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 ||||
최우수 외국작품상 | ||||
제11회 (1988년) | → | 제12회 (1989년) | → | 제13회 (1990년) |
플래툰 | → | 마지막 황제 | → | 다이 하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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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6600><colcolor=#ffffff> 마지막 황제 (1987) The Last Empero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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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시대극, 서사시, 드라마 |
감독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각본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마크 페플로 |
원작 | 아이신기오로 푸이 - 자서전 《황제에서 시민으로[1]》 |
제작 | 제레미 토마스 조이스 허리히 |
주연 | 존 론 조안 첸 피터 오툴 잉뤄청 빅터 웡 데니스 던 사카모토 류이치 |
촬영 | 비토리오 스토라로 |
편집 | 가브리엘라 크리스티아니 |
음악 | 사카모토 류이치 데이비드 번 충쑤 |
미술 | 페르디난도 스칼피오티 지아니 지오바노니 지아니 실베스트리 마리아 테레사 바바소 |
제작사 | 컬럼비아 픽처스 |
수입사 | 지미필름 더쿱 재개봉 |
배급사 | 컬럼비아 트라이스타 픽처스 예지림엔터테인먼트 재개봉 |
개봉일 | 1987년 10월 23일 1987년 11월 18일 1988년 1월 23일 1988년 2월 26일 1988년 12월 24일 2015년 2월 26일 재개봉 |
상영 시간 | 162분극장판 | 218분감독판 |
대한민국 총 관객수 | 250만명 (1988~89년 추정) 65,708명 (재개봉) |
상영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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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출신 영화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연출의 1987년 영화.청나라, 더 나아가 중국 역사상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푸이의 유년 시절부터 신해혁명, 만주국의 꼭두각시 황제에서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의 다사다난했던 삶을 보여주는 영화.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각색상·촬영상·편집상·음악상·음향효과상·미술상·의상상 총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해당 부문을 싹쓸이했다.
상영이 막을 내린 후에는 전 세계적 흥행 실적에 힘입어 홍콩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했다.
2. 예고편
예고편 |
[kakaotv(65634003)] |
재개봉 예고편 |
3. 특징
담담한 스토리 진행으로 자칫 심심한 영화로 비칠 수 있으나 관객의 눈을 빼앗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비주얼과 뛰어난 음악을 자랑하는 영화라 긴 러닝 타임이 아쉽지 않은 영화이다. 특히 이례적인 중국 정부의 허락에 자금성 올 로케로 제작해 그 사실적인 규모와 미를 살려낼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2] 다만 이 때문에 당시 중국을 방문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자금성을 방문하지 못한 해프닝도 있었다.영화 음악은 토킹 헤즈의 데이비드 번과 YMO의 사카모토 류이치와 충쑤(Cong Su)라는 음악가가 맡았다. 사카모토는 음악 외에도 만주국의 관제 단체인 협화회의 일본인 실세들 중의 한 사람인 아마카스 마사히코라는 꽤 비중있는 역할을 맡아 연기도 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많은 기억에 남는 곡들이 탄생했으며, 특히 'Rain'이라는 곡은 매우 유명하다.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긴장감을 줄 때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인다. 이 외에도 메인 테마곡 등 들어볼 만한 곡이 많은 영화다.
한국 흥행 성공 이후 한국에서는 1990년대까지 광고나 방송 등에서 중국이 배경일 때는 꼭 이 영화 메인 음악이 들어가곤 했다. 예를 들면 대한항공이 중국 무슨 도시에 취항한다는 내용의 광고에 사용한다던가...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 메인 테마에 여가수가 중국어로 노래를 부른 곡도 있다. 1990년 초반 FM 라디오 방송 이선영의 영화음악실에서 몇 번 틀어주고 이후 국내 방송에서는 메인 테마를 더 많이 틀어줬다.
감독판과 국내 개봉 극장판의 차이가 상당한 영화 중 하나다. 극장판에는 만주국 황제가 된 푸이가 군주로서 무언가를 해보려 하다가 자신이 일제의 꼭두각시임을 깨닫고 좌절하는 주요 장면들을 비롯해 상당한 씬들이 잘려있으므로 감독판을 볼 것을 추천한다.
4. 등장인물
- 부의 - 존 론 (배한성)
- 3세 부의 - 리차드 부
- 8세 부의 - 추제격 (박영남)
- 15세 부의 - 오도
- 완룽 - 조안 첸 [3] (송도영)
- 레지널드 존스턴 - 피터 오툴 (김종성)
- 소장 - 잉뤄청 (김병관)
- 진보침 - 빅터 웡[4] (황원)
- 리 - 데니스 던
- 아마카스 마사히코 - 사카모토 류이치 (이정구)
- 카와시마 요시코 - 매기 한 (이경자)
- 원슈 - 오군매 (손정아)
- 심문관 - 영화용[5] (양지운)
- 법무대신 - 장시림 (장광)
- 군인 대장 - 천카이거 (최병상)
- 하인 리 - 데니스 던 (장세준)
- 가이드 - 루시아 황 (박은숙)
5.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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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스코어 76 / 100 | 점수 8.1 / 10 | 상세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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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 90% | 관객 점수 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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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14181c><tablebordercolor=#14181c><tablebgcolor=#fff,#191919><:> ||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fc0><bgcolor=#fc0> ||
전문가 별점 없음 / 5.0 | 관람객 별점 3.8 / 5.0 |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005><bgcolor=#005> ||
별점 7.889 / 10 |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f00><#fff,#ddd> ||
별점 4.03 / 5.0 |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333><bgcolor=#333> ||
평점 8.4 / 10 |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6699cc><#edf4ec> ||
별점 9.2 / 10 |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ff0558><bgcolor=#ff0558> ||
별점 3.8 / 5.0 |
||<-2><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ordercolor=#101322><#101322><tablebgcolor=#fff,#191919> ||
지수 96.08% | 별점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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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8.8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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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없음% |
6. 흥행 외
비슷한 시기 스티븐 스필버그의 태양의 제국과 격돌했는데, 태양의 제국은 스필버그의 이름값을 감안하면 기대 이하 흥행을 기록했으나 마지막 황제는 28주 동안 롱런하며, 4천 4백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엄청난 흥행은 아니지만 제작비가 240만 달러라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대박이다. 이후 마지막 황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완승하며 평단과 흥행 모든 면에서 승리.다만 완성도 자체는 이견이 없는 명작이나 몇몇 비평가 사이에선 베르톨루치의 전작에서 보인 역사와 사회, 정치, 성에 대한 날선 시선 대신 오리엔탈리즘이 대신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6] 이는 중국 본토 개봉시에도 비슷한 반응이었다고 전해진다.[7] 이후로도 베르톨루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 입각한 영화들을 연달아 제작하여 개봉하였는데, 결국 서구 영화를 찍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중국 내에서도 재평가받아 중국의 관객들과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데 특히 더우반에서는 10점 만점에 9.3점을 기록, 압도적인 호평을 받고 있으며 중국내에서 몇 안되게 인정하는 서양권 제작의 중국 배경 영화라는 반응이다.
한국에서는 1988년 말 김지미가 세운 영화업체 지미필림[8]에서 수입해[9] 서울 75만 관객(전국 250만 정도)을 기록해 외화 및 1988년 개봉작 총 흥행 1위를 차지했다.(브루스 윌리스를 알린 다이 하드 1편이 2위) 다만, 이 영화의 흥행 성공 이후 서태후 등 청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그린 비슷한 영화들이 여러 편 중국에서 제작되어 한국에 차례로 개봉했으나, 흥행과 비평은 이 영화에 견주면 처참할 정도다.
영화 중간에 전범 수용소에 수감된 푸이가 정치교육을 받던 중 교도관들이 중일전쟁 다큐멘터리를 틀어주는데 일본에 개봉할 당시 배급사 쇼치쿠가 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난징 대학살 사건 등 일본군의 만행을 다룬 기록 필름 상영 부분을 삭제하여 문제가 됐다. 감독의 엄중한 항의를 받고 결국 원본대로 상영하였는데, 일본인 관람객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지 편집 전후 여파에 관계 없이 흥행은 성공적이었고 평도 좋았다. 푸이 역할의 존 론도 주목을 받아 일본 산토리 위스키 광고와 가네보 남성 화장품 광고 모델이 됐다.
다만 이 영화 이후 베르톨루치의 커리어는 줄곧 내리막을 걸었으며, 21세기에 들어서도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 그나마 2003년에 개봉한 <몽상가들>이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평가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 뒤로 슬럼프 상태에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촬영 당시 여배우의 실제 수치를 끌어내기 위해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버터를 윤활제로 사용하게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상당히 욕을 먹었다. 그런 가운데 범작들을 만들며 잊혀지다 2018년 77살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 작품에 출연한 동양계 미국 배우 존 론(푸이 역)[10]과 조안 첸[11](완룽 역)도 이후 커리어가 희미해져 이 영화는 감독이나 배우들에게는 생애 최고이자 꼭대기 같은 작품이 된 셈이다.[12]
다만, 푸이의 교사인 존스턴 역을 맡은 피터 오툴은 그 후로도 계속 여러 대작에 출연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피터 오툴이야 이미 워낙 거물급 명배우지만 말이다.
6.1. 대만
중화민국 박스오피스 1위 영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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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박스오피스 |
7. 명장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어린 푸이의 첫 궁정 나들이 장면. 위 장면 이후 계단을 내려간 푸이 앞에 의관정제한 수 많은 고관대작들과 티베트 불교 승려들이 만세(萬歲)[13]를 기원한다. 작품을 감상한 여러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장면으로 꼽는 장면이다. 지금은 사라진 KBS 토요명화, 명화극장 오프닝 시그널에 포함된 장면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심슨 가족에서 이 장면을 패러디했다. 시전자는 호머 심슨.
아울러 영화의 후반 거의 막바지에 나오는 이 장면도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힌다.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바뀐 푸이의 인생 역정이 그대로 표현된 장면으로, 특히 아이러니하게도 푸이는 매표소에서 돈을 내고 입장권을 구입해 (자기 집이었던) 자금성에 들어간다. 위 장면과 대조해보면 참으로 묘한 느낌이 들 것이다.
푸이는 자금성을 둘러보다 옛 기억을 되살리며 태화전(자금성의 정전) 용상 위로 향하는데, 이때 경비원의 어린 아들이 달려와 올라가면 안된다며 뛰어온다. 이에 푸이가 여기가 자신의 집이었고 "나는 중국의 황제였단다(I was the Emperor of China)."라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말하자, 아이는 믿지 않고 푸이에게 사실을 증명해 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푸이는 환하게 웃으며 옥좌 뒤에 간직했던 여치통을 아이에게 건네준다.[14][15] 아이가 여치통을 열고 기어나오는 여치를 보는 잠깐 사이에 푸이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여담으로 경비원의 아들이 여치통을 받아들 때 옷이 노을빛을 받아 거의 황색에 가깝게 보이는데, 만약 이것이 의도된 연출이라면 영화 초반의 어린 푸이가 동생의 황색 옷자락을 보고 "그런 황색 옷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것이니 벗으라"며 티격태격하던 장면과 맞물려 황제가 사라진 중국에서는 평범한 시민의 아이도 황제처럼 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 자금성은 관광지가 되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가이드가 "이곳이 중국의 황제가 즉위했던 태화전입니다. 마지막으로 즉위한 황제는 아이신기오로 푸이였습니다. 당시 3살이었습니다. 그는 1967년에 사망했습니다."라고 소개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16]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시기가 개봉 연도인 1987년인 걸 감안하면 이 장면은 푸이의 죽음이 당시 기준으론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역사란 이렇게 맞닿아있음을 은유하는 장면이다.#
8. 비판 및 실제 역사와 다른 점
선통제의 삶을 동정하는 시선으로 그려내다보니 너무 과한 미화가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예를 들어 어려서부터 어른이 된 후로도 주변 인물에게 화풀이로 한 행위들이 축소되었다.[17] 오히려 주인공이 같은 중국 드라마 말대황제에서 선통제를 (실제보다 다소 순화되긴 했어도) 미화 없이 묘사한 편이다.물론 그가 어렸을 때부터 궁궐이라는 담장 안에서만 자라와 급변하는 세태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가 크지만 어쨌거나 자신이 전 중국의 황제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성인이 된 후에도 주도적으로 다시 중국에 군주제를 복고하기 위해 여러 음모에 참여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마치 납치되어 끌려다니는 무력한 개인처럼 묘사한 것은 본질을 흐리고 미화한 묘사이다. 따라서 전범에 대한 미화 영화라는 비판이 존재하는 이유다. 상당히 담담하게 그려내긴 했지만, 어쨌건 주인공이 선통제이며 영화의 기반이 그의 자서전이다 보니[18] 동정어린 시선들이 많이 포함되긴 했다. 실제 역사와 다르거나 핀트가 다른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물론 아래에 있는 내용들을 전부 다 반영하면 러닝타임이 감당이 안될테니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 섭정왕으로 만청 최후 3년간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던 순친왕 재풍이 푸이의 즉위 이후로 실종된다. 재풍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까지 살아있었다.
- 푸이가 청나라가 망한 줄도 나중에 안 것처럼 묘사되는데 실제론 위안스카이가 와서 퇴위해야 한다고 아뢰던 상황을 푸이가 어렴풋하게 기억하긴 했다. 물론 당시에는 뭔 내용인지 이해는 못했지만 이후 소조정의 태감들이 위안스카이를 만청의 망탁조의라고 매일같이 그가 얼마나 오만한 역적인가를 푸이에게 아뢰고 씹어대는 통에 푸이도 위안스카이가 대총통 자리에 앉아 군림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 푸이가 10대 시절에 있었던 핵심적인 사건 중 하나인 홍헌제제와 장훈복벽을 비롯하여 1924년 북경정변을 제외한 민국 정치사와 청나라 소조정의 연계 내용이 다 생략됐다. 이 때문에 청나라 소조정에서 보수적 군벌들과 접촉하여 복벽을 시도하려 했던, 당시 푸이 이하 청나라 소조정의 중요한 성격에 대한 묘사 없이 그저 철모르는 소년의 이미지만 남게 되었다.
- 푸이가 민국 정부에 등을 돌리게 만든 동릉 도굴 사건에 대한 묘사도 잘려나갔다.
- 푸이의 만주행과 관련된 천진사변과 그를 전후로 한 국민정부와 푸이의 접촉도 모두 생략됐다.
- 푸이의 사부로 만주행 직전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사부 진보침의 비중이 거의 다 잘려나갔다. 그 유명한 북경여치를 주는 씬에서 인상깊게 등장하긴 하는데 구시대적인 노인네 이상의 비중이 없으며, 만주행을 눈물로 반대한 그의 역할도 생략됨으로 푸이의 만주행도 미화되어 버렸다.[19]
- 가와시마 요시코를 정신나간 요녀로 묘사하는데 요시코가 20세기 중국사에서 다시 보기 힘든 특이한 인물인건 사실이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중국 혐오에 미쳐 일본을 좋아하는 골빈 여자는 아니었다.
- 사가 히로의 대접도 애매한데 딱히 작중에서 악행을 저지르진 않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인상이며 푸이가 대놓고 비난을 해댄다. 이는 푸이가 사가 히로가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파견된 스파이라고 의심했던 것의 반영이다.
- 국무총리 정샤오쉬의 숙청에 대해서 영화에서는 푸이가 일본에 다녀오는 사이에 기습적으로 처리되는 것으로 묘사했지만 실제론 정샤오쉬와 푸이의 관계도 심각하게 악화된 상황이었고 푸이도 정샤오쉬 숙청을 지지했다. 그리고 그 후임 총리은 장징후이도 맥없는 예스맨인건 사실이지만 실제 역사보다도 무게 없고 간사하게 나온다. 실제론 중일전쟁 때 일본 측에 전쟁을 중지해달라고 간청하는 등 민족주의 의식이 없진 않았다.
- 앞서 언급한 정샤오쉬와 푸이의 관계 악화에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고, 영화에도 잠깐 묘사되는 푸이의 방일 비중이 거의 없는데, 푸이의 일본인들에게 이용당하는 억울한 면을 강조하느라 푸이가 히로히토에게 갖은 아첨을 늘어놓으며 비굴하게 군 대목이 다 생략되었다.
- 유명한 일화지만 완룽 황후가 낳은 아이는 주사로 죽은 것이 아니라 푸이가 아궁이에 던져 죽였다.
- 푸이가 만주국 시절에도 복귀인을 비롯한 후궁들을 거느린 사실이 생략되어 마치 순정남처럼 보인다.
- 푸이의 일본 탈출 기도 실패도 푸이가 병원에서 돌아온 완룽과 마주치는 다소 극적이면서도 정적인 연출로 보여주는데 실제론 후궁들도 팽개치고 허겁지겁 달아날 정도로 그리 품위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 푸이의 소련 시절도 생략되었는데, 다만 오프닝에서 푸이가 소련에서 오는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소련에 있다 왔음을 암시는 한다. 소련 시절이 잘리면서 푸이가 소련에 남겠다고 스탈린에게 애걸했던 내용도 다 생략됐다.
- 푸이의 석방 이후 시절도 다 잘려나갔는데 정협 의원을 지낸 것이라던가, 마오쩌둥을 만난 일, 저우언라이의 주선으로 북경정변 당시 푸이를 자금성으로 끌어낸 군벌장군 녹종린과 신해혁명의 시발점인 무창기의를 일으킨 웅병곤과 만남을 가진 일, 리수셴과 재혼한 일 등이 모두 생략됐다.
9. BD/DVD
미국의 DVD 제작 명가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에서 나온 DVD와 블루레이가 절륜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DVD의 경우 무삭제 감독판 수록과 감독의 코멘터리 수록에 당시 기준 화질과 음질 모두 극상으로 패키지도 좋아 팬이라면 구입 가치가 충분하지만 한글 자막이 없는 것은 걸림돌이 되겠다. 한편 블루레이의 경우에는 극장판만 수록했으며 코멘터리 및 서플은 DVD와 동일. 용량 관계상 서플은 SD 해상도로 수록되었으나 본편 화질은 크라이테리온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리마스터링 되었다. 다만 한글 자막은 여전히 없다.한편 일본에서는 감독판 + 극장판 2Disc 사양으로 2012년 11월에 블루레이를 발매했다. 5.1채널로 분리한 사운드와 크라이테리온 반과는 다른 데 역점을 두고 살려낸 리마스터링 화질이 돋보인다. # 일본어 자막이 수록되었으며, 서플 해상도 1080i라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DVD만 발매되었는데, 최초 발매 회사가 원 판권 소유 회사로부터 일정 기간만 임대해 파는 것이라 이 기간이 지나면 해당 판본은 전부 회수되기에 이 판본의 재고가 아닌 다른 판본은 리핑판이다. 당시 판매 판본은 적어도 임대 판매 기간 동안은 부대 물품과 본편 모두 될 수 있는 한 최고의 퀄리티를 추구하는 것이었으므로 상당한 완성도로 발매했으나, 판권 임대 기간 만료 이후 2~3천 원의 떨이로 판매되는 리핑판 DVD는 한글 자막이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장점을 찾을 수 없는 수준이다.
덤으로 리핑, 비리핑을 막론하고 정발 DVD의 자막은 오역이 많다. 예를 들면 푸이가 교도소에서 심문을 받을 때 심문관이 만주를 가리키며 이곳이 어디냐고 묻는 장면에서 둥베이(동북-노쓰이스트)를 북서쪽이라 번역한 옥에 티가 있으며, 초반에 푸이가 유모와 함께 자금성에 들어갈 때 유모가 "저기가 자금성이에요!"라고 하는 자막을 "보면 안 돼요!"라고 번역하는 등.[21]
2018년 4월 29일 한국에 블루레이를 발매했다. 부록 영상이 전무한 대신, 정성일의 오디오 코멘터리가 단독 부록으로 추가. 그런데 발매 직후, 자막 오류가 심해 리콜한다는 공지가 나왔다. 아예 번역가를 새로 기용해 재번역해야하는 수준이라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한다. (공지 전문) 자막 오류가 한국 영화 번역사상 최악에 해당하는 수준인데, 중국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 인명, 지명, 건물 이름, 직책명 등을 모조리 다 틀린 것은 기본이고 한 번 번역한 이름도 계속 바뀌는데다 한국어 독음과 중국어 독음이 왔다갔다하는 종잡을 수 없는 이중 기준에 내시가 황제에게 반말을 까고 대령은 '카노'란 이름이 되지 않나 국제연맹도 몰라서 세계 각국으로 번역하는 등 거의 발로 번역한 것보다 못한 수준의 대참사가 벌어졌다. 하지만 네이버 영화라던가 상당수 VOD 서비스는 이 개판 자막을 기준으로 서비스 중이다.
2018년 8월 31일경을 기점으로 리콜이 완료되었다. 전면 재번역을 맡은 번역가는 황석희. 수정된 자막은 기존에 제시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여 완성되었다.
10. 기타
- 이탈리아인 감독이 만주족 중국인 이야기를 영어로 그려낸 영화. 그러니까 중국-영국-이탈리아 합작 영화다. 그리고, 제작자 제레미 토머스는 영국 영화계의 거물로 불리는 사람이다. 게다가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음악 담당의 사카모토 류이치는 일본인이다.
- 훗날 사카모토 류이치는 영화 남한산성의 음악을 맡게 되는데, 재미있게도 청이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시기와 멸망하는 시기를 모두 다루게 됐다.
- 영화의 포스터도 상당히 인상깊은데 즉위식을 거행하는 어린푸이가 화려한 황제복을 입고 어두운표정을 지은모습인데 사실 작중에서 이장면은 순진한 푸이가 즉위식이 지루해서 어리광을 부리는 장면이다. 하지만 포스터 상에서는 순진한 어린아이가 지을 만한 표정이 맞나 싶을도로 매우 암담한데 이 포스터는 어쩌면 앞으로 푸이가 겪는 수많은 사건사고들과 푸이 본인의 운명을 상징하는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감독은 포스터 하나로 푸이의 이야기를 함축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 이 영화에 자극받아 중국은 진도명이 청년기 푸이 역을 한 "말대황제"라는 드라마를 만든 바 있다.[22] 2015년에도 말대황제전기라는 드라마가 나왔다. 드라마 말대황제전기는 한국의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한 적이 있다. 관련기사
- 종합격투기 선수 표도르 예멜리야넨코가 링네임으로 사용한 바 있다. 일본의 메이저 MMA 단체 Rings의 해체 전 마지막 챔피언이라는 것에서 유래했다.
- 이 영화가 대박을 거둔 후 MBC 코미디 프로그램에 <마지막 전하>라는 코너가 생겼다. 김병조가 조선 마지막 왕으로 나와 정사를 말아먹고 늙어서 박물관이 된 궁궐 청소를 하는 씁쓸한 코미디다. 청소 도중 왕좌를 바라보며 자신이 왕이었던 시절의 회상에 잠겨있다 궁궐 담당(최병서)에게 핀잔을 듣고는[23] "이놈! 감히 누구에게 무엄하게 이러느냐?"고 호통을 치지만 "이 아저씨가 또 이러네"라며 가볍게 무시당한다.
- 신상옥이 <마지막 황후>라는 영화를 기획했었다. 명성황후를 소재로 한 영화였는데 여러 사정으로 흐지부지되어 결국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훗날 나오는 뮤지컬 명성황후의 영제가 <The last emperess>이기는 했다. 그러나 진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는 순종의 아내 순정효황후 윤씨다.
- 극중 내내 등장하는 자금성 시절을 회상한 존스턴의 저서는 실존하는 책이다. 국내에도 <자금성의 황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했다.
- 더빙을 원하는 사람을 위한 더빙 음원이 있다. #
- 응답하라 1988에서도 시대상의 고증을 위해 이 영화가 언급된다. 주인공 성덕선과 최택이 같이 본 영화로 등장하는데, 택이 대국을 하느라 이틀 동안 밤을 새고 와 다 보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다.
- 후반에 푸이와 알고 지낸 교도소장이 문화대혁명의 홍위병에게 끌려가자 푸이가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며 풀어주라고 요청하다 밀쳐지는 장면이 나온다. 문화대혁명 때 푸이가 해당 인물을 변호한 것은 사실이나 길거리에서 풀어달라고 한 것은 내용을 각색한 것. 해당 인물은 교도소 부소장[24]인 조선족 김원(경북 봉화 출신)이란 인물로, 영화에서 푸이가 최종 석방될 때 맨 처음에 악수한 중국 관료 역으로도 출연했다. 김원은 문화대혁명 이후 복권되어 대학 교수로 활동하다 1990년 한국에 와서 2004년에 사망했다.
- 이 영화의 각본가 마크 페플로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이 있다. 영화가 이 소설에 묘사된 디테일을 얼마나 충실하게 영상으로 구현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는 1988년 동아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었으며, 책 표지와 앞부분에 영화의 장면들을 컬러로 수록하였다.
- 푸이와 서태후가 만나는 장면에서 서태후의 주위에 있는 인사들을 자세히 보면 일부는 당시 청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던 옷차림을 하고 있다. 의도한 연출인지 고증 오류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대 중국에서 예외적으로 상투를 틀고 한족 고유의 옷을 입을 수도 있었던 도교 성직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 황제가 될 아이를 대면하는 역사 속 중국의 역대 황실을 집합적으로 보여 주는 듯하다는 개인의 해석도 있다.
- 푸이와 말년을 함께 한 부인 리수셴이 영화 개봉 후 1988년에 했던 증언에 의하면 영화 제작 당시 그 어느곳에서도 본인한테 자문을 구한적이 없다며, 서구적인 취향에 맞추고자 사실을 왜곡하였다며 비판하기도 하였다.
- 당시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을 국가정책의 기조로 삼고 친서방적인 모습을 취했는데 이 덕분에 실제 자금성에서 촬영이 가능했고, 실로 그 규모가 웅장하고 화려한 선통제 푸이의 즉위식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 영화가 유명해지면서 영화를 제작할 때 주요 레퍼런스가 된 푸이의 회고록 '황제에서 시민으로'도 국내정발이 됐는데 아예 표지를 영화판 존 론과 조안 첸의 모습으로 썼다.
[1] From Emperor to Citizen: The Autobiography of Aisin-Gioro Puyi.[2] 이것은 당시 중국 공산당이 친서방적인 태도를 취한 덕분이다. 문화대혁명의 폐해를 경험한 총서기 후야오방은 자유주의를 지향했고, 경직된 체제를 완화시킨다. 왬을 비롯한 여러 팝 아티스트들이 베이징에서 공연했고,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이 무려 인민일보에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후야오방이 사망한 후 1989년 천안문 항쟁을 기점으로 이런 리버럴한 성향은 사라진다.[3] 중국계 미국인 여배우로, 드라마 트윈 픽스의 조시 패커드 역으로 유명하다.[4] 1927~2001. 중국계 배우로 할리웃 영화에서 아시아인 조연으로 많이 나온 배우이다. 빅 트러블이나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같은 존 카펜터 영화에 꽤 비중있게 나왔으며 조이 럭 클럽, 이어 오브 드래곤, 티벳에서의 7년 등에도 나왔다. 불가사리 시리즈 1편에도 나오는데 허무하게 죽는 욕심 많은 중국계 가게 아저씨 역.[5] 브래드 피트 주연의 티벳에서의 7년에서 티벳을 방문한 중국 인민해방군 장군으로 나왔으며 올리버 스톤의 닉슨에서는 마오쩌둥역으로 나왔다. 영어 이름은 릭 영으로,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의 영국인이다.[6]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된 지 30년도 더 지난 2020년에 개봉한 디즈니의 뮬란은 이 영화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수준의 더 어설픈 오리엔탈리즘을 선보이면서, 역으로 이 영화의 고증 수준이 얼마나 뛰어난지 재평가받았다. 오히려 서양인 감독이 만든 영화치고 어설픈 오리엔탈리즘이 크게 묻지 않고, 의상이나 역사에 대해 세심하게 연구한 티가 곳곳에 많이 드러난다.[7] 이 영화에 황실 근위대 대장으로 출연한 천카이거는 오리엔탈리즘에 불만이 컸고, 이후 그의 많은 영화에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극복이 반영되었다. 대표적 예시가 바로 패왕별희이다.[8] 회사 이름이 지미필림이다. 지미필림에서 수입해 가장 대박을 거둔 영화가 바로 로보캅 1편으로 서울 45만 관객이다. 참고로 세번째 흥행작이 노 웨이 아웃. 하지만, 이후 수입한 영화는 흥행이 안 좋았고 김지미가 제작, 출연한 '명자 아키코 쏘냐'는 엄청난 제작비로 러시아-일본-중국 촬영을 했지만 제대로 망해 이 실패로 지미필림은 1994년에 문닫았다.[9] 처음 북미 개봉 이후 지미필림이 수입 계약을 체결했을 당시 가격은 60만 달러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6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전부 수상하자 국내 다른 영화사들이 2~3배 이상의 가격을 제시하면서 지미필림과의 계약을 파기시키고 수입해오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이런 짓은 1990년대 후반까지 흔했는데 IMF로 많은 영화사들이 망해 문닫으면서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 영화 흥행이 크게 오르고 외화 흥행도 주로 미국 직배사를 통해 개봉했기에 이젠 수입사들이 이런 짓을 하는 게 사라졌다.[10] 1952년생으로 본명은 오국량. 홍콩에서 태어났고, 원래 성룡처럼 경극 학교에서 공부하다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가 배우가 되었다. <마지막 황제> 출연 이후 할리우드에서 아시안 악역만 주로 맡았다. 성룡의 러시아워 시리즈의 보스 역이 그나마 대표적이며 M.버터플라이에선 여장을 했다. 아시안 배우로서 한계를 느꼈는지 결국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으로 거점을 옮겼는데, 중국에서도 <마지막 황제> 이미지가 강한 탓에 여러 사극 드라마에서 황제 역할로 출연했다. 2007년 다시 캐나다로 이민을 간 후 배우를 은퇴한 듯 이후 작품은 없다.[11] 본명은 천충(陣沖). 1961년생으로 인민해방군의 문선대 출신이다. 20세에 미국 CS 노스리지 대학으로 유학가 미국에서 배우로 데뷔하였다. <마지막 황제> 이후에는 고만고만한 서양인 악당 역으로 전전하였고 인상깊은 건 실버스타 스텔론이 나온 저지 드레드의 악역 보조 정도. 이안의 색계에서는 양조위의 부인 역을 맡았다. 집에서 마작을 치는 여자 중 하나가 바로 이 배우이다. 그 외에 유명한 배역은 트윈 픽스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조시 패커드 역이 유명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중국 영화에만 출연하다 2014년 서구권에서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르코 폴로(드라마)에서 쿠빌라이 칸의 황후 차브이를 연기했다.[12] 다만 원슈 역의 오군매(영어명 비비안 우)는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했다. 조안 첸과 마찬가지로 중국에 돌아와서 활동했지만 조안 첸보다는 확실히 중국에서 더 성공했다. 최근 작품은 여의전에서 조연인 견환으로 나왔고, 넷플릭스 미드인 어웨이에서도 4명중 주연으로 출연했다.[13] 이 영화는 중국어나 만주어가 아닌 영어로 진행되는데, 작중에서 ‘ten thousand years’로 직역하여 여러 번 등장한다. 동아시아에서 제후와 왕(王)은 천세(千歲)로 찬양하며, 황제에게만 만세로 찬양할 수 있었다. 이는 말 그대로 만세까지 살라고 기원하는 것.[14] 영화에서는 귀뚜라미라고 나오지만 중국산 북경여치(Gampsocleis gratiosa)로 영명은 'chinese bush cricket'이다. 중국에서 울음소리 감상을 목적으로 많이 키운다. 자세한 건 여치 항목으로.[15] 이 여치통은 푸이가 수십년 전에 숨겨둔 것이기 때문에 여치가 살아있는 건 말이 안되고, 몽환적으로 푸이의 인생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여치를 소리를 듣기 위해 통에 가두어 기르는 것처럼, 푸이 역시 그저 황제로 태어났다는 상징성만 있어서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살았고, 실제로는 감옥에 갇혀 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그래서 아이가 통을 열어서 여치가 나왔을 때 푸이가 사라진 것처럼, 푸이 역시 이제서야 진정으로 자유로워졌다는 해석이 있다.[16] 푸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고작 생몰년도 한마디로 끝나버리는 시대의 무심함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아무리 푸이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인물이라도 시대는 평등하게 흐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마침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비난도, 칭찬도 없는 단 한줄의 역사로서 잠들게 된다는 시대의 무정함을 담은 씬이다.[17] 푸이가 어릴 적에 그의 교육을 담당한 환관들이 어린 푸이가 울거나 말을 안 들을 때마다 뒤주에 잠시 가두는 벌을 주곤 했는데, 그때의 원한인지 푸이가 좀 자란 뒤론 마음에 안 드는 환관들을 꽤 혹독하게 매질하곤 했다. 청나라 최후의 환관이였으며, 푸이를 모셨던 환관 순야오팅(孙耀庭)의 증언에 의하면 푸이에 대한 평만은 좋지 못하다. 그나마 푸이는 말년에 편하게 여생을 보냈지만, 순야오팅은 조리돌림을 당하는 등 사찰에서 은둔하며 살다가 1996년 12월 17일에 세상을 떠났다.[18] 사실 그의 자서전 자체는 중공 치하에서 나온 것이라 자아비판하려는 목적으로 나왔다.[19] 감독판에서는 눈물의 호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일제에 속아넘어가 석탄이 풍부한 만주에서 청조 부활을 꿈꾸는 푸이의 어리석음과 진보침의 충언이 대비되는 장면.[20] 푸이가 출소하는 장면에서 죄수들과 수용소 간부들이 부르는 노래는 중국공산당의 선전 가요인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도 없다로, 1943년에 공개되었다.[21] 자금성(紫禁城)의 영어 명칭 'Forbidden City'를 'Forbidden to see'로 대충 듣고 '보면 안 된다'라고 옮긴 오역인걸로 보인다.[22] 푸이가 푸순 감옥에서 회상을 하는 형식인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푸이의 아기 시절부터 차근차근 다룬다. 또한 영화는 어린 푸이가 그래도 좀 순하지만 드라마의 경우 어린 푸이가 자금성 내에서 고립되며 점점 이기적이고 선민의식이 가득한 성격이 되어가는 과정을 착실히 보여준다.[23] 청소 안 하고 뭘 그리 우두커니 서있느냐는 내용이다.[24] 교도소장은 손명재라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