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문 안'에서 유래된 서울의 가장 오래된 도심에 대한 내용은 서울 도심 문서 참고하십시오.
사대문안 | 사대문 | 한양도성 | 성저십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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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대문 안[1]의 유래는 서울 한양도성이다. 동대문(흥인지문), 서대문(돈의문), 남대문(숭례문), 북대문(숙정문) 네 개의 대문 안에 위치한 지역이란 뜻으로 사대문 안이라고도 한다.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른 서울의 원도심으로서 '서울 도심'과는 다소 구분되는 개념인데, 현행 '서울특별시 사대문안 특별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른 '사대문안'은 도성 밖의 상업지역을 포괄하고 있다.도성에 둘러싸인 느낌을 내기 위하여 걸어놓은 규제로 인하여 고층 건물이 들어올 수 없으며, 건축 규제 상의 사대문 안에는 대학로, 동국대 등지도 포함된다. 오늘날에는 흔히 서울특별시 중구 · 종로구 · (용산구[2]) 일대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성벽으로 연결 되어 있었지만 일제가 교통 문제로 성문 쪽은 성벽들을 철거했다.# 그래서 낙산 같이 산 같은 곳은 성벽들이 보존 되어 있다.[3]
2. 설명
위 붉은 선 내부가 기본적으로 정의되는 사대문 안이다. |
한양도성 서쪽 지역(통일로 연선)은 엄밀하게는 사대문 밖에 위치하나, 도심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포함하기도 한다. 건축 규제상의 사대문 안에도 한양도성 서쪽 일부가 포함된다. 동대문 동쪽인 창신동[4], 숭인동이나 중구 신당동 일대는 빠진다.
서울특별시에서 인구가 가파르게 감소한 지역인데, 도심 공동화가 비교적 일찍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양도성 내부에서는 5등급 차량들의 운행이 제한된다. |
현대 서울특별시 지역 중에서도 옛 한성부 서울 한양도성의 사대문 내부의 지역을 지칭하며, 이곳은 현재까지도 서울의 원도심으로 기능한다. 사대문이란 한성의 4개 문인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숙정문(북대문), 돈의문(서대문)을 뜻한다. 다만 남산에는 사대문이 없으며, 서울시 건축 규제상의 사대문 안을 지칭할 때는 남산자락의 동국대 일대 등이 빠진다.
도심, 건축 규제상으로서의 사대문 안의 범위 |
서울역이나 DDP처럼 실제로는 (부분적으로나마) 사대문 밖인 영역[5]도 도시계획상의 사대문 안에 포함되고, 삼청동처럼 실제로는 사대문 안인 영역도 도시계획상 사대문 밖으로 취급된다. 이유는 해당 지역이 오래 전부터 상업 업무 지역이 되어 도시계획상 일반상업지구로 지정되어 있고, 일반상업지역이면 원칙적으로 높은 용적율로 건물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고밀도 건물의 난립 방지를 위해 건축 규제상의 도심지를 정하다 보니 저렇게 된 것이다. 사대문 안이지만 저 영역에 빠진 곳은 대부분 일반주거지역, 다시 말하면 원래대로라도 고층 상업용 건축물을 지을 수 없는 지역이다.[6]
조선시대의 한양은 이 사대문 안 지역과 성저십리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그 중에서도 이 사대문 안 지역이 핵심이었다. 궁궐과 주요 조정 부서, 종묘가 위치해 있었으며 종로 등 주요 상권이 위치해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 사대문 안 지역의 위상은 크게 변하지 않아서 강남 지역의 개발이 진행된 이후에는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서울특별시의 상징적인 정치, 문화 등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박완서의 소설인 '엄마의 말뚝'이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면 '문안'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당시 경성(서울)의 이 사대문 안 지역을 말한다. 당시에 사대문 안 지역은 서울의 핵심 지역이었음을 뜻한다.
현대의 서울특별시 행정구역으로는 종로구와 중구의 대다수 지역이 이 사대문 안 지역에 속한다. 참고로 서울 한양도성을 기준으로 한 4대문 안의 면적은 16.657㎢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서울특별시 성동구, 부산광역시 동래구 등의 면적과 비슷하고, 한양도성 둘레는 약 16km로 대구 2차 순환선의 둘레와 거의 비슷하다.
지질학적으로 봤을 때는 사대문 아래에 튼튼한 암반층이 위치하고 있다. 기사 하단 사진 참조. 이 때문에 물기가 적은 편이라 조선시대때는 불의 기운을 누르기 위한 조치들이 행해졌고, 서울에 큰 홍수가 나더라도 사대문 안 지역은 비교적 피해가 덜한 경우가 많다.
3. 출세의 의미에 있어서 사대문 안의 상징성
한국의 역사적 인물인 다산 정약용(1762 ~ 1836)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텨라"라는 말을 남겼다. "사대문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진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남대문(숭례문), 동대문(흥인지문), 서대문(돈의문), 북대문(숙정문) 네개의 문 안쪽, 서울 한양도성 울타리 성곽 안쪽의 지역은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큰 지역이다. 그가 살던 18세기 후반 19세기 초 조선시대는 사대문 안에 모든 주요 관청들과 궁궐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대문 안 지역은 매우 상징적인 지역이었다.현재는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경희궁, 창경궁 5대 궁궐에는 왕실이 존재하고 있지 않으며 고령화와 인구 유출이 계속되고 있지만, 외교부청사, 정부서울청사 등 일부 관청들과 일부 기업 본사들이 아직 사대문 안에 있기는 하다.
4. 대학교 입시 제도에 있어서 사대문 안의 상징성
입시 제도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사대문 안 대학교"에 들어가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현재 진짜 사대문 안 한양도성 울타리 안에 있는 주요 4년제 대학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과학캠퍼스[7], 동국대학교,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8]정도 밖에 없는 상황이나 서울대학교가 관악구 캠퍼스로 이전하기 이전까지는 현재 사대문 안 대학로, 지금의 창경궁 바로 동측 지역에 있는 연건동 일대에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의과대학)가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며, 대학로의 상징성 때문에 여러 주요 대학교들이 대학로에 캠퍼스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홍익대학교의 경우에는 대학로에 캠퍼스를 만들었다. 세종대학교 또한 1940년 개교 당시부터 사대문 안인 중구 광희동, 중구 명동 충무로2가에 캠퍼스가 있었던 대학이었으나, 이후 1962년 사대문 밖의 광진구 군자동으로 캠퍼스를 이전하였다. 세종대학교 명동 캠퍼스가 있던 자리에는 세종대학교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세종호텔이 있다.
많은 선생님들은 사대문 안의 정확한 범위, 즉 서울 한양도성의 성곽 울타리 안쪽의 행정구역을 잘 알지 못하지만, 사대문 안의 대학교에 들어가라는 의미는 현재 한양도성 안팎에 자리 잡고 있는 행정구역인 종로구, 중구, 성동구, 용산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성북구, 마포구 등에 자리 잡고 있는 주요 4년제 대학교에 진학하라는 의미를 갖는다.
종로구의 상명대학교, 중구의 동국대학교, 성동구의 한양대학교, 용산구의 숙명여자대학교, 서대문구 · 마포구의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서강대학교, 홍익대학교, 명지대학교, 경기대학교/서울캠퍼스, 동대문구 · 성북구의 경희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고려대학교, 한성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국민대학교, 또 범위를 좀더 넓혀 광진구까지 포함하면 건국대학교, 세종대학교 등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인서울 대학교를 비유적인 의미로서 사대문 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경우 확실하게 사대문 밖에 있는 동작구의 숭실대학교, 중앙대학교나 관악구의 서울대학교/관악캠퍼스 등이 포함된다. 2020년대에는 거의 이 의미로 쓰인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서울 대학교가 훨씬 더 많이 쓰이고 있다.
5. 관련 문서
[1] 문내(門內) / 성내(城內)라고도 한다.[2] 용산구는 일부 또는 전부를 사대문 안에 포함시키기도 하고, 제외하기도 한다.[3] 산은 성벽이 있으나 없으나 낭떠러지므로 지나 갈 수 없으니 그냥 놔둔 것이다.[4] 종로 남쪽, 지봉로 서쪽의 창신1동 지역은 포함된다.[5] DDP는 구 성곽 터를 한가운데 끼고 건설되었다.[6] 현대 계동 사옥처럼 일부 준주거지역은 있다. 물론 그런 곳은 별도의 규제를 받는다.[7] 여기는 1398년 최초 개교 당시부터 600년 이상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대학교의 나머지 절반은 수원에 있다.[8] 가톨릭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라 엄밀히는 앞에 나열된 학교들과 함께 꼽힐 정도는 아니다. 엄연히 삼원화 캠퍼스 중 본교에 해당하는 위상이지만 신학교인지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인 출입조차 불가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