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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22:47:30

인천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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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시즌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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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컵 참가 구단 과거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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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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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FC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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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기본 문서 연고지 인천광역시
구단 인천 유나이티드 FC
주요 인물 현재 선수단 | 조성환 감독
역대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공식 레전드 | 주요 선수
시설 관련 문서 홈구장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기존구장 인천문학경기장
클럽하우스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센터
역사 구단 역사 역대 시즌 | 기록 | AFC 챔피언스 리그
시즌별 일람 역대 스쿼드 | 역대 유니폼 | 역대 등번호
K리그1 2005 (준우승)
FA컵 2015 (준우승)
현재 시즌 2023
유소년 관련 문서 유소년팀 인천대건고등학교 | 인천 유나이티드 U-12
시스템 유소년 시스템
팬덤 관련 문서 팬덤 규모와 인기
응원 응원가 | 서포터즈 파랑검정
팬커뮤니티 인천네이션
라이벌전 파일:FC서울 엠블럼(백색배경).svg 경인더비 | 파일:수원 삼성 블루윙즈 로고.svg 수인선 더비 | 파일:부천 FC 1995 로고.svg 032 더비
논란 사건·사고
마스코트 유티
장내 아나운서 안영민 | 오윤희
기타 잠강라 | 경제인 | 미들스타리그 | 전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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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FC
Incheon United FC
<colbgcolor=#033983><colcolor=#fff> 정식 명칭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
영문 명칭 Incheon United Football Club
법인명 ㈜인천유나이티드
창단 2003년 12월 30일([age(2003-12-30)]주년)
구단 형태 시민 구단
소속 리그 K리그1
연고지 인천광역시
홈구장 변천 인천문학경기장 (2004~2011 / 49,084석)
인천축구전용경기장 (2012~ / 18,989석)
라이벌 - 032 더비
- 인경전
- 수인선 더비
구단주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대표이사 전달수
단장 임중용
감독 조성환
주장 이명주
부주장 김도혁
마스코트 등대리, 버미, 꼬미, 유티, 애이니[1]
상징색 파란색, 검은색
웹 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0px-Emblem_of_Incheon_United.svg.pn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중단]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유소년]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포스트 아이콘.svg
팬 커뮤니티 파일:인천네이션.png |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
구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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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33983> 최다 출장 <colcolor=#000,#fff>김도혁 - 232경기[기준][5]
최다 득점 무고사 - 69득점[기준]
최다 도움 아길라르 - 19도움[기준]
최다 공격 포인트 무고사 - 80개[기준]
최다 무실점 김이섭 - 46경기[기준]
}}}}}}}}} ||
구단 수상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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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color=#000,#fff> 2006 FA컵 페어플레이상
}}}}}}}}} ||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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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33983> K리그1 득점왕
(1회)
<colcolor=#000,#fff>유병수 (2010 28경기 22득점)
K리그1 감독상
(1회)
장외룡 (2005 준우승, 15승 6무 6패)
K리그1 베스트 11
(6회)
2회
요니치 (2015, 2016)
1회
임중용 (2005)
정인환 (2012)
아길라르 (2018)
제르소 (2023)
}}}}}}}}} ||
유소년 체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33983> 18세 이하
(U-18)
<colcolor=#000,#fff>대건고등학교
15세 이하
(U-12)
광성중학교
15세 이하
(U-12)
인천 유나이티드 U-12
}}}}}}}}} ||
INCHEON IS MY PRIDE

1. 개요2. 시즌별 일람3. 팀 컬러4. 엠블럼5. 캐치프레이즈6. 색상 일람7. 코칭 스태프 명단8. 선수 명단9. 역대 감독10. 역대 주장11. 역대 선수단12. 등번호13. 영구 결번14. 주요 기록15. 유소년 체계16. 유니폼17. 마스코트18. 홈구장19. 클럽 하우스20. 타 구단과의 관계21. 팬덤
21.1. 규모와 인기21.2. 연도별 평균 관중 수21.3. 응원21.4. 서포터즈21.5. 온라인 팬 커뮤니티 - 인천네이션21.6. 네임드 팬
22. 역대 주요 선수23. 10주년 기념 베스트 1124. 사건 사고25. 여담2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2003년에 창단된 인천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K리그1 소속의 프로 축구단이다.

K리그의 13번째 구단이다. 최고 성적은 2005년 K리그 준우승과 2015년 FA컵 준우승이다. 2002 월드컵이 끝난 후 전국 곳곳에 지어진 월드컵경기장들의 사후 활용과 K리그 저변 확대를 위해서 대도시들을 중심으로[10] 창단을 추진했고 인천은 할렐루야 축구단 유치와 시민 구단 창단을 두고 고민하다가 후자로 방침을 정하면서 시민 구단 인천 유나이티드를 창단했다. 인천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은 인천시와 시민, 기업이 함께 구단을 출범시켰다는 '연합'의 뜻을 나타내며 시민 구단의 의의와 가장 합치되기 때문에 구단 명칭으로 선정됐다.#

2. 시즌별 일람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2023 2024 2025 2026 2027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033983> 파일:인천 유나이티드 FC 로고.svg인천 유나이티드
시즌별 일람
}}} ||
시즌 리그 코리아컵 ACL CWC
디비전 리그 순위 경기 승점
2004 1부 K-리그 12 24 6 8 10 20 29 -9 26 32강 - -
2005 K-리그 2 27 15 6 6 41 32 +9 45 16강 - -
2006 K-리그 9 26 7 12 7 24 27 -3 33 4강 - -
2007 K-리그 9 26 8 9 9 30 32 -2 33 4강 - -
2008 K-리그 7 26 9 9 8 29 30 -1 36 32강 - -
2009 K-리그 6 29 11 10 8 32 30 +2 43 32강 - -
2010 K리그 11 28 8 7 13 42 51 -9 31 8강 - -
2011 K리그 13 30 6 14 10 31 40 -9 32 16강 - -
2012 K리그 9 44 17 16 11 46 40 +6 67 16강 - -
2013 K리그 클래식 7 38 12 14 12 48 46 +2 50 8강 - -
2014 K리그 클래식 10 38 8 16 14 33 46 -13 40 32강 - -
2015 K리그 클래식 8 38 13 12 13 35 32 +3 51 준우승 - -
2016 K리그 클래식 10 38 11 12 15 43 51 -8 45 8강 - -
2017 K리그 클래식 9 38 7 18 13 32 53 -21 39 32강 - -
2018 K리그1 9 38 10 12 16 55 69 -14 42 16강 - -
2019 K리그1 10 38 7 13 18 33 54 -21 34 32강 - -
2020 K리그1 11 27 7 6 14 25 35 -10 27 3라운드 - -
2021 K리그1 8 38 12 11 15 38 45 -7 47 3라운드 - -
2022 K리그1 4 38 13 15 10 46 42 +4 54 3라운드 - -
2023 K리그1 5 38 14 14 10 46 42 +4 56 4강 조별 리그 -

3. 팀 컬러

열악한 재정 기반과 얇은 선수층, 잦은 선수 이탈에도 우수한 신인들과 산전수전 다 겪은 준척급 선수들이 강한 팀워크와 정신력을 앞세워 분전하는 것이 창단 이후부터 계속된 전통적 팀 컬러. 그 덕에 승강제 도입 이후 단 한 번도 K리그2로 강등된 적이 없다. 심지어 성남 FC도 강등된 2016년부터는 유일하게 K리그2 경험이 없는 시민구단이 됐다. 그 덕분에 붙은 별명이 K리그의 생존왕. 끝내는 웃고 있으니 해피엔딩이지만 한계들만큼은 극복하지 못해서 늘 잔류하는 것에 웃을 수밖에 없는 조금은 슬픈 속사정을 가지고 있다. 만년 강등 위기가 조금 슬픈 이유는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러한 사정 덕분에 승강제 도입 이후 승강플레이오프에도 떨어진 적이 없어서 단 한 번의 강등 경험이 없는 유일한 시도민 구단이 됐고 어느 매체에서든 팀이 소개될 때 늘 생존왕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시즌 시작 전에는 언제나 하위권으로 분류되지만 심심찮게 상위 스플릿을 위협하고 FA컵 결승에 오를 정도로 K리그 내에서는 복병으로 손꼽힌다. 시즌 중에는 시즌 전부터 예견되었거나, 시즌 도중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기를 맞아 최하위권에 랭크되는 팀이 늘 서너 팀 정도 있는데,[11] 이 중 절반 이상의 팀이 끝끝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추락하는 반면 인천은 여름부터 늦게나마 맞아가는 선수들의 조직력, 구성원들의 위기의식 각성, 팀의 상황을 각오하고 들어온 새로운 멤버들이라는 세박자가 맞아 떨어져서 어떻게든 나머지 팀들을 끌어내리고 기어이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해낸다. 인천이 여름 이적 시장에서 데려오는 국내 선수들은 대부분 상위권~중상위권 팀에서 선발이나 로테이션 멤버로 경쟁을 하다가 자리에서 밀려난 준척급 자원들로, 본인들이 원래 갖추고 있던 실력과 더불어 인천이 처한 상황 또한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목표 의식과 간절함이 매우 뚜렷하다.

팬들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점은 성장세가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선수가 매년 몇명 단위로 홀라당 팔려나가면서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대신 인천은 유소년, 신인 발굴과 잊혀진 선수 재활용에 일가견이 있는 팀이라 매년 활약해 주는 선수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팀을 벼랑 끝에서 끌어 올린다. 다만 이와 같은 일들이 매년 반복되기 때문에 시즌 시작 직전까지도 스쿼드가 어느 수준인지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야 문제점이 여기저기 터져나오면 여름 이적시장에서 급히 보강한다. 때문에 인천은 늘 여름 이적시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팀이 되며, 그래서 여름 이적 시장이 종료되면 이 팀의 특수 능력이 발동된다. 여름까지는 꽤 차이나는 꼴찌, 혹은 꼴찌까지는 아니더라도 잔류와는 거리가 있는 강등권에 랭크되어 있기에 대부분의 인천 팬들 또한 이번 시즌만큼은 힘들겠다며 체념하게 되는데, 희한하게 이때부터 각성하더니 귀신같이 승점을 쓸어 담는다. 특히 팀이 강등 위기에 처하게 되면 어디 가 있었는지 안 보였던 팬들이 홈, 원정을 가리지 않고 경기장으로 대거 집결하여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린다. 인천의 19시즌 마지막 홈 세경기에서 전북, 수원, 상주를 맞아 각각 12,684명, 11,132명, 11,463명이 입장했고 이 홈 3연전에서 1승 2무를 거두면서 순식간에 승점 5점을 얻어내고 강등권 탈출에 성공했다. 겪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인천 팬의 목소리 크기만큼은 K리그 최고를 다툰다. 그 목소리로 만 명이 악을 질러대니 선수들에게 분명히 자극이 됐을 것이다. 선수들 또한 인터뷰를 통해서 많은 관중이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 피드백했다.

상술한 대로 8~9월부터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 가을 인천이란 별명 또한 가지고 있다.[12] 다만 2000년대부터 인천 유나이티드가 매년 중위권 이상에 플레이오프에도 심심치 않게 진출하고 FA컵 4강 이상으로 ACL 진출권도 노린 전력을 지녔던 시절부터 응원한 팀 사정에 정통한 올드팬들의 경우, 구단과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생존왕 이미지에 굉장히 비판적이다. 중위권 이상을 노려야 할 전력까지 올라가 있음에도 단순히 ‘우리는 생존왕이니까 막판에 생존만 하면 돼‘라는 구단의 자화자찬으로 퉁치려는 마인드를 팬들에 대한 기만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살아남은 것에는 당연히 박수들은 치지만, 야구로 따지면 비밀번호 찍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고, 전반기 망쳐서 하위스플릿 떨어져서 겨우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단순히 생존했다고 환호해야 하나?" 하 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한국 제3도시 인천을 끼고 있기에 시민 구단 중에선 그래도 사정이 좀 나았던 편이라 더더욱. 2019 시즌에는 이러한 하위권 전전에 함께 하위권에 있던 경남, 제주와 묶여 강등권 경제인 트리오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팬들도 선수들의 막판 분전 및 생존본능에는 감동과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구단의 행정 및 눈가리고 아웅식 생존왕 이미지 띄우기에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 2018년 12월에 인천의 잔류를 이끌어냈던 욘 안데르센 감독 또한 이러한 구단의 생존왕 이미지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내가 와서 겪어 보니 인천은 그렇게 1부 리그에 생존하는 데 만족해선 안 되는 팀이다. 훌륭한 도시, 훌륭한 팬, 훌륭한 경기장과 인프라가 있다." 라고 하며, 구단이 좀 더 좋은 행정을 해주는 조직이 되기를 희망했다.

2019년 1월 전달수 대표이사의 취임과 2020년 8월 조성환 감독 부임 이후 정치적, 행정적으로 문제될 만한 행보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팀이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이 안정된 배경에 힘입어 인천 유나이티드는 2020시즌 15R까지 승점 5점이었다가 12경기 승점 22점을 쓸어 담으며 극적인 잔류에 성공했고, 2021시즌에는 8위로 조기 잔류 확정, 2022시즌에는 무려 K리그 4위로 2005년 준우승 이후 최고성적을 기록하면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PO에 진출했다.[13] 그리고 이렇게 나간 아시아 무대에서도 연승 행진을 이어나가며 인천은 이전과는 다른, 확실한 아시아의 강팀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했고, 지금도 증명해 나가고 있다. 아직은 2010년대 중후반의 '만년 강등권', '생존왕', '못하는 팀' 등등 인천은 못한다는 오해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이 많긴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22년부터 인천의 경기를 본 사람들이라면 분명 약팀의 경기가 아니며 내용과 결과를 모두 가져오는 진짜 강팀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4. 엠블럼

파일:인천유나이티드 엠블럼후보.jpg
인천 유나이티드 엠블럼 후보군
2003년 12월 23일부터 27일까지 4개 시안을 놓고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총 5,002명의 응모자 가운데 2,296명(46%)으로부터 1순위로 지정받음에 따라 구단 공식 엠블렘으로 선정됐다.

인천 유나이티드 엠블렘은 당시 K리그 다른 구단에서 사용하지 않은 타원형의 모양을 활용하여 창단 주체인 인천시, 시민, 기업이 원만하게 화합하는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엠블렘의 문양은 인천을 상징하는 , 바른길로 이끄는 방향키, 비상하는 날개의 형상을 조합하여 인천 구단이 한국프로축구의 새로운 리더가 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담았다. 또 노란색의 문양과 테두리에 해양도시인 인천을 나타내는 블루와 블랙의 줄무늬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인천구단의 역동성과 진취적인 기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축구 팬들 사이에선 멋진 엠블렘으로 손꼽히는 디자인이다.
파일:인천 유나이티드 10주년 앰블럼.png
인천 유나이티드 창단 10주년 엠블럼
2013년 시즌 구단 창단 10주년을 맞이하여 구단 정체성 확립과 함께 2013 시즌 K리그 클래식 상위 스플릿 진출 및 시·도민 구단 최초로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달성[14][15]하려는 의미를 담은 창단 10주년 기념 엠블럼을 선보였다.

기존 항구 도시 인천을 상징하는 닻 모양 형태의 형상을 기준으로 한 기본 엠블럼에다가 홈 경기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단순형상화 하였고 비상의 의미를 담은 날개 형태를 형상화하여 2013년 시즌을 최고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5. 캐치프레이즈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캐치프레이즈
시즌 캐치프레이즈
2004 Blue Heart 2004
2005 푸른물결 2005
2006 시민속으로 Into the Community[16]
2007~2010 My Pride My United
2011 Change & Challenge[17]
2012 Into the New ERA[18]
2013 인천축구지대본[19]
2014 승리, 그 이상의 감동!
2015 Play, Together![20]
2016~2018 우리는 인천
2019~2022 인천축구시대[21]
2022 OUR CITY, OUR UNITED[22]
2023~ Break Through the Limits!

6. 색상 일람

상징색 RGB
(헥스 코드)
CMYK Pantone
IUFC Blue R0 G79 B158
(#004F9E)
C95 M70 Y5 K0 Pantone 2728 C
IUFC Black R35 G24 B21
(#231815)
C0 M0 Y0 K100 Pantone Black C
IUFC Yellow R255 G219 B0
(#ffdb00)
C0 M14 Y100 K0 Pantone 102 C

7. 코칭 스태프 명단

직책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국적 생년월일
감독 조성환 CHO Seonghwa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0.10.16
수석 코치 김한윤 KIM Hanyoo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4.07.11
코치 박용호 PARK Yongho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1.03.25
코치 김재성 KIM Jaesu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10.03
코치 변재섭 BYUN Jaesub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5.09.17
골키퍼 코치 김이섭 KIM Leesub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4.04.27
피지컬 코치 오지우 OH Jiwoo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10.19
팀 매니저 김민석 KIM Minsu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04.13
의무 트레이너 황근우 HWANG Geunwoo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0.02.08
통역관 박준성 PARK Junsu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01.24

직책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국적 생년월일
U-18 감독 최재영 CHOI Jaeyou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09.22
U-18 코치 노영래 Noh Young Rae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02.08
U-18 골키퍼 코치 윤진호 YUN Jinho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07.04
U-15 감독 이성규 LEE Sungkyu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04.13
U-15 코치 안준혁 AHN Junhyeo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02.02
U-15 골키퍼 코치 최승주 CHOI Seungjoo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04.06
U-12 감독 이재홍 LEE Jaehon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03.13
U-12 코치 조동욱 CHO Dongwook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05.21
U-12 코치 한승호 HAN Seungho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2.09.15
유소년 트레이너 이동원 Lee Dongwo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11.25

8. 선수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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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신체 비고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민성준 MIN Seongjun 1999.07.22 190cm, 77kg
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김건희 KIM Geonhee 2002.09.16 192cm, 84kg
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김연수 KIM Yeonsoo 1993.12.29 187cm, 78kg
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오반석 OH Bansuk 1988.05.20 190cm, 81kg
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이명주 LEE Myungjoo 1990.04.24 176cm, 72kg 주장
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문지환 MUN Jihwan 1994.07.26 185cm, 77kg
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김도혁 KIM Dohyeok 1992.02.08 173cm, 70kg 부주장
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신진호 SIN Jinho 1988.09.07 177cm, 72kg
9 파일:몬테네그로 국기.svg FW 무고사 Stefan MUGOSA 1992.2.26 188cm, 81kg
11 파일:기니비사우 국기.svg FW 제르소 Gerso FERNANDES 1991.02.13 172cm, 62kg
1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최승구 CHOI Seunggu 2005.11.20 173cm, 59kg
1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최우진 CHOI Woojin 2004.07.18 175cm, 70kg
1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임형진 Lim Hyeongjin 2001.07.23 190cm, 83kg
1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이가람 LEE Garam 2005.08.06 174cm, 65kg
1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김준엽 KIM Junyub 1988.05.10 178cm, 76kg
1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천성훈 CHEON Seonghoon 2000.09.21 191cm, 84kg
1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송시우 SONG Siwoo 1993.08.28 176cm, 71kg
20 파일:호주 국기.svg DF 델브리지 Harrison DELBRIDGE 1992.03.15 193cm, 90kg
2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백민규 BAEK Mingyu 2005.11.20 183cm, 75kg
2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지언학 Ji Eonhak 1994.03.22 180cm, 73kg
2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정동윤 JEONG Dongyoon 1994.04.03 175cm, 72kg
2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김민석 KIM Minseok 2002.09.05 180cm, 72kg
2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이범수 LEE Bumsoo 1990.12.10 190cm, 85kg
2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김성민 KIM Seongmin 2000.07.03 171cm, 68kg
2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김보섭 KIM Bosub 1998.01.11 183cm, 74kg
2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민경현 MIN Kyeonghyeon 2001.12.16 174cm, 66kg
2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김유성 KIM Yusung 2001.03.31 187cm, 80kg
3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김훈 KIM Hun 2005.02.26 174cm, 63kg
3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성윤수 SUNG Yoonsoo 2003.03.15 187cm, 88kg
3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강도욱 KANG Dowook 2005.03.28 175cm, 64kg
3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김현서 KIM Hyunseo 2004.03.25 174cm, 62kg
3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하동선 HA Dongseon 2004.04.16 181cm, 75kg
3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홍시후 HONG Sihoo 2001.01.08 175cm, 65kg
3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박진홍 PARK Jinhong 2004.10.17 183cm, 75kg
40 파일:콩고민주공화국 국기.svg FW 음포쿠 Paul-Jose M'POKU 1992.04.19 179cm, 79kg
4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김동민 KIM Dongmin 1994.08.16 180cm, 72kg
5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권한진 KWON Hanjin 1988.05.19 187cm, 80kg
6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김세훈 KIM Sehoon 2004.01.20 178cm, 70kg
7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박승호 PARK Seungho 2003.09.01 180cm, 74kg
82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DF 요니치 Matej JONJIĆ 1991.01.29 187cm, 83kg
8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이종욱 LEE Jongwook 1999.01.26 181cm, 75kg
<colbgcolor=#276fb8> 구단 정보
대표이사: 전달수 / 감독: 조성환 / 홈구장: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출처: 인천 유나이티드 웹 사이트
}}}}}}}}}}}} ||

<rowcolor=#fff> 구단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신체 조건 비고
김천 상무 FC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김동헌 Kim Dongheon 1997.03.03 186cm, 87kg 2025.06.17 전역
평창 유나이티드 FC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강윤구 Kang Yun-Koo 1993.02.08 171cm, 63kg 2025년 소집해제
거제시민축구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이태희 Lee Tae-Hui 1995.04.26 189cm, 81kg 2025년 소집해제

9.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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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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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대 2대 3대
로란트 파일:독일 국기.svg
(2003~2004)
감독 대행
장외룡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
장외룡*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2006, 2008)
감독 대행
박이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
페트코비치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2009~2010)
<rowcolor=#ffffff> 3대 4대 5대 6대
감독 대행
김봉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0)
허정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0~2012)
감독 대행
김봉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
김봉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2014)
김도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2016)
<rowcolor=#ffffff> 6대 7대 8대
감독 대행
이기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6)
이기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2018)
감독 대행
박성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8)
안데르센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2018~2019)
감독 대행
임중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
<rowcolor=#ffffff> 9대 10대 11대 파일:인천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유상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
임완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감독 대행
임중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조성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
* 는 감독 대행에게 구단을 맡긴 후 다시 복귀한 경우
: K리그1 우승 / : K리그2 우승 / : FA컵 우승 / :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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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감독
국적 이름 기간
1대 파일:독일 국기.svg 베르너 로란트[23] 2003 ~ 2004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장외룡 2004
2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장외룡 2005 ~ 2006, 2008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이천 2007
3대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일리야 페트코비치 2009 ~ 2010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봉길 2010
4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허정무 2010 ~ 2012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봉길 2012
5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봉길 2012 ~ 2014
6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도훈 2015 ~ 2016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기형 2016
7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기형 2017 ~ 2018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성철 2018
8대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욘 안데르센 2018 ~ 2019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중용[24] 2019
9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유상철 2019
10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완섭 2020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중용 2020
11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조성환 2020 ~

10. 역대 주장

파일:인천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인천 유나이티드 FC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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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초대 2대 3대 4대 5대
김현수
(2004)
임중용
(2005~2008)
노종건
(2008)
이준영
(2009)
전재호
(2010)
6대 7대 8대 9대 10대
배효성
(2011)
정인환
(2012)
김남일
(2013)
박태민
(2014)
유현
(2015)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김동석
(2015~2016)
김도혁
(2017)
최종환
(2017~2018)
남준재
(2019)
정산
(2019)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이재성
(2020)
김호남
(2020)
김도혁
(2021)
오반석
(2022~2023)
이명주
(2024~ )
}}}}}}}}}}}}}}} ||

11. 역대 선수단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인천 유나이티드 FC/역대 스쿼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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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등번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인천 유나이티드 FC/등번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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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영구 결번

인천 유나이티드
영구 결번
No. 12
시민 구단으로 출범한 취지를 살려 12번째 선수인 서포터즈와 팬들을 위해 창단과 함께 12번을 영구 결번 처리했다.

14. 주요 기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인천 유나이티드 FC/기록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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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유소년 체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인천 유나이티드 FC/유소년 시스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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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인천 유나이티드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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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 지부

16.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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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빈 가로 이미지.svg
어웨이 GK 홈[1] GK 어웨이
2024시즌 스폰서
메인 스폰서 용품 후원사
파일:인천국제공항공사 영문 로고_좌우.svg 파일:신한은행 베이직 로고.svg 파일:인천경제자유구역청 CI.svg 파일:1200px-Macron_SPA_(2019)_logo.svg.png

[1] 원정 유니폼을 골키퍼 퍼스트 킷으로 활용한다.

17. 마스코트

파일:인천 유나이티드 FC 마스코트 유티(리뉴얼 전).svg
인천 유나이티드의 공식 마스코트는 유티다.

인천광역시상징새두루미를 의인화한 형상으로 프로축구계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는 의지와 인천광역시, 인천시민, 인천 연고 기업이 화합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친근한 이미지로 상징화하였다. 붉은 머리털은 축구에 대한 강한 열정을, 큰 날개는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와 페어플레이의 스포츠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2032701001961200163951.jpg
특이사항으로는 대전 시티즌 팬에게 폭행(!!!)당한 전력이 있다. 일명 두루치기 사건. 자세한 내용은 인천 유나이티드 FC/2012년 참고.

파일:인천 유나이티드 FC 마스코트(인천친구들).svg
2020년 마스코트를 리뉴얼하면서 모습이 바뀌고 서브 마스코트로 물범과 등대를 캐릭터화한 버미, 애이니, 꼬미, 등대리가 추가됐다.[25]

18. 홈구장

파일:숭의아레나프리미엄석.jpg

인천 유나이티드 홈구장
2004~2011 2012~
인천문학경기장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창단 첫 해부터 홈구장으로 쓰던 인천문학경기장을 떠나 2012년부터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쓰고 있다.

인천 구단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팀의 창단 초창기부터 숭의동과 인연이 조금 있다. 당시 홈구장이던 문학경기장에서 아시아 육상 선수권 대회를 열기로 했는데 육상 트랙을 새로 설치하는 공사로 인해 2004년 홈경기 중 일부를 옛 숭의종합경기장에서 치른 적이 있다. 아울러 인천 유나이티드 이전에 인천·경기를 연고로 했던 유공 코끼리의 홈경기 중 일부도 숭의경기장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 인천의 축구 역사가 시작한 곳에서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셈.

설계 때부터 오직 인천 유나이티드만을 위해 만들어진 경기장으로 지어졌다. 관중석 의자 색깔도 인천의 유니폼 색인 파란색을 기본으로 하고, 검정색과 노란색으로 수놓았다. 동쪽 관중석에는 의자에 구단 이름을 영문으로 새겨 넣어 인천 팬들의 자부심을 높였다.

그라운드 터치라인에서 관중석까지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여 경기를 생동감있고 역동적으로 볼 수 있다. 골을 넣은 선수가 관중석으로 달려가 팬들과 껴안는 골 세레모니에 최적화 되어있다.

파일:/image/396/2012/07/15/20120715215411_20120715002004_0_0.jpg
2012년 7월 15일 극적인 3-2 역전 결승골#을 성공시킨 빠울로의 골 세레모니.

관중석과 그라운드가 가깝다 보니 그라운드를 뛰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선수들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국내의 다른 어떤 구장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관중과의 거리를 좁혔고, 2019년에 완공된 DGB대구은행파크나 여기에 비벼볼만 하다.

사용 구단의 평균 관중에 비해 지나치게 큰 몇몇 구장과는 달리 인천의 관중을 고려해 약 2만 석의 규모로 지었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 문서 참조.

참고로 옛 홈구장인 인천문학경기장도 여전히 인천의 명목상 홈구장 중 하나다. 인천이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한다면 "결승전은 좌석 4만석 이상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AFC 규정 때문에 무조건 문학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문학에서 경기를 치를 일은 사실상 없는데 팀의 흥행이 절정에 다다라서 4만명 이상의 대관중이 들어올 수 있는 경기가 열린다면[26] 인천문학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겠다는 것이 인천 구단의 계획이다. 하지만 손흥민 정도의 슈퍼스타를 영입하고 메가톤급 흥행 이슈가 몇 겹으로 터지지 않는 한(...) 인천의 문학 홈경기 개최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여담으로 문학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려면 옆집을 홈으로 삼고 있는 SSG 랜더스로부터 대관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학경기장 전체에 대한 관리 권한에 랜더스 야구단 측에 있기 때문이다.

19. 클럽 하우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인천 유나이티드 FC 축구센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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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1b7aaf1eefb3405db6643579b2946d4.jpg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센터
IUFC Football Center
착공일 2020년 12월 10일
준공일 2022년 12월 27일
위치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 426
시설 연면적 3,332㎡ (지상 3층)

20. 타 구단과의 관계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구단답게 주로 수도권 구단과 라이벌 관계에 있다.

20.1. FC 서울 - 인경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경인 더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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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과 서울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서포터즈들의 호전성도 강하기 때문인지 미묘한 라이벌 감정과 해마다 끊이질 않는 양측 서포터즈 간의 충돌로 인해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다. 자금이나 규모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두 팀이지만 인천의 맹렬한 라이벌 의식 덕분에 상대 전적이 그렇게까지 밀리지는 않는 편.

그래서 서포터들 중에서는 슈퍼매치를 언론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더비라고 폄하하고 경인 더비야말로 진짜 더비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27]

인천이 처음 리그에 참여한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인천의 전적이 약간 앞서있었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인천이 이기질 못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백중세를 유지하고 있는 중. 2013년부터는 서울이 강한 우세에 놓였으나 2018년부터 인천에 약소한 우세가 이어지고 있다. 2015년 FA컵 결승에서 맞붙으며 라이벌 의식을 더 크게 키웠다.

언론과 K리그 팬들은 경인 더비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고 인천은 서울을 자신들의 가장 큰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으나, 서울은 딱히 인천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8]

2020년 시즌 최종전이었던 FC 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며 잔류를 확정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원정 팬 출입이 금지된 K리그 규정을 어기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가서 응원을 한 일과, 경기 전날 FC 서울 선수인 김남춘이 사망하여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된 경기에 추모는커녕 응원가를 부르고 주장 김도혁 선수와 인사를 나눈 일로 서울 팬들을 비롯한 K리그 팬들에게 질타를 받았다.[29] 김도혁은 이후 개인 SNS와 인터뷰를 통해 사과했으나 서울 팬들의 적개심만 키우고 말았다. 또한 경기종료 직전 FC 서울의 양한빈 선수가 김도혁 선수를 가격하면서, 이 일로 인해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더욱 공고해졌다.

흥미로운 점은 두 팀 간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과 별개로 구단 간의 선수 이동은 활발한 편이라는 것이다. 굴지의 대기업 산하 기업 구단과 열악한 시민 구단 사이의 거래임에도 그 손익이 일방적이었던 적은 별로 없다는 점도 이채롭다.

20.2.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수인선 더비

수인선 지하철 사이의 더비[30]로 지역 내에서는 수인선 더비라 부른다. 반면 수원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약하다. 차범근 시절까진 수원 2중대였고 윤성효 감독 부임 이후엔 그나마 좀 할만해졌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상대. 수인선 더비로 올라와 있지만, 국축팬들에게는 중대결정전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기는 팀이 다음 경기 때까지 1중대가 된다는 뜻에서 중대결정전이라고 이름 붙인 것.

2012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의 역사적인 홈 첫경기에서도 수원 삼성은 자비없이 2:0으로 무참히 홈 첫경기를 패배로 장식해 주었다. 하필 2골 다 인천 출신 라돈치치가 꽂아 넣었다. 반대로 2013년에는 25R에서 인천이 수원 삼성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며 역사적인 첫 상위 스플릿 입성을 결정짓는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기나긴 수원전 무승이 이어져오다가 2019년 K리그1 25 라운드 (8월 10일) 에서 인천은 수원 빅버드에서 열린 원정경기에서 후반 6분 김호남이 오른 측면에서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문을 열어 1-0으로 이겼다. 인천은 수원 삼성을 상대로 6년 만이자 원정에서는 무려 10년 만에 승리를 맛봤다.

2019년 10월 27일 파이널 라운드 B에서도 인천 유나이티드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전반 25분 타카트에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경기 종료 직전 명준재의 극적인 동점골과 함께 극적인 무승부와 함께 잔류본능을 이어가게 된다.

2020년에는 2014년 이후 6년만에 숭의아레나에서 승리하게 된다.

2022년에는 1라운드 홈 개막전에서 인천이 무고사의 극장골로 승리하였다.

통산 9승 18무 29패라는 절대적인 상대 전적 열세를 당하고 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강등되어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강등되거나 수원이 올라와야 수인선더비가 성립되지만 FA컵(대한민국)에서 만날수도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강둥되고난후 수원 FC와의 수인선더비로 바꿔야한다는 말도나온다.

20.3. 부천 FC 1995 - 032 더비

지리적으로 인천부천서울보다도 훨씬 가까운 이웃 도시였고, 1980년대 한때 유공 코끼리가 인천·경기지역을 광역 연고로 하던 시절도 있었다보니[31]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기 전엔 부천 SK를 응원하는 인천시민들도 많았다. 그리고 2003년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고 이 두 팀은 032 더비라 하여 많은 명경기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부천 SK는 이후 제주로 연고지를 이전해 제주 유나이티드가 되었고, 두 팀간의 대결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싶었지만 부천 FC 1995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032 더비[32]가 다시 부활하였다.

재밌는 건 前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김봉길의 아들 김신철이 부천에서 뛴 적이 있다는 것. 이래저래 다시 만난다면 재밌는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팀 성적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4년 봉길매직은 끝났고, 김신철 선수는 FC 안양으로 이적하며 부담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2015년 FA컵 32강전에서 만나게 되어 10년 만에 032 더비가 부활하였다.

파일:external/www.incheonutd.com/969.jpg

10년 만의 더비 경기에서 2대0으로 완승하자 인천 서포터즈가 선보인 배너. 같은 032 다른 CLASS. 인천과 부천이 지역번호 032를 공유하지만, 부천이 2부 리그인 K리그2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20.4. 전북 현대 모터스

양팀의 전력 차에 비해 이상하리만큼 전북을 상대로 약하지 않다. 역대 전적도 14승 19무 21패로 패가 그렇게 많지 않다. 과거 전북이 동네북으로 취급당하던 2000년대 중반에 전북을 상대로 승점을 많이 쌓은 것도 있지만, 리그 최강으로 군림한 2010년대 이후에도 인천은 가끔씩 전북의 발목을 잡으며 승점 3점을 획득할 정도. 유난히 인천만 만나면 부진한 모습을 보여줘서인지 전북의 수장인 최강희 감독도 인천과의 승부는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 반대로 인천 선수들은 전북만 만나면 오히려 힘이 난다고 하니 과거 수원과 대전의 천적관계가 생각날 정도.

한편 2013년에 정혁-정인환-이규로가 세트로 전북으로 이적했고, 2014년에는 김남일한교원이, 2015년에는 문상윤까지 전북에 합류해서 이 면에서도 인천은 전북에 경쟁 심리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이적한 선수들 모두가 하나같이 인천에서는 핵심으로 활약한 선수들인 반면 한교원을 제외하면 전북에서의 활용도가 애매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인천 선수의 전북 이적은 일단은 사그라들었고 김인성, 박세직, 송제헌 등 반대로 전북에서 인천으로 합류한 선수들도 있어서 이적 면에서 전북의 2중대라는 놀림도 옛말이 됐다. 2019년 초에는 문선민이재성의 트레이드로 두 팀 간의 대형 선수 거래가 간만에 일어났는데, 문선민은 2018년 인천 소속으로 전북을 만날 때마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해 고전시킨 주인공인만큼 묘한 이적이다.

2021년 들어서는 전북 상대로 리그 첫 원정 경기에서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이며 대패했지만 19R 홈경기에서는 게임 내내 경기력에서 앞서며 날카롭게 몰아세우는 모습을 보이다가 추가시간 막판 실점으로 1:1 무승부라는 결과를 거뒀다. 또 이 시즌에는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정혁 선수가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2022년에는 4년째 전북 상대로 승리가 없었지만 홈구장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전북전 4년 연속 무승이라는 기록을 깼다.

21. 팬덤

파일:external/www.incheonutd.com/11160.jpg
2015 시즌 FA컵 준결승전에서 전남 드래곤즈를 꺾은 뒤 서포터즈와 함께 한 기념촬영.
인천의 창단 최초 FA컵 결승 진출을 축하하는 기념비적인 사진이기도 하다.
파일:인천유나이티드팬들_락싸졸린꿈.gif
위 사진과 비교될 정도로 3~4년 사이에 팬층이 두터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5 시즌 FA컵 준우승을 계기로 팬이 점점 늘어났으며,
2019 시즌부터는 창단 이래로 다시 한번 절정을 찍고 있다.

21.1. 규모와 인기

토박이가 적고 충청·호남·이북 피난민 등 외지 출신 인구가 많은 인천의 인구 특성과 K리그 출범 이후 20년간 인천 연고 축구단이 없었던데다 삼청태현SK 와이번스[33] 대표되는 지역 연고 프로야구단의 존재 때문에[34] 처음 인천이 축구단을 창단하려 할 때는 과연 이 팀이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일부 있었다. 그러나 인천은 프로축구단이 창단되기 전부터 이미 뜨거운 축구 열기가 잠재된 도시였다. 지역에 부평고등학교라는 축구 명문 학교가 있었고 김남일, 이천수, 최태욱, 이근호, 노정윤, 이임생[35] 인천 출신 축구 스타도 많았으며 그동안 인천 연고팀만 없었을 뿐 부천 SK수원 삼성 블루윙즈 등 주변 지역을 연고로 하는 팀을 응원하는 축구 팬들도 꽤 많았다.[36]

축구 열기는 시민 구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수적이었던 시민주 공모에서 여실히 드러났는데 앞서 시민 구단으로 출범한 대구 FC보다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 인천 축구단 창단을 위해 4만7000여명의 시민이 주주로 참여했고 2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축구단 창단에 몰아줬다. 그리고 첫 번째 리그 참가 시즌인 2004년부터 홈구장인 인천문학경기장에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 특히 통합 승률 1위,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거뒀던 2005년에는 수많은 관중이 함께 경기장에서 울고 웃으며 인천의 저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인천의 홈 평균 관중은 2009년까지 16,000명대를 찍으면서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지만[37] 2000년대 후반에 들어 기업들의 후원 감소와[38] 구단 성적 저하 등 여러 요인으로 팬층이 단계적으로 감소하며 한때 비인기 구단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이 시기 관중 감소는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의 여파로 K리그 인기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던 시기의 문제이긴 했다. 그러나 유독 인천의 관중 감소 정도가 두드러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15년 FA컵에서 감동의 준우승과 2016시즌 리그 마지막 홈경기에서의 승리 덕에 극적으로 1부리그에 잔류하고 경기 종료 후에 마치 유럽과도 같은 관중 난입의 대광경이 펼쳐진 것을 기점으로 팬이 점차 늘더니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팬덤 규모가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인천의 구단 이미지는 "하위권 팀이기는 한데 어떻게든 잔류에 성공하며 상위권 팀을 상대로 고춧가루를 잘 뿌리는 "잔류왕, 생존왕"이었다.

결론적으로 순위만 놓고 보면 1부리그에서 그리 별볼일 없어 보이는 중하위권 팀일지도 모르나 한편의 드라마처럼 구단, 선수, 팬의 세박자가 조화된 투혼의 시나리오가 수년째 계속되자 이것이 하나의 팀 컬러처럼 자리잡았고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 구단의 인기 또한 상승하며 현재는 당당히 K리그의 인기팀이라고 부를 수 있는 레벨의 팬층을 갖추게 되었다. 무엇보다 팀에 대한 선수들과 팬들의 충성심은 리그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끈끈한 저력이 있는 팀이다.

21.2. 연도별 평균 관중 수

연도별 평균 관중
<rowcolor=#ffffff> 시즌 소속 리그 총 관중 평균 관중 순위 비고
2004 K-리그 142,821 11,901 5/13 창단 첫 해
2005 K-리그 316,591 24,353 1/13 리그준우승
인천 최다 관중
2006 K-리그 149,559 11,504 4/14 -
2007 K-리그 216,728 16,671 3/14 -
2008 K-리그 175,023 13,463 5/14 -
2009 K-리그 146,985 10,498 9/15 -
2010 K리그 119,990 8,570 10/15 -
2011 K리그 113,432 7,562 10/16 -
2012 K리그 82,549 3,752 10/16 [실관중집계시작]
[홈구장이전]
2013 K리그 클래식 134,472 7,077 6/14 -
2014 K리그 클래식 86,815 4.569 7/12 -
2015 K리그 클래식 97,250 4,862 8/12 -
2016 K리그 클래식 121,068 6,053 7/12 -
2017 K리그 클래식 70,025 3,685 6/12 -
2018 K리그1 84,151 4,429 6/12 [유료관중집계시작]
2019 K리그1 161,593 8,504 6/12 -
2020 K리그1 6,849 526 6/12 [코로나사회적거리두기]
2021 K리그1 24,925 1,311 9/12 [코로나사회적거리두기]
2022 K리그1 99,968 5,261 6/12 [단계적일상회복]
2023 K리그1 169,826 8,938 7/12 유료관중집계이후
최다관중
리그컵 연도별 평균 관중
<rowcolor=#ffffff> 시즌 소속 리그 총 관중 평균 관중 전체 구단 중 상대 순위 경기 수
2004 삼성 하우젠 컵 30,127 5,021 9/13 6
2005 삼성 하우젠 컵 54,076 9,021 8/13 6
2006 삼성 하우젠 컵 31,946 4,563 6/14 7
2007 삼성 하우젠 컵 44,834 7,472 3/14 6
2008 삼성 하우젠 컵 39,338 7,867 3/12 5
2009 피스컵 41,606 13,868 3/15 3
2010 포스코컵 26,483 13,241 3/15 2
2011 러시안캐시컵 6,607 3,307 7/13 2

21.3.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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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K리그 구단들이 그렇듯 구단 차원에서의 응원단은 두고 있지 않다. 대신 푸른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2명의 장내 아나운서인 안영민 아나운서와 오윤희 아나운서가 활동하고 있으며, 경기 전 응원 연습이나 하프타임 행사 진행, 인천의 선수가 골을 넣었거나 호수비를 보여줬을 경우의 선수 응원 콜 선창, 경기 종료 후 승무패 알림 등을 맡는다. 소개 영상 이들 중 김민정 아나운서는 결혼을 계기로 2018년을 마지막으로 퇴직함에 따라 한동안 안영민 아나운서 혼자 진행했으나, 2021년 신입 여성 아나운서 공개 채용을 통해 오윤희 아나운서가 새로 합류했다.

21.4. 서포터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파랑검정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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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의 과거 공식 서포터즈는 미추홀 보이즈(MEETYOUHALL BOYS)였으며, 규모는 작지만 적극적인 행동력과 특유의 호전성으로 다른 대형 구단들의 대형 서포터즈들과도 전혀 밀리지 않는 악명과 사건 기록을 자랑했다. 수원의 프렌테 트리콜로, 서울의 수호신 소속 소모임인 타나토스와 함께 클래식에선 제일 악명 높았던 서포터다.

미추홀 보이즈가 2014년 9월을 마지막으로 해체된 후에는 인천의 각 서포터 소모임이 파랑검정이라는 이름의 현장 연합 팀을 구성하여 응원을 진행하고 있다.

21.5. 온라인 팬 커뮤니티 - 인천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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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JriFyt.jpg

21.6. 네임드 팬

22. 역대 주요 선수

인천 유나이티드 FC 공식 레전드
파일:파검20번.jpg
임중용
파일:파검1번.jpg
김이섭
파일:파검17번.jpg
전재호
파일:파검6번.jpg
김학철

23. 10주년 기념 베스트 11

정혁이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4-4-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W
유병수
FW
설기현
MF
김민수
MF
정혁
MF
김남일
MF
박준태
DF
전재호
DF
임중용
DF
안재준
DF
박태민
GK
김이섭
}}} ||
전재호가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3-5-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W
라돈치치
FW
데얀
MF
전재호
MF
김치우
MF
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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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치
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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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
임중용
DF
이정수
DF
안재준
GK
김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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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이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4-4-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W
유병수
FW
데얀
MF
방승환
MF
김상록
MF
노종건
MF
박재현
DF
전재호
DF
임중용
DF
김학철
DF
최효진
GK
김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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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용이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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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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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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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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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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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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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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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DF
김학철
GK
김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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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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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여담

2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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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티는 구단 창단 당시부터 존재한 마스코트로 2020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리뉴얼했다. 버미, 애이니, 꼬미, 등대리는 인천광역시의 시정 홍보 마스코트인데 등대리는 설정상 팔미도 등대의 손자이며 버미, 애이니, 꼬미는 백령도에서 온 점박이물범이다.[중단] 2016년 3월 22일 이후 더 이상의 게시물을 올리지 않고 있다.[유소년] [기준] K리그, 리그컵, 코리아컵, ACL, CWC 합산 기록. 2023년 7월 12일 기준.[5] 2023년 7월 12일 울산 원정에 선발 출전하며 임중용 전력강화실장의 기록을 깨고 역대 1위로 올라섰다.[기준] [기준] [기준] [기준] [10] 당시 프로축구팀이 없었던 도시는 인천, 대구, 광주였다. 이 중 대구는 가장 먼저 시민 구단 대구 FC를 창단했으며 광주는 차선책으로 상무 축구단을 유치했다가 2011년에 시민 구단 광주 FC로 다시 참가했다.[11] 전반기까지는 리그 우승까지 가능한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여름 이적 시장에서 팀의 주전 공격수였던 티아고 알베스 살레스가 이적하자 그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순위가 급격하게 추락하면서 결국 강등된 2016년의 성남 FC가 대표적이다.[12] 여담으로 같은 동네 야구팀에게도 비슷한 별명이 있다. 정확히는 이 쪽이 원조.[13] 원래는 K리그1 1, 2위와 FA컵 우승팀에게 조별리그 직행 티켓과 K리그1 3위에게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주어지지만, FA컵 우승팀이 리그 1, 2, 3위 팀 중 한 팀일 경우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리그 4위팀에게 주어진다. 2022년에는 리그 2위 전북 현대 모터스FC 서울을 꺾고 FA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리그 4위인 인천에게 주어졌다.[14] 2013 시즌에 상위 스플릿 진출은 성공했지만,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실패. 이후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2022시즌에 4위를 하며 ACL PO 진출에 성공했다.[15] 시도민 구단 최초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2014년 성남 FC가 달성했다.[16] 이 캐치프레이즈는 당시 인천 단장이었던 안종복과 연관이 있다. 안종복이 인천 구단을 떠난 뒤 2013년 경남 FC 사장으로 간 후 2006년 캐치프레이즈와 똑같은 컨셉의 '도민속으로'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경남 FC 캐치프레이즈로 썼으나 팀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자신은 콩밥까지 먹게 됐다.[17] 당시 인천 감독이었던 허정무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언급했던 '유쾌한 도전' 이라는 말에서 차용됐다.[18]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입주 첫 해를 기념하는 의미.[19] '인천이 세상 축구의 중심이다'라는 의미.[20] '투게더'는 2006년에 개봉한 인천유나이티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에 등장하는 현 인천 유나이티드 임중용 전력강화실장의 명대사로 유명하다.[21] ‘인천축구시대’ 앞 부분에 그 해의 숫자를 써서 사용한다.[22] ‘2022 인천축구시대’와 함께 사용되었다.[23] 구단 최초의 외국인 감독.[24] 구단 선수 출신 감독대행.[25] 마스코트 설명은 인천광역시 마스코트 소개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다. 푸른 물범 캐릭터가 버미(Bumy), 하얗고 작은 물범 캐릭터가 꼬미(Comy), 분홍색 물범 캐릭터가 애이니(Ainy), 등대는 당연히 등대리(Daery) 이다.[26] 참고로 인천 구단의 단일 홈경기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은 창단 후 첫 번째 어린이날 홈경기였던 2004년 5월 5일 인천 vs 울산 경기로 문학경기장에 3만7242명의 관중이 들어왔다. 인천 홈경기로 4만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한 적은 없으며 4만명 이상의 관중이 문학경기장에 입장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뿐이다.[27] 다만 이것은 서울과 수원이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로 싫어하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어떤 면에서나 슈퍼매치가 더 격렬하고 관심을 많이 받는 더비매치다.[28] 오히려 2010년대 말부터는 일방적으로 서울의 우세였던 슈퍼매치와는 달리 경인 더비는 서로 비등비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수원이 강등당하면서 서울 입장에서는 당분간 리그에서 만날 수도 없다.[29] 심지어 서울의 최대 라이벌이라 불리는 수원 삼성의 팬들마저 김남춘을 추모했다.[30] 1호선으로 수원과 인천을 오가려면 최소 1번은 환승해야 하지만, 수인선으로는 환승 없이 가능하다.[31] 제주 유나이티드 문서에도 나오지만 K리그가 명목상으로만 연고지를 설정하던 시절 유공의 연고는 서울·인천·경기였고 홈 앤드 어웨이 제도가 본격 도입된 1987년부터는 인천·경기지역을 연고지로 삼았다. 실제로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숭의공설운동장에서 유공의 홈경기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32] 부천은 경기도임에도 지역번호를 031이 아닌 인천과 같은 032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착안한 이름.[33] 인천 축구단이 창단할 당시에는 SK였고 2021년에 SSG 랜더스로 이름이 바뀐다. 물론 축구단이 창단할 당시 SK는 연고지 인천에서도 외면 받는 비인기 구단이었다.[34] 인천의 2005시즌 준우승 스토리를 언급했던 영화 '비상'에서도 "인천은 야구의 도시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35] 모두 부평고 출신 선수들이며 김남일, 이천수, 최태욱, 이근호는 인천에서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36] 이 때문에 수원과 부천의 일부 응원가 가사에 인천지역 팬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있었다.[37] 물론 중계방송으로 보면 관중이 적게 온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비단 인천 외에 부산, 대구, 광주처럼 종합운동장 형태의 초대형 월드컵경기장을 홈으로 썼던 다른 팀들도 공통적으로 겪던 문제다.[38] 특히 창단 당시부터 메인 스폰서로서 후원을 지속했던 지역 연고 대기업 GM대우가 2010년을 끝으로 후원을 중단했다.[실관중집계시작] 2012년부터 실관중 집계를 시작한다.[홈구장이전] 2012시즌부터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사용한다.[유료관중집계시작] 2018년부터 유료관중 집계를 시작한다.[코로나사회적거리두기] 사회적 거리두기 적용. 부분 관중 및 무관중 포함.[코로나사회적거리두기] 사회적 거리두기 적용. 부분 관중 및 무관중 포함.[단계적일상회복] 단계적 일상회복 적용. 부분 관중 및 무관중 X[45] 이 기록은 2023년 K리그 1 22라운드 울산 현대전에서 김도혁이 출전하면서 232경기를 기록, 기존 임중용의 기록이었던 231경기를 넘으면서 깨졌다.[46] 급여 지급에 관한 문제가 소송까지 진행되었고, 이윤표 측이 패소했다.[47] 국대 출신 내지는 이후 국대급으로 성장한 선수는 좀 있지만, 인천에서 국대에 뽑힌 선수는 유병수, 김남일, 김치우, 정인환, 전재호, 문선민 여섯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전재호는 부상으로 데뷔조차 하지 못했다. 최태욱조차도 인천 시절에는 청소년 대표로만 불려다녔다.[48] 예외적으로 2020시즌은 11위를 기록했지만 2020시즌은 이 시즌을 끝으로 상주 상무가 김천 상무로 개편되는 해였기에 상주가 최하위를 기록하지만 않는다면 11위도 승강 플레이오프 없이 자동 잔류가 가능했던 시즌이었고, 상주는 최종 4위, 인천은 11위를 기록하면서 인천은 잔류했다.[49] 인천 시절 2군 MVP를 하긴 했지만 인천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트레이드로 영입한 대구 FC에서 잘 키웠다고 보는 게 맞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