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아스테어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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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efd88f> 프레드 아스테어 Fred Astaire | |
본명 | 프레드릭 어스털리츠 Frederick Austerlitz |
출생 | 1899년 5월 10일 |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 |
사망 | 1987년 6월 22일 (향년 88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
묘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오크우드 추모 공원 묘지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배우, 댄서, 가수, 연주자, 안무가 |
데뷔 | 1905년, 뉴저지주 키포트 보드빌 공연 1933년, 영화 〈Dancing Lady〉 |
활동 | 1904년 ~ 1981년 |
신체 | 175cm |
학력 | 길드홀 음악연극학교 |
정당 | |
가족 | 어머니 조해너 "앤" 어스털리츠 (1878~1975) 아버지 프레드리히 "프리츠" 에마누엘 아우스터리츠 (1868~1923) 누나 어델 어스테어 (1896~1981) |
배우자 | 필리스 리빙스턴 파터 (1933년 ~ 1954년, 사별) 라빈 스미스 (1980년 결혼) |
자녀 | 1남 1녀 |
종교 | 개신교(성공회)[1]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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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용수들이 어스테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뻔한 거 아니겠어요? 우린 어스테어를 증오합니다. 어스테어 때문에 무용수들은 다 자격지심이 생겼어요. 너무 완벽하니까요. 어스테어는 황당할 정도로 완벽해요. 그걸 직시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미국의 배우, 무용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2. 위상
외모나 연기력은 다른 스타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여겨지나[2] 역대 최고로 손꼽히는 춤꾼으로서의 역량 하나만으로 전설이 되었다.[3] 진저 라저스와의 콤비가 가장 유명한데, "프레드와 진저"는 지금도 문화 아이콘으로 꼽힌다.1950년대 미국의 패션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코트와 정장, 재킷에 스웨터와 고급 구두에 위의 사진처럼 부토니에[4]를 한 영국 신사 같은 차림으로 지팡이를 돌리는 모습이 유명하다. 케리 그랜트와 함께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배우'라고 불렸다.
3. 상세
76년 동안이나 활동했으며, 그 긴 경력만큼 굉장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AFI에서 선정한 위대한 배우 50명 가운데 셜리 템플과 함께 유이하게 사생활 면에서 구설수가 없다. 업계의 파티 초대를 거의 다 거절하고 여가는 반드시 가족들과 보내는 애처가였다. 소위 아재개그를 좋아하는 얌전하고 다정한 성미로[5] 취미는 골프였다. 캐서린 헵번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당시 신식 스포츠였던 스케이트보드를 탄 걸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이민자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프레드 어스테어가 누나와 짝이 되어 공연계에 데뷔한 계기는 아버지의 실직이었다. 집에 수입원이 없어지자 어머니는 남매의 재능을 활용해 돈을 버는 아이디어를 낸다. 1903년 아예 뉴욕으로 이사해 본격적으로 예술 공부까지 시키며 보드빌 공연을 뛰게 했다. 프레드 어스테어를 상징하는 탑 햇은 어려서 활동할 때 연상의 누나에 비해 작았던 키를 만회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다.
1908년 |
1917년 남매는 브로드웨이로까지 진출했다. 웨스트엔드에선 "oompah trot(움파 트랏)"이라고 불리는, 이 둘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시늉을 하며 큰 원 모양으로 도는 동작을 특히 좋아했다. 말 그대로 밴드가 관악기로 반복적인 소리를 내는(oompah) 가운데 속보로 스텝을 밟는 게(trot) 전부였지만, 관객들은 조금도 질려하는 기색이 없었고, 남매가 공연을 할 때마다 이 동작에 대한 요청이 있었다. 프레드 어스테어는 이미 이때부터 안무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1921년 |
1924년 남매는 프레드 어스테어가 1916년부터 알고 지내던 조지 거쉬윈의 첫 정규 길이 뮤지컬 "Lady, Be Good!"에서 곤경에 처한 남매를 연기해 극찬을 받았다.[6] 1927년 역시 남매가 출연한 뮤지컬 "Funny Face"에서 어델은 "S Wonderful"을 불렀다. 프레드 어스테어는 30여년이 지나서야 이 뮤지컬의 영화판을 찍게 된다.
원래는 누나 어델이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스타였다. 기술적으로도 어델이 더 높게 평가 받았다. 프레드 어스테어는 그저 누나를 보조하는 상대역에 불과했다.[7]
그러나 어델은 연예계와 춤에 염증을 느껴 영국 귀족[8]과 결혼하며 은퇴했다. 애초에 인기가 많아 여러 귀족들이 청혼하고 있기도 했고, 한편으론 인기가 너무 많아 귀족과의 결혼 핑계 정도가 아니면 은퇴하기 어려운 분위기이기도 해서 성사된 결혼이었다.[9] 당시엔 귀족 부인은 무용수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이때 프레드 어스테어는 크게 상처 받아 쭉 솔로로 활동하기로 결심했다.
어델의 은퇴를 앞두고 남매는 1931년 "The Band Wagon"에 마지막으로 함께 출연했다. 손꼽히는 레뷰 수작이다. 20여년이 지나 프레드 어스테어는 이 레뷰의 영화화에서 주연을 하게 된다.
당시 누나 어델이 얼마나 인기가 좋았던지 프레드 어스테어가 시간 날 때마다 춤을 연습하자며 하도 괴롭혀서 둘이 싸운 끝에 누나가 춤을 그만둔 거라며 원망하는 소문이 심지어 프레드 어스테어가 죽어서까지 돌았다.[10]
그래서 프레드 어스테어가 누나 없이 활동하기 시작했을 땐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었다. 실제로 어스테어는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는데, 1932년 코울 포터의 뮤지컬 "Gay Divorce"에 나오며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 뮤지컬은 1934년 <Gay Divorcee>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는데, 어스테어와 진저 라저스의 실질적인 첫 콤비주연작이다.
어스테어가 영화계에 진출하기로 했을 때도 언론에선 부정적인 예측이 다수였다. 처음 RKO 라디오 픽쳐스 윗선 앞에서 테스트를 받았을 때 평가 쪽지의 내용은 상당히 가혹했다. 한 제작자는 "머리가 벗겨지고 있음. 노래를 못함. 춤은 좀 추는듯."이라고 적었다. 데이비드 O. 셀즈닉이 받은 인상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귀가 너무 크고 턱선이 못생겼고 오디션을 끔찍하게 망쳤지만, 매력이 그걸 뚫고 나올 정도로 대단하긴 하다."
그러나 어스테어는 결국 최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진저 라저스와 1933년작 <Flying Down to Rio>에 출연하면서 다시 한 번 커플댄스의 길에 들어선다.
상당히 여러 번 은퇴를 시사했다가 철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4. 주요 출연 작품
4.1. 뮤지컬 영화
- 댄싱 레이디(Dancing Lady), 1933
- A Damsel in Distress, 1937
- Second Chorus, 1940
- 브로드웨이 멜로디 오브 1940(Broadway Melody of 1940), 1940[11]
- You'll Never Get Rich, 1941
- 스윙 호텔(Irving Berlin's Holiday Inn), 1942
- 너무도 아름다운 당신(You Were Never Lovelier), 1942
- 스카이스 더 리미트(The Sky's The Limit), 1943
- Ziegfeld Follies, 1945
- 욜란다와 도둑(Yolanda and the Thief), 1945
- 블루 스카이(Blue Skies), 1946
- 이스터 퍼레이드(Easter Parade), 1948
- 짧은 세마디(Three Little Words), 1950
- 로열 웨딩(Royal Wedding), 1951
- 밴드 웨건(The Band Wagon), 1953
- 키다리 아저씨(Daddy Long Legs), 1955
- 파리의 연인, 1957
- 실크 스타킹(Silk Stockings), 1957
- 피니안의 무지개(Finian's Rainbow), 1968[12]
- 댓츠 엔터테인먼트(That's Entertainment!), 1974
- 댓츠 엔터테인먼트, 파트 2(That's Entertainment, Part II), 1976
- 댓츠 엔터테인먼트! 3(That's Entertainment! III), 1994
4.1.1. 진저 라저스와의 공동출연작
라저스와 만든 영화들이 워낙 유명해 평생 함께 한 것 같은 착각을 주지만 RKO에서 6년 동안 9편만을 찍었을 뿐이다. 그리고 몇 년 뒤에 MGM에서 한 편을 더 만든 게 전부다.- 1933년 Flying down to Rio[13]
- 1934년 게이 디보시(The Gay Divorcee)
- 1935년 로베르타(Roberta)
- 1935년 탑 햇(Top Hat)
- 1936년 Follow the Fleet
- 1936년 스윙 타임(Swing Time)[14]
- 1937년 쉘 위 댄스
- 1938년 Carefree
- 1939년 The Story of Vernon and Irene Castle[15]
- 1949년 The Barkleys of Broadway
이들 춤의 특징은 보드빌, 사교춤, 탭댄스, 소프트 슈[16], 발레를 잡탕으로 섞었으면서도 조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몇몇 춤은 어스테어가 직접 안무했다.
이전의 버즈비 버클리식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카메라가 정적으로 움직여 배우 둘의 전신에서 벌어지는 동작을 확실하게 보여줬고 이로 인해 뮤지컬 영화 연출의 경향성이 달라지게 되었다.
1950-60년대에 TV에서 이 영화들을 틀어주면서 다음 세대들에게도 이들의 명성은 이어졌고 1976년 RKO에서 이중 자사 제작 영화인 8편을 재공개하면서 새롭게 유행했으며, VHS, DVD 등 신종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전설은 계속 전해지고 있다.
4.2. 일반 영화
- 그날이 오면(On the Beach), 1959
- 악명 높은 여주인(The Notorious Landlady), 1962
- Midas Run, 1969
-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 1974
- 산타 옷을 입은 사나이(The Man In The Santa Claus Suit), 1979
- 고스트 스토리(Ghost Story), 1981[17]
5. 여담
- 톰 홀랜드 주연으로 전기영화가 만들어진다고 발표되었다. 어스테어가 생전에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왜곡할 것이 분명한 전기영화 제작을 그 어떤 이유로든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수십 번 강조했고 생전에 쏟아졌던 모든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으며 유언장에까지 이를 명시했기 때문에 제작사는 물론 톰 홀랜드에게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고인모독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은 강행되고 있는 중이다.
- 전세계 고전영화팬들의 망붕에도 불구하고 진저 라저스와는 연애 관계였던 적이 없다. 다만 1930년에 딱 한 번 둘이 진하게 키스를 한 적은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합이 워낙 좋아서 프레드와 진저 영화에서 춤은 연애, 나아가 성관계의 은유라는 해석도 있다.
- 일에 있어선 매우 엄격해서 본인 스스로도 지독한 연습벌레였으며 상대방에게도 똑같은 수준을 요구해 상대역들이 언제나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하며 울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걸 본인이 직접 이야기한 적도 있는데, 거기에 "(다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도 (하려고 했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나... 유명 할리우드 뮤지컬 댄서계를 평정했으면서 매우 까탈스러웠던 진 켈리와 유사한 경우. 어스테어와 일하면서 유일하게 울지 않은 사람이 진저 라저스였다고 하는데 "뮤지컬 이야기"라는 책에 따르면 라저스는 어스테어와 연습을 할 때마다 신발에 피가 고이기 일쑤였다고 술회했다고 하니 그냥 라저스가 울지 않았던 것이지 라저스에게 특별히 관대했다거나 한 건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다.
- <탑 햇>(1935)을 찍을 때 "Cheek to Cheek" 장면에서 진저 라저스가 타조 깃털이 달린 드레스를 고집해 춤동작이 버거워진 한편 사방에 털이 날리자 화가 난 어스테어가 스태프 전원이 라저스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든 적이 있다고 한다. 며칠 뒤 어스테어는 라저스에게 황금깃털을 보내 사과했다.
-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버지의 추도사를 낭독하면서 아버지의 춤 실력을 디스하기 위해 "춤을 출 때 프레드 어스테어와는 전혀 달랐다(He wasn't exactly Fred Astaire on the dance floor)"고 표현했다. 춤 잘 추는 사람의 대명사로 사용될 정도로 시대를 대표하는 춤꾼임을 알 수 있다.
- 비틀즈의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커버에 등장하는 유명인 중 하나다.
- 장수 집안이다. 어머니가 97세까지 생존했고, 어스테어 본인도 88세까지 살았다. 심지어 누나도 임신 문제[18]가 있었음에도 84세까지 살았으니 모계 자체가 장수 집안인듯. 남매 모두 운동을 좋아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어스테어 이후에 등장한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댄서 밥 포시가 굉장히 존경한 인물이다.
- 토드 필립스가 감독한 조커와 그 후속작에 그가 출연한 영화가 나온다. 1편에 나온 것은 <Shall We Dance>이며, 2편에 나온 것은 <The Band Wagon>이다.
[1] "The Religious Affiliation of Fred Astaire: great American actor and dancer", adherents.com, 2005.6.24.[2] 노래도 부르는 등 멀티 엔터테이너에 가깝지만, 위상 면에서는 빙 크로즈비나 프랭크 시나트러에 밀리는 편이다. 노래 실력은 조지 거쉬윈이 못 부른다고 깐 적도 있는데, 정작 거쉬윈 대표작을 많이 불러준데다 히트곡도 있어서 트래디셔널 팝/재즈 가수로 인지도가 있다.[3] 비슷한 사례로 시드 셔리스가 있다. 셔리스는 어스테어보다도 연기자나 가수로써 실력이 떨어져서 더빙 처리까지 해야 했지만 춤 실력 하나로 클래식 할리우드 뮤지컬계를 평정했다.[4] boutonnière. 가슴 깃에 꽂는 꽃.[5] 친구였던 데이비드 니븐은 요정(pixie) 같은 사람이라 설명했다. 좀 소년틱한 성격이었던 모양.[6] 1941년에 영화화도 되었다. 엘러노어 파월, 라버트 영, 앤 소던 주연에 라이어널 배리모어가 출연했다.[7] 불행히도 당시 공연 실황은 기록물로 잘 남지 않았고 음반과 증언으로만 남아있는 상태. 게다가 어델은 영화 출연이 없어서 현 시점에서는 동생보다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 본인 명성이 대단하고 유명한 동생도 있어서 출연 요청은 많았다.[8] 찰스 캐븐디쉬 경(Lord Charles Cavendish).[9] 하지만 임신을 못하거나 사산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남편조차 알코올 중독에 걸리는 등 행복한 결혼 생활은 아니었다고 한다. 사별 후 재혼한 두 번째 남편하고도 또 사별. 때문에 어스테어가의 후계는 프레드 어스테어의 두 자손이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10] 실제로는 은퇴 후로도 사이가 좋았다. 독립 후로도 남매가 정기적으로 선물과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였다.[11] RKO를 떠난 후 첫 번째로 찍은 작품으로, 전설적인 탭댄서 엘리너 파월과 함께 출연한다. 파월의 자서전에 따르면, 처음 만날 당시 서로가 상대편의 후광에 빛이 바랠까 각자 위축되었다고 한다. 물론 대화로 잘 해결했다고.[12] 무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첫 대작이고 어스테어식 뮤지컬로는 거의 마지막 영화였으나 실망스러운 결과물로 끝났다. 인종 차별을 비판하는 1940년대 뮤지컬을 원작으로 했으나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흑인 민권 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 말 기준으로도 주제 의식 뿐만이 아니라 뮤지컬로도 낡아버렸다는 평이 대다수. 흥행은 예산의 2배를 버는 등 그럭저럭 했으나 어스테어는 신세대 코폴라의 제작 방식에 잘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소똥과 토끼굴이 있는 실제 들판에서 춤춰야 하는 상황에 당황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 정말 실망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코폴라 역시 만족스러운 경험이 아니었던지 언급도 안 하는 편. 하지만 코엔 형제 등 컬트 팬이 있긴 하다.[13] 록시 뮤직의 데뷔 싱글 'Virginia Plain'에서 짧게 언급된다.("Baby Jane's in Acapulco, we are flying down to Rio")[14] <탑 햇>과 더불어 프레드 & 진저 최고작으로 꼽힌다.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에서 블루레이가 나왔다.[15] 영화 속 묘사 대상인 아이린 캐슬은 기술자문 역으로 제작에 참여했는데, 흑인 하인 역을 화이트워싱 하여 백인 배우 월터 브레넌을 뽑자 이에 항의했으며 자신이 실제로 입었던 의상들을 재현하는 대신 새로운 의상을 요구하는 진저 라저스와 마찰도 있었다. 이들은 동시대엔 유명인사였기 때문에 개봉 당시엔 버넌 캐슬의 사망이 스포일러감이 아니었다.[16] soft shoe. 밑창이 부드러운 신을 신고 추는 탭댄스.[17] 멜빈 더글러스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주니어에게도 마지막 영화다. 이 외에 존 하우스먼과 퍼트리셔 닐 등 클래식 할리우드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영화로 유명하다. 리키 역이 과거를 회상할 때 춤을 못 춘다고 말하는 배우 개그 대사가 나온다. 어스테어는 이 영화 출연할 당시 죽을 것 같다며 공포에 떨었고 나중엔 하차하려고 해 감독의 부담감이 컸다고 한다. 유니버설 픽처스 배급.[18] 1933년 첫째 딸, 1936년 쌍둥이 아들 둘을 임신했지만 전부 유산하는 끔찍한 비극을 겪고 말았다.[19] 여담으로, 등장한 다른 인물로는 샤를 트르네와 장고 라인하르트, 조세핀 베이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