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의 축구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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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미오드라그 안젤코비치 Miodrag Anđelković | |
본명 | 미오드라그 안젤코비치 Миодраг Анђелковић | |
출생 | 1977년 12월 7일 ([age(1977-12-07)]세) / 유고슬라비아SFR 세르비아SR 미트로비차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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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87cm | |
직업 | 축구 선수(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OFK 베오그라드 (1996) RCD 에스파뇰 (1997) UD 알메리아 (1997)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1997) 하포엘 페타 티크바 (1998) OFK 베오그라드 (1999~2000) FK 스메데레보 1924 (2000) 안탈리아스포르 (2000~2001) 플루미넨시 FC (2001) 코리치바 FC (2002) OFK 베오그라드 (2002) 비제프 우치 (2002~2003) OFK 베오그라드 (2003)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4) 세레소 오사카 (2004) 이르티시 파블로다르 (2005) 메탈루르흐 자포리자 (2005) 알 아흘리 SFC (2006) OFK 베오그라드 (2007) 다롄 스더 (2007) 하얼빈 이텅 (2008) CS 판두리 트르구지우 (2009) 인테르나티오날 쿠르테아 데 아르게슈 (2009) 브랜트퍼드 갤럭시 (2010) OFK 믈라데노바츠 (2011) |
감독 | OFK 베오그라드 (2018 / 감독대행) OFK 베오그라드 (2020~2021) |
1. 개요
세르비아 국적의 공격수로 2004년에는 당시 K리그 신생 팀이었던 인천 유나이티드 FC에서 뛴 경력이 있다. 안젤코비치는 인천의 첫 득점자이기도 하다. 커리어 통산 16개의 국가에서 21개의 클럽을 경험한 저니맨의 표본.2. 커리어
2.1. K리그 진출 이전
8살에 축구를 시작한 안젤코비치는 95/96시즌 OFK 베오그라드에서 프로로 데뷔했는데, 당시 총 18경기 1골에 그쳤다. 그 이후 그는 스페인의 RCD 에스파뇰에 합류했으나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고, UD 알메리아나 독일의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에스파뇰 시절에는 19살의 유망주였던 안젤코비치에게 장기 계약 제의가 오기도 했었지만, 선수 본인은 그 때까지는 오랫동안 외국에 있기가 부담스러워서 이를 거부했고, 이후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됐다고 한다.이후 이스라엘의 하포엘 페타 티크바를 거쳐서 안젤코비치는 베오그라드에 돌아왔고, 이전보다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27경기 11골을 기록했다. 스메데레보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안젤코비치는 이번에는 터키의 안탈리아스포르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으나 다소 애매한 기록만을 남겼다. 터키를 떠난 뒤에는 브라질, 폴란드 등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또 한번 베오그라드로 복귀했고, 7경기 2골을 기록하고 있었다.
2.2. 인천 유나이티드 FC
베오그라드에서 뛰던 안젤코비치는 안종복의 눈에 띄었고, 인천의 제의를 받는다. 이후 라데 보그다노비치의 조언을 들은 후 인천 이적을 결심하게 된다.2004년 3월 1일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감바 오사카와의 창단 기념 경기에서 안젤코비치는 제난 라돈치치와 투톱을 형성하며 출전했는데, 이 경기에서 안젤코비치는 전재호의 패스를 이어받아 팀 창단 후 첫번째 득점의 주인공이 됐다. 곧 이어 열린 4월 10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도 안젤코비치는 인천의 K리그 1호골을 성공시켰고, 5월 들어서는 울산 현대나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도 득점을 했다. 하지만 팀의 성적은 지지부진했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한 경기에서 한 득점을 마지막으로 일본의 세레소 오사카에 임대되었다. 그래도 인천 공격진에서 고군분투하던 선수라 이 이적에 대해 논란도 있었지만, 곧 이어 드라간 스토이사블례비치와 라디보예 마니치가 합류하며 논란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뛴 기간은 짧지만, 인천의 창단 첫 시즌을 언급할 때 가장 중요한 선수 중 하나로 이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