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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7:49:01

하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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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수상 경력3. 경력4. 이후 근황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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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BC GAME HERO 감독. 보스 아님! 1973년 11월 11일 ([age(1973-11-11)]세), 전라북도 전주시 출생.

초창기 스폰이 없던 팀 시절부터 시작해, 2010년 9월 17일, 자진 사임하기 전까지 POS부터 시작된 팀의 감독을 맡았다. 이운재, 도진광, 임정호, 문준희, 박성준, 박지호, 염보성, 서경종, 김택용, 이재호, 큰 동현, 작은 동현, 강구열, 정영철, 고석현, 장민철, 김태훈, 정우서, 박진영, 박수범, 김재훈, 민찬기 등의 선수들이 그와 함께 했다.[1]

2. 수상 경력

3. 경력

원래는 신림동 녹두거리 지단 PC방 사장이었다. 당시 한빛 스타즈 소속이던 이운재가 팀과의 재계약에 실패한 후, 그의 PC방에서 자주 연습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그와 알게 된 계기는 PC방 이벤트에 와서 잘 해줬기 때문이라고... 이를 계기로 도진광, 임정호 등을 알게 되면서, 지단 PC방을 근거로 팀을 만들게 된다. 당시 지단 PC방은 3층에 있었는데, 위의 4층이 선수들 숙소였다. 팀 명은 POS(Pirates of Space). 정수영KTF 감독이 강민의 방송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하태기 감독은 본래 장사 수완이 상당히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손님들과 두루두루 가깝게 지냈고 이런 친화력이 팀 결성의 원동력이 된 듯 하다.

애당초 같이 했던 성재명 감독[2]이 사정상 팀을 떠나게 되고, 혼자 팀을 떠맡게 되었다. 다만, 사람 보는 눈 만큼은 제법 있었는지, 서형석을 코치로 영입해서 전략 개발도 담당하게 한다.[3] 서형석이 SKT T1으로 떠난 후에는 박용운을 코치로 영입해서 역시 전략 부분을 맡기게 된다. 그리고 일찍부터 체력의 중요성을 간파해 야구인 출신인 LG 트윈스 출신의 투수 김혁섭도 아울러 영입했다. 나중에 박용운도 떠나게 되자 영입한 코치가 이운재.

한동안 어렵던 팀 사정은 박성준의 질레트 스타리그 우승으로 어느 정도 풀리게 된다. 이고시스[4]와의 후원을 통해 사당동으로 이사하지만, 또 다시 이고시스의 후원이 끊어지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한다.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에 젊은 선수들 위주로 제법 선전하면서 주목을 받더니, 드디어 2006년에 MBC GAME이 인수해서 팀을 만들게 되었다.

2006 시즌, 최고의 돌풍을 일으키면서 기어이 프로리그 정상을 정복한다. 박성준, 박지호, 염보성 등이 개인전을 전담하고, 김택용, 이재호, 서경종 등이 뒤를 받치고, 강구열, 정영철, 김동현 등이 팀플레이를 책임지는 구도를 만들면서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뒀다. 전기리그에서는 준PO부터 업셋을 거듭하면서[5] 광안리 결승에 올랐지만, 아쉽게 1:4로 패배. 그러나 후기리그에서 또 다시 준PO부터 밟고 올라가, 웅진 상대로 이재호가 에이스 결정전에서 윤용태를 제압하면서 승리, 르까프 상대로는 김택용이 오영종을 잡아내면서 4:3으로 또 다시 승리. 극적으로 결승 진출에 성공해 기어이 결승에서 CJ를 4:2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한다.

통합 챔피언전에서의 주훈과의 설전이 유명한데, 치열한 접전 끝에 4:3으로 승리를 가져왔다. 1세트 염보성이 패했지만, 팀플에서의 우위와 박지호, 박성준 같은 고참 멤버들의 활약이 빛났다. 그리고 그랜드 파이널이 끝나고 두 달 뒤에 김택용과 함께 3.3 혁명을 이룬다. 여기에 으로 KeSPA컵 우승까지 거뒀으니, 그야말로 팀의 최고 전성기를 이뤘다.

그러나 2007년부터는 우승에 한 끗 모자란 성적으로 변했다. 김택용이 팀의 에이스로 성장했지만, 박성준은 연봉 불화 끝에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도중 팀을 떠났고, 박지호의 기량도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염보성이 꾸준했고, 이재호가 더 성장해서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꾸준히 강호의 면모는 과시했지만, 우승을 노리기에는 다소간 아쉬움이 남았다. 여기에 김택용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종료 이후 SKT T1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더더욱 팀의 전력이 약해졌다.[6] 초기만큼 선수 발굴이 활성화된 것도 아니었고...

결국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는 이런저런 악재 끝에 8위를 기록하면서 오랜만에 포스트시즌 실패가 확정되었고, 2008 시즌 종료 후에 승진하게 되지만, 대신 팀의 일선에서는 멀어졌다. 하지만, 팀의 사정이 영 좋지 못하자 먼저 스페셜 포스 팀부터 다시 맡게 되었고, 바로 두 차례 준우승으로 역량을 과시했다.

그리고 (09-10 시즌을 앞두고) 스타팀 감독으로 복귀했다.[7] 한동안 부진하던 염보성, 박지호, 이재호, 고석현 등이 일거에 각성하는 놀라운 효과를 보여주면서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 준우승까지 이루는데 성공했고, 또한 팀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이후 세 시즌만에 포스트시즌도 갔다. 시즌 내내 팀의 체질 개선에 힘썼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자신이 왜 프로게이머를 하고 있는가?"라는 동기부여과 과거 경직된 팀 분위기를 대화와 종족간 전략회의 등으로 풀어나가는 선수들이 알아서 목표에 향해 갈 수 있는 창조적인 운영이 돋보였다는 찬사도 받았다.[8]

스파르타식 훈련을 한단 이미지가 있지만[9] 의외로 원래부터 정해진 연습시간(오전 9시 ~ 오후 6시) 이후엔 자율에 맡겼으며, 스스로 동기를 찾게 하는 감독이었다.[10] 입담도 좋아서 객원 해설도 몇 차례 했었고, 은근히 개그에도 능하고, 예능감도 뛰어난 편이다. 그래서 선수들을 다루는데 능했는지도 모른다. 팬들에게도 잘 대해줘서 이미지도 매우 좋았던 감독이다. 얼굴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

추가적으로, 김택용아프리카 개인 방송을 하면서 약간의 을 풀었는데, 엄청 무서운 감독님이라고 했다. 뱀발로, 그 당시 코치님들도 전부 무서웠던 모양. 그래도 엠겜 출신 선수들에 따르면 스파르타 식으로 굉장히 엄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잘해준 것도 많고 인간성에 대해 나쁜 말은 나오지는 않았다고... 다만, 코칭스태프와 선수 간의 잦은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것만큼은 사실인 듯.

여하간 이대로 계속 감독을 맡을 것처럼 보였는데,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이 종료되고 한달 후인 2010년 9월, 돌연 사임했다. 선수들 개인방송을 보면 실제로 이 당시 항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듯 하다. 참조 후임으로 앉은 사람은 성학승.[11]

4. 이후 근황

사임 이후에는 고향전주시귀향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5월에는 위메이크프라이스에서 MD로 활동했다. 관련 링크[12]. 김재훈의 언급에 따르면 2013년 이후에는 족발집을 운영하였으나 망하고 건축 쪽에서 현장 대리인으로 있다고 했다.

2015년 1월 17일, 헝그리앱 스타즈리그 with 콩두 16강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날 전 MBC GAME 소속이었던 김택용과 염보성 모두 패배하였다. 이후에 후일담 형식으로 이루어진 스타즈리그 썰전에서 염보성이 하태기 감독과 만난 소감을 이야기를 하였다. 얼어붙어서 떨어졌다는 말도... 염보성과 박지호의 언급을 보면 하태기 감독에 대한 전 팀원들의 평이 나쁘지 않은 듯 하다.

2017년, 정수영 전 KTF 감독이 강민TV에 출연하여 전 프로게임단 감독들의 이야기를 잠깐 털어놓았는데, 하태기 감독과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한다.

2019년, The Esports Night(TEN)을 준비하던 박용운 감독이 도재욱의 방송에서 이야기한 바에 의하면 여전히 연락을 하고 있으며, 방송 당일날도 연락을 했다고 한다. 살이 몰라보게 많이 빠졌다는 듯.

2021년 3월 박용운 감독이 유튜브를 통해 인터뷰로 근황을 알렸는데 모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당일에는 회사일이 바빠서 못 그랬지만 가까운 시간 내에 박용운과 등산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5. 여담

박지호의 개인방송에 따르면 하태기 감독한테 한 번 찍히면 매장 당하는 걸 넘어서 경기를 못 나갔다고 한다.


[1] 저 중에 2명이 볼드가 되어 있는데, 이들은 개인리그 우승 유경험자들을 뜻한다.[2] 이후 팬택 EX(後 위메이드 폭스) 감독을 잠시동안 맡기도 했다.[3] 이 때 서형석이 키운 선수가 박성준이다. 서형석 코치는 후에 SKT T1으로 이적하는데, 이후 MBC게임의 연봉 후려치기에 웨이버 공시 신세가 된 박성준을 SKT로 영입하는데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4] N.EX.T기타리스트였던 임창수가 설립한 회사이다.[5] KTF 상대로 4:0, CJ 상대로 4:2.[6] 팀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2억원의 이적료를 받고 김택용을 SKT T1으로 이적시켰다. 고별식을 치러 줄 때 겉보기엔 눈물 한 방울 보일 일이 없어보였던 하태기 감독이 손을 떨면서 울기도 했다.[7] 대신 후임 감독이던 김혁섭이 짤렸다.[8] 참조.[9] 아마 POS 시절과 엠히 시절 방송에 찍힌 인상 변화를 비교한 짤 때문이었을 것이다.[10] 물론 퇴근은 안 했다고 한다(...). 대신 게임에 대해 터치는 하지 않아서 자율적인 분위기였다고 한다.[11] 하지만 팀은 1년 뒤에 모기업게임 채널 폐국음악 채널 개국으로 인해 해체된다.[12] 원래 프로필 사진으로 본인의 얼굴을 썼는데, 인터넷으로 자신의 근황이 퍼지자 다른 사진으로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