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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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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유사과학의 일종인 대체의학으로 분류하나, 한국, 중국, 북한, 대만 4개국에는 독립된 한의학부가 존재하여 의학사에 준하는 학위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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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
2.1. 科學2.2. Science2.3. 서양철학사적 과학
3. 종류
3.1. 좁은 의미에서3.2. 넓은 의미에서
4. 관련 개념5. 교과로서의 과학6. 어록7. 과학자8. 각종 오해와 통념9. 기타
9.1. 과학 드립
10. 창작물에서

1. 개요

/ Science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 지식을 의미한다. 좁은 의미로는 물리학, 생물학, 지구과학, 천문학, 화학을 포괄한 자연과학을 뜻하며[1], 넓은 의미로는 어떠한 법칙이나 이론 등을 실험과 같은 지적 탐구활동을 통해 수행하는 모든 학문을 뜻한다.
과거에는 철학의 하위분류로 여겨졌으나, 점차 철학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방법론을 이루게 된 학문 범위를 형성했다.[2]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다방면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가장 범위가 넓은 학문이며[3], 보통 좁은 의미에서 자연과학을 칭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과학의 역사를 과학사라 하며, 과학에서 쓰이는 방법들을 과학적 방법이라 부른다. 또한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는 학문을 과학철학이라 부른다. 단, 과학사와 과학철학은 다루는 대상이 과학일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각각 사학철학의 하위 분야 학문이다.

과학이 단순히 원래 있는 현상을 규범화, 법칙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론과학, 형식과학이 설 자리가 없다. 또한 대부분의 측정, 실험치들은 오차대응성 등의 문제로 어떤 명확한 법칙을 이끌어 내기 매우 힘들다. 간단히 말해서 오차와 표본 부족 등으로 신뢰할만한 그래프를 그려내는 것 자체가 어렵고, 그 그래프를 외삽했을 때 실제와 같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며, 특정한 몇 가지 순서쌍을 조건을 만족하는 식은 (순서쌍의 개수+1) 차까지만 가도 무한가지이기 때문에 만족할만한 식을 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쨌든 과학이라는 것은 현재 있는 현상을 바탕으로 미래, 혹은 가정된 상황에 만족할만한 예측을 내놓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측정치를 참고하는 것은 물리법칙이 거시적 스케일에서 시간에 대해 불변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는 법칙이 시간에 대해 가변이기 때문에 과거의 법칙과 현재의 물리법칙이 나아가서는 관찰자와 행위자의 법칙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4] 이론과 논리로 풀어낸 결과가 오히려 실험보다 나은 예측을 주는 경우도 있으며 어쨌든 이것도 미래의 상황에 대한 올바른 예측을 주기에 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예측을 이용해서 인간이 어떻게 미래를 바꿀 것인가 논의하는 것은 공학의 영역이다. 따라서 과학과 공학은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흔히들 과학의 개념을 오해하는 건 좁은 의미의 과학(자연과학)과 넓은 의미의 과학을 구분짓지 못하는 데에서 초래한다.

2. 어원

2.1. 科學

조선시대에는 科學(과학)이라는 단어를 과거를 위한 학문의 줄임말로서 불렀다. 철학, 민주주의 등 현대 용어 중에서 한자로 풀이된 것들 중 대부분은 일본의 교육자 니시 아마네(西周)가 번역한 용어이며 과학도 여기에 포함된다.

1874년 니시 아마네(西周)는 서양의 여러 학문 용어를 번역하면서 'Science'의 역어로 科學(과학)을 채택했으며, 명륙잡지(明六雜誌)에 연재된 《지설(知說)》이란 글에서 처음으로 '과학(科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다만 처음 사용했을 당시에는 단지 서양식 교육과정에 포함된 '각 분과(分科)의 학문(學)'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당시 용례로는 흔히 말하는 'Science'의 뜻과는 거리가 있었다.[5][6]

이후 Science로서의 의미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과학(科學)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고 '격물학'(格物學)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 논쟁의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일컫는 바와 같이 '과학'이 이겼다. 결국 어원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현재는 'Science'의 역어로 완전히 정착된 상태다.

2.2. Science

한편 과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science'는 라틴어 동사 scire(알다)의 명사형 scientia(앎, 지식/skiˈen.ti.a(고전),ʃiˈen.t͡si.a(교회))에서 유래됐다.

어원적으로 보면 과학은 특정한 지역의 철학에서 비롯한 방법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 왕국헬레니즘 제국의 철학을 자연철학이라고 부른다. '자연'이란 단어가 붙은 이유는 그리스인들[7]의 철학이 매우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명하려는 목적을 갖고 그것에 몰두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다른 철학들은 뭐가 다른가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식 자연철학을 이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상에 가깝다.[8] 중동의 철학 역시도 인간의 내세와 도덕에 대한 관심이 중심이었다. [9] 그러나 그리스의 지식인계층은 다른 문명과 달랐다. 그들 역시 사회와 인간의 품성에 관한 여러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지만, 다른 문명과 달리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 해답을 '사회 밖의 존재'인 자연에서 찾았다. 그들의 주된 토론 주제는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 물질과 그것이 작동하여 만물을 형성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불이 세상의 근본인지, 물이 세상의 근본인지, 4원소가 세상의 근본인지, 아주 작은 원자가 세상의 근본인지, 아예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인 이데아가 세상의 근본인지, 실체하지 않는 이데아가 아니라 세상을 채우고 있는 덩어리, 즉 질료가 세상의 근본인지를 집요하게 탐구했다.

언론학에서 일단 제일 먼저 누가 질러놓으면 그것에만 떠드는 성격을 흔히 '아젠다'라고 한다. 즉 그리스의 지식인들의 아젠다는 도덕, 종교, 정치 만큼이나 세상을 구성할 수 있는 근원과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이다. 흔히 탈레스라는 사람이 자연철학 최초의 질문을 던졌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의 물음이었다. 그는 물을 답으로 내놓았고 이는 틀린 것이었지만, 그의 의의는 이라는 오답에 있지 않다. 중요한 건 질문이었다. 도대체 "세상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져있는가?"이다. 현재로서는 이게 뭐가 특이한 생각인지 의아하다고 할 수 있겟지만 그건 놀라울 정도로 그리스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를대면 동아시아처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던가 중동처럼 "세상을 누가 주관하는가?" 식의 질문이 주된 접근이 된 게 아니라, 당대 사회에서 실용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서 한 문명의 지식인들이 그걸 가지고 아주 오래 논쟁을 한 것에서 과학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면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신들의 행동으로부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이 저술한 '국가'의 제 10권에서 이러한 사고방식의 한 예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질문의 의의가 결코 작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인을 가리켜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표현이 함축하는 의미는 크다.

한국어는 학문, 과학이라고 다르게 표현하지만, 서양권에서 이 단어들은 어원적으로 모두 '자연학'이란 단어에서 기인한다. 그리스인들이 자연을 연구하면서 발달시켰던 방법론과 논리적인 설명방식을 철학에게까지 적용하면서 사실상 자연철학 자신은 사라졌지만, 그 결과로 탄생한 과학적 방법론에 거의 모든 학문을 종속시켰다. 그렇지 못한 학문체계는 반과학/사이비과학/야만으로 몰아내었으며, 학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아직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거나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만 사회, 인문, 신비주의의 이름을 붙여 격리했다.

과학의 많은 부분이 변했지만 이러한 '그리스 철학'에 대한 존중으로 학문분과의 명칭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붙이며 그 방식을 지금도 거의 변화시키지 않는다. 대학을 의미하는 아카데미라는 단어는 그리스의 교육기관인 아카데미아를 그대로 쓰는 것이고, 철학, 물리학, 수학, 공학 등의 이름도 Φυσικὴ ἀκρόασις (자연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의 챕터명을 그대로 학문 분과로 삼았다. 철학 중 인문학 쪽에 가까운 것을 제외한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부르는데 이것 역시도 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ὰ βιβλία (Ta meta ta physika biblia)에서 기인한 것으로 메타-피지카, 즉 "자연학 다음 장"을 그대로 학문 분과명으로 삼는다.

형이상학이란 단어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는 하지만,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책에서 철학 챕터가 물리학 챕터 바로 다음에 쓰여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애 명칭이 기인한다. 이처럼 그 근원부터 사소한 단어 선택에 이르기까지 현대 과학에서 고대 그리스의 영향력을 배제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2.3. 서양철학사적 과학

현대 한국인이 생각하는 과학은 역사적으로 서양철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가장 원시적인 것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으로 올라가는데, 이는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주된 주제로 삼아서 고민하던 것이었다. 현대인이 읽어보면 헛소리의 향연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노력 때문에 나중에 화학의 기초인 원자의 개념이 고안되었고, 그들의 자연을 수학으로 해석하는 노력이 쌓여서 물리학의 단초가 되었다.

한국을 비롯해서 중국, 일본에서는 "왜 동양은 과학이 없었는가?"라는 의문이 커다란 역사학적 질문이었는데, 그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고대 문명 때 정치체제의 차이다. 당시 중국은 대부분의 국가가 천자제후를 중심으로 사회가 움직이는 중앙집권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왕은 제사장직을 겸하는 제정일치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여겨졌다. 이런 환경에서 학자들은 왕의 종교적인 권위에 입각해 그와 근처의 고위관리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론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대부분의 학문이 '하늘의 뜻'에 대해 논하는 도덕적 관념에만 열중했다.

반면 동시대의 그리스는 도시국가인 폴리스들이 다양한 정치체제로 분산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학문이 가장 융성한 아테네직접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였다. 즉, 이미 시민 계급이 권력을 갖고 전통적인 귀족 계급과 경쟁을 벌이던 사회였던 것. 이런 환경에서는 설령 왕이라고 해도 시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학자들은 아고라같은 광장에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시민들을 최대한 많이 설득하기 위해 극한으로 논리를 발달시켜야 했다. 때문에 왕과 사제의 권위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신들의 속성과 행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할 수 있었으며, 이는 논리적인 토론방식의 발전으로 이어져 논리학이 성립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노력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집성된다. 그는 연역법귀납법으로 요약되는 논리학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현상을 관찰(=귀납법)하고, 지식을 기술(연역법)하는 체계를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위의 정치체제 차이와 더불어 동양에 과학이 없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이 아리스토텔레스적 '논리학'의 부재이다. 다시말해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과 동등한 것을 동양인들은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과학도 못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더 많은 요인이 있지만, 그만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완벽한 과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훗날 태동할 과학적 방법론의 탄생에 기반이 될 중요한 성과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과학으로 이어진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와 관련이 있다.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부터는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나?"라는 신학적인 질문을 답하는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학문체계가 동원되었는데, 그것이 스콜라주의이다. 이들 신학자들은 주된 '진리', 즉 신의 말씀을 알아내는 방법으로 연역법을 주된 방법으로 쓰느냐, 귀납법을 방법으로 쓰느냐를 놓고 실재론유명론의 논쟁을 벌인다. 세상의 창조자가 제우스포세이돈같은 그리스 신들에서 그리스도교하느님으로 바뀌긴 했지만, 중세의 신학자들은 "신이 만든 세상을 이해하면 신의 뜻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란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이 믿음에 근거해서 자연을 논리적으로 파악하려는 그리스 학문의 전통을 계승한다. 그리고 이것이 르네상스에 들어서면 이성주의경험주의 간의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각각의 사상이 발전한다. 다만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때까지만 해도 과학적 방법론이 완성 단계에 있지 않고 대체로 학문이 신학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제대로 된 과학이란 학문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르네상스가 끝난 뒤 유명론경험주의의 중심이었던 영국의 분위기 속에 뉴턴이라는 천재가 나타나면서 비로서 현대의 우리가 아는 그 '과학'이 탄생한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반복되는 현상을 관찰해서(=귀납법), 이를 기반으로 원인(x)과 결과(y)라는 함수로 표현되는 논리(수학)적 설명을 내놓는(=연역법) 과학적 방법론이 탄생한 것이다. 상술했듯이 갈릴레오 갈릴레이 시대까지만 해도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변호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었지만, 갈릴레이가 사망한 뒤 얼마 지나지 않고 태어난 아이작 뉴턴을 기점으로 과학은 마침내 자신이 변호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폐기하고 서양철학과 종교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분야로 분리되게 된다.

당시 신학계가 채택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목적론적 자연관'을 골자로 했다. 이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사물은 목적(telos)을 가지고 있다. 사물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변화와 운동의 원리를 그 안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이 모든 사물에 고유한 목적을 설정했다는 신학자들의 생각과 잘 부합하여 중세까지 철학계의 정설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물질의 오만가지 다양한 운동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나름의 역학을 전개했지만, 물리학적인 에너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시대의 사람이었기에 사물마다 고유한 운동 성질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따라서 지상과 천상의 운동을 별개로 취급하였다.

따라서 관찰과 이성을 중시하는 근대 초에 들어서 목적론적 자연관은 현상에 대해 객관적 설명이 아닌 믿음에 의지하는 관점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이성주의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와 경험주의 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을 중심으로 자연은 목적을 지니지 않으며 원인과 결과에 따라 현상이 생겨날 뿐이라는 '기계론적 자연관'이 대두되었다. 수학자이기도 했던 데카르트는 좌표 그래프로 2차함수를 표현하는 방법을 발명하여 훗날 물리학의 성립에 기여했고, 베이컨은 '네 가지 우상'을 설파함으로써 당대의 다양한 미신과 과학적 오류들을 비판하여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지식은 허상에 불과함을 널리 알렸다. 그리고 마침내 뉴턴이 운동의 관계를 밝혀냄으로써 고전역학이 탄생했고, 과학의 근본인 물리학이 성립함으로써 본격적인 근대적 지식 발전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과학 혁명이 발생한다. 비록 목적론적 자연관이 완전히 반박된 건 아니고 이는 여전히 유효한 철학이기는 하나, 이를 계기로 현상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개념을 배제하려는 기계론적 자연관이 서양 학계의 대세로 전환되었다.

목적론적 자연관에 근거해 신학, 윤리, 과학이 하나로 통합된 것이라 믿어온 기성 자연철학자들과 신학자들에게는 열 받는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반대로 이러한 뉴턴의 성과를 계기로 르네상스 정신을 이어받은 신세대 철학자인 인간중심주의 계몽사상가들은 크게 흥분한다. 그간 기독교적 신앙과 막연한 철학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자연을 마침내 인간의 이성으로 완벽하게 파악하고, 이에 근거해 논리적으로 완전한 도덕법칙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는 종래의 미신적인 중세적 사고관을 타파하기를 꾀했던 철학자들이 신학자들에게 제대로 반격할 기회로 다가왔다. 때문에 과학이 더이상 철학의 그늘에 속하지 않게된 뒤에도 서양철학자들은 과학의 방법론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했으며, 과학이야말로 종교를 대체할 인간과 사회적 진리의 새로운 인도자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했다. 과학적 방법론을 사회정의와 도덕에 적용한 새로운 형태의 사상, 즉 이데올로기라는 '근대적 이념'의 기조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기독교적 진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으나 시대적 한계에 의해 그리하지 못했던 계몽사상가들의 '종교적 도그마'와, 비교적 아주 정확한 지식의 창출 방식으로 새롭게 떠오른 '과학적 방법론'이 혼합된 형태의 지식들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 흐름이 정점을 찍은 것이 훗날 세계를 휩쓸 카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탄생한 과학적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다. 계몽사상의 흐름은 신학과 도덕 간의 기나긴 굴레를 끊어냈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를 때까지도 도덕과 과학 간에 긴밀한 연결이 있을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을 끊어내지는 못한 것이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이념을 설계했지만, 서로의 이념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가장 열성적으로 그 과학적 방법론의 한계점을 파악하려는 고민도 했다. 경험주의자였던 이 소위 '귀납의 문제'라 불리는 귀납법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인간의 감각 위에 쌓여진 과학적 지식이 곧 '진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사실 흄이 결정적인 인과 회의주의 논리를 완성했을 뿐이지 이런 종류의 한계는 귀납법이 탄생할 때부터 꾸준히 제기된 것이었지만, 비교적 덜 부각되었던 이전과 달리 과학주의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조성된 이 시기부터 철학자들은 이 논변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생겼다. 그들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창출한 지식이 '진리', 그러니까 신의 말씀을 대체할 사회법칙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귀납법의 근본적인 맹점은 그 기대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과학에 결정적인 한계를 지적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의 탄생에 지분이 큰 경험주의에서 나온 셈인데, 과학이 무결한 체제임을 논증하려는 노력은 또 그 반대편인 이성주의자인 칸트헤겔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은 과학적 지식 비록 진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더 나은 방법이 없으므로 일단은 "귀납법에 기반한 과학이 최선이다."라는, 당대 학자들 기준에서 다소 아쉬운 결론을 내린다.

한편 서양철학의 인식론은 이 과정에서 과학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형성한다. 칸트가 위 귀납의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로 인간이 우주를 이해를 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비록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이 관점이 과학이 진리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걸 논증할 수 있으리란 기대로 제시한 것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관점은 서양철학 내에서 '절대적 진리'는 인간이 알 수 없고, '해석(설명)'만이 있을 뿐이라는 주관주의적 기류로 발전한다. 훗날 토마스 쿤이 말했듯 과학은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역동적인 학문이므로, 오히려 이런 주관주의적 접근은 과학적 성과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적절한 태도를 제공해주었다. 그 어떤 외부에 기술된 지식도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구속하기를 원하는 종교적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이 주관주의는 마르크스와 함께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사상가로 꼽히는 프리드리히 니체아포리즘에 의해 구체화된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시대인 20세기 들어서 서양철학은 자신들이 탄생시키는데 기여했던 그 과학과 오히려 충돌하는 양상을 보인다. 철학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과학적 성과만을 고집하여 자신들의 이념을 정당화하려 하고, 이에 반하는 새로운 과학적 결과들은 거부하는 확증편향에 빠지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주된 원인은 위 주관주의 관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념과 과학이 당장에 완전무결한 지식을 제공해 주었을 것이라는 대중들과 상당수의 학자들 때문이었다. 상기했듯이 공산주의처럼 아무리 과학적 방법론을 최대한 적용했다고 한들 이데올로기 자체가 종교적 도그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개념이었음을 고려하면, 이데올로기 시대 사람들의 이러한 객관주의에 치우친 반응은 당연한 결과였다. 일부 주관주의파 철학자들은 이렇게 잔존해 있는 객관주의가 기독교의 아종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다시말해서 기존의 기독교인들이 신을 받들듯이 기존의 과학적 지식을 무결하고 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이 추종하는 정치체제를 무조건 옹호하는 사회분위기가 있었다고 본것이다. 과학 자체의 역동적인 자기혁신 특성과 위 귀납의 문제로 볼때 이 믿음은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객관주의를 무너트리려고 총력을 다하게 되는데,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문제는 아직 서양철학 내에서도 주관주의적 접근법에 대한 고민이 아직 설익은 시점에 칼을 뽑았다는 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은 1970년대의 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지만, 결국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무리한 주장을 펼치면서 급속도로 몰락해버렸다. 아마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관점에 우열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한 지점일 것이다. 다만 사상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몰락했지만, 학계에 만연한 구세대적인 악습을 제거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덕분에 과학자들이 이전 세대가 겪었던 구태연연한 편견이나 권위주의적인 체제에서 훨씬 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문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그들의 주관주의적 이상을 이루는 데 실패했지만, 철학계에서 과학이 진리인가 아니냐의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문적으로 극적인 합의를 통해 해답을 얻는 데에 성공한다. 이성주의와 경험주의가 과학의 탄생에 동시에 기여했듯이 현대적인 과학 해석론의 완성에는 객관주의와 주관주의가 동시에 기여를 하게 된다. 바로 객관주의 사상가인 칼 포퍼와 주관주의 사상가인 토마스 쿤의 이론으로 과학사라는 학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포퍼는 과학적 지식이란 단순히 이성적인 사고와 관찰을 통해 절대적 지식을 갑자기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반증의 과정을 통해 발전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또 토마스 쿤은 종래의 과학 체계 자체에 큰 오류가 있다는 것이 반복된 실험을 통해 밝혀지면, 뉴턴,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같은 천재를 통해서든 양자역학처럼 과학자 사회 전체의 협력을 통해서든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집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이 등장하는 과학혁명이 발생함으로써 과학이 발전한다는 것을 입증해낸다.

즉, 과학은 철학자와 종교인이 찾는 절대적 가치를 규명하는 학문이 아니라, 자연과 현상에 대한 가장 유용한 지식과 합리적인 설명방식을 제시할 뿐인 철저하게 객관적인 학문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로서 과학이란 서양철학의 일부분으로서 자연철학처럼 어떤 도그마를 통해 당장 절대적 지식을 제공하고 신학을 대체할 종교적인 진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몽사상가들의 오랜 믿음은 그들이 무너트린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가들의 믿음처럼 산산조각나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과학사의 연구결과를 통해 과거 그들이 열망했던 것처럼 과학은 현상에 대한 가장 유용하고 최선의 이해와 지식을 제공하는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이자 신뢰할 만한 독자적인 체계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게된다.

이렇듯 서양철학은 전근대에 과학이 탄생하고 발전하는데 기여했으며, 과학이 철학에서 완전히 분리된 근대부터는 과학으로부터 끊임없이 사상의 단초를 제공받았다. 데카르트베이컨은 자신이 직접 연구한 천문학과 해부학을 바탕으로 사상을 전개했으며, 뉴턴이 근대철학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고, 마르크스는 그 어떤 철학자보다 과학적 방법론을 자신의 이념에 가장 엄밀하게 적용하고자 노력했으며, 니체의 계보를 잇는 예술가와 철학자들은 진화론의 발견에 힘입어 사상을 전개했다. 현대에는 인공지능가상현실 분야처럼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철학계에서 상상한 철학적 물음을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렇듯 철학과 과학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온 것이다. 철학과 과학이 서로의 지식에 힘입어 기존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깨부수고 다시 그 상상력에 기반하여 새로운 설명을 내놓는 선순환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3.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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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 즉 경험과학은 크게 자연과학사회과학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자연 현상을 연구하는가, 아니면 인간 사회를 연구하는가에 따라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경험에 기반하나, 예외적으로 경험이 아닌 추상적 공리에 기반하여 전개되는 과학 분야가 존재하며, 이를 형식과학이라 한다. 응용 방법에 따라 응용과학순수과학으로도 분류할 수 있으나, 이러한 분류는 너무 낡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으며,[10] 세계 각국의 과학계(한국의 경우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선 과학의 분류를 주기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표준분류체계 문서 참고.

3.1. 좁은 의미에서

3.1.1. 자연과학

자연과학은 여러 자연 현상 속에 숨겨진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가장 좁은 의미의 과학은 이 자연과학을 뜻한다. 자연과학의 발전은 이성과 관찰 가능한 증거를 바탕으로 물리적 세계, 특히 인간의 행동에 의해 나타난 것이 아닌 자연의 원리에 대해 검증 가능한 방법을 통해 알아보는, 또는 더 잘 알아보려는 노력이자 그러한 노력의 산실이다. 즉, 결과 자체로 미래를 추정하는 학문이 아니라 과정을 토대로 하여 자연의 규칙성을 찾아내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궁극적인 목표가 애매한 편이나 대충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일반인과의 타협의 선이 되지 않는가 싶다. 이런 의미가 깊숙히 들어간 단어로는 코스모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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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넓은 의미에서

3.2.1. 형식과학

형식과학은 추상적 구조에 기반한 여러 가지 규칙인 형식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일반적으로 실제로 일어난 현상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의 다른 분야와 달리, 추상적으로 정의되어 더 이상 원시화될 수 없는 명제공리를 학문의 초석으로 둔다. 그리고 이 공리에 모순되지 않는 명제들을 증명을 비롯한 여러 방법들을 통해 쌓아나간다. 그래서 다른 과학 분야와 달리 공리를 정의하고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학문의 근간이 달라질 수 있게 된다는 성질을 갖고 있다. 또한 형식과학은 현실의 현상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는 않지만, 다른 과학 분야에 필요한 여러 과학적 방법을 제공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하여 형식과학은 과학 내에서 독특한 입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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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응용과학

응용과학은 다른 과학 분야, 특히 자연과학에서 발견된 이론이나 사실을 바탕으로 실생활이나 여러 산업 분야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나, 세부 적용 사례에 대해 다루는 학문이다. 응용과학의 특징으로는 자연과학과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응용과학의 대표적 학문이라 할 수 있는 공학은 자연과학과의 관계가 깊으며, 서로가 상호 견제 및 교류를 통해 발전해 왔다, 또 다른 주요 분야인 의학은 이미 생물학과의 학제간 교류 및 공동연구가 보편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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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사회과학

사회과학인간이 이루어놓은 단체, 구성 모든 것들과 사회, 제도 등등을 과학적 방법론 등을 사용해 기술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에서처럼 모델을 만들어서 사회를 설명하거나 예측하기도 한다.[11] 인간이 이룩한 것을 연구하는 측면에서는 인문학과 같으나 인문학과 구별하자면, 인문학이 인간세계의 현상에 대한 규범적 성찰에 무게를 두는 반면, 사회과학은 인간세계의 현상을 가능한 한 가치중립적인 관점에서 분석한다.[12] 물론 이것이 완벽하지는 않다. 심지어 자연과학이라 할지라도 그럴 정도. 또한 사회과학은 인간사회를 연구하기 때문에 물질계를 연구하는 자연과학과 달리 잘 통제된 실험이 어렵고, 주로 관찰을 기반으로 한 통계연구/사례연구/참여관찰로서 이론을 실증한다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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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개념

5. 교과로서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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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록

"자연은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13]
아이작 뉴턴
"과학적 발견 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지만 과학의 실천 과정은 도덕적 행위이다."
브로노프스키
"현실에 비하면 우리의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초보적이고 유치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이다."[1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알리는 가장 신나는 표현은 "유레카!(찾았다!)"가 아니라 "그거 재미있네"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인생의 가장 진실된 조언자는 과학이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과학은 시로부터 탄생했다. 시대가 변하면 과학과 시는 더 높은 수준에서 친구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15]
과학은 훈련되고 조직화된 상식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토마스 헨리 헉슬리
과학에 전념하려는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내가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첫째,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심있는 과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이 조건에 대해 나는 감격 없이 말할 수 없이, 점진적으로, 점진적으로, 또 점진적으로, 너의 공부의 가장 시초부터 지식을 축적함에 있어서 엄격히 점진적으로 할 것을 훈련하라. 네가 과학의 정상에 오르려고 하기에 앞서 과학의 기초를 배우라. 둘째는 겸손이다. 네가 벌써 다 안다고 결코 생각지 말라. 네가 아무리 큰 칭찬을 받을지라도 항상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할 용기를 가져라. -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셋째로 정열이다. 과학은 한 사람의 전 생애를 요구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약 두 개의 인생을 가졌다 해도 충분하지 않다. 과학은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완전한 충성을 요구한다. 너의 공부란 너의 연구에 항상 정열이 있어야 한다.
이반 파블로프
집이 돌로 세워지듯이 과학은 사실로 세워진다. 그러나, 돌무더기가 집이 아니듯이 사실의 집적이 과학은 아니다.
앙리 푸앵카레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예술과 진정한 과학의 요람 앞에 서 있는 기본적인 감정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실의 정확하고 부분적인 분석으로 정신을 훈련시켜가는 현재 과학은, 건전한 시민 정신을 증진시키기에 특히 알맞은 교육이다.
K.피어슨(영국의 과학자)
과학은 열광이나 미신의 독에 대한 훌륭한 해독제이다.
애덤 스미스
과학의 가치와 예술의 가치는 만인의 이익에 대한 사욕 없는 봉사에 있다.
존 러스킨
실험실에 있어서의 위대한 과학자의 생활은 사물에 대한, 주위에 대한 집요한 투쟁이다.
마리 퀴리
관찰은 수동적 과학이요, 실험은 능동적 과학이다.
C.베르나르(프랑스의 생리학자)
자연 철학은 미신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신의 말씀 다음 가는 확실한 약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7.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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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각종 오해와 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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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기타

9.1. 과학 드립

파일:sciencebit.jpg
브레이킹 배드제시 핑크맨
각 분야에서 어떤 현상이 계속 반복된 나머지 규칙이나 법칙으로 불릴 정도에 이르면 "같은 패턴이 쌓이고 쌓여 과학 이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일명 "××는 과학"이라고 비꼬는 드립. 또는 실험 연구 대상같은 미개한 존재라 비꼬는 의미로도 쓰인다. 스포츠계에서 아스날 FC 팬들이 과학 유머를 만든 게 시초. 유행 전에도 DTD 등에 알음알음 쓰이기는 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같은 팀에 야스오가 있으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의미에서 "야필패는 과학"이라고 쓰이기도 한다.

또한 유명인에 대한 부정적인 논란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본인들은 원래부터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행동하며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터무니 없이 특정 인물의 생김새를 논란과 연결지으며 비난하는 것이다.[54]

자동차 분야에서는 흰색 K5가 난폭운전으로 유명해 과학 5호기로 불린다. 카니발 또한 K5 못지않게 악명이 높아 과니발[55]로 불리고 있다.[56] KG모빌리티는 티볼리가 떠오르는 과학이며 액티언 스포츠, 코란도 스포츠 렉스턴 스포츠는 구난차로 유명하다. 영국은 코르사[57], 미국과 일본에선 프리우스가 거의 과학에 가까운 밈으로 유명하다.[58] 또한 전세계 공통적으로 3시리즈가 과학으로 통한다# #[59]

바이크에서는 각종 모타드[60] 바이크, SYM 크루심[61], 혼다 PCX[62]가 과학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BMW R1250GS[63]혼다 골드윙[64]도 과학으로 불린다.
물론 해당 차량의 오너들을 싸잡아서 과학취급 하면 안된다.[65]

2020년대 들어 MBTI가 국내에서 밈으로 자리잡으면서 MBTI가 서로 반대인 사람들끼리(예를 들어 INTP-ESFJ, ESTP-INFJ 등) 인연이 이어졌을 때 "MBTI는 과학"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기아 K5에서 따와서 군대에선 K2소총을 과학 2호기 소총, K5권총을 과학 5호기자동차와 동일별칭 권총으로도 부른다.

10. 창작물에서

판타지 물의 경우 마법이나 같은 초자연적인 힘과 대립하거나 그런 초자연적인 힘과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예 순수하게 과학만을 중심 소재로 다룬 장르를 SF라고 한다. 가끔 유사과학이나 초능력을 과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게 되어 너무 만능으로 묘사되거나, 특정국가가 모든 과학 분야에서 최고로 묘사되거나, 작가의 잘못된 지식으로 엉뚱한 것들이 과학으로 포장되어서 전공자들이 뒷목잡는 사태가 발생한다.

재밌게도 초능력자와 괴물들이 공존하는 SCP 재단 세계관에는 프로메테우스 연구소나 GOC 등이 과학과 접목하여[66] 마법을 사용하기도 하며 2060년을 배경으로 마법이 모두 과학으로 해명되는 세계관도 있다.
[1] 대한민국 초·중등교육 과학 교과에서 이런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2] 이렇게 분리되고 남은 나머지가 바로 인문학이다.[3] 넓은 범위로는 형식과학, 사회과학, 응용과학도 포함된다. 심지어 언어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까지 포함시키는 시도도 있다.[4] 물론 상대성 이론은 이 법칙들이 속력이라는 변수에 대해 종속적임을 밝혀냈기에 의미는 있다.[5] 출처: 인물과학사 2 세계의 과학자들. 저자 박성래.[6] 「哲学」の訳語考, 遠藤智夫, 1994[7]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라인업이 유명한데, 그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이 과학적 논증과 관련이 깊다.[8] 유불도 철학도 기(기운), 제행무상, 도(사상)처럼 자연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긴 했지만, 이는 자연의 추상적인 성질에 근거해 옳은 행실의 당위성을 유도하기 위한 역할의 개념들이었을 뿐 자연에 대한 객관적 탐구를 위해 만들어진 개념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 개념들로 인간의 심리와 올바른 행동, 군주와 관리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없는 반면, 자연 그 자체를 설명하고자 하는 관심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부차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과학자라기 보다는 사상가에 가까웠다.[9] 현대의 3대 종교를 낳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신의 모습과 의도, 역사, 위대함과 속성에 대해 논의했고 세상의 근원을 탐구했지만 그건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계시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예언가라 부를 수는 있어도 과학자라고 보기는 어렵다.[10] 그러나 일반 사회에서는 이런 지적과는 별개로 전술한 분류 방식이 여전히 통용된다.[11] 사회과학 중에서 모델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학문이 경제학이다.[12] 무엇을 인문학으로 봐야 하고, 사회과학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견해가 엇갈리기 때문에 이 주장이 늘상 들어맞지 못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법학과 역사학.[13] 이는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증명이 가능한 표현이다. 향수의 예시를 들자면, 향수의 병을 열었을때 냄새가 퍼지는 이유는 아무 변수가 없다면 입자들이 병 안에 가만히 있는것보다는 넓은 공간으로 퍼지는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다른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변수를 가정하면 설명이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현실과도 멀어진다.[14] 귀납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방법의 수단으로써 당당히 채택되는 이유이다. 이것말고는 현상의 진리를 파악할 별다른 논리모델 자체가 없기때문이다.[15]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명한 괴테는 여러 자연과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서 <화강암 연구 Über den Granit>를 비롯한 다수의 지질학, 식물학 논문을 작성하기도 했다.[16] 근대 이전 아리스토텔레스 패러다임의 목적론적 자연관에서는 이 역시 중요한 주제였으나 뉴턴 이후 철학과 과학이 완전히 분리되면서 더이상 과학계는 자연현상에서 목적을 찾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17] 이는 결국 어떻게 탄생했는지 묻는 질문인 것이다.[18] 수학은 형식과학에 속한다.[19] 이와 관련한 이론이 천동설의 핵심 개념인 주전원이다. 주전원의 경우 잘만 설정하면 천체가 미키마우스 형태로 움직인다고 가정해도 성립한다.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접근하면 어떤 형태든 끼워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전원은 실제하지 않으며, 수학적이지만 과학적이지 않은 개념의 대표적인 사례다.[20] 물론 순수과학의 세계로 들어가면 과학자들이 "믿고",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항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대표적인 것이 첫번째로 '힘', '에너지', '중력', '시공간' 등 가장 기본적인 전제에 해당하는 개념 및 그 성질들이다. 이 개념들은 원자처럼 존재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물론 중력 양자화 가설처럼 이런 개념들을 실체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도 존재하나 아직 성공적으로 입증하지는 못했다.) 이론의 전제로 기능하면서 계산의 상수 및 변수로 작동하여 수많은 물질 현상에 대해 성공적인 해석과 예측을 가능하게 하므로 존재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두번째는 실험과 관찰에 근거한 가정 명제들이다. 예컨대 "빛이 우주에서 가장 빠른 물질이다"라는 명제는 실험적으로 확증되지 않았으며 왜 그런지 이유도 알 수 없지만 통계적으로 수많은 도전을 이겨내고 그 반례를 찾을 수 없기에 특수상대성 이론의 전제로서 유효하게 작동한다. 이들은 계산에 불필요한 요인은 최소화하면서 이론과 가설을 위배하지 않고 현재까지 관찰된 모든 물리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공리처럼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것이다.[21] 더 자세한 내용은 통계학의 기초를 배우면 정확히 배우게 될 것이다.[22] 순수물리학자들이 가속기니 중력파 검출이니 우주 방사선이니 하는 것에 매달리는 이유가 다 이런 맥락이다.[23] 여기에는 고도의 수학적인 기술이 숨겨져 있다. 대칭성, 이를 양자역학 영역에서 기술하는 방식, 그로부터 요구(혹은 유도)되는 양자화 과정이 수반되며, 그 결과를 기본 입자들과 그 상호작용들로 간편하게 해석하고 기술하는 것이다. 일례로 파인만 다이어그램은 언듯 보기에 입자가 상호작용하는 수식을 간편하게 도식화한 것이지만 양자 전기역학을 조금 더 파고 들어가면 눈으로 관찰할 수 없는 입자들의 운동 패턴에 대해 물리학자들의 검증하고 합의한 규칙들을 총망라해 집대성한 결과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대다수 입자의 전자기적 운동과 그 운동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기에 도식이 실제 현상과 100% 일치하리라는 보장은 없어도 그 유용성 하에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것이 파인만 다이어그램이 양자장의 실제적인 작용 등 입자 운동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이론은 아니지만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학자는 아무도 없는 이유이다. 또한 이는 과학 이론이란 진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나 현실과의 피상적인 일치함을 몇 가지 실험만으로 단순하게 결정 짓는 것이 아닌, 유용성, 예측가능성, 더 나아가 전체 패러다임 및 현실과 합치하는 정도에 입각해 신뢰도가 결정된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24] 중력과 전자기력 등 현대과학의 근본적 전제가 되는 개념들의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신학이나 시뮬레이션 우주론 등 과학의 논의 대상에서 벗어난 실험적 검증 불가의 주제로 변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까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새로운 발견과 예측까지 가능하게끔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난다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사실 현대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중력 역시도 뉴턴이 자신이 만든 패러다임 내에서 물질 간 인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요인(힘)이자 계산 상수로 놓아서 문제가 없는 것이지 뉴턴 이전 아리스토텔레스 패러다임 내에서는 해결해야 할 자연의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이처럼 무엇이 문제가 되고 그것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냐의 주제조차도 패러다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25] 유명한 예로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이 휘어진 곡면에서는 더 이상 참이지 않다는 것[26] 대표적인 예로 ZFC 공리계에서 선택 공리는 이걸 참으로 놓든 거짓이라고 놓든 이 공리계의 다른 공리들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즉, 선택 공리를 제외한 ZFC의 다른 공리들만 가지고 공리 체계를 꾸리면 선택 공리는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연속체 가설을 들 수도 있다.[27] 이론의 신뢰성과 권위를 논하는 과정에서 '동료평가'와 '검증된 학회의 공인'이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자들이라고 다 과학적 방법에 잘 기반한 좋은 이론만 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실험 설계와 수행을 하고 이론ㆍ논문을 작성할 때 충분한 근거와 논리가 없고 문제가 많은 실험을 진행한 뒤에 비약적인 결론을 내는 사례도 매우 많다. 이런 신중하지 못한 과학자들 탓에 "이론은 이론일 뿐 실제와 다르다"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일 것이다.[28] 반면 실무란 대략 "현장의 목소리, 정말로 도움이 되는 정보" 등을 의미하곤 한다.[29] 역으로 말하면 이 방법을 고안하는 게 물리학의 궁극적 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게 모든 것의 이론이다. 사실 계산 대상을 물질이라 규정지을 수 있는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고 이는 과학철학과도 연관된 문제라 아직 해결이 요원한 부분이다.[30] 정밀하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31] 사실 어떤 실험이든 이런 식으로 오차(error) 혹은 불확정도(uncertainty)를 적어줘야 한다. 만약 어떤 결과를 봤는데, 오차가 없으면 적어도 현재 과학수준에서 입각해 생각했을 때 그 결과를 사기라고 단언해도 좋다. 물론 아주 극히 미세한 확률로 오차가 전혀 없을 수도 있기야 하지만 그거야말로 이론상의 이야기이다.[32] 숫자라는 추상기호는 개념적으로 경계가 명확하게 존재하지만 현실의 물질은 그 경계를 구분짓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경계의 기준을 어디에 잡든 아주 미세한 오차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이론마다 이 경계에 대한 기준이 상이할 수 있고, 따라서 어떤 이론이냐에 따라 오차의 정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물론 어떤 이론을 선택하냐는 그 학자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에 이 기준이 달라진다고 그 이론의 신뢰성이 낮다는 것도 아니다. 결국 과학 이론이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현상을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로서의 체계이기 때문이다.[33]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작은 물질 입자.[34] 모든 이론은 유효 범위를 가진다. 예를 들어 뉴턴 역학은 지구 내에서만 잘 작동하고,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기술되는 양자역학 체계는 아광속 영역 안에서만 잘 작동한다. 유효 범위가 넓을수록 좋은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자연과학 연구 현장에서는 필요하겠지만 공학 현장에서는 같은 현상이라도 유효 범위가 훨씬 더 넓은 이론을 써서 기술하면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다루는 데 드는 비용이 커진다. 가령 기계공학과 토목공학에서 양자역학이 잘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뉴턴역학으로 해도 결과는 똑같은데 양자역학으로 계산하면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자공학이나 우주공학에서는 뉴턴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많기 때문에 양자역학이 이용된다. 이렇듯 패러다임을 선택하는 기준은 해당 현상이 두 체계 모두의 유효범위 안에 들어온다면 어디까지나 실용성에 의해 결정된다.[35] 예를 들어 CERN과 협업하는 연구실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이에 해당한다.[36] 이건 크게는 아예 학회 수준의 차원에서 연구의 트렌드를 바꿀 수도 있을 정도로 큰 문제다.[37] #예시1 #예시2. 물론 이것에 대해서 현대의학계가 뭐라고 평가할지는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움직임 자체는 나타나고 있다.[38] 이들은 권위주의적인 대가족제를 유지하고,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을 사회적 상황에서 숨기려 하기 때문에 기존 유럽계 백인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질환 치료법을 고스란히 적용할 경우 그 예후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39] 반대로 말하면, 어떤 패러다임이 온 우주의 모든 물리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그 이론은 인류 문명이 사라질 때까지 무너지지 않는다.[40] 현대과학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CERN에 상주하는 과학자 수만 세어봐도 이 고정관념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41] 그래서 비판받는 게 대표적으로 초끈 이론이다. 아주 난해해서 몇몇 소수의 과학자가 주도하는 영역인데 검증할 방법도 없고 이 이론 자체가 기존의 현상을 설명하기만 할 뿐 상대성 이론과는 다르게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데 기여하지도 못하니 최근에는 주류학계에 그저 수학적 설정놀음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이 역시 과학에 동료평가가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42]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역시 이론물리학에 기여한 영향력과 별개로 아인슈타인 본인이 입증한 게 아니라 그것이 발표된 이후 몇십년 동안이나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실험적인 검증이 이루어지고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아인슈타인이 박해받는 입장이었다면 특수상대성 이론은 검증 전에 유명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43] 전통적으로 유럽의 기독교 성직자들은 상당한 수준의 과학 지식을 보유하고, 이를 다른 성직자나 평신도들에게 전수해왔기에, 전근대 시대에는 교황 실베스테르 2세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같이 과학자를 겸한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그래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살던 시절의 성직자들은 그 자체로 신학자를 겸하는 과학자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44]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몰락한 원인은 천동설을 부인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30년 전쟁으로 인해 전 유럽이 가톨릭이냐 개신교냐로 갈려 싸우는 와중에, 개신교인들에 대해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이거나 되려 가톨릭 교회 내의 높으신 분들을 까는 등의 친 개신교적인 입장을 보여서 교황청의 분노를 산 것이다.[45] 조르다노 브루노라는 유명한 지동설 옹호자가 탄압받은 사례는 있다. 다만 이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 사상가였다. 그가 사형을 당한 것도 지동설 자체보다는 당시 이단으로 간주했던 다른 종교적 신념이 문제였다.[46]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그 유명한 피카소다.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커리어에서나 사생활에서나 사후 명성에서나 그야말로 인생의 승리자 그 자체인 인생을 살았다.[47] 상기 서술된 갈릴레이 역시 당대에 비판받았던 건 본인의 괴팍하고 조급한 성격으로 인한 자업자득이었던 게 더 크다. 워낙 불필요한 논쟁과 싸움을 밥먹듯이 하고 다닌 탓에 갈릴레이가 재판에 회부된다고 하자 그를 고발하겠다는 학자가 우르르 나올 정도로 평소 적이 많았다. 또 의외로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증명하는 자리에서 충분한 근거를 마련하지 못했다. 지동설의 근거로 조석 현상을 들고왔으나 완전히 틀린 설명을 하는 등 당시 토론 과정을 살펴보면 당대 학회와 카톨릭 교회 입장에서도 지동설을 받아들일 충분한 주장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갈릴레이의 이론이 제대로 인정받은 것은 그의 사후 케플러와 뉴턴의 연구로 지동설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갈릴레이 생전에 그의 지동설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도 그가 원래부터 박해받았냐 묻는다면 절대 아닌 것이 이미 갈릴레이는 당시 메디치 가문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별자리 발견에 기여한 공로로 연줄을 잘 타서 충분히 대접받고 인정받는 과학자였다.[48] 그래서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연구해보라고 할 때는 연구윤리 상, 실제로 사람을 패라고 할 수는 없으니(...), 대신 참가자들에게 얄미운 기분이 들 때마다 다른 참가자가 먹을 음식에 핫소스를 치라는 식으로 대체하는 형편이다.[49] 사실 이 지적은, 과학자들과 공학자들 역시 최소한의 인문학적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50] 그런데 그보다 라그랑주 함수를 이용한 증명법이 더 보편적인 것 같기도.[51] 참고로 고대 그리스 시절 미성년자들이 배워야 했던 교양과목인 리버럴 아츠나 동아시아에서 선비들의 필수 과목이라 할 수 있는 육예에서 수학은 필수적으로 들어갔다. 달리 말하면 아주 오랜 옛시절부터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논리적 사고 배양이나 창의력 향상같은 두뇌 개발에 이만한 학문이 없기 때문이다.[52] 초등학교 한정으로는 사회 과목도 많은 학생들이 기피하는데, 상기한 이유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사회는 중학교 이후부터 시사나 지리, 역사 쪽에 흥미를 가지는 일명 지리덕후, 역덕후 학생들이 꽤 있어서 좋아하는 학생들이 어느 정도 있기도 하다.[53] 일본 발음은 りか. 우리가 알고 있는 '이학/공학/의료 계열'이라는 의미의 이과는 理系라고 쓰고 りけい라고 읽는다.[54] 이는 사후소급가설의 오류에 해당한다. 더 쉬운 용어를 쓰자면 자기합리화다.[55] 과학 + 카니발의 합성어. K5 운전자가 결혼을 하면 카니발로 갈아탄다는 유머가 있을 정도다.[56] 그 외 과학이라 불리는 차는 니로, 과학 3호기 K3, 과학 7호기 K7, 스포티지가 있다. 모두 기아에서 만든 자동차다. 기아와 같은 그룹인 현대자동차도 과학으로 불리는 차량이 있다. 스타렉스는 법타렉스와 구난차로 유명하여 후속 모델인 스타리아는 법타리아로 불릴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포터포터르기니 무얼실을라고로 불리고 있다. 그 외 아스, 아N, 벨N, 젠쿱, G70 3.3 등이 있다. 1990년 중후반~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구아방이나 투스카니, 티뷰론이 현재의 과학 드립과 비슷한 인식을 가진 자동차였다.[57]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많은 사회초년생들이 생애 첫 차로 많이 구매하기 때문에 온갖 사건사고에 많이 휘말려 악명이 높다.[58] 미국에서는 교통흐름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차가 프리우스라고 할 정도로 이미지가 매우 안좋으며, 일본에선 今日のプリウス(오늘의 프리우스) 및 プリウスミサイル(프리우스 미사일)이라는 인터넷 유행어가 있을 정도다.[59] 스포츠 세단 자체가 스포티한 디자인, 스포츠카 대비 저렴한 가격, 일반 세단 보다 높은 성능으로 운전자들이 과속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양아치카푸어의 선택을 많이 받는다.[60] 공도에서 난폭운전, 윌리를 정말 많이 한다. 바이크 대표 카페인 바이크 튜닝 매니아에서도 크게 논란이 되었던 장르이다.[61] 보통 일수명함 뿌리고 다닌다[62] 딸배 특히 흰색이 많다. 자동차로 치면 흰색 K5와 같다고 보면 된다.[63] 신호 위반, 동차선 추월은 물론이고, 윌리도 한다고..[64] 운전자들 평균 연령대가 높은데, 과거에 운전하던 습관이 남아있는듯 하다.[65] 과학으로 불리는 차량 대다수가 판매량이 많다. 판매량이 많은 차량은 당연히 더 눈에 띌수 밖에 없고, 해당 차량 구매층이 다양하고 제각각 운전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과학적인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66] 묘사상 막대기로 마법진 그리는 것보다 노트북으로 도형 복사해서 그리는 것이나 자체적인 수학 공식을 통해서 구현해내어 만드는 것이 더 빠르고 강력하다고. 그리고 나름의 법칙들로 과학으로 밝혀내어 무기로 사용하는 중. 핸드폰과 노트북을 들고 마법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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