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사성어 | |
| 鷄 | 肋 |
| 닭 계 | 갈빗대 륵 |
1. 개요
'닭의 갈비'라는 뜻으로, 가지고 있어도 별로 득이 되지 않는데,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을 의미하는 고사성어이다. 조조가 '계륵'이라고 명령한 것을 듣고, 미리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예측한 양수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2. 유래
2.1. 정사 삼국지
夏侯淵與劉備戰於陽平,為備所殺。三月,王自長安出斜谷,軍遮要以臨漢中,遂至陽平。備因險拒守。九州春秋曰:時王欲還,出令曰「雞肋」,官屬不知所謂。主簿楊脩便自嚴裝,人驚問脩:「何以知之?」脩曰:「夫雞肋,棄之如可惜,食之無所得,以比漢中,知王欲還也。」 夏五月,引軍還長安。
하후연은 유비와 양평(陽平)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유비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3월, 왕(조조)은 장안(長安)에서 야곡(斜谷)으로 출정했는데, 차요(遮要)에서 진을 치면서 한중(漢中)에 임했으니, 마침내 양평(陽平)에 이르렀다. 《구주춘추》에서 말하길, 당시 왕(조조)은 돌아가려고 했는데, 명령을 내리면서 "닭의 갈비(계륵)"라고 말하니, 관속[1]들은 (조조가) 말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주부(主簿)[2] 양수(楊脩)가 짐을 꾸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놀라 양수에게 "어찌 아는가?"라고 물으니, 양수가 말했다. "무릇 닭의 갈비란,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 같고, 먹기에는 얻는 바가 없어서, 한중에 비교되므로, 왕이 돌아가고자 하는 것을 알았소이다." 여름, 5월에 (조조는) 군을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갔다.
《삼국지 三國志》위서 魏書 무제기 武帝紀
이와 관련된 고사는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무제기(武帝紀)의 배송지(裴松之) 주(注)에서 인용한 《구주춘추(九州春秋)》에서 나온다.[3] 《구주춘추》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조조가 군대를 회군하려고 마음먹고 ‘계륵(雞肋; 닭갈비)’이라고 명령을 내리니 관직에 있던 자들이 대관절 무슨 소린지 도통 알지 못했다. 그런데 주부(主簿)라는 벼슬을 가진 양수(楊脩)가 돌아가기 위해 짐을 먼저 꾸리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양수에게 물었다. “어찌 돌아갈 것을 압니까?” 이에 양수가 말했다. “무릇 닭의 갈비란,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 같고, 먹기에는 얻는 바가 없어서, 한중에 비교되므로, 조조가 돌아가고자 하는 것을 알았소이다.”하후연은 유비와 양평(陽平)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유비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3월, 왕(조조)은 장안(長安)에서 야곡(斜谷)으로 출정했는데, 차요(遮要)에서 진을 치면서 한중(漢中)에 임했으니, 마침내 양평(陽平)에 이르렀다. 《구주춘추》에서 말하길, 당시 왕(조조)은 돌아가려고 했는데, 명령을 내리면서 "닭의 갈비(계륵)"라고 말하니, 관속[1]들은 (조조가) 말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주부(主簿)[2] 양수(楊脩)가 짐을 꾸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놀라 양수에게 "어찌 아는가?"라고 물으니, 양수가 말했다. "무릇 닭의 갈비란,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 같고, 먹기에는 얻는 바가 없어서, 한중에 비교되므로, 왕이 돌아가고자 하는 것을 알았소이다." 여름, 5월에 (조조는) 군을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갔다.
《삼국지 三國志》위서 魏書 무제기 武帝紀
2.2. 연의
操屯兵日久,欲要進兵,又被馬超拒守;欲收兵回,又恐被蜀兵恥笑;心中猶豫不決。適庖官進雞湯。操見碗中有雞肋,因而有感於懷。正沈吟間,夏侯惇入帳,稟請夜間口號。操隨口曰:「雞肋!雞肋!」惇傳令眾官,都稱「雞肋」。行軍主簿楊脩,見傳「雞肋」二字,便教隨行軍士,各收拾行裝,準備歸程。有人報知夏侯惇。惇大驚,遂請楊脩至帳中問曰:「公何收拾行裝?」脩曰:「以今夜號令,便知魏王不日將退兵歸也。雞肋者,食之無味,棄之可惜。今進不能勝,退恐人笑,在此無益,不如早歸。來日魏王必班師矣,故先收拾行裝,免得臨行慌亂。」夏侯惇曰:「公真知魏王肺腑也!」遂亦收拾行裝。於是寨中諸將,無不準備歸計。當夜曹操心亂,不能穩睡,遂手提鋼斧,遶寨私行。只見夏侯惇寨內軍士,各準備行裝。操大驚,急回帳召惇問其故。惇曰:「主簿楊德祖,先知大王欲歸之意。」操喚楊脩問之,脩以雞肋之意對。操大怒曰:「汝怎敢造謠,亂我軍心!」喝刀斧手推出斬之,將首級號令於轅門外。
조조가 군대를 주둔한지 오래 되었는데, 군대를 진격하고자 하나, 또 마초에게 막혀 지켜지고, 군대를 거둬 돌아가려고 하나, 또 촉한 병사에게 수치스럽게 비웃음을 당할까 두려워서, 마음속으로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마침 포관(庖官)이 닭고깃국을 바쳤다. 조조가 사발 안에 있는 닭의 갈비를 보고, 가슴 속에 느끼는 게 있어 막 깊이 탄식하는 사이에, 하후돈이 막사로 들어와 야간의 군대 암구호를 여쭈어 청했다. 조조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길, "계륵! 계륵!"이라 하니, 하후돈이 뭇 관리들에게 명령을 전달하여 모두들 '계륵'이라고 일컬었다.
행군주부 양수가, 계륵 두 글자를 전하는 것을 보더니, 곧 수행하는 병사들더러 각자 짐을 수습해서 돌아가는 여정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누군가 (이를) 하후돈에게 보고하여 알리자, 하후돈이 크게 놀라 양수를 막사 안으로 불러들여 물었다. "공께선 어찌하여 행장을 수습하시오?" 양수가 말했다. "오늘밤 명령 때문에, 위왕께서 조만간 군대를 물려서 되돌아가실 것을 알았습니다. 계륵이란 먹기에는 고기가 없고, 버리기에는 맛이 있으니, 지금 진격하자니 이기지 못하겠고, 물러나자니 남이 비웃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도 이익이 없으니 일찍 돌아가는 것만 못하지요. 내일 위왕께서는 반드시 군대를 돌리실 것이므로, 먼저 행장을 수습한다면 행군에 임해서 허둥지둥하는 것을 면할 수 있습니다." 하후돈이 말하길 "공께서는 진정 위왕의 깊은 속마음을 아는구려." 라고 하고는, 마침내 (하후돈) 또한 짐을 수습했다. 이에 영채 안의 장수들 가운데, 돌아갈 계획을 준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날밤 조조가 심란하여 편히 잠들지 못하고, 철 도끼를 손에 들고 영채 주위를 혼자서 돌아다녔다. 하후돈 영채 내 군사들만 봤을 뿐인데, 각자 행장을 준비하고 있으니 조조가 크게 놀라서, 급히 막사로 돌아가 하후돈을 불러 그 까닭을 물었다. 하후돈이 말했다. "주부 양덕조가 먼저 대왕의 돌아가고자 하는 뜻을 알았습니다." 조조가 양수를 불러서 물으니 양수가 계륵의 뜻을 대답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네 어찌 감히 말을 지어내서, 우리의 군심(軍心)을 어지럽히는가!" 도부수[4]들에게 소리쳐 밀어내 참수시키고, 수급을 군영의 문 밖에 매달라고 명령했다.
《삼국연의 72. 제갈량이 지혜롭게 한중을 취하다 諸葛亮智取漢中〉
조조가 군대를 주둔한지 오래 되었는데, 군대를 진격하고자 하나, 또 마초에게 막혀 지켜지고, 군대를 거둬 돌아가려고 하나, 또 촉한 병사에게 수치스럽게 비웃음을 당할까 두려워서, 마음속으로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마침 포관(庖官)이 닭고깃국을 바쳤다. 조조가 사발 안에 있는 닭의 갈비를 보고, 가슴 속에 느끼는 게 있어 막 깊이 탄식하는 사이에, 하후돈이 막사로 들어와 야간의 군대 암구호를 여쭈어 청했다. 조조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길, "계륵! 계륵!"이라 하니, 하후돈이 뭇 관리들에게 명령을 전달하여 모두들 '계륵'이라고 일컬었다.
행군주부 양수가, 계륵 두 글자를 전하는 것을 보더니, 곧 수행하는 병사들더러 각자 짐을 수습해서 돌아가는 여정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누군가 (이를) 하후돈에게 보고하여 알리자, 하후돈이 크게 놀라 양수를 막사 안으로 불러들여 물었다. "공께선 어찌하여 행장을 수습하시오?" 양수가 말했다. "오늘밤 명령 때문에, 위왕께서 조만간 군대를 물려서 되돌아가실 것을 알았습니다. 계륵이란 먹기에는 고기가 없고, 버리기에는 맛이 있으니, 지금 진격하자니 이기지 못하겠고, 물러나자니 남이 비웃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도 이익이 없으니 일찍 돌아가는 것만 못하지요. 내일 위왕께서는 반드시 군대를 돌리실 것이므로, 먼저 행장을 수습한다면 행군에 임해서 허둥지둥하는 것을 면할 수 있습니다." 하후돈이 말하길 "공께서는 진정 위왕의 깊은 속마음을 아는구려." 라고 하고는, 마침내 (하후돈) 또한 짐을 수습했다. 이에 영채 안의 장수들 가운데, 돌아갈 계획을 준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날밤 조조가 심란하여 편히 잠들지 못하고, 철 도끼를 손에 들고 영채 주위를 혼자서 돌아다녔다. 하후돈 영채 내 군사들만 봤을 뿐인데, 각자 행장을 준비하고 있으니 조조가 크게 놀라서, 급히 막사로 돌아가 하후돈을 불러 그 까닭을 물었다. 하후돈이 말했다. "주부 양덕조가 먼저 대왕의 돌아가고자 하는 뜻을 알았습니다." 조조가 양수를 불러서 물으니 양수가 계륵의 뜻을 대답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네 어찌 감히 말을 지어내서, 우리의 군심(軍心)을 어지럽히는가!" 도부수[4]들에게 소리쳐 밀어내 참수시키고, 수급을 군영의 문 밖에 매달라고 명령했다.
《삼국연의 72. 제갈량이 지혜롭게 한중을 취하다 諸葛亮智取漢中〉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서기 219년, 한중에서 조조가 유비와 격전을 벌이는데, 조조 본인의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자 조조군은 '군사를 물려서 한중을 포기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고 있었다. 한편 이날 저녁식사 메뉴는 닭고깃국이었다. 조조는 사발에 담긴 닭갈비를 보다가 현 상황을 떠올리며 한탄했다. 한중땅을 먹자니 이 전쟁으로 얻을 이익이 별로 크질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고 유비 세력에게 걍 줘버리자니 상대가 비웃을 것이 염려되었던 것. 이 때 하후돈이 조조에게 찾아와서 오늘의 암호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는데, 이때 조조는 무심코 '계륵! 계륵!"이라고 중얼거렸다.[5]
하후돈은 조조가 역시 뜻한 바가 있겠구나 싶어 더 묻지 않은 채 그대로 병사들에게 오늘의 암구호는 '계륵'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모사 양수는 이를 듣자 조조가 원정을 그만 멈추고 철수해버릴 생각임을 간파해 자신의 군사들에게 철수할 때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짐을 싸두라 명령하라고 권했다. 문제는 하후돈이 왜냐고 사유를 묻자 양수가 "계륵이란, 먹기에는 살점이 없고 버리기에는 맛이 있다(食之無肉 棄之有味)."라고 말하면서 한중이 딱 그런 꼴이라 조조가 곧 군대를 철수시킬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하후돈은 군의 총 책임자로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이를 받아들인 채 똑같이 따라하기 시작, 이윽고 전군에 소문이 퍼져 퇴각하는 줄 알고 사기가 떨어지고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조조는 평소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자신의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멋대로 움직여온 양수에게 안 그래도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에야말로 또 괘씸함과 분노, 그리고 속내를 들켰다는 쪽팔림을 느껴 양수를 '군의 사기를 동요시킨 죄'로 처형했으며, 하후돈도 하마터면 같은 꼴을 당할 뻔했다.
조조는 군사들에게 "철수는 절대 없으니 기필코 그 귀 큰 놈을 완전히 꺾어버릴 것이다"라고 양수의 말을 부정하고 억지로 전투를 이어갔으나, 전투 도중 위연이 쏜 화살에 인중을 맞고 앞니가 나가는 등 낭패를 봤고, 결국 본인도 들것에 실려나가는 꼴이 되어서야 한중 공략이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철수를 지시했다. 본인의 성급한 판단으로 죽은 양수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진작에 철수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3. 분석
실제 역사에서는 양수가 한중에서 돌아와 몇 달이 지난 뒤에 참수되었으므로 연의나 다른 창작물들과는 묘사와 줄거리가 조금 차이가 있다. 군기를 어지럽혔다는 명목으로 처형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조조의 삼남 조식의 철저한 브레인 겸 실드 역할을 하며 위나라 후계자 다툼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에 조조의 눈 밖에 난 게 화근이었다.연의에서는 양수가 "떠나기 전에 혼란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미리 수습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조조가 본인의 속내를 들킨 게 부끄럽고 열받아서 핑계를 대고 죽인 걸로 나오고, 본인도 차후에 본인의 성급한 성격 문제 때문에 양수를 제거한 걸 뼈저리게 후회하며 반성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양수의 모습은 따지고 보면 분명 문제가 있다. 독단으로 철수 이야기를 꺼내서 자신의 부대는 물론 지휘관격인 하후돈의 부대까지 사기를 꺾어놓았고, 더 나아가 총대장은 주둔을 명했는데 일개 사단장 수준인 자가 제멋대로 철군을 주장해서 관철시켜서 지휘계통까지 혼란에 빠트리는 하극상을 저질렀다. 결과적으로는 철수가 정답이었더라도 사전에 총책임자이자 가장 윗사람인 조조에게 의견부터 먼저 말한 뒤에 정식으로 승인을 받고 나서 비로소 철수했어야지 멋대로 해석하고 함부로 일을 처리해버렸으니 말이다. 조조군에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사들은 순욱처럼 자살하거나 순유처럼 화병으로 죽었을 뿐 드러내놓고 조조를 거스르게 한 행위를 한 적은 없었다. 반면 양수와 비슷하게 얽히던 공융 또한 퇴근길에 "어질지 못한 자가 어진 자를 치다니 어찌 이기겠는가?"라고 대놓고 한탄하다가 목이 달아났다.
4. 후일담
양수의 아버지 양표는 한나라 조정의 신료였기에 조조는 선물을 보내주며 위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표는 여전히 상심한 채 마치 '아들 잃은 소와 같은 기분'이라고 하자 조조도 후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치적인 판단도 곁들여진 처형이었지만, 이미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조조 입장에서 양표가 슬퍼하는 걸 보고 진짜 후회했을 수도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노우지독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뜻한다.5. 기타
- 실제로도 평소에 조조는 한방 재료를 넣은 닭고기 보양식을 챙겨먹으며 건강관리를 했고, 이를 후세에 '조조닭(曹操鸡 / 曺操鷄, Caocaoji, 바이두 백과사전)'이라고 불렀다. 닭과 꽤나 연이 있는 듯 하다.
- 훗날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유영이 술자리에서 싸움을 말리다 거한에게 얻어맞게 생겼는데 그때 '내 몸은 닭갈비와 같은데 당신 주먹을 견딜 수 있겠느냐.'는 말로 달랬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 마른 사람을 갈비에 비유한 것의 유래가 아닌가 싶다. 삐쩍 마른 사람을 보면 갈비뼈가 보이기도 하고...
- 의미가 유사한 한국어 속담으로는 "저 먹자니 싫고 남 주자니 아깝다."가 있다.
- 닭갈비는 닭의 갈빗살만 쓰는 것이 아니라 다리살도 사용한다. 오히려 다리살만 사용하는 가게가 더 많다.
- 1박 2일에서 김C랑 강호동의 고사성어 대결에 출제되었다. 이때 김C가 사자성어 문제로 착각해 사자성어는 생각이 안 나지만 정답인 고사성어 계륵을 언급하나, 나영석 PD가 고사성어라고 했지 사자성어라곤 안 했다고 하자마자 가만히 있던 강호동을 제치고 본인 이름을 외친 뒤 얼떨결에 답을 맞혔다.
- 사자성어, 고사성어를 배울 때 계륵은 특이하게 두글자로 눈에 띄어 기억에 잘 남는편이다. 학생들이 '두글자인데 왜 사자성어에 들어있나요?'라는 질문도 자주 한다.
6. 대중매체
- 드라마 신삼국에서는 하후돈의 역할을 무명의 장수가 맡았다.[6] 양수의 말만 고대로 믿고 생각없이 냅다 철군하려다가 같이 까이지만, 처형은 면했다. 양수가 질질 끌려갈 때 옆에 있던 사마의가 그 장수에게 양수가 조조에게 찍힌 덕에[7] 자네 목이 멀쩡했다며 장수라는 작자가 이렇게 귀가 얇아서야 쓰겠냐고 꾸짖는다.
- 이희재 삼국지를 비롯한 일부 판본의 연의에선 제갈량이 다음과 같이 코멘트 한다.양수가 한 수 모자랐어. 남보다 빼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러나 남보다 잘 아는 것을 입 안에 삼키고 있기란 더욱 어려운 일인 법. 양수가 조금만 더 지혜로웠다면 입을 열지도 않았을 것이고,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국 쪽 원조는 아마도 고우영 삼국지인 듯. 양수의 처형 소식을 전해들은 제갈량이 이렇게 대사를 친다. '양수… 약간은 모자란 사나이, 남보다 뛰어나긴 어렵지만 그것을 감추는 법은 더 어려운 법'. 그리고 고우영 삼국지의 많은 부분을 벤치마킹한 이문열 삼국지에서도 이런 점이 보인다.
그런데 사실 연의 기준으로 제갈량도 딱히 겸손한 인물은 아니었다. 일단 재야 시절부터 본인이 관중, 악의와 같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고, 유비 수하에 들어간 뒤에도 은근히 재주를 드러내는 일을 많이 했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서 망정이지, 글줄 좀 꿰고 있는 선비에게 관우, 장비를 비롯해 적잖은 반감을 가지고 있는 수하들도 있었다. 하지만 제갈량이 조조에게 항복하자는 손권의 문신들과 담판을 짓고 적벽대전을 대승하여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유비의 수하들이 제갈량을 진심으로 따르기 시작했다. 제갈량은 이후 읍참마속을 겪으면서 자신의 자만심을 반성했다.
- 조금 각색해서, 결과적으로 조조가 진짜 철군했으니 양수의 행동이 맞지 않았냐는 점을 부각하는 경우도 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어차피 철군할 거였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하는 게 손실을 크게 줄이는 이득이니까 말이다. 84부작 삼국지에서는 양수가 처형당하기 전에 "더 큰 손실을 입기 전에 철퇴하십시오."라고 충고하는 장면이 있다.
-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연의에서 앞니가 날아가는 부분을 닭 먹는 것보다 더 앞서 일어난 일로 묘사했고, 나온 음식도 닭고깃국이 아니라 진짜로 닭갈비였다. 이빨이 날아가 상심해 있던 조조는 위의 닭을 좋아했다는 일화대로 닭갈비나 맛있게 먹고 기분이나 풀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앞니가 없어 제대로 먹지 못했고,
취사병 누구야!그 중에서도 갈비 부위를 보더니 해당 생각을 떠올렸다. 먹기는 더럽게 어려운데 살은 얼마 안 되는 그 상황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조조에게서 받은 계륵이라는 암호를 알려줬더니, 병사들 사이에 전해질 때 "계륵? 그게 뭐야" 하며 와전되어 기륵 끼륵 끼룩!이 되고, 조조가 부하를 시켜 수하를 하자 끼룩! 이란 대답이 돌아왔고, 조조가 "암호가 틀렸다"라고 하여 쏴 버리는 개그 묘사도 나온다.[8] 이로 인해 발생한 시간적 오류에 대해서는 조조가 양수를 처형한 후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군기를 어지럽혔다 해도 고인의 마지막 유지를 들어주는 게 맞다. 그러니 양수의 마지막 유지에 따라 군을 철수한다"는 논리로 양수 처형 직후 퇴군하는 걸로 해결했다.
-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3편에서 촉군으로 정군산 전투 시나리오를 플레이할때 조건을 맞추면 조조가 "음, 계륵이군."이라고 말한다. 또한 조조가 후기작으로 갈수록 성능이 약화되어서 계륵이라고 불린다. 더불어 6편부터 조조가 형주의 관우를 유인하겠다고 한중을 일부러 내준 것이라는 무리수를 밀고 있는데, 그야말로 이 고사성어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조조가 다른 군주 병종 장수들에 비해 특성이 쓸모가 없는데, 하필 북부위전, 조조전 연의에서 필수 무장이라서 패기를 배우는 61레벨까지 어쩔 수 없이 키우기 때문에 계륵이라 불렸지만 재반격+반격강화 특성이 있어서 백련검 쥐어주고 99레벨 찍으면 4타까지 발동하여 적을 혼자서 순삭하는 것도 가능해지는 등 메타 대세 무장으로 쓰이기에 계륵이라 불리기에는 억울하기도 하다. 마침 본작의 연의 '유비전' 중에서도 위의 유래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 삼국전투기에서는 계륵이 나오기 훨씬 이전 가후가 작전회의에서 장수에게 계륵을 언급하고, 이에 장수가 '그거 니가 먼저 써도 되는 거냐?'라고 묻는 개그씬이 나왔다.
- 화봉요원에서는 조조군에서 닭고기와 관련된 단어를 이미 암구호로 사용중이라는 묘사를 보여준다. 작중에서 가장 처음 보여준 암구호는 닭다리...
[1] 관(官)에 속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2] 관직 이름.[3] 참고로 네이버 백과에서는 《후한서》 양수전(권54 양진전에 부기)을 출전으로 삼고 있는데, 실제로 나온다. 다만 최초 출전이 아닐 뿐. 《구주춘추》는 서진 시절에 쓰였고, 같은 유송대 저작이라도 《삼국지》 배주가 《후한서》보다도 일찍 쓰였으므로 둘을 비교하면 《구주춘추》 쪽이 더 앞선다. 시대상 후한이 삼국보다 앞서기 때문에 후한서가 삼국지보다 앞선다고 착각한 것으로 추측된다.[4] 큰 칼과 큰 도끼로 무장한 군사.[5] 그러니까 조조가 닭갈비를 보고 오도가도 못하는 자신의 상황이 생각나서 자문자답에 가깝게 중얼거린 것을 하후돈이 명령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즉, 적절하게 의역하자면 (혼잣말로) "계륵인가?" 혹은 “계륵이다!” 정도가 된다.[6] 신삼국에선 하후돈은 딱 한번만 나올 정도로 그렇게 비중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7] 양수 하면 떠오르는 일합수 일화도 이 드라마에 나온다. 다만 여기선 그 도시락이 마등이 선물한 거라 조조는 혹시 독이나 들은 건 아닌가 하고 떠본 것으로 묘사된다.[8]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친위대급 조조군 정예부대가 연발 돌격소총을 사용한다. 양수를 처형할 때도 총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