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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02:06:20

교실 이데아

1. 개요2. 가사3. 사건사고
3.1. 교실 이데아 소동 1 (1994~1996)3.2. 교실 이데아 소동 2 (2018~)3.3. 표절시비
3.3.1. 핑크 플로이드 The wall 퍼포먼스와 유사하다?3.3.2. 비스티 보이즈 표절 논란

1. 개요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수록곡
발해를 꿈꾸며 아이들의 눈으로 교실 이데아 내 맘이야 제킬박사와 하이드 영원 널 지우려 해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의 네 번째 트랙 수록곡이자 3집 활동 당시 두 번째 활동곡.

한국의 교육 문제를 직격으로 비판하는 노래이며,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문제를 품고 있는 공교육 때문에 현재에도 그 메시지가 계속 회자되는 희대의 명곡이다.

후일 H.O.T.(전사의 후예, 열맞춰), 젝스키스(학원별곡)등 초창기 아이돌 가수들에게 학원문제를 꼬집는 노래를 만들게 한 장본인스러운 노래이기도 하다.


힙합 DJ계의 레전드인 큐버트가 이 음악의 DJ 스크레칭 작업에 참여한 것도 아주 유명하다. 3집 정규 앨범 버전에 삽입되어 있는 스크래처가 바로 큐버트의 작업물. 이때 기억을 회상하길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싶은데 서태지가 계속 다시, 다시를 요구했고 자기도 오기가 생겨 '너 죽고 나 죽자' 생각으로 판을 미친듯이 긁었다고 한다.


교실 이데아 라이브(19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공연)

<교실 이데아> 라이브는 아예 크래쉬가 편곡까지 전부 새로 해서 크래쉬스러운 사운드를 내놓았다. 다만 멀티큐브와 연동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했기에[1] 천하의 크래쉬가 (미리 합주를 녹음해놓긴 했지만) 핸드싱크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곡에 피처링을 한 안흥찬이 당시 일화를 밝혔는데 링크 내 목소리가 굵고 거칠다보니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서태지 씨는 그러기는 커녕 잔향까지 그대로 사용해 개인적으로 만족했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TAP SONIC에도 등장한 바 있는데, 단타+긁기의 미친 듯한 난이도 때문에 8레벨 보스곡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태지의 솔로 커리어에서 이 곡은 자주 연주되지는 않지만, 서태지에게 큰 행사라고 할 수 있을 때 연주된다. 피쳐링인 안흥찬의 임팩트가 꽤 컸던 곡이라 그런지 서태지가 안흥찬의 파트를 부르는 내 맘이야와 달리 안흥찬 파트는 크래쉬가 없더라도 스피커로 그대로 송출한다.

최초의 솔로 활동 시작이던 6집 컴백스페셜의 다섯 번째 곡으로 쓰인 이후 2004 ETP와 교감 서태지에서 연주되었다.

2007년 15주년 기념으로 리믹스하였으며[2] 2008의 Seotaiji Symphony에서 07 rmx 버전을 토대로 라이브되었다. 서태지 활동의 제3의 막을 올린 9집 컴백쇼인 Christmalo.win에서도 연주되었다.

노래 가사 때문에 교사와 상당수 학부모들에게 항의를 받아 금지곡으로 지정될 뻔했다.[3] 사실 학생들을 입시 명목으로 과도하게 혹사하는 문제 자체는 이미 1960년대 박정희 때부터 한국사회의 문제점 하면 늘상 지적되왔던 것이기는 했고, 시위현장에 가면 들을 수 있던 민중가요와 비교해볼 때 정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노래는 아니기는 했지만(...) 민중가요와 비교할 때 교실 이데아는 카메라 출동을 노래로 만든 것이다.[4] 이 당시에는 청소년 탈선 방지를 명목으로한 교복부활이 완료된지 얼마지나지 않았고, 두발 단속도 강화하는 흐름을 보였으며, 그러면서도 체벌 남용과 촌지 문제는 언론에 기사가 심심치않게 날 정도로 횡행하는 등 당시 사회의 대세였던 문민화와 정반대되는 양상을 보였었다, 이런 교육계의 흐름에 전면적으로 반발하는 노래가 나오면서 대히트를 쳤으니 당대 교육인들이 난리낼만했기는 했다.

그리고 이 노래를 귀에 대못이 박히게 듣고 자란 학령기 아동청소년[5]들은 2023년 현재 대부분 초중고생들의 학부모가 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노래가 나왔을 때보다 지금이 더 나아졌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때보다 더 심해진 학교폭력, 학부모 갑질, 교권 추락, 청소년 범죄들을 떠올리며 '글쎄요...' 라고 할 것이다.

2. 가사

교실 이데아

됐어(됐어) 이제 됐어(됐어)

3. 사건사고

3.1. 교실 이데아 소동 1 (1994~1996)

교실이데아는 크래쉬(Crash)의 보컬 안흥찬의 참여도 화제였지만 그가 맡은 파트의 백마스킹 '피가 모자라'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몬데그린의 일종인데, 이 사건으로 서태지 사탄 숭배설이 크게 흥했다. (자세한 내용은 피가 모자라 문서 참조) 인터넷 대중화는커녕 PC통신망조차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도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서 수많은 테이프들이 절단 났다. 그것 때문에 앨범을 두 번 산 아이들도 많았다.[6] 참고로 이 사건에서 서태지 자신이 굉장히 충격을 받았는지, 15주년 앨범의 교실 이데아 리믹스 뮤직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는 '피가 모자라' 백워드 마스킹이 나오면서 얼굴에 덮인 신문지를 찢어버리는 장면이 담겨 있다.

'근황올림픽'에 출연한 이주노가 해당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셋이 서태지 집에 있는 스튜디오에 모여 실제로 해봤고 진짜 그런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신기해했다고 한다. 만약 서태지가 의도했다면 '이거까지 하면 진짜 천재인데'라고 생각했지만 서태지도 신기해해서 의도한 것은 분명 아니라고 못박았다.출처

3.2. 교실 이데아 소동 2 (2018~)

헌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하고 서태지가 대중의 관심에서 과거보다는 조금 멀어지자 이번에는 외국에서 문제가 터졌다.

방탄소년단의 광복절 티셔츠 착용을 문제삼아 방송 및 입국을 거부한 일본의 우익들 사이에서 터져나온 문제로, "나치를 옹호하는 방탄은 악하다"며 여러 가지 근거를 댔는데, 하필 그 근거 중 하나가 25주년 공연 교실 이데아 무대에서 고전 군복패션을 하고 다함께 고유의 깃발을 흔드는 장면이었다. 이에 이번에는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날조로 가득 찬 동영상이 만들어져 이 곡이 공격받았으나, 이걸 본 해외 방탄소년단 팬(ARMY)들이 벌떼같이 들고일어나 댓글싸움에 참전했고.... 그 이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교실 이데아 25주년 Time:Traveler (feat.BTS) 영상.

댓글란을 보면 일본 넷 우익들이 달려들었다가 ARMY들에게 역으로 털린 흔적을 볼 수 있다.

3.3. 표절시비

3.3.1. 핑크 플로이드 The wall 퍼포먼스와 유사하다?


위 25주년 BTS 콜라보 공연과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콘서트와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3.3.2. 비스티 보이즈 표절 논란


비스티 보이즈의 'Pass the Mic'를 표절했다는 논란도 제기되었다. <Pass the Mic>의 'Yes Yes Y'All, Yes Yes Y'All I'm always on time never the less, y'all'과 <교실 이데아>의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부분이 유사하다는 것. 위 영상에서는 2분 35초부터. 옹호 입장에서는 단순히 Y'all 발음의 라임이 유사한 것이고 이러한 라임은 클리셰이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게토 보이스'라는 힙합 그룹의 2005년도 노래에도 이러한 라임이 등장한다. 링크

다만 교실 이데아 특정 파트는 단순히 Yes Yes Y'all 뿐만 아니라 그 뒷부분인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까지 유사하다. 힙합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인 Yes Y'all과 달리 뒷부분 "I'm always on time never the less, y'all"은 Pass The Mic에서만 나온 부분이기 때문에 표절 여부와 상관없이 이 파트가 비스티 보이즈 곡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는 다수가 동의하고 있다.[7] 주로 '표절이다' VS '랩을 따라한다고 표절은 아니다'로 논쟁이 벌어진다.

참고로 서태지는 다음해(1995년) 발표한 Come Back Home에서는 아예 'Yes yes y'all' 사운드를 샘플씨디에서 따와서 # 사용하기도 했다.[8]

공식적인 표절로 판명난 바는 없지만 잊을 만하면 인터넷에서 유저들끼리 싸움이 붙는 논쟁 중 하나이다.


[1] 지금은 컴퓨터로 싱크 맞춰버리면 끝이지만, 당시 멀티큐브는 그냥 영사기 같은 거라, 필름이나 비디오테이프로 구동되었다. 한 마디로 싱크 안 맞으면 절딴나는 시스템. 이걸 방지하려면 방송국 부조를 몽땅 옮겨와야 한다. PPT도 없던 시절.[2] 결국 무산된 2005 ETP를 위해 편곡했던 데모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추정된다.[3] 1980년대에 초반에 비슷하게 민해경, 김현준의 내 인생은 나의 것이 (교실 이데아보다 수위가 훨씬 덜한 노래였음에도) 학부모들의 항의로 방송사에서 금지곡으로 지정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교육계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교실 이데아와는 달리 부모에게 자신이 책임질 수 있다고 강변하는 내용이기는 하지만.[4] 애초에 독재정권기 때인 박정희와 전두환 때에도 교육 문제는 신문기사나 시사 프로그램 소재로 잘만 나왔고,(사실 정치적 소재 대신 쓸 수 있던 것이 사회문제라서 그렇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기 때에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히트를 치는 등 교육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는 검열삭제될만한 내용이 아니기는 했다.[5] 1976년 3월~1988년 2월생. 중고등학생으로 한정하면 1982년 2월생까지.[6] 그런데 피가 모자라 사건 당시 서태지 본인은 처음에 즐겼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제 백마스킹 같은 걸 아는구나 싶어서였다고. 근데 반품이 되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한다.[7] 마치 날개 잃은 천사의 인트로 랩 파트인 "천사를 찾아 싸바싸바" 파트가 Oh Carolina의 특정 부분과 유사하여 논란이 된 것과 유사하다.[8] "~터질 것 같은 내 심장은" 부분 시작되기 앞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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