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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머리1) (수괴) | 윤석열(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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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 특집 프로그램 | ||
1) 형법 제87조에서 정한 내란 혐의로 사법부(서울중앙지법)에서 지휘부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함에 따라 동조 제1호인 우두머리(수괴)에 해당하는 인물. 2020년 형법 개정으로 수괴에서 우두머리라는 순우리말로 변경됨. 군형법은 유지. 2) 같은 조에 따라 사법부(서울중앙지법)에서 해당 인물들을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발부했거나 검찰에서 중요 내란중요임무종사 공범으로 지목함에 따라 제2호 내란중요임무종사로 기입. 3) 같은 조에 따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및 사법부에서 해당 인물들을 내란 혐의로 소환을 통보함에 따라 제3호 부화수행으로 기입 |
<colkeepall>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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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소추 | 탄핵소추 / 표결 (1차 · 2차) | |
탄핵심판 | 탄핵 심판 | |
탄핵 시위 | 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 2024년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 |
탄핵 청원 |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와 내란죄 수사를 위한 특검법 제정 촉구에 관한 청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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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 ||
<colbgcolor=#000><colcolor=#fff> 일시 | 2024년 12월 4일 ~ 진행 중 | |
지역 | 여의도 국회의사당 일대, 광화문 광장 일대 | |
원인 |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투표불성립 윤석열 정부의 각종 논란 | |
목적 |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통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의 인용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에 대한 진상규명 | |
참여 인원 | 약 300만 명 (주최 측 추산 누적 인원) 약 40만 명 (경찰 추산 순간 최대 누적 인원) | |
종류 | 항의, 집회, 서명운동, 총파업, 피케팅, 시국선언, 행진, 시위 |
[clearfix]
1. 개요
국회부터 여의도공원까지 의사당대로를 메운 시민들 (2024년 12월 7일 오후) |
내란 수괴 윤석열을 체포/탄핵하라!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이 종료된 직후인 2024년 12월 4일부터 전국에서 시작된 윤석열 퇴진 범국민운동. 주최 단체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다.2. 규모
12월 7일 경찰 추산 순간최대인원 15.9만 명, 주최 측 추산 합산최대인원 100만 명이 참가했다. 12월 14일 여의도에서만 경찰 추산 순간최대인원 24만 명, 주최 측 추산 합산최대인원 200만 명이 참가하면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두 번째,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되었다.3. 배경
자세한 내용은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문서 참고하십시오.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경 대통령 윤석열이 전국 단위의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으며 그에 따른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계엄군을 동원했다. 아울러 계엄사 포고령 제1호를 통해 국회 및 정당의 정치활동 일체 금지, 모든 언론과 출판의 자유 통제 등 전 국민의 정치적·사회적 기본권의 핵심 영역을 전격 박탈하는 통제 조치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항의성 시위가 다발적으로 촉발되었고, 탄핵 표결을 앞두고 군중들이 대규모 운집하며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4. 집회 중계
4.1. 주요 시위 장소
이 집회는 서울 여의도 일대 및 전국에서 진행되었다.<bgcolor=#000> 12월 7일 17시경 여의도 도로 상황 |
5. 참가 인원
<keepall> 2024년 윤석열 대통령 퇴진·탄핵 요구 집회 연 참가인원 | ||||||
<rowcolor=#fff> 연도 | 일시 | 차수 | 경찰 추산* | 주최 측 추산** | 누적 연 인원 (주최 측 기준) | 비고 |
2024년 | 12월 7일 | 1차 | 160,000 | 1,000,000 | 1,000,000 | |
2024년 | 12월 14일 | 2차 | 240,000 | 2,000,000 | 3,000,000 | |
2024년 | 12월 21일 | 3차 | ||||
* 순간최대인원으로 추산 ** 연인원으로 추산 |
6. 전개
6.1. 12월 7일
<rowcolor=#fff> 퇴진 집회를 위해 국회 인근에 밀집한 인파 (2024년 12월 7일 오후) |
- 2024년 12월 7일 오후 3시경부터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집회가 시작되는 15시 주최 측 추산 30만여 명에서 시작해 국민의힘이 본격적으로 표결을 보이콧하기 시작하자 20시 즈음에는 주최 측 추산 약 100만 명, 경찰 추산 16만 명 규모의 시위대가 운집하였다.
- 부산, 대구 등에서도 복수 집회가 진행되었다. #1 #2 #3 #4
- 광화문, 여의도 일대에서 탄핵 촉구 집회가 열렸다. #
- 광화문 일대에서는 "탄핵에 반대한다"며 보수단체가 윤석열 탄핵 반대 맞불시위를 벌였다.
- 국회 인근에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시도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
- 15시 10분부터 국회에 집회 인파가 몰려 9호선 국회의사당역 양방향 열차가 무정차 통과한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
- 15시 24분경, 9호선 열차의 무정차 통과 대상 역이 여의도역까지로 확대되었다. #
- 16시 42분, 9호선 열차의 여의도역 정차가 재개되었다. #
- 17시부터 9호선 국회의사당역 전 출구가 폐쇄될 예정이라는 속보가 보도되었다. #
- 17시부터 5호선 여의도역을 무정차했으나, 17분부터 정차가 재개되었다.
- 21시 20분경에 탄핵 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폐기되자, 시민 대표들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집회를 해산하였다. 이후 월요일부터 매일 밤 촛불집회를 개최할 것을 선언하였다.
- 여의도 탄핵 집회에서는 20대 여성이 참가 인원의 18.9%를 차지해 모든 성별/연령대별 집단 중 가장 많았다. #
6.2. 12월 8일
- 15시부터 촛불행동 등이 주최한 것으로 추정되는 집회가 국회의사당역 주변에서 열렸고 19시경에 종료되었다. 주최추산 10만 여명이 결집하였다.
- 국회의사당역부터 여의도공원 앞까지 300m 구간이 도로가 통제됐다.
- 촛불행동은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매일 저녁 7시에 촛불 집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6.3. 12월 9일
- 주최 측 추산 3만 명, 경찰 비공식 추산 5,500명이 집회에 참여하였다.
- 저녁 6시, 국회의사당역 5번 출구에서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탄핵 촛불집회가 있었다.
6.4. 12월 13일
- 탄핵 시위에 동참하는 의미로 약 45분간 무료 공연의 의미를 담아 여의도 현장에서 PR과 몇 곡의 히트곡을 개사해서 콘서트를 진행 했다. 그리고 시위주최 측에 천만원을 쾌척했다. 그 날이 이승환 자신의 생일인데, 윤석열이 자신보다 5살 밖에 안 많다고 존대를 굳이 쓸 필요도 없다고 말한데서 압권. 시민들은 그것을 듣고 폭소했다.
6.5. 12월 14일
<rowcolor=#fff> 여의도 서쪽 모든 길을 메운 인파 (2024년 12월 14일 오후) |
- 1차 탄핵소추 표결 당시와 마찬가지로 2차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됨에 따라 국회의사당 근처 여의도와 서울 도심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탄핵소추 통과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 이날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오후 4시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오후 3시에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범국민촛불대행진"과 오후 6시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시민촛불" 두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
- 집회에 대비하여 여의도행 5호선 지하철, 9호선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증차되었다. #
- 이번 집회에서는 꽃다지, 이한철 밴드, 이랑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
- 이날 대규모 집회가 예정됨에 따라 여의도 근방 카페와 식당에 선결제가 계속되고 있다. 12월 12일 자녀 입시비리와 관련된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12월 16일 법정 구속될 예정인 조국 전 대표는 "작은 이별 선물"이라며 음료 333잔을 선결제하였다고 밝혔다. #
- 가수 아이유의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는 13일 공식 팬카페에 "유애나들의 언 손이 조금이라고 따뜻해지길 바라며 먹거리들과 핫팩을 준비했다"며 빵 200개, 떡 100개, 국밥과 곰탕 총 200그릇, 음료 200잔을 선결제했다고 밝혔다. #
- 소녀시대 유리는 탄핵 집회에 참석하는 팬들을 위해 김밥가게에 김밥을 선결제했다. 그리고 집회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떼창으로 나온 것에 대해 너무 잘 봤으며, 매일 함께 듣고 있다며 메시지를 전했다. #
- NewJeans는 따뜻한 밥을 준비했다며 역시 탄핵 집회가 열리는 여의도 인근 식당을 통해 김밥 110인분, 음료 100잔, 커피와 청귤차 등 음료 150잔, 삼계탕 100그릇, 온반 50그릇과 만둣국 50그릇을 선결제하였다. #
- 박찬욱 영화감독은 집회에 빵을 제공하였다. 빵에는 윤석열과 헤어질 결심이라는 스티커를 부착하여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
- 배우 송선미가 탄핵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위해 커피 100잔을 선결제 하였다. #
- 14시 55분 경, 지하철 9호선이 여의도역과 국회의사당역을 무정차통과하기 시작했다. #
- 15시 3분 경, 지하철 5호선도 여의도역을 무정차통과하기 시작했다. #
- 이 날 주최 측 추산 연인원 200만 명, 여의도에서만 경찰 추산 순간최대인원 24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이 정도 수치는 헌정 사상 최대 규모 집회인 2016년 12월 3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촉구 촛불집회 다음가는 수치이다.
6.6. 12월 21일
윤석열 탄핵소추 가결로 이제 여의도 국회의사당 일대에서 열지 않고 장소를 옮겨 2016년 ~ 2017년 박근혜 퇴진 운동과 같이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 또한 본 집회 종료 후 헌법재판소로 행진할 예정이다.7. 지역 시위
7.1. 부산광역시
12월 7일 17시 서면 쥬디스 옆 대로에서 부산촛불행동의 주최로 집회를 열기로 했다. 뉴스112월 7일 기준으로 주최 측은 3천여명의 인파를 예상해서 진행하려 했지만, 주최 측 추산 약 1만 명으로 추산되는 인파가 모였기 때문에 시가 행진은 않고 비교적 일찍 (19시) 해산하였다.[2] 하지만 시민들이 차마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계속 "윤석열을 체포하라" 구호를 외치자 약 1시간 가량의 뒤풀이 자유발언을 추가로 진행하였다.
다음 날인 12월 8일은 증가한 인파를 감안해 시가 행진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진행하였으며, 동천로에서 양쪽이 만나 집회를 마무리했다.
12월 9일 쥬디스 태화 옆 젊음의 거리 일자 대로에서 20시 기준으로 인파가 약 420m 길이로 모여서 촛불 집회를 열었다. 같은 시간에 옆 쥬디스 태화 정면에 경찰 기동대가 약 50명 가량 대기 중이었다.
12월 14일 쥬디스 태화 옆 젊음의 거리에서 17시 시작하기로 기존에 공지가 올라왔었지만, 시작 전에 부산촛불행동은 전포대로에서 15시부터 하는 것으로 변경하여 집회를 열였다. 연합뉴스 35m 폭의 전포대로 약 400m 길이의 대열로 꽉 찬 인원이 모여서 집회 측 집계 기준 7만 명의 시민이 모여[3] 퇴진 및 탄핵 촉구 시위를 진행했다.[4] 집회는 17시 경 윤석열 탄핵 가결로 절정에 이르고, 이후 약 1시간 동안 집회를 한 후 18시를 기준으로 해산했다. SBS 윤석열 탄핵 국면 이후로 부산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시위였다.
부산촛불행동은 추후 매일 평일에는 19시, 주말에는 17시에 집회를 열기로 했다. 오마이뉴스 국회 탄핵이 가결된 이후로도 헌법재판소가 탄핵 판결을 내리는 날 까지 집회를 계속 열기로 했고, 이 날 참가한 시민들에게 주말에는 가급적이면 참가해 줄 것을 호소했다.
7.2. 인천광역시
7.2.1. 남동구
12월 9일, 여러 시민단체 연합인 사회대전환·윤석열정권퇴진 인천운동본부의 주도로 구월동 인천터미널 및 롯데백화점 일대에서 2개 차선을 사용하는 것을 시작해 국민의힘 인천시당이 있는 유영빌딩[5][6]까지 약 1.2km 정도를 행진하였다.[7] 인천투데이7.2.2. 부평구
12월 13일에는 부평역 광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 주관의 집회가 열렸다. # 부평역 광장에서 버스전용차로와 2개 차선을 활용해 집회가 열렸고 부평시장역까지 직진한 후 선회에서 다시 부평역까지 한 바퀴 도는 행진이 이루어졌다.7.2.3. 중구
12월 12일, 영종도 버거킹 영종하늘도시DT점 앞에서 시위를 하였다. 중구의 배준영 의원을 비판하고 https://www.youtube.com/watch?v=PY4Xskqz60Q 노래를 틑며 시위를 하였다.7.3. 대구광역시
조선일보에 따르면 12월 6일 오후 5시 대구 동성로 한일CGV 앞에서 시국대회가 열렸다.12월 4일부터 14일까지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7시[8] 대구 동성로 CGV 대구한일 앞에서 시국대회가 열렸다. # 특히 탄핵안 표결 당일인 12월 14일 경찰 추산 2만명이 국채보상로 한일극장 ~ 공평네거리 구간 전 차선[9]을 꽉 채웠다.
탄핵안 통과 이후인 12월 17일부터는 평일 집회는 폐지하고 토요일에만 기존대로 오후 5시 한일극장 앞에서 여는 것으로 바뀌었다. #
7.4. 광주광역시
12월 4일 오후 7시부터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99개 단체로 구성된 '윤석열 정권 퇴진 광주비상행동' 주관으로 13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후 5.18 민주광장에서 매일 집회가 열리고 있다.7.5. 대전광역시
12월 4일 오후 8시부터 서구 둔산동 은하수 네거리 일대에서 윤석열정권퇴진대전운동본부를 중심으로 31개 지역 시민단체, 70여 명이 운집했다. 이날부터 19시마다 이들 주도로 퇴진 시위가 열렸다. 12월 4일 기준, 경찰 측에 둔산동 은하수 네거리에 1500여 명이 집결할 것으로 신고된 가운데, 안전 관리를 위해 경력 150명이 동원됐다. 중도일보7.6. 세종특별자치시
12월 9일 6시 30분부터 도담동 해뜨락 광장(먹자골목)에서 '불법 계엄 헌정 유린! 내란 사범 윤석열 퇴진! 나라 걱정 세종행진' 촛불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200여 명(경찰 추산 150명)이 참여했고, 이어진 거리 행진에는 300여 명이 동참했다. 세종운동본부는 집회 후 나성동 국민의힘 세종시당까지 3.5km 거리를 행진하며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뉴스1윤석열 퇴진을 위한 나라걱정 세종행진이 12월 13일 18시 30분에 도담동 해뜨락 광장(시계탑)에서 진행된다.[10][11]
7.7. 충청북도
7.8. 충청남도
7.8.1. 천안시
12월 9일 '충남시민대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천안종합버스터미널에서 오후 6시부터 진행되었고, 12월 13일까지 매일 오후 6시마다 진행되었다. 뉴시스 뉴스 112월 14일 천안종합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3시부터 진행되었고 천안, 아산 등 충남 시민 2000여명이 참여했다.
7.9. 경상북도
7.9.1. 포항시
포항시민단체연대회의는 12월 8일부터 영일대해수욕장과 죽도시장에서 매일 정기적인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7.10. 경상남도
7.10.1. 창원시
12월 8일부터 창원광장일대에서 집회가 일어났다. 뉴스17.11. 강원특별자치도
7.11.1. 춘천시
12월 4일부터 거의 매일 춘천시 동내면 거두리 거두사거리 일대에서 정례집회가 열렸다.또한 한기호 국회의원(춘천철원화천양구 을)의 춘천시 동면 만천리 사무실 앞에서 항의 집회가 열렸다.
7.11.2. 강릉시
12월 4일부터 월화거리에서 정례집회가 열렸다.7.12. 전북특별자치도
7.12.1. 전주시
12월 6일부터 전주 객사에서 윤석열퇴진전북운동본부 주최로 집회가 열렸다. 이후 평일 오후 6시, 토요일 오후 4시마다 집회가 열렸다.7.12.2. 익산시
12월 11일과 13일 윤석열퇴진 익산운동본부는 영등2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윤석열 퇴진,구속 익산시민 촛불문화재가 진행됬다.7.13. 제주특별자치도
7.13.1. 제주시
윤석열정권퇴진 · 한국사회대전환 제주행동 주최로 제주시청 민원실 앞에서 평일 오후 7시, 토요일 오후 5시부터 윤석열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제주도민대회를 열고 있다. #7.13.2. 서귀포시
서귀포시 시민사회단체 및 정당으로 구성된 ‘서귀포 시민행동’은 12월 11일 오후 6시 30분부터 옛 초원다방 사거리에서 윤석열 탄핵, 국민의힘 해체를 촉구하는 촛불 집회를 개최했다. #8. 시위 문화
-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SNS 등을 통해 여의도 주변 카페, 빵집, 음식점에 선결제를 하고 참여자들에게 나누는 모습이 나타났다. 메뉴도 김밥, 죽, 떡, 토스트, 김치찌개, 핫팩 등 다양했다. 일부 매장은 선결제된 메뉴가 소진 후에도 무료로 제공했다.[12] (동아일보, 이데일리뉴스1 헤럴드경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에게 주먹밥과 음료수 등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만큼 시대에 맞게 변화한 전통이라는 시각이 있다. #[13]
-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 때부터 등장한 장수풍뎅이 연구회, 전국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연합, 민주묘총 같은 이색 깃발이 이번 시위에서도 과체중 고양이 연합회,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우리나라 정상영업합니다 등 새로운 깃발들과 함께 대거 등장하였다. 이외에도 걸을 때 휴대폰 안 보기 운동본부 등 공익 운동을 하는 시위 깃발도 나왔다. (YTN, 뉴스1)
- 촛불, LED 촛불봉이[14] 많았던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과 비교했을 때 인기 K-POP 아이돌 응원봉이 시위현장에 등장한 점을 주목하고 시위 문화의 변화라고 해석하는 언론 기사가 다수 작성되었다. (경향신문, 조선일보, 한국경제)
- 여러 아이돌 그룹의 응원봉이 등장했으며 god, 소녀시대, BIGBANG, SHINee, 방탄소년단, BLACKPINK, 아이유, NCT, NewJeans, IVE, NMIXX, aespa 등 1세대 아이돌부터 4세대 아이돌의 팬덤이 모두 모여 각 팀의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와 주목을 받았다.[15] (스포츠경향/한국일보) 이는 아이돌 팬덤 문화를 향유하는 10~30대가 시위에 참여하는 비중이 상당했다는 걸 보여주었다.[16][17] 특히 여성 외에도 남성 아이돌 팬들도 응원봉을 들고 참석하거나[18] 자녀의 응원봉을 들고 시위에 참가한 부모도 있었던 데다,[19] 반대로 젊은 세대가 기존의 민중가요를 배우는 모습도 보여주며 세대의 통합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많다. 광범위한 세대가 참석한 만큼 시위 초반에는 젊은 층이 민중가요를, 중장년층이 아이돌 음악을 몰라서 따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주최 측에서 이를 수용하고 시위 전에 플레이리스트를 미리 공유하는 문화도 생겼다. 덧붙여서 애니메이션 오타쿠가 애니메이션 응원봉을 가지고 오타게를 추며 윤석열 퇴진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도 종종 연출되었다. 참고 자료
- 그 와중에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어떤 사람이 집회에 쓸 응원봉을 사려고 글을 올렸는데 디자인이 예쁜 응원봉을 단돈 3,000원에 판다는 글에 솔깃해 샀는데 알고 보니 그게 음주 뺑소니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호중의 응원봉이어서 씁쓸해 했다는 후문이 있다. 판매자는 마침 김호중의 음주 뺑소니 사건 이후 응원봉이 처치곤란이던 차에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하고 팔아넘긴 것으로 보인다. #
- 시위 장소에서 민중가요 외에도 다시 만난 세계, 삐딱하게, 내가 제일 잘 나가, 파이팅 해야지, Next Level,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포함한 여러 K-POP 음악이 불려졌으며,[20]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APT.[21] 등의 곡이 나오며 한국의 이색 시위 문화에 대한 해외의 주목도 많았다.(서울경제, 연합뉴스, 국민일보, YTN KBS)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대표는 자신의 SNS에 "아름답네요"라는 멘트를 남겼다.
- 2024년에 관객수 1,000만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었던 KBO 리그의 응원도구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등 공식 응원봉이 존재하는 구단은 응원봉을 가져왔으며, 응원봉이 없는 구단들은 응원 배트 등의 도구 안에 LED 조명을 넣거나 감아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집회 음악으로 서울에는 두산 베어스의 공통 안타송과 키움 히어로즈의 견제송이 나왔으며, 광주에서는 KIA 타이거즈 응원가(소크라테스 응원가, 광주의 함성), 부산에서는 롯데 자이언츠 응원가(영광의 순간, 승전가)[22], 대구에서는 삼성 라이온즈 응원가(엘도라도) 등 지역 연고에 맞게 스포츠 응원 문화와 아이돌 응원 문화가 융합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
8.1. 과거 시위들과 비교되는 이번 시위의 차별점
이번 시위는 과거의 시위들과 비교하여 여러 차별점이 있다. 이번과 비교 대상이 되는 대중 확장성이 큰 시위는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 때와 비교하면 그 당시보다 SNS와 유튜브 등이 훨씬 활성화된 사회로 바뀌었고, 그 사이 젋은 여성들의 정치적 진보 성향 비율 약진[23]이라는 현상이 추가되었다. 또한 시민들의 시위 자발성[24] 증명을 위해 다양한 취미와 공유 성격들을 마치 해시태그처럼 깃발을 내걸고 참여하는 일이 더 광범위하게 활성화되었다는 특징이 읽히고 있다.- X(구 트위터)나 인스타를 위시한 SNS와 유튜브가 메인 정보 공유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 이전까지 시위들에는 30~60대가 두드러지게 많았지만, 이번에는 유독 10~30대 여성들의 비중이 커졌다. 20대 남성의 참여율이 전체의 약 3.3%로 과거에 비해 확연히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20대 여성의 경우 전체 참가자 20만 2228명(추산)의 약 17.7%를 차지해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
- 성비의 차이를 두고 전문가들마다 분석이 다르다. 신진욱 교수는 "2008년부터 20대 내에서 일관된 차이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런 경향이 "성별로 다른 세대 문화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며 "야광봉이나 방석 패딩 등으로 대변되는 콘서트 문화가 야간 옥외 집회의 문화적인 성격들과 굉장히 싱크로율이 높다"고 지적했다. 연령, 성, 지역 등 다양한 변수에 따른 국내 유권자들의 정치성향을 연구해온 정치학자 서복경 더 가능연구소 대표도 '온라인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군대'라는 변수에 주목했다. 서 대표는 그런데 "여성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커뮤니티 생활을 이어가며 23~24세 정도 되면 관계맺고 있는 커뮤니티의 수가 늘어나"는 반면 "20대 초반에 군대에 가는 남성들은 이런 점에서 2년여의 공백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중앙대 사회학과 서찬석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20대 남성과 여성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정반대의 투표 성향을 드러냈던 것에 주목했다. 서 교수는 "20대 여성들의 경우 윤대통령의 반페미니즘적, 권위주의적인 성향에 대체로 오랜 기간 반감을 유지해왔던 반면, 남성들은 이번 (계엄)사태로 돌아선 정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 시위대의 집중화가 파편화 경향이 보이고 있다. 박근혜 퇴진 시위 때도 광화문 근처 공간이 다 수용하기 힘든 인파 때문에 집중적인 시위 전개보다는 거점별 파편화된 시위 성격을 띄기 시작했는데, 그 때와 비교해서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25][26]
- 과거 시위들에서는 소개와 간단한 전달사항을 말하고 -> 구호 외침 선창 -> 연설 인원들의 연설, 초청 가수나 사물놀이 패 무대 -> 구호 외침 선창 -> 자리에서 일어나 시가 행진의 과정을 대동소이 하게 거쳤다. 거기에 비해 이번에는 구호 외침 선창 사이 사이에 가요나 운동권 노래나 K팝을 틀고 시민들은 춤이나 아이돌 무대 응원 단체 액션과 같은 단체 움직임을 하고, 마지막 마무리도 시가 행진 대신에 앞서 말한 단체 움직임을 반복하다가 주변 장소에 각기 중소 집단으로 군데군데 모여 자발적 시위의 시간을 가지는 식으로 양상이 약간 바뀌었다.
- 선결제 문화가 있다. 물리적인 이유로 시위에 참가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 비해 훨씬 발달한 IT 기술, 그 중에서 온라인 결제, 기프티콘, SNS 공유 기능들을 활용해서 지원해주는 문화는 이번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추후 시위가 발전될 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공유하고 묶는 IT 기기들을 활용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몇몇에선 이런 현상을 과거 80년대에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먹을것을 주던 문화가 현대화 하여 다시 나타난거라 보고있다.
- 시위의 주 장소가 바뀌었다. 박근혜 퇴진 시위 때는 광화문광장 및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이번 시위는 국회 앞 의사당대로 및 여의도공원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12월 3일 비상계엄 당시 국회를 지키고자 나왔던 시위대의 영향으로 보인다.[27][28]
9. 사건 사고
- 12월 7일에 9호선 국회의사당역, 여의도역을 무정차 통과하자 집회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5호선 여의도역을 통해 몰리면서 극심한 혼잡이 발생했다. 또한 국회의사당 근처를 지나가는 여러 버스 노선들이 혼잡하거나 우회했다. 연합뉴스
- 12월 7일, 한 호텔 인근에서 시위하던 사람들이 무단으로 계속 호텔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호텔 측에서 외부인 화장실 이용을 막자, 시위대들에 의해 그 호텔에 별점 테러가 쏟아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 추후 보도에 대한 입장문을 냈는데 원래 개방의무가 없었지만 이용하게 했는데 시위로 인해 인파가 몰렸고 이에 그날 결혼식이었던 하객과 신랑 신부가 고립된데다가 시위대끼리 난투극을 벌여서 숙박객을 보호 하려고 이용을 막았다고 한다.
- 국회 인근에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시도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
- 촛불시위에 참가한 참가자를 컴퍼스로 위협한 중년 남성이 검거되었다. #
- 2024년 12월 9일, 울산 시위에서 10대 남성이 집회 참가한 여성 2명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인물을 배부하는 조합원들을 향해 "시끄럽다"며 소리치며, 집회 참가자인 20대 여성과 40대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해 조사중이다. 뉴스1 비슷한 건으로 촛불행동 12월 14일 유튜브 커뮤니티 공지를 올리는데,# "탄핵반대' 구호를 걸고 지하철에서부터 사람들을 함부로 밀치며 다니는 수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도가 오늘 기어코 사고를 치겠다는 태도입니다. 모두 도발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드립니다. 과한 행동을 보이면 주변의 경찰에게 신고 부탁합니다." 라고 전철 문에 매달린 남자 사진을 공유했다. 실제로 8년 전 박근혜 퇴진 운동 때도 시위의 과격화를 유도하는 몇몇이 주위 시민들의 제지를 받은 사례 영상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 SBS 8 뉴스의 뉴스 시위 보도 영상 중에서 한자가 적힌 우유팩으로 만든 등화가 포착되어 중국이 개입한 것이라는 음모론이 돌았다. 이에 해당 우유팩을 사용한 알맹상점 측은 해당 우유팩은 대만산 제품[29]이며 음모론은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일보, 세계일보, 헤럴드경제)
10. 기타
- 반대로 극우파 및 친윤계 지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 국민대회를 열어 계엄과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고 있다.
[1]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탄핵 전문 가수'라고 소개해서 시민들에게 웃음을 줬다.[2] 서면 쥬디스 옆 대로는 만 단위의 인파를 수용할 만한 공간은 아니며, 주최 측이 앰프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바람에 골목 뒤쪽 인원에게 주최 측의 공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도 했다.[3] 5만명으로 추산한 보도도 있다 오마이뉴스 오후 4시 기준으로 5만으로 추산했다는 보도가 있으므로, 7만 추산 기사는 6시 해산까지 기준을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4] 페르미 기법으로 군중 수를 추산하면 약 4만 2천 이상의 인파였다. 물론 중간에 돌아가거나, 혹은 시간 공지를 못 보고 늦게 유입된 인원들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늘어난다[5] 포드코리아 인천전시장이 있는 곳 6층에 위치해 있다.[6] 해당 건물 1층 유리문 및 주변 벽에는 국민의 짐/내란 동조당 해체, 인천 지역 국회의원인 윤상현, 배준영에 대한 심판이 적인 종이가 붙었고 당사 옆 벽에는 '국민의짐 인천시당 (내란공범)'이 붙게 되었다.[7] 여담으로, 시민들이 유영빌딩에 도착한 시간대에 포드코리아 전시장의 불이 바로 꺼졌다. 도착 시간이 아마도 오후 8시 정도였을 듯.[8] 토요일은 오후 5시부터. 첫 주인 12월 4~6일은 평일에도 오후 5시부터 시작했었다.[9] 새방골 방면(동→서) 2개 차로 제외[10] 올리브영 세종도담점을 검색하면 나오는 앞에 있는 공터[11] 18시 30분에는 거리공연 및 발언을, 19시에는 도담동 광장에서 국민의힘 세종시당까지 거리 행진을 진행한다.[12] X(트위터) 사례 (#1 #2 #3 #4 #5 #6)[13] 정확히는 5.18 당시에는 경제 사정이 열악해서 그 정도였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만큼 스케일이 커졌다는 것, 그리고 많은 우리 국민들의 해외 진출로 인하여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를 메우고자 재외 동포들의 선결제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14] 김진태가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망언을 내뱉은 게 계기였다.[15] X에서는 연말 가요 시상식을 방불케 한다는 의미를 담아 국회 앞에서 MAMA가 개최되었다는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16] 참고로 아이돌판의 경우는 타돌 사이에 연합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몇몇 그룹 팬덤끼리는 사이가 매우 안 좋기도 한데, 윤석열이 말 그대로 팬덤 대통합을 이뤄낸 것이다.[17] 12.7 여의도 탄핵집회 참석자 최소 28만명, 20대 여성이 가장 많았다[18] 주로 IZ*ONE, LE SSERAFIM, 프로미스나인 등의 남초 팬덤[19] 주로 IVE, NMIXX 등 청소년층이 다수인 팬덤과 여자친구처럼 전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20] 주최 측에서 응원봉을 들고 나온 청년들을 보고 과감하게 기존의 민중가요 뿐만 아니라 아이돌 히트곡까지 선곡해서 재생했다. #[21] 항목에도 나오듯이 윤수일의 아파트와 매시업을 해서 재생하기도 했다. #[22] 12월 8일 집회 발언 도중 롯데 우승보다 계엄령을 먼저 봤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23] 물론 그 당시에도 20대 여성은 민주진보 성향 압도우위이다. 일례로 18대 대선에서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20대 여성에서 69% 정도 득표하였다.[24] 근래 많은 시위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비교적 대중 확장성이 작은 시위들에서는 아무래도 시위의 주제와 연관된 사회단체, 또는 정치와 한 다리 걸쳐 있는 주최 측의 의향이 크게 작용한 시위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시위를 주최하는 단체의 조직에 의존하기보다는 남녀노소 진보중도보수 가리지 않고 범국민인 사유로 모였다는 자기 증명을 말한다.[25]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여의도공원까지 감안해도 대규모 인파를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26] 물론 주최 측에서도 이를 고려해서 거점마다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는 등 여러 준비를 했지만, 100만이 넘는 인파 모두에게 화면을 송출하는 건 무리였고, 대신 참여자들이 현장에서 주최 측 유튜브 생중계를 시청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27] 반대로 광화문광장은 탄핵 반대 집회 쪽에 차지하게 된다. 박근혜 퇴진 시위 때는 국회 탄핵 가결 후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탄핵 반대 시위대들이 모였다. 탄핵 가결 전에는 230만명까지 모였기 때문에 광화문광장 뿐만이 아닌 주변 안국, 종로, 을지로, 서울광장, 서대문 방면 광화문 도로 등등 시위대 인파가 그 일대를 장악했는데, 국회 탄핵 가결 후에는 광화문광장을 거점으로 한 박근혜 퇴진 시위의 규모가 상당히 줄어서 인접한 두 시위 장소 간 분리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28] 그러나 탄핵 가결 이후 집회부터는 헌법재판소가 핵심이므로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하고 헌법재판소까지 행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29] 중국의 간체자가 아닌 대만과 홍콩 등에서 쓰이는 번체자로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