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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10:20:34

박영희(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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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박영희
朴泳姬 | Younghi Pagh-P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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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5년 10월 30일 ([age(1945-10-30)]세)
충청북도 청주시
국적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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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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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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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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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학력 중앙초등학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 학사, 석사)
독일 프라이브루크 국립음악대학교
경력 오스트리아의 그라츠 예술대학교 초빙교수 (1991)
칼스루에 국립음악대학의 초빙교수 (1992/93)
브레멘 국립예술대학교 작곡과 주임교수 (1994-2011)
수상 국민훈장 석류장 (2009)
베를린 예술대상 (2020)
직업 작곡가
장르 현대음악
종교 가톨릭(세례명: 소피아) #
홈페이지 http://www.pagh-paan.com

1. 생애2. 작품
2.1. 관현악곡2.2. 국악관현악곡2.3. 실내악2.4. 독주곡2.5. 성악곡2.6. 합창곡2.7. 음악극 (오페라)
3. 수상 경력4. 창작 성향5. 한국의 평가6.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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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朴泳姬 (로마자 표기는 Younghi Pagh-Paan), 대한민국의 작곡가. 청주에서 태어났고, 1965년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해 작곡을 전공했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1974년에 DAAD(독일 학술교류 재단의 국비 유학 프로그램) 수혜 대상으로 선정되어 독일에 유학했고, 프라이부르크의 고등음악학교에서 클라우스 후버와 브라이언 퍼니호 등에게 배웠다.

특히 후버와는 사제 지간 이상의 관계였고, 결국 결혼해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1979년에 학위를 받은 뒤에도 한동안 독일에 머물며 창작 활동을 했는데, 1980년에 유럽 유수의 현대음악제 중 하나인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관현악 작품인 '소리' 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1년 뒤 발표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에 앞서 한국의 반독재 민주화 항거를 반영한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발표한 작품들도 계속 현대음악계에 반향을 불러왔고, 독일 각지의 장학재단에서 장학금과 작곡/교육 의뢰를 받았다. 1991년에는 오스트리아그라츠 음악/공연예술 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임명되면서 본격적인 교육 활동을 시작했고, 1992~93년에는 독일 칼스루에 음악대학교에서도 초빙교수로 작곡을 가르쳤다.

1994년에는 브레멘 예술대학교에서 동양인 여성 작곡가로서는 최초로 작곡과 주임교수(한국의 전임교수에 해당)로 임명되었고, 같은 학교의 부설 기관인 신음악 연구소와 전자음악 스튜디오의 설립과 운영 등을 맡으며 2011년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독일 체재 이후 모든 작품은 이탈리아의 리코르디 음악출판사에서 악보가 간행되고 있다.

2020년 1월 10일 독일예술원에서 시상하는 베를린 예술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 작품

2.1. 관현악곡

대관현악을 위한 '소리' (1979-80)
작품 ’소리‘ 에 대한 기본 아이디어는 한국 고유의 ’마당극‘에서 얻어 왔다. ‘소리‘는 전체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마지막 여섯 마디가 첫 악장의 시작부분과 맞물리면서 하나의 원을 이루는 형태로 구성된다.

이 곡에는 4개의 상호 분별 가능한 요소들이 등장한다. 이 중 3개는 합치거나 겹쳐지는 형태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곡을 전개해 가는, 근본적으로 동질적인 요소들이다.

곡 전체를 관통하면서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는 첫 번째 요소는 ‘한(恨)’이다. 다른 두 개의 요소는 ‘농악’과 ‘향두가’에서 따온 것이다. 오늘날 서구음악의 영향 아래 세계 어디서나 관찰되는 것이지만 이런 전통의 소리가 한국에서도 점차 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네 번째 요소는 넓은 폭의 과격한 아코드로 위 3요소의 음악적 전개와 발전을 방해, 파괴 또는 중단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이 요소를 ‘이질적인 파워’, 일상을 공격하는 어떤 힘으로 상정한다. 공격이 꼭 위협인 것은 아니다. 도전이자 기회가 되기도 한다.

소리‘는 사람이 귀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소음에서부터 음악까지의 모든 울림을 포함하지만, 문화적 동질감 또는 이질감에 따라 친근함과 생소함, 평화와 폭력, 자유와 억압, 창조와 파괴 등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소리‘를 통해 나는 내게 익숙한 토양인 한국의 음악과 더 큰 성장을 위한 도전의 장인 서양의 음악을 생각해 보았다. 작품에 내가 직접 채보한 전라도 장단을 인용하였다.

대관현악을 위한 '님 (1986-87)
'님'은 음악적 복합성의 증폭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작곡한 어느 곡보다 담백하고 엄격한 모습을 띠게되었다. 그래서 어떤 형태의 장식도 쓰지 않았다. 땅은 시인의 말처럼 모든 희망이 싹트는 곳이다. 대지(大地)가 의미하는 광대한 연관성 가운데에 극히 일부분만을 표현한 것이 나의 작품 ‚님’이다.

'님'은 직역이 불가능한 개념이다. 이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광범위하여 그 중에는 진부한 것도 있다. 그래서 시인이며 승려이며 또 독립투쟁가인 만해 한 용운 (1879-1944) 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중략)

이 작품을 지난 몇 년간 민주항쟁을 위해 분신자살한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게 바치고자 한다. 그들은 한줌의 재가 되어 땅으로 되돌아갔다.

비단실은 명주로 곱게 자아낸 부드럽고 윤기 있는 실을 가리키는 아름다운 한국말이다.

매우 섬세한 어떤 감정을 악기로 표현하려고 할 때 우리는 비단결 같은 선율을 추구한다. 하인쯔 홀리거(Heinz Holliger)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문득 우리의 고운 한글로 표현된 이 비단실의 개념을 떠올렸다. 하나의음이 완벽하기 위해서는 그음을 구성하는 음악적 요소들이 마치 여러갈래의 명주가 엮어 곱고 부드러운 비단실로 하나가 되듯이 윤기 있는 선율을 자아내야 한다.

작품 '비단실'은 무속전통을 뿌리로 발전해온 한국의 민속음악에 그 연이 닿아있다. 양반들이 가사, 가곡과 같은 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 민중은 이 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이 즉흥적이면서도 정밀했던 음악은 연주자 스스로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했던 것으로 시나위라 불리운다.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면서 울리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음들이 마치 명주의 한올 한올이 비단실을 자아 내듯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어 냈다. 연주자 하나 하나가 이렇듯 자신의 역할을 다하므로서 전체적인 음악에 생동감을 주었다.

시나위 연주에는 주로 다음의 악기가 사용된다. 장고는 조율의 역할 뿐 아니라, 연주의 템포(속도), 박자 그리고 기본장단(리듬)을 관장하였다. 비단실로 꼬아 만든 현으로 소리를 내는 가야금, 아쟁, 거문고 등은 주로 북과 함께 연주된다. 가야금은 손가락으로 튕겨서, 아쟁은 여린 개나리 가지를 다듬어 만든 활로 훑어서, 거문고는 나무활로 두드리거나 긁어서 소리를 낸다. 해금은 말총으로 만든 채로 소리를 내는 기악기(풍악기)로서 그 비단결 같은 소리가 여인네 음성에 가장 가깝다. 해금은 피리(오보에), 대금(플륫)과 함께 삼중주로 연주될 때 조화를 이루며 북과 함께 시나위 연주의 원 구성악기이다.

이 곡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것 즉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로 완성했다는 것 자체는 이미 시나위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시나위를 복구하거나 재생하고픈 의도는 전혀 없으며 이는 작곡가로서 가능한 일도 또 바람직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나위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안에 녹아있는 생동감을 더 절실하게 전하고자 했다.

'님'은 직역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광범위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세속적이고 진부한 것들도 있다. 그래서 시인이며 스님이며 항일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군말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의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맛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음악적으로 보았을 때 빛은 높은 주파수와 파장으로 표현되며 동서양은 막론하고 빛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깊고도 높다.

밤이 낮을 잉태하듯이 모든 빛은 어둠에서 태어난다. 시편 36장 10절에 보면 „정녕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라 하였고 바울이 에베소에 보낸 편지, 에베소서 5장 8절과 9절에는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라고 쓰여있다.

열린 공간으로 „가라앉음 (沈潛)“은 내 많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들숨과 날숨, 존재와 공명은 모든 음악의 기반이다. 악기를 불거나 노래를 하거나 모든 소리는 주파수와 파장으로 일어났다 다시 사라진다. 나는 음악을 통해 이를 진지하게 확인한다

도교, 불교, 기독교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신비주의자들이 주창하는 „자기 비우기“가 전혀 다른 의미의 깊은 충만감으로 마음의 공간을 채우는 것이라면, 들숨은 성장이요, 날숨은 사라지는 것,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을 통해 내적으로 깊이를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Meister Eckart, 약 1260 - 1327)는 높고 낮음은 하나라고 했다.

나는 에디트 슈타인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이 작품의 주제를 설명하고 싶다.

"신을 향해 올라가면 갈수록 영혼은 자신을 더 철저히 내려놓는다: 신과 하나 됨은 영혼의 가장 깊은 부분, 가장 낮은 부분에서 이루어진다.“(Edith Stein »십자가 요한에 관한 연구« 중)

다시 소리로 돌아와, 가장 낮은 주파수는 가장 낮은 빛을 의미하지만 이런 빛마저도 밝은 광채로 표현된다.

작곡에 있어 나는 처음부터 열린 소리공간, 즉 가장 높은 (하늘 天) 곳과 가장 낮은 (땅 地) 곳을 아우르는 수직적인 „모화음"을 사용한다. 이런 소리공간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중심부에서 수평적인 흐름을 구성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이중주가 그들의 악기를 통해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축복을 노래하다가 서서히 잦아들면 그 소리의 정착은 음악적으로 빈 공간을 형성한다. 여기서 정적(情寂)은 깊은 충만을 의미하고 빛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귀가 자신을 향해 열리면 열릴수록 빛의 소리를 향해 더 크게 열리듯이 …

2010/2011년도 작품인 "높고 깊은 빛 (Hohes und tiefes Licht)"을 독일 바바리안 방송국 위탁으로 컨서트 시리즈인 뮤지카 비바(musica viva)에서 초연되었고 그후 재구성한 것이 2012년도 작품인 "빛의 열매 (Der Glanz des Lichts)"이다. 원곡과는 다른 새로운 제목을 부여했다.
실내 관현악을 위한 '생명나무 III' (2015)

2.2. 국악관현악곡

대한민국 국립극장 국립관현악단에 헌정함

현대의 한국인 작곡가로서 노자의 도덕경을 바탕으로 작품을 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열린 허공(虛空)으로의 침전(沈澱)’은 이미 많은 나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원칙이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인 악기로 편성된 오케스트라를 향해 내 창작의 문을 연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요, 열린 허공으로의 침전이 아닌 모험적인 진입(進入)이다.

한국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나는 쉴 새 없이 배우고 가르치고 또 배우면서 점점 더 실체적이고 치밀해졌다. 그리고 모든 배운 것은 허공을 향해 열려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한국의 전통악기를 통한 음악은 항상 앙상블 음악이었으며 오케스트라로서 전통악기들의 복합화와 다양화는 신 시대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도(道)에 이르기 위해 물이 되어 거침없이 흘러야 할 때 필요한 가득함(充滿)으로 비유하고 싶다.

날숨(呼)과 들숨(吸): 실체(實體)와 공명(共鳴)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불어서 나오는 음(音)뿐 아니라 모든 음악의 기본이다. 모든 음은 소리로서 공명하고 이 모든 소리는 반향(反響)을 그치면 사라진다. 나는 진정 이에 대한 경외심으로 단 하나의 음의 생성도 중단하거나 억제하거나 그 소멸을 강제하지 않았다. 이것이 곧 우리 음악의 전통적인 예법(禮法)이기도 하다.

만일 ‚자신을 비움’이 - 도교(道敎)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신비주의가 그렇듯이 - 인간의 내면적이고 깊은 공간(마음)의 ‚채워짐(充滿)’을 얻는 것이라면, 들숨은 성장(成長)이요 날숨은 소멸(消滅)을 의미한다. 자신을 비우면서, 겸허함 속에서 점점 더 낮아지는 마음, 마이스터 에카르트(Meister Eckhart, 약 1260-1327)는 높고 낮음은 하나라고 했다.

나는 처음부터 열려 있는 소리의 공간에 가장 높은 음(하늘)과 가장 낮은 음(땅)을 수직으로 이어주는 음악(音樂)을 만든다. 소리공간은 채워지지 않으며 서서히 이 공명의 중심으로부터 수평의 음이 움직이며 흐르고 악기는 마치 인간의 목소리처럼 노래한다.

한국 전통악기들의 소리 폭이 보편적으로 여성이나 남성의 목소리 정도로 제한되어 있는데 반해 유럽이나 서양의 악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가능한 한 그 소리 폭을 넓히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 가장 전형적인 예가 바로 그랜드 피아노이다. 극도의 낮은음에서부터 극도의 높은음까지 모든 음을 ‚소유(所有)’함으로서 그랜드 피아노는 악기가 낼 수 있는 모든 음역(音域)을 구사한다. 이와는 달리 우리의 전통 악기들은 그 흐르는 울림으로 공간에 여유를 남긴다. 이런 울림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칭송이며 음(音) 하나 하나가 그 자체로서 여운이다. 울림이 사라지면서 생성되는 무음(無音)의 공간, 이 정적(靜寂) 안에서 귀 기우려 듣는 사람은 그 채워짐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듣기 때문이다.

2.3. 실내악

'''클라리넷과 현악 3중주를 위한 '만남 I' (1977)
1977년에 작곡하여 1978년 5월 프라이부르크에서 초연 된 '만남'은 (클라리넷과 현악삼중주를 위한 곡) 내가 독일에 온 후 완성한 두 번째 작품이다.

'만남'의 악상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떠오른 것이다.

우리 한국민족이 처음 서양음악을 접한 것은 조선시대 (19세기) 말 군악단장을 맡고있던 독일인 에카르트(Franz von Eckert)에 의해서였으며 주로 군악(軍樂)을 통해서였다. 이후 한국사회는 전통적인 음악문화와 점차 그 비중을 더해 가는 서양(유럽 및 미국)의 음악문화 사이에서 끓임 없는 갈등을 겪어왔고 특히 이는 음악교육을 통해서 증폭되었다.

'만남'을 통해 나는 이런 상이한 문화권의 충돌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내 자신이 서양에서 심하게 격고있는 문화적 충격을 극복하기 시작하였다.

'만남'은 전체 4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제 3장에서 마지막 장인 제4장으로 넘어가는 역할을 첼로- 카덴차가 맡고 있다. 제 1장은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나의 조심스러운 시도, 제 2장은 한적한 산중으로 도망쳐 그 큰 자연의 품안에서 보호받고자 하는 나의 심정, 제 3장에서는 문화적 충격으로 내 안에서 시작된 힘겨운 투쟁에 촛점이 있고, 마지막 제 4장에 이르러서는 한국 전통으로 돌아가며 첼로의 피치카티 연주가 두 개의 장고를 상징한다. 마침내 음악은 서서히 자기중심을 찾아가고 조용히 안정되며 화해를 의미한다.

신 사임당(16세기)의 한시 '사친(思親)'은 이 작품을 쓰는데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하였고 실제로 작곡에 사용되었다.

마디는 우리말로 매듭, 관절, (음악상) 소절, 마디 등을 의미한다. ‘매듭’은 한국여성들이 한복을 입을 때 장신구로 사용하는 노리개와 국악기나 상여를 장식하는 유소(流蘇)를 만드는 수공예를 일컫는 개념이기도 하다. 매듭의 재료는 비단 원사로 꼬거나 결(結)을 지음으로서 다양한 모양이 가능했는데 이런 매듭은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기도 했다.

마디는 또한 인간의 가장 처절한 아픔 즉 맺힘을 의미한다. 16세기 조선 중기 때의 문신이며 시인이던 송강 정철은 어느 인간이나 가슴 속 깊은 곳에 맺힘을 안고 있고 바로 이 맺힘을 풀어주는 것이 시의 역할이라고 했다. 나는 한국의 여성들이 끈기를 갖고 맺어가던 마디마디가 마치 시인의 의도처럼 가슴 속 깊이 응어리진 아픔을 한 올 한 올 풀어보고자 하는 상쇄의 행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매듭이라고 하는 전통공예를 통해 한국의 여성들은 무한한 인내심과 연민의 정으로 자신들의 아픔뿐 아니라 온 민족의 아픔을 풀고자 하였고 이를 통해 오랜 어려움 속에서도 하루하루 다시 시작하는 힘을 얻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여성들의 유일한 자아실현의 방법이기도 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작곡은 내게 있어 매듭과 같은 의미의 작업이다. 내 마음속에 맺힌 것을 푸는 일이라는 의미에서.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편경' (1982)
편경은 중국과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악기로 연옥(軟玉)을 깍아 만든 16매의 경돌을 나무틀에 음률 순으로 매달고 틀 양끝에는 조각된 하얀기러기로 장식한 것이다. 편경은 항상 편종과 함께 편성되어 정악을 연주할 때 사용한다. 편종은 한 단에 8개씩인 두 단의 나무틀에 16개의 청동으로 만든 종을 걸어 놓은 악기이다.

1425년 한국에서 진귀한 연옥이 발견되어 2년 동안 석수들의 섬세한 손끝을 통해 500매가 넘는 경돌이 만들어졌는데 그 음색이 청아하고 음률이 정확하였다. 편경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의 오랜 옛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는 듯 하다.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작곡을 위촉받고 나의 한국적인 음악개념을 어떻게 유럽의 전형적인 건반악기인 피아노와 접목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중 떠오른 것이 바로 이 진귀한 한국의 옛 악기 편경이었다. 뿔채로 경돌을 칠 때 번지는 청아한 소리를 연쇄적인 피아노의 화음과 고음의 심벌즈와 같은 금속악기가 공간에서 부딪히고 어우러지면서 변하는 소리로 잡아보려 하였다.

한국의 전통적인 아악기는 도교적 음악관에 의해 8음으로 편성된다. 악기는 그 소재에 의해 다음의 8가지로 구분된다: 금(금속), 석(돌), 죽(대나무), 사(비단), 토(흙), 목(나무), 포(바가지), 혁(가죽). 즉 악기의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음색이 구분되는데 이 점 역시 '편경'의 작곡에 있어 반영되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피아노와 타악기의 상이한 음색을 주축으로 그 이행부분 또는 결합부분을 장식할 악기를 8음의 원칙에 입각하여 보완하였다.

타악기로는 7개의 금속악기, 6개의 목재악기 그리고 5개의 가죽악기를 선택하였고 유리와 조개로 만들어진 챠임스(chimes)을 첨가하였다. 현악기로는 그랜드피아노를 중심으로 피아노의 현을 다양하게 조작하여 소리를 죽이거나 살림으로서 대나무, 박, 비단 또는 흙의 음색을 표현하였으며 고음의 크로탈로 돌악기를 대신하여 소재 지향적인 동양의 음악문화를 살려보고자 노력하였다.
비올라,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노을' (1984-85)
노을은 한 악장짜리의 작품으로 1984년 작곡되어 그 이듬해에 수정 보완되었으며 1984년 10월 7일 프랑스 메스(Metz)에서 초연되었다.

노을은 1982년 창설 당시부터 개인적으로 그 편성에 높은 관심을 끌게 했던 베이스 트리오 (The trio basso)를 위해 작곡한 곡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깊고 어둡지만 따스한 소리, 즉 땅의 음(音)을 찾고 있었다. 도교적 전통의 8음 중 하늘의 소리와 같은 의미의 포괄적인 음으로서의 땅의 음, 넓고도 깊은 파장의 음은 직감적으로 ‘붉은 흙의 음’으로 연상된다. 제목이 노을(석양)인 것은 그 때문이다. “붉은빛은 여러 세대가 흘린 피처럼 흙 속으로 스며든다.”
실내 합주를 위한 '타령 II' (1987-88)
1977년 프라이부르크 음대 야외음악제에'장타령'을 발표하였는데 이 곡은 유럽으로 유학 온 후 처음으로 작곡한 앙상블-작품이다. '타령 2'는 나의 어린 시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민속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타령은 앞으로 내가 작곡할 여러형태의 실내악의 첫 작품이다.

농경사회였던 한국에서는 마을 공동체의 중심인 '장터'에서 마당놀이가 전개되었다. 농악은 종합적 예술로 복합적인 특질을 갖고 있다. 즉 여기에는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태평소. 나팔 등 여섯 명 이상의 악기주자들이 참여하며 일반적으로 음악과 노래 뿐 아니라 춤과 탈춤, 곡예 및 연극까지도 포함한다. 한 동안 잊혀져있던 이 총체적 예술의 전통을 70년대 중반 학생운동이 재발굴하여 활성화하였다. 음악가와 대중들이 함께 농악을 즐기면서 저항과 참여를 위한 시사성 있는 노랫말들을 만들어 마당놀이가 대중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콘서트 홀에서 연주될 앙상블음악으로 '타령 2'를 작곡하면서 나는 이 작품이 장터에서 연주되지 않으며 노랫말, 탈, 춤 등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잠재적인 저항력의 바탕이 되었고 삶의 고난을 해학으로 풀어주던 농악이라는 전통적인 놀이가 담고있는 신명이 콘서트 홀에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타령은 전통음악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장단으로 꾸준히 반복되는 기본리듬이 그 특성이다. 그래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타령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타령의 매력은 이런 동일한 기본리듬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변형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며 특히 농악에서 그러하다.

한국적인 음악감정을 기반으로 작곡을 한다고 해서 유럽 음악예술의 발전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21세기 예술음악계가 안고 있는 일정한 반복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그리고 가능하면 신선한 변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공동과제에 대한 해결을 나의 창작활동에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한국 농악의 전통을 이어받아 만들었다.

'지신밟기는 본래 고대 무속신앙의 의례로서 한국사회에 여전히 그 잔재가 풍습으로 남아있다. 매해 정월이면 4-5명으로 구성된 농악대가 깃대를 들고 마을의 집들을 차례로 돌면서 지신(地神)을 밟아주며 그 집과 가족의 행운을 빌어주는데 이때 농악은 지신을 위안하여 가족이 건강하고 풍년이 들도록 기원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타령은 4박 또는 6박의 음률이 반복되는 한국 민속음악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이 기본리듬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변형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 큰 매력이다. 특히 농악에 있어 이 변형의 다양성이 뛰어나다.

한국적 정서에 기반한 나의 작곡활동은 유럽의 현대 음악예술의 발전을 위하여 반복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 그리고 가능하면 신선한 것을 도출해내고자 하는 시도를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

일곱 악기를 위한 '우물' (1992)
'우물'은 작곡가 스스로가 도교지향적인 작품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도교적 관념은 작곡가 박 영희의 활동에 이미 오래 전부터 영향을 끼쳐왔다.

'우물'은 작곡가 박 영희에게 있어 인간상호간의 사회적 이해의 상징이다. 물질적인 분배투쟁 뿐인 현대사회에서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유토피아적인 발상으로 보여진다. 우물은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천연자원인 물이 골고루 분배되는 장(場)임과 동시에 일상적인 의사소통 및 정보교환의 중심이기도 하여 매우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 평화연구자인 갈퉁 (Galtung)은 세계평화의 기본조건으로 수(水)자원의 정의로운 분배를 요구하며 석유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물(水)이 없으면 살 수 없음을 언급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작곡가는 갈퉁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취하고 또 나누는 천연자원에 대한 비이기적인 활용과정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우물의 커뮤니케이션적 의미를 작품체계에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작품 시작부분을 연주자들이 앙상불의 중심 격인 타악기의 음향공간에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이렇게 하여 작품을 긍정적인 추억의 매개체이면서 자연과 인간의 근원적인 관계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 자연과 인간을 상호분리 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보는 도교의 관점이 현대에 와서 예기치 못했던 시사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의연함이란 시위성 음악의 형태나 형식의 포기 그리고'새로운 복합성'이라는 지성적인 이슈의 포기를 의미한다. 인위적인 구성이 아니라 물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의연함'을 '그냥 내버려두기' 또는 주관 없는 '포기'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는 오히려 작곡활동에의 집중과 여과라는 오랜 과정과 관련이 있다. 도덕경에 쓰여 있듯이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게 없지만 강한 것을 꺾는 데는 이보다 나은 게 없으니, 물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드러움이 강장함을 이기고 약한 것이 센 것을 이기는 줄은 누구나 알지만 어느 누구도 행하지 못한다 (감산의 노자풀이, 도덕경, 78).
이 곡은 1993년 세계적인 플룻주자인 Robert Aitken과 토론토에서 개최 된 New Music Concert-앙상블를 위해서 쓰여졌다. '항상 (恒常)’은 '영속성', '불변성'을 의미하며 우리말로는 '늘','언제나'의 뜻으로 쓰인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항상'이 주는 느낌,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19세기 스위스의 시인 고드프리드 켈러(Gottfried Keller)는 그의 시를 통해 옛 도교의 지혜를 전달한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머무르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시간을 통과하여 지나갈 뿐이다".

붓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양의 서예-한자 문화권에서는 백지 위의 붓 놀림을 주제로 한 오랜 철학의 전통이 있다. 힘과 리듬에 의해 놀려지는 붓은 흰 종이 위에 묵의 짙고 엷은 색을 남기면서 그 배경이었던 한지의 흰색을 전경으로 떠올린다. 전혀 붓이 닿지 않은 곳 뿐 아니라 고르지 않은 붓결 하나 하나가 남긴 보일듯 말듯한 빈 틈마져도 흰 빈자리를 남겨놓기 마련이다. 붓 놀림 즉 예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이 '항상 있었던 것을 새로이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이렇게 붓 놀림의 배경이여야 할 백지가 붓 놀림이 남기고 간 흔적들 사이로 더욱 더 정결한 흰빛으로 돋보임을 우리는 '공백의 비상'이라고 한다. 이 비유야말로 우리의 시간 경험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지신굿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한국의 전통적인 농악을 바탕으로 만든 곡이다. 지신굿은 고대의 무속의식의 하나인데 아직도 민속놀이의 형태로 남아있다. 해마다 정월이면 네다섯 명으로 구성된 농악대가 온 마을의 집들을 차례로 돌면서 그 집안의 복과 무사태평을 비는데 이때 농악으로 땅의 신을 위안하여 가족이 건강하고 풍년이 들도록 기원해 주는 풍습이다.

한자의 무(巫)는 뜻을 풀면 땅과 하늘과 인간 한 쌍이 된다. 인간과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창조의 매개자로 나타난다. 땅에 대해 관대하기를 하늘에 간청하는, 춤을 추는 한 쌍의 남녀는, 모든 의식(儀式)의 근원이다. 무속은 인간의 영혼이 하늘에서 와서 다시 하늘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기독교 신앙과는 달리 땅에서 나와 땅으로 되돌아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땅은 많은 영혼의 안식처이고 모든 또 영혼이 화해하고 편안히 쉬는 곳이다.

4개의 타악기를 위해 작곡된 이 의식 즉 굿은 전자음향으로 보완하도록 구성하였다.

이 곡은 이제 현대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이미 어린아이들의 방으로까지 침입한 컴퓨터 도깨비에 대한 의식(儀式)을 상징하였으며 '일회용사회'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쓰여졌다. 피상적인 사용 후 보다 완벽하고 편리한 신형기기를 사들이는 현대인의 경박한 성향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나는 의식적으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악기인 북의 소리와 이미 신형이라 부를 수 없는 음향기기의 음을 동등하게 편성하였다. 새로운 기기에 대한 종속적인 굴복이 아니라 하나의 악기로 받아드리고 또 적극적인 활용을 통하여 원초적인 소리를 구하고자 하였다.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섬은 헤엄치며' (1997)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이 작품 „섬은 헤엄쳐오고...“ 는 앙상블 콘훌릭트(Konflikt)를 위해 작곡하였다.

오래전부터 절친한 친구사이인 피아니스트 한가야씨와 타악기주자 나까무라 이사오씨를 위하여 일련의 시리즈를 쓰기로 계획하였으나 현재까지 이 „섬은 헤엄쳐오고...“ 한 곡만이 완성 출판되어져 있다.

끊임없는 이 작품의 제목은 도피와 방랑의 긴 일생길에서도 많은 중요한 작품을 남긴 유태계 독일여류시인인 로제 아우스랜더 (Rose Auslaender)의 시에서 인용했으며, 1996년도에 윤이상선생님을 추모하는 작품 메조소프라노와 비올라를 위한 „아직도...“ 에서 이미 로제 아우스랜더의 시를 사용한 바 있다.

그녀의 시를 읽노라면, 우리의 시조를 읽는 깊이를 느끼게된다.
농악(Nong-Ak)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의 꾸준한 관심의 대상이며 다방면으로 내 작곡활동에 귀감이 되고 있다.

농악은 주로 마을 중심인 마당에서 연주되었다. '타령'은 바로 이 전통적인 농악의 가장 일반적인 리듬이다. 타령은 4박 또는 6박 장단의 꾸준히 반복되는 기본리듬이 그 특성으로 동일한 기본리듬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변형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이 타령의 매력이며 특히 농악에 있어서 그러하다.

나는 이미 타령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개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나는 이 작품이 (농악과는 달리)콘서트 홀에서 연주될 음악이라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악이 지닌, 우리민족의 역사적 전통에 있어 중요한 저항의 뿌리가 되었던, 활력과 신명(Kraft, Lebendigkeit)을 서구적인 콘서트홀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우렸다.

나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생생한 구체적인 전통음악의 한 장르이면서 일상에 융합되는 공동경험으로서의 음악의 의미와 분위기를 십분 살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한국적인 음악의 정서를 발판으로 일상과는 동 떨어진 예술로서의 유럽음악을 반추해 보고자 한다. 반복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 그리고 가능하면 신선한 것을 도출해내고자 하는 유럽의 예술음악으로서의 전통은 1988년 작곡된 타령 II를 출발점으로 타령 6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내 작품 속에 대상화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스 신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는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성과 피할 수 없는 숙명,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삶과 밀접한 주제들로 나를 매혹하는데 그중에는 내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이방인으로서의 느낌도 속한다.

이오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도피한다. 그녀는 멀고 긴 도피의 여정에서 프로메테우스를 만난다. 고통의 심연에서 서로 만나지만, 이오의 행적은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중국의 승려 한산은 이오와는 달리 자신의 도피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는 ‘먼지의 세계’를 뒤로 함으로서 ‘한산(寒山, 즉 냉산)‘ 정상에 오른다. 이생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그의 시가 그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 그러나 그것 역시 세상에 대한 또는 그의 존재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자신을 찾아가는 험난한 길이 다다르는 곳은 진정하고도 유일한 한산이며 그의 존재를 의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한산’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홀로 외로이, 태어남도 죽음도 없이 ...
Gottfried Keller (곳후리드 켈러) 의 시 <젊은시절의 회고> (Jugendgedenken) 에서 감동을 받아 이 곡을 착상하였다. 이 시인은 “은실”을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하는데, 이에 따르면, 어느 만남에서 튕겨진 소리가 내가슴을 울리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피아노 3중주곡인 Silbersaiten <은빛현들> 은 3 악기 편성안에서 여러 소품들을 쓸 생각으로 이 곡을 시작하였고, 첫 곡으로 삼중주편성을 출판하였다.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상흔을 꿈에 보듯이' (2004-05)
서구화된 한국을 포함한 우리의 현재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꿈을 실재와 동떨어진 것으로 치부하면서도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가상적인 센세이션으로 확산시키기 좋아하는 데 반해 원래 동양적 관점에서의 꿈이란 삶과 죽음, 실재와 창조적 가상을 하나로 보고 인간존재의 하잘 것 없음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한병철 씨가 내 작품 ‘달그림자’를 위해 쓴 시의 구절들을 읽다 보면 우리들의 억압당하고 일그러지고 온갖 수모를 이겨내며 연명해 온 삶이 파헤쳐진 현실 속에서 불쑥 한 송이 꽃을 피운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 음악은 시인의 사고와 시적 형상들을 한 구절 한 구절 소리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윤회로의 길임을 잊지 않는 불교의 전통적 관점에 따라 형상과 반형상을 그리려 하였다.

위대한 유럽의 코스모폴리탄인 조지 슈타이너(George Steiner)는 오늘도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영성이라는 주제를 논함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암시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궁극에는 초월적인 어떤 힘 또는 경계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실질적인 존재적 질서 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항상 불명확함을 이웃으로, ‘그림자 저편’으로부터 작용하는 어떤 힘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예술과 문학 대부분이 그 주제로 삼고 있다.
1996년 Teodoro Anzellotti의 청탁으로 쓰기 시작하여 독일 Darmstadt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H.C. Artmann의 시 „mein Herz“ 중 한 줄 „mein herz ist die abendstille geste einer atmenden hand (내 마음은 저녁의 평온이며 숨 쉬는 손의 손짓이네)를 인용할 수 있다는 승낙을 받아 작품의 부제, 즉 ‚내 마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작곡되었다. 이 작은 시구(詩句)가 작곡가의 실내 오페라 Mondschatten(달 그림자)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 곡에 새로운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최근 작곡가 작품들이 Mondschatten에 자취를 남긴 것을 작곡가의 다양한 작품들에서 알 수 있다. 1998년 아코디언 독주를 위해 쓰여진 작품 „mein Herz“를 이번 연주회를 위하여 오르간과 타악기를 재편성하여 개작된 것이며, 1998년 „mein Herz“는 아코디언을 위해 작곡되었지만, 오르간과 타악기로 재편성하면서 이 두 악기가 서로서로 한마음이 되어서 어울리게 연주되는 것을 표현하고자 작곡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곡에 가장 적합할 수 있는 곡의 제목을 악기의 재편성과 함께 성경의 한 구절에서 인용하여 개작된 것이다.
<연밥을 따는 노래>, <서릉의 노래 2>, <꿈에 광상산에 노닐며> 세 편에서 각각 4행씩

2013년 10월 16일 백남음악상 수상식을 기해 서울에서 초연될 파안 박영희의 신작은 허난설헌의 시 셋을 사용한 무반주 합창곡이다. 박치용 지휘자가 지휘하는 서울 모테트 합창단이 초연을 맡기로 했다. 작업에 사용하는 텍스트는 오해인 역주 난설헌 시집 (1980, 서울출판, 해인문화사)에서 가져왔다. 세 노래 모두 “연꽃”이란 암호로 담고 있으며 이 암호를 중심으로 난설헌의 인생 전체를 압축한 듯 세 가지 시간대를 보여 준다.

첫 노래 <연밥을 따는 노래>는 아직 가슴 설레이는 푸른 시절을 담고 있고 두번째 노래 <서릉의 노래>는 “내 집”, “오월이면 연꽃이 피기 시작”하는 고향에 대한 회상이 담겨 있고 세번째 노래는 난설헌 허초희의 스물 일곱 해 인생에 대한 예언처럼 생각되기도 하는 “아리따운 연꽃 스물 일곱 송이”와 “서리달”을 통해 생이 완성되는 순간의 적막을 이야기한다. 다음은 파안이 작곡 중인 것으로 공개한 난설헌 시귀 셋
플루트, 기타와 한국 타악기를 위한 '항상 V' (2012)
이 곡은 1993년 세계적인 플루트 주자인 Robert Aitken과 토론토의 New Music Concert-앙상블을 위해서 쓰였다*. '항상(恒常)’은 '영속성', '불변성'을 의미하며 우리말로는 '늘','언제나'의 뜻으로 쓰인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항상'이 주는 느낌,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19세기 스위스의 시인 Gottfried Keller는 그의 시를 통해 옛 도교의 지혜를 전달한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머무르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시간을 통과하여 지나갈 뿐이다". 붓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양의 서예-한자 문화권에서는 백지 위의 붓 놀림을 주제로 한 오랜 철학의 전통이 있다. 힘과 리듬에 의해 놀려지는 붓은 흰 종이 위에 묵의 짙고 옅은 색을 남기면서 그 배경이었던 한지의 흰색을 전경으로 떠올린다. 전혀 붓이 닿지 않은 곳뿐 아니라 고르지 않은 붓 결 하나하나가 남긴 보일 듯 말 듯한 빈틈마저도 하얀 빈자리를 남겨놓기 마련이다. 붓 놀림 즉 예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이 '항상 있었던 것을 새로이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이렇게 붓 놀림의 배경이어야 할 백지가 붓 놀림이 남기고 간 흔적들 사이로 더욱더 정결한 흰빛으로 돋보임을 우리는 '공백의 비상'이라고 한다. 이 비유야말로 우리의 시간 경험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이 곡을 작곡하면서 우리의 북소리를 생각하였으나, 외국에서 연주할 때 불가피한 이유로 (탬버린보다 큰 악기) Rahmentrommel로 편성하였다. 올해 대관령 국제 음악제에서 연주되는 것을 계기로 우리의 북으로 편성하여 다시 작곡하였다.
다섯 악기를 위한 '생명나무 I' (2014)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곧 “나는 누구인가”로 연결된다. ‘네가 작곡하는 음악은 어디서 유래하며 그 근본 출처는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가끔씩 받는다. 그 대답을 먼저 나 자신에게 하려 한다. 곡 제목을 “생명나무”로 하여 몇 편의 곡을 더 완성할 예정이다. 생명나무에 대한 깊은 뜻은 우리의 옛날 신령님이 사시는 나무가 있고, 보리수 아래에서 정진하시어 큰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도 있고,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나오는 생명의 나무 가르침도 있다. 그 첫 번째 곡으로 다음의 악기 편성을 택하였다. 트럼펫, 트럼본, 타악기, 피아노 그리고 첼로. 이들 다섯 악기들은 서로 수평으로 어우러지고, 또 음의 근본 출처를 제시하면서 수직으로 함께 모여 “생명의 존엄”을 노래한다.

여섯 악기를 위한 '별 빛 속에서' (2019)

2.4. 독주곡

피아노 독주 '파문(波紋)' (1971)
나의 절친한 향우인 김윤정을 위하여 1971년에 쓴 작품으로, 그해 김윤정에 의해 초연되었다.

작은 호숫가를 거닐다가 무심히 돌을 던져서 호수 표면의 물결을 보던 기억들은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둥근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물결에 다시 돌을 던지면, 그 물결들은 만나지고 얽혀지고 또 흩어져 나가면서 파문을 그린다. 그리고 한참 후에 호수는 다시 고요를 찾는다.

나는 내 마음을 호수에 실으며, 그 영상을 피아노음향에 담아보았다.
플루트 독주 '드라이잠 노래' (1975)
이 작품 제목은 내가 살았던 프라이부르크(Freiburg)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 이름이고, 이 강에 대한 나의 경험을 음악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노래(Nore)' 라는 한국말을 그대로 사용했다.

유유히 흐르는 강은 쉬임 없는 움직임 안에 생동감의 모든 요소를 안고 있는 동시에 지속적이고 잔잔한 흐름인 수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고요와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양면성을 악상으로 옮긴 것이다.

이러한 나의 의도는 다음의 장자 (莊子, 기원전 370-280)의 글에 잘 묘사되어 있다.

천지 (天地)는 대미(大美)를 가지고도 말로 발표하지 않고, 사시(四時)는 일정한 명법(明法)이 있으나 의논하지 않고 만물은 생(生)의 이치가 있으나 설명이 없다. 성인(聖人)은 천지의 미(美)에 근원하여 만물의 이치에 통달함으로서 자연에 맡기고 작위(作僞)하지 않는다.
첼로 독주 '아가(雅歌) I' (1988)
한문 두 자로 표현되는 아가는 직역이 어렵지만 '노래로 올리는 칭송'의 뜻을 담고 있다. 나는 이 '아가'라는 주제로 여러 개의 독주곡을 작곡할 계획이며 그 첫번째 곡으로 바이올린 첼로를 택했다. 첼로는 그 깊은 음색 때문에 내게 친밀감을 주는 악기로 어떤 감정의 분출을 표현한다 해도 가볍게 들리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아가'는 진리를 위해서 자신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죽음까지도 택한 분들에게 헌정 하는 곡이다. 첼로를 위한 이 곡의 형식적인 흐름은 한국의 현대시인 천상병의 짧은 시에서 따온 것이다.
타악기 독주 '타령 IV' (1991)
그라쯔의 가치평가연구소 (Grazer Instituts für Wertungsforschung)  소장인 오토 콜러리치(Otto Kolleritsch) 로부터 1991년 '재습득 (再習得)과 신정의 (新定義) - 음악에서의 포스트모던의 몰락' 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심포지엄 참가요청을 받고 강연을 하는 것 보다 성찰의 계기가 될만한 조그마한 독주곡을 준비하고자 하여 작곡하였다.

현대의 의식은 철저하게 제 1세계 중심으로 흐르고 있어 마치 그 외의 다른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이 경향은 음악예술분야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포스트모던이라는 개념자체가 배부른 소수의 머리 속에서 생겨난 산물이다. 이들은 제 1세계에서조차 소수에 속한다. 제 1세계 음악가가 세계역사의 모든 산물이 마치 자기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이는 신식민주의적 사고의 발상이다. 문화정체성에 대한 이러한 몰이해는 첫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고와, 둘째, '우리에게 맡겨라'는 새로운 포괄적 문화 독점권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품을 통해 한국 민속음악의 원형적인 리듬요소를 좀더 친숙하게 느껴보고자 하였다. 민속음악 속에 녹아있는 무속의식 (巫俗儀式)까지도 우리에게는 의미가 있다. 경외심과 애정을 갖고 이 서로 다른 현실을 계몽적인 자세로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다행히 이런 나의 시도에 현대음악 기보법이 도움이 되어 민속음악적 소재를 현대기법으로 표기할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한국 전통음악의 정교함이 서양식 기보를 통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항상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베이스플루트 독주 '어느 옛 사원에서의 휴식' (1992/94)
원래 존 케이지(John Cage)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이 작품은 수정되어 수잔네 후버의 60생일에 선사하였다. 

1992년 8월 죤 케이지가 사망하였을 당시 라인하드 욀슐레겔(Reinhard Oelschlaegel)은 여러 작곡가에게 짧은 추모곡의 작곡을 부탁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즉석에 어떤 작품을 쓸 것인지, 어떤 시를 기반으로 할 것인지를 알았으며 그것은 바로 다시 한 번 ‘나의 것과 남의 것’, ‘친근함과 낯섬’을 주제로 할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코디언 독주 '내 마음' (1996)
‘내 마음’은 1996년 테오도로 안젤로티 (Teodoro Anzellotti)의 위탁으로 쓴 곡이다.

H. C. 아트만(Artmann)의 시 »mein herz(내 마음)« (1949/50) 중 한 구절인 ‘내 마음은 숨 쉬는 손의 저녁 무렵 적막감 같다.’를 이 작품의 부제로 인용하였다.

이 소품은 내 실내오페라 극인 ‘달그림자(Mondschatten)’의 주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지난 얼마간에 작곡한 여러 작품은 사실 ‘달그림자(2002/05)’를 예고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시몬 와일(Simone Weil)은 그녀의 작품 »Cahiers(노트) 3«’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초자연적(übernatürlich) 자유는 존재해야 하지만 그 존재란 무한히 작은 것이다. 이생에서의 초자연적 실재는 불가사의하게 작은 존재이지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녀는 이글을 통해 아주 오랜 동양적 지혜를 얘기하고 있다.

‘Nichts(無), 즉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것이 모두를 담고 있다. 초월(Transzendenz).
혹독한 박해를 피하여 칠흙 같은 밤중에, 달빛과 별빛 아래에서 깊은 산중에 산재하고 있는 공소를 다니신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를 그려봅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 앞에서 걸어가리라. 산이들의 땅에서 „내가 모진 괴로움을 당하는구나“ 되뇌이면서도 나는 믿었네.

아마도 시편 116장 9절에서 10절을 생각하시며 걸으셨으리라고도 추측해 봅니다. 요즈음 사제님들께서 공동체와 더불어 국내 성지 도보순례를 행하시고 계십니다. „사제의 해‘로 정해진 올해에 이 작품을 쓰면서 사제님들을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피아노 독주 '목 마르다' (2008)
이 작품은 신약성서의 요한복음 19장 28절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제목으로 선택한 것이다.

2004년부터  "가상칠언",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마디의 마지막 말씀을 주제로 작품을 쓰고 있으며  이미  2006년도에  무반주 합창곡인 '주님, 보소서. 우리의 비탄을 보소서' 와 2007년도에 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 '빛 속에서 살아가면'을 완성했다. 이 두 작품은 "가상칠언"과 함께 우리나라의 두 번째 사제이신 최양업 신부님(1821-1861)의 서한집에서 발췌한 글을 기반으로 작곡한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목 마르다' 라는 말씀은 신체적인 '목 마름'만이 아니라 영혼으로서의 '목 마름' 을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아니스트  한가야의 위촉으로 이 곡을 구상하면서 그녀 부모님의 고향인 제주도를 가슴에 담고 제주도의 소리를 들어본다.

고깃배를 타고 먼 바다로 떠날 때 부르는 힘찬 소리들,,, 그 소리 안에 녹아내리는 눈물, 눈물 그리고 또 눈물.... 진실에 [목 마르다]라고 외치는 많은 영혼들.

그러나 이 작품을 쓴 이유는 [목 마르다]라고 외치는 영혼들의 고통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들의 힘찬 삶이 아직도 그 자손들에 의해 계승되어 오는 것을 소리로 표현하고자 해보았다.

그분들이 저승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목 마르다]를 우리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날이 언제일런지…. 우리의 귀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

"여기 진실이 있습니다. 이 곳에 누워있는 진실들을 보십시오. 우리의 할머님들과 할아버님 들을 …"
바이올린 독주 '판파렐라' (2008/18)
오르간 독주곡을 위한 '별빛아래...' (2009)
잉글리시 호른 독주 '침묵 속 경청' (2019)
타악기 독주 '소리기둥' (2019)

2.5. 성악곡

우리나라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장례식에 참석한 수십만명의 흰옷 입은 군중이 엎드려 절하고 있는 사진을 독일에서 접하면서 이 작품은 시작되었다.이 흰색의 감동을 다시 체험하기 위해서 찾아 다니던 중 나는 흰눈이 덮힌 산정에 올랐고 해질 무렵 시시각각 변모하는 흰 눈의 다양한 파스텔 색상에서 모화음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6개의 음으로 구성된 모화음을 사용한 이 작품은 하나의 화음체계가 다양한 형태로 폭 넓은 음력을 전체 작품을 통하여 구사한다.

나는 작곡에 있어 화성적 기능이나 12음렬에 입각한 기법을 활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화음의 공간이란 정(정靜)적임과 동시에 동(動)적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음악관에 가장 근접한 소리현상이 바로 '눈'처럼 일정한 화음이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음형(音形)인 것이다.

다섯 명의 여성보컬은 타악기도 연주한다. 타악기의 사용은 한국문화의 수 백년 전통을 이어온 여성들의 기원(祈援)행위의 자연스러운 표현방법을 상징한다.

시인 김 광균은 그의 서정적인 시 "설야 (雪夜1938)"에서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슬픔과 회한이 조용히 가라앉는 것을 그렸다. 그의 시 중 몇 구절과 소리음을 가사로 사용했다.

여성과 작은 타악기들을 위한 '봉화' (1983)
히틀러 집권 50주년의 해인 1983년에 '민주주의의 파괴- 권력이양과 저항운동'이라는 제목아래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여성음악인-콘서트'에서 작품을 위촉 받고 나는 매우 오래 망설였다. 이 주제로 음악예술로서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기 위해 많은 책을 읽기 시작하였고 이를 통해 놀랍게도 이제까지 알아왔던 독일과는 전혀 다른 독일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 반파쇼-저항운동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백장미 (Weisse Rose)' 라는 이름으로 당시 나치-파쇼정권에 대항했던 젊은이들, 소피와 한스 숄 등은 대학생의 신분으로 주변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나는 그들의 전단을 가사로 쓰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마지막 전단에서 "민족이여 깨어라, 봉화의 불꽃이 피어오른다"라는 민족사회주의자(나치)들의 투쟁가의 한 구절을 역인용하여 현혹되어 끌려가는 독일민족의 혼을 흔들어 깨우고자하였다. 나는 '백장미'를 당시 상황에 저항하는 봉화의 불꽃으로 보았기 때문에 '불꽃’을 제목으로 삼았다.

가사에 인용된 것들은 마지막 부분에 항상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베껴서 나누어주십시오"라고 썼던 그들의 전단과 마지막 편지 두 편이며 추가로 구약성서의 전도서와 산상설교에서 발췌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사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 한국의 전통적인 '판소리'의 형태를 빌려 소량의 타악기만이 함께하는 여성독창곡으로 만들었다. '판소리'는 광대 한 명이 고수 한 명의 장단에 맞추어 일정한 내용의 이야기를 육성(아니리)과 몸짓(발림)을 곁들여 창극조로 전달하는 한국민속예술의 한 형태이다. 군악을 연상케 하는 북소리를 동반한 이유는 저항운동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기 위함이다.

막강한 국가권력에 대항했던 이 놀라운 저항운동이 오늘날도 가슴아픈 현실로 존재하고 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당시와 비슷한 정치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에게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용기와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소피와 한스 숄의 자매인 잉에 숄은 '백장미'에 대한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전제독재의 엄중한 감시상황 아래서도 몇몇 학생들은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그들은 견고한 파쇼의 벽을 허물지 못하지만 균열이 생기게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이상의 결과는 기대하지 않았으며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목표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여섯 여성과 작은 타악기들을 위한 '흰눈 I' (1985)
1979년 독일 자알란드-방송국 (Saarlaendische Rundfunk) 의 위촉으로 '눈'이라는 18개의 악기와 5명의 여성보컬을 위한 작품을 썼다.

1985년에 다시 이 작품을 여성보컬만을 위해 '흰 눈'이라는 제목으로 재편성하여 다양한 음악적 형태는 살리되 멜로디의 동질성은 남겨두었다.

시인 김 광균은 그의 서정적인 시 "설야 (雪夜1938)"에서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슬픔과 회한이 조용히 가라앉는 것을 그렸다. 그의 시 중 다음의 몇 구절과 소리음을 가사로 사용했다.

눈 - 먼 곳 - 그리운 - 소식 - 이 한밤 - 소리 없이 - 흩날리느뇨 - 서글픈 - 옛 자취 - 흰 눈 - 입김 - 가슴이 메어 - 내 홀로 - 마음 - 허공 -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 등불 - 추회 - 호올로 차단한 의상 - 흰 눈은 내려 - 내려서 쌓여 - 내 슬픔 -그 의에 - 고이 - 서리다.
메조소프라노와 열두 악기를 위한 '마음' (1990/91)
Luigi Nono를 추모하며
박-파안 영희의 여성보컬과 소형 앙상블을 위한 신작은 오랜 준비기간을 통해 쓰여진 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이 한국인 여성작곡가는 시기와 언어가 다양한 여러 서정적인 시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 왔다. 그 모두가 여성작가들의 것은 아니지만 여성작가가 전면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의 주제는 주로 ‘자기(Ich)’와 그 '사랑의 대상‘이며 간혹 타인과의 관계가 그 테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제목이 될 수도 있을 법한 도로테 줼레(Dorothee Sölle)의 시 ’구체적으로 원하는 법 배우기‘ 또는 한국의 여류시인 황진이의 시 등은 작곡가 박-파안 영희가 아직 작곡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반면 아트만 (H.C.Artmann의 시 ’내 마음(Mein Herz)‘은 메조 소프라노와 바리톤을 위해 작곡되었다.
안나 아크마토바 (Anna Achmatowa), 로제 아우스랜더 (Rose Ausländer), 루이제 라베(Louize Labe)의 글을 기반으로 (1998년)

우리 극동의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소리(Singstimme)가 문학의 모든 양식과 함께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사설적 판소리나 서정적 가곡이 그 좋은 예이다. 동양의 서정적 문학이 주로 숙명주의, 즉 개인의 운명에 대한 수용적인 자세를 주제로 하지만 유럽에서는 고전시대 이후 실존적 차원에서 개인이 자아실현을 목적으로 운명과 투쟁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내 마음'은 내 작품에서 윤회(생사고락의 반복)를 거듭하는 내 영혼의 비유이다. 안나 아크마토바는 "살아남는 것: 위대한 언어“라고 하고

로제 아우스랜더는 "대지는 나에게 비밀스러운 손짓으로 인사(Ade) 하지만 - 나는 ‘다시 보자(Auf Wiedersehen)‘ 로 답한다."라고 한다.

나의 소원은 낯선 언어 속에서 그 ‘낯 섬’을 극복하는 것. 그리고 음악은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는,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지만, 언제나 변하는 그리고 흐르는 ‘내 마음’ 같은 것이다

내 영혼의 느낌에 의하면 모든 서정적인 언어는 소리 없는 음(音)에서 태어난 것이다. 시 구절 하나하나가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주며 그 안에 불변의 것,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소원을 투영한다.

흐르는 것을 받아 드린다는 것은 노자의 의미에서 강함의 표현이다.

사랑은 제한된 존재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힘으로 다른 형식, 다른 형태로의 변형을 가능하게 한다. 흐른다는 것은 곧 머문다는 것이며 상실의 슬픔이 남아서 그 속에 새로운 봄을 키우는 것이다. 이렇듯 철저한 자기희생만이 세계를 변화시킨다. 마치 밀알이 자기의 존재를 죽여야만 싹이 트고 밀이 자라 빵을 선사할 수 있듯이.

제목 ‘소원...보리라’에 관하여: 오늘날 소원의 능력은 물질적인 목표물을 설정하고 끈질기게 추구하여 쟁취하는 행위들로 말미암아 마비되어 버렸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소원)은 원래 가능한 차원을 향해 의식을 개방하는 ‘아직은 아닌’의 상태이다.

나는 ‘보리라.’라는 우리말을 사용함으로써 ‘소원’, ‘간절히 원하는 바......’, 그러나 채워지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바람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1996년 새로운 실내음악을 위한 비트너 음악제(Wittener Tage)에서 초연된 여성중창과 10개의 악기를 위한 곡 ‘소원/ Wunsch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내 삶의 반 이상을 서양인의 발성과 그 형태를 기반으로 발전된 서양악기를 위한 작곡에 할애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여전히 극동의 문화에 그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두 가지 사이에는 엄연한 긴장이 존재하고 나는 이것을 내가 타인이며 이방인임을 의식하면서 참고 견뎌낸다.

‘교량'은 항상 존재한다. 나는 이런 ’다리‘를 발견하고 그 위를 걸을 때 마다 ’귀향‘의 부재를 인식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이 끝나는 저 곳으로‘는 또 하나의 내 음악을 감싸고 도는 실향의 메아리 같은 것이다.

오랜 전부터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 도교적 성격이 발견되는 인물들이 내 작품생활을 동반하고 있다. 그리스의 비극에 등장하는, 낯선 곳을 헤매고 다녀야하는 이오(IO)나 고령의 나이에 타향에서 안정과 마지막 평온을 얻게 되는 오이디푸스와 같은 인물들이 그렇다. 이런 신화적 인물들은 현재에도 우리 주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코스모폴리타나이즘(cosmopolitanism)과 세노포비(Xenophobie)의 사이에는 아직도 깊은 벼랑이 존재한다.

"호머가 ‘바바로폰(barbarophon)' 이라는 개념을 창조한 배경에는 블라-블라, 바라-바라’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소리가 있다.“

......

“처음에는 이런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깔보는 의미에서 ‘바바렌(Barbaren)‘(미개인)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곧 ’거친 언어의’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

“이렇게 하여 타인들 (즉 외국인들)은 기이한, 비이성적인 또는 단순하면서도 원칙적인 의미에서 이해 불가능한 언어의 소유자로 미개인(Barbar) 취급을 받게 되었다.”

......

오늘날 우리가 서방세계에서 자국에 체류하는 이방인(외국인)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잘 관찰해 보면 현대를 사는 우리와 고대 그리스인들 사이에 별 차이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인을 대할 때 즉흥적인 반응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져 있으므로 이방인에게도 당연하게 부여되어야 할 인권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타국인(Metoeken)'을 대하는 유일한 기준은 해당 체제국가에 대한 경제적인 활용성이다.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체류의 가부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적인 필요성이며 이것이 곧 코스모풀리타나이즘과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Xenophobia) 사이의 필터 역할을 한다.“ (이상 Julia Kristeva, Fremde sind wir uns selbst, Edition Suhrkamp, 1990에서 발췌)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음악문화에서도 착각은 금물이다. 내가 오케스트라 곡을 쓸 때 오케스트라는 나에게 꾸준한 적응의 과정을 요구하는 낯선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가 내 것이 될 수 있음은 한국의 전통음악이 추구해온 개별 악기에 대한 최대한의 자율성을 돌려줌으로서 가능해진다. 말하자면 실내음악 앙상블이 서로 대립하면서 색깔 있는 하나로 융화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선택된 내용들을 직선적으로 소리화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상호 대립되는 언어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로 앙상블을 통해 태어나고 또 그 안에서 살아난다. 이 중에는 이제 내게 익숙해진 독일숙어들도 포함된다.
소프라노, 대금, 글리산도 플룻, 해금, 가야금과 첼로를 위한 '기다려라, 곧 …' (2015)
소프라노와 비올라를 위한 '내 마음 I' (2020)

소프라노와 기타를 위한 '내 마음 II' (2020)

2.6. 합창곡

시인 김지하는 황토를 한국민중들의 고난사의 상징으로 그리고 자유와 민주에 대한 갈망을 담은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황토를 작곡하기 위해 박-파안 영희는 김 지하가 정치적으로 탄압 받던 시기에 지은 시 중 다음의 세 편을 선택하였다.

'들녘'은 땅을 인간공동체에 비유해서 땅의 파괴를 주제로 한 시이며 '서울길'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여 자기의 영혼을 팔고 궁극적으로 존재의 핵심을 포기하게 되는 농부의 운명을 그린 시이다. '비오는 밤'에서는 이농의 참담한 결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고향에 대한 허황한 갈망, 그러나 귀향은 이미 불가능하다.

작품에는 위의 시들이 소개된 순서대로 편성되어 있다. '이농으로 인한 공동체 파괴의 과정'이 그려지는 것이다. 박 영희는 이 "이야기"를 단순히 음으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서술한 시의 구절들, 그 안에 담겨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서로 만나고 반복과 전환을 겪게 함으로서 형상화시킨다.

한글과 독일어로 된 제목은 작품의 이중언어성을 보여준다: 곡의 중간 부분 ('서울길')은 한글 가사를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시작 부분과 끝 부분에서는 가사가 한글 원본으로 또는 독일어 번역으로 불려진다. 이를 통해 작품은 다양한 발성, 음의 연계를 요구하며 음성학적만으로도 엄청난 표현력의 폭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작곡가 자신의 특별한 상황인 그녀가 태어나 성장한 동양문화와 현재 활동하는 서양문화의 이중문화성이 분명해진다. 박 영희의 작품에서 유럽적인 면은 우선 그 연주자 즉 혼성합창단과 관현악 연주자들이다.

기보형식과 악보 역시 유럽식이지만 작곡에 사용한 소재나 기법은 한국의 농악에 기인한다. 악보구성의 중심은 합창과 타악기이며 그 위로 관악기, 그 아래로 현악기가 표기되어 있다. 소리와 북의 연계는 판소리의 일반적인 형식이다. 판소리는 일종의 발라드형식으로 양면으로 가죽을 입힌 북이 소리를 동행한다. '황토'는 한 연주자가 다루는 15개의 다양한 타악기의 연주시간을 치밀하게 제시하여 전체 음악을 주도하도록 하고 남성독창의 경우도 합창부의 여러 부분에 시간적으로 정확하게 제시하여 실제 농악에서는 매우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작품에는 작곡가의 완벽한 표기에 따르도록 되어있다. 다성의 효과는 이질적인 음의 사용으로, 단일음의 확대효과는 동시에 울리는 변음(Variante)을 사용하였다.

황토에서는 판소리를 연출하는 소리꾼과 고수 두 명을 합창단과 타악기로 확대하였고 이에 8개의 솔로악기를 추가하였다. 이들의 악음이 합창과 함께 어울리면서 이 작품이 요구하는 특이한 발음과 음색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준다.
우리나라의 두 번째 사제이신 최양업신부님의 라틴어 서한집에서
올해는 최양업신부의 사제서품 160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이러한 계기로 그분을 찬양하는 음악을 작곡하여 그분을 기리고자 했습니다.

가사는 최양업신부의 라틴어서한에서 근거합니다. 이 곡의 두번째 부분은 캐논형식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선두주자의 노래를 다른 파트에서 따라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형식을 사용한 이유는 그 서한이 한 공소에서 다른 공소로 화답하여 최양업신부의 영성기도가 널리 퍼져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2.7. 음악극 (오페라)

브레멘 음악대학 교수이자 한국작곡가인 박-파안 영희의 첫 오페라 작품은 ‘달 그림자’라고 하는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갖고 있다. 이 작품은 슈트트가르트에서 열리는 세계현대음악축제(World New Music Festival) 행사 중의 하나로 7월 21일 잉그리드 폰 반톡 레코브스키(Ingrid von Wantoch Rekowski)의 연출로 초연된다.

이 오페라의 각본은 원래 스튜트가르트 국립극장 수석희곡가인 율리아네 보텔러(Juliane Votteler)가 소포클레스의 원작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기반으로 썼다. 그러나 작곡가 박-파안 영희와 오페라극본을 쓴 율리아네 보텔러가 공동작업을 하는 동안 동양적인 관점에 대한 개방성이 요구되었고 이에 철학자 한 병철 씨의 한국적인 철학과 불교 선시(禪詩)의 형식을 도입함으로서 동양과 서양이 통합되는 형태를 이루게 된다
오페라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왕조가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한 1839년부터 최양업 신부가 과로와 장티푸스로 사망한 1861년까지이다. 오페라가 펼쳐지는 장소들은 최 신부와 관련된 고군산도를 비롯하여 조선 5개도의 심산유곡이며 박해와 관련된 포졸들, 한량, 동네 이장이 등장한다.

오페라의 주인공은 최양업 신부이다. 최 신부가 선종했을 때, 검게 탄 얼굴에 ‘흰 갓끈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전국의 교우촌을 다니며 그가 흘린 땀과 헌신의 발길은 가난한 민초들을 구원하고자 함이었다. 백성을 위한 그의 삶과 사상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지표가 된다. 최 신부는 선구자로서 서양의 학문과 가치를 배우기 위해 만주와 마카오, 상해와 심양 등을 누빈 사람으로 인생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순례하며 진리를 추구한 구도자의 전형을 보여 준다.

오페라의 또 다른 주인공은 최 신부의 부모인 최경환 성인과 이성례 복자이다. 전 세계에서 추앙받는 이분들의 삶은 인생에서 최선의 삶과 최상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6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한 가정이 최고선을 위해 희생하고,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는 모습은 현대 가정의 모범이 되고 있다. 죽음을 초월해서 살아있는 가족애는 이 세상 안에 숨어 있는 영원한 가치와 신념을 보여 준다.

오페라의 진정한 주인공은 진리를 찾는 민초들이다. 조씨 가족, 양반 부인, 바르바라 여인,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 장정과 아낙네, 병자, 박해받는 아가타 등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역경 가운데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삶을 보여 준다.

3. 수상 경력

4. 창작 성향

대부분의 작품 제목을 한국어로 적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전통음악이나 여타 문학/예술에 대한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윤이상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윤이상에 비하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상당히 긴축되고 압축된 모양새를 띄고 있으며, 좀 더 명상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

다양한 음색에 대한 탐구라는 명제를 굉장히 깊이 파고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특히 타악기를 사용하는 곡에서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 방면에서 악명높은(?) 헬무트 라헨만 같은 골수 아방가르드 작곡가들과 달리, 대부분의 곡에서 연출되는 음색이나 음향은 매우 온화하고 부드러운 편이라 난해하게 들리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을 정도.

다만 기악이던 성악이건 연주 기교는 여타 독일 출신 혹은 독일 수학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어렵게 짜여져 있으며, 이러한 비타협성 때문에 '듣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데 연주하는 입장에서는 미쳐버릴' 상황이 종종 연출되기도 한다. 이는 유럽 외에 한국에서 위촉받아 쓴 곡들도 마찬가지인데, 2007년에 국립국악관현악단 국가브랜드 공연을 위해 위촉받은 첫 국악관현악 작품도 연주의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 리허설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바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다가, 자기 비판 정신도 강해서 작품 숫자는 별로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쓰는 작품마다 규모나 편성, 연주 시간을 떠나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양보다는 질에 중점을 두는 작곡가라는 평도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작품에서 음들을 계속 덜어내면서 정적인 형태의 음악을 추구하는 것으로도 생각된다.

가사가 들어가는 곡들의 경우 김광균이나 김지하 등의 한국 문인들이 쓴 시 혹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작품들에서처럼 한국의 2번째 가톨릭 사제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라틴어 서한집 등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꼭 한국 작가들의 것만 취하지는 않고 있다. 안나 아흐마토바나 로제 아우슬랜더, 루이제 라베 등 서양 여성 문인들의 시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하인리히 하이네 등 고전적인 독일 문인들의 시로 쓴 작품들도 많다. 심지어 '봉화' 처럼 반나치 저항 조직으로 유명한 하얀 장미 단원들의 격문과 편지, 최후 변론 등을 사용해 강한 사회 참여 성향을 보인 작품들도 있다.

5. 한국의 평가

독일과 유럽 등지에서는 꽤 유명한 작곡가지만, 독일 유학 후 아예 국적을 변경해 눌러앉은 탓에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게다가 '소리' 같은 곡은 당시 한국의 정세에 비춰보면 대단히 꺼림칙한 곡이었다는 점도 아마 문제가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인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간행한 '한국작곡가사전'에도 수록되지 않는 푸대접을 받기도 했다.[6]

그나마 민주화가 진척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 들어 박영희 작품에 대한 연구 논문 등이 한국에서도 발표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부터는 모교인 서울대에서 초빙 제의를 받고 몇 차례 방한해 강연회와 작품 발표 등을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 마냥 호의적인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명박 정부 초기에 월간지 '객석'에서 한 인터뷰를 보면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새 정부의 사대주의적인 문화 정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가한 바 있다.(심지어 '어륀지'도 깠다!)

아무튼 아직까지 한국에서 지명도는 작곡 전공자들을 빼면 그리 높지는 않고, 한국어판 위키피디아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아마 이 나무위키의 문서가 한국어 웹 백과사전 계통에서는 가장 처음 등재된 사례일 듯.

6. 그 외

외국에서 쓰는 이름 표기는 위에서처럼 'Younghi Pagh-Paan'인데, 끝에 붙은 Paan은 성씨가 아니라 호인 '파안(琶案)'의 알파벳 표기다. 김용옥이 붙여주었다고 하는데, 뜻은 '책상에 놓인 비파를 보며 생각에 잠기다'라고 한다.

[1] '높고 깊은 빛' 의 실내 관현악용 편곡판.[2] 1986년에 클라리넷 대신 알토플루트를 써서 편곡한 버전도 '만남 II' 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3] 탬버린처럼 북통의 한쪽 면만 가죽이 씌워진 형태의 타악기를 지칭함.[4] 생황을 구하기 어려울 경우 아코디언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5] '초희와 상상의 춤' 의 개작판[6] 참고로 저 사전에는 한국인 외에 세계 각지의 교포, 조선족, 북한 작곡가들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음에도 빠져 버렸다. 윤이상진은숙도 들어갔는데도 말이다. 편집자가 무슨 생각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