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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2-30 11:17:30

계륵

고사성어
갈빗대

1. 개요2. 유래
2.1. 정사 삼국지2.2. 연의
3. 분석4. 후일담5. 기타6. 대중매체

1. 개요

'닭의 갈비'라는 뜻으로, 가지고 있어도 별로 득이 되지 않는데,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을 의미하는 고사성어이다. 조조가 '계륵'이라고 명령한 것을 듣고, 미리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예측한 양수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2. 유래

2.1. 정사 삼국지

夏侯淵與劉備戰於陽平,為備所殺。三月,王自長安出斜谷,軍遮要以臨漢中,遂至陽平。備因險拒守。九州春秋曰:時王欲還,出令曰「雞肋」,官屬不知所謂。主簿楊脩便自嚴裝,人驚問脩:「何以知之?」脩曰:「夫雞肋,棄之如可惜,食之無所得,以比漢中,知王欲還也。」 夏五月,引軍還長安。

하후연유비와 양평(陽平)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유비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3월, 왕(조조)은 장안(長安)에서 야곡(斜谷)으로 출정했는데, 차요(遮要)에서 진을 치면서 한중(漢中)에 임했으니, 마침내 양평(陽平)에 이르렀다. 《구주춘추》에서 말하길, 당시 왕(조조)은 돌아가려고 했는데, 명령을 내리면서 "닭의 갈비(계륵)"라고 말하니, 관속[1]들은 (조조가) 말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주부(主簿)[2] 양수(楊脩)가 짐을 꾸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놀라 양수에게 "어찌 아는가?"라고 물으니, 양수가 말했다. "무릇 닭의 갈비란,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 같고, 먹기에는 얻는 바가 없어서, 한중에 비교되므로, 왕이 돌아가고자 하는 것을 알았소이다." 여름, 5월에 (조조는) 군을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갔다.
《삼국지 三國志》위서 魏書 무제기 武帝紀
이와 관련된 고사는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무제기(武帝紀)의 배송지(裴松之) 주(注)에서 인용한 《구주춘추(九州春秋)》에서 나온다.[3] 《구주춘추》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조조가 군대를 회군하려고 마음먹고 ‘계륵(雞肋; 닭갈비)’이라고 명령을 내리니 관직에 있던 자들이 대관절 무슨 소린지 도통 알지 못했다. 그런데 주부(主簿)라는 벼슬을 가진 양수(楊脩)가 돌아가기 위해 짐을 먼저 꾸리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양수에게 물었다. “어찌 돌아갈 것을 압니까?” 이에 양수가 말했다. “무릇 닭의 갈비란,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 같고, 먹기에는 얻는 바가 없어서, 한중에 비교되므로, 조조가 돌아가고자 하는 것을 알았소이다.”

2.2. 연의

操屯兵日久,欲要進兵,又被馬超拒守;欲收兵回,又恐被蜀兵恥笑;心中猶豫不決。適庖官進雞湯。操見碗中有雞肋,因而有感於懷。正沈吟間,夏侯惇入帳,稟請夜間口號。操隨口曰:「雞肋!雞肋!」惇傳令眾官,都稱「雞肋」。行軍主簿楊脩,見傳「雞肋」二字,便教隨行軍士,各收拾行裝,準備歸程。有人報知夏侯惇。惇大驚,遂請楊脩至帳中問曰:「公何收拾行裝?」脩曰:「以今夜號令,便知魏王不日將退兵歸也。雞肋者,食之無味,棄之可惜。今進不能勝,退恐人笑,在此無益,不如早歸。來日魏王必班師矣,故先收拾行裝,免得臨行慌亂。」夏侯惇曰:「公真知魏王肺腑也!」遂亦收拾行裝。於是寨中諸將,無不準備歸計。當夜曹操心亂,不能穩睡,遂手提鋼斧,遶寨私行。只見夏侯惇寨內軍士,各準備行裝。操大驚,急回帳召惇問其故。惇曰:「主簿楊德祖,先知大王欲歸之意。」操喚楊脩問之,脩以雞肋之意對。操大怒曰:「汝怎敢造謠,亂我軍心!」喝刀斧手推出斬之,將首級號令於轅門外。

조조가 군대를 주둔한지 오래 되었는데, 군대를 진격하고자 하나, 또 마초에게 막혀 지켜지고, 군대를 거둬 돌아가려고 하나, 또 촉한 병사에게 수치스럽게 비웃음을 당할까 두려워서, 마음속으로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마침 포관(庖官)이 닭고깃국을 바쳤다. 조조가 사발 안에 있는 닭의 갈비를 보고, 가슴 속에 느끼는 게 있어 막 깊이 탄식하는 사이에, 하후돈이 막사로 들어와 야간의 군대 암구호를 여쭈어 청했다. 조조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길, "계륵! 계륵!"이라 하니, 하후돈이 뭇 관리들에게 명령을 전달하여 모두들 '계륵'이라고 일컬었다.

행군주부 양수가, 계륵 두 글자를 전하는 것을 보더니, 곧 수행하는 병사들더러 각자 짐을 수습해서 돌아가는 여정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누군가 (이를) 하후돈에게 보고하여 알리자, 하후돈이 크게 놀라 양수를 막사 안으로 불러들여 물었다. "공께선 어찌하여 행장을 수습하시오?" 양수가 말했다. "오늘밤 명령 때문에, 위왕께서 조만간 군대를 물려서 되돌아가실 것을 알았습니다. 계륵이란 먹기에는 고기가 없고, 버리기에는 맛이 있으니, 지금 진격하자니 이기지 못하겠고, 물러나자니 남이 비웃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도 이익이 없으니 일찍 돌아가는 것만 못하지요. 내일 위왕께서는 반드시 군대를 돌리실 것이므로, 먼저 행장을 수습한다면 행군에 임해서 허둥지둥하는 것을 면할 수 있습니다." 하후돈이 말하길 "공께서는 진정 위왕의 깊은 속마음을 아는구려." 라고 하고는, 마침내 (하후돈) 또한 짐을 수습했다. 이에 영채 안의 장수들 가운데, 돌아갈 계획을 준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날밤 조조가 심란하여 편히 잠들지 못하고, 철 도끼를 손에 들고 영채 주위를 혼자서 돌아다녔다. 하후돈 영채 내 군사들만 봤을 뿐인데, 각자 행장을 준비하고 있으니 조조가 크게 놀라서, 급히 막사로 돌아가 하후돈을 불러 그 까닭을 물었다. 하후돈이 말했다. "주부 양덕조가 먼저 대왕의 돌아가고자 하는 뜻을 알았습니다." 조조가 양수를 불러서 물으니 양수가 계륵의 뜻을 대답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네 어찌 감히 말을 지어내서, 우리의 군심(軍心)을 어지럽히는가!" 도부수[4]들에게 소리쳐 밀어내 참수시키고, 수급을 군영의 문 밖에 매달라고 명령했다.
삼국연의 72. 제갈량이 지혜롭게 한중을 취하다 諸葛亮智取漢中〉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서기 219년, 한중에서 조조가 유비격전을 벌이는데, 조조 본인의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자 조조군은 '군사를 물려서 한중을 포기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고 있었다. 한편 이날 저녁식사 메뉴는 닭고깃국이었다. 조조는 사발에 담긴 닭갈비를 보다가 현 상황을 떠올리며 한탄했다. 한중땅을 먹자니 이 전쟁으로 얻을 이익이 별로 크질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고 유비 세력에게 걍 줘버리자니 상대가 비웃을 것이 염려되었던 것. 이 때 하후돈이 조조에게 찾아와서 오늘의 암호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는데, 이때 조조는 무심코 '계륵! 계륵!"이라고 중얼거렸다.[5]

하후돈은 조조가 역시 뜻한 바가 있겠구나 싶어 더 묻지 않은 채 그대로 병사들에게 오늘의 암구호는 '계륵'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모사 양수는 이를 듣자 조조가 원정을 그만 멈추고 철수해버릴 생각임을 간파해 자신의 군사들에게 철수할 때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짐을 싸두라 명령하라고 권했다. 문제는 하후돈이 왜냐고 사유를 묻자 양수가 "계륵이란, 먹기에는 살점이 없고 버리기에는 맛이 있다(食之無肉 棄之有味)."라고 말하면서 한중이 딱 그런 꼴이라 조조가 곧 군대를 철수시킬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하후돈은 군의 총 책임자로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이를 받아들인 채 똑같이 따라하기 시작, 이윽고 전군에 소문이 퍼져 퇴각하는 줄 알고 사기가 떨어지고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조조는 평소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자신의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멋대로 움직여온 양수에게 안 그래도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에야말로 또 괘씸함과 분노, 그리고 속내를 들켰다는 쪽팔림을 느껴 양수를 '군의 사기를 동요시킨 죄'로 처형했으며, 하후돈도 하마터면 같은 꼴을 당할 뻔했다.

조조는 군사들에게 "철수는 절대 없으니 기필코 그 귀 큰 놈을 완전히 꺾어버릴 것이다"라고 양수의 말을 부정하고 억지로 전투를 이어갔으나, 전투 도중 위연이 쏜 화살에 인중을 맞고 앞니가 나가는 등 낭패를 봤고, 결국 본인도 들것에 실려나가는 꼴이 되어서야 한중 공략이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철수를 지시했다. 본인의 성급한 판단으로 죽은 양수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진작에 철수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3. 분석

실제 역사에서는 양수가 한중에서 돌아와 몇 달이 지난 뒤에 참수되었으므로 연의나 다른 창작물들과는 묘사와 줄거리가 조금 차이가 있다. 군기를 어지럽혔다는 명목으로 처형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조조의 삼남 조식의 철저한 브레인 겸 실드 역할을 하며 위나라 후계자 다툼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에 조조의 눈 밖에 난 게 화근이었다.

연의에서는 양수가 "떠나기 전에 혼란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미리 수습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조조가 본인의 속내를 들킨 게 부끄럽고 열받아서 핑계를 대고 죽인 걸로 나오고, 본인도 차후에 본인의 성급한 성격 문제 때문에 양수를 제거한 걸 뼈저리게 후회하며 반성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양수의 모습은 따지고 보면 분명 문제가 있다. 독단으로 철수 이야기를 꺼내서 자신의 부대는 물론 지휘관격인 하후돈의 부대까지 사기를 꺾어놓았고, 더 나아가 총대장은 주둔을 명했는데 일개 사단장 수준인 자가 제멋대로 철군을 주장해서 관철시켜서 지휘계통까지 혼란에 빠트리는 하극상을 저질렀다. 결과적으로는 철수가 정답이었더라도 사전에 총책임자이자 가장 윗사람인 조조에게 의견부터 먼저 말한 뒤에 정식으로 승인을 받고 나서 비로소 철수했어야지 멋대로 해석하고 함부로 일을 처리해버렸으니 말이다. 조조군에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사들은 순욱처럼 자살하거나 순유처럼 화병으로 죽었을 뿐 드러내놓고 조조를 거스르게 한 행위를 한 적은 없었다. 반면 양수와 비슷하게 얽히던 공융 또한 퇴근길에 "어질지 못한 자어진 자를 치다니 어찌 이기겠는가?"라고 대놓고 한탄하다가 목이 달아났다.

4. 후일담

양수의 아버지 양표는 한나라 조정의 신료였기에 조조는 선물을 보내주며 위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표는 여전히 상심한 채 마치 '아들 잃은 소와 같은 기분'이라고 하자 조조도 후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치적인 판단도 곁들여진 처형이었지만, 이미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조조 입장에서 양표가 슬퍼하는 걸 보고 진짜 후회했을 수도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노우지독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뜻한다.

5. 기타

6. 대중매체


[1] 관(官)에 속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2] 관직 이름.[3] 참고로 네이버 백과에서는 《후한서》 양수전(권54 양진전에 부기)을 출전으로 삼고 있는데, 실제로 나온다. 다만 최초 출전이 아닐 뿐. 《구주춘추》는 서진 시절에 쓰였고, 같은 유송대 저작이라도 《삼국지》 배주가 《후한서》보다도 일찍 쓰였으므로 둘을 비교하면 《구주춘추》 쪽이 더 앞선다. 시대상 후한이 삼국보다 앞서기 때문에 후한서가 삼국지보다 앞선다고 착각한 것으로 추측된다.[4] 큰 칼과 큰 도끼로 무장한 군사.[5] 그러니까 조조가 닭갈비를 보고 오도가도 못하는 자신의 상황이 생각나서 자문자답에 가깝게 중얼거린 것을 하후돈이 명령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즉, 적절하게 의역하자면 (혼잣말로) "계륵인가?" 혹은 “계륵이다!” 정도가 된다.[6] 신삼국에선 하후돈은 딱 한번만 나올 정도로 그렇게 비중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7] 양수 하면 떠오르는 일합수 일화도 이 드라마에 나온다. 다만 여기선 그 도시락이 마등이 선물한 거라 조조는 혹시 독이나 들은 건 아닌가 하고 떠본 것으로 묘사된다.[8]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친위대급 조조군 정예부대가 연발 돌격소총을 사용한다. 양수를 처형할 때도 총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