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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0:59:34

핌 베어벡

핌 페르베이크에서 넘어옴
핌 베어벡의 역임 직책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utch_Antilles_FA.png

9대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66대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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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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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
클럽
파일:페예노르트 로테르담 로고.svg

41대

}}} ||
네덜란드의 前 축구인
파일:ThankyouVerbeek.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핌 페르베이크
Pim Verbeek[1]
본명 페터르 팀 디르크 페르베이크
Peter Tim Dirk Verbeek
출생 1956년 3월 12일
자위트홀란트주 로테르담시
사망 2019년 11월 28일 (향년 63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적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95cm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로다 JC (미상)
NAC 브레다 (미상)
스파르타 로테르담 (1974~1980)
감독 DS '79 (1981~1984)
우니타스 호린험 (1984~1987)
더 흐라프스합 (1987~1989)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989)
FC 바게닝헌 (1991~1992)
FC 흐로닝언 (1992~1993)
포르튀나 시타르트 (1994~1997)
오미야 아르디자 (1998~1999)
대한민국 대표팀 (2001~2002 / 코치)
용 PSV 에인트호번 (2002~2003)
교토 퍼플 상가 (2003)
퀴라소 대표팀 (2004)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2004 / 수석 코치)
아랍에미리트 대표팀 (2005 / 수석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2005~2006 / 수석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5~2006)
대한민국 대표팀 (2006~2007)
호주 대표팀 (2007~2010)
모로코 U-23 대표팀 (2010~2014)
오만 대표팀 (2016~2019)
기타 스파르타 로테르담 (2007~2008 / 단장[2])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
3.1. 한국 대표팀 코치3.2. 외유기3.3. 한국 대표팀 수석 코치 및 감독3.4. 호주 대표팀3.5. 모로코 대표팀3.6. 오만 대표팀
4. 사망5. 기타6. 발언으로 알려진 루머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네덜란드의 전 축구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코치를 맡고[3]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수석 코치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4] 맡은 후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았다. 대한민국에서 활동할 때에 '곰가방(Bear Bag)'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친근한 이미지였다.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서 3위에 올랐으나, 경기력에 대한 비판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그 후에는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참가했고 선전하였다.[5] 여담으로 호주는 이 대회부터 AFC 소속이었다.

2019년 11월 28일 암투병 끝에 사망하였다.

2. 선수 경력

현역 시절은 네덜란드 에레디비시로다 JC, NAC 브레다를 거쳐 스파르타 로테르담에서 6시즌 뛰었다.

3. 감독 경력

현역 은퇴 이후 1981년 DS'79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지도자 생활이 시작되었다. 1984년 우니타스 호린험, 1987년 더 흐라프스합 감독을 거쳐 1989년 페예노르트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다만 워낙 어린 나이에 감독을 맡았었고, 성적까지 좋지 않아서 이 시기엔 페예노르트 팬들 사이에선 평가가 별로 좋진 않았다. 더군다나 베어벡은 선수 시절엔 페예노르트의 지역 라이벌팀인 스포르타 로테르담에서 뛰었었다. 참고로 FM에서 열어보면 베어벡이 싫어하는 구단에 페예노르트가 등록되어 있다.

이후 베어벡은 와게닝겐, 흐로닝언, 포르튀나 시타르트를 거쳤고 아시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8년 하반기부터 오미야 아르디자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부터이다.

3.1. 한국 대표팀 코치

1 이운재 · 2 현영민 · 3 최성용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유상철
VC
· 7 김태영 · 8 최태욱
9 설기현 · 10 이영표 · 11 최용수 · 12 김병지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이민성 · 16 차두리
17 윤정환 · 18 황선홍 · 19 안정환 · 20 홍명보
C
· 21 박지성 · 22 송종국 · 23 최은성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거스 히딩크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항서
스태프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해성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이후 잠시 네덜란드 대표팀 스카우터를 맡다가 거스 히딩크가 이끌게 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맡아[6]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에 진출 당시 뒤에서 공헌하였다. 가끔 그 때 경기 보면 득점 이후에 박수치는 그가 보인다. 월드컵 이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의 감독으로 취임한 히딩크와 행동을 같이 하여 PSV의 2군 감독을 맡았다.

3.2. 외유기

2003년 7월 2일 교토 퍼플 상가 감독에 선임되었다가, 부진으로 인해 교토 퍼플 상가의 J2리그 강등을 책임지며 1년만에 사임, 2004년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하였다. 이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따라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수석 코치와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를 맡았다.

3.3. 한국 대표팀 수석 코치 및 감독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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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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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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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김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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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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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쇼베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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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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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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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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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고재욱
(박종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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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대

박종환
(박종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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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차범근
(차범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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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김평석
(차범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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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대

허정무
(허정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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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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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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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히딩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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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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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류

(코엘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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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보카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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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벡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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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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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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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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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슈틸리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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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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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대

파울루
벤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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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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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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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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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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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tatic.goal.com/92960_heroa.jpg

오른쪽은 압신 고트비 코치.

2005년 가을, 딕 아드보카트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수석 코치를 맡아 2006 FIFA 월드컵 독일을 함께 하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종료 이후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07년 2월 영국 런던의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열린 유로 2004 챔피언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는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팀을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본선으로 이끌었고, 본선에서는 3위로 대회를 마쳤지만, 6경기 3골의 저조한 득점력으로 비판을 받았다.[7] 결국 2007년 7월 29일, 자진 사퇴하였다.

토너먼트 3연속 승부차기라는 기행 속에서 이운재의 승부차기 선방만큼은 매우 빛을 발해 3,4위전에서 일본까지 이기고 3위까지 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룸살롱 사건이 터지면서 일부에서 먹은 이운재가 술 안 먹은 나머지보다 낫다는 말도 한다.

사실 베어벡 감독은 운이 매우 좋지 않았다. 아시안컵 직전부터 주력 선수들인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EPL 3인방은 부상으로 이미 엔트리에서 대거 이탈하였고, 박주영은 독일월드컵 스위스전에서 드러난 피지컬 열세가 리그에서도 두드러져 2006년 시즌부터 하락세였던 박주영은 부상으로 2007시즌 리그 11경기 출장에 그쳤고, 안정환도 수원에 입단하긴 했으나 뒤스부르크와 계약이 끝나고 반년이 넘는 시간을 무적으로 보낸 탓에 폼이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그나마 믿고 뽑았던 이동국미들즈브러에서 최악의 시즌을 보낸 뒤 잔부상에 시달려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등 주전 공격진은 사실상 전멸당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선 극단적인 수비축구로 갈 수밖에 없었다.

득점력은 빈곤했지만, 실점도 불과 6경기 3실점이었기 때문에 탄탄한 수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아드보가트 시절에도 완전히 정착시키지 못했던 4백으로의 완전한 전환이 이뤄지는 시기로 수비 부분에서는 어느정도 성공적이었다고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 시기의 빈곤한 득점력으로 인해 대표팀 역대 최장시간 무득점 기록을 세웠다. 아시안컵 조별리그 인도네시아전 김정우의 골 이후 해가 바뀌고 감독이 허정무로 바뀐 뒤인 월드컵 지역 예선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곽태휘의 골이 터질 때까지 약 580분 동안 무득점이었다. 3번의 연장승부 동안 1골도 넣지 못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정상적인 90분 경기로는 6경기 동안 무득점이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아무리 암흑기여도 깨지긴 힘들 것 같다.

특이하게도 이때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도 겸임했는데, 경기력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꾸역승으로 올라간 준결승에서 이라크침대 축구에 무너지며 0:1로 패하였고, 이어 이란에도 무기력하게 0:1로 패해 동메달도 못 땄다. 이듬해 올림픽 2차 예선은 무난한 경기력으로 큰 위기 없이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그래도 나름 오범석, 김치우, 김정우, 염기훈, 이근호, 강민수 등 이 세대 신예들이 자연스럽게 국가대표에서도 중용되었다. 이후 모로코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참가한 런던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올대 감독을 맡고 있었던 홍명보에게 브라질일본 등에 대한 전력분석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8]

그리고 베어백이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면서 한국 축구에 남긴 것은 바로 현대축구의 기본 수비 플랫폼으로 불리는 포백을 정착시켰다는 점인데, 히딩크의 압박축구와 더불어 한국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유산이다. 포백은 이전 히딩크호 시절부터 줄곧 시도되어 왔던 전술이었지만 히딩크호는 스리백에 최적화된 홍명보의 빌드업 능력을 포기할 수 없었고, 이후 감독들도 저마다 포백을 실험해오다 아드보카트호도 꾸준히 기동시켜왔음에도 정작 월드컵 본선 토고전에서 스리백으로 회귀하는 등[9] 한국 국대에 깊숙히 스며든 스리백의 잔재를 지워내기란 어려웠다. 베어벡도 현대축구의 기본인 빌드업 능력을 갖춘 센터백 찾기부터 어려워서 김상식과 김동진을 센터백으로 기용하는 실험까지 했었다.

대한민국의 포백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시점은 베어벡호로 보는 것이 정설로, 이후로 국가대표 수비진은 포백 구성이 베이스로 자리잡게 된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홍명보 때문에 스리백이 대세였던 것이 아닌 스리백이 대세인 한국 축구 현실에서 홍명보가 거기에 맞춰 살아남은 것이라 볼 정도로 k리그 절대다수 팀들이 스리백을 사용하였다. 결국 히딩크 시절에도 포백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아드보카트 때에 와서 당시 k리그의 유일하게 포백을 쓰는 성남의 포백을 그대로 가져와서 쓰는 형식으로 포백을 도입했다.[10] 결국 이러한 포백은 후임 감독인 핌 베어백에 의해 국가대표팀에 완전히 정착하였고 이때 자리잡은 포백은 오늘날에 너무나도 당연히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아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전적 모음
일시 장소 상대국 경기 결과 점수 구분 비고
2006. 8. 16. 대만, 타이페이 대만 3 : 0 2007 AFC 아시안컵 예선
2006. 9. 2. 대한민국, 서울 이란 1 : 1
2006. 9. 6. 대한민국, 수원 대만 8 : 0
2006. 10. 8. 대한민국, 서울 가나 1 : 3 친선 경기
2006. 11. 11. 시리아 1 : 1 2007 AFC 아시안컵 예선
2006. 11. 15. 이란, 테헤란 이란 0 : 2
2007. 2. 6. 영국, 런던 그리스 1 : 0 친선 경기
2007. 3. 24. 대한민국, 서울 우루과이 0 : 2
2007. 6. 2. 네덜란드 0 : 2
2007. 6. 29. 대한민국, 서귀포 이라크 3 : 0
2007. 7. 5. 대한민국, 서울 우즈베키스탄 3 : 0
2007. 7. 11.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사우디아라비아 1 : 1 2007 AFC 아시안컵 16개국 본선 D조
2007. 7. 15. 바레인 1 : 2 바레인 쇼크
2007. 7. 18. 인도네시아 1 : 0
2007. 7. 22.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이란 [11] 0 : 0
(PSO 4:2)
2007 AFC 아시안컵 8강
2007. 7. 25. 이라크 0 : 0
(PSO 3:4)
2007 AFC 아시안컵 준결승
2007. 7. 28. 인도네시아, 팔렘방 일본 0 : 0
(PSO 6:5)
2007 AFC 아시안컵 3·4위전 대회 3위
차기 대회 본선 진출권 획득

결과: 총 17전 6승 6무 5패





3.4. 호주 대표팀

2007년 12월 11일,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12] 한국에서 즐겨쓰던 수비적 원톱을 구사하며 성공가도를 이어가게 된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무패로 조1위로 여유있게 예선을 통과했으며 네덜란드와의 친선 경기에서도 조국을 이겨내는 이변도 보여냈을 정도.#기사

하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선 하필 초장부터 독일한테 4:0으로 작살난 것이 화근이 되면서 가나에게 득실차에 밀려 16강 진출에는 실패하고 만다. 가나전에서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해리 큐얼의 퇴장 및 PK로 동점을 내준 뒤 간신히 비긴 경기 역시 아쉬웠다. 그래도 세르비아, 가나, 독일과 같은 만만치않은 강팀이 즐비한 조에서도 1승 1무 1패, 전체 순위 21위로 선전한 편.[13] 베어벡은 월드컵이 끝나고 계약 만료로 사커루에서 물러나게 된다.

3.5. 모로코 대표팀

2010년 8월부터 U-23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서 2012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는 등 2014년까지 지도하였다. 이 올림픽 당시 성적은 예선 탈락이었는데, 저조했던 성적의 원인은 하필 라마단 기간과 겹치며 이슬람 교도였던 선수들의 금식으로 컨디션 관리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을 분석하던 자료를 친분 두둑하던 홍명보 감독에게 제공하여 대한민국의 올림픽 메달 수상에 공헌했다고도 전해진다. 기사

3.6. 오만 대표팀

이후 암 투병으로 현장에서 물러났다가 2016년 말에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돌아왔고, 2018년 오만의 역대 두 번째 걸프컵 우승을 이끌었다.

파일:Pim Verbeek 2018.jpg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우즈벡, 일본, 투르크메니스탄과 같은 조에 들어갔다. 우즈벡과의 경기는 분전했지만 2-1로 패했다. 문제의 일본과의 경기는 심판의 노골적인 편파판정으로 인해 1-0으로 패배했다.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는 3-1로 이겨서 조 3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토너먼트에 올라간 뒤 이란에 0:2로 패해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14] 대회 종료 후 오만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축구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 있고 나이도 활동을 멈추기에는 아직 많지 않은에도 돌연 은퇴 사유가 밝혀졌는데, 바로 암이 재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4. 사망

암 투병 끝에 2019년 11월 28일 향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핌 베어벡 前 한국 감독, 암 투병 끝에 별세..'향년 63세'

대한축구협회와 그가 거쳐간 구단의 선수들, 소속팀에서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했다.[15] 이 시즌 K리그에서도 전광판에 베어벡 전 감독의 유고를 알리며 잠시 그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으며 특히, 베어벡 감독 덕분에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데뷔를 했던 울산 현대의 수비수 강민수는 "내 지식 100% 그 분께 배운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사망을 슬퍼했다.

5. 기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인 조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가 각각 조봉래와 아동복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것처럼 이 감독도 한국화된 별명이 존재했는데 가방이라고 한다. 곰(베어)+가방(백)의 합성어인데, 본인도 이 별명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다소 지나칠 정도로 유럽파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에도 유럽파의 컨디션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자주 유럽으로 출장을 나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며,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K리그 등 아시아 상위 리그로 이적하는 호주 선수들에게 "비록 하부 리그라도 유럽을 가는 것이 더 낫다"라며 선수들의 유럽 이적을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단, 호주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의 후손들이 주축이 되는 국가로,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으로 유럽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호주 선수들 입장에서는 EPL이나 EPL의 하위 리그에 진출하는 게 언어적 측면에서도 외국어를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 수월하고 다른 아시아 상위 리그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더 나은 측면이 있다.[16]

한편으로는 2002년 코치 때와 2006년 감독 때를 비교하면 탈모가 진행되는 게 확연했다. 그래서 다소 인상이 달라보인다는 평도 있었다. 국가대표 차출 문제 등으로 국내 지도자들에게는 반감을 샀는지 K리그 구단 전부 담합해서 올림픽 대표 차출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17]. 사실 이는 국내 지도자들의 외국인 지도자에 대한 일종의 텃세이기도 한데, 히딩크 감독이 부진할 때도 대부분이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어도 세계적인 명장이라 명성도 높고 인맥도 좋은데다가 축구협회에서 강력히 지지해 주는 탓에 그런 공격을 지속하기가 힘들었고[18] 게다가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성적을 거두는 바람에 직접적인 비판을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움베르투 코엘류는 선수 시절과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시절 경력 자체도 나쁘지 않고 사람 자체가 부드러운 사람이라 처음엔 대놓고 비판을 못했지만 오만 쇼크가 일어나자 곧 강한 비판을 했고 대표팀 내부에서도 국내 코치들과도 불화가 있었다. 그 다음인 조 본프레레는 비주류인데다가 아예 언론 자체랑도 사이가 안좋았으니 국내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그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아드보카트는 히딩크만큼은 아니어도 그 다음 수준 되는 커리어를 가진 탓에 역시 인맥이 좋았고 언론플레이에 능해 국내 지도자들이 대놓고 비판을 못했다. 또한 월드컵을 불과 몇달 남지 않은 상태에서 선임되어 임기가 짧았으며, 평가전에서 눈에 띌만한 패배 또는 약체와의 무재배가 없었던 까닭에, 월드컵을 제외하고 언론의 구설수에 오를 기회 자체가 없었다고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베어벡은 감독 커리어 자체는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에 국내 지도자들이 상대적으로 만만하게 보고 거리낌없이 공격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 히딩크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 힘든 대신 그는 히딩크의 제자처럼 인식이 되어 더욱 그런 분위기였다.

엄밀히 말하면 K리그 구단들이 축구협회의 국가대표 선수 차출 문제 때문에 계속 참고 참다가 마침내 베어벡 때 폭발한 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시안컵이 끝나고 베어벡이 사퇴한 후인 2007년 하반기에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A매치가 전혀 없었는데, 아마도 K리그 구단들의 선수 차출에 대한 불만을 축구협회가 의식하고 서로 입장을 조율해서 아예 A매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록 여론의 비판에 물려 자진사임 형태로 한국을 떠나기는 했지만 대한축구협회와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특히 홍명보와는 종종 가족끼리 만나 식사를 같이 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베어벡이 사망했을 때 축구협회 전무로 있던 홍명보가 엄청 슬퍼했다고 한다.

키가 195cm로 역대 한국 대표팀 최장신 감독이다.

6. 발언으로 알려진 루머

"한국 국가대표 축구 팬이라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환상에 젖어 있다. 그들은 평소 축구를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자신들의 대표 팀은 언제나 브라질처럼 플레이하기를 원한다. 또 자국 리그는 외면하면서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길 갈망하고 선수들이 목표점에 다다르지 못하면 그들을 범죄자보다 더욱 혹독하게 비난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태도가 굉장히 정당한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한 번 결정한 것을 되돌리지 않는다. 한국에서 좋은 기억과 추억을 쌓았지만 감독으로서 경험한 최근의 1년은 너무나 괴롭기만 했다. 한국 대표 팀 감독직에서 사퇴할 것이다. 선수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대표팀 감독직에서 사퇴하면서 나는 행복해질 수 있겠지만, 그들을 여전히 책임감 없이 비난만 일삼아대는 이들 사이에 두고 온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핌 베어벡인 척 하는 모 이름없는 네티즌

평소 축구 자체에 관심이 없거나, 있더라도 자국 리그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대표팀에 대해서만 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한국 축구의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의 발언으로 축구 사이트 뿐 아니라 여러 기사들에서도 인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베어벡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위의 발언은 2010년 디씨인사이드 국내축구 갤러리의 '뼈정우'라는 고닉이 만든 짤이 발원지로2014년 뼈정우가 국축갤에서 회상하기로는 원래 허정무 감독을 실드 치려고 만들었다고 한다.

베어벡이 K리그를 언급한 적은 있다. 취임한지 오래잖아 한 인터뷰 내용이다.
"--앞으로 목표는.

▲2007년 아시안컵축구에서 우승하는게 목표다. 유럽 톱리그와 K리그의 차이가 크다. K리그 팀들의 수준은 네덜란드 2부리그와 비슷하다고 본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을 유럽 등 해외에 보내 선진 축구를 배워야 한다.출처[* 사실 2020년대 입장에서도 크게 틀린 발언은 아니다. K리그1의 수준은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현대 축구단을 제외하면 잉글랜드로 따질 시 3부 리그인 EFL 리그 1에 준한다는 것이 정평인데, 역시 네덜란드 1부 리그인 에레디비지에는 유럽 대항전에 단골로 참가하는 아약스PSV 정도를 제외하면 잉글랜드 2부 리그인 EFL 챔피언십에 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K리그1을 네덜란드 2부 리그 에이르스터 디비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다. 애초에 작성자가 무엇을 근거로 정평을 운운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옵티 파워레이팅을 기준으로 잉글랜드 리그는 2부 리그의 수준이 높아 6위에 위치하고 에레디비지에는 7위에 위치한다. K리그1은 26위에 위치했는데 라리가2, 분데스리가 2보다 못하다면 모를까 하부리그도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나고 메이저리그가 아닌 이상 어느 리그든 헤이렌베인 같은 중하위권 클럽들을 보면 예산이든 클럽 규모가 크지 않다. 네덜란드 1부리그가 잉글랜드 2부 리그 수준 규모와 비슷하다고 네덜란드 2부가 잉글랜드 3부와 비슷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아시아팀들의 친선경기 사례들에서도 네덜란드 2부리그만큼 처참한 실력이 나오진 않는다. 네덜란드 2부리그는 1부리그와도 격차가 커서 알메러시티가 헤이런베인에게 5대떡 당하는 수준이다. 애초에 k리그 1에서 용병으로 뛴 불투이스도 에레디비지에서 주전으로 뛰었고 에레디비지에에서 주전은 아니었고 그 이외 해외무대에서 실패했던 벨트비크도 네덜란드 2부리그는 폭격했었다.
핌 베어벡의 요지는 리그 계수를 근거로 하여 합당하다고 볼 수 있지만 어느 기준이든 네덜란드 2부 리그 운운은 다소 근거없는 주장. ]

이에 처음부터 많은 K리그 팬들에게 비난을 받았고, 베어벡이 감독직을 사퇴한 이유도 K리그와의 일정 조율 및 선수 차출 과정에서의 갈등이 자신의 사임 배경임을 명확하게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2024년 기준으로 뛰어나고 기량이 완숙한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실제로 유럽파 선수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이 당시보다 훨씬 커진 것을 생각하면 재평가가 되고도 남을 만한 발언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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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Verbeek을 영어 발음대로 읽으면 '버비크', 독일어 발음대로 읽으면 '페어베크', 네덜란드 발음대로 후술한대로 읽으면 '페르베이크' 또는 '퍼르베이크'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베어벡'이 나올 수 없음에도 그가 처음 대한민국에 온 2001년 이래로 '베어벡'이라는 이름 표기가 굳어지면서 그대로 이어졌다.[2] 풋볼 디렉터 (Director of Football).[3] 이 때의 수석 코치는 박항서.[4]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은 12월까지 맡아서 국가대표팀 초기와도 겹쳤다.[5] 1승 1무 1패 대회 21위.[6] 이 때 핌 베어벡이 수석코치였다는 잘못된 정보가 있는데, 이 때의 수석코치는 박항서였다. 물론 핌 베어벡 또한 히딩크를 보좌하면서 많은 역할을 했지만, 이건 그저 히딩크 휘하의 코치들을 대표하는 정도였고, 실제 히딩크와 선수들 중간에서 이어주는 역할을 하면서 히딩크를 전반적으로 보좌한 사람은 박항서이다. 히딩크가 휴가 등으로 잠시 자리를 비울 경우에는 박항서가 감독 대행 역할을 했고, 결정적으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D조 포르투갈 vs 미국 경기를 전력분석차 관전하러 갈 때는 통역사를 제외하면 박항서만 동행시켰다. 또한 히딩크호의 8강전 상대가 될지도 모를 스페인 vs 아일랜드의 16강전 전력 분석을 위해 히딩크가 직접 관전하러 갔을 때는 박항서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대비한 훈련을 지휘했었다.[7] 이때 바레인 쇼크로 인해 탈락 위기에 몰리기도 하였다.[8] 당시 모로코는 애초 D조 2위를 목표로 8강 진출을 노리고 있었으나, 2무 1패를 기록해 3위로 밀려 광탈했다. 같은 조에는 일본, 온두라스, 스페인이 있었다.[9] 다만 이때 당시에는 대표팀 한정으로 아드보카트 부임 후 포백으로 많은 준비를 한 탓에 오히려 스리백보다 포백이 더 안정적이었고 스리백으로 실점 후 포백으로 바꾸고 역전했다.[10] 당시 성남의 감독은 김학범이었다. 월드컵을 앞둔 겨울 전지훈련에서 조원희(RB)를 제외하고 장학영(LB)-김영철(LCB)-김상식(RCB) 성남 수비라인을 실험해보기도 했다.#[11] 승부차기 기록은 공식적으로는 모두 무승부로 취급된다. 이하 모두 같음.[12] 공교롭게도 전임 감독이 한때 수장이었던 거스 히딩크로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히딩크의 유산을 지휘하는 중책을 맡게 된 셈이었다.[13] 여기서 세르비아를 상대로 따낸 귀중한 1승은 호주가 한동안 월드컵에서 이룩하지 못한 기록으로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튀니지를 상대로 승리를 따내기까지 장장 12년동안 월드컵에서 승리하나 건지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14] 오만 2019 아시안컵 16위(16강)[15] 출처.[16] 마찬가지로 호주 축구선수들이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 리그로 진출하지 않는다면 대신 메이저 리그 사커에 진출하더라도 다른 아시아 상위 리그로 진출하는 것보다 더 적응면에서 수월할 수 있다.[17] 이 때문에 2007년 1월에 있었던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하기로 했던 카타르 대회는 최종적으로 불참하게 되었다. 대신 베어백은 이 무렵에 있었던 아라비안 걸프컵을 관전하면서 같은 해 여름에 있을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을 미리 대비하였고, 동년 2월에 대신 그리스와 친선경기를 치렀다.[18] 오해가 있긴 했지만, 2002 월드컵 이후인 2003년, 김호곤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할 때 네덜란드 전지훈련에서 히딩크 감독에게 받은 서운한 감정을 표현했던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