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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차이콥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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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표트르 차이콥스키
Пётр Чайковский | Pyotr Tchaikovsky
파일:표트르 차이콥스키의 모습.gif
본명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Пётр Ильи́ч Чайко́вский[1]
Pyotr Ilyich Tchaikovsky
출생 1840년 5월 7일
러시아 제국 뱟카현 사라풀군 봇킨스크
(現 러시아 볼가 연방관구 우드무르티야 공화국 봇킨스크)
사망 1893년 11월 6일 (향년 53세)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적
[[러시아 제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작곡가
서명 파일:표트르 차이콥스키 서명.svg
묘소 상트페테르부르크 티흐빈 묘지
학력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1862~1865)
사조 후기 낭만주의
활동 1859년1893년
신체 188cm
종교 러시아 정교회
부모 아버지 일리야 차이콥스키 (1795-1880)
어머니 알렉산드라 아시예르 (1813-1854)

1. 개요2. 이름 표기3. 생애
3.1. 초기3.2. 중기3.3. 말년
3.3.1. 사망에 대한 논란
4. 능력과 평가5. 차이콥스키의 주요 작품
5.1. 교향곡5.2. 관현악5.3. 협주곡5.4. 실내악5.5. 피아노5.6. 발레5.7. 오페라 및 극부수음악5.8. 합창5.9. 가곡
6. 기타7.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러시아작곡가이며, '러시아의 위대한 연기자'이자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언제나 꿈꿔왔지만 계획에 없던 음악가로서의 인생은, 갖은 역경과 시련을 거쳐 이제는 그에게 불멸명성을 남겼다.

서구음악의 형식과 기술에 러시아 민족음악의 서정성을 가미하여 화려한 리듬과 동양적인 선율을 살린 작품들을 남겼다.

2. 이름 표기

러시아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지만, 차이콥스키는 2005년 러시아어 표기법 제정 이전부터 그 이름이 알려졌던 인물이기 때문에 언중 용례상에서는 여전히 '차이코프스키'로 지칭되는 경우가 많다. '차이콥스키(차이코프스키)'라는 성씨는 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로 '갈매기'를 의미하는 '차이카(чайка)'가 어원이며 차이콥스키의 부계는 자포리자 코자키 혈통이었다. 참고로 러시아의 근현대 작곡가인 보리스 차이콥스키(Борис Александрович Чайковский, 1925년 ~ 1996년)와는 가족관계가 아니다.

강세에 따른 러시아어 발음은 [pʲɵtr‿ɨˈlʲjitɕ tɕɪjˈkofskʲɪj](표트르 일리이치 치이코프스키이)이다. 이는 차이콥스키(Чайко́вский)의 철자 중 가운데 알파벳 о에 강세가 있어 [o](오)로 발음하고 대신 앞 а의 발음이 [ɪ](이)로 약화되는 현상이 반영된 것이다. 러시아어에서 а를 и에 가깝게 발음하는 경우는 연자음인 ч, щ 뒤에 위치하고 강세가 없는 경우에만 한정된다. 대표적인 예로 '시계'를 뜻하는 часы́는 ы에 강세가 있기 때문에 [t͡ɕɪˈsɨ]로 발음한다.

이름의 로마자 표기는 영어식인 Pyotr Ilyich Tchaikovsky가 주로 쓰인다. 굳이 Ch가 아닌 Tch라는 다중문자를 쓰는 이유는 본인이 독일어·프랑스어식으로 Tsch가 포함된 P. Tschaïkowsky/Pierre Tschaïkowsky와 같이 서명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차갑석(車岬晳)이라는 음역한 이름도 있었으며 해방 직후까지 이 음역한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3. 생애

3.1. 초기

파일:external/www.musicwithease.com/tchaikovsky-1874.jpg
젊은 시절의 차이콥스키

러시아의 우랄 지방 봇킨스크에서 출생했다. 차이콥스키의 부계는 우크라이나계로 증조부 표도르 차이카(Fyodor Chaika)가 표트르 대제 때 러시아군 장교로 폴타바 전투에 참전하고 러시아에 정착하였다. 할아버지 표트르 표도르비치 차이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의료 훈련, 군의보조원으로 일했고, 아버지 일리야는 러시아 육군 중령, 야금학기술자연구소 산하 과학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아버지 일리야의 첫 부인은 딸 지나이다를 남기고 젊었을 때 죽어 1833년 육군 중령으로 있을 때 재혼하였다. 어머니인 알렉산드리아는 프랑스인독일인의 피가 섞인 러시아 혼혈인 여성으로, 외할아버지 아시에르(Assier)는 독일계 프랑스인이었다.

아버지 일리야 페트로비치(1795 - 1880)는 정부의 탄광 공학자이자 광산 감독관으로 우랄 지방 곳곳의 광산을 전전했고, 그 때문에 가족들도 아버지를 따라서 이곳 저곳으로 이사하면서 살았다. 프랑스인 가정교사의 교육으로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는 차이콥스키가 별로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아버지가 법률가로 키우려고 했다.

1850년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법률 학교에 입학하여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법률학교 내 합창단에 들어가서 음악 공부도 이어 나갔다.

1859년에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법무성의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끊지 못하던 중 1860년안톤 루빈시테인(Антон Рубинштейн, 1829년 ~ 1894년)과 니콜라이 루빈시테인(Николай Рубинштейн, 1835년 ~ 1881년) 형제가 주재한 음악교실에 입학했고, 그것이 1862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으로 승격되어 1기 학생이 됐다. 초반에는 안톤 루빈시테인과 절친한 사이였지만 음악적 노선의 갈등으로 결국 안톤 루빈시테인과 불화를 일으킨다. 루빈시테인 형제는 서유럽의 음악을 중시하고 소위 러시아 국민악파라 불리는 "러시아 5인조"의 음악을 수준이 낮다고 절하했다. 그런데 차이콥스키가 이 "5인조"의 음악적 성향에 접근한 작품인 "폭풍우"라는 관현악곡을 작곡하자 루빈슈타인이 격노했으며, 이것이 불화의 요인이 되었다.

결국 차이콥스키는 안톤 루빈시테인의 동생인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이 설립한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가 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난다. 차이콥스키는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 밀리 발라키레프의 소개로 국민악파인 "러시아 5인조"와 친분을 나누지만 차이콥스키의 음악적 성향이 리스트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서유럽 쪽으로 기울면서, 자신과 코드가 맞지 않았던 국민악파와 결별하게 된다.

3.2. 중기

1874년에는 차이콥스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단조"를 작곡했다. 당초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에게 연주를 부탁했으나 니콜라이는 이 작품이 난해하고 연주 불가능한 곡이라며 거절했다. 결국 벤자민 존슨 랭의 지휘로 한스 폰 뷜로가 보스턴(당시 보스턴 뮤직홀, 현 보스턴 오르페움 극장)에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초연하였다. 관객의 반응은 좋았으나 비평가들의 평은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의 평가와 썩 다르지 않았다.

이후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서 1878년까지 근무하며 작곡활동을 병행하다가 러시아 철도왕의 미망인 나데즈다 폰 메크(Надежда Фон Мекк, 1831년 ~ 1894년) 부인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교수직을 사임하고 작곡에만 전념하게 된다. 폰 메크 부인은 약 15년동안 차이콥스키를 후원해 주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실제로 본 것은 오직 2~3번뿐이라고 한다.

이는 폰 메크 부인이 차이콥스키를 후원하기로 했을 때 서로 한 약속 때문이었다. 또한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과 약 15년간(1877-1890) 1,20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 받으며 플라토닉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가 1890년에 폰 메크 부인은 파산을 이유로 더 이상 차이콥스키를 후원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일설에 따르면 폰 메크 부인의 재정적 불안은 작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며, 실제로는 차이콥스키와의 관계를 중단하라는 폰 메크 부인의 가족들의 압박과 폰 메크 부인이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후원을 중단한 결정적 이유였다고 한다. 폰 메크 부인의 일방적인 결별 선언에 차이콥스키는 극심한 괴로움에 휩싸이게 되었고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차이콥스키가 아무리 편지를 보내도 폰 메크 부인은 더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았으니 사실상 둘의 관계는 끝난 것이다. 이 때문에 차이콥스키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폰 메크 부인에 대해 강한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임종 직전에도 폰 메크 부인의 이름을 부르며 '저주받을 여자'라고 외쳤다고 한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과의 연애나 결혼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그는 9살이나 어리고 음악원 제자였던 안토니나 밀류코바의 열성적인 구애에 시달리다가 밀류코바가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까지 한 탓에 결국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결혼인 탓에 결혼 생활은 행복할 리가 없었고, 차이콥스키가 석달을 못 버티고 도망쳐 버리면서 결혼생활은 파탄으로 끝났다.

말이 좋아서 파탄이지 관계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난 것도 아니었다. 차이콥스키는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이혼할 것을 주장하면서도, 아내의 성관계 요구에는 부들부들 떨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류코바는 결혼을 지속할 것을 원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혼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아내가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폭로할 것이라고 두려워한 차이콥스키가 이혼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이 복잡한 결혼관계는 차이콥스키가 숨지면서 끝났다. 이 결혼 사건은 그의 음악의 분위기까지 바꿀 정도로 중대한 사건이었다. 결국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 그는 신경쇠약으로 이어진 후 유럽으로 도피성 요양여행을 떠났고, 이탈리아에 이르러서야 겨우 심신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 때 작곡한 곡이 현악 6중주 op.70 '피렌체의 추억'인데, 매우 격정적이고 우울한 곡이다. 제목을 보면 피렌체를 가서 본 아름다운 것을 떠올리고 작곡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반대로 복잡한 결혼을 뒤로 하고 이탈리아에 도피성 여행을 간 차이콥스키의 심란하고 복잡한 마음이 표현된 곡이다. 켄 러셀의 <뮤직 러버스>나 <레토> 감독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이 문제 많았던 결혼 생활을 다루는 영화다. [2]

3.3. 말년

1878년에 귀국한 차이콥스키는 명작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고 1888년에는 발레음악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완성했다. 이 때에 이르러 차이콥스키는 세계적인 음악가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1890년 그간 차이콥스키를 후원하던 폰 메크 부인이 갑자기 후원을 중단하면서 차이콥스키는 후원이 끊긴 후에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폰 메크 부인과의 교류가 끊기게 되면서 큰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차이콥스키는 미국 여행후, 오페라 "욜란타"와 발레음악 "호두까기 인형"을 작곡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해가 된 1893년,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작품 중 최후 걸작이 된 "교향곡 제6번 비창"을 작곡했다. 그리고 그 해 11월 6일, 6번 교향곡 초연(1893.10.28)을 지휘한 9일 후에 의문의 죽음으로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3.1. 사망에 대한 논란

차이콥스키의 사망 원인은 당대나 지금이나 세계사의 논란거리로 남아있었다. 일단 사망했을 당시에는 공식적으로는 끓이지 않은 물을 들이켜서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그때에도 무슨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비난이 적지 않았다. 당시 콜레라는 불치병이나 다름없었기에 만일 이것으로 사망했다면 진즉 격리되었을 테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무려 6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으며 러시아 모스크바 정교회 주교를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이 장례식 미사까지 했고 음악 동료, 친구들, 지인들, 친척들도 모두 참석했다.

그래서 지인들은 콜레라로 사망했다는 당국의 발표에 대해서 장례식에서 무척 기분 나빠 했고 "이래 놓고도 콜레라라고 허풍을 치네요?"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더불어 6만 명 이상 참가한 장례식이 끝나고 콜레라가 대규모로 유행했다는 기록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꽤 부유하게 살았으며, 활동 영역도 부유층, 귀족층이었다. 러시아에 티푸스와 콜레라 등의 질병이 만연해 있긴 했지만, 깨끗한 물을 마시는 상류층들은 도시 하층민에 비해 감염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심지어 장례식에 모인 지인이나 친지 중 그의 유해에 키스를 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직접 접촉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데 그들 중 아무도 콜레라에 걸린 사람은 없어서 지인들이나 당시 친척들도 어이없어 했다. 러시아 5인조 중의 한 명이자 그의 절친한 지인[3]이었고 군의관 경력도 있었던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역시 이 일에 대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비꼬았다 한다.

이에 대해서 1979년 소련에서 영국으로 유학을 온 음악학자가 자신이 구전으로 들은 가설을 제시했는데, 차이콥스키가 당대의 실권자였던 스텐보크-페르머 공작의[4] 조카와 동성애 관계를 맺었고, 이것을 알아차린 공작이 황제에게 차이콥스키의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검찰 부총장인 니콜라이 야코비에게 고소장을 전달했는데,[5] 이 고소장을 넘겨 받은 야코비가 차이콥스키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황제에게 해당 사안을 보고하는 대신 동창들과 소규모 비밀 명예 재판을 열었고, 이 재판에서 차이콥스키에게 음독 자살을 종용했다는 설이다. [6][7]

증거도 여럿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사망하기 전 복부 통증과 쌀뜨물 같은 설사를 호소했는데, 이는 콜레라의 증상인 동시에 비소 중독 증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일부러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을 쉽게 은폐하고자 많은 독극물 중에 비소를 골랐다는 것.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가설이 제기된 1979년소련 문화부에서 부검을 실시한 결과 그의 몸에서 비소가 검출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아직 도시전설에 머물고 있다.

4. 능력과 평가

The most popular Russian composer of all time. His music has always had great appeal for the general public in virtue of its tuneful, open-hearted melodies, impressive harmonies, and colourful, picturesque orchestration, all of which evoke a profound emotional response.
역대 가장 인기 있는 러시아 작곡가. 그의 음악은 항상 대중들에게 큰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심오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그것의 선율적이고 마음을 열어 주는 멜로디, 인상적인 하모니, 그리고 다채롭고 그림 같은 오케스트레이션 덕분이다.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러시아 음악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19세기 러시아 문화사를 논할 때, 문학에서의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 미술에서의 레핀과 더불어 음악에서의 차이콥스키는 반드시 거론된다.[8]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러시아 고전 음악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당대에 평가가 엇갈렸다. 서유럽에서는 그의 음악을 대중적이라고 평가절하했고, 러시아에서는 민족주의적인 경향과 거리가 있다고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은 듣는 이들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깊은 울림을 가진 것으로 오늘날에 클래식 애호가들의 깊은 사랑을 받는 작곡가가 되었다. 물론 듣기에 쉽다는 것이지 바이올린 파트가 어렵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발레곡들도 어려운 바이올린 솔로가 한두 개씩 들어 있는데 아직도 오케스트라 오디션에서 많이 연주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름다운 멜로디 작곡 능력은 후배 세대 작곡가인 프로코피예프가 제일 부러워했다고 한다.[9]

피아노, 바이올린의 연주기법에 있어서 당대 음악가들을 능가하는 진보를 이뤘는데 이 때문에 그의 피아노, 바이올린 협주곡들은 난해하고 음악형식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당대에 받았다.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예브게니 오네긴" 같은 오페라, "백조의 호수" 같은 발레음악 등의 무대음악부터 6곡의 교향곡, 다양한 표제음악적 성격의 교향시와 관현악곡들, 피아노 음악과 실내악곡 등에서 여러 걸작들을 남겼다.

차이콥스키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아름다운 멜로디에 있다. 세계 음악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3인인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을 제외하면 슈베르트, 쇼팽과 더불어 멜로디를 뽑아내는 능력 하나만큼은 본좌로 평가받는다. 물론 멜로디에만 치중한 나머지 다른 음악적 구조가 허술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교향곡, 피아노, 실내악, 협주곡 전 장르를 아울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들이 쉴새없이 흘러나오며 특히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사람의 머리속에서 어떻게 이런 천국같이 아름다운 멜로디가 나올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 정도. 정작 본인은 고독감과 깊은 우울감으로 평생을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부분.

한국에서의 차이콥스키의 높은 인기도 이런 점이 적게나마 작용했다고 보면 된다. 대중들도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비슷한 시대의 작곡가인 브람스의 경우, 의외로 낭만주의 낭만적 멜로디보다 음악의 견고한 짜임새와(특히 관현악곡) 오케스트레이션, 구조적 완성도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멜로디 자체의 대중성은 차이콥스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10] 슈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음악에 별 관심없는 사람이 슈만의 이름은 다 알아도 슈만의 음악은 기껏 알아봐야 트로이메라이 정도 밖에 안 된다. 오히려 슈만, 브람스같이 독일 고전주의를 계승한 낭만주의 거장들보다 폴란드의 쇼팽, 보헤미아의 드보르작이 멜로디에 있어서는 훨씬 더 대중적으로 다가오는 작곡가들이다. 어쩐지 죄다 동유럽이다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경우, 일반 대중들이 차이콥스키의 작품이란 건 모르면서도 한번쯤은 들어보고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굉장히 많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차이콥스키는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라흐마니노프 등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보이는 정서와 한국인들의 정서가 맞아 떨어져서라는 분석을 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피아노 협주곡 1번이나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6번 비창이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클래식 음악의 상위권에 늘 오르는 것을 보면, 나름 설득력이 있는 평이다.

그의 높은 예술적 위상은 대중음악 분야에서의 본좌인 마이클 잭슨이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로 차이콥스키를 뽑기도 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마이클 잭슨은 본인의 앨범을 발매하며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천 년 후에도 연주될 것이다. 나의 음악도 그렇기를 희망한다."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5. 차이콥스키의 주요 작품

▲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Nutcracker) 中 〈행진곡〉(March)

5.1. 교향곡

5.2. 관현악

5.3. 협주곡

5.4. 실내악

5.5. 피아노

5.6. 발레

5.7. 오페라 및 극부수음악

5.8. 합창

5.9. 가곡

6. 기타

7. 외부 링크


[1] 1918년 철자법 개혁 이전 러시아어 표기는 Петръ Ильичъ Чайковскій.[2] 후자는 안토니나 밀류코바 입장에서 다뤘다.[3] 림스키코르사코프는 1871년 아마추어에 불과했던 시절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로 임명되는 바람에 차이콥스키의 자문을 구해 3년 간 독학에 매진했다. 이 두 명은 그 이후로도 서로 존중하며 교류하던 사이였긴 하나, 차이콥스키가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전한 호의가 어느 정도 진심이었던 반면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차이콥스키에 대해 가졌던 태도는 묘한 열등감이었다고 해석된다.[4] 다만 해당 가문은 백작 가문이었을 뿐더러 그 자신도 황제의 신임을 받긴 했지만 귀족으로서의 실권자였다기보다는 명망 높은 군인에 가까웠기 때문에 해당 가설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5] 이 부분도 해당 가설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인데, 스텐보크-페르머 공작 자신이 황제에게 직접 알현하여 요청할 수 있는 입지가 높은 인물이었는데 왜 굳이 야코비를 통해서 고소장을 전달했냐는 것이다. 다만 후술한 대로 공작 자신도 유명한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명예를 더럽히고 싶지는 않았기에, 황제에게 찔러서 일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으로 넘겼을 수도 있다.[6] 정교회 국가였던 당시의 러시아 제국에서 동성애는 차이콥스키의 업적과 인지도 등을 감안한다 해도 서훈 취소와 경력 삭제를 포함한 공민권 박탈과 시베리아 유형(4–5년)의 중형을 선고받을 중죄였기 때문였다.(출처: #, 영문위키, 러문위키 러시아의 LGBT 항목.) 때문에 그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킬 우려와 더불어 동성애자로서 죽는다면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7] 다만, 위에 언급한 법률들은 니콜라이 2세의 치세에 들어서는 거의 사문화되어서 차이콥스키와 동시기에 활동한 극우 정치인 메쉬체르스키는 혁명 운동과 자유주의 운동을 비난하고 차르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써준 덕에 동성애자였음에도 차르의 총애를 받았고, 발레 뤼스를 이끈 댜길레프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대놓고 드러냈지만 별다른 처분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니콜라이의 측근 중 한 명인 외무 장관 람스도르프도 동성애자였다. 그렇지만, 어쨌건 법은 법이기 때문에 스텐보크 - 페르머 공작 같은 실력자가 동성애 문제를 진지하게 걸고 넘어지는 경우에는 귀족이어도 해를 입을 수 있었다.[8] 흥미롭게도 체호프 역시 당대 러시아 예술가들의 최고봉의 순위로 톨스토이, 차이콥스키, 레핀을 꼽은 바 있다. 본인 스스로는 98위쯤이나 할 것 같다고(...)[9] 반항적인 프로코피예프는 차이콥스키의 유산을 짐짓 깎아내리긴 했지만, 한편으론 멜로디를 무척 중시하는 작곡가였기에 내심 선망했을 수밖에 없다. 참고로 프로코피예프는 타악기적인 강철같은 피아니즘으로 유명한 20세기 작곡가라 작품이 어렵고 난해하기만 할 것 같은데, 피아노곡의 높은 난이도와는 별개로 동시대 작곡가들 중에서는 가장 멜로디가 유려하고 듣기 편한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그가 멜로디와 단순성을 중시하는 태도는 노년으로 갈수록 강해진다.[10] 실제로 브람스를 만났던 차이콥스키는 거장답지 않은 그의 소탈함과 인간미에 깊이 매료되었지만, 여전히 브람스의 음악에 대해서는 '선율미가 부족해서 러시아인인 나로서는 크게 이입하기 어렵다'고 일기에 적었다. 반면 같은 자리에서 본 그리그에 대해서는 '마음을 녹일 것만 같은 깊은 우수가 담겨 있으며... 우리 러시아 사람들 가슴에도 파고들어서 따뜻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극찬했다고 한다.[11] 이 작품 중 2악장 <왈츠>가 특히 유명하며, GTA 산 안드레아스의 미션중 성 마르코의 주점에서 포렐리 패밀리와 총격전을 벌일때 흘러나온다.# 1악장은 공포 게임 디 이블 위딘 2의 악당인 스테파노 발렌티니의 테마곡에도 일부 삽입되었다.[12] 여기서 수미상관이 두 번이나 사용되었는데, 1악장의 시작과 끝이 똑같으며, 1악장의 서주가 4악장 끝부분에 다시 나온다.[13] Festival Overture on the Danish National Anthem, Op. 15[14] Andante and Finale for Piano and Orchestra, Op.79가 2, 3악장으로 쓰일 예정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15] 6월 '뱃노래'와 10월 '가을의 노래'가 알려져 있다.[16] 죽기 1 년전 1892년 작품으로 체코의 음악출판업자의 요청으로 씌여진 소품이다.[17] The Snow Maiden 널리 알려진 러시아 동화를 바탕으로 한 극부수음악으로 프롤로그와 4막으로 구성됐는데 '눈의 요정'이라고도 한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같은 동화로 오페라를 작곡했다.[18] 대본을 차이콥스키가 직접 썼는데 잔 다르크를 다룬 프리드리히 실러의 작품 등 여러 작품을 참고했다고 한다.[19] 영어제목 The Enchantress, 상연시간이 약 3시간 20분으로 그의 11개의 오페라 중 가장 길다.[20] 위의 동영상이 이 곡의 제6곡 '헤루빔 성가'이다[21] 피아노,성악을 위한 가곡집.[22] 가사의 출처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등장인물, ‘미뇽(Mignon)’이 노래하는 애달픈 서정시다. 이 곡을 지을 당시 그는 아픈 사랑을 했는데, 여성 오페라 가수인 데지레 아르토와 사랑을 하고서도 이루어지지 못한 그는 괴테의 이 시에 강하게 공감하며 곡을 썼다. 그래서 가사에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오직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고독한 마음만이, 내 끝 모를 고통을 알 수 있네. 난 흐릿하게 먼 곳 만을 바라보고, 나를 알아주고 사랑한 이는 떠나가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고독한 마음만이, 내 끝 모를 고통을 알 수 있네.” 당시 젊은 차이코프스키는 유럽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 해도 될 정도였기에 이 곡 역시 독일의 향이 강하게 묻어난다. 러시아 민족적 요소는 부족하나, 멜로디의 아름다움은 손꼽히는 수준인 이 곡은 초기작이므로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없다. 첫 소절부터 끝 마디에 이르기까지 분위기가 비슷하게 유지되는데, 그건 리듬에 당김음을 계속 넣고, 조성 변화는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낭만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반음계적 화성과 선율은 작품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23] 차이콥스키의 관한 정보가 방대하게 정리되어 있는 사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