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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 ||
입성날짜 | 1997년 8월 14일 | ||
위치 | 6925 Hollywood Blv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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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b><colcolor=#fff> 윌리엄 프리드킨 William Friedkin | ||
출생 | 1935년 8월 29일 | |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 ||
사망 | 2023년 8월 7일[1] (향년 87세) |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83cm | |
직업 | 영화감독 | |
활동 기간 | 1962년 ~ 2023년 | |
배우자 | 잔느 모로(1977년 ~ 1979년) | |
레슬리 앤 다운(1982년 ~ 1985년) | ||
켈리 레인지(1987년 ~ 1990년) | ||
셰리 랜싱(1991년 ~ 2023년) | ||
자녀 | 아들 잭슨 프레드킨, 세드릭 프레드킨 | |
서명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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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감독. 1970년대를 풍미한 영화 감독 중 한 명이다.2. 생애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으로 부모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다.[2] 시카고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농구를 잘해서 프로 농구선수가 될 뻔 했다고 한다. 그렇게 모범생은 아니라서 간신히 졸업할 정도의 성적만 받고 20세 때 2-3년제 전문대학을 졸업을 한 이후부터 방송국에서 수백~수천편의 TV쇼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한 윌리엄 프리드킨은 이렇게 몸으로 익힌 촬영 스타일을 바탕으로 프렌치 커넥션과 엑소시스트 등의 리얼한 장르 영화들을 만들어서 아카데미를 싹쓸이 하면서[3]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피터 보그다노비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과 함께 70년대 헐리웃의 기린아로 떠오르게 된다. 70년대 후반은 명실상부 프리드킨의 리즈 시절로, 젊은 거물이 되어 연예인에 가까운 삶을 사는 등(...)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쥘과 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등에 나온 저명한 프랑스 배우 잔느 모로와 1977년에서 1979년까지 결혼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바닥이 그렇듯 마약 중독[4]과 섹스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결국, 엑소시스트 이후로 찍은 작품의 평가가 점점 안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프랑스 걸작 ‘공포의 보수 (Le Salaire De La Peur/The Wages Of Fear, 1952)’를 리메이크한 <소서러>를 대차게 말아먹고 명성이 점점 묻히게 되었다. 이는 프리드킨의 개인적인 방탕함도 한 몫하지만, 그의 영화적 방법론인 대중적 장르와 다큐멘터리적 접근을 결합하는 것의 근본적인 한계였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점차 뉴 아메리칸 시네마와 누벨바그에서 시작한 자유롭고 파괴적인 영화 문법이 대중들에게도 익숙해지게 되었고, 프리드킨의 영화들이 더 이상 신선한 무언가가 아니게 된 것. 나름대로 적절하게 두 스타일이 조화된 엑소시스트까지 대히트를 쳤으나, 점점 권한이 커진 프리드킨은 막대한 제작비와 제작기간을 연장해가며 자기 맘대로 영화를 찍게 되었고, 대중들이 외면하면서 커리어는 바닥을 치게 된 것이다.[5] 프리드킨은 커리어 내내 어두운 에너지와 인간의 금기시된 광기를 주목하였는데(지금으로 치자면 나홍진 같은)[6], 이런 어둡고 음습한 에너지의 영화들이 점차 대중들에게 잘 먹히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결국 프리드킨은 암흑의 8-90년대를 잊혀진 스타로 지내게 되고, 절치부심하여 자신의 정수만 모아 만든 근작 킬러조로 어느 정도 복귀하게 된다.
자기 작품 홈비디오 출시에 열정적인 감독으로 유명하다. 프렌치 커넥션 블루레이처럼 병크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음성 해설이라던가 인터뷰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편. 원래 자기 과시가 심한 감독이기도 했으나 나이 들어 자신의 화려한 리즈 시절(...)을 가감없이 고백하기도 한다. 자기와 잔 여배우만 몇백명이라거나 리스트를 모아놨다는 등...
2023년 8월 7일, 87세의 나이로 타계하면서 베니스 영화제 출품을 앞둔 케인호의 반란 군사재판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
3. 영화들
- 프렌치 커넥션
당시 마약 밀매 루트는 프랑스 마르세이유가 대세였다. 도일(진 해크먼)은 수사 강행으로 범죄자들을 잡으려고 하는데...실화를 각색했다. 속편도 나왔지만...전편보다 못하다는 평이다. 프랑스 누벨바그와 뉴아메리칸시네마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핸드헬드 촬영과 점프컷을 활용해 현장감을 극대화 시킨 연출이 일품이다. 카 체이스 중 유모차를 위협한건 영화 스피드에서 패러디(?)된다.
- 엑소시스트
호러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영화. 개봉 당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호러 영화 베스트를 뽑으면 언제나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이렇게 대단한 이유는 이전 호러 영화와는 다르게 정말 리얼한 연출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60년대 누벨바그에 영향을 받은 헐리웃은 뉴아메리칸 시네마라는 새로운 경향의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을 받아 나온 가장 성공한 호러 영화가 엑소시스트이다. 엑소시스트 이전 호러 영화들은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고 호러 영화 특유의 과장된 표현주의 연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던 윌리엄 프리드킨은 당장 미국인 중산층 가정에서 일어날 법한 생생한 장면을 연출해냄으로서 당시 관객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영화를 보다가 졸도하거나 심장마비로 사망한 관객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엑소시스트>의 흥행 성공 이후 수많은 아류 오컬트 호러 영화들이 만들어졌는데, 이중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가 <오멘>이다. 이 영화에 대한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조하길 바란다.
- 소서러 (Sorcerer) 1977년작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걸작 공포의 보수 (Le Salaire De La Peur /The Wages Of Fear, 1952)를 리메이크했다. 원작이 너무나도 엄청난 호평을 받아서[7] 리메이크를 두고 말도 많았거니와[8] 무엇보다 제목이 충격적이었다. 제목 덕에 제작자들은 이건 무슨 판타지 영화나 오컬트 호러도 아니고! 바꾸라고 했음에도 프리드킨은 이 제목(소서러는 바로 등장인물들이 타는 트럭에 붙인 이름이다.)을 고집했다. 그리고 망했다.[9] 제작비 반도 못 건지면서 프리드킨의 이름값이 몰락하는 전주곡이 되었다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후로 꾸준히 영화를 만들었지만... 하지만 이 영화는 재평가도 받으면서 원작못지않은 리메이크 명작으로 꼽는 이들도 많다. 무엇보다 프렌치 커넥션 못지않은 트럭 질주씬이라든지, 재해석된 인물들의 설정이라든지 감독의 개성도 많이 들어가 있다. 소개한 블로그 우습게도 10분 이상이 잘리고 나온 국내 비디오 제목은 워맨, 표지나 홍보자료를 보면 액션 모험물처럼 비디오를 냈다.
상술한 대로 이 영화가 망한 데는 제목이 좀 기여를 했다. 일단 그 이전에 윌리엄 프리드킨이 만든 엑소시스트가 역대 흥행 기록을 갱신해 버리는 등 어마어마한 히트를 쳤는데 거기에 '주술사'를 뜻하는 Sorcerer가 제목으로 들어갔으니 사람들이 약간 오컬트스러운 호러 영화라고 착각하고는 보러 갔다가 당황한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술했듯 1977년에 하필이면 스타 워즈가 개봉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 영화의 참패와 스타 워즈의 성공이 할리우드의 시대적 변화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말하기도 한다.
2012년 4월 이 영화 공동 제작, 배급사인 파라마운트와 유니버설 영화사를 프리드킨이 고소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간 여러 시네마테크 등지에서 프리드킨에게 상영 문의를 해왔는데, 파라마운트와 유니버설 중 어느 쪽도 판권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며 책임을 미룬 터라 영화를 상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참에 출처를 명확히 하자는 심산이었던 것. 결국 파라마운트의 판권은 다했고 유니버설에 판권이 가 있음이 밝혀졌는데, 이후 워너 브라더스까지 가세하여 파라마운트에서 극장판 판권을, 디지털 복원 작업 비용을 댄 워너브라더스에서 홈비디오 및 스트리밍 시장 판권을, 유니버설에서 TV 방영판권을 가지게 되었다. 2014년 4월 22일에 블루레이로 나왔다. 엑스트라는 디지북밖에 없다.
- 광란자
알 파치노 주연의 1980년작.[10] 동성애자들만 노리는 연쇄살인마를 잡기위해 동성애자로 위장해 잠복근무에 들어간 경찰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스릴러물. 80년대 뉴욕 게이씬의 모습을 잘 담아냈으나, 굉장히 맥빠지는 후반부때문에 좋은 평가는 얻지 못했다. 제작 당시 동성애자 단체에서 크게 반발했는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이게 뭐가 대수인가 싶지만 당시만해도 미디어 매체에서 동성애자의 모습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동성애자가 연쇄살인마로 나오는 이 영화에 대한 반발은 클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도 미개봉되었으나 SK그룹 계열인 SKC비디오에서 출시한 바 있다.
아이러니한게 윌리엄 프리드킨은 1968년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1970년에 <밴드의 소년들>이라는 미국영화 최초로 게이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한 작품을 만들었다.
- 세기의 거래
1983년작으로 배급은 워너 브라더스. 시고니 위버, 그레고리 하인즈, 체비 체이스 주연으로 로드 오브 워 블랙코미디 버젼. 남미 독재자에게 무기를 팔려는 무기 브로커 주인공이 이야기가 꼬이며 벌어지는 이야기에 풍자를 담고 무기밀매에 대하여 비아냥적인 시각을 넣었던 작품. 흥행은 기대 이하였고 평은 호불호이다. 국내에서 미개봉하고 1990년 초에 SKC에서 세기의 거래라는 제목으로 비디오를 냈고 토요명화에서 1998년 1월 17일 <위험한 거래>라는 제목으로 더빙 방영한 바 있다.
- 리브 앤 다이/늑대의 거리 (원제목은 To Live and Die in L.A./ LA에서 살다 죽기)
1985년 작. 중소업체인 베스트론 픽쳐스가 제작했으며 배급사는 MGM. 윌렘 대포가 나오는 범죄물 피카레스크 스릴러. 비밀경호국 요원 출신의 주인공이 위조지폐범 일당에게 동료를 잃게 되자 복수귀가 되어 위조지폐범을 조지러 도시를 해집는 내용인데, 복수귀의 부정적인 요소들만 집대성해서 극대화시킨 인물이다. 샷건에 머리를 맞는 폭력적인 묘사와 음부가 노출(그림자에 약간 가려지긴 했다.)되는 등 수위높은 묘사가 많다. 영화가 시작부터 끝까지 냉소주의의 극치를 달리고 경찰이나 악당이나 오십보 백보이며 후반부에서 주인공은 어이없게 죽지만, 주인공이 영화내내 하는 행적을 보면 동정이 안 간다. 그리고 주인공 동료가 악당을 죽이지만, 주인공의 가죽자켓을 입고 여주인공을 차지하게 되는 찝찝한 결말로 끝난다. 따라서 이 영화는 권선징악이 아니다. 영화 자체는 재미있으나 다수의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장르는 아니며,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고 많은 당시 비평가들이 입을 모았다. 그래도 개봉 당시에는 흥행은 성공했고 평이 그저 그랬으나[11] 재평가되고 난 뒤에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주인공은 훗날 CSI 라스베거스의 길 그리섬이란 이름으로 경찰 반장이 된다! 6백만 달러 저예산으로 만들어져 173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1988년 1월 27일에 리브 앤 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음에도 서울관객 4만으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해서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오아시스란 업체에서 늑대의 거리라는 제목으로 비디오로 소리소문없이 냈는데 비디오 어디에서도 개봉작이라고 나오지도 않았으며 더불어 이 비디오는 번역이나 여러가지로 개판이지만, 그래도 월간 키노에서 비디오를 뒤져서 찾아볼 보물로 선정하면서 영화 매니아들에게 수집대상이 된 바 있다. 기타노 다케시가 좋아하는 영화로, <그 남자 흉폭하다>를 만들때 광기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2023년 7월 18일 북미 키노 로버에서 4K 블루레이로 출시되었다.
- 램페이지 1988년작
늑대의 거리를 비디오로 낸 오아시스에서 비디오로 냈는데 비디오 표지를 보면 액션물처럼 엉터리로 포장되었다. 터미네이터 1편에서 카일 리스로 나온 마이클 빈이 주연이라 그런지...참고로 법정 스릴러물이다. 이 작품도 80년대 프리드킨 영화에서 꽤 괜찮다는 평을 받았는데 늑대의 거리와 마찬가지로 국내 비디오는 삭제질 및 번역이 엉망이고 화질도 기대를 하면 안된다.
미국 영화지만 배급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유럽에서만 개봉했고, 북미에서는 1992년이 되어서야 개봉했다고 한다.
- 가디안 1990년작
살아있는 나무 정령이 어느 집안의 갓난아기를 노린다는 호러물. 가정에 대한 풍자로 볼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런 평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여튼 90년대 들어서 내리막길이 된 프리드킨 영화라는 평가도 있다. 1995년 10월 7일 토요명화로 더빙방영한 바 있다.
- TV 시리즈 CSI: Crime Scene Investigation 시즌 8 ep 9, 시즌 9 ep 18
위의 설명에서 언급된대로 리브 앤 다이/늑대의 거리 (To Live and Die in L.A.)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윌리엄 패터슨(길 그리섬)과의 친분으로 2007년 CSI 라스베가스 시즌8 ep9 바퀴벌레(Cockroaches)의 연출을 맡았다. 평가가 나쁘지 않아서 윌리엄 패터슨이 제작책임자로 물러난 이듬해 2008년, 200회 특집인 시즌9 ep18 마스카라(Mascara)에서도 연출을 맡았다. 프리드킨이 한국에서는 오래전에 잊혀진 사람이라서 별다른 반향이 없긴 했다.
- 킬러 조(영화)
2011년작. 제한상영으로 개봉하였고 흥행은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흥행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는 좋은 편이다.
- 엑소시스트: 악마와 싸우는 사제들 (2017)
실제 구마의식을 허가받고 찍은 구마의식 다큐멘터리. 엑소시즘에 대한 영화를 찍었지만 실체를 본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케인호의 반란 군사재판 (2023)
10여년 만의 신작이자 유작으로, 키퍼 서덜랜드, 제이슨 클라크, 랜스 레딕이 출연한다. 2023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 극장 개봉이 아닌 파라마운트+로 OTT로 10월 6일에 개봉했다. 평은 메타크리틱 71점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2014년 <트루 디텍티브> 시즌 2 에피소드 감독 논의로 닉 피졸라토와 만났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 2015년 매튜 매커너히, 월튼 고긴스 주연으로 돈 윈슬로의 소설 <프랭키 머신의 겨울> 영화화 감독으로 내정되어있었으나# 제작이 엎어졌다.
4. 여담
- 엑소시스트의 원작자 윌리엄 피터 블래티와 말년까지 친한 사이였다.
- 프리드킨이 뽑은 열편의 영화.#
- 프리드킨이 뽑은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에서 뽑은 DVD와 블루레이.#
- 프리드킨은 앨프리드 히치콕과 만나게 된 기회가 있었는데 티셔츠에 재킷만 입은 초라한 프레드킨을 보고 히치콕이 보통 감독은 넥타이를 입는다는 쓴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5년뒤 LA 감독 조합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프레드킨은 히치콕을 만나서 탈부착식 나비 넥타이를 보여주며 이 넥타이는 어떠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
- 니콜라스 윈딩 레픈과 인터뷰를 하다가 농담을 주고 받은 적이 있다. 윈딩 레픈이 자신의 작품 <온리 갓 포기브스>를 내가 만든 작품 중 마스터피스라고 평가했다가 미쳤나고 했다. # 인터뷰 풀버전
[1] 88세 생일을 22일을 남기고 사망했다.[2] 그의 아버지는 세미프로 소프트볼 선수이자 상선 대원, 남성복 판매원이었고, 어머니는 수술실 공인 간호사였다.[3] 특히 프렌치 커넥션은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각색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4] 70년대 서양 연예계에서 마약은 거의 당연한 문제였지만...[5] 사실 이건 프리드킨만 그런게 아니라 동료 감독들도 비슷했다. 프리드킨은 그나마 최근작 킬러 조로 스타일 면에서는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한 편이었고, 피터 보그다노비치(1939~2022)나 할 애슈비, 제리 샤츠버그(1927~ ) 같은 감독들은 아무도 안 불러줄 정도로 몰락해버렸다.[6] # 나홍진은 윌리엄 프리드킨의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인터뷰했을 정도로, 프리드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이 인터뷰에서도 본인에게 자극을 준 감독 중 한 명으로 꼽을 정도. # 또한, 프랑스 매체에서도 나홍진의 곡성을 호평하면서 윌리엄 프리드킨을 언급했다. # 영화감독 박수민은 나홍진의 곡성과 프리드킨의 작품을 연관지었다.[7] 막판의 엔딩 및 여러 장면은 지금 봐도 뒤쳐지 않는 장면이다... 오죽하면 당시 이걸 본 이승만이 충격을 받아서 자르라우요! 이랬을까...[8] 애초에 프리드킨부터가 원작을 능가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단다. 원작의 감독인 앙리-조르주 클루조를 만나 리메이크 계획을 밝힌 다음 "하지만 감독님 작품만큼 잘 만들지는 못할 겁니다."라고 말했다고.[9] 제작비가 2200만 불인데 전 세계 흥행은 500만 불에 불과했다! 참고로 같은 해(1977년)에 개봉한 스타 워즈 제작비가 800만 불이었다![10] 당초 리처드 기어가 주인공역을 맡으려 했으나 70년대를 제패하다 시피했던 알 파치노가 흥미를 보이면서 기어는 밀려나게 되었다. 프리드킨은 캐스팅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현재는 파치노의 연기에 만족한다고 밝힌바 있다.[11] 다만 로저 에버트는 만점을 줬다.[12] 샌프란시스코 카체이싱 장면은 호평을 받았지만, 영화를 뒤집을 만큼 호평을 받지 않았다.[13] 흥행실패에 평은 안 좋았지만,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4점 만점에 별 3.5개를 주며 윌리엄 프리드킨의 긴박한 연출을 칭찬했다. 그 외에 베니시오 델 토로와 토미 리 존스의 날것에 가까운 나이프 파이팅 장면이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