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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1 21:45:20

정수영(e스포츠)

1. 前 e스포츠 감독
1.1. 개요1.2. KTF 감독 이전1.3. KTF 감독 시절1.4. 별명
1.4.1. 쉐키정1.4.2. 빠따정
1.5. 은퇴 후1.6. 여담1.7. 관련 항목
2. 카운터 스트라이크 프로게이머

1. 前 e스포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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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개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 kt 롤스터의 전신인 KTF 매직앤스 초대 감독. 1970년 5월 27일(음력 1970년 4월 23일)[1], 강원도 강릉시 출생.

1.2. KTF 감독 이전

e스포츠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 원래 당시 카 레이싱 팀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팀에서 이메일로 작업을 하라고 해서 혼자서 PC방에 가게 되었는데, 게임을 하고 있던 학생들을 보고 "이 게임이 재미있니?" 라고 물어보았고, 직접 해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스타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선수들과 접촉해서 PC방 상금대회 등을 돌면서 최진우, 김도형 같은 선수들을 모은 뒤 1998년, 대한민국 최초의 e스포츠 팀인 '랩터스'를 창단했고 감독이 되었다.

초창기에는 이 판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 그랬지만 연봉도 받지 못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 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선수들에게 연봉을 다 챙겨줄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1999년 삼성전자 칸2001년부터 KTF 매직엔스 감독을 맡았다. 당시 KTF에서는 선수들에게 네이밍 스폰서 형식으로 일시적으로 후원하는 방식으로 팀 운용을 했는데, 정수영 감독을 영입하면서 우리가 아는 프로 팀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

1.3. KTF 감독 시절

KTF 감독 시절 홍진호, 박정석, 강민, 조용호, 변길섭, 김정민 등의 스타 플레이어들을 영입해 'e스포츠의 레알 마드리드'라 불렸던 강력한 KTF의 라인업을 구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 2004년 말부터 2005년 10월까지 23연승을 거두었다. 이는 e스포츠는 물론 대한민국 모든 프로 스포츠 통틀어서도 전무후무한 대기록.

그러나 이 사람의 최대 문제는 이렇게 잘 했던 정규시즌과는 달리 포스트시즌에서는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주면서 매번 우승 문턱에서 물을 먹었다는 것.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결승전에서는 전력상에서 열세였던 KOR에게 우승을 허용했으며, LG IBM 팀리그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결승전과 그랜드 파이널 결승전에서는 통신 라이벌 SKT T1에게 모두 패했다. 그 외에도 2003년 계몽사배 팀리그 플레이오프에서 SouL에게 3:0 셧아웃 패배,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동양 오리온에게 3:1 패배, 투싼 팀리그 패자 결승에서 SKT T1에서 4:1 패배, MBC MOVIES 팀리그 준플레이오프에서 에이스 강민의 SouL전에서의 활약으로 자력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만난 SouL에게 허무한 4:2 패배,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플레이오프에서는 삼성전자 칸에게 프로리그 역사상 최초로 4:0으로 업셋을 당한 적도 있다. 결국 2005 그랜드파이널이 끝난 뒤, KTF 기술고문 및 총감독으로 물러나면서 한 번도 우승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본인 말로는 성적과 더불어 KeSPA 회장 자리를 놓고 SKT와 KTF 사이의 알력 싸움에 휘말려서 스스로 그만뒀다고 한다.

감독 시절 항상 결정적인 우승이 없었기에 그는 언제나 라이벌팀 SKT T1의 감독 주훈과 용병술, 전략 등에서 비교당하면서 소속 선수와 같이 2인자의 이미지를 굳혔다. 하지만 KTF의 프로리그 정규리그 23연승의 기록과 LG IBM 팀리그 승자조를 통한 결승전 직행 등으로 보아 결코 재능이 없는 감독은 아니었다. 실제로 신트리 작렬은 김가을 감독도 한수 접어야 하는 수준이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2004 3R 프로리그 결승. 토막들인 전태규한동욱을 상대로 각각 강민과 박정석을 붙이는 신트리를 작렬시켰는데 둘이 패했다.

당시에 발트리 논란이 일어났던 이유는 LG IBM 팀리그 결승전에서 최연성에게 강했던 테테전의 강자 한웅렬을 꺼내지 않다가 3:0까지 몰리고 나서야 김정민이 분투하는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2005 프로리그 그랜드파이널에서는 상대가 박용욱인 것을 맞춰놓고 변길섭을 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엔트리(…)를 작렬시키며 패한 적도 있다.[2]

사실 감독 문제도 있었겠지만, 애초에 레알 마드리드 시절 KTF 선수들은 팀 단위 리그에서의 포스트시즌 개인전 성적이 참으로 처참했다. 홍진호조용호를 위시한 저그라인은 프로리그에서는 전패, 팀리그 3승 6패를 기록했으며, 강민박정석으로 이어지는 프로토스라인은 프로리그에서 개인전은 1승 빼고 전패, 팀리그에서는 2승 3패를 기록했다. 테란라인에서도 정규시즌에서는 괜찮았던 변길섭포스트시즌에서는 프로리그 개인전 1승 3패, 팀리그 2승 4패로 부진했다. 그나마 정규시즌에서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던 김정민과 2005 그랜드파이널부터 프로리그에 출장한 이병민이 포스트시즌에서 제 몫을 해 줄 뿐이었다.

그래도 초창기 e스포츠 발전에 공헌한 인물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훗날 강민의 개인방송에서 말하길 "내가 강민의 연봉 10억 만들어 줄려고 했었다. 내가 나서서 직접 자금을 모집했고, e스포츠 판을 키울려고 노력했다."[3] 라고 했고 옆에서 이 말을 들었던 강민도 "포텐이형[4]이 선수들 연봉은 많이 챙겨줄려고 노력했다."라며 인정하기도 했다.

상당한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선수들을 단련시켰다고 알려져 있다.[5] 당시 KTF 선수들이 '한가닥' 하는 선수들로 모여있던 만큼, 팀 내 자존심 대결이 상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예측을 해보면 정수영식의 카리스마식 감독 체제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체제였을 수도 있다. 본인도 "나도 갈락티코로 불리는 선수들 모아놓고 힘들었다." 라고 말하면서 뛰어난 선수들을 데려다 놓고 하나로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게다가 KTF 프런트에서도 감독과 코치 일에 사사건건 개입했다고 한다. 후술할 빠따정 사건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
물론 선수들과 '친한 형' 컨샙트의 이준호 감독대행 시절 KT도 성적이 좋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단지 지 맘에 안 든다고 내팽겨쳐버린 김Fe 감독 시절이 흑역사일 뿐이다.

1.4. 별명

별명으로는 쉐키정, 빠따정이 있다. 별명 덕분에 그의 합성 짤방에는 언제나 쉐키쉐키,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다.

1.4.1. 쉐키정

2003년 KT-KTF 프리미어 리그 심판을 봤을 당시 AMD 드림팀 소속이었던 장진남장진수를 향해 '개새끼'라는 욕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생긴 별명. 장진수PGR21에 글을 올리면서 파장을 불렀다. 여담이지만 장진수는 저 욕설에 "왜 개새끼라고 하십니까? 저희 부모님이 개입니까?"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후에 본인이 해명하길, 그 전에 장진남 - 장진수 형제가 KTF에서 AMD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연봉에 관한 갈등이 있었고 이적한 뒤로는 MSL 예선전 당일 점심에 장진남이 KTF 소속 선수들을 꾀어 당구장에 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찍힌 상태에서 대회 당일 두 선수가 늦게 오니까 욕을 했다고 한다.

1.4.2. 빠따정

빠따정이라는 별명 역시 비슷. 2004년 당시 해설로 활동하던 김동수가 KTF 선수들은 성적이 부진하면 야구 방망이로 체벌을 당한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 올리며 정수영 감독을 강하게 비판한 글에서 유래했다.
KTF 정감독님의 쉐키 정이라는 별명은 진수진남과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얻었다는 사실은 다들 아는 일화다. 난 정감독님을 이야기 할때 "야무지게 빠따 맞아야지"라는 말이 그냥 외모와 쉐키 정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문장이라서 항상 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KTF 선수들이 진짜로 빠따를 맞았단다... -_-;; 뭔가 연대 책임으로 맞았다는데... 그날 진우형은 야구 배트로 빠따를 너무 많이 맞아서 허벅지가 장난이 아니었단다... 헐... 요즘이 어떤 시댄데...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리는 체벌도 엄청나게 큰 문제가 되는 사회에서 빠따문화같은걸 사용하다니... 그말 들으면서 정말 황당했지만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건 그날 빠따를 맞고도 조용히 있었던 선수들이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 당시 김동수가 쓴 글의 일부.

후에 해명하기로는 기강을 올리기 위해서 다들 1대씩 맞고 정수영 감독 자신도 선수대표 변길섭에게 2대를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2013년 3월에 강민이 술을 한잔 거하게 했는지 횡설수설하며 쓴 페이스북에서 "(선략)정감독님이란 분이 계셨단다. 그 분은 누구보다도 빠따를 참 사랑하셨어. 휘두르는 폼 또한 일품이었어. 그 이후의 일은 상상에 맡기겠다.^^(후략)"라며 그의 빠따질이 아주 허황된 이야기인 것은 아님을 보여주었다. 2017년 강민 방송에 나왔고, 변길섭과도 자주 보고 있으며, 다른 e스포츠 인물들과 주기적으로 만난다는 걸 보면 사람 자체는 나쁘지는 않은 듯 하다.

2016년 11월, 강민이 전태규와 함께한 방송에서 빠따 휘두른 얘기를 풀었다. KTF 선수들 중에서 맞지 않은 선수가 없었다고. 거기에 더해 강민이 슈마 GO에서 이적해 올 당시 정수영 감독과의 첫 만남에서 빠따를 맞아 기분이 나빠져서 계약을 관두려고 했는데 KTF 프론트에서 순간 연봉을 천만에서 최대 삼천만 정도 올려주어서 극적으로 계약이 타결됐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e스포츠 판에서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송호창, 이명근보다 한술 더 뜬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 둘은 그래도 자기 선수를 직접 폭행하진 않았으니. 하지만...

2017년 강민의 개인방송 컨텐츠인 '그때 그샏기'에 직접 출현해 강민과 합방하면서 빠따썰은 다시 한번 풀었는데 이때 드러난 사건의 전말이 그간 알려진 이미지(상습적인 빠따질)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팀의 저조한 성적과 함께 선수들의 사생활로 인한 문제[6]가 쉴새없이 내부에서 터지며 분위기 쇄신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빠따를 들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선수들을 불러모아 놓고 팀의 문제점을 토로한 뒤 연대 책임으로 모두 빠따를 맞자고 했다. 팀을 잘 이끌지 못한 감독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정수영 감독 본인이 2대, 선수들은 1대씩 맞았다고 한다.[7] 그런데 하필 이 날이 강민이 팀에 합류한 날로, 숙소 오고나서 컴퓨터 셋팅을 하는 와중에 연대책임으로 빠따를 맞게 된 것. 당시 강민은 개인리그 우승을 하고 팀을 골라서 계약할 수 있던 상황이라 합류 당일 맞은 빠따에 매우 분노하여 계약취소를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KTF 프런트에서 연봉상승을 제시하며 위의 전설적인 일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이것을 정수영과 친한 강민의 실드질이라고 하기도 뭣하다. 강민 역시 정수영을 초대하기 전에 정수영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수차례 드러내는 빌드업 과정을 거쳐서 정수영을 초대했다. 뿐만 아니라 방송 당시에도 정수영이 썰을 푸는 것에 따라서 시청자 여론이 바뀌기 시작하니까 시청자 강퇴를 시키기도 했다. 이것은 무슨 빠따 얘기라기보다도 단순히 위에서 성적을 닦달하고 밑으로는 연습을 열심히 시켜야 하고 타구단과의 경쟁이나 스타판을 크게 키우기 위한 당시 자기가 갖고 있던 비전에 대한 감독직의 여러 가지 고충, 그리고 모 선수가 할머니 제사 핑계를 댔는데 사실 호주 시드니 놀러갔던 것이 여권을 걷었을 때 걸렸다는 둥의 얘기를 하자 당연히 채팅창 반응이 정수영에 호의적이게 변하는데 강민이 그런 시청자들을 연달아 강퇴시켰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정수영이 왜 강퇴를 시키냐고 말하자 강민은 원래 있는 거 없는 거 다 말하려고 했는데 주인공이 있는 데서는 못하겠고 나중에 홍진호를 불렀을 때 둘이서 다 말할 것이니까 그렇게 알고는 계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비롯해 강민은 정수영이 말하려는 것에 대해 견제를 많이 하기도 했고, 정수영이 담배를 피러 간 사이 저 사람의 말을 다 믿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방송에서도 정수영의 말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최소한 강민 방송이 실드 방송이라고 하기는 뭣하고, 다른 프로게이머들의 증언에서 여러 가지 갈리는 면이 나온다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합방을 추진하는 편이 맞아 보인다. 당시 시청자들은 정수영이 풀었던 제한적인 사건사고 얘기만으로도 빠따를 맞을 만하다는 반응이 다수였다.[8]

한편 빠따정이라는 별명때문에, 연좌제처럼 아들이 고통받았다.

대부분의 KTF 출신 게이머들은 정수영 감독이 별명만큼 빠따를 마구 휘두르지 않았다고 한다. 위의 에피소드 외에 빠따를 휘두른 사례는 99 PKO 우승자 최진우가 불성실하다는 명목으로 빠따를 맞다가 허벅지에 멍든 적이 있다고 말한다.

1.5. 은퇴 후

2012년 5월 28일자, 7년여만에 데일리e스포츠에서 인터뷰 기사가 났다. 우승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서든어택 게임단 ESU[9]를 창단했다는 소식 이후로는 별다른 행보가 없었는데, 2014년 8월 콩두컴퍼니에 합류했음이 밝혀졌다.

이후 2016년 3월 필리핀에 게임을 통한 힐링을 겸하는 유학원을 설립해 사업에 나섰다. 이 사업에는 왕년의 라이벌 주훈 감독도 기술고문으로 참여해, SKT와 KTF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들의 만남으로 이스포츠 팬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회사 홈페이지[10][11]

주훈 감독과는 왕년의 라이벌임에도 실제로는 친분이 있으며, 서로 감독에서 물러난 지 한참 지난 2010년대 후반에도 사적으로 자주 만남을 가진다고 한다.

2016년 말 ~ 2017년부터는 강민&박태민 등과 함께 아프리카 방송에도 모습을 드러내는 중. 세월이 흘렀음에도 과거부터 노안이라[12] 별 차이는 없고, 대신 체중이 좀 빠진 듯하다. 컨셉은 빠따(…). 빠따 사건이야 오래전 일인데다 본인도 시인한 일이라 방송 출연 시 아예 컨셉을 이쪽으로 잡은 듯.

2017년 10월 부친상을 당했다.

그리고 2019년, 주훈 감독과 동업으로 e스포츠 학원을 차렸다.

2019년 7월부터 대한직장인체육회 내 e스포츠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PNB(대표 김광석)에서 사업총괄을 맡았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의 신규 리그 프리미어 스타리그(PSL)의 출범을 발표하는 기자 간담회에서 질의응답을 맡았다.

1.6. 여담

1.7. 관련 항목

2. 카운터 스트라이크 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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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메이드 폭스 카스팀 창단 멤버 사진[13]

Project_kr 소속의 클랜원이자 eSTRO 시절 프로게이머. 현재는 사실상 은퇴.[14] 이전 멤버였던 "miffy"손현진이 학업을 위해 은퇴하면서 대신 들어왔고 (우승은 못했을 지라도) 팀의 첫 전성기를 빛낸 주역이다. 활동할 당시는 팀 내 공격수를 맡았다.

인게임 아이디인 '아리가또'(arigato) 또는 '아리'(ari)로 알려져 있다. 이전에 몸 담고 있었던 LAVEGA-Gaming에서 뛸 때도 'arigato'로 게임을 했었고, pk에 영입된 이후 이걸 줄여서 'ari'로 썼다. 해외 무대에 본격적으로 오르던 때엔 'ari'만 사용하기 시작했고 본인이 워낙 잘 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아리가또라고 하면 모르고 아리라고 해야 '아 그 레전드 플레이어'라고 알아듣는 듯 하다.

팀이 위메이드 폭스에 인수되자마자 첫 대회인 EMIII Asian Championship 까지만 참가하고 "hee"박진희와 함께 개인 사정을 이유로 탈퇴를 했다. 공식적으로는 국내 명문 클랜 esq.wind에서 다시 활동했으나 선수 시절만큼 회복하지 못했다. 이후 팀이 슬럼프 시기가 오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hee와 ari를 다시 데려와라'라는 아쉬운 목소리가 많았다.


[1] 한동안 포탈에 검색을 하면 1969년만 나오고 일자는 안 나왔는데, 한 번은 본인이 강민(1982년)띠동갑이라고 말한 것에서 1970년생으로 추정됐는데, 최근 다음에 검색 결과 음력 1970년 4월 23일로 나왔다. 또한 예전 프로리그 로스터를 찾아보면 생년월일이 저것으로 나와있다.[2] 게다가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던 게, 변길섭이 유리한 고지를 전혀 차지하지 못하고 박용욱의 견제에 계속 휘말리는 모습만 나왔다.[3] 연봉 10억 발언은 과장이 있는 듯 한데 한국의 메인 4대 스포츠인 야구, 축구, 배구, 농구에서도 연봉 10억대인 선수들은 생각보다 몇 명 없다. 그냥 그 정도로 판을 키울 생각이었다라는게 보는것이 맞다.[4] 후술하겠지만, 정수영 감독을 KTF 선수들이 부르던 별명. 자가용이 기아 포텐샤여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5] 그 중 하나는 24시간 연습 후 24시간 휴식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별로 효과는 없었다고...[6] 이게 방송에서 전부 까놓고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수위가 높아서 주저하면서 제한된 범위로만 털어놓았다. 일부는 경찰서에 드나든 사연도 있을 정도였다. 수위도 수위지만 연관된 사람들이 현재도 사회 활동 중이라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하였다.[7] 정수영 감독은 선수들 모두 주저하자 우연히 눈이 마주친 변길섭을 대표로 지목, 빠따를 맞았는데 첫 빠따를 맞은 후 예상치 못한 너무 강한 스윙에 적잖이 당황했다고...[8] 또한 현재의 관점에서 이것을 판단하면 어떻게 해도 빠따를 내린 것이나 욕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이런 반응이 대다수일 것이다. 허나 이 당시 야구감독 김응용 같은 빡센 감독들은 카메라가 도는 곳에서도 선수들에게 기합을 주곤 했다.[9] 서든어택 마스터리그와 슈퍼리그 합쳐 5회 우승한 최강의 팀이었다. 다만 3차 슈퍼리그 부터 현재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맥을 못추는 중.[10] 안타깝게도 현재는 사이트가 폐쇄되었고, 도메인 판매로 나온다.[11] 동업자로 보이는 분께서 본인 블로그에 올린 글에 따르면, 협업을 했던 기관들이 입장을 바꾸기 시작하자 결국 사업을 접었다고 한다. 링크.[12] 의외로 위의 정수영 감독 사진은 무려 30대 중반에 찍힌 사진이었다(…). 게다가 인간쓰레기 이유찬보다도 3살 동생이다.[13] 왼쪽부터 "solo" 강근철, "hee" 박진희, "termi-" 편선호, "Bail" 이성재, 마지막 가장 오른쪽이 이 항목의 "ari" 정수영[14] 케스파에서 LoL과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를 제외한 종목은 관리를 안하기 때문에 프로게이머 자격증을 한번 취득하고 나면 이 후 활동 여부에 상관없이 계속 자격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