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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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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우리 사회에서
2.1. 과도한 학업 강요
2.1.1. 모든 길은 성적으로 통한다2.1.2. 가정에서 부모의 괴롭힘2.1.3. 혹사: 학원, 선행학습
2.1.3.1. 불필요함과 해악2.1.3.2. 대안
2.1.4. 심각성
2.2. 두발규제2.3. 교복 강요2.4. 사회의 전반적인 무관심과 교사들ㆍ학부모들의 체벌
3. 침해 원인
3.1. 불안정한 교권3.2. 교육 착취를 조장하는 사회 구조
3.2.1. 취업시장
3.2.1.1. 스펙위주 고용 문화3.2.1.2. 일자리의 양극화
3.2.2. 통제의 역사
3.2.2.1. 비판
3.3. 문화
3.3.1. 아동의 사회적 지위3.3.2. 인생사 문제3.3.3. 물질적 발전과 후진적 시민의식의 괴리
3.4.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의한 학생 인권의 재침해 위기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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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학생인권.

국민 교육이 시행되어 대부분의 미성년자가 학생인 나라에서는 모든 인권이 잘 보장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인권이다.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기본적인 인격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성장기에 학생을 거치기 때문이다. 인권은 존중을 바탕으로 보장되기에 학생과 학생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학생에게 올바른 인권 의식을 함양해야 다음 세대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모든 종류의 인권[1]이 잘 존중받고 논의될 수 있다.

본 문서에는 주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에 관해 적혀 있지만 대학생, 대학원생 그리고 각종학교, 직업학교의 학생들과 유치원생, 그리고 그 바깥의 많은 교육기관을 아우르는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학생 인권을 논할 수 있다.

2. 우리 사회에서

과거에는 유독 국(초)중고생들의 인권은 도외시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생겨난 강력한 체벌과 매우 비정상적인 복장 제한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학생의 인권도 크게 발전해 나갔다. 다만 아직도 남아있는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다만 숙지해야 할 것은 모든 학교에서는 이러한 통제에 불복하거나 불만을 가진 학생들에게 항상 자퇴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학력 취득도 검정고시 등으로 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청소년을 위해 가능한 모든 길을 열어두고 있다. 심지어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중학교조차 별도 신청을 통해 취학면제니 정원 외 관리니 해서 자퇴하는 것도 허용되고 있다. 자퇴하게 되면 아래에서 설명할 인권침해 항목에서 모두 벗어날 수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퇴한 학교에서 해당자에게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다. 또는 근처 학교의 규정이 느슨한 경우 그 학교로 전학가는 방법도 있다. 허나 자퇴의 권리와 학생인권침해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건 인지해야 한다.[2][3]

즉 학교생활이 나에게 주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을 때 개인에게 자퇴의 권리를 보장해 준다는 것이지, 인권을 침해한 교사가 너 그러면 자퇴해라고 하는 것은 중보고 절을 떠나라는 얘기인 것이다.

2.1. 과도한 학업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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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흔히 한국의 입시 교육열이 높다고 하지만 이건 학생들의 자발적 교육열이라기보다는 부모, 웃어른, 선생, 학원 강사 등에 의해 벌어지는 사회적 강요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주장이 있다. 마치 아직 대학에 들어가기 전의 청소년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공부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범으로 여겨지고 있다.[5]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점 중 하나가 수능일을 기점으로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청소년에게 공부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아닌 청소년이 해야 할 유일한 것 혹은 주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당장 입시, 교육 관련 논쟁이나 분석, 조사, 정책만 봐도 정작 학생들의 입장은 누구도 신경조차 쓰려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국가/사회는 구성원이 만족하고 구성원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학생은 지금까지 사실상 구성원에서 논외로 치는 것이다.

당장 정시-수시 논쟁과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에 관한 분석만 봐도 어디가 더 공정한가, 어느 것이 더 효율적으로 인재를 양성하냐는 물음은 많았지만, 그것에 대하여 그 교육의 대상이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학생들이 얼마나 힘든지에 관해서는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고, 반영조차 되지 않았다. 교육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사실상 배제되어 왔다.

그리고 단순히 학업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교사의 수업을 강요하는 것 또한 문제이다. 교사는 수업을 제공하는 존재이지 수업을 강요하는 존재가 아니며, 그 수업을 듣든 안 듣든 성적을 통한 책임은 학생 본인이 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교육현장에서는 자신의 수업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고 있으면 자신의 권위에 학생이 도전한다 생각하여 진로가 그 수업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거나, 정시를 가되 고졸에 대한 무시가 두려워 학교를 다니게 되는 학생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빈번히 일어난다. 이런 경우에 간혹 교권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교권은 교육할 권리뿐만 아니라 학생의 권리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그 어디에도 자신의 수업을 듣기를 강요할 권리는 없다.[6][7]

2.1.1. 모든 길은 성적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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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세상에는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기술과 능력으로 벌어먹는 무수히 많은 직업과 창업의 가능성이 있는데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학생에게 한 길을 강요한다.

2.1.2. 가정에서 부모의 괴롭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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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대다수의 가정폭력의 원인이 성적이다. 자녀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명목이다.

공부하기 싫은데도 공부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학업을 명령하고 강제하는 범인은 청소년의 보호자인 학부모다. 학생의 생계를 책임지고, 유대감으로 정서의 버팀목 역할을 하며, 한편으로는 폭력을 얼마든 휘두를 수 있는 무서운 존재인 학부모의 호소를 자녀는 거스르기 어려워 싫은 공부를 마지못해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너의 미래를 위해 공부하라"는 학부모의 충고에 설득돼서가 아니라 두려움과 억압 때문에 공부를 하는 경우도 많다. 부모의 이러한 공부 강요는 정상적이던 관계도 일그러뜨리고 가정의 평화에 밑바닥부터 균열을 내며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입 시험 고득점 능력이 없어도 쌓을 수 있는 기술이 많은데도 자녀의 대학 진학만을 양육의 성공으로 여기기에 자녀를 사랑해서 공부를 시키는 것인가, 공부를 잘하는 자녀만을 사랑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게 하는 태도가 있다. 학부모 본인도 괴롭게 자녀의 성적에 쫓겨 가면서까지, 이루어낸 가정의 화목이라는 학부모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학부모들은 경이롭도록 공부에 집착한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가정을 파탄시키는 국가가 드물기에 출산율이 이 꼬라지일 것이다. 학부모는 학생에게 특별한 어른이다. 사람이 태어나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고, 태어나면서 선택할 수도 없고,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특수한 대인관계가 부모이다. 공부 강요로 정이 다 떨어진 자녀에게는 이런 차가운 인지와 억울함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부모에게 공부를 강제당하는 부류의 청소년에게는 공부 안 할 자유가 없다. 과거보다 살기 넉넉한 편이라는 점을 빼면 1970~80년대생이나 그 이전 세대에 가정형편이 불우해 괴로운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과 비교해도 정서적 우울 때문에 정신적 고통이 다를 게 없거나 더 괴로울 수 있다.

부모는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보호를 받는 절대약자인 자녀의 그 어떤 권리나 의사도 무시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사실이 불러오는 실태는 심각한데, 자녀의 공부를 부추기기 위해 신체 폭력, 언어 폭력[8] 할 거 없이 다 동원된다. 공부 안 하면 폭력이다. 일부 부모는 자녀에게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면 모든 지원을 끊겠다고 협박한다. 자녀의 의사와 관계없이 학원에 등록하고 자녀가 학원에 가길 거부하면 폭력으로 다스리는 부모도 있다.[9] 이런 부모는 자녀 앞에서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한 친구 자식이나 친척이나 같은 학교/학원 우등생과 비교하며 흉보기도 한다. 자녀가 공부와 멀어지면 학대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그걸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훈육' 으로 여기는 학부모가 있다.

사자 직업 등 전문직은 물론이고 한국의 사무직 취업 시장의 학벌주의 풍토를 고려하면 학생이 스스로의 미래를 걱정해 입시에 목을 매는 건 이상하지 않으나 학생이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커서 다른 거 하겠다는데 학부모가 공부 안 하면 죽는다/내쫓아버리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며 학생의 정서를 채찍질하고 자녀의 소중한 인생에서 자유의지를 앗아가며 핍박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고, 자녀에게 억울한 일이다.

이런 부모는 진짜 사랑으로 자녀의 행복을 바라고 있는지 과연 옳은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자녀도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인간이다. 훈육은 자녀의 나쁜 버릇을 고치거나 인성교육하는 선에서 이뤄져야지 공부하라고 통제하는 것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짓이다. 뭐든지간에 스스로 해 보는 경험은 값진 경험인데 공부하라고 다른 하는 걸 막는 건 자녀의 인생을 캄캄하게 만드는 짓이다. 취미를 막으면 자녀의 취미가 억제당해 불행해지고 노는 걸 막으면 사교성이 떨어지고 사람이 음침해진다. 지속적인 억압으로 자녀에게 결핍이 생긴다면 최악의 결과다. 한 번 생긴 결핍은 사람 인생 내내 지워지지 않고 쫓아다니며 괴롭힐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그 결핍이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부모끼리 자녀 성적 가지고 경쟁하는 문화[10]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부모들의 기이한 양육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태어나면/낳으면 괴롭다" 는 관념을 청년 세대에게 심어놔 출산율 하락에 이바지하고 있다.

부모가 우울한 상태라서 부모로서 자기효능감을 느끼려고 공부 강요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정폭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공부를 싫어하는 자녀는 효도하지 못하는 죄인도 욕받이도 아니다. 문제는 그런 부모도 그냥 생기지 않는다. 집 밖에서 견딜 수 없이 쌓인 스트레스를 잔소리로 자녀에게 분출하고는, 부모의 권위를 내세워 자녀에게 사과하거나 태도를 바꾸지 않고 그 태도 그대로 밀고 가는 것이다. 자녀에게 꾸짖어서 화풀이할 이유로 공부만한 핑계가 없다. '너가 공부를 못해서 내가 짜증이 나고, 공부를 잘 했으면 내가 우등생 아들/딸을 둔 친구/지인과(와)의 비교질로 상처받긴커녕 직장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기분이 좋아졌을 테니까.' 고작 공부로 반항아 낙인을 찍고 자녀를 쓰레기로 모는 이유는 부모가 스트레스 환경에 처해서인 것이다. 죄없는 자녀에게 스트레스를 전가한다.[11] 전가된 스트레스 때문에 자녀에게 잔소리의 악영향을 넘어 하루아침에 치료할 수 없는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나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의 스트레스성 신체질환이 발병해도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약을 타 오고 못난 병신 자녀 때문에 속이 쓰릴 뿐 자녀의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인 부모의 언어 횡포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비극이 적지 않은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다. 핵가족에서 가정의 주인은 부모다. 자녀의 진로를 염려한다면 어렵더라도, 자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자녀가 정신 건강히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부모가 또렷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면서 응원해야 한다. 현재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자녀의 슬픈 이야기를 들어 주고, 반대로 부모도 자녀에게 위로해달라고 스트레스를 털어놓고 공감하는 것도 좋다. 힘없는 자녀를 공부벌레가 되지 못한 화풀이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말고 대화 상대로 사랑해 주고 자녀의 사랑을 받자. 가화만사성이다.[12]

원하지도 않는 학업 강제와 폭력을 저지르는것 그 자체만으로 자식을 본인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것이며 이는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1.3. 혹사: 학원, 선행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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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행복추구권 침해 문제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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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의사를 묻고 적은 수의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도 있지만 상당수 한국 학부모들의 학원과 선행학습 숭배 문화는 학생의 존엄을 훼손하고 있다. 부모는 성적 향상이라는 순기능을 기대하지만 학원이 성적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지도 의문스러우며 공부에 흥미가 없는 청소년에게 학원이나 선행학습은 안 싫은 공부도 싫게, 싫은 공부를 더욱 싫게 만드는 원흉이자 천근만근 무거운 인생의 짐덩어리일 뿐이다.

부모는 월 수십~수백만 원이라는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하느라 초과근무도 불사하고 자녀는 자녀대로 학원에 묶여 둘 다 워라밸도 정신건강도 여유도 잃는 꼬락서니는 가정의 착취라는 표현이 알맞다. 입시 지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굉장히 흔한 사례로 회당 2.5시간씩 주 4회 수업하는 학원을 2개 보낸다고 가정하면 주 20시간이다. 고등학교가 주 40시간인데 더하면 주 60시간이고 이미 주52시간제도 초과했는데 여기서 더 보내는 가정도 많다. 더하면 끝없다. 숙제도 많고 어차피 자잘한 과목들 집에서 따로 공부해야 하는데 수업만 이만큼 들어야 한다.

애당초 학교만 다녀도 진도에 집중하면서 적당히 따라가거나 스스로 교과에 흥미를 붙일 수 있는데 학부모가 학생의 의사를 무시하고 보낸 학원이 피로를 부르고 공부에 대한 반감을 싹틔운다. 자녀의 인생을 강제되고 수동적인 공부라는 벌을 받아야 하는 감옥으로 만들고, 자녀에게 입으로는 커서 노가다하지 말라고[13] 말하면서 오직 부모의 만족감을 위한 무보수 노가다를 시키는 행태다. 당장 강제로 공부시켜서 성적이 오를 수 있어도 자녀는 학원 때문에 공부에 흥미를 잃는데다가 성격도 버려서 우울, 무기력, 강압에 대한 복종심만 늘어나고 자기주장, 호기심, 창의성, 인권 의식, 자존감을 잃어 인생에 영구적인 타격을 입는다. 학부모는 성적이 오르는 모습이 겉보기에 좋으면 속이 아무리 썩어가든 신경을 안 쓰면서 불붙은 교육열에 그대로 휩쓸려가며 자식 농사 망치는 종교적인 양상을 보인다.

사람이 외부의 압력만을 동기로 움직이다가는 미쳐 버린다. 젊은 덕분에 성격이 유연한 자녀는 학원 과로라는 고압적인 극한 상황을 견딜 내부 동기 즉 자기합리화 수단을 만들려고 경쟁심과 질투, 그리고 서열 본능을 마음 밑바닥에 장착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대한민국의 비교 문화, 과열 경쟁을 뼛속 깊이 습득한 '한국인' 으로 자녀는 다시 태어나서, 착한 껍데기 뒤에서 끊임없이 이기적으로 칼을 가는 인간이 될 것이며, 미성년자 인생의 12/19에 해당하는 학창 시절에 여유를 다 잃어버려 장성하고는 젊은 꼰대짓을 할 것이며, 끝에는 어릴 때 어른들에게서 보고 배운 대로 대한민국을 멸망시키는 입시문화에 침묵하는 방관자 혹은 옹호자 학부모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문화를 또 내 자식에게 겪게 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 청년들은 출산의 ㅊ자도 머릿속에서 지우게 된다.

뇌 발달 마케팅에는 허무하게 속아넘어가는 한국 학부모들이지만 원치 않는 학원이나 선행학습같은 무의미한 시간 뺏기, 질리고 괴롭게 만들기가 뇌를 손상시킨다는 사실은 모른다.
2.1.3.1. 불필요함과 해악
학원이 진짜 성적을 올려줬다면 모두가 학원으로 나날이 성적이 올라 학원을 졸업했을 것이다. 학원은 자녀를 강제로 공부시키고 싶어하는 학부모가 있는 가정을 착취하고 싶어하고 학부모를 속여넘길 수 있는 돈줄로 여긴다. 성적은 학원을 다니는가보다 자녀의 타고난 머리와 공부 의지에 달렸으며 이 의지는 학원이 줄이면 줄였지 늘려줄 수 없다. 학원은 오히려 학생의 뇌를 파괴하고 대부분의 역량을 깎는다. 회당 2.5시간 주 4회 수업하는 학원을 2개 다닌다고 가정하면[14] 주 20시간. 연 1000시간 이상이다. 학창 시절 내내 이렇게 보내면 자그마치 자녀 인생의 12000시간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들어 보셨는가? 자녀가 그 시간 동안 어떤 취미에 매진했다면 훌륭한 부업이나 전업을 만들었거나 적어도 인생에 자부할만한 어떤 재능을 꽃피웠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더 건강하거나 쾌활하거나 따뜻하거나 말을 잘하거나 사교적이거나 붙임성 좋은 이웃과 친구들의 보배같은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더 잘 공부했을 수도 있다. 흥미 없는 자녀의 인생을 이만큼이나 빼앗고, 학원 1개당 월 30만원이라고 치면 8640만원, 자녀당 근 1억 원의 학원비를 할부로 내고 학원을 안 다니고 잘 공부한 학생보다 열등한 결과를 받아들면 학원이 닦달하는 입시에 대한 불안과 학원이 필요하다는 세뇌와 허상에 뺏긴 집안 행복과 반쯤 죽어 버린 자녀의 행복까지 후회하기는 늦었을 것이다. 하지만 늘 학원에 놀아나는 부모는 있고 죄없는 자녀는 부모를 원망한다.

학생은 이미 훌륭한 무상교육의 장인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학교 교사는 그냥 있는 직업이 아니다. 초중고 상관없이 임용까지 전문직 뺨치는 코스를 견디고 선별된 엘리트 집단이며 교수 능력은 물론이요 중학교 이상의 경우 맡은 교과의 학문적인 깊이부터 대부분의 학원 강사보다 뛰어난 게 교사다. 검증된 전문가들이다. 지식이 없는 모든 학생이 따라올 수 있도록 흥미롭게 수업을 구성하려고 고뇌하고 교실 TV나 별실 등 다양한 도구를 써서 노력하는 교사들의 직업정신과 노고는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질문에 정성스레 답해 주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이런 사람들보다 학원 강사를 더 신뢰한다니 우스운 일이다.

돈 주고 학원 보내 자녀 성적을 사는 학부모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내신은 앵간해서는 학교 수업으로 개념을 이해하고 교사가 출력해주는 학습지와 교과서만으로 공부해도 상당한 성적이 나오며 용돈으로 문제집까지 구매하면 학생 본인 역량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애초에 출제자가 교사다. 학원 1타강사들도 교사의 출제 스타일까지 봐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이나 공부 태도에 불안감을 갖고는 하교하고 귀가한 학생을 한시도 내버려두지 못하고 학생의 의사와 관계없이 학원에 보내기 마련이다. 학원에서는 선행으로 학교에서 나갈 진도를 미리 가르치거나 복습시킨다. 이러면 수업량만 늘어난다. 이미 학원의 강도높은 시험용 수업에 지친 학생은 미리 수업받은 내용의 개념을 재차 수업하는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수업 태도가 불량해진다. 흥미가 떨어져 선생님이 시키는 발표나 각종 평가에 학생 스스로 능동적인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학원 때문에 학교가 질리는 셈인데 학교는 반드시 다녀야 해서 학생은 어찌 못한다. 부모는 자녀를 그렇게나 학원에 보내지만 이런 이중 구조로 인한 집중력 상실 때문에 성적 상승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오히려 성적이 하락하는 경우도 꽤나 있다. 학생의 성적이 오르더라도 사라지는 흥미를 어떻게든 어른들이 짓누르는 압박감과 멘탈로 부여잡아 억지로 버텨낸 증거이다.
2.1.3.2. 대안
성적 상승이 목적이라면 인터넷 강의, 시험 기간에 맞춘 문제집 풀기 등 학원보다 비용/시간적으로 좋고 효과적이며 심신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고 자기주도적인 공부법은 얼마든지 있다. 학생이 집이 불만이라면 용돈으로 독서실이나 스터디 카페를 가도 되고 야간자율학습도 방법이다. 학원은 학원이 납품받은 문제집 안의 유형을 가르치고 문제집에서 나간 진도로 숙제를 내는 게 고작이라서 학생 스스로 그 문제집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모든 방면에서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실제로 상술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기 의지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둬 애먼 보통학생들의 학부모의 비교갈굼소재가 된다.

이래서 자녀의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시험한다고 학원을 잠시 끊고 '학원 안 보내니까 공부 안 하더라' 라고 단정지으면서 다시 학원을 보내는 학부모도 있는데 진작에 학원이 학생의 자기주도 역량을 소진시키고 학원이 아닌 공간에서 보상심리로 실컷 놀게 길들여 놔서 풀어놓은 자녀는 몸이 시키는 대로 구는 것이다. 이 경우는 체질을 바꿀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대학 가면 자기주도로 공부하게 되어있으며 사람 성격은 대학에서 그렇듯이 시간이 걸리지만 바뀐다. 자기 진로를 위해서라면 입시 공부를 해야 함에 동의하는 자녀라면 시간이 넘쳐서라도 결국 공부를 혼자 붙잡게 되어 있다. 자녀가 공부에 동의하지 않으면 공부를 시키지 말고, 자녀가 입시에 뜻은 있는데 공부하는 실행력이 없다면 자녀가 학원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공부를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변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옳다.

2.1.4. 심각성

한국은 OECD 청소년 자살률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 자살률은 2020년에 인구 10만 명당 11.4명으로 올라 3위를 기록했다. 자살/통계 참고.

2022년 7월 11일, 유기홍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기자회견에서 설문조사에 참여한 전체 초중고 학생의 25.9%가 학업성적으로 '자해 또는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2023년 11월 8일, 국회 교육의원회 강득구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설문조사 결과 전문상담교사들이 경험한 학업 경쟁으로 인한 학생들의 심리·정서적 문제에 무기력감(68.1%), 자해·자살 충동(61.4%) 등이 있었다고 밝혔다.#

2.2. 두발규제

청소년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중에는 파마, 염색 등을 강하게 통제하는 곳들이 있다. 비록 조희연 교육감이 있는 서울특별시에서 2019년 기준으로 중ㆍ고등학교 두발을 완전 자유화하고 파마, 염색을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빛을 발할지는 미지수. 문제는 이런 권고안을 무시하는 학교가 한두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고가 들어가면 어느 정도 완화하거나 잠시 없애지만 금방 원래대로 돌아가기 일쑤다. 학부모와 교사들부터가 그런 규제 완화에 대해 억지스런 태도를 보이므로 이슈화 되어도 딱히 무서울 것은 없다.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보호는 모든 선진국에 존재하지만 그 나라들이 강압적인 용모 규제를 실행하진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청소년이 누리지 못하는 권리나 자유는 두발이나 용모에 관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미성년자 문서에 정리되어 있으니 참조할 것.

애초에 인권이란 것은 어떠한 의무나 대가 없이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는 기본권을 뜻한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인권(기본권)이 제한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헌법 제37조 제2항)[15]을 뜻하며, 그중에서도 정말 기본적인 용모와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은 사실상 규제가 불가능하다. 인간쓰레기 소리를 듣는 흉악범도 인권은 기본적으로 보장되는데, 학생이라고 인권이 제한받을 이유는 없다.

학교에선 교사 및 학생에게 '단정한 머리'를 하라는 것이지 두발을 규제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기준은 시대마다 달랐다. 1970년대까지는 반삭(일명 '밤송이머리', 3mm~1cm 이하) 이었다. 현재에도 '단정한 머리'에 대한 기준이 없다. 대다수 형용사처럼, 원천적으로 형용사 '단정하다'의 척도는 절대적이지 못하여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다음처럼 의문을 던져볼 수가 있다.
과연 김경호, 박완규, 김태원(부활) 등 장발은 단정한가? 단정하지 못한가?
김광규, 이덕화, 설운도 등 탈모인들의 머리는 단정한 머리인가?
홍석천, 구준엽, 드웨인 존슨(더 락) 등 스킨헤드는 단정한 머리인가?
결국 두발을 규제하는 건 다원주의상대주의 시대의 교육에 역행하는 발상인 셈이다. 학생들은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것을 보고 듣고 접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한민족들의 상투를 억지로 자르게 한 것을 탄압의 한 예시로써 교육하면서도 정작 그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을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통제하고 강압하는 것은 엄연한 모순이다.

2.3. 교복 강요

교복 문서의 인권침해와 목적전치 현상 문단 참고.

2.4. 사회의 전반적인 무관심과 교사들ㆍ학부모들의 체벌

청소년들이 주로 겪는 극심한 학업 강요 등의 문제의 근본적 문제는 사회에서 거의 문제시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기성세대의 사회관은 동아시아식 가족주의와 일본식 가부장제가 나쁜 쪽으로 융합해 극단적으로 말하면 가족 구성원을 가장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핵가족, 1인 자녀가 확대되면서 많이 개선되었지만 사회적으로 미성년자는, 반드시 누군가의 통제하에 있어야 하고[16] 겉으로는 나라의 미래니까 애정을 가지고 키워야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가족의 부와 명예를 위해 그에 맞는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공부하거나 최소한 사고 안치게 집밖에 내보내지 않는다라는 종속적인 구성원처럼 대우한다. 그로 인해 중학교를 들어간 이후의 학생이라는 존재는 말 그대로 공부 죽어라 해서 SKY 가서 판검사나 의사 되는 걸 목표로 관리하며 외적으로는 가능하면 사회에 보이지 않도록 어딘가에 들어가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도록 강요한다.

엄연한 인권침해임에도, 사회에서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묵묵히 참고 인내해야 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며 당연한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혹자들은 저러한 인권침해를 당한 후에 대학가서, 어른이 되어서 누리면 된다고 하지만, 명심할 것은 12년이라는 학창 시절은 인생에서 굉장히 긴 시간이고 그 시기가 얼마나 되든 간에 사람이 살면서 기본적으로 인권 침해를 인내해야 할 의무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학업 강요, 여가 부족 등의 압박은 이미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 시작되므로 근 10년 이상의, 일생에서 충분히 긴 시간이다.

또 저런 규정과 강요를 통해 사회 규칙의 원리를 배울 수 있다는 말도 많지만, 이건 옛날 노예제가 잔존하던 미국 남부에서 혹독한 처우가 흑인을 문명인으로 교양시킨다고 믿었던 노예주들의 발상과 비슷한 망발이다. 즉 인권 침해를 인내함으로써 사회 규칙을 익힌다는 말도 안 되는 발언들 자체가 이미 청소년을 동등한 인권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증거다.

비정상적인 방식 고수자들[17]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학생 인권의 전반적인 개선은 특히 자신이 당했던걸 후세대에게도 전가하는 보상심리 문화와 학벌주의 및 고졸들을 무시하는[18] 풍토가 아직 암암리에 존재하는 사회 특성상 세대가 뒤집혀도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관심한 것은 아니며 학생 인권에 대해 청소년들과 언론, 인권단체, 정치권에서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기에 계속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비정상적인 방식 고수자들이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인권이 잘 되어 있는 서구권과 영미권도 학교 폭력이 심각했고 학생 인권에 대한 침해가 악랄했다. 현재 영미권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이 학생 인권이 잘 되어 있는 이유는 청소년들과 사회, 언론, 인권단체, 정치권에서 학생 인권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노력을 했으며 무엇보다 비정상적인 방식 고수자들이 물갈이됐기 때문이다. 이것도 서구권에서는 일제에 시달리던 20세기 때 수십 년간의 관심과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이다. 당장 20세기와 비교해 굉장히 많이 개선된 것이지만 완전히 개방적인 서구권 국가들처럼 되려면 부족한 점들이 있고 단번에 나아지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사회에 남아 있는 것이 문제이고 끊임없이 개선에 나서고 남아있는 보수적인 부분들을 고치면서 세대가 교체되면 문화 탄압과 악습도 언젠가는 대부분이 사라지거나 해결될 수도 있다. 특히나 나중에 사회의 주축이 될 MZ세대의 경우 보상심리 문화에 찌들지 않고 악습 폐지에 그 어느 세대보다 앞장서는 만큼 개선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3. 침해 원인

3.1. 불안정한 교권

한국의 교권 침해는 극심한 수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배치되지 않으며, 제로섬이 아니다. 교권 신장이랍시고 고강도의 체벌을 허용하거나 학생인권을 제약하는 방향의 해괴한 선택지가 아니라면 교권과 학생인권은 같이 간다. 교권이 바로 서야 학교에서의 학생인권 또한 바로 설 수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뭘 해 주고 싶어도 학부모가 두려워서 이도 저도 못하는 현재 상황에 교육현장에서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대다수 학생에게 피해를 입히는 문제행동을 하는 일부 학생이나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학생은 교육을 어지럽히는 주범들이며, 분명히 교사의 계도의 대상이지만 과도하게 축소된 교권 때문에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너희들은 문제아야' 라는 교묘한 관념을 주입하는 것만이 학생 통제에 가장 유용하고 학부모 또한 수긍하는 편리한 수단으로 변모한다. 모두의 자존감을 깎으면서 위축시키고, 모두를 가시방석에 앉히면서 그렇게 해야만 단 한 명의 교사가 턱없이 부족한 교권으로 수십 명의 학생을 통솔할 수 있는 것이다.

3.2. 교육 착취를 조장하는 사회 구조

교육 방면에서 생기는 학생인권 침해의 주체들이 이렇게 학업에 혈안이 되어 학생의 의사와 선택을 억압하고 공부를 강요하는 원인은 사회 구조가 막장이고 학부모 또한 막장인 사회와 문화에 휩쓸릴 수 밖에 없는 나약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을 온전히 학부모들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학부모들도 이러한 사회 구조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사회 구조의 잘못도 크다.

3.2.1. 취업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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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1. 스펙위주 고용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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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2. 일자리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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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규모에 따른 극심한 근무 환경 차이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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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현실이 있다. 한국에서는 전문직이나 대기업/중견기업 정규직 등의 직업들과 일반 회사 근로자의 임금과 처우가 넘사벽으로 차이나고 일반 회사는 인권침해와 악폐습도 다양해 근로여건이 차라리 아르바이트가 나은 수준이라 좆소기업이라는 멸칭을 얻었다. 근로기준법 위반과 안전관리부실로 말미암은 산업재해는 두렵다. 현재까지도 악폐습 근절이나 처우 개선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널리 알려져 '좋은 일자리'들로 구직자들이 쏠리는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이 '나쁜 일자리'들의 처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정말로 자녀를 걱정하고 자녀의 어두운 미래를 두려워하는 학부모의 근심은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2023년 기준 중소기업이 기업의 99.9%를 차지하고 전체 기업 종사자의 80% 비율을 차지하는(#)데 '80%가 이 모냥이니 나머지 20%로 어떻게든 들어가야 좆소지옥을 피할 수 있다'고 자녀를 어떻게든 밀어넣으려는 추가적인 착취가 죄없는 학생들에게 발생하는 어이없고 분한 상황이 계속된다.

이 일자리의 양극화 현상은 너무도 심각해서 고등교육 이수율을 넘어 석사, 박사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30대 직장인도(#), 초등학생도(#) 의대 입시에 뛰어드는 지경이다.

현실적으로 모두를 전체 정원의 35%밖에 안 되는 수도권 대학, 21%밖에 안 되는 인서울 대학에 쑤셔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력과 스펙을 높인다 한들 대기업이나 '좋은 일자리'에 꼭 취직하는 것도 아니며 상위권 경쟁자들 사이에서 또 벌어지는 상상 이상의 과열 경쟁에서 탈락해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학부모가 학생의 현재 위치에 관계없이 그 바늘구멍에 학생을 밀어넣으려고 온갖 착취적인 민간요법들을 총동원하는 데는 이런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뼈아픈 현실이지만 당연하게도 이 또한 학생 스스로 정보를 얻어 판단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 무언가를 학생에게 강요하고 선택권을 빼앗으며 학생인권을 침해할 타당한 이유는 될 수 없다.

3.2.2. 통제의 역사

현재의 학생들 그 이전 살아온 세대들은 국가적으로 아니더라도 엄청난 통제 문화에서 살았다. 오늘날 극단적으로 변질되어 서열질, 부모의 자녀 통제, 시댁/처가의 행패에 이용되는 유교는 본디 어른을 공경하는 정말 좋은 사상이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생긴 다양한 악습, 그 악습을 경제성장에의 국가적 역량 집중과 냉전 최전방에 있어 옛날만 해도 사회에 뿌리내린 군대 문화로 인해 위계 질서와 절대복종의 권력, 통제적인 면만 강조되고 정당화되었다. 야간 통행금지가 1982년까지 유지되었고 교련도 1994년까지 유지되었다. 북쪽의 적대국으로 둘러싸여 있고 치안 면에서도 1980년대까지 깡패, 조폭, 성추행범들이 마구 돌아다니던 사회였으니 통제가 당연시되고 납득되었다.

아동인권운동가 방정환이라는 인물이 역사에 있지만 옛일이다. 학생인권은 커녕 노동권 등 인권 개념의 기본 중의 기본조차 없던 사회가 한국의 가까운 과거이니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성 세대의 학생인권, 아동 인권에 대한 후진적인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강산이 몇번이나 바뀌어서 최저임금과 사회보장제도가 충실해진 오늘날임에도 불구하고, 공장에서 심심하면 지인이 사지가 잘려 돌아오고 가난하게 살면 갑자기 위생병에 걸려 죽었던 세대가 시대착오적 인식을 학원가의 세뇌로 증폭당한다면 학생의 미래의 소득상승 가능성을 부여잡기 위한 통제가 상당히 합리화된다. 흥미 없는 공부에 수갑을 채우는 학원을 겪어 보지 않은 세대는 더러운 집안에서 바퀴벌레나 곰팡이와 씨름하던 기억, 가난해서 교사에게 촌지 덜 냈다고 지적듣고 학교에서 어울려 주는 이 없어 가난한 아이들끼리만 어울렸던 기억이 학원보다 괴로우리라 여길 지 모른다.

이처럼 통제에만 익숙해진 기성세대가 사회의 상층부를 차지하여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으니 공과 사 막론하고 인권 침해가 정당화되는 분위기를 전반에 깔고 있으며, 이 안에서 자란 신세대의 인성이 파괴되어 현재 학생들에게 인권 침해를 또 행사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3.2.2.1. 비판
갈수록 학업 강요의 민낯이 현실에서 그리고 인터넷의 많은 부모들의 경험담에서 드러나고는 있다지만, 위 이유들로 공부 일과만을 위한 하늘 같은 부모의 간섭과 통제를 거역하는 자녀의 몸부림이 무시당하고 자녀의 의사가 존중받지 못하는 가정이 존재하는 현실이다. 부모는 하늘이 아니고 그냥 부모고 자녀의 미래를 위한다고 당사자인 자녀의 말을 씹는 건 이상하다. 당사자의, 그리고 자녀의 말을 무시하면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공부든 게임이든 자녀에게 아니 타인에게 학교/직장 바깥 일을 강요하는 것을 찌질하게 여기는 구미권과 비교하면 부끄러운 문화다.

유교가 아무리 효를 강조한다지만 그게 부모가 자녀를 인격이 아닌 소유물 취급하면서 불효를 제 멋대로 정의하고 미성숙하고 작은 자녀에게 수감자마냥 학업이라는 원죄와 업보를 씌울 자격을 부여하는 건 아니다. 이러한 행태는 조상들이 통탄할 일이다. 효의 근간인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가정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 이 또한 부모가 행하는 패륜이다.

노동권 신장에는 분신자살한 전태일과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벌써 1986년에 교육열에 학생이 자살하고, 그 실화를 소재로 소설이랑 영화까지 만들어지고 그 후로도 학업 스트레스로 수많은 학생들이 자살했는데, 아직도 후진적이고 미개한 통제문화의 근절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고 일부 학생들은 핍박받고 있다. 학생은 학부모한테 노동자들이 정부와 사용자에게 했던 것처럼 운동이나 파업을 할 의지도 힘도 단합력도 없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죽고 대한민국이 사라지면 이것은 끝날 것이다. 이 명제는 이게 최악이었던 2010년대까지를 거쳐 학부모들의 점진적인 인식개선이 이뤄지는 현재에 말도 안되지만 저출산으로 실현 중임을 생각하자.

3.3. 문화

3.3.1. 아동의 사회적 지위

전통적으로 인권과 평등은 그 대상이 되는 객체가 사회적으로 힘을 가지게 되면서 이루어진다.[19] 대표적인 예시가 여성 인권인데, 양차 세계대전으로 후방(사회)을 여성이 차지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부라는 사회적인 힘을 가짐에 따라 성평등이 이루어진 것이다.[20]

그러나 문제는 우선 사회적 지위와 권한, 힘과 별개로 평등과 인권이 이루어져야 하는것이 21세기 서양 민주주의 사상의 근간인데, 이 과정에서 현실과의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여기서 숫자와 그 정도가 가장 높은것이 학생이라는 사회 계층이다. 돈을 벌수 없으니 사회적 권리와 지위는 낮은데, 상식적으로 모든 구성원은 평등권과 인권을 부여받아야 한다. 이러다보니 원칙과 상식에서 벗어난 불평등과 인권 침해와 부조리가 발생되는 것이다.[21]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실질적으로 타파하기 위해서는 자연적으로 해결되기 힘들며, 학생들 스스로의 인권 운동과 같은 적극적인 노력과, 사회적 관심, 학생들의 참정 보장이 필요하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18세 선거권이 2019년에야[22] 주어지기 시작했다.

3.3.2. 인생사 문제

학생 시절이 인생에서 짧은 기간이라는 특성 때문에 사회인의 학생 인권에 대한 관심이 적다. 직장생활은 60대에 은퇴하기 전에 30년 정도라는 긴 시간 동안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해야하는 필수나 다름없는 생활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도 많고, 20~30대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직장생활 문화를 더 낫게 개선하는 것이 더디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그렇지 못하다. 초등학교는 6년, 중학교, 고등학교는 각각 3년만 지나면 졸업하며 그 시간만 버티면 본인을 괴롭혔던 선배나 교사는 다시 얼굴 볼 일 없는 남남이 되니 그냥 참고 견디자는 풍조가 강할 수밖에 없으며 20대만 되어도 학생 인권 문제가 더 이상 본인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기 때문에 개선을 하려는 의지도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당하는 인권 문제에 관심갖기도 바쁜데 학생 인권에 신경 쓸 여유도 없을 것이다.

3.3.3. 물질적 발전과 후진적 시민의식의 괴리

상술한 유교사상을 국교로 삼은 왕국이 20세기 초까지 한반도를 지배했다.
문제는 우리는 조선 말기의 혼란 - 일제강점기 - 6.25 전쟁 루트를 거쳐오면서 민주주의시민의식, 인권의식이 자라날 여유가 없었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는 20세기 말까지 학생, 군인, 직장인 등을 막론하고 사실상 모든 국민이 심각한 탄압과 인권 유린을 당했다.[23]

이는 모든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지만, 학생 인권은 유독 심했다. 예시를 들자면 일제가 주도하여 세운 근대식 학교, 즉, 한국의 전형적인 학교 구조인 철조망, 담으로 둘러싼 교사에, 줄세우기를 위한 넓은 운동장, 수위실로 경비를 하는 구조 자체가 모두 서양 군사학교의 모습이다. 일제가 어떤 의도로 학교를 세웠으며[24], 이것이 청산되지 못하고 계속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학교의 탈을 쓴 교도소라 불릴 정도다.#, #

해방 후, 6.25 전쟁을 거친 한국 사회는 완전히 뒤엎어졌다. 기존 서민층들은 교육을 통한 수직적 신분 상승을 꿈꿨고, 이는 수준 높은 공교육을 만들어내긴 했으나 그 장점을 덮을 정도의 살인적인 교육열을 만들어내게 된다.

당장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를 듣고 자란 세대들도 대학생 시절에 1997년 외환위기 크리를 맞아 엄청난 취업 경쟁에 시달리면서 각종 스펙 쌓기에 바빴다보니 신경쓸 여유가 없었고 그 이후 세대들도 마찬가지여서 학생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낼 여력이 부족해진 것이다.

그나마 2020년대들어 시민의식이 많이 성장했다고는 하나 위에서도 언급했듯 두발규제와 학업강요를 비롯하여 교사들의 권위주의적인 통제를 당하고 자란 성인들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용하여 이들이 나중에 교사가 된다 하더라도 학생 인권 향상을 방해하는 입장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3.4.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의한 학생 인권의 재침해 위기

대한민국에서의 학생 인권은 21세기 들어 체고를 제외한 특목고, 국제중, 국제고와 신설된 학교들을 시작으로 학생 인권이 존중되기 시작했고, 2011년 3월 이후 학생인권조례가 일부 지자체에서 제정되며 개선되는 양상을 보였다. 직접체벌은 물론 간접체벌도 지양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학부모의 학생들의 대우와 인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하지만 2023년 양천구 초등교사 피폭행 사건서울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25]의 원인이 학생 인권 증진으로 인한 교권의 하락이라며 학생을 제외한 정치계와 사회, 여론, 교육부로부터 다시 증진된 학생 인권을 교권이라는 명목으로 억제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보수정권인 윤석열 정부는 정부와 대통령의 입장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거나 개정하여 교권이 다시 향상되는 정책 기조를 2023학년도 2학기부터 실행시킬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 교권과 학생 인권은 절대 공존할 수 없는 불구대천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상충되는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권을 늘리기 위해 겨우 정상화했던 학생 인권을 다시 후퇴시킨다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러한 학생인권의 후퇴를 우려하기도 했다.#

물론 학생인권조례 폐지 여부와 무관하게 지금의 교직사회는 학생인권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1980~1990년대생이 주축이기 때문에 무차별한 교내 체벌, 두발규제나 화장금지, 휴대폰 수거 같은 정책이 부활될 확률은 낮긴 하겠지만 아직까지 교칙 개정 권한은 1970년대생 이상의 기성세대가 쥐고 있고 1980~1990년대생도 권위주의 교육의 영향을 받은 탓에 인권의식이 낮은 사람들도 제법 있는데다[26] 20대만 되어도 학생 인권은 더 이상 본인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인권이 재침해 위기가 마냥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위에서 MZ세대가 인권 향상에 힘을 쓰는 세대라고 서술했으나 이건 대학생이나 직장인을 비롯한 동일 혹은 유사 신분을 대할 때일 뿐 아동이나 청소년을 대할 때는 젊은 꼰대를 시전하여 되려 '학생들은 화장, 염색하지 않는게 당연한 것이다'를 내세우며 학생 인권을 개선하는 데에는 혐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선한다 해도 그건 본인이 누릴 특혜가 되지 않으며, 나중에 학생들을 직접 상대하는 교사가 된다고 한들 위의 학칙이 학생 관리하기 편하다는 느낌을 받으니 그대로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이끌려지기 쉬워 더더욱 학생 인권 향상의 기미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

3.4.1. 국민의힘 광역의회의원들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3.4.1.1. 충청남도
충청남도의회에서는 다수당인 국민의힘 도의원을 중심으로 2023년 12월 15일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통과시켰으나, 교육감의 재의결 요구로 다시 본회의에 회부됐다.

국민의힘이 재적 의석의 70%을 넘는 상황에서 재의결 가능성이 높았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반란표가 발생하여 폐지안은 부결되었다. 관련 기사 이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2024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2개 선거구[참조]서 모두 당선되고, 아산 1 선거구의 도의원 오안영이 국민의힘을 탈당해 민주당으로 복당하면서 민주당 의석수가 증가해 학생인권조레가 그대로 폐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국민의힘 도의원들이 인원을 끌어모으기 위해 출석 정지된 의원까지 발의에 참여시키는 등의 엄청난 노력으로 안건을 다시 가결시킨 후, 이탈표를 막기 위해 40여개의 다른 안건들과 달리 투표용지에 기입하는 투표로 처리하는 등의 기염을 토하며, 결국 네번째 표결만에 가결시켰다. 관련 기사

다만 충청남도교육청에서 대법원에 제소를 하여, 아직 폐지가 뒤집힐 수도 있는 상황이다. 관련 기사

또한 학생인권조레가 폐지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이후 두발, 복장규제 등을 부활시키는 학교가 생기며 위와 같은 우려들이 현실화되고 있다.관련 기사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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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귀적으로 학생 인권을 포함해서[2] 즉, 싫으면 자퇴해 라는 말은 논리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 애초에 이 문서에서는 학생의 인권, 그리고 침해 과정에서의 원인인 교육체계에 대해 서술하는데 이러한 것들에 대해 반감이 들면 그냥 자퇴하라는 것은 문제점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접근하면 우리의 교육체계는 잘못되지 않았으니 싫으면 너네들이 나가라 하는 꼴밖에 더 되지 않는다. 따라서 교육 체계가 싫으면 나갈 방법과 그 이후에 대해 보장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잘못된 교육 체계를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3]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자퇴의 인식이 좋지 않은 점도 있다. 하고 싶은 일과 진로가 명확해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자퇴를 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상 자퇴생은 좋은 시선을 받기 힘들다. 예를 들어 미용사를 하고싶은 고등학생이 현재 다니고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나서 미용학원에 들어가 실기를 배우고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해 미용실을 차려서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이더라도 검정고시를 봤다고 하면 그것만으로 비난을 받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4]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사진. 00년대부터 목격되었다고 전해진다. 영미권에도 school is prison이라는 밈이 있는 것을 보면 얼핏 사람 사는 곳이 똑같아 보이지만 간수가 통솔하는 권위적인 공간을 학교에 빗댄 말 그대로 밈일 뿐이고, 한국의 이 사진은 학생=죄, 공부=벌로 빗댄다는 데서 좀 더 진지하게 다가온다. 잘 살펴보면 학교, 교실, 출석부, 교복, 석방은 모두 시의 분위기의 소품인 반면 학생=죄, 공부=벌이 이 짤이 시사하는 핵심이고 강렬하게 압축한 한국교육의 잔인함이자 공감과 유행의 원인임을 파악할 수 있다.[5] 굉장한 모순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소득 행동과 가정일을 제외하고도 온갖 오락을 즐기면서 아이들만 통제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고 억압해 가면서 이를 압박하니 반발과 충돌이 일어난다. 아이를 공부시키는 방법 중 제일 좋은 건 같이 공부하는 거고 아이와 이야기하고 싶으면 같이 놀아주는 것이라고 한다.[6] 어른인 교사 앞에서 수업을 듣지 않고 자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예의없게 생각할 수 있는데,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닌 학교라는 공적인 장소에서, 돈을 받고 일하며 학생들에게 수업을 제공하라는 직무를 맡고 있는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수업을 무조건 듣게 할 권리는 당연히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인식과 생각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이제는 자신들의 수업 듣기를 강요하지 않는 교사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심지어 학생들도 점차 이런 문화에 적응되며 당연시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7] 수업 시간에 자거나 다른 짓을 하는 것들을 교사가 제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관점이 생소할 수 있다. 너무 대한민국의 교육 체계에 익숙해져 있어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라 원래 그런가보다 하며 받아들였을 수 있지만 애초부터 교사의 권리와 역할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8] 누군가는 언어폭력의 위험성에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언어폭력이 자녀의 정서 형성에 있어 매우 큰 악영향을 끼치는 무서운 폭력이다. 성장기에 형성된 정서가 인생 끝까지 가니까 신체 폭력 못지 않게 심각하게 위험하다.[9] 학원에서 퇴원 징계를 받은 원생의 대부분이 부모의 강요로 인해 억지로 온 것이다. 퇴원을 당하면 위로는 커녕 가차없이 집에서 내쫓아버리는 것이 한국 부모의 실태다.[10] 맘카페만 가봐도 자녀의 성적이 얼마나 나왔네 하면서 성적표 사진 올리고 서로 비교질하는 글이 시험 끝나고 성적표 나오는 시즌마다 썰물처럼 쏟아진다. 청년 입장에선 맘카페 접근조차도 혐오스러울 것이다.[11] 자녀가 공부를 못 해서 이렇게 되는 거 아니냐고 누군가는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리 공부를 잘 하는 자녀라도 더욱 혹독한 기준을 들이밀며 내쫓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화를 푼다.[12] 자녀가 나쁜 어른이 되면 자식의 성장기에 사랑해주지 않고 관심, 대화, 존중 없이 계속 욕하면서 의지를 짓밟아 둔 부모, 부모자녀관계를 정없는 갈등관계로 만들어 버린 부모의 책임이 없을까? 부모들은, 고문이나 다름없이 금지하고 시키는 부모의 잘못이라는 사실을 자녀가 말라비틀어진 나쁜 양파 어른으로 성장하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하곤 한다.[13] 직업의 귀천의식을 강요하며[14] 현실은 이보다 많이 다니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15] 국가 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그것도 법률로써! 즉 법률에 의하지 않은 기본권 제한은 위헌이다.[16] 특히 이런 관념이 대한민국에 강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군가가 통제받지 않은 채 혼자 있는 것 자체를 한국인들은 불안하게 생각하며 끊임없이 통제하에 두기 위해 결혼을 강제하거나, 조직생활을 강제하는 식으로 모든 한국인은 반드시 누구 하나의 관계를 통해 통제하려고 하는 사회적 압박이 강하다. 특히 연애도 못하고 조직생활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배척되는 히키코모리는 한국에서 사회적인 위험분자, 놈팽이 취급을 받는다.[17] 70대 이상의 고령층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20~30대에서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18] 특히 자퇴생, 검정고시 생을 더욱 안 좋은 편견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19] 구체화 된 민주주의 국가인 고대 그리스 역시 시민권 즉 무장하고 싸울 수 있는 일부 남성만 정치적 평등이 되었다. 여성이 평등권을 받지 못한 건 무장과 전투에 참여가 힘들었기 때문이다.[20] 여성 인권이 올라 간 게 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 노동자들이 부를 쌓으면서 부터이다. 절대로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21] 학생의 권리를 보장해줄 단체와 기관이 있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힘을 지닌 부모 눈치를 안 볼 수 없다.[22] 12월 27일 개정으로 사실상 2020년부터다.[23]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68혁명을 기점으로 아직 잔존하던 반인권적, 반민주적 풍습들이 하나둘씩 개선되었으나 우리는 정반대로 1.21사태,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으로 반공 분위기가 심화되어 68혁명 같은 반검열 분위기가 일어나기 어려웠다.[24] 정확히는 일제의 군국주의가 가장 절정에 달한 일제 말이었다.[25] 가해 학부모가 없는 사건이다.[26] 당장 이들이 대학생이었던 시절에는 대학 선후배간 똥군기도 만연했다.[참조] 당진 3, 청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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