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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서비스/대한민국/e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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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
2.1.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상위)2.2. 팬 서비스가 평이 갈리는 선수(중위)2.3. 팬 서비스가 좋지 않은 선수(하위)2.4. 팬 서비스가 좋은 게임단(상위)2.5. 팬 서비스의 평이 갈리는 게임단(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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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스포츠는 여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팬 서비스가 좋은 편이다. 특히 e스포츠계의 최고 부흥을 이끈 슈퍼스타 임요환부터가 "우리는 응원해주는 팬이 없으면 그저 겜돌이일 뿐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남겼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쓴다.[1] 그럴 만한 게 대외적으로 게임에 대한 탄압과 여러 시련을 겪으며 성장한 분야인 만큼 팬들이 없으면 종목 자체가 시체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시인사이드스타크래프트 갤러리와 같은 커뮤니티에서도 스타리그가 한창일 때의 프로게이머들의 팬 서비스 인증글이 간간히 올라오면서 누가 팬 서비스가 좋은 지 나쁜 지를 가늠할 수가 있었다.

후속작인 스타크래프트 2는 동시대의 리그 오브 레전드와의 경쟁에서 밀려 시작부터 팬층이 얇았기에 누구를 응원하든 관객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선수들의 팬 서비스가 매우 좋으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팬들과의 소통을 잊지 않고 있다.

철권 시리즈도 역시 오랫동안 전국구 인기 격겜으로 오락실 게임인 특성상 유명 철권 게이머들과의 소통이나 팬 서비스 요청도 기숙사 생활을 해서 때와 장소를 가렸던 스타크래프트에 비하면 상당히 쉬운 편이었고 대전 중에 의도적으로 비매너 행위를 남발하여 자신을 빡치게 만들거나 선을 넘는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초면이라도 말을 걸어주면 대체로 친절하게 응대해주었다. 다만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오락실 문화가 왕성한 대신 대회가 열리는 경우가 흔치 않은 편이라 철권 쪽 유저들에게는 팬 서비스 요청이 거의 없는 편이었고 TEKKEN CRASH같은 대회가 나오기도 전에는 아무리 전국구 최고 실력을 가진 철권 유저들도 e스포츠 프로게이머보다는 오히려 일반인 신분에 더 가까웠으며 2009년부터 MBC GAME에서 주최한 TEKKEN CRASH같은 대회가 출범하여 성공을 거둔 후에는 생소했던 고수들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동시에 오락실이 아닌 텍크 무대에서 팬 서비스를 받는 시대가 되기도 하였다. 철권 7로 와서는 오락실 시대가 사실상 끝나면서 온라인 대전 시대가 되었지만 오히려 철권 프로게이머들은 개인 방송과 온라인 대전을 통해서 팬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대표적 스타인 페이커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평균 이상은 되며, 애초에 구단 차원에서도 팬미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에 어지간하면 나쁘지는 않다. 직관 관객들 중 여성들이 많은 만큼, 남자/여자간 팬서비스 차이가 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오버워치의 선수들도 대부분 팬서비스가 좋다.[2]

e스포츠는 종목의 특성상 홈, 원정 개념이 없다 보니 연고지라던가 더비 매치가 없어서 시청률은 높아도 직관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지방에 사는 팬들은 직관이나 선수들을 직접 보기가 더욱 힘들다. 그렇기에 한 명 한 명의 팬이 더욱 더 소중하다.

사실 e스포츠 쪽은 워낙 팬 친화적인 스포츠니만큼 팬이랑 같이 사진 촬영에 호의적으로 수락을 해주거나 악수만 해줘도 나쁜 평가는 절대 안받는다.

대전 격투 게임 쪽 프로게이머들도 팬 서비스가 매우 좋은데, 철권의 무릎이나 스트리트 파이터정질 같은 국내 대표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들은 팬들을 만나면 싸인이나 사진 촬영은 기본적으로 다 잘해준다. 물론 대전 격투 게임 게이머들도 기업의 스폰을 받는 경우가 태반이라서 불성실한 마음가짐은 물론이고, 팬 서비스도 나쁘면 본인의 커리어는 물론이고 소속된 스폰서에게도 악영향을 줘서 팬 서비스에 충실해야 하는 룰도 있다. 해외의 격겜 프로게이머들인 우메하라 다이고, 토키도, MkLeo, iDom, 저스틴 웡, 치쿠린 등도 팬 서비스가 아주 좋은 게이머들로 유명하다.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유명한 사례로 스타판에 큰 엿을 먹이고 아프리카TV로 런해 조작 관련된 단어를 하나하나 정성들여 막아놓은 마재윤이 있다.[3]

스타크래프트가 한창 전성기였던 2000년대 무렵에는 다양한 프로팀들을 비롯해 감독들까지 팀마다 있었는데, 감독들도 대체로 팬 서비스도 별로인 데다가 막장 행보로 인해 더욱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이명근, 정수영, 송호창이 대표적이며, 하태기, 조정웅, 김철 같은 감독들도 평판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나마 주훈, 김가을, 이재균, 조규남 정도가 선수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똥군기도 일삼지 않은 동시에 감독으로써도 이미지가 좋았지만 이재균과 조규남은 그리핀 사건으로 인해 이마저도 이미지가 실추하여 사실상 주훈과 김가을 정도만 미담이 많은 감독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도 현재 LoL e스포츠 체제로 넘어온 후로는 감독들도 대체로 팬 서비스를 잘해주고 있고, 소속팀 게이머들과도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데다가 똥군기도 일삼지 않는 편이다. 또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들은 팬 서비스에 억까가 다소 있었는데 롤 프로게이머 쪽은 억까가 거의 없다.

2. 목록

이하 목록들은 성별, 종목을 구분하지 않는다.

2.1.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상위)

2.2. 팬 서비스가 평이 갈리는 선수(중위)

2.3. 팬 서비스가 좋지 않은 선수(하위)

2.4. 팬 서비스가 좋은 게임단(상위)

2.5. 팬 서비스의 평이 갈리는 게임단(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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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요환은 프로팀 창단에 도달하기 전까지만 해도 팬들이 보내준 반찬으로 겨우겨우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 더욱이 팬의 중요성을 알 수밖에 없다.[2] 다만 어린 선수들은 싸인이 없는 경우도 있다.[3] 비슷한 사례로 야구의 안지만이 있는데, 안지만은 그래도 잘못을 인정하고 그 얘기를 꺼내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웃으며 넘기려고 하는 등의 행동을 보여 이미지가 좋고 야구계에 무기명으로 도박 혐의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기사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추세라서 이제 와서는 까지 않는 사람도 있었으나 "팬들이 야구선수 연봉을 주는게 아니다."라는 망언으로 이미지가 안좋아졌다. 단, 안지만은 현역때 최고의 팬서비스로 유명했던 선수였기에 오히려 시원한 폭로라는 평가를 내린 팬들도 더러 있다.[4] 그 유명한 프로토스 게이머들이자 우승자들인 김동수, 박정석, 박용욱, 오영종, 김택용, 송병구, 허영무도 양대 리그 우승은 하지 못했다. 반면 강민은 2003년 MBC 게임에서 열렸던 Stout msl을 우승한 다음 이듬해 2004년 온게임넷에서 열린 NHN 한게임배 스타리그도 우승하여 양대 리그 우승에 모두 성공했다. 타종족에서 양대리그 우승자는 테란은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이영호가 달성하였고 저그는 마재윤, 이제동이 달성하였지만 전자같은 경우에는 승부조작으로 인한 흑역사니 사실상 이제동을 유일한 양대리그 저그 우승자로 쳐준다.[5] 서바이벌의 황제. 간단히 말해서 개인리그 1부만 가면 죽쓴다는 의미라 선수 입장에서는 썩 좋은 별명은 아니다.[6] 스타크래프트가 한창 전성기였던 당시 똥군기를 내세운 정수영, 안기효를 제외하면 모든 팀의 소속 선수들을 혹사시킨 송호창, 파도 파도 괴담 투성이인 이명근 등 막장 감독들이 많았던 시대이기도 했는데 김가을의 인품은 더욱 돋보였을 정도다.[7] 물론 이것도 팬들에게 진심으로 날리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거나 게임이 안 풀릴 때 그런 것이다.[8] 애초에 택뱅리쌍 4인은 실력과 위상에 걸맞게 팬 서비스가 모두 좋기로 유명하다.[9] 다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MBC게임 해설진의 전문성과 비교해서 그렇지, 보는 재미로는 엄재경의 포장력을 비롯한 온게임넷 해설진이 더욱 뛰어났다는 평이 많다.[10] 그런데 하술할 우승기는 슈퍼파이트 대회 해설 때 나도현을 신인으로 언급하였다.[11] 물론 ATL같은 대회는 성적이 잘 안나와서 그렇지 지금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12] 박대만 외에도 개인리그에서의 활약은 저열했지만 프로리그에서는 눈부신 활약을 한 게이머들이 많은 편인데 자세한 내용은 염라인 참조.[13] 이 때문에 스갤 초창기에서는 본의 아니게 밈의 대상이 되었다.[14] 다만 MSL 제패 이후의 기세를 완벽하게 이어가지는 못하여 스타리그 우승자 출신치곤 프로 활동동안 대부분 8강 내지 16강이 한계였던 아쉬운 성적으로 마감하였다. 물론 엄연히 개인리그 우승을 경험한 프로게이머라는 점에서 지금도 그렇게 저평가를 받지는 않는 편이다.[15] 다만 나이는 삼성준이 투신보다 2살 연상이다.[16] 다만 팀 내의 정신적 지주 역할은 삼성준이 주도했었다.[17] 연습생으로 입단하려고 했을 당시 박용운의 나이는 무려 28세로 스타판에서는 이미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였다.[18] 당시 이영호, 정명훈, 박성균과 함께 테란 최강자 4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으며 이영호나 정명훈에게는 미치지 못했어도 똑같이 MSL을 우승했던 박성균보다는 기량 면에서 우위에 있었다.[19] 대표적으로 2024년에 철권 8이 발매가 되었는데 다른 게이머들에 비하면 이름값에 비해 대회에서 심각한 부진을 보이자 게임에 대해서 강도높은 비판을 하기도 하였다.[20] 뮤짤을 처음으로 선보인건 박성준이지만 뮤탈 뭉치기 대중화와 필수화에 공헌한 것은 서경종이다.[21] 다만 이건 개인리그 한정이고 프로리그에서는 꽤나 선전하였다.[22] 물론 남성 프로게이머들은 웬만하면 서지수보다 레벨이 높아서 대부분 패했었다. 다만 여성부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적수가 없을 실력이다.[23] 무릎보다도 더욱 연상이며 크레이지동팔이나 빈창같은 베테랑 유저들보다도 연상이다.[24] 스타리그 말기에 접어들 무렵이었을 때 이영호, 허영무, 정명훈, 이제동 등과 함께 케스파 랭킹 상위권에 들어간 것은 물론 전체 랭킹 2위까지 달성하는 위용을 보여주면서 전성기 때의 위용이 확실하게 강력했다는 것을 가늠할 수가 있다.[25] 참고로 한국에서는 참치 기업 중 동원참치의 인지도가 매우 높아서 신동원 외에도 동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인들은 대다수가 별명이 참치다.[26] 연습을 안하는걸로 유명했다. 그래서 생겨난 별명이 연습한 신정민[27] 공교롭게도 커리어랑 명성도 이제동과 오영종이 절대적으로 높다.[28] 데뷔 시기 또한 같은 팀 동료인 테란의 이영호랑 비슷한 편인데 나이는 이쪽이 4살이나 더 많다.[29] 게다가 강민은 유일하게 양대리그를 모두 우승한 프로토스 최강자였고 이재항은 프로리그 커리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개인리그 커리어가 아쉬운 편임에도 임요환에게 강했던 것이 놀라웠을 정도다. 임요환 뿐만 아니라 나도현에게도 전승을 거뒀을 정도로 강했다. 물론 임이최의 또다른 일원들인 이윤열이나 최연성에게는 약했지만 또다른 수준급 실력의 테란인 나도현을 상대로도 우위였으니 테막은 절대 아니다. 또한 조일장도 프로리그에서 데뷔전을 임요환 상대로 첫 승을 거두는 등 3전 전승을 달리면서 임요환의 천적 저그 게이머로 알려져있지만 이 당시 조일장은 거의 신인이었고 임요환은 커리어 황혼기에 접어들 시기라 이재항보다는 크게 부각이 되지 않는다.[30] 물론 강도경과 김윤환은 팀플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저그라서 이재황이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니다.[31] 닉네임은 아재로 통하지만 같은 아재 닉네임을 가진 유저인 엠아재와는 다르게 1992년생이라서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다. 물론 2024년 기준으로는 아재에 가까운 나이에 접어들긴 하였다.[32] 사실 전태양이 스타1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할 시기에는 하필 택뱅리쌍허덴이라는 최강자 라인이 굳건했던 시기여서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운 형국이었는데 마침 스타2가 출시되면서 스타2로 전향한 것이 본인에게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33] 프로리그 데뷔 첫 승도 무려 임요환에게서 가져왔다. 다만 임요환의 천적이긴 했어도 비공식전을 포함하여 서로 만난 적은 겨우 3번 뿐이고 테막이기도 하여 이러한 전적이 다소 뭍히는 편이다. 테저전도 약한 동시에 동족전인 저저전도 치른 적은 얼마 없었던걸 감안해도 승률이 좋지 않았지만 저프전같은 경우에는 이제동이나 박성준과 같은 역대 최강의 저그와 비교해도 크게 꿇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으며 온겜과 엠겜 모두 합쳐 통산 승률이 66%에 육박한다.[34] 물론 이것도 살이 불어오른 현 시점 기준이고 데뷔 초기에는 슬림하면서도 샤프한 인상이었다.[35] 통산 테프전 승률이 비공식적을 포함해서 겨우 40%를 넘는 정도고 공식전만 따지면 25%로 매우 좋지 못했다.[36] 물론 이건 개인리그 한정이고 프로리그에서는 소속팀이 kt가 이영호를 비롯한 최강 전력들과 팀을 이루면서 수차례 우승을 차지했다.[37] 더군다나 앞서 언급한 박성준, 마재윤, 이제동, 신동원은 모두 개인리그를 우승하였다.[38] 전성기 스갤 아이돌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틈만나면 까였음에도 전부 팬으로 감화시킬 정도의 모습을 보였다.[39] 물론 다른 스타 게이머들도 지금까지 인지도가 높은 케이스도 있지만 스타크래프트의 전성기에 이바지한 임요환과 홍진호의 위상은 지금도 절대적이다.[40]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 닉네임의 유래는 일본의 인기 여자 성우인 히라노 아야에게서 따온 닉네임이다.[41] 역시 스타리거 중에서는 한 성질 하기로 유명한 박용욱조차도 열받은 강도경 앞에서는 아무 말도 없이 죄송하다고 계속해서 사과를 해야 했고, 강민이나 박정석도 사적으로는 좋은 형이지만 권력을 가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타입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e스포츠계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무조건 이러한 괴담만 있는 것은 아니고 한빛의 경기가 없을 때는 PC방 대회를 통하여 벌은 우승 상금으로 팀을 먹여살리는 등 주변 프로게이머들을 솔선수범하게 이끌어줄 정도로 미담도 적지는 않다.[42] 알다시피 레인은 TEKKEN CRASH 모든 시즌 통들어 최다승 기록자다.[43] 투신이 아닌 삼성전자 칸 소속 박성준이다.[44] 유독 스타크래프트 쪽에서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들이 꽤 있었는데 박영민을 비롯하여 박성준과 이영호가 대표적인 예시다.[45] 박찬수의 전성기 때의 위상과 기량이 어느 정도였냐면 이제동에게 다소 가려져서 그렇지 기세가 좀 꺾인 마재윤과 골든 마우스를 쟁취하면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타게 되는 박성준에 이을 차기 저그 최강자로 인정받을 정도로 엄청났었다. 물론 이것도 승부조작 여파로 인해서 의미가 없어졌다.[46] 대표적으로 저프전 밸런스가 제대로 박살난 머큐리도 변종석이 제작한 맵이다.[47] 물론 패러독스, 발해의 꿈, 머큐리 같은 막장 밸런스의 맵들의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노스텔지아 같은 개념맵도 그의 작품이었고, 스타리그 말기에 접어들 00년대 후반 무렵부터는 그가 제작한 맵의 밸런스 논란이 크게 없었던 편이다.[48] 사실 이 별명은 염보성의 별명보다는 축구선수 고종수의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오히려 염보성은 이 별명보다는 '염깨비'로 더 많이 불렸고 가끔 자신과 외모가 닮은 축구선수인 졸레온 레스콧으로도 가끔 불렸었다.[49] 비공식전 포함 염보성이 3전 전승이다. 물론 공식전은 겨우 한번만 만나서 절대적으로 천적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50] 다만 이 당시 염보성은 아직 고등학생 나이인 특성상 팬 서비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시기였던 것도 감안해야 한다. 물론 염보성이 프로게이머로써 유명해지고 나이도 성인에 접어들 무렵에는 팬 서비스 문화에도 완전히 적응을 하면서 이런 문제는 없어졌다.[51] 기량이 한창 좋았던 전성기 때는 언리미티드 테란이라고도 불렸다.[52] 다만 박정석은 KTF 매직엔스로 이적해버렸고 2004년 프로리그 그랜드 파이널 우승 후로는 소속 게이머들 대부분이 나이로 인한 기량 저하를 면치 못하면서 침체기를 겪기도 하였지만 혜성같이 등장한 저그 플레이어인 김명운과 엠히에서 건너온 이재호를 중심으로 하여 스타리그 시대 최후반에는 다시 한번 고군분투를 하였다.[53] 철구가 지금과 같은 인터넷 방송의 거물이 된 것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써의 커리어도 어느 정도 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아프리카 스타판을 위해 누구보다 기여하고 있는 인물이 철구다.[54] 후일 밝힌 바로는, 애초에 이미 2009년 초반에 팀에 은퇴의사를 밝혔는데, 감독 요청으로 로스트사가 MSL까지만 뛰고 은퇴를 했다고 한다. 즉 돌발적인 은퇴는 아니었던 셈.[55] 오죽하면 김성제를 비롯하여 송호창이 이끌던 IS 소속 선수들이 상당수가 팀을 나갔을 정도였다.[56] 대표적인 만행을 꼽자면 팀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했고 개인리그까지 우승한 정상급 테란 한동욱을 버렸고, 당시에는 코치였지만 일을 누구보다 잘 해서 입지가 좋았고 훗날 스타크래프트 2와 롤 감독으로 활동하는 차지훈을 내쳐버린 사건들이 있다.[57] 강도경도 상술했다시피 부정적인 평에 이미지가 나쁘긴 하지만 이쪽은 그래도 주변 게이머들을 챙겨주고 e스포츠의 발전에도 기여를 한데다가 팬들에게는 상처를 주는 일이 없어서 오히려 강도경을 장육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큰 실례다.[58] 훗날 폭군이자 최강의 저그로 등극하는 이제동도 여기 정영주의 뮤탈 활용의 영감을 어느 정도 받아서 신들린 뮤탈 컨트롤로 스타리그를 지배하였다.[59] 뮤짤과 같은 뮤탈 활용의 대중화에 공헌한 것은 서경종이지만, 정영주도 이러한 뮤탈 컨트롤에 선구자 역할은 했었다.[60] 다만 이때는 박성준빨로 우승했다는 이야기도 많았다.[61] 물론 팀의 이미지가 완전한 비호감은 아니었고 박성준, 서경종, 김택용, 이재호와 같은 인품도 훌륭하고 이미지도 좋은 게이머들도 꽤 있었다. 다만 박성준과 김택용은 타 구단으로 이적하여 팀의 부정적 이미지가 더욱 부각이 되기도 했었다.[62] 젠치전 사건이 아니라, 굿즈 제작 후 셀럽들에게만 나눠주고 판매를 일절 안 한 적이 있다.[63] 박성준: SKT T1->STX Soul, 이재호: 웅진 스타즈[64] 물론 박찬수는 kt 롤스터로 이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