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시즌 참가 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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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레 고후 | |
Ventforet Kofu | |
<colbgcolor=#005bac><colcolor=#fff> 정식 명칭 | ヴァンフォーレ甲府 |
별칭 | Ventforet |
라이선스 | J1 |
창단 | 1965년[1] |
1997년 2월 7일([age(1997-02-07)]주년)[2] | |
구단 형태 | 시민 구단 |
소속 리그 | J2리그 |
연고지 | 야마나시현 고후시 |
홈구장 | JIT 리사이클 잉크 스타디움 (17,000명 수용) |
구단주 | 사쿠마 토오루 (佐久間悟) |
감독 | 오츠카 신지 (大塚真司) |
키트 스폰서 | 미즈노 |
웹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 | | | | |
우승 기록 | |
J2리그 (1회) | 2012 |
천황배 (1회) | 2022 |
[clearfix]
1. 개요
야마나시현 고후시를 연고로 하는 J리그 소속 축구단. 1999년에 J리그에 가입했다. 구단명은 프랑스어에서 바람을 뜻하는 방(Vent)과 숲을 뜻하는 포레(forêt)의 합성어다. 이 말은 유명한 사자성어인 다케다 신겐의 풍림화산(風林火山)에서 따온 것이다. 홈구장은 JIT 리사이클 잉크 스타디움이다. 등번호 12번은 서포터 번호로 영구 결번이다. 평균관중은 2004년 600명대에서 2014년 12,000명대로 상승했다.방포레 고후 영구 결번 |
No.12 서포터 |
마스코트는 2인조 마스코트로 반군(등장일:2006년 5월 17일)과 포레짱(등장일:2009년 3월 1일)이다.
2. 역사
1965년에 고후제일 고교 축구부 OB인 카와테공업소 사장 카와테 요시카즈(川手良萬)가 실업 구단인 고후 축구 클럽으로 창단해 실업 축구 리그인 일본 축구 리그(JSL)에 참가했다. J리그가 출범하기 직전인 1992년, JSL의 일반 시민 클럽은 교토 시코(現 교토 상가 FC)와 이 고후 클럽이 유이했다.J리그 개막 이후 야마나시현 축구협회와 OB들에 의해 J리그 가입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며 1995년에 구단명을 방포레 고후로 개칭했다. 1997년에 지역 기업 등이 출자하고 운영 법인 방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을 설립해 프로로 전환했다. 1998년은 리그 2위인 31득점을 올린 바론의 활약으로 JFL 4위를 차지했다.
1999년에 발족된 J리그 디비전 2(J2) 참가가 결정됐다. 시즌 종료 후 바론은 이치하라로 이적했다. 2005년 J2리그 3위를 기록하여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가시와 레이솔을 꺾고[3] J1리그로 처음 승격하였으나 2007년 17위를 기록하여 다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10 시즌 J2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여 승격을 확정하여 4년 만에 J1로 복귀하였다. 이듬해 16위를 기록하여 다시 강등되었다. 그러나 2012 시즌에 J2리그 우승을 하며 다시 1부 리그로 복귀하였다가, 2017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베갈타 센다이에게 승리하고도 함께 강등 위기에 있던 시미즈 S펄스가 비셀 고베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승점에서 밀려 J2리그 강등이 확정되었다. #
2018시즌부터 J2승격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J1의 16위팀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1년만 일찍 제도가 바뀌었다면 고후 입장에선 잔류의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이후 J2리그에서는 중위권에서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승격에 실패하고 우에노 감독과의 계약도 연장하지 않았다.
2019시즌은 5위로 마치면서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4위 도쿠시마와 1대1로 비겼고 리그 순위가 밀려서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2022년 천황배에서 J1리그 3위팀인 산프레체 히로시마를 연장 승부차기 끝에 꺾어 2011년 당시 J2리그에 있었던 FC 도쿄 이후로 2부리그 팀이 두 번째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이변을 일으킨 동시에 최초로 2023-24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 직행했다. 2022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남 드래곤즈처럼 조별 리그에 2부 리그 소속 구단이 연속해서 ACL에 진출한 역사를 남겼다. 다만, ACL 개최를 위해서는 홈구장에서 등받이가 부착된 좌석이 5000석 이상 되어야 한다는 AFC의 규정으로 인하여 홈경기는 고후에서 치를 수 없어 모든 홈 경기는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진행된다.
여담이지만 동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초로 2부 리그 소속 시민 구단으로서 우승한 기록도 남겼다.[4]
그렇게 2부 리그 최초의 시민 구단 소속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게 된 방포레 고후는 2차전 태국의 부리람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극장골을 넣어 승리하여 첫 승을 신고했다. 4차전 중국의 저장 FC를 실력으로 격파하고 두 번째 승리를 챙겼다. 급기야 6차전에 부리람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먼저 3골을 넣고 끝까지 리드를 지키며 3:2로 승리하면서 H조 1위를 기록하며 세계 최초로 2부 리그 구단 역사상 최상위 클럽 대항전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다!
AFC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울산 HD FC와 맞붙는다. 울산이라는 팀이 지난 2년간 보여준 행보를 생각하면, 가장 어려운 팀일수도, 가장 쉬운 팀일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겨울 이적 시장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반 초반과 후반 막판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결국 체급 차이를 실감하듯 0:3 완패를 당했다.
그리고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 토너먼트에서의 첫골을 넣었지만 1:2 패하면서 ACL의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3. 선수단
방포레 고후 2024 시즌 선수 명단 | |||||||
등번호 | 국적 | 포지션 | 한글 성명 | 일문/로마자 성명 | 생년월일 | 체격 | |
1 | GK | 카와타 코헤이 | 河田 晃兵 | 1987.10.13 | 184cm / 78kg | ||
3 | DF | 손 타이가 | 孫 大河 | 1999.06.13 | 187cm / 78kg | ||
4 | DF | 야마모토 히데오미 | 山本 英臣 | 1980.06.26 | 175cm / 69kg | ||
5 | DF | 이마즈 유타 | 今津 佑太 | 1995.07.08 | 184cm / 80kg | ||
6 | MF | 코바야시 이와나 | 小林 岩魚 | 1996.10.17 | 178cm / 72kg | ||
7 | MF | 아라키 쇼 | 荒木 翔 | 1995.08.25 | 166cm / 65kg | ||
8 | MF | 타케토미 코스케 | 武富 孝介 | 1990.09.03 | 173cm / 69kg | ||
9 | FW | 미츠히라 카즈시 | 三平 和司 | 1988.01.13 | 175cm / 68kg | ||
10 | MF | 토리카이 요시키 | 鳥海 芳樹 | 1998.08.01 | 165cm / 62kg | ||
11 | FW | 파비안 곤잘레스 | Fabian Andres Gonzalez Lasso | 1992.11.23 | 187cm / 80kg | ||
13 | FW | 무라카미 유키토 | 村上 千歩 | 2001.05.28 | 175cm / 70kg | ||
14 | MF | 나카야마 리쿠 | 中山 陸 | 2001.01.22 | 174cm / 64kg | ||
15 | FW | 이지마 리쿠 | 飯島 陸学 | 1999.11.17 | 166cm / 64kg | ||
16 | MF | 하야시다 코야 | 林田 滉也 | 1999.07.14 | 175cm / 73kg | ||
18 | MF | 미사와 나오토 | 三沢 直人 | 1995.07.07 | 180cm / 74kg | ||
19 | FW | 미야자키 쥰마 | 宮崎 純真 | 2000.04.10 | 173cm / 66kg | ||
20 | MF | 엔도 히카루 | 遠藤 光 | 2000.06.05 | 178cm / 72kg | ||
22 | DF | 노자와 리쿠 | 野澤 陸 | 1998.12.07 | 185cm / 80kg | ||
23 | DF | 세키구치 마사히로 | 関口 正大 | 1988.04.21 | 172cm / 66kg | ||
24 | DF | 이다 타카히로 | 飯田 貴敬 | 1994.08.31 | 180cm / 73kg | ||
26 | MF | 사토 카즈히로 | 佐藤 和弘 | 1990.09.28 | 175cm / 68kg | ||
28 | FW | 미즈노 하야타 | 水野 颯太 | 2000.06.30 | 175cm / 69kg | ||
29 | DF | 카미야 카이토 | 神谷 凱士 | 1997.06.16 | 183cm / 76kg | ||
32 | GK | 고봉조 | コ・ボンジョ | 2002.02.15. | 191cm / 82kg | ||
33 | GK | 야마우치 코다이 | 山内 康太 | 1999.11.05 | 187cm / 77kg | ||
34 | MF | 키무라 타쿠토 | 木村 卓斗 | 2000.05.16 | 170cm / 69kg | ||
40 | DF | 에두아르도 만샤 | Eduardo Ferreira dos Santos | 1995.11.24 | 187cm / 80kg | ||
41 | DF | 이노우에 미키 | 井上 樹 | 2001.05.28 | 178cm / 74kg | ||
44 | FW | 나이토 야마토 | 内藤 大和 | 2004.07.14 | 179cm / 73kg | ||
51 | MF | 아다일톤 | Adaílton | 1990.12.06 | 176cm / 83kg | ||
88 | GK | 시부야 츠바사 | 渋谷 飛翔 | 1995.01.27 | 189cm / 89kg | ||
99 | FW | 피터 우타카 | Peter Maduabuchi Utaka | 1984.02.12 | 179cm / 79kg | ||
구단 정보 | |||||||
구단주: 사쿠마 토오루 / 감독: 시노다 요시유키 / 구장: JIT 리사이클 잉크 스타디움 | |||||||
출처: 방포레 고후 / 최종 수정 : 2024년 4월 25일 |
4. 주요 선수
- UEFA
- 제난 라돈치치: 2007
- CONMEBOL
- 루이스 카를루스 두스 산투스 마르틴스: 2008-2012
- 브루노 파라이바: 2022[7]
- 알렉산드루 마르케스 지 올리베이라: 2005
- 패트릭 올리베이라: 2013[8]
- 호세 오르티고사: 2013
5. 기타
5.1. 한때 K리그 내 시민 구단의 롤 모델?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K리그에 시민 구단이 많이 생겨나고 개별 시민 구단들의 내실을 꾀하는 과정에서 방포레 고후가 유력한 롤 모델로 거론됐다. 자체 인구 20만, 주변 도시권 인구를 모두 합쳐도 40만도 안 되는 고후시 지역에서 2000년 평관 619명으로 해체 위기에까지 몰려 있던 구단이, 미칠 듯한 지역 밀착을 통해 평관 12,000명이라는 엄청난 흥행과 14년 연속 흑자로 재정 자립이라는 축구 팬들에게는 꿈같은 목표를 이뤄낸 곳이기 때문이다. [현지르포] ‘시민구단의 완성’ 반포레 고후가 들려주는 이야기방포레 고후는 이전부터 지역 밀착의 대표 사례로 유명했지만 본격적으로 K리그에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경남 FC의 K리그 챌린지 강등과 이로 인한 해체 논란부터다. 지자체장의 말 한마디에 구단의 존립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타파하고 자립 능력을 키우는 방편으로 지역밀착이 중대 화두가 된 것이다. 2016년 안산시가 안산 그리너스 FC 창단을 준비하면서 시장을 비롯한 사무국 직원 전원이 방포레 고후에서 1개월간 연수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환경이 전혀 다름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9] 방포레 고후는 원래 고후제일 고교라는 현내에서도 유수한 명문교 OB들이 주축이 된 구단이고 이 때문에 원 구단주였던 카와테가 사망한 이후에도 고후제일 고교 OB들을 중심으로 후원이 지속되었다. 프로 출범 이후로는 야마나시현의 경제적 불황으로 인해 한동안 죽을 쑨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경영진의 아마추어리즘 탓이 컸고[10] 이런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산니치YBS그룹[11] 출신의 경영 전문가인 우미노 카즈유키 현 회장이 취임하자 극적으로 경영 상태가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한국은 지역별 축구 명문 학교 네트워크도 미약한 상황에서 리그가 출범한 데다가 시민 구단 연고지의 상당수가 역사가 짧은 수도권 위성 도시인 탓에[12] 방포레 고후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며 단기간에 지역 사회의 후원을 이끌어내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그저 공무원들과 구단 직원들의 해외연수 내지 지원금을 받기 위한 허울 좋은 구실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자 2017년 이후 언급하는 빈도가 줄었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DGB대구은행파크를 통한 대구 FC 붐과 하나금융지주의 대전 시티즌 인수 건을 통해 한국에서 시민 구단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가능성과 한계점이 생겨나면서 이미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 알려진 방포레 고후는 예전만큼 관심받진 못하고 있다.
그리고 고후가 J2리그에 머무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신스타디움 개장 이야기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으며 소도시에 위치한 만큼 팬들의 관심도도 낮아지고 있다보니 언급이 사라졌으나...
2024년 4월, 오직 민간의 힘으로 새로운 축구 경기장을 건설하고, 고후시를 더 활성화하게 하자라는 포부가 담긴 MWARENAproject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발족했다. 계획으로는 15000~20000명을 수용하고, 경기장의 모델은 바이탈리티 스타디움, 츄오 신칸센의 야마나시현역 부근을 건설 후보지로 하고[13], JIT 리사이클 잉크 스타디움과 달리, 축구 전용 경기장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경기장의 이미지를 AI 생성을 통해 제작 되었다. 또한 이 프로젝트가 발족된 직후부터 X 등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1] 전신인 고후 클럽의 창단연도[2] 현 방포레 고후의 창립일[3] 이당시 바레의 전설의 한경기 6골이 터졌다.[4] 2부 리그 소속으로 2011년 천황배를 우승한 FC 도쿄와 2021년 FA컵을 우승한 전남 드래곤즈는 모두 기업 구단이다. 그리고 2004년 당시 1부 리그 소속으로 천황배를 우승했으나 강등돼서 ACL에는 2부 리그 소속으로 출전한 도쿄 베르디 역시 이 시기에도 니혼TV의 지분이 남아 있었던 점 때문에 엄연히 기업 구단에 속한다.[5] 네덜란드 계통이지만 1993년 가족 전원이 일본으로 귀화했다.[6] 재일교포. 일본 이름 손 타이가.[7] 피게이렌시 FC에서 임대.[8] 아틀레치쿠 고이아넨시에서 임대.[9] 이와 비슷한 사례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이 있다.[10] 초대 사장이었던 후카자와 타케오는 원래 고교 체육교사였다가 야마나시현 축구협회 부회장이라는 이유로 사장이 된 사람이었다.[11] 야마나시현 지역미디어그룹[12] 성남시, 안산시, 부천시, 안양시 등. 각 지역의 타이틀 명문고 중 그나마 역사가 오래된 부천고가 1974년 개교이며 안양고 1983년, 성남 서현고 1991년, 안산 동산고 1995년이다. 그나마도 다들 축구에는 관심도 없는 학교들이고, 4개 도시들을 기준으로 그나마 축구 명문으로 꼽히는 학교를 찾아보면 1967년에 축구부를 창단한 안양공고 정도가 조금 역사가 있는 편이며 안산 초지고(2002년), 성남 풍생고(1980년) 등 명문고에 야구부가 있는 야구에 비해 하나같이 네트워크 같은 게 생길 시간이 부족했다.[13] 자세히는 노후화가 진행이 된 고후형무소를 축구 경기장으로 바꾼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