야당인 사회민주당마저 쿠냐 하원의장과 손을 떼게 되었다. 덕분에 탄핵 동력이 급속히 상실 되어갔다[14] 탄핵 위기에서 벗어난 다음 최저임금을 대대적으로 올리는 등 경기부양책을 폈지만 브라질 경기 침체의 근본 원인이 원자재 가격의 하락인 만큼 단순히 내수를 부양하는 것만으로는 경제가 다시 호황세로 돌아서지 못하여 덩달아 지지율도 전혀 회복을 못하였다. 이러한 어려운 경제사정에다 지카 바이러스 유행까지 겹쳐, 2016년 2월 현재 호세프의 지지율은 박근혜의 탄핵 직전 지지율 이었던 5% 정도에 불과 했으며 응답자의 92%가 브라질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
3.2. 룰라 다 시우바의 뇌물수수 의혹과 탄핵안 가결
전 대통령 룰라가 국영석유기업, 리조트 불법 취득 등의 혐의를 받게 되어 정식으로 기소될 위기에 처했다. 2016년 3월 17일 호세프는 이를 정치적 음모로 규정하고 타개책으로 룰라를 수석장관으로 임명하였다. 연방정부의 장관직에 임명되면 연방법원, 연방검찰만이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어 현재 부패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상파울루 주 법원의 구속을 피할 수 있기 때문. 장관직 임명이 이번 기소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연이어 검찰에서 폭로한 감청된 호세프와 룰라의 통화 내용에서 장관 임명이 면책 특권을 위한 것임이 드러나 야당들의 공세를 맞았다. 게다가 호세프는 공공 지출을 확대하기 위해 정부의 계정을 조작했다는 혐의도 받게 되었다.낮아졌던 탄핵 찬성 비율이 다시 치솟자, 의회는 다시 탄핵 절차를 재개했다. 3월 29일 노동자당의 연정 파트너이자 원내 최대 정당인 중도보수 성향의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이 연정에서 탈퇴했다. 결국 4월 11일 의회에서 호세프에 대한 탄핵 의견서를 채택하였다. 이후 하원에서 결국 탄핵안이 2/3를 충족하여 가결되었다. 브라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 하원 통과... 상원으로 이관(종합).
다만 이에 대해서 다소 웃픈 관점도 있었다. 현 브라질 국회의원 대다수가 부패 혐의로 입건되거나 조사받고 있는 데다가[15] 탄핵을 주도한 쿠냐 하원의장은 석유공사 비리는 물론이고 파나마 페이퍼즈에 연관이 된 인물이고, 브라질 부통령 미셰우 테메르도 석유공사 비리에 연관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렇듯 청령한 사람을 찾기가 힘든 상태이다보니 브라질 의원들이 더 해쳐먹고 싶은데 해쳐먹지 못하니까 아예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리려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니 탄핵의 정당성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편이다. 일단 브라질 민중의 감정은 분명히 호세프에게 적대적이지만, 이와 별개로 호세프를 탄핵할 법률적/정치적 정당성은 약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호세프 본인은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호세프가 뇌물을 수수했다는 심증이라도 잡혔다면 벌써 국회에서 탄핵의 근거로 내세웠겠지만, 호세프가 직접 부패에 참여했다는 증거는 지금도 나오지 않고 있다. 즉, 정작 비리를 저지른 의원들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탄핵 시킨 격이다.
쿠바,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진보 정권이 집권 중인 국가들은,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우파의 정치공세로 판단하여 좋게 보지 않는다.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는 호세프가 물러나더라도 브라질의 경제 위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고, 미주 기구와 남미 국가 연합에서는 호세프를 탄핵할 근거가 부족할뿐더러 이런 탄핵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 반면 우파 지도자가 집권 중인 아르헨티나 등지에서는 탄핵을 지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 일단 탄핵의 원인은 법률적으로는 정부 계정을 조작했다는 회계법 위반 혐의에서 비롯된 것이나[16], 실질적으로는 심각한 경제 위기나 때문에 민심을 잃은 영향이 더욱 컸다.
그리고 5월 9일, 언급한 부패 혐의로 그새 직무정지된 쿠냐 하원의장을 대신한 신임 하원의장[17]이 국회의 탄핵 소추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상원 표결을 앞두고 있던 탄핵안은 다시금 하원으로 내려와 재투표에 부쳐지게 되었다. 그러나 상원의장이 이를 강행하겠다고 일축하고, 5월 10일 다시 하원의장이 이를 번복하는 바람에 원래대로 탄핵 투표를 진행하게 되었소 결국 탄핵소추안이 상원에서 의결되었다. 이로써 호세프는 직무가 정지되었고, 공은 상원의 탄핵 심판으로 넘어갔다.
3.3. 호세프와 친 호세프 세력의 반격
사실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 진영도 문제가 심각했는데, 내각을 오로지 백인 남성 장관으로만 채운 데다, 강성 보수 성향의 인물까지 장관으로 임명하여 파문이 일었다. 또한 이 신임 장관들과 테메르가 소속된 민주운동당의 인사들의 부패상이 속속 고발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대통령을 탄핵한 이유가 검찰의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함이라는 주카 전 장관의 비밀 통화 녹취록이 폭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탄핵의 정당성 자체를 송두리째로 부정하는 내용이라 브라질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회민주당 등 주요 야당들도 자신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탄핵에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일단 주카 장관이 사임한 상황이지만 테메르도 탄핵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커진 건 덤. 또한 정부 부처를 절반으로 감축하겠다는 말과 함께 문화부를 폐지하고 교육부로 통폐합시키자[18]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반발하고 나서면서 정국의 혼미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에콰도르를 비롯한 대다수의 중남미 국가들은 자국 대사들을 브라질에서 철수시켰다고 한다. 호세프 또한 가만히 앉아서 당할 리가 없는지라 '최후의 최후까지 투쟁'을 천명했다.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 역관광 당하다(영어).그리고 역관광은 계속해서 이어졌으며 이 와중에 호세프 본인이 선거운동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와 관계 없이 테메르가 임명한 장관과 집권여당인 민주운동당의 비리 혐의가 굴비를 엮듯이 계속해서 터지고 있어서 각료들과 소속정당 당원들 태반이 감옥에 갈 판이라 지지율은 꼴랑 10%대 초반에 그쳤으며 테메르와 쿠냐가 지속적으로 역관광 당하고 있고 상원 조사에서 호세프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여하튼 올림픽이 진행되고 나서부터는 관심에서 멀어지다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탄핵 절차가 재개되었는데 대체로 상원에서 호세프를 배신하고[19] 테메르를 지지하는 의원이 개헌선 이상을 차지하여 탄핵이 확실시 되었다. 사실 회계조작 의혹이 보수언론[20]에 의해 과장되었다는 말도 있는 데다 테메르의 지지율이 호세프 못지 않게 낮고 사회 복지 정책과 임금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에 빈민층에게 특히 평판이 좋지 않지만 어차피 의원들 대다수가 부패 문제와 앞으로 다가올 지방선거 때문에 테메르의 편을 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와중에 룰라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기소되었다 관련 기사
3.4. 탄핵 의결
2016년 8월 31일, 브라질 상원에서 총 투표수 81표중 찬성 61표로 탄핵에 필요한 54표를 충분히 뛰어넘어 탄핵소추안을 의결함에 따라 최종적으로 탄핵이 확정되었다.기사 여성 대통령으로서 탄핵된 케이스로는 최초. 이후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직위를 승계하였다. 호세프는 당연히 이 의결에 반발하여 연방대법원에 위헌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친호세프 진영이 호세프에 대한 탄핵을 저지하는 운동이 진행 중에 있으며, 그로 인한 찬반 진영 간에 탄핵을 두고 대규모 시위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호세프도 더는 안 물러나고 반기를 들 예정에 있다고 브라질 소식통이 밝혔다.후임 대통령으로 미셰우 테메르가 취임했지만, 국민들이 미셰우 테메르 퇴진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실 위에 테메르는 부패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고 집권정당인 브라질 민주운동당 인사들과 탄핵에 찬성한 인물들도 노동자당 인사들이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막장인 경우가 허다해서 그렇다. 그렇지만 2016년 지방선거에서 노동자당이 룰라에 대한 영장 등의 여파로 선거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예상대로 패배하고 호세프 자신의 텃밭 중 하나에서 사회민주당과 민주운동당 후보가 결선에 진출하고 노동자당은 결선에조차 진출하지 못하는 굴욕을 당하며 세가 꺾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배신 때린 브라질 민주운동당도 같이 부진했기 때문에[21] 테메르의 기세도 꺾였다는 것이다.
물론 테메르도 지표상 경제는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체감 경기는 여전히 바닥인 데다가 교도소 탈옥이 잇따르는 등 치안도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지지율은 바닥을 달리고 있고[22] 각종 복지 정책의 축소나 공공기관들의 연체 등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에 돈이 있는 세력들의 지지를 빼면 호세프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국민들의 평가였다. 다만 호세프가 집권 후반기에 너무 심하게 물을 먹은 것도 있기 때문에 테메르의 지지율이 아무리 최악이라고 하지만 퇴진 운동이 생각보다 힘을 받지 못했고[23] 룰라에 대한 지지율이 부분적인 재평가 때문에 높기는 했지만[24][25] 룰라도 재판에서 져서 사실상 발이 묶인 상태였다. 더군다나 직접적으로 돈을 받지 않기는 했지만 어쨌든 수사를 받고 있는 룰라를 감쌌기 때문에 9월에 검찰로부터 부패 수사 방해 혐의로 기소당하는 등 악재도 터졌다. 이 모든 난맥상은 결국 2018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 후보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당선되면서 참담하게 마무리되었다. 노동자당의 페르난두 아다지는 2위로 결선투표에는 진출하였으나 44%의 득표로 패배하고 말았다.
4. 퇴임 이후
2018년 8월 5일, 당의 미나스제라이스주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15.33% 득표에 그쳐 4위로 낙선했다. 이후에는 포르투알레그리로 거주지를 옮겼는데,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주어지는 경호를 제외하고는[26] 탄핵으로 인해 대부분의 명예를 잃고 말았다.2019년 4월 12일, 브라질리아 제12연방법원에서 호세프와 범죄 조직과의 연루 의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022년 9월 22일, 브라질 연방검찰(MPF)이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의 범죄나 행정비리 행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면서 탄핵 근거가 된 회계조작 혐의에 대한 사법조사를 무혐의로 공식 종결했다. 본인 주장대로 억울한 탄핵을 당했다는 것이 입증된 셈. 노동자당에서는 "진실이 드러났다"고 밝히면서 "시간이 걸렸지만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동자당 대선 후보로 다시 선출된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공식 선언했으며 이후 접전 끝에 룰라가 3선에 성공하며 한을 조금은 풀게 되었다.
이후 신임 장관 취임식에서 옆에 있던 조제 사르네이 전 대통령이 자리에 앉도록 도와주는 모습이 지지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3년. 서방 주도 금융 체제에 대한 대항마로 브릭스가 설립한 신개발은행(NDB) 새 총재에 올랐다.#
5.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1차 득표수 (득표율) | 2차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0 | 브라질 대통령 선거 | 브라질 | | 47,651,434 (46.91%) | 55,752,529 (56.05%) | 당선 (1위) | 초선 |
2014 | 브라질 대통령 선거 | 43,267,668 (41.59%) | 54,501,119 (51.64%) | 재선[27] |
[1]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8개 국가 중 최초로 여성대통령을 배출함에 따라 대통령을 지칭할 때 남성형인 'presidente'가 아닌 여성형 ‘presidenta'를 최초로 사용하게 되었다.[2] 현재 브라질 제39대 대통령으로 재직 중[3] 대한민국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자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과 '탄핵된 대통령'과 '지지율이 밑바닥까지 떨어진 대통령' 이 3개의 타이틀을 둘 다 가지고 있다. 탄핵된 시기도 지우마 호세프가 2016년 8월, 박근혜가 2017년 3월로 가까운 편이다. 다만 둘의 정치 성향은 정 반대로 박근혜는 보수 성향이고 지우마 호세프는 진보 성향이다.[4] 사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탄핵된 국가원수는 단 12명에 불과할 정도로 대통령 탄핵은 매우 드문 일이다. 참고자료(참고로 수카르노, 알베르토 후지모리도 탄핵되었다.) 이들 중 메이저 국가의 국가원수는 지우마 호세프와 박근혜(대한민국) 2명이 전부이고, 특히 박근혜는 선진국 국가원수 중 최초로 탄핵된 인물에 속한다. 리투아니아의 롤란다스 팍사스도 2004년 탄핵당하긴 했지만 당시 리투아니아는 1인당 GDP가 세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가였기에 논외.[5] 이름은 포르투갈어식, 성은 프랑스어식으로 바꿨다. 본명은 불가리아어식으로 페터르 스테파노프 루세프(Петър Стефанов Русев).[6] 이 시기 임신한 아내를 두고 망명했는데 아들인 류벤카멘(Любен-Камен Петров Русев, 1930~2007)이 아버지가 불가리아를 떠난 이후 태어났다. 즉 호세프의 이복오빠. 직업은 엔지니어였다고. 이후 호세프가 연로한 그를 위해 그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재정지원을 해줘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7] 고문으로 턱이 부서지는 골절상을 입을 정도였다.[8] 이후 집권초기 상파울루 주립대학(UNICAMP)에서 경제학이론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학위를 이수중이라고 알려졌으나, 현재 밝혀진 바로는 석,박사과정 모두 수료만 했고 학위는 받지 못하였음이 밝혀졌다.[9] 사실 경제 하락 국면에서 누군가는 감당했어야 하는 일이고, 그것을 하려한 것이지만 정무 감각의 부족으로 룰라 전 대통령과 달리 다른 정치인들과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결국 파국까지 가게 된 것. 실제로 전임인 룰라는 의회 정치에 참여한 경험이 있지만, 호세프는 원내에 입성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것도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0] 2005년 6월 노동자당이 의회에서 법안 통과를 위해 의원들을 돈으로 매수했다는 것이 스캔들의 핵심으로, 연방검찰이 2006년 4월부터 기소한 37명 중 24명에 대한 유죄가 최종적으로 연방대법원에서 판결되기까지 장장 6년 7개월이나 걸린 희대의 부패스캔들이었다.[11] 당시 브라질과 같이 원자재에 경제 기반을 둔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의 진보 집권 남미 국가들도 같은 지지율 하락을 겪었으며, 결국 아르헨티나에서는 정권이 교체되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했다.[12] 사실 이건 석유 투자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크다. 2000년대 후반에 브라질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는데 문제는 심해 유전이라 투자비가 많이 들고 채굴비가 비싸다는 점. 사실 원자재 값이 고공행진하고 있을 때야 채굴비가 비싸도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었지만(미국 셰일 붐과 비슷한 맥락),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석유값이 채굴비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국영석유회사의 빚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걸 국가 재정으로 땜빵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이 석유 채굴에 워낙 쏟아부은 돈이 많아서 큰 난리가 나게 된 것이댜.[13] 사실 고작 몇 년 적자 났다고 이런 꼴이 된 건 70-90년대에 쌓아 놓은 마일리지가 너무 컸다.[14] 일단 호세프가 비리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적용해서 탄핵을 하려고 했는데 정작 쿠냐 하원의장 본인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게 드러나기도 했다. 더군다나 탄핵 절차를 당장 받기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 것도 있다.[15] 상하원 가릴 것 없이 과반이 넘게 조사 당하고 있다. 하원 271명, 상원 82명.[16] 호세프의 주장에 따르면 예전 브라질 대통령들도 하던 관례여서 문제점을 몰랐다고 한다.[17] 5월 9일 기준 연정에서 탈퇴한 브라질민주운동당(PMDB)나 진보당(PP)과는 달리 여당 노동자당(PT)과 연정을 유지하는 당 소속이다.[18] 문화부를 교육부로 통폐합시킨 것도 그렇지만 교육부 장관이 극우 성향의 인물로 임명되어서 더욱 큰 문제다. 한국으로 친다면 문화 관련 업무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맡는 상황이 되었다고 하면 편하다.[19] 당장 브라질 민주운동당은 룰라부터 호세프 중반기까지 연립여당이었다.[20] 대표적으로 베자와 헤자 글로부[21] 이건 당연할 수밖에 없던 게 룰라-호세프 정부 집권기 때 지방선거에서 1당을 차지했던 정당은 노동자당이나 사회민주당이 아니라 민주운동당이다. 그러니 선거에서 부진한 게 당연한 것. 그럼에도 지방선거에서 1당 자리를 사수하기는 했지만 브라질 양대 도시인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당초 여론조사에선 결선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되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선에조차 오르지도 못했다.[22] 지지율 1%(...)를 기록한 적도 있을 정도.[23] 사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브라질 국회의원 대다수의 처지도 테메르와 비슷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테메르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호세프가 탄핵된 것도 어디까지나 호세프 한 명만 보내서 부패 수사의 손길을 피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평이다. 2016년 당시에도 그랬지만 2017년 와서는 호세프가 탄핵된 원인이 정의 구현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질의 결과라는 여론이 테메르와 연립여당들의 행태 때문에 더더욱 강화되는 분위기이다. 여담이지만 미국에서 의도적으로 진보 정권 축출을 주도해서 브라질 진보 정권을 축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사실 2016년 선거 결과나 주요 언론사들 반응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24] 좀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부패 혐의가 생기며 룰라에 대한 평가가 추락했지만, 2016년 이후로 보수 인사들의 부패상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알고 보니 그나마 나은 사람이었어라는 식으로 평가가 달라졌다. 이후 룰라는 5년 후인 2021년에 무죄 판결을 받으며 부패 문제에서 자유로워졌다.[25] 룰라를 욕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그들도 지우마 호세프 정권 탄핵에 앞장섰던 테메르 정권과 연립정당들의 부패가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드러난지라 차마 쉴드를 칠 수가 없다.[26]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탄핵으로 인해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지만 경호는 국가 안보 등의 이유로 제공된다.[27] 2016. 8. 31 탄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