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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우 쿠아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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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연방 공화국 제22대 대통령
자니우 다시우바 쿠아드루스
Jânio da Silva Quadros
파일:Janio_Quadros.png
<colbgcolor=#009B3A><colcolor=#FFD700> 출생 1917년 1월 25일
브라질 합중 공화국 마투그로수캄푸그란지[1]
사망 1992년 2월 16일 (향년 75세)
브라질 상파울루
재임기간 제22대 대통령
1961년 1월 31일 ~ 1961년 8월 25일
경력 상파울루 시장,(1953~1955, 1986~1988),
상파울루주 주지사,(1955~1959),
브라질 제22대 대통령 ,(1961),
서명
파일:자니우 쿠아드루스 서명.svg
1. 개요2. 생애
2.1. 정계 입문2.2. 대통령 임기2.3. 사임 이후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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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제22대 대통령이다.

2. 생애

2.1. 정계 입문

1947년 상파울루 시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53년엔 상파울루 시장에 당선되며 가난한 주민들을 방문하며 민원을 들어주어 인기가 높았다. 그는 또한 1년도 안 되어 시의 예산 균형을 정상화시키는 등 명성을 높였고 1955년엔 상파울루 주지사까지 되었다. 그는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한 연설과 부패 척결을 내세우며 대중의 신뢰을 얻었다.

2.2. 대통령 임기

1960년 대선에 앞서 국가노동당, 기독교민주당, 국가민주연합은 연대를 형성하여 쿠아드루스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여당연합인 사회민주당-노동당 측에선 육군 원수이자 전쟁부 장관을 지냈던 사회민주당 출신 엔히키 로트를 후보로, 포퓰리즘 성향의 또다른 야당 사회진보당에서는 쿠아드루스의 정적이자 상파울루 시장이었던 아데마르 지 바후스를 후보로 내세웠다. 쿠아드루스는 48.26%를, 로트는 32.94%의 득표율을, 바후스는 18.80%을 기록하며 쿠아드루스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부통령 선거에서는 여당연합의 노동당 출신 주앙 굴라르가 당선되었다.

1960년 대선은 브라질 공화국 수립 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평화적인 여야 정권 교체였다. 또한 31년 만에 제툴리우 바르가스와 관련이 전혀 없는 인물이 대통령직에 올랐다.

취임 당시 브라질은 인플레이션의 상승과 막대한 외채문제를 앓고있었다. 쿠아드루스는 이 문제를 전임자 쿠비체크예게 전가하면서도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16억4000만 달러의 차관을 들여오기도 했다. 또한 적극적인 긴축 정책을 펼치며 관료제의 비효율성과 부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부패 캠페인을 열고 대통령령으로 결재 절차를 단순화시켰다. 하지만 여당과의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한 것이라 정치적 지지는 약해졌다.

외교 정책에 있어선 자유, 독립, 비간섭의 원칙을 고수했다. 비동맹운동[2]에서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력을 추구했다. 앞선 정부들이 친미 정책을 펼쳤던 것과 달리 쿠아드루스 정부는 중립 노선인 제3의 길을 표방했다. 하지만 쿠바, 중국, 소련 등 공산권 국가와 친목을 도모하는 정책과 체 게바라에게 브라질 정부에서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상위 메달인 남십자성 훈장(Cruzeiro do Sul)를 수여하기로 한 결정은 여당의 반발을 불렀고 결국 등을 돌리게 된다.

거기에다 미인 대회에서 비키니 착용을 금지하고, 닭싸움을 금지하며 카니발 무도회에 향수를 뿌리는 것과 카드 게임을 규제하는 등에 필요 이상으로 정치력을 소모하였다.

또한 프랑스령 기아나를 침공하려는 카브랄지뉴 작전을 계획했지만, 이른 사임으로 취소되었다.

여당측 정치인이자 과나바라[3] 주지사인 카를루스 라세르다는 전국 방송에서 쿠아드루스가 쿠데타 음모를 꾸몄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한계를 느낀 쿠아드루스는 다음 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2.3. 사임 이후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이듬해 상파울루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지만 정적이었던 아데마르 지 바후스[4]에게 패해 낙선했다. 1964년 브라질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군부는 쿠아드루스의 정치 참여를 금지시켰다. 1968년 7월 쿠아드루스는 체포되어 코룸바라는 도시의 산타 모니카 호텔에 120일간 연금되었다. 1974년 공식적으로 정치 참여 금지가 해제되었지만 1982년 상파울루 주지사 선거에서 다시 낙선했다. 하지만 1985년 상파울루 시장 선거에선 당선되며 정계로 복귀했다.[5]

주지사 임기 후 건강이 크게 악화되며 1989년 대선엔 출마하지 못했고 페르난두 콜로르 후보를 지지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1990년 아내의 사망으로 건강이 더 악화되었으며 1992년 2월 16일, 상파울루에서 향년 7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3. 여담

외동딸 지르시 마리아 쿠아드루스는 1986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Varre, varre, varre vassourinha!
쓸어라, 쓸어라, 빗자루야!

Varre, varre, varre, varre, varre, varre, vassourinha
쓸자, 쓸자, 쓸자, 쓸자, 쓸자, 쓸자, 빗자루야.
Varre, varre a bandalheira
엉망진창을 쓸자, 쓸어
Que o povo já está cansado
사람들은 지쳤다고
De sofrer dessa maneira
이런 고통에 지쳤어

Jânio Quadros é a esperança desse povo abandonado
자니우 쿠아드루스는 버려진 사람들의 희망이야
Jânio Quadros é a certeza de um Brasil moralizado
자니우 쿠아드루스는 도덕적인 브라질의 희망이야

Alerta, meu irmão
조심하게 나의 형제여,
Vassoura, conterrâneo
빗자루, 동포들이여
Vamos vencer com Jânio
자니우와 함께 승리하자

(Em toda história do Brasil)
브라질 역사를 통틀어
(Nunca foi tão fácil escolher o melhor)
최선을 선택하기가 가장 쉬워졌습니다
(Para Presidente da República)
공화국의 대통령을 위해
(Vote em Jânio Quadros)
자니우 쿠아드루스에게 투표하세요

자니우 쿠아드루스의 1960년 선거 로고송.

정치활동 내내 부패 척결이라는 모토 아래 활동했기 때문에 '빗자루'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종종 빗자루를 쥔 퍼포먼스가 사진기록으로 남아 있다.

대통령 시절, 쿠아드루스는 라이벌당 소속인 굴라르 부통령와 불편한 동행을 했다.[6] 둘의 연립을 자신의 이름 자니우(Janio)와 부통령 주앙 굴라르의 별명인 장고(Jango)에서 Jan를 따와 장장(Jan-Jan) 동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주류 정치인과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이었다. 소속당은 있었지만 그 어떠한 정당과도 타협하지 않았고 그의 소신대로 정국을 운영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그의 대통령 임기를 단축시키는 결과를 야기했다.

그의 성 Quadros는 스페인 카탈루냐 성씨인 Cuadros가 포르투갈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1] 현재는 마투그로수두술의 주도이지만 쿠아드루스가 태어난 시기엔 마투그로수 소속의 도시였다. 마투그로수두술은 1977년에 분리되어 생겨났다.[2] 1961년 창설된 주요 강대국 블록에 공식적으로 속하지 않거나 이에 대항하려는 국가들로 이룬 국제 조직이다.[3] 브라질리아 설립 이전의 연방직할구 구역이며 1975년 리우데자네이루주와 병합되었다.[4] 바후스는 포퓰리즘 성향 정당인 사회진보당을 이끌며 쿠아드루스의 정치적 기반이엿던 상파울루의 주도권을 두고 1950~60년대 사이 경쟁해 온 관계이다. 두 사람의 경쟁을 대표하는 에피소드로 어느 날 아데마르가 자신이 요양원 수십 개를 지었지만 쿠아드루스같은 미치광이를 집어넣을 요양원을 아직 만들지 못 했다고 발언하자, 이 소식을 들은 쿠아드루스는 자기가 수십 개의 감옥을 지었지만 아데마르가 너무 뚱뚱해서 부패 혐의로 집어넣는데 실패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맞받아친 적이 있다. 아데마르는 이후 1964년 브라질 쿠데타를 지지하였으나 2년 후 군사정권에 의해 숙청당하며 프랑스 파리에 사망한다.[5] 이때 패배한 후보가 페르난두 카르도주였다.[6] 브라질은 그때 당시 대통령과 부통령을 별개의 선거로 뽑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