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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20:30:26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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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선정 세계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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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을 선정했다.
긍정적 영향을 미친 여성들뿐 아니라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여성들'을 뽑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물들 혹은 논란 있는 인물들도 있다.
성인들
성모 마리아 예수의 테레사 마더 테레사
지도자들
앙겔라 메르켈 베나지르 부토 예카테리나 2세 캐시 프리먼 서태후
클레오파트라 코라손 아키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다이애나 스펜서
지우마 호세프 에디트 크레송 엘레오노르 다키텐 엘리너 루스벨트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2세 엘런 존슨 설리프 에바 페론 골다 메이어 그로 할렘 브룬틀란
한나 수호츠카 하트셉수트 인디라 간디 이사벨 1세 제니 시플리
줄리아 길라드 칼레다 지아 킴 캠벨 마거릿 대처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로빈슨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미첼 바첼레트 미셸 오바마 박근혜
잔 다르크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쑹메이링 탄수 칠레르 테오도라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빅토리아 여왕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비올레타 차모로 측천무후
잉락 친나왓
발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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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블랙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히파티아 제인 구달 캐서린 존슨
리제 마이트너 마거릿 미드 마리아 미첼 마리 퀴리 마리암 미르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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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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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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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리데 옐리네크 그레타 툰베리 제인 폰다 주디 시카고 리마 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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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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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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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넬리 테일로 로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셜리 치점 빅토리아 우드훌
참정권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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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olbgcolor=#00001b><colcolor=#f2ba37> 전 미합중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Ruth Bader Ginsburg
파일: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jpg
본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Ruth Bader Ginsburg
출생 1933년 3월 15일
뉴욕주 브루클린
사망 2020년 9월 18일 (향년 87세)
워싱턴 D.C.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재임기간 연방대법관
1993년 8월 10일 ~ 2020년 9월 18일
서명 파일: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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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b><colcolor=#f2ba37> 묘소 알링턴 국립묘지
배우자 마틴 긴즈버그 (1954년 결혼 2010년 사별)
자녀 제인 긴즈버그
아들 제임스 긴즈버그
신체 155cm
학력 제임스 매디슨 고등학교 (졸업)
코넬 대학교 (정치학 / B.A.)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법학 / LL.B.[1])
직업 법조인
성향 [[진보주의#s-11|
진보
]]
경력 뉴욕남부지방법원 서기
럿거스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컬럼비아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시민자유연맹 여성권 프로젝트 법률고문
미국자유인권협회 법무자문위원
스탠포드 대학교 행동과학고등연구센터 연구원
컬럼비아구 순회항소법원 판사
미국 연방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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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향3. 어록4. 기타5. 영화6. 책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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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연방대법관. 1993년 6월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진보/리버럴 성향의 대법관으로 유명하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 럿거스 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재직했고, 1972년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에서 여성권 프로젝트를 공동 설립했으며, 1973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자유인권협회에서 법무 자문위원을 지냈으며, 이와 거의 동 시기인 1972년부터 1980년까지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로스쿨 교수로 재직한 뒤 1980년 6월엔 미국 연방상소법원 판사로 임명됐다.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시절 성(性)을 뜻하는 용어로 생물학적 의미가 강한 ‘섹스’(sex) 대신 사회적 성의 가치가 녹아든 ‘젠더’(gender)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이자, 최초의 여성 유대인계 연방대법관이다.[2]

2020년 9월 18일, 자택에서 전이성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 미국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2019년 손녀에게 유언으로 2020년 11월 대통령 선거 전까지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2020년 9월 29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2. 성향

판사가 되기 전에는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성차별에 반대해 여러 소송을 제기했었다. 자신이 공동설립한 여성권 프로젝트는 1974년까지 300건 이상의 성차별 사건에 참여했고,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1973년과 1976년 사이에 대법원에서 6건의 성차별 사건을 변호하여 5건을 승소시키기도 했다. 긴즈버그는 법원에 모든 성차별을 한 번에 끝내라고 요청하는 대신, 구체적인 입법과 집행 목표로 하고 각 사건별로 하나하나씩 연속적으로 승리해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원고를 신중하게 선택했고, 때때로 성 차별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해롭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남성 원고를 선택하기도 했다.

판사 시절에는 1996년 군사학교에 남성의 입학만 허용한 버지니아 주에 대해 양성평등권 침해 판결을 했으며, 1999년에는 국가가 장애인을 과도하게 시설에 격리하는 데 대한 차별을 지적하는 행동을 보였다. 부분출산 낙태 금지법을 위헌이라고 소수의견을 내기도 했다.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아 오랜 친구인 마이클 카이저 케네디 예술센터 관장과 정부 경제학자인 존 로버츠[3]의 결혼식을 주재하고, 동성 부부가 이성 부부보다 많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법인 '연방결혼보호법(Defense of Marriage Act)' 폐지에 찬성하기도 했다. 그 외에 동성결혼 합법화도 앞장서서 지지했다. 2015년 8월 3일엔 한국을 방문했을 땐 국내 1호 동성 부부인 김조광수-김승환 커플과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 등 국내 성소수자들과 용산 미군 기지에서 다 같이 만찬을 즐기기도 했다.[4][5] 이후 대법원을 방문해 "성소수자의 권리와 인권 보호를 위한 대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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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퇴치 운동 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면 성매매 반대를 명시하도록 강요해선 안 된다는 미국 대법원의 결정(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대 Alliance for Open Society International, Inc. 사건)에 찬성하기도 했으며, 2014년 4월에는 어퍼머티브 액션 금지에 소니아 소토마요르와 함께 반대했다 (Schutte 대 Coalition to Defend Affirmative Action 사건.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벤치에서 읽었을 정도로 다수의 결정에 강하게 반대하였다.).

진보 성향이다보니 대선 전에 관례를 깨고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해 논란이 되었고### 결국 사과했다.#

3. 어록

이상적인 여성 대법관 수를 몇 명이라고 보냐는 질문에 내가 '9명중 9명'이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하지만 1981년도까지 남자뿐일 때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달라는 것 뿐입니다.
유치원생들 앞에선 선생처럼 설명했죠. 판사들은 성차별이란 게 없다고 믿었으니까요.
정부가 여성의 선택을 대신하는 건 여성을 자신의 선택을 책임질 완전한 성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죠.
여성의 뜻과 성취와 참여는 제한될 수 없고 여성도 능력에 근거해 사회에 기여할 것이다.
여성의 동등한 기회를 제한하는 법률의 효력은 소멸할 것

4. 기타

5. 영화

6.

7. 관련 문서


[1] 당시에는 법무박사 학위였으며 1960년대 이후로는 J.D.로 변경되었다. 현재에는 미국에선 쓰이지않는 학위이며 국제적으로 보면 법학학사로 쓰이는 국가들이 존재해서 헷갈릴 수 있다.[2] 첫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은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 배우자 간병을 위해서 2006년 은퇴했다. 또한 자녀가 있는 대법관이기도 하다. 다른 연방대법관인 소니아 소토마요르와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자녀가 없는 싱글이다.[3] 미국 연방대법원장의 이름도 존 로버츠인데, 물론 다른 사람이다.[4] 원래는 홍석천이 이태원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경호 문제로 인해 바뀌었다. 표면상으로는 경호상 문제였지만, 당시 참석자였던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의 술회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 모임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강하게 반대해 급히 미군기지 쪽으로 장소가 바뀌었다고 한다.[5] 이 때문에 국내 기독교 단체에서 오지 말라는 보이콧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6] 한국 대법원 방문시 대법원 관계자들이 긴즈버그 대법관에게서 상고법원 도입안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들으려고 유도신문(?)을 했다가 언론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7] 당시에 로스쿨 신입생 500명 중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었다. 로스쿨 학장이 이 9명의 여학생을 집에 초대해 "여학생 1명이 들어오면 남학생 1명이 떨어진다. 너희들이 여기에 왜 온 건지 나를 납득 시켜봐라"라는 질문에 "남편이 하버드 로스쿨을 다니고 있어 그를 이해하기 위해 다니는 중이다"라고 답했다. 루스는 당시 소심하게 대답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말했다. 거기다 바로 옆의 학생은 "좋은 남자 좀 만나 보려고요."라고 당당하게 얘기해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모양이다.[8] 당시 암투병 중이기도 했다.[9] 2년, 특히 로스쿨에서 가장 중요한 1학년을 보낸 하버드 로스쿨에게 학위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하버드가 부탁을 거부하여 어쩔 수 없이 컬럼비아 로스쿨에서 학위를 받았다.[10]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과 함께 연방대법원 내 강경보수의 양대산맥으로 꼽혔다. 과거형이 된 이유는 스칼리아가 2016년 2월 13일에 갑자기 별세하였기 때문이다.[11]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는 이 둘의 관계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에피소드가 등장하기도 한다. 갑자기 대법관 2자리가 공석이 나서 신임 대법관 후보를 물색하는데, 야당인 공화당이 계속 보이콧을 놓자 아예 강경보수 성향의 남성 법관과 강경진보 성향의 여성 법관을 함께 추천하기로 한 것. 이 둘은 만나서 낙태, 동성결혼 등 사안마다 부딪히지만 의외로 서로의 철학적 바탕을 존중하며 절친이 된다.[12] 스컬리아 대법관이 생전에 출연했던 피어스 모건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케어 사건 결정 과정에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갈등을 빚은 뒤에 화해했고 이제 best buddy냐고 물어보는 인터뷰어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요. 언제나 그랬습니다. (My best buddy on the Court is Ruth Bader Ginsburg. Has always been.)"라고 답하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