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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9:24

공성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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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전조사
2.1. 장점2.2. 단점2.3. 공격군의 방법2.4. 방어군의 대응2.5. 실제 사례
3. 항복을 요구한다
3.1. 진행방법
3.1.1. 기본3.1.2. 확장
3.2. 장점3.3. 단점3.4. 공격군의 방법3.5. 방어군의 대응3.6. 실제 사례
4. 그냥 기다린다
4.1. 장점4.2. 단점4.3. 공격군의 방법4.4. 방어군의 대응4.5. 실제 사례
5. 성벽의 기초를 깎아낸다
5.1. 장점5.2. 단점5.3. 공격군의 방법5.4. 방어군의 대응
6. 불을 동원한다
6.1. 장점6.2. 단점6.3. 공격군의 방법6.4. 방어군의 대응6.5. 실제 사례
7. 땅굴을 판다
7.1. 장점7.2. 단점7.3. 공격군의 방법7.4. 방어군의 대응7.5. 실제 사례
8. 기어오른다
8.1. 장점8.2. 단점8.3. 공격군의 방법8.4. 방어군의 대응8.5. 실제 사례
9. 성벽, 특히 성문을 파괴한다
9.1. 장점9.2. 단점9.3. 공격군의 방법9.4. 방어군의 대응
9.4.1. 성문
9.5. 실제 사례
10. 성벽 너머를 타격한다
10.1. 장점10.2. 단점10.3. 공격군의 방법10.4. 방어군의 대응
11. 첩자를 활용한다
11.1. 장점11.2. 단점11.3. 공격군의 방법11.4. 방어군의 대응11.5. 실제 사례
12. 물로 쓸어버린다
12.1. 장점12.2. 단점12.3. 공격군의 방법12.4. 방어군의 대응12.5. 실제 사례
13. 전염병을 퍼뜨린다
13.1. 장점13.2. 단점13.3. 공격군의 방법13.4. 방어군의 대응13.5. 실제 사례
14. 성을 건설한다
14.1. 장점14.2. 단점14.3. 공격군의 방법14.4. 방어군의 대응
1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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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성전을 실제로 수행하는 전술에 대해 설명한다.

야전에서 승리하더라도 적군이 지키는 성을 함락시켜야 해당 지역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 만일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그 때까지 이룩한 성과는 다 버리고 철수해야 하므로 상황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성전술은 널리 연구되었으며, 다양한 종류와 수량을 자랑한다.

2. 사전조사

공성전은 다른 전투와는 달리 사전조사가 전투의 승패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야전의 경우에는 설령 정보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더라도 항우같은 용맹한 장수가 있거나 제갈량처럼 훌륭한 책사가 있거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처럼 임기응변의 달인이 있다면 전투력으로 압도하던지 상황에 맞추어서 적절한 전술로 대응하던지 말 그대로 임기응변으로 어떻게 하던지 해서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공성전은 그런 것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전투와는 달리 공성전은 사전조사도 당당한 전술의 하나로 인정받는 것이다.

2.1. 장점

공성전을 해야 하는 성이 어느 지역에 정확하게 위치해있으며 주변 지형은 어떠하며 우회로는 있는지의 여부라던지 성의 크기 같은 대략적인 자료만 수집하더라도 해당 지역에서 공성전을 해야 할 지 우회로를 찾을 지 아예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지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심층적인 자료로 성의 규모나 성곽의 구조나 성벽의 높이나 방어시설의 분포도 같은 것을 얻으면 효과적인 공성 병기를 휴대하고 구체적인 공성전술을 채택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해당 성에 대한 맞춤설계가 된 공성전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수성전을 담당할 부대나 지휘관에 대한 정보나 주민의 성향같은 자료도 얻으면 후술하는 첩자를 활용하는 공성전술에 사용이 가능하며 수비군의 지휘관이 용렬하고 수비군이 제대로 편성되지 않았다면 기습적인 돌격으로 성을 순식간에 함락시키는 위험한 전술도 채택이 가능해진다.

2.2. 단점

사전조사 자체에 대한 단점은 없다. 여기서 언급하는 단점은 사전조사를 시행하는 방법과 기간이나 신뢰도 등에 관한 것이다.

사전조사를 해야 하는 중요성은 높은데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가 힘들다. 민간인을 이용한 조사는 값도 싸고 민간인이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가지 않거나 들어가더라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다녀온다는 가정 하에 사실상 들킬 염려가 없으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반해 정보의 수준과 양이 별로 안좋으며. 첩자를 이용한 조사는 정확도가 높고 양이 많지만 비용도 많이들고 적에게 들키기 딱 좋다. 특히 공격군이 인종이 다르거나 언어가 다른 국가라면 사전조사의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이럴 때는 적국 민간인, 적국 군인 등을 포섭하여 사용하는 방법이 있으나 애초에 나라 팔아먹을 정도로 불만이 있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허탕만 치거나 이용당할 수도 있다.

또한 사전조사 기간이 너무 길면 상세한 자료를 얻을 수 있으나 반대급부로 적에게 들켜서 해당 성의 방어력이 증가한다던지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며 오래되어 현재로서는 들어맞지 않는 정보를 가지고 공성전에 임하는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

사전조사 기간이 너무 짧으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거나 빠진 정보가 많아서 공성전을 시작하고 나서야 해당 성의 방어력이 너무 높다던지, 아군이 가진 공성 병기가 쓸모가 없어졌다던지 하는 심각한 사태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아무리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더라도 전장의 안개는 어쩔 수가 없다. 갑자기 수비군의 지휘관이 유능한 사람으로 긴급교체되었거나 수비군이 증강되었거나 공격군이 주둔하기 좋은 위치에 임시적인 수비군 성채가 만들어졌다던지 보고에 없던 작은 성채가 의외로 난공불락급 요새였다던지 하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따라서 사전조사만 100% 신뢰하지는 말고 어느 정도 전술의 다양성을 가지도록 공성 병기를 비롯한 준비에 어느 정도의 범용성은 가지도록 해야 한다.

2.3. 공격군의 방법

정보전의 기초와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

2.4. 방어군의 대응

현대의 방첩기관이 대응하는 방법의 기초와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

2.5. 실제 사례

3. 항복을 요구한다

공성을 해야 하는 쪽에서 수성을 해야 하는 쪽에다가 항복요구를 먼저 한다.

엄밀히는 공성의 방법이라기보다, 공성의 목표에 해당되는 방법이다. 다만, 아직 방어가 건재한 상대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것은 보기보다 굉장히 자주 일어난 일이고, 의외로 간단하게 항복을 받아 무혈 입성하게 되는 경우도 꽤나 많았다.[1]

이런 경우는 특히 공성을 하는 쪽이 압도적인 경우에 자주 발생하며, 수성을 하는 쪽에서도 수성전을 해봤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함락당해서 희생당하기 딱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세라면 항복하여 물자라도 챙겨 떠나는게 이득일 수 있다. 물론, 항복할 이유도 없고 그래도 될 상황이 아닌데 어이없게 항복하는 경우도 간혹 생기곤 했다.

3.1. 진행방법

항복을 하려든 요구하려든, 당연히 협상이 필요하므로 서로 사절을 파견한다. 협상은 최대한 명예롭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지긴 했어도, 서로 협상을 위해 오가는 사절이 명예롭게 취급된다는 보장은 결코 없었다. 특히, 교섭을 위한 접촉이 공성이 주구장창 진행된 후에 이루어진 경우에는 공격자나 방어자나 서로 이를 갈고 있기 마련이라, 교섭하기로 한 상대 지휘관이 적당히 축객을 하는 정도라면 차라리 다행일 지경일 지경. 게다가 두 세력간이 웬수 관계거나 서로 종교가 다르다면? 사절에게 보너스를 있는대로 퍼주는 게 아니고선 자원할 사람을 찾기 힘들만큼 위험하다.

전투 전에 항복 협상을 하는 경우에도 양자간에 자존심 대결을 하며 횟김에 사절을 죽여버리거나, "불행한 사고"로 사절이 죽어버리는 (...) 일이 충분히 생길 수 있었고, 긴 전투 끝에 항복 협상을 하려할 쯤이면 공격측이나 방어측이나 할 것 없이 극한 상황에 몰려있기 마련인지라 양측의 적대감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서로 협상을 위한 접촉 자체를 이익이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곱게 협상이 될리가 만무했다. 공격 측이 협상을 요청하는 방어 측 사절을 죽여버리는 일도 왕왕 일어났고, 방어 측 또한 공격 측 사절을 죽여버리는 일은 심심찮게 있었다. 심지어 방어측이 항복요구를 거절할 때 가끔 전령을 투석기에 태우고 던질 때도 있었다고 한다.

3.1.1. 기본

보통, "명예로운 항복"이 성사될 경우, 협상이 타결된 후 방어측이 즉시 항복하고, 공격측은 일체의 약탈과 학살을 금지하며, 항복한 방어측은 "고급 포로"로 간주하며, 특히 군기(軍旗)를 완전히 회수하여 철수할 수 있게 보장하게 된다. 아예 방어 측이 모든 물자를 가지고 철수하게 허락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도 "명예로운 항복"이라면 적어도 군기는 절대 약탈하지 않았다.[2]

정복 전쟁의 경우에는 아예 새로 들어온 백성으로 간주해서 기존 권력자의 지위를 인정하고 자국의 관직을 부여하며 이를 보좌할 새로운 행정기구를 설치해서 자국 영토로 편입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명예로운 항복"은 특히 유럽에서 전형적으로 진행된 사례가 많으며 항복 형식도 존재했다. 유럽은 대개 영주의 옷을 입어 대리인임을 표시하는 전령이 적진으로 가서 항복을 요구하고, 방어측이 이를 받아들이면 성 열쇠를 넘기는 것이 관례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백년전쟁 시절 영국에 항복한 칼레의 시민들이다.

그리고 빠른 항복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명예로운 항복을 할 경우에는, 전술하였듯 협상에 따라선 수비군이 군기 회수는 물론, 자신의 장비와 무장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군대가 수비하는 안전한 영역으로 당당히 행군해서 떠나는 것을 허용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공격측은 손쉽게 수비군의 방어진지를 얻고 수비군은 무의미한 전투로 희생당하지 않고 병력과 장비의 소모 없이 주력과 합류해서 좀 더 유용하게 병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명예롭게'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끝까지 가서 함락 되는 경우에는 공격 측이 자비를 배풀어야 할 이유도 의무도 없었으며, 설령 뒤늦게 항복이 받아들여진다 한들, 약탈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로 여겨졌다. 아예 일정 규모로 규정된 약탈을 명시하는 강제조항이 들어가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규정된 약탈"은 언제까지나 항복이 성사된 경우에나 이루어진 것이고, 만약 최후까지 항복을 거부했다면, 전투 패배 후 성 내는 무자비하게 약탈당하고 거주민은 죄다 살해당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고대 로마로부터 이어진 관습상으로도 공성추가 성문을 처음 때린 시점부터 방어측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권리가 박탈된다고 보았으므로 기준점도 명확했다.

일단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성이 함락될 경우 패배한 측이 당할 보복이 매우 심각했다. 백성들이 약탈당한 후 끔찍하게 죽는 것은 기본이고 귀족끼리는 포로를 잡을 뿐 죽이진 않는게 관례인 유럽에서조차, 너무나 오래 공성이 끌려 적대감이 쌓일대로 쌓인 상황이라면, 설령 귀족이라해도 얄짤 없이 비참할 정도로 끔찍하게 죽여버리는 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애초에 이런 경우는 군주라 해도 목숨을 보장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무의미한 저항 끝에 모조리 개박살나느니 명예로운 항복을 하라는 것을 유도하게 된다.

3.1.2. 확장

물론 도시를 포함해 대부분의 봉토들은 "적에게 공격당하면 최소 며칠간은 방어할 의무"를 명시한 봉건 계약을 주군과 체결하고 있기에 마음대로 항복했다간 계약 파기에 대한 보복을 당하게 된다. 당장 주군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에 사는 가족들이 체포되어 던전에 처박히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므로 보복의 정도도 매우 끔찍하다. 이러한 보복이 정해져 있는 이유는 외곽 방어선이 순식간에 붕괴당하면 수비측이 주력을 집결시킬 여유가 없게 되므로 이길 수 있는 전쟁을 어이없이 패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약을 지키다 함락당하면 도시 전체가 몰살당하고 동시에 약탈 당하므로 방어측 책임자 입장에선 머리가 아프기 마련이다. 게다가 계약 기간 만큼 방어를 해냈더라도 주군이 함락의 책임을 물어 보복하려 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이것은 봉건 계약을 넘어선 월권 행위로써 명백한 폭정이니 봉신들이 좋게 여겨주진 않겠지만, 다른 봉신들이 폭정에 반발하거나 말거나, 당하는 입장에선 큰 위험이다.

위에 열거한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여 항복권고를 무시하고 전투가 벌어졌으나 공성추가 성문을 때릴 상황이면 사실상 함락이 확정된 것과 다름 없기에 여기까지 몰리면 항복할 수도 있다는 관습이 존재하였다. 해당 관습은 고대 로마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전통으로 공성추가 성문을 때리는 순간부터 성 내의 모든 이들이 생명과 재산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관습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원래 공성추는 나무 문짝 정도는 깨부술 수 있지만 추가적인 방어 대책을 마련한 제대로된 요새에는 큰 효과가 없었으므로, 실질적으론 방어 측에게 방어가 무너졌음을 경고하는 위력 시위 용도에 가까웠다. 당장 흔히 묘사되는 철창 문짝만 보조용으로 달아둬도 공성추로는 거의 부술 수가 없다.

물론 허접하기 그지없던 중세 초반 요새 수준으론 개나소나 공성추를 성문까지 끌고갈 수 있었으니 수성전을 하는 입장에서는 방어전에서 충분한 시간을 벌지 못했으므로 아군에게 처벌 받을 수 있어서 해당 관습만 가지고는 항복을 이끌어내기 힘들었다. 그래서 방어 측이 더 견디지 못하고 뒤늦게 항복 하는 경우에도, 봉건 계약이 걸린 주군에게 마지막으로 도움을 탄원할 기회를 주는 것을 조건으로 거는 일이 많았으며 공격 측도 이를 대부분 허락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기어코 성벽을 직접 넘거나 무너진 성벽을 돌파하는 것에는 너무 많은 피해가 따르기 때문에, 늦게라도 항복을 받는 것은 충분히 타산이 서는 결정이었다. 애초에 성벽이 무너져있다 해봐야 엄연히 좁아터진 병목 지점이므로 여전히 방어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며, 무너진 자리는 결코 평탄하지 않고 잔해 더미로 막혀 있기 때문에 이 잔해를 넘어오는 것도 엄청난 고역이다. 오죽하면 이 잔해 치우는 위험천만한 작업에, 무려 벽돌 하나금화 수십개를 포상으로 거는 일이 있었을 지경이다. 돌 치우는 일이 이 정도로 위험하니, 아예 돌파 공세에 동원된 인원이 보장 받는 보상은 말할 것도 없는 엄청난 거액. 게다가 방어측은 이 위기를 버티기 위해 한명 한명 직접 고른 최고의 정예 병력을 투입할 것이므로 공격 측도 그에 상응하는 정예 병력을 소모해야 한다. 게다가 조금만 시간이 끌려도 방어측이 목책이라도 쌓아서 구멍을 메꿔버릴 것이므로 무너진 성벽이란 기회가 영구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무너진 틈새에 공격을 가하는 것은 돌파를 위한 것 보다는 방어측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 크며, 너무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서 최고의 정예 병력에게 최고의 보너스를 지급해야 겨우 시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서 명분 상으로도 상대의 봉건적 의무를 존중한다는 것이므로 큰 이점이 있다.

이렇게 '최후의 탄원'을 허락하면서 항복을 수락한 경우, 주어진 기간 동안 방어측은 마지막으로 주군에게 지원을 요청할 기회를 가짐과 함께 양측 모두 즉각 휴전에 들어가고, 기한 내에 지원이 도착하지 않거나 지원을 거부당한 경우 방어측이 성의 열쇠를 넘기는 것으로 '명예롭게' 항복할 수 있었다. 보통 이 지경까지 가면 주군이 방어측을 지원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 실질적으론 방어측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일 뿐, 공격측의 승리는 확정된 것이다.

최종적으로 항복이 결정되면, 대부분 방어자가 자신들의 깃발을 가지고 '명예롭게' 철수 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고, 공격측이 약탈을 하지 않거나 그 수준을 줄여주는 일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성내 전체가 약탈되지만, 그에 앞서 주민들을 철수 시키는 등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를 줄이거나 항복 조건으로 방어측이 공물을 바치게 하고, 그걸 공격 측의 병사들에게 분배하는 것으로 약탈을 대신하기도 한다.

또한, 항복을 하려는 것이 아니더라도, 주군의 의사를 묻기 위한 기간을 얻는 명목으로 휴전을 협상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이없어보이지만, 공격하는 입장에서도 휴전 기간 동안 요새에서 갑툭튀하는 출성공격인 소티를 두들겨 맞을 일이 없게되기 때문에 꽤 구미가 당길 수 있는 제안이다. 만약 방어측의 주군이나 동맹의 지원 의사가 희박하다면 그것을 계기로 방어측과 협상해 쉽게 항복을 받을 수도 있고. 물론, 휴전이 최상의 이익이 아니라 판단되면 얄짤없이 거부한다.

화포가 등장한 이후로는 공격자가 요새의 흉벽에 도달해 돌파 포대(Breaching Battery)를 설치하는 즉시 항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벽을 직접 부술 수 있는 돌파 포대가 설치되는 것을 소티로 막아낼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면 요새가 함락되는 것은 확정된 것이기 때문. 중세가 한창일때 공성추가 성문을 때리려 다가올 쯤이면 희망이 사라졌다 보고 항복하던 관례와 비슷한 개념이다.

돌파 포대가 공성추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돌파 포대가 설치 된 후 전투가 지속된다면 얼마 못가 돌파 포대가 설치된 지점의 성벽이 무너질 것이고, 공격측이 해자를 메꿔버리기만 하면 그대로 성 내로 돌파 공세가 들이닥치게 된다. 공격 측은 돌파 포대의 화력 지원을 받는데 방어 측은 사격각이 안 나오는 요새포를 쓰지 못하게 되니, 중세 때와 달리 방어측의 이점도 희박해져 습격을 견뎌낼 가능성은 극히 낮다. 설령 어떻게든 몰아내고 성벽을 보수하거나 뒤편 구획으로 후퇴하더라도, 돌파 포대가 계속 설치되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진다.

물론 이 시점에도 항복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럴 경우 얄짤 없이 시가전에 시타델까지 뚫어야만 했다. 실제로 성벽, 성문 돌파는 쉬웠는데 시가전이랑 시타델에서 죽쒀서 공성전이 질질 끌리는 일도 심심찮게 있었다.

3.2. 장점

성공만 한다면 대박 그 자체다. 공성전에 쓰일 전력을 다른 곳에 사용하거나 다음 목표인 성에 사용가능해서 진격속도가 매우 빨라진다.

그리고 성을 손실 없이 접수했기 때문에 아군의 거점이나 보급소로 사용이 가능하다. 덤으로 전황이 악화되더라도 심각하지만 않는다면 국경선에 가까운 성 몇개는 이득으로 공격군이 챙겨가서 자국 영토로 삼는 일이 가능했다.

3.3. 단점

어지간해서는 성이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항복을 하더라도 일단 어느 정도 전투가 진행되고 손실이 발생하며 시간을 소모한 후에나 항복을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항복선언을 믿을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구려-수 전쟁에서 요동성이 쓴 계략으로 수나라 군대의 공세로 위기에 몰리면 항복한다고 하면 수나라 군대가 공세를 멈추었다가 수양제가 이를 받아들이고 사절이 파견되면 항복을 취소하는 행위를 반복해서 계속 버텼다. 수양제가 전선에 있으면서 모든 중요 정책을 직접 보고하라고 해서 일선 장수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보고 후 명령을 받을 때까지 시간을 끌게 만든 것이 원인이었다.

3.4. 공격군의 방법

항복을 유도하는 모든 방법이 사용가능하다.

3.5. 방어군의 대응

항복을 막는 모든 방법이 사용가능하다.

3.6. 실제 사례

4. 그냥 기다린다

성을 봉쇄하고 그대로 죽치고 앉아 방어측이 항복할 때까지 기다린다.

참 대책 없는 방식 같지만, 사실 모든 공성의 기본이다. 다른 모든 수단은 죽치고 앉아 기다리는 기간을 줄여주는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외부 지원이 끊긴 상태에선 보급(식량, 식수)이 부족해져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고, 전염병이 돌기도 하며,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탈영이 일어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공격자가 무한정 기다리다보면 언젠가는 방어자가 못 견디고 항복하게 된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면서 기다리는 건 결코 아니고, 죽치고 눌러 앉아 있는 동안 공성병기를 조립하고 성을 포위하는 요새를 구축하는 등 여러 가지 조치를 통해 상대를 압박한다. 운이 좋아 성벽 일부가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상대는 그 손상을 수리하느라 더욱 큰 피로에 시달리게 되고 여차하면 돌격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성 기술과 수성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존버의 중요성이 증가하는데, 공성포 vs. 요새포 대결로 가는 성형 요새 시대로 가면 아예 공격 측이 방어 측을 역으로 둘러싸는 요새를 짓는 유사 참호전 양상으로 흐르게 된다. 이 시대부터는 공성 돌격을 실제로 시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공성 돌격을 꼬라박을 수 있을 만큼 요새에 접근할 쯤에 방어자가 항복하거나 후방으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4.1. 장점

공성측 군대가 성을 제대로 포위하는데 성공했다면, 수성측 원군이 오지 않고, 공성측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며, 그 시간동안 공성측이 보급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공격측의 승리가 거의 확정된다. 직접적인 희생이 가장 적은 상황에서 승리가 가능하므로 다른 전투나 전쟁에 대비할 수 있다.

직접적인 희생이라고 하면 감이 잘 안올 수 있는데 성이나 요새가 함락을 시도하기 위해서 돌격해오는 병력을 처리하기에 최적화된 경우가 많아서 빠른 함락을 위해 돌격을 시도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을 요구한다. 조금만이라도 신경써서 만든 요새라면, 그 성벽을 직접 넘기 위해 인력을 꼴아박았다간 그야말로 사람 목숨과 장비를 잡아먹는 인간 믹서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봉쇄하고 눌러 앉기 외의 선택지가 없다.

이에 비해서 수성측은 매우 불리해진다. 포위가 성립했다는 것부터가 성 내부의 수성측 군대만으로는 포위를 풀 수 없다는 뜻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갇히고 싶어하는 인간은 없으며, 승산이 충분했다면 포위당하기 전에 오히려 역공해서 적을 격퇴했을 것이다. 설령 포위당했다고 하더라도, 예컨대 성내 병력과 공성측 적군이 동수 정도만 되더라도 공성측은 모든 성문을 봉쇄하기 위해 분산배치되는 반면 수성측은 병력을 출구 한쪽으로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작정하고 수성측이 돌파를 시도하면 오히려 공성측이 각개격파당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위당했다는 건 이미 수성측의 전력이 공성측보다 훨씬 열세였다는 뜻이며, 따라서 외부 원군이 없다면, 갑자기 공성측 군대에 천재지변이나 본국의 변란 등 변수가 생기지 않고서야 수성측이 자력으로 포위를 풀 수 없다. 포위를 풀 수 없으면 전투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으니 수성측의 패배가 확정적이다.

여기에 더해서 수성전의 기간이 크게 늘어나므로 제대로 된 대비를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외부 보급을 받지 않으면, 수성측은 제한된 물자(특히 식량)을 다 쓸 때까지만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단순히 식량만 생각해서는 안되고 소금과 같은 생존 필수품이나 비타민같은 건강에 필요한 필수품이나 무기, 탄약, 장비같은 물자도 수성전이 길어질 수록 필요수량도 늘어나고 예비품도 필요해지며 소모품도 교체해야 하므로 결국 수성전이 길어질수록 내부 방어병력의 상태가 안좋아지게 된다.

그래서 수성전이 길어지면 수성전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공급해야 하므로 공격자의 세력이 방어자의 세력 보다 경제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면 방어자가 먼저 파산해서 망한다. 공성에는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지만, 방어측이 소모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공격자가 경제적으로 방어자를 압도한다면 요새는 결국 무의미한 시설이 되어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성 안에 수비군뿐만 아니라 인근에서 피난온 주민까지 있는데, 그만큼 물자가 빨리 소모되기 때문에 수성측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주민들은 수비에 보탬이 될 수 있긴 하지만, 그만큼 식량을 소모한다. 사람이 모여있고 각종 분변 등의 오염물질이 끊임없이 발생하니 전염병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포위당한 후 수성측에서 상황을 유리하게 변화시키지 못하면 공성전은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4.2. 단점

포위하고 기다리는 방법이 직접적인 희생이 적은 상태에서 공성전에서의 승리를 가져오지만 대부분은 다른 방법으로 공성전을 시도해보는 일이 많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안그래도 전쟁이 길어져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게 사실인데 공성전을 한답시고 포위망을 구성하고 시간을 낭비하면 성 1개 함락시키고 전쟁에서 패배할 수 있다. 설령 빠른 진격을 위해서 저항하는 성마다 적절한 포위병력만 배치해놓고 주력은 전진한다고 해도 병력과 물자가 분산되는 것은 피할 수 없기에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며 포위당한 수성측이 출성공격이라도 감행한다면 전황이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전략적인 입장에서 시간이 오래 소모된다는 것 자체가 불리해진다는 소리며 제2차 여요전쟁이 그런 식으로 흘러간 전쟁이었다.

전술적으로 봐도 포위에는 시간과 물자를 포함한 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 성 안에 있는 물자가 소모될때까지 기다리면, 당연히 공성측도 그만큼의 물자를 소비해야 한다. 공성측은 외부 보급을 받을 수 있으나, 보급선을 유지하는 건 비용도 만만치 않고 보급선을 노리는 적의 공격도 신경써서 막아야 한다. 공성측 병력은 수성측보다 최소 두 배는 많아야 하기 때문에 공급받아야 하는 물자의 양도 막대하다. 총력전 등장 이전의 전쟁에서 대부분의 군대들은 현지 구입, 징발, 약탈 따위로 상당량의 보급을 충당했는데, 현지에서 물자를 사들이는 것은 항상 구입이 가능하다는 보장이 없고 돈이 많이 들며, 징발은 계속 하다보면 징발 거부가 발생하고, 약탈은 적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효과가 있으나, 이를 오래 계속하면 주민들이 적대성이 오히려 증가, 게릴라전 등 불필요한 전투를 늘릴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방어자가 극대화하는 극단적 조치가 청야 전술이다.

포위하는 동안 군대를 먹여 살리는 것도 문제지만, 포위를 위해 야전 축성물과 공성장비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것 또한 막대한 비용을 요구한다. 공성 기술자들은 고급 인력으로 엄청나게 비싼 비용을 위험 수당까지 붙여서 받으며, 이들이 다룰 크고 아름다운 장비들도 당연히 매우 비싸다. 게다가 공성을 위한 야전 축성물을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어자의 반격을 감수해야 하므로 아무 어중이 떠중이 촌놈이나 징발해서 쓸 수 없고, 반드시 전문 공성 전문 공병대를 동원해야 하는데, 국가가 이런 부대를 상비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무니 초호화 용병대 개념으로 영입해서 써야 하는데 급료가 얼마나 비쌀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간혹 공병대를 상비하고 있어도 유지비용이 비싸긴 마찬가지. 물론, 성벽에 무모하게 꼬라박으려 하더라도 반드시 포위하고 눌러 앉기는 병행되어야 하고, 공성 돌격을 시도할 때마다 인력과 장비가 갈려나가는데 이게 포위 "따위"보다 훨씬 비싸므로 포위하고 기다리는 전법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포위 자체가 공격자도 인원이 밀집한다는 뜻이므로, 이쪽도 주도권 면에서 나을 뿐, 전염병 발생에 취약하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장기간의 포위가 발생하면 나중에는 그냥 그런 상태에 익숙해져 군기를 망각하고 있다가 군대가 나태해져서 정작 성을 공격하거나 수성측 구원병력을 격퇴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공격자는 애초에 방어자보다 돈이든 뭐든 뭔가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어야 공성을 시작할까 말까 고민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도 돈도 인력도 무한정 공격자의 편은 아니기 때문에 실패한 공성 시도들이 가끔 존재하며, 따라서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면서 어떻게 해야 저 망할 요새를 더 빠르고 싸게 뚫을 수 있을까 온갖 고민을 하게 된다.

공성측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문제가 커지는 동안 수성측은 점점 유리해진다. 물론 성 안의 수성측 병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지만, 반대로 성 밖의 수성측 본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해진다. 시간이 흘러가도 수성측이 유리해지지 않는 경우는 도시국가, 부족국가, 소규모 봉건영주 사이의 전쟁, 몰락한 국가의 마지막 거점 등 상황에 따라 지원해줄 '본국'이랄 게 딱히 없을 수도 있는 경우인데 이건 이미 전략적으로는 공성측이 승리했으며 그 후의 잔적 소탕이나 마찬가지의 상황이라서 일반적인 경우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런 경우라도 잔적 소탕 같은 공성전에 너무 집중하다가 타국에게 뒷치기를 맞을 수도 있으니 공성측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불리해지는 경향이 강해진다.

공성측 입장에서 가장 최악의 상황은, 공성측 병력이 성 하나에 붙잡혀있는 동안 수비측 본국이 원군을 편성하거나, 타국의 지원을 받아내어 농성하는 병력과 함께 공성측 군대를 양면공격해버리는 것이다. 그 이외에도 뻔하게 고정된 공성측 보급로를 찔러대며 지속적인 피해를 입히거나, 공성측의 병력 공백을 노려 다른 곳에 전선을 열어버리거나, 하다못해 포위당한 성은 포기해버리고 다른 지역의 방어를 굳혀 공격자가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 공성측 군대가 성 하나에 묶여 있는 것을 노려서 수비측 본군이 군대를 모아서 공성측 군대가 빠진 자리를 노리고 역공을 해서 전황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일이 이렇게 진행될 경우에는 공성측은 주력군이 수비측 성 하나를 공성전하는 데 묶여있는 바람에 역공을 방어할 병력이 부족해서 본토가 털리게 된다.

결국 성 하나에 과도한 시간과 예산을 들이는 것 자체가 수성측 본국의 이익에 부합하므로 포위된 성 안에 갇힌 수성군이 죽을 정도의 고통을 겪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만하다. 그래서 공성측은 최대한 빨리, 눈 앞의 성을 함락시키고 다른 곳의 목표를 노려야 이익이다.

그리고 흔치는 않지만, 완전포위가 불가능한 요새도 종종 있다. 산맥이나 바다 같이 우회할 수 없는 지형 사이에 놓인 관문이라던가, 혹은 해군이 부족해 항만을 봉쇄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항구도시를 포위하는 경우 등이다. 전자의 경우 산해관, 후자의 경우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대표적이며, 난공불락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요새들이 대개 이런 식이었다. 당연히 외부보급을 차단할 수 없으므로, 이런 요새들을 상대로 그냥 기다리는 것은 식량 축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4.3. 공격군의 방법

정말 성벽 앞에 눌러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은 뭐라도 쏴대거나 견제 전투를 걸고 첩자를 활용하는 등 적에게 피해를 누적시키는 여러가지 수단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공격자가 자신들이 기다려도 되는 상황인지 빠르게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무수한 전사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다른 방법들을 총동원해서 빠르게 성을 함락시키려 시도하거나 공성전은 포기하고 신속하게 후퇴해서 후일을 기약하는 등 상황을 종결할 필요가 생기기 때문이다.

4.4. 방어군의 대응

기본적으로는 대비를 철저히 하고 농성한다가 정답이다. 공격자가 공성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공성을 포기하고 물러날 수도 있지만, 외부 지원군에 의해 구원 받는 경우를 빼면 일반적으로 모든 공성전은 언젠가는 공격자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요새의 목적은 공격을 막는 것이 아니라 공략 비용을 천정부지로 증가시켜 공격자의 전쟁 수행 역량을 갉아먹는 것에 있있다. 따라서, 오래 버틸수록 방어측의 세력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4.5. 실제 사례

5. 성벽의 기초를 깎아낸다

기초를 깎아내면 성벽이 불안정해진다는 점을 이용한 전술이다. 구조물의 기초가 손상되면 자체 하중으로 인해 구조물이 무너진다는 것을 이용하는 것으로 성벽 기초에 손상을 줄 수록 성공확률이 높아지므로 하단에 서술된 땅굴 작전과 같이 시행하기도 한다.

5.1. 장점

수성측이 알고도 대응하기가 힘들다. 손상부위가 성벽 바깥 하단부에 있으므로 수성측이 제대로 수리하려면 출성공격을 통해 손상부위 주변을 일시적으로라도 확보한 후에 긴급하게 수리공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가능하기가 어려우므로 보통은 성벽 자체를 수리한다기보다는 성벽 뒤에 구조물을 만들거나 추가 성벽을 쌓아서 성벽이 붕괴되더라도 후속피해를 줄이는 방식으로 가게 될 수밖에 없어서 점점 성벽 전체의 방어력이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석벽 틈새에 회반죽이나 흙을 집어넣지 않고 오로지 돌만으로 쌓아올리는 메쌓기(Dry stone/空積み, 野面積み) 같은 특정 방식의 성벽 건축의 경우에는 평시에도 수시로 관리하지 않으면 성벽붕괴의 위험성이 높으므로 공성전시에 공격군이 성벽의 기초를 공격할 경우 의외로 쉽게 붕괴가 가능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5.2. 단점

공성을 하는 측이 직접 성벽 아래까지 초근접해서 수작업을 해야 하므로 방어자가 작업병들을 방해하기 때문에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방어자는 이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성곽 주위에 해자를 파놓거나 성 위 수비병력, 별동대를 운용해 처음부터 작업을 방해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건축학 기술력이 요구된다. 성벽의 하단과 기초라는 가장 튼튼한 구조물을 상대로 효율적으로 어떻게 파괴하면 성벽의 붕괴를 노릴 수 있는지에 대한 계산을 사전에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안되면 엉뚱한 곳에 공사를 했다가 헛수고만 하는 결과가 나온다.

5.3. 공격군의 방법

기본적으로 공성측이 성벽 하단에 초근접하도록 모든 공격을 퍼부으면서 엄호하는 가운데 작업병이 투입되는 것이 기본이다.

5.4. 방어군의 대응

적이 성벽 기초에 근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조치가 된다. 적이 성벽 기초에 근접하면 요격하는 것도 사각의 문제상 쉽지가 않다.

6. 불을 동원한다

전쟁 수행 시 역사와 전통의 친구인 불을 내는 방법. 현대에도 화염방사기소이탄을 비롯해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무기들이 일부 남아 있다.

6.1. 장점

성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거주하는 건축물이기 때문에 흙으로 만든 토성이든, 돌로 만든 석성이든 간에 불에 탈 만한 부분이 항상 존재한다. 이런 곳에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크게 번지며, 화재로 인해 병력이나 물자 손실이 발생하고 유독가스와 연기로 인해 작전 수행이 힘들어지며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인원을 따로 차출해야 하는 등 내부적으로 난리가 난다. 덤으로 불이 크게 나면 집단적인 패닉이나 사기 저하가 발생할 수도 있고, 반대로 공격자 입장에서는 목표물이 불에 타는 것이 확실하게 보이므로 사기가 올라간다.

수공에 비하면 비용이 훨씬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수공은 기본적으로 대규모의 댐과 제방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준비 기간도 길고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에 비해 화공은 그냥 불을 붙일 만한 물건만 준비해서 성벽 너머로 던져넣기만 하면 확실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6.2. 단점

조절이 까다롭다는게 가장 큰 단점이다. 화재가 번질 정도로 충분한 열을 공급하는 게 관건인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전장식 대포에서 사용하던 가열탄(Heated shot, hot shot) 처럼 단순히 뜨겁게 달아오른 포탄을 발사하는 것만으로 화재를 내려면 탄약고나 유류고 등 인화성이 충분히 높은 물질에 포탄을 꽂아넣어야 하는데, 그런 시설은 일단 엄중하게 보호되는 건 둘째치고 중세 및 그 이전의 요새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목재나 식량, 그 외 기타 식물성 소재들은 불에 타긴 하지만, 단순히 뜨겁게 달아오른 라운드샷 철탄 정도로는 그슬리는 정도에 불과하고, 불화살이나 불붙은 짚단 같은 걸 맞더라도 조금 맞는 정도로는 삽시간에 불이 번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설프게 불화살 한두 발 정도 꽂히는 정도로는 그 근처만 약간 그을리다 허무하게 불이 꺼질 가능성이 더 크다.

목재에 확실하게 불을 지르려면 액체라서 잘 퍼지는데다 지속적으로 불타면서 열을 공급해줄 수 있는 기름 종류의 물질, 예를 들어 화염방사기그리스의 불 같은 걸 끼얹는 게 제일 확실한데, 그런 무기는 전근대 기술로 제조하기도 까다롭고, 현대 기술을 동원해도 차량 탑재형 화염방사기의 사거리가 100m 남짓할 정도이니 멀리 날리는 것도 힘들다. 어지간히 여유가 없는 게 아니고서야 성벽의 겉면은 토성이든 석성이든 결국 난연성 물질로 만들고, 그걸 넘겨서 성 안쪽의 가연성 물질인 목재 구조물에 열원을 날려보내려면 필연적으로 작고 가벼워서 효과가 떨어지는 불화살이나 불붙은 짚단 정도나 날릴 수 있다.

물론 불화살이나 불붙은 짚단 같은 것도 충분히 많이 쏘아대면 결국 화재는 일어나게 되어있고, 아니면 내부에 침투한 결사대나 첩자가 작정하고 방화를 할 수 있다면 확실하게 불을 지를 수 있다. 문제는, 막상 화재가 일어나서 확산되기 시작하면 불길이 언제 어디로 얼만큼 번질지 불 지른 사람도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제대로 계획하고 불을 질러도 예상과 다르게 불이 번질 수 있는데, 하물며 어떻게든 불을 내보려고 되는대로 불화살을 날리는 상황에서 어디가 얼마나 불탈지 예측이 되는 게 더 이상하다. 그런데 불은 피아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자칫 역풍이 불어 불이 아군 방향으로 번져버리면 자살에 팀킬까지 들어가는 역대박이 날 수 있다. 따라서 화공을 사용하려면 불이 역으로 아군을 덮치지 못하도록 바람의 방향을 파악하고, 불의 세기와 방향을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은 노련한 경험이 쌓여야 가능하다.

그리고 불이 너무 크게 나면 성 안에 남는 게 없어진다는 것도 문제. 당장 눈앞의 적을 없앨 수는 있겠지만 성 내부의 시설이나 물자 등이 전부 불타버리기 때문에 점령하더라도 한동안 방어 거점으로 활용할 수가 없어진다. 그나마 인간이 컨트롤할 수 없는 수준인 수공에 비하면 어느 정도 진압 가능하다는 것이 다행.

또한 우기에는 사용하기가 힘들다. 날씨가 매우 건조한 건기에는 한번 불이 나면 크게 번지지만, 비가 내리는 우기에는 구조물이 축축하게 젖어있어 불이 잘 붙지도 않고 어쩌다 불이 나더라도 쉽게 꺼진다. 날씨는 모르는 일이라 아예 건기건 우기건 관계 없이 비가오면 그냥 망했어요. 이러면 화공은 당분간 물 건너 간거다.

6.3. 공격군의 방법

현대전에서도 불을 내는 방법은 현역으로 사용중이므로 여기서는 현대 이전의 수단을 짚어본다.

6.4. 방어군의 대응

화재 발생 확률이 줄어들게 만들고 화재가 발생하면 즉시 모래와 물을 뿌려 소화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적인 조치다. 만약 화재를 진화할 수 없다면 화재가 난 장소에서 건질 수 있는건 가능한 건져온 후[5] 근처에 불에 탈만한 것들을 모조리 옮기거나 부숴서 불이 더 번지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6.5. 실제 사례

기본적으로 공성전 중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고 화재가 발생하면 공성전 진행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압도적이라서 화공을 사용해서 효과가 있는 경우는 압도적으로 많지만 화공만으로 성이 함락되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나폴레옹 전쟁 시기까지는 탄약고에 직격탄을 맞거나 지근탄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탄약고에 불길이 도달하는 방식으로 연쇄폭발이 발생하여 수비군의 탄약이 고갈됨으로서 항복을 하는 경우가 의의로 많았고 그 이후의 현대전에서도 탄약고 유폭은 순식간에 전투의 향방을 가를 정도로 위력적이라서 화공은 항시 존재한다.

7. 땅굴을 판다

성 밑으로 굴을 파고 들어간 후 몰래 안으로 들어가서 기습하거나, 벽 자체를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땅굴을 파서 소수의 병력을 성 내부로 진입시키는 방법이 더 유용했으나 수성측에서도 대비를 하자 땅굴을 파지만 성벽 기초를 무너뜨리도록 넓게 파면서 목재 받침대를 설치했다가 땅굴에 불을 지르면 받침대가 불타면서 땅이 꺼지게 되므로 성벽이 기초부터 붕괴되는 효과를 노리는 방법을 자주 사용했다.

땅굴 전술은 공성전의 시대를 지나 현대전까지도 이어졌는데, 영국군은 제1차 세계 대전60고지 전투에서 독일군의 참호선 아래까지 땅굴을 파고 폭약을 묻어서 날려버리기도 했다. 전술적으로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전쟁의 규모가 규모인지라 전체 전황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현대전에서도 땅굴/북한과 같이 남아있고 구찌 땅굴처럼 공성전 용도가 아니라 지하요새의 개념으로 건설하는 경우도 있어서 공성전술이기도 하지만 수성전술이기도 하다는 양자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다.

그래서인지 공성전술로서의 땅굴은 중국에서는 혈공(穴攻)이라고 한다.[7]

7.1. 장점

일단 성공만 한다면 공성전을 바로 승리로 끝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심각한 타격을 수성측에게 입힐 수 있다. 성벽이 기초부터 무너지거나 주요 시설이 폭파되거나 주요 인원이 암살당하기라도 한다면 수성전을 제대로 진행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성벽을 손상시키지 않고 정예부대를 잠입시키는 경우에는 경우에 따라서는 성 자체의 방어력은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로 성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함락된 성을 쉽게 아군의 거점으로 삼을 수 있어서 차후의 전황에도 도움이 된다.

7.2. 단점

일단 지형을 심각하게 가린다. 파고 보니 돌덩이 천지면 혹은 아예 바위덩어리면 진입도 못 한다. 한반도의 경우 화강암이 많아서[8] 근대 이전에는 단기간에 굴 파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리고 수성측이 성을 건설할 때 해자를 깊숙하게 파거나 하는 경우같이 대책을 세워놓았다면 땅굴 파는 일이 어렵거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땅굴 파는 것을 언제까지나 수성측에게 비밀로 할 수 없다. 땅에 이나 물그릇을 놓아서 진동을 보고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지 않더라도 공성측 후방에 이상하게 폐석이 증가하거나 하는 것을 관측하는 방법등으로 땅굴을 파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덤으로 작전 실패의 댓가가 크다. 성 내부로 병력을 침투시킬 경우 방어자는 안전한 벽 뒤에서 계속 병사들을 투입하지만, 공격자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맨 앞과 맨 뒤를 제외하고 전부 막혀있어 일이 잘못되면 도망을 못 간다. 성벽 붕괴 작전의 경우에도 미리 수성측이 대비를 하고 있다면 해당 지점까지 땅굴도 못하고 대응책에 걸릴 수 있다.

땅굴 파는 작업을 하는 병사들에게 많은 추가 보수와 식량 공급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땅굴 작업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공격측의 물자소모가 심해지고 적이 알아채건 지형적 이유건간에 실패했을 땐 이 모든 노력과 물자가 그냥 날라가는거라 땅굴 파는 전술을 시작하기 전 신중한 계산이 요구된다.

7.3. 공격군의 방법

기본적으로 은밀하게 진행해야 하며 가급적 빠른 시간내에 진행해야 한다. 인력과 시간이 대량 소모되는 일이므로 방어자가 빨리 알아차릴수록 효용이 급격도로 떨어진다.

7.4. 방어군의 대응

땅굴을 파는 일이 힘들거나 불가능해지도록 사전조치를 취해놓고 땅굴을 파는 것을 신속하게 알아채고 대응책을 시전하는 것이 기본적인 조치가 된다.

7.5. 실제 사례

8. 기어오른다

가장 단순하고 무식하며 전면적인 공격법. 결국 성이란 것은 벽에 둘러싸인 방어진지이므로, 넘어가서 점령해버리면 땡이라는 논리.

당연히 공격하는 병사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일이고, 그래서 여러 매체에서 묘사되는 공성전을 보면 성벽 위에 맨 먼저 올라가거나 심할 경우에는 성벽에 접근조차 안 되겠다 싶으면 성벽 밑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병사에게 문자 그대로 파격적인 포상과 함께 당사자가 전사할 때 해당 포상을 가족이 물려받을 권리라는 안전장치까지 거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 약속을 실제로 지켰다. 이렇게 해야 동기부여가 될 정도로 죽기 딱 좋은 짓이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고대 로마군은 성벽을 가장 먼저 넘은 후 살아남은 병사에게 성벽관(Corona Muralis)이라는 황금관까지 씌워줬고, 레드 코트는 첫 성벽 돌파자가 살아남으면 그 이전 신분이 어쨌든 장교 계급의 시작이자 교양있는 신사라는 지배계급으로 인정받는 소위 자리는 일단 깔아놓고 시작했으며, 일본 전국시대 때도 성벽을 제일 먼저 넘는 이치반노리(一番乗)를 영광으로 여겼다.

그리고 특별한 공적이 없더라도 그 동안의 전투에서 고생한 병사들의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공성전을 통해 성이나 도시를 점령하면 그동안 심신이 갈려나갔을 병사들에게 보상으로 약탈한 재물, 식량으로 축제를 벌여 실컨 먹고 마시게 해주는건 물론이고. 점령 직후엔 하루에서 며칠 정도 점령지의 재산에 대한 약탈과 여성들에 대한 강간 등을 포상의 목적으로 공식적으로 허가해주기도 했다.[9]

8.1. 장점

성공만 한다면 시간소모가 가장 적다. 안그래도 시간이 흘러갈수록 전황이 공격측에 안좋게 돌아가는 일이 많은 상황에서 성 하나에 발목을 잡혀서 시간을 끌며 이후 전황을 망치는 사태를 없앨 수 있다. 물론 성공했을 때 이야기다.

그리고 제파 전술의 특성도 가지고 있어서 수성측이 압도적인 공성측의 병력과 화력을 경험하게 되면 위축되기 마련이고 수성측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혼란이 발생하면서 컨트롤 미스가 발생하기 딱 좋기 때문에 다른 공략법에 잘 버티던 성이 어이없게 함락당하기도 한다.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도 2달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여러가지 공세를 막으면서 버텼지만 최후의 대공세때 수비대장 조반니 주스티니아니가 복부에 심한 중상을 입고 후송되면서 빈 틈이 생기고 시민들의 출입구로 이용되던 비밀 쪽문인 케르카포르타(Kerkaporta)가 열리는 일이 발생하면서 5월 29일 자정부터 일출까지의 짧은 전투시간만에 성이 함락된다.

8.2. 단점

시간소모가 적은 만큼 반대급부로 막대한 병력소모를 감내해야 한다. 사실상 공격 측 지휘관이 함부로 못 쓰는 가장 큰 이유. 적들이 잠들었거나 내통자/첩자를 동원하면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전면전에선 방어측도 벽에 달라붙기 전에 온갖 투사체로 공격자를 사살하려 들 것이다. 특히 1차 투입대는 거의 무조건 그냥 죽는다. 손자병법에서는 "성을 공략하기 위해 각종 무기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기다리지 못한 지휘관이 병사를 나방 떼처럼 성에 기어오르게 하여 3분의 1이나 죽게 하니 이는 공격하는 측의 재앙이다"라고 언급한다.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사다리를 비롯한 공성장비는 현지에서 조립하거나 조달해야했는데. 제대로 된 측정장비도 없던 시절에 주먹구구식으로 성벽 높이 등을 측정했다가 공성도구가 짧거나 너무 길어서 피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전쟁 중에 성벽 길이 같은 걸 측정하게 해줄 리가 없으니... 이베리아 반도 전쟁중 영국군이 사다리가 짧아서 진짜 손으로 성벽을 기어올라간 적이 있었다. 워낙 유리했던 상황이라 이기긴 했지만. 열이 제대로 받은 영국군 병사들이 민간인들을 죄다 죽이고 강간해버렸다고...

그리고 해당 전술만 쓴다면 당연하게도 실패힌다. 그냥 사다리만 쓰거나 기어오른다면 실패 확률이 높다. 성벽이라는 것 자체가 공격자들의 진입을 막는 건데 일부러 벽밑까지 와준다? 방어측은 올라올 때 동안 기다렸다가 사다리를 살짝 밀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전면전은 방어 측이 당연히 훨씬 유리하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전술을 복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적을 압도해야 한다. 중과부적 상황을 만들거나 최소한 수성측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압도적인 병력을 일시에 파도처럼 밀어붙여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설령 전면에서 밀어붙이면서 후방의 낡은 성벽으로 별동대를 보내서 성벽을 쉽게 넘는다는 식의 작전을 쓰더라도 최소한 전면의 대공세가 수비군이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리지 못하도록 강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대규모 병력을 한번에 퍼부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

8.3. 공격군의 방법

기어오른다는 방식은 단순하지만 실제로 그걸 실행하려면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 요구된다.

8.4. 방어군의 대응

성벽을 기어오르는 전술은 대공세가 일반적이므로 그에 대응한 준비를 잘 해야 한다.

8.5. 실제 사례

공성전의 대다수가 최후의 대공세로 함락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성벽을 기어오르는 전술을 사용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래서 대공세로 함락당하거나 대공세를 이겨낸 경우 중 성벽을 기어오르는 전술이 집중적으로 사용된 사례를 기록한다.

9. 성벽, 특히 성문을 파괴한다

수성전에 유리하게 제대로 만들어진 성이라면 성문을 뚫어버리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함락방법이다. 기어오르든 땅굴을 파든, 공격자의 투입로는 매우 제한적이기에 공격측 병력이 간신히 성 안에 진입한다고 해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수비측의 예비대에게 포위되어 순식간에 몰살당하거나 도로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격측의 공성전술은 성문의 장악을 전제로 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다른 방법, 예를 들어서 성벽을 타고 오르거나 땅굴을 파는데 성공하더라도 보통은 곧바로 성문으로 달려가 성문을 장악하고 성문을 열어서 후속병력을 성 안으로 투입하게 하는 게 최선이다. 그래서 방어측 또한 마찬가지로 성문의 사수를 제 1순위로 하고 대응하게 된다.

참고로 성문을 뚫는 것은 고대에서, 특히 고대 로마에서는 끝장을 보자는 의미였다. Murum aries attigit는 '충각이 벽을 쳤다'라는 뜻으로 충각을 사용하는 순간에는 항복을 받아주지 않고 무관용으로 대응하는 것이 고대 로마의 관례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에서 언급된 바 있바 있다.

9.1. 장점

성이 아무리 좋아도 성문이 없으면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문은 열려고 만드는 것이다. 성벽에 비해 내구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수성측 입장에서는 숨길 수 없는 약점을 찌르는 것이다.

그리고 성문은 성 안으로 진입하는 통로 중에서 가장 넓고 큰 통로다. 일단 돌파당하기라도 하면 수성측에서 제대로 된 방어책을 쓸 틈도 없이 성 내부가 장악당해서 끝장난다는 것이다. 이걸 공성측도 알기에 모든 수단을 성문에 집중적으로 동원한다. 일단 어디 한 군데 뚫리는 순간 분위기가 급격하게 공격측으로 기운다. 공격측이 뚫린 통로로만 공격하는 것도 아니며, 내부 진입을 허용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기가 급격히 떨어진다. 어찌저찌 몰아냈더라도 취약점이 생겼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당연히 생기고, 거기다 그 생고생을 하며 간신히 문짝을 열어놨는데 성문을 다시 잠글 정도로 공격 측이 느긋하게 대응할리는 없다. 결국 공격자가 다시금 해당 지점으로 집중공격을 퍼부어, 방어자의 포위로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오면 공성전이 끝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전술과 복합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땅굴을 뚫던지 성벽을 기어오르던지 간에 목표를 성문으로 해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면서 성과가 더 많을 수 있다. 덤으로 애초부터 성문을 박살낼 용도로 해당 전술들을 사용하면 쓸만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19세기 이후에는 무연화약, 고폭탄의 발달로 두껍고 단단한 방벽으로 적을 막는다는 개념 자체가 쇠퇴하게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현대적인 요새를 공략하는 임무가 추가되었으므로 지금도 성문에 해당하는 요새 출입구를 공격하는 방법이나 요새 벽면을 박살내고 들어가는 식의 시가전에 가까운 공략방식은 현존하며 발전중이다. 어떻게 보면 도어 브리칭이 성문을 부수는 전술의 현대 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9.2. 단점

성문이 약점이라는 것을 수성측이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성을 건축할 때부터 이런 점을 생각해서 각종 대책을 세운다. 애초에 대문이나 벽을 좀 부순다고 집이 무너지면 그건 부실공사 수준이다. 성도 똑같으며, 당연히 그걸 지은 건축가는 바보가 아니다.

당장 성문을 돌파하기 위해 투입해야 할 화력이 너무 많다. 전투용 성문은 벽보다 약할 뿐이지, 기본적으로 매우 견고하다. 일반 건물의 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화력을 잡아먹는다. 정작 성문을 깨고 나면 예상보다 훨씬 부실한 전투력으로 그 이후 싸워야 한다.

그리고 성문 공략과정에서 벽 넘어가기 이상의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한다. 방어측도 성문이 가장 약한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성문 주변은 밀집된 방어군과 다양한 방어시설의 조합으로 가장 저항이 격렬한 장소이다. 멀리서는 화살과 화포, 가까이서는 돌과 끓는 물과 가열한 모래 등이 쏟아지는데 공격측이 성문을 뚫으려고 준비한 것이 망치든 파성추든 폭약이든간에 제대로 성문을 공격하기 위해선 말 그대로 사람을 갈아넣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성문이나 성벽의 일부를 부수고 돌파에 성공하더라도 이론적으로 적 전멸까지 축차투입이 강요된다. 성문을 뚫거나 성벽을 부순다고 해도 공격 측은 좁은 통로에 병력을 밀집해서 밀어넣어야 하는데, 자연스레 한정된 인원만 전투하게 되는 축차투입이 이루어진다. 거기에 성벽 위의 방어 병력이 놀고 있을 리는 없기 때문에 기각지세(埼角之勢)의 구도가 이루어진다. 물론, 성문이나 성벽이 파괴될 정도로 몰린 시점이면 보통은 공성측이 소모 조금 당해봤자 수성측이 전멸당하는 건 변하지 않을 정도로 전력 격차가 벌어진 시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은 해당 시점에서 함락이 기정사실화되고 심리적 충격을 받은 수성측이 항복하거나 와해된다. 그렇지만 수성측이 분전하여 어떻게든 돌파구에서 공격측 병력을 쫓아낸 뒤 목책 등으로 뚫린 부분을 땜빵해가면서 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내는 경우도 있고, 뚫려서 적의 진입을 막지 못하더라도 말 그대로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이렇게 된다면 성문 돌파 후 돌파구를 줄이려는 수성측과 한 판 붙고 성 내부에서 시가전을 벌이는 막장상황까지 돌입하게 된다.

9.3. 공격군의 방법

성문과 성벽을 무력화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동원된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방법과의 차이는 성문이나 성벽의 특정 부분같은 좁은 부위에 집중공격을 할 수 있도록 배치와 투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9.4. 방어군의 대응

좁은 지역에 집중되는 공격에 대비한 각종 조치를 준비하고 진행한다.

9.4.1. 성문

성문은 상식적으로 당연히 가장 취약하므로 설계부터 방어력을 극대화한다.

9.5. 실제 사례

성문이나 성벽을 파괴하는 전술이 쓰이지 않은 적이 없다시피 하므로 사례가 다양하다.

10. 성벽 너머를 타격한다

성을 함락시키기 힘든 이유는 성벽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성 안에 방어병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성 안의 방어병력에게 어떻게든 타격을 준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다.

화약의 시대 이전에는 투석기로 불덩어리를 던져서 화재를 일으키거나 시체나 감염물 정도를 던져넣은 뒤 전염병이 돌기를 기대하는 게 전부였으나, 곡사포가 발전하면서 성벽 너머의 적을 타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물론 반대로, 성 안의 적이 성벽 너머 공성측 병력을 타격하는 것도 가능해졌으나, 언제나 그렇듯 공성측의 포병은 수성측보다 우월하기 마련이다.

10.1. 장점

가장 큰 장점은, 방어자 입장에서 대비가 불가능하거나 또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암반을 깊게 파고들어간 지하 요새가 아니고서야, 성벽을 넘어오는 포탄을 막기 위해선 요새 천장을 두껍게 만들거나 요새 성벽을 높여야 하는데, 둘 모두 비용은 끔찍하게 많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포탄에 맞기 시작하면 금방 부서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중근세식 지상요새를 역사 속에 파묻어버린 전법이다.

성벽이나 성문을 정확하게 타격해야 하는 공성방법보다 명중 난이도가 낮다. 일단 성 안은 좁고 시설이 밀집했으므로 어디에 맞아도 타격이 약간이라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점을 노려서 화재가 일어나라고 가연물질에 불을 붙여서 던져넣거나 하는 공성방법이 자주 사용되었다.

특히 탄약고라던지 식량창고라던지 하는 취약시설에 투석기로 화염탄을 발사해서 명중시킴으로서 화재가 발생하면 대박을 노릴 수 있다. 탄약고 유폭은 매우 위험한 현상이며 순식간에 수성측이 항복을 결심할 정도의 파괴와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며 화약이 사라지고 식량이 불타게 되면 화약과 식량 부족으로 수성측이 저항할 수 있는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들게 된다.

덤으로 민간인의 희생도 많아지고 수비병력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도 사라지며 화재 위험과 전염병 발생 위험도 높아지므로 수성측의 전투진행에 점점 방해가 발생하게 된다. 도트 데미지처럼 점점 수성측을 갉아먹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곡사공격에 대응책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에는 성벽 너머를 타격하는 방식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당장 현대적인 곡사포 포격에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19세기식 요새는 브레스트 요새 방어전에서처럼 전투 시작과 동시에 집중포격으로 반파되고 수성측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방어전을 시작하며 오래 버티지도 못한다. 해당 전투에서 공격측인 독일군은 17000명, 소련군은 9000명 정도로 병력비는 2:1이였으나, 소련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 시작 7일만에 약 8800명 가량이 전사, 부상, 또는 포로가 되면서 사실상 전원이 전투불능이 된 반면 독일군은 400명 가량의 전사자와 600명 가량의 부상자를 내는데 그쳤다. 전근대의 공성전이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결과다.

10.2. 단점

애초부터 곡사와 원거리 사격 자체가 쉽지 않다. 투석기는 자체 위력 부족으로 성벽에 상당히 근접해서야 성벽을 타격할 수 있어서 성 내부의 구조물을 파괴하기에는 답이 없었다. 물론 화재를 발생시키거나 전염병을 퍼뜨리는 목적으로 아무거나 살짝 날려서 성 내부로 집어 넣는 것은 쉽지만 화재나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냥 물건 하나 넣고 끝난 셈으로 위력이 격하된다.

화약을 사용하는 화포가 전장에 도입된 후에는 위력은 쓸만해졌으나 일반적인 대포의 사격각을 높이는 것도 초기에는 쉽지 않았고, 고각사격을 위해 구포가 개발되긴 하였으나 일반적인 포에 비해 사거리와 위력이 다소 아쉬운 편이었다. 무엇보다, 조준도 힘들고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원하는 지점을 정확히 맞추기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구포같은 경우 고폭탄을 쓰지 않으면 신나게 탄만 쏴놓고 정작 유효타는 날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술의 발전으로 곡사포가 흔해진 이후부터는, 당연하게도 요새 자체가 쇠퇴기에 들어간데다 곡사포 대응책으로 대부분의 요새들이 지하화 또는 콘크리트 떡칠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콘크리트 방벽을 때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공성포 등급을 받을 정도로 거대한 거포중포를 동원해서 두들기지 않으면 성과도 없으며 콘크리트 방벽을 돌파하지 않으면 내부 손상을 못주니 결국 요새의 방어력을 전면에서 상대해야 했다.

생화학무기의 경우, 전근대적인 오염물 던지기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행운을 노려야 전염병이 퍼지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는 쓸만하지가 않고, 대포로 쏠 수 없기 때문에 중세 이후에는 도태되었다. 나중의 기술발전으로 만들어진 생물학 무기는 반대로 너무 강력한데다 세균/바이러스 특성상 통제할 수도 없는 것이 증식하므로, 사용시 공성측도 추가적으로 당하는 것이 시간문제이므로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화학병기의 경우에는 누구나 독가스를 쓰던 1차대전기까지만 해도 유효한 수단이었으나 2차대전기에는 적이 보복으로 다른 전선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또 화학무기 사용 자체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했으므로 거의 사용된 적이 없다. 또한 항공기와 장갑 차량의 발달로 전선은 1차대전보다 훨씬 유동적으로 변하는데 화학무기가 사용된 지대는 아군 병력 또한 자유롭게 활용할 수가 없으므로 사장되었다. 독일군의 경우 보급부대가 사용하는 대량의 군마에 모두 방독면을 지급하기가 어려워서 화학무기를 쓰지 않았다고 전후에 밝힌 적이 있다.

10.3. 공격군의 방법

성벽 너머를 타격할 수 있는 곡사병기와 제대로 된 조준이 가능한 포격술이 요구되며 기술 및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10.4. 방어군의 대응

사전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는다면 전투 돌입시 방어자가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의외로 한정적이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공격에 대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1. 첩자를 활용한다

공성측과 내통하는 자를 만들어서 공성전에 다양하게 써먹는 방법을 말한다. 일종의 비정규전이라 할 수 있다.

11.1. 장점

손자병법같은 고대의 병법서에도 나오듯이 공성전 능력이 약했던 고대부터 유용했던 방식이며 다른 방법보다는 상대적으로 공격자의 병력손실이 적다.

일단 제대로 작동하기만 해도 효과는 탁월하다. 난공불락이라고 알려진 성들의 상당수가 첩자 같은 내부 혼란으로 인해 함락되었다. 동로마 제국이 정공법으로는 함락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내전에서 쉽게 반란자가 성 내부로 진입하여 황제 자리를 찬탈하는 일이 많았던 것도 성 내부에 내응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담도 적다. 직접적인 손해는 성 내부의 내통자로 국한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적의 함정에 걸렸다고 해도 함정에 걸린 병력 정도만 손해로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11.2. 단점

군사서적마다 첩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미리 양성해놓아야 하며 배치도 잘 해놓아야 한다는 대목이 들어가고 첩자의 능력에 너무 기대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다 있다.

일단 첩자 자체가 양성하기 어렵다. 적에게 눈에 띄지 않거나 최소한 아군인 척 할줄 아는 능력 자체가 얻기 쉽지 않다. 특히 민족과 언어까지 다르다면 난이도가 기하급수로 올라간다.

현지인을 포섭하려고 해도 적이 쉽게 넘어오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다. 공포에 빠져서 일시적으로 내응자가 되도록 하려고 해도 적어도 압도적인 병력으로 공성전을 해서 적에게 위압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식의 내응자는 급조된 것이라 실력도 좋지 않아서 수성측의 단속에 걸려서 무의미하게 죽거나 단신으로 탈출하므로 별로 쓸모가 없다.

덤으로 첩자에게 역배신을 당하면 골치 아프다. 첩자 노릇을 하는 척 하면서 계략에 걸리게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함정에 빠져서 다수의 정예병력을 날려먹는 일이 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공성측 타격이 너무 심해서 공성전이 실패로 돌아가기도 한다.

앞서 말한 로마 내전에서도 반란세력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첩자를 사용해서 쉽게 공략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현임 황제에게 제압당하는 일이 발생한 사례가 더 많다. 이처럼 첩자를 만들기도 어렵고 활용하기도 힘든 것이다.

11.3. 공격군의 방법

첩자의 사용방법은 매우 다양하나 일반적으로는 아래와 같이 사용한다.

11.4. 방어군의 대응

사전에 민심을 제대로 살피고 방첩망을 강화해서 조기에 내통자와 첩자를 때려잡는 게 기본이다.

11.5. 실제 사례

12. 물로 쓸어버린다

근처에 적절한 강이나 호수 등이 있을 경우 제방이나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들여 쓸어버리게 하는 전략. 주변의 강이나 하천 혹은 운하를 자연 해자로 활용하는 성이 수공의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12.1. 장점

대량의 물은 그 자체로 파괴력이 흉악하다. 한꺼번에 밀집한 방어자를 전멸시킬 수 있다. 빠른 물살은 발목 깊이 정도의 수심만 되어도 성인 남성을 넘어뜨려서 말 그대로 물살에 휩쓸리게 만들 수 있다. 해안가에 있다가 파도에 휩쓸리는 것이 바로 그런 현상 때문이다.

그리고 수공이 들어가게 되면 물살을 피하더라도 주변의 땅이 침수된다. 이렇게 되면 병력이동, 장비관리가 어려워지고 전염병, 동상, 식량 부패가 방어자를 괴롭힌다. 멀쩡한 지역이 늪지대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오래 버틸 수가 없다.

12.2. 단점

지형지물의 조건이 맞추어져야 한다. 수공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강이나 호수처럼 물이 옆에 있는 성에서만 쓸 수 있으며 주변에 대량의 물을 가두어두었다가 쏟아낼만한 댐을 건설할 지형도 있어야 한다. 수량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많아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토목공사 기술도 좋아야 하며 자금력도 좋아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채와 도시는 고지대에 세워진다. 상식적으로 설계자도 호수, 바다, 강을 진입 제한으로 인한 방어력 강화에 쓰지 누가 제방이 터지면 바로 물난리가 나도록 두며, 홍수의 위험이 상시 도사리는 곳에서 누가 살겠는가? 따라서 재수없으면 공격자가 역으로 쓸려버린다. 실제로 징기스칸이 서하 공략 중에 수공을 써서 외성을 돌파하는데 성공했지만, 유목민 특성상 부족한 토목기술력 때문에 아군 진영 역시 쓸려나간 바람에 퇴각을 했던 적이 있다.

수공의 결과물도 좋지 않다. 당장 성 내부를 쓸 수 없다. 건물이 망가지고 물자가 다 쓸려가므로 그 성은 더이상 방어거점으로 역할을 못한다. 성을 함락시켜도 얻는 이익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다. 따라서 방어자의 일방적인 전멸 자체만 필요할 때 쓰는 방법이다.

12.3. 공격군의 방법

지형지물도 맞아야 하고 돈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므로 다른 방법이 마땅하지 않을 때에나 사용했다.

12.4. 방어군의 대응

미리 성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악해놓고 적이 대규모 토목공사를 한다면 수공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대처에 나서야 한다.

12.5. 실제 사례

13. 전염병을 퍼뜨린다

초보적인 세균전. 아무래도 수비자가 상대적으로 좁은 성에 밀집해서 생활하므로 전염에 더 취약하다는 걸 이용하는 방법이다. 전염병의 발생원인이 뭔지 정확히는 몰랐던 옛 사람들도 경험적으로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중세 시대에 한창 흑사병이 돌던 시절에는 투석기에 다른 무기가 아닌 흑사병에 걸려서 사망한 병사의 시체를 넣고 쏴서 성 안으로 던지기도 했다.

13.1. 장점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더라도 무력화를 달성할 수 있다.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성전은 불가능하며 출성공격도 어렵게 되므로 그냥 놔두어도 공격군을 막아낼만한 여력이 없게 된다.

그리고 공성전이 길어져서 포위전이 늘어나게 되면 어차피 공성측에서도 전염병이 퍼지기가 쉽기 때문에 차라리 수성측에 전염병이 빨리 퍼지는 편이 경우에 따라서는 공성측 손해가 줄어드는 방법이기도 했다.

시행방법도 단순했다. 시체나 동물의 사체를 투석기로 날려서 성벽 안에 넣기만 하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1차 시도에서 실패하더라도 여러 번 반복하면 되며 시체도 아군 중에서 전염병에 걸려 죽은 시체를 사용하거나 하면 된다. 현대에는 인권 문제로 시행이 어렵지만 전근대의 군대는 가만 있어도 위생문제로 병에 걸려죽는 병사가 많고 인권의식이 바닥상태라서 시행에 별 문제가 없었다.

13.2. 단점

전염병 앞에선 아군이고 적군이고 없다는 게 가장 문제다. 특히 아군이 백신을 갖추고 면역이 없는 적만을 노린다는 개념이 없던 과거에는 더욱 역관광이 위험하다. 몽골-금 전쟁 초반에 몽골군이 거용관을 함락시키고 금나라의 수도인 중도 대흥부를 1차로 포위했을 때 잠깐 포위를 푼 이유는 중도 대흥부에 존재하던 전염병에 몽골군이 감염되었기 때문에 급하게 일시적으로 후퇴한 것이었다.

전염병이 퍼진다고 해도,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은 감염자를 빠르게 죽여버리므로 전염성이 썩 좋지는 않은 편이며, 전염성이 높은 병은 감염자에게 버틸 수 있을 수준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증상만 일으키므로 반대로 치사율이 썩 높지는 않다. 물론 병에 걸리는 당사자들은 전염병은 뭐가 되었든 지옥을 맛보지만 전염병을 무기화한 공격자 입장에서는 성능이 별로 뛰어나지 않게 보이게 된다.

치사율과 전염성 모두 높은, 예를 들어 페스트같은 전염병은 일부러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운 좋게(?) 근처에서 해당 전염병이 돌아야 공격을 시도해볼 수 있으며, 앞서 말했듯 까딱하다 아군에게 전염병이 돌아버리면 오히려 역관광을 당해버릴 수 있다. 또 병은 칼이나 독과는 달리 사람을 죽이는 데 시일이 꽤 걸리므로, 성 내부의 적들이 싸울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약해지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전염병 창궐로 적을 무력화시켰다고 해도, 전염병의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성을 나중에 접수하고 이용하기 어렵다. 싸그리 불태우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도 해결이 난다고 보기가 어렵고 성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불태운 후에 청소 및 방역작업을 하고 다시 성을 재건설해야만 이용이 가능해지므로 사실상 화공보다 더한 후처리 노동력과 시간이 소요되고 전시에는 사실상 해당 성은 이용할 수 없다고 보면 된다.

13.3. 공격군의 방법

방법이 딱히 정해진 것이 없다. 그냥 어떤 수단을 쓰던 간에 성 내에 전염병이 돌면 된다.

13.4. 방어군의 대응

전근대 시절의 의학수준으로는 사실상 효과가 큰 대응이 어려웠다. 수성전 자체가 인구 밀집으로 인해 자체적인 전염병이 잘 퍼지는 상황이었으니...

13.5. 실제 사례

14. 성을 건설한다

공성전이 상대방의 성을 빼앗는 것인데 성을 건설한다는 것은 뭔가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사례가 매우 많다.

우선 성을 함락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격군도 적의 습격을 막기 위해 영채나 진지를 일반적인 야전용보다 탄탄하게 건설하는 경우가 많고, 알레시아 전투의 로마군 진지처럼 거의 성(城)의 방어도를 가질 수준으로 강화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쿠빌라이 칸의 양양성 공략 때처럼 성 주변의 요지마다 장성, 요새를 쌓아서 목표가 된 성을 이중삼중으로 강력한 포위망을 형성해서 감싸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공격군이 공성전을 하기 위해 성벽을 축조한다는 뭔가 모순적인 상황이 의외로 많이 일어난다.

14.1. 장점

기본적으로 성이나 요새는 주변 지역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동급의 성이나 요새가 존재한다면 당연하게도 영향력을 차단하거나 경감할 수 있다. 그래서 성을 빼앗기 위해서 공성전이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해당 지역의 가장 적당한 위치에 성이나 요새가 존재하겠지만 성이나 요새를 건설하는 것에도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므로 해당 지역 내의 모든 적합한 장소마다 성이나 요새가 존재하는 않는다. 이 점을 노려서 공성측이 공성전 진행을 위한 아군 거점 확보의 목적으로 성이나 요새를 쌓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성이나 요새를 만들다가 공성하는 측 국가의 역량이 충실하다면 공성전의 목표가 된 성은 함락시키지 못했지만, 공성전 준비를 위해 성벽을 쌓다보니 목표가 된 성 근처에 다른 성을 만든 상태까지 도달한 경우가 있다.

가령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이 쌓았던 아나돌루 히사르와 루멜리 히사르, 스컨데르베우 휘하 알바니아 저항군의 본거지인 크루여를 공략하기 위해 쌓은 엘바산 요새 등이 이에 해당. 이렇게 되면 공성전에서 실패했지만 적어도 적을 방해할 거점은 마련한 셈이라서 전술적 패배지만 전략적 무승부나 전략적인 승리를 할 수 있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리고 고대의 경우에는 공성장비와 공성기술이 크게 모자라서 공성전 자체가 쉽지 않으므로 공성 대상인 성 근처에 성벽을 쌓기 시작헤서 성벽 축조가 공성전 기술이 되는 사례가 존재한다. 겉으로만 본다면 매우 웃기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수성측의 방어기술도 거기서 거기인지라 자기네들 성에 점점 다가오는 공성측 성벽 축조를 제대로 방해하지 못한 끝에 공성측 성벽이 수비측 성벽과 거의 근접한 후 널빤지 같은 것을 놓고 공성측 병력이 수성측 성벽으로 밀고 들어가는 공격법이 존재했다.

근현대에는 기다리기 문단에서 잠시 언급한 돌파 포대의 규모가 간혹 야전 축성 구조물 수준을 넘어 초미니 요새의 수준까지도 가는 경우도 존재했다. 포대를 쌓고나니 보호해야할 수단이 필요한 경우 이렇게 임시용 돌파 포대가 간이 요새급으로 빙어력이 증강 된 것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툴롱 탈환전에서 쌓은 포대들이 이러한 경우다.

이러한 방식이 조금 더 발전한 것이 수성측 성벽 바로 바깥에 쌓는 토산으로 토산의 활용법 중 하나도 널빤지 놓고 수성측 성벽에다가 공성병력을 쏟아붙는 것이라 본질적으로는 마찬가지였다.

14.2. 단점

일단 공성측 국가의 국력이 좋아야 한다. 성이나 요새를 건설하는 시간동안 목표의 포위망을 단단하게 유지하면서 수성측 구원군도 제대로 격퇴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공성측 국가의 역량이 충실하지 못하면 오히려 수성측의 군대가 공성전에서 패배한 군대를 공격하면서 이런 진지들을 접수해버리는 바람에 다음 공성전의 난이도가 더 올라가버리는 역대박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애초에 공성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굳이 옆에다가 성을 쌓을 이유가 없다. 여러가지 방법이 다 막히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성벽 축조였던 것이다.

14.3. 공격군의 방법

성이나 요새를 건설하기 전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드는 지 미리 잘 정해야 한다.

14.4. 방어군의 대응

사전에 미리 준비해야 하며 실전에서 여기까지 진행할 경우에는 대응이 어렵다.

15. 여담

난공불락이라고 별명이 붙은 요새들은 공성전술이 먹히기가 매우 힘들었다. 예를 들자면 스리랑카시기리야 천연요새처럼 주변 환경까지 도와주는 요새들은 거의 난공불락이었다. 그 요새는 특수한 자연환경 덕에 저 바위 꼭대기까지 바람을 이용한 급수가 가능했다고 한다. 더구나 적정 방어 인원에 한해서는 식량도 자급자족이 가능해 무적의 요새였다.

하지만 영원히 함락되지 않는 성이나 요새는 없다. 7년 전쟁시기에 퀘벡시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으나 제임스 울프 장군이 지휘하는 영국군이 요새화가 잘 이루어진 퀘백 동쪽보다는 난이도가 낮은 서쪽으로 공략할 계획을 세우고 프랑스군을 기만하면서 4,400명의 영국군 병사들은 52m에 달하는 가파른 절벽을 기어올라가 9월 13일 아침에 고지를 장악하고 아브라함 평원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퀘백이 내려다보이는 감제고지가 제압당한 프랑스군루이 조제프 드 몽캄의 지휘하에 5천명을 동원하여 영국군을 공격했지만 지형이 유리한 영국군을 아브라함 평원 전투에서 밀어내지 못하고 패주한다. 여기서 양국의 지휘관인 제임스 울프와 루이 조제프 드 몽캄이 모두 전사했지만 영국군은 승리하였으며 전투 후 1주일도 안된 1759년 9월 18일, 퀘벡 주지사는 도시로 진군한 타운센드 장군의 영국군에게 항복하면서 퀘백시가 함락당한다.


[1] 강도도 지나가는 사람한테 대뜸 총질부터 하고 시체 품을 뒤지기보단, 보통 총구 겨누고 알아서 돈 내놓으라고 권유하는 법이다.[2] 애초에 군기를 회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명예로운 항복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에서 다 통했다. 반대로 어떤 경우에도 군기를 공격 측에게 전리품으로 빼앗기게 된다면 처분의 수준과 무관하게 불명예 항복이다.[3] 다만 10년을 끌었다는 소리는 과장이고, 현대 사학자들은 길어봐야 2년이었을 거라고 추정한다.[4] 불화살은 공성전에도 쓰이지만 매복에 더 많이 쓰인다. 인화성 물질이나 불 붙으면 터지는 화약 등등의 폭발물들을 잔뜩 매설해놓고 불화살을 기폭 장치로 사용해 함정에 빠진 적군을 불태우는 것.[5] 이 경우 몸에 물을 끼얹고 들어가야 한다. 인명 피해가 더 커질 것이 우려될 경우 건져야 하는 물건은 물론 고립된 인원까지 버리는 상황 역시 부지기수.[6] 생가죽을 씌우는 방식은 오히려 공성탑이나 충차 등 움직여야 하는 공성 병기에 화재 방지용으로 씌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무래도 진흙은 무겁고 잘 떨어지기 때문이다.[7] 구멍 혈(穴)에 칠 공(攻) 해서 혈공. 말 그대로 구멍으로 친다 / 공격용 구멍이라는 뜻.[8] 화강암의 경우 현대의 지하철 뚫는 드릴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난공사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9] 끔찍하게 들리겠지만. 인권, 평등 같은 개념이 없던 현대 이전엔 그것이 당연시 되었다.[10] 벽돌 정도 무게만 되어도 사람 두개골은 깨지고도 남는다.[11] 공성전을 묘사한 매체에서 성문을 공격할 용도로 여러 사람이 들고 가거나 커다란 수레에 실어져 움직이는 크고 길다란 통나무가 바로 이 통나무 망치이다. 공성추, 파성추(성 깨부수는 추)라고도 불리며 이를 동원해 문을 파괴한다.[12] 프랑스 혁명에서의 그 바스티유 감옥이다. 본디 위 목적대로 파리 도성의 방어 보조용 요새로 지어졌으나 전쟁이 수도인 파리까지 적군이 다가올 일이 줄어들어 감옥으로 용도가 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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