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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10:47:25

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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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00><colcolor=#FFD700> 후궁견환전 등장인물
희귀비
뉴호록 견환
파일:견환 프로필.jpg
이름 견환 (甄嬛) → 뉴호록 견환 (鈕祜祿 甄嬛)
법명 막수(莫愁)[1]
배우 쑨리
민족 한족 정람기 → 만주족 양황기
생일 음력 1706년 4월 17일[2]
나이 17~30세[3]
입궁일 9월 15일
파벌 견환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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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00> 거주지 <colcolor=#000,#fff>자금성에서는 쇄옥헌[4] → 존국당[5] → 쇄옥헌 → 감로사-능운봉[6] → 영수궁[7] → 수강궁[8] → 자녕궁.
원명원에서는 벽동서원이다. 한때 안릉용과 더불어 봉래주에 묵기도 했다.
가족 관계 아버지: 견원도
어머니: 운신라
서모: 하면면[9]
동생: 완벽[10], 견옥요
남편: 옹정제
자녀: 홍력[11], 롱월공주[12], 홍염, 영서공주[13], 정화공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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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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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olcolor=#000,#fff> 희귀비
<colcolor=#000,#fff> 희귀비
(부황후)
[17]
<colcolor=#000,#fff> 숭경황태후(崇慶皇太后)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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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
2.1. 황제의 새 신부2.2. 감로사의 막수(莫愁)2.3. 권력의 절정에 선 희귀비2.4. 결말
3. 원작에서4. 가족 관계5. 취미와 특기6. 성격7. 현실적인 사고
7.1. 가족애
8. 특징
8.1. 재색겸비8.2.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8.3. 전적(?)
9. 변화
9.1. 입체적인 인물9.2. 극적인 변화
10. 여담11. 실제 역사

[clearfix]

1. 개요

파일:환궁이후 견환.gif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주인공.

소설 《후궁견환전》의 주인공 견환과 실존인물 건륭제를 낳은 효성헌황후 뉴호록씨를 모티브로 만들어낸 캐릭터이다.

애칭은 주로 황제가 부르는 '환환', 혹은 심미장이나 온실초, 윤례, 서태비가 부르는 '환아'가 있다.

2. 작중 행적

2.1. 황제의 새 신부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팔방미인이지만 다른 귀족 소녀들은 황제의 눈에 들기를 바라는 반면 본인은 자신만을 사랑해 줄 남자를 만나 백년해로하는 것이 소원이었다.[19] 오죽하면 수녀 선발이 되었어도 떨어지게 해달라고 기원해서, 시종인 유주와 완벽에게 "간택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사람은 처음일 걸요?" 라는 소릴 들을 정도.[20] 온실초에게 수녀 간택에 가지 말고 같이 살자며, 부부의 연을 뜻하는 온실초의 가보 옥주전자를 받으며 청혼을 받지만 견환은 그를 친오빠처럼 생각한다며 거절한다.[21]

그 뒤 수녀 간택에 나가는데, 자신이 참여하지 않으면 동생 견옥요가 나중에 대신 참여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간 것으로 간택에 떨어지기 위해 일부러 수수하게 차려입었다.[22]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직전에 심미장이 간택된 것을 기뻐하느라 대답이 늦었는데, 자신의 이름자를 능숙하게 시구로 설명하면서 옹정제의 눈에 띄게 된다. 옹정제는 자신의 적복진이었던 순원황후를 아주 닮은 얼굴에 놀라며 강력히 견환을 후궁으로 밀고, 이를 염려한 태후고양이 시험, 성씨가 선대 황제의 휘호와 비슷하지 않냐는 공격성 질문[23]에도 집안을 생각해 허둥대지 않고 침착하게 반응한(간택되기 싫은 마음과 별개로 너무 허둥대면 불경하다고 찍힐테니...)점이 플러스로 작용[24]해 간택된다. 황제는 바로 귀인으로 들이려 했지만, 황후가 이미 같은 한군기 중 가장 명문가인 심미장을 귀인으로 정했고, 한군기에만 귀인이 둘이면 차별대우로 여겨질 것이라 조언을 했기 때문에 상재에 머무른다. 대신 간택 후궁들 중 유일하게 봉호 완[25]을 받는다.

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드린 첫날부터 궁의 실세인 화비하상재에게 일장홍(허리 밑을 살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튀기도록 치는 형벌)을 명한 것을 보게 되고, 그것으로 모자라 우물에서 복자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원치 않은 입궁을 했는데 황궁의 잔혹함을 목격하기까지 했으니 큰 충격을 받아 병이 걸리고, 궁중의 숨 막히는 암투에 휘말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결국 견환은 어의 온실초의 도움을 받아 금방 나을 병을 아주 천천히 치료하며 쇄옥헌에서 조용히 칩거한다. 한편 견환의 시녀인 패아는 해당화 나무의 특정 지점을 개미들이 비켜가는 것을 발견하고, 나무의 뿌리를 파보자 항아리에 들어있는 밀봉된 사향 덩어리가 나온다.[26] 사향이 임신에 해롭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찍이 발견한 것이 천운인 셈. 이에 견환은 쇄옥헌의 해당화가 올해부터 꽃이 피지 않았다고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를 쇄옥헌의 이전 거주자인 방 귀인이 유산한 원인으로 짐작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신년에 의매원에서 소원을 빌다가 황제와 마주치고, 견환이 읊은 시구를 들은 황제는 이름 모를 여인의 높은 학식에 호기심을 품고 다가가려 하지만 숨어있던 견환은 의매원 궁녀라 거짓말하고 도망가버렸다. 그러나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건지 결국 황제와 대면하고, 황제가 과군왕을 사칭하는 바람에 속아 넘어간다. 사실 견환은 '과군왕은 20대 중반인데, 그렇게 안 보인다'며 의심했는데 황제가 노안 드립을 쳤다. [27] 그리고 그 뒤로 만남이 있을 때마다 과군왕을 불러 입궁시켰기 때문에 내내 반신반의하던 견환은 결국 속았다.

둘은 시와 음률을 논하며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만남을 지속하던 중 어화원을 찾아온 여씨에게 당하던 것을 황제가 구해주면서 견환은 자신이 만나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시침도 들지 않은 몸으로 바로 귀인으로 품계가 올라간 것[28]을 시작으로 아낌 없는 총애가 시작된다. 첫날밤은 탕천궁에 데려가 마치 신혼여행처럼 보냈으며[29] 돌아온 뒤엔 순원황후와 화비에게만 해준 신방을 쇄옥헌에 차려주기까지 했다.

황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쇄옥헌에 찾아오면서 귀한 촉금 비단으로 신발을 만든 것을 하사하고,[30] 동심결[31]이나 장상사[32] 등 사랑의 정표를 무수하게 안겨줬다. 훗날 화비가 몰락하고 죽음을 앞뒀을 때, 견환이 받은 총애에 대해 "너만 총애하시는 게, 싫었다. 그토록 총애하는 여인은 네가 처음이었어. 네가 온 뒤로 날 찾지 않으셨다."고 인증했을 정도. 화비가 황제에게 받았던 수많은 특권과 총애는 후반부의 견환 못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다. 심지어 화비는 오빠 연갱요 때문에 전략적으로라도 황제가 찾았었고. 그런 화비마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초반부의 황제가 견환을 얼마나 총애했는지 드러난다.

그러나 이 총애 때문에 자동으로 화비의 표적이 되어 화비파 후궁들(조귀인, 여빈, 여답응)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거기 굴하지 않고 총명한 머리로 재치 있게 받아치며 미장, 릉용과 함께 박해를 견딘다. 그런 강단 있는 모습에 화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경빈단비도 그녀의 편을 들게 된다. 또한 황제의 아이를 회임하고 빈으로 품계가 상승하면서 점차 화비의 대항마로 떠오른다.

그러던 중 황제황후가 기우제를 드리기 위해 화비에게 내명부를 맡기고 궁을 잠시 떠나게 된다. 이 날을 벼르고 있던 화비가 비빈들을 모두 불러모으자 몸이 좋지 않아 주저하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트집을 잡히고 만다. 결국 대낮에 화비의 익곤궁 앞마당에 꿇어 앉아 책을 읽는 벌을 받다가 반 시진만에 쓰러지고 아이를 유산하는 사고가 발생한다.[33] 천만다행으로 윤례가 익곤궁까지 뛰어들어 구해주지 않았다면 견환도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화비를 크게 처벌하지 못하고,[34] 황제를 원망하게 된다. 유산으로 몸이 약해지고 원망이 쌓이는 동안 황제가 자기 대신 안릉용을 총애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오랫동안 거리를 둔다.

이 상황을 보다못한 미장이 견환을 냉궁으로 데려가서 총애를 잃은 후궁이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보여주고, 그 뒤 제비부찰귀인에게서 심한 모욕과 갈굼을 당하면서[35] 후궁에서 살아남고, 자신의 아이를 앗아간 화비에게 복수하기 위해 계략을 써 총애를 되찾는다. 또한 황제가 연갱요와 돈친왕의 대두에 고심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괴로운 처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지혜를 빌려준다. 그리고 화비의 심복인 조귀인에게 준가르에서 왕비를 요구했을 때 온의가 너무 어려 대신 보내진 조괴공주의 이야기를 거론하며, 딸이 훗날 커서 화친의 제물이 되거나 찬밥 대우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조귀인의 두려움과 불안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온의의 양모가 되어 온의를 좋은 곳으로 시집 보내주겠다며 포섭한다. 이후 조귀인의 도움과 심미장과의 협공으로 화비의 모든 죄를 낱낱이 까발려 몰락시키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인 황후가 그를 함정에 빠뜨린다. 견환이 비로 책봉되는 날 견환의 대례복을 찢고 순원황후의 대례복[36]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순원황후의 존재는 황제에게 있어서 일종의 역린인데[37], 아무것도 몰랐던 견환은 황제의 분노를 정통으로 맞으며 비 승급은 없는 일[38]이 되었다. 그것으로 모자라 녹봉도 답응에 맞춰지고, 거처에 연금되어 건강이 악화되었는데도 태의조차 쉽게 부를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39] 결국 친정 시녀인 유주가 의원을 부르기 위해 처소의 시위와 실랑이를 벌이다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하고, 이 일로 또 회임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부친인 견원도가 기귀인의 과이가 가문에게 고발을 당해 몰락하고 흑사병에 걸리는 등 시련이 이어진다.

특히 견환을 가장 절망시킨 것은 황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순원황후와 자신이 무척 닮았으며, 황제는 견환을 순원황후를 대신하는 여인으로 취급했다는 사실이었다. 여태껏 황제와 나누었던 모든 사랑이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은 견환은 갓 태어난 딸인 롱월공주마저 포기한 채 로 출가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집안은 누명을 썼고, 본인은 후궁에서 힘이 미약하며, 낳은 아이는 공주였기에 가망이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고.

다만 자신 때문에 딸까지 미움을 받게 할 수는 없기에 롱월공주의 아명을 순원황후의 아명과 발음이 같은 완완이라고 짓는다.[40] 황제는 그래도 둘 사이에 자식을 봤다는 게 기뻤는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넌 내 아이를 낳았잖느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느냐?"라며, 원한다면 용서해 주고 비로 승급하켜 새 처소를 지어주겠다는 등의 감언이설을 하며 출가를 말리지만 이미 정이 차갑게 식어버린 견환에겐 통하지 않았다. 결국 황제는 정색하며 "네가 정 원하면 빨리 떠나거라." 하면서 그 자리를 떠버린다.

2.2. 감로사의 막수(莫愁)[41]

"절이 속세보다 더 복잡한 걸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또 다른 권력을 다투는 곳이었지
난 그곳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불행 속에 행복이 있다고 하던가
감로사에서 보낸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옹정황제의 여인 극장판 - 견환[42]
출궁한 견환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감로사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했지만, 감로사의 실세인 정백과 그 휘하 비구니들이 기귀인의 사주를 받고 견환을 독하게 괴롭히는 바람에 엄청난 고생을 하게된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했는데 찬물에 빨래를 하고, 땔감을 나르는 등...

그리고 이 때, 황제의 동생이자 강희제의 17황자 윤례의 등장으로 인생은 큰 국면을 맞는다. 황궁과 엮이기 싫어 그를 피했지만 계속되는 도움과 진심에 점차 마음을 열고 궁에선 누리지 못했던 행복을 얻게 된다. 그러던 중 윤례는 황제의 명으로 변경에 가게 되고, 떠나기 전날 변경에서 돌아오면 자신의 죽음을 가장해 두 사람이 함께 몰래 어디론가 떠나자고 약속한다. 이때 견환은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하기 위해 양산백과 축영대의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걸 듣던 윤례는 한 사람은 울면서 시집을 가고 한 사람은 피를 토하며 죽어버린 그들처럼 되기는 싫소."며 질색을 한다. 이후 윤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어 매우 기뻐한다.

그러나 온실초가 찾아와 윤례가 강에 빠져 죽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하고, 견환은 절규하며 깊은 슬픔에 잠기지만 조작된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윤례의 복수와 뱃속에 있는 두 아이를 지키기 위해, 영고탑에 유배 가서 고생하고 있는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궁에 돌아갈 결심을 하며 마음을 독하게 먹는다. 근석을 통해 소배성을 끌어들여[43] 황제를 감로사에 들르게 만든 뒤 하룻밤을 지낸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치장하지 않은 수척한 모습으로 황제의 동정을 샀으며, '자신을 향한 황제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진심이 있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황제와 롱월공주를 위해 줄곧 기도해왔다, 4랑이 저를 이렇게 그리워했다는 걸 안 것만으로 충분하니 수명이 줄어도 된다'는 둥 갖은 순애 연출을 하여 황제의 넋을 빼버린다. 이때까지만 해도 황제에게 완전히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애정이라는 것이 선심 쓰듯 던져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뿐.

여기서 견환이 무서운 것은 조금이라도 진심을 바랐다는 것, 문안을 온 상궁에게 소식을 묻지 않았다는 말[44]에 거짓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황제에 대한 미련을 버렸으며,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윤례라는 사실만 입에 담지 않았을 뿐 전형적이고 철저한 진실 은폐였다. 물론 그동안 견환을 그리워하던 황제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어버리고 동침했다. 일이 성사되자 견환은 배에 복대까지 둘러가며 그 날 회임했다고 황제를 속인다. 폐비가 환궁한 사례는 없었고, 견환을 겨냥한 흠천감의 불길한 예언이 있었지만[45] 심미장태후의 열렬한 지지로[46] 견환을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2.3. 권력의 절정에 선 희귀비

폐비였던 견환의 신분을 고려해 황제는 뉴호록 씨를 하사해 한군 정람기 하5기 출신이던 견환을 만군 양황기(상3기)[47]로 올려주었으며, 나이 열 살을 올려 4황자의 생모라는 지위까지 얹어주었다.[48] 팔기는 각 군기마다 상3기와 하5기가 각각 있는데, 같은 만군기 내에서도 상3기가 당연히 더 높고 뉴호록씨는 그 중 핵심 집안이었다. 이 뉴호록씨가 얼마나 대단한 집안이냐면 의 개국공신임과 동시에 태조 누르하치의 사위이자 최측근을 배출한 청 제일의 명문가였다. 오죽하면 이 가문 출신이자 강희제의 후궁이었던 온희귀비 뉴호록씨는 집안의 후광 덕분에, 그녀가 낳은 강희제의 아들은 황위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49] 물론 실제 역사에서 견환의 모티브인 숭경황태후 뉴호록씨는 뉴호록 가문의 직계 출신인 온희귀비와 달리 방계 출신이라 그 정도의 위세는 없었다.[50] 그래도 전반적으로 만군기 가뭄 현상이 있는 옹정황제의 여인의 세계에서는 이 정도 가문만 되어도 어지간한 후궁들은 감히 개길 생각조차 못한다. 일단 만군기 > 몽군기 > 한군기 순으로 귀함과 천함이 갈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3기 우두머리인 양황기이니...

옆에서 이를 듣던 황후는 "본래 견씨이니 가(佳)자를 붙여[51] 견가씨가 충분하지 않냐"며 애써 만류하지만 폐비의 흔적을 지우려면 완전히 새로운 신분을 하사해야 한다는 황제의 뜻에 밀려 기각되었다. 거기에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니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리'라는 뜻을 담은 찬란할 희(熹)를 봉호로 내려 희비로 책봉한다. 그렇게 환궁이 결정되고 길일까지 받아놓은 판에 윤례가 멀쩡하게 살아 돌아와 나타나고 만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자각한 견환은 독한 마음을 먹으며 그를 매몰차게 밀어낸 후 환궁한다. 이때 견환의 나이는 방년 22세이며, 호적상으론 무려 32세. 4황자의 고귀한 생모로 신분 세탁을 해야 하는데 4황자는 견환보다 겨우 7살 어리기 때문에 나이를 조작할 수 밖에 없었다.

환궁한 견환은 곧 쌍둥이인 6황자 홍염과 영서공주를 낳아 귀비로 승급하고 정적인 기귀인, 안릉용, 황후를 모조리 정리하며 복수한다.

먼저 기귀인이 고발한 온실초와의 사통은 6황자의 친자 확인 후 황후와 기귀인의 증거와 증인 조작이 만천하에 드러나 오히려 무고임이 밝혀진다. 견환이 사통을 했다고 고발한 기귀인은 역으로 무고죄임이 드러나면서 폐서인이 되어 냉궁에 유폐되었고, 황후 또한 역으로 물에 백반을 섞어놓아 견환을 모함하려던 게 들켜서[52] 황제의 신임을 잃고 내명부 통솔권을 견환에게 빼앗긴다.[53] 안그래도 견환은 기귀인이 잘못을 저지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일로 기귀인의 가문은 대대적인 조사를 받게된다.[54] 기귀인의 친정 아버지인 과이가 악민은 황제가 끔찍히도 싫어하는 부정부패가 적발되어 옥에 갇힌 뒤 자살한다. 또한 황제가 과이가 가문을 역적으로 선포하여 성인 남자들은 전부 처형하고 노인과 어린 남자애들은 유배시키고, 여자들은 노비로 팔려가게 하라는 명을 내리면서 기귀인의 친정은 완전히 박살난다. 이 소식을 듣고 냉궁을 탈출한 기귀인은 양심전 앞에 꿇어앉아 울면서 친정을 구명하지만, 황제는 옛정을 봐서 기귀인의 목숨만은 살려줄테니 냉궁에서 살라 무심하게 말하고 옆에 있던 견환 또한 아무렇지 않게 붓의 먹만 갈았다. 이내 기귀인은 악에 받쳐 견환을 저주하다가 소배성의 명령으로 환관들에게 처참하게 맞아 죽는다. 이로써 자신의 가문을 몰락시킨 기귀인에 대해 어쩌면 자신이 당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그녀의 가문을 몰살시키면서 똑같이 복수한다.

이후 절치부심에 빠진 황후는 자기 파벌인 안릉용을 억지로 회임케한 다음[55] 비로 책봉해서 내명부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어차피 태어나지도 못할 안릉용의 아이를 유산시켜 그 죄를 견환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견환은 자기를 지지하는 후궁들을 승급시키는 걸로 먼저 대응한 뒤 릉용에겐 대놓고 조롱하는 의미로 꾀꼬리 리에서 따온 리비(鸝妃)라는 봉호를 내린다.[56] 이후 68회에선 최음제를 이용한 방사를 유도해[57] 릉용이 끝내 유산하도록 만들면서, 그녀가 준 사향 연고 때문에 자신의 첫 아이를 유산한 일을 그대로 되갚아준다. 심지어 자신이 숨겨 보낸 최음제도 릉용이 황제를 유혹하기 위해 이용한 거라며 뒤집어 씌우고 자신에게 준 연고에 사향이 들어있음을 뒤늦게 폭로하면서, 릉용이 자신의 첫 아이를 유산시키고 더 나아가 심미장의 조산과 죽음을 유도했다는 사실까지 밝힌다. 이렇게 모든 죄가 들통난 릉용은 가까이서 시중 드는 궁녀들과 내관들은 전부 처형 당하고, 자신의 처소에 연금되어 매일 불상 앞에 꿇어앉아 따귀를 맞으며, 끝까지 그토록 싫어하던 리비의 봉호로 불리면서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생지옥을 맛보게 된다. 끝내 아버지마저 처형 당해 가문까지 몰락하자 자포자기한 안릉용은 마지막 독대에서 황후의 비밀을 알려줌과[58][59] 동시에 견환에게 사과한 뒤[60] 자살한다.

그 이후 영귀인 일로 인해 황제의 의심을 사기도 했지만, 다시 회임하면서 총애를 되찾는다. 하지만 이번에 임신한 아이는 견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유산이 확실시된 상태였다. 이에 황후를 끝장낼 마지막 계략으로 황제와 후궁들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단 둘만 있을 상황을 만든다. 둘만 있게되자 황후를 도발하고, 황후가 견환의 손을 뿌리치자 일부러 배를 부딪치며 넘어지면서 황후 때문에 유산했다며 그녀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더군다나 그 자리에 있던 롱월공주마저 "황후마마가 희귀비 마마를 밀쳤어요!"라고 위증한다. 가뜩이나 견환의 유산으로 분노한 상황에서 롱월의 증언을 듣고, 견환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확신한 황제는 황후를 경인궁에 연금한다. 이에 분노한 황후의 측근 전추가 복수로 견환과 6황자를 독살하려다 실패하고, 전추를 비롯한 황후의 측근들은 모조리 신형사로 끌려가게 된다. 이때 황후의 수령 태감 강복해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황후가 과거 순원황후를 죽인 일까지 모조리 자백하고 만다. 결국 의수는 순원의 유언과 태후가 승하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교지 덕분에 황후 자리만 간신히 지켰을 뿐, 그녀에게 치를 떨게 된 황제에 의해 남아 있던 실권과 세력까지 모조리 잃고 유폐된다.

이후 견환은 실질적인 육궁의 수장으로 군림한다. 자식과 총애가 곧 권력인 궁중에서 황제의 엄청난 총애와 더불어 딸린 자식이 무려 다섯(친자식인 롱월공주, 6황자 홍염, 영서공주와 입양한 정화공주, 그리고 대외적으론 친아들인 4황자 홍력)이나 되는 상황이니 그 존엄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적을 모조리 처리하고 평온히 지내는 시간도 잠시, 준가르의 칸인 마격이 황제를 알현하게 되면서 견환과 윤례의 사이가 들통날 위기에 처한다. 감로사 시절 윤례와 견환이 뱀에 물려 쓰러진 마격을 살려준 적이 있는데, 마격이 견환을 기억해 황제의 친형제와 사통하다니 간도 크다며 견환에게만 말한 것을 황제의 비밀 심복 하예가 엿들은 것. 견환은 그가 완벽을 본 것이라 우기지만 통하지 않고, 오히려 마격는 황제에게 견환을 자신의 왕비로 달라 청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견환은 자신의 얼굴에 비녀를 들이대며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제 얼굴을 망가뜨리겠어요!"라는 말까지 하고 황제에게 충심을 보이지만, 문 앞에서 얘길 듣고 있던 윤례가 견환을 절대 보내면 안된다고 본인이 군사를 일으키겠다고 해 황제의 의심에 쐐기를 박는다. 본래 황제는 윤례가 이 얘길 듣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둘의 사통을 믿지 않았을 것이나, 윤례가 황제가 경계하는 왕들의 군사행동까지 마다 않는 것을 보고 윤례가 견환을 좋아하는 것을 확신한다. 결국 윤례는 견환을 위해 군사를 일으키고 황제는 그것에 분노하여 윤례를 변방에서 3년을 지내게 한다. 또한 견환도 그 일로 황제에게 의심 받고 자신의 궁에 연금 당한 데다 나중엔 뺨까지 맞았다. 윤례를 속이려는 황제에 의해 원명원에서 환궁하지도 못하고 연금당한다. 서신은 물론 가족들마저 견환이 아프다는 핑계로 찾아가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나 롱월공주가 어머니를 보고 싶다며 실드를 치고,[61] 이에 견환은 환궁하게 되고 죄를 청하나 견환에 대한 애정과 아이들 때문에 벌을 주지 않은 황제에 의해 연금에서 풀려난다. 이미 윤례가 견환에게 마음을 품은 것은 명백하고, 이것만으로 상당한 문제이나 황제는 어떻게든 윤례에게 모든 원인이 있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견환을 잃고 싶지 않은 속마음이 드러난 것.

그러나 윤례가 경성으로 돌아온 날, 윤례와 마주쳐 대화를 하는데 말은 시동생에게 하지만 표정은 그리운 연인에게 향하면서 결국 딸 영서공주를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이 얘길 들은 황제는 크게 분노해 돌아온 것이 울 정도로 기뻤냐며 견환의 뺨을 친다. 견환은 자신이 운 것은 옥은 때문이라며 본인의 사심은 윤례가 경성에 오지 않았으면 한다며 무마해보려 하지만 결국 황제에게 윤례를 직접 독살하란 명령을 받는다. 독살의 이유는 후에 나온다. 윤례가 완벽과 변방에서 주고받던 편지를 하예를 통해 황제가 빼돌렸는데 편지의 모든 끝에 '희귀비는 어떠한가?(희귀비안 熹貴妃安)'라는 문구가 적힌 걸 보는 바람에 황제가 윤례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

그는 사랑하는 윤례를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이지 못해 황제가 건넨 독으로 자살할 생각이었지만[62], 그것을 눈치 챈 윤례가 대신 독주를 마신 뒤 견환의 품에서 죽는다. 충격을 받은 견환은 달려온 완벽이 말을 걸었을 때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후들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다 쓰러져 다리가 부러지고, 그 후유증으로 다시는 경홍무를 출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견환은 그것을 안타까워하는 대신 "뭐 어차피 이제 보여줄 사람도 없어..." 라고 씁쓸하게 말한다. 입궁 전 어머니인 운신라가 "경홍무는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주거라."라고 이야기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동생 완벽마저 윤례를 따라 자살한다.

윤례를 독살한 이후 부황후의 대우를 받지만 [63] 황제와의 사이는 아주 냉랭해진다. 황제가 연주를 칭찬하자 견환은 "너무 치켜세우지 마세요. 어느 날 갑자기 신첩에게 목을 매라고 비단을 내리실 수도 있잖아요?"라고 쏴주고, 이에 황제가 "요새 비단값이 너무 비싸서 그건 안 하기로 했다." 라고 답하는 등, 무서운 농담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후 6황자 홍염과 윤례의 아이인 원철이 너무 닮은 것을 보고 황제가 충격으로 쓰러지자 옥요에게 원철을 궁에 데려오지 말라고 한다. 쓰러진 황제가 몰래 피검사를 지시한 것을 녕빈에 의해 알게되자 하예를 죽인다. 그리고 윤례를 사랑했던 녕빈이 황제를 독살한다. 6황자 홍염과 영서공주가 윤례의 핏줄임을 견환이 녕빈에게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미 윤례의 죽음으로 황제를 증오하게 된 녕빈은 황제가 홍염의 출생을 다시 의심하자, 윤례의 핏줄을 지키기 위해 독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임종을 앞둔 황제에게 견환은 드디어 본심을 드러내는데
황제: 홍염이... 정말 짐의 자식이 맞느냐?

견환: 물론입니다, 폐하. 천하만민이 폐하의 자식입니다.

황제: 그렇구나. 명답이다. 천하는 짐의 것이지. 하지만 곧 네 것이 되겠지.

견환: 신첩이 천하를 얻어 뭐하겠습니까. 신첩이 정말 원하는 것은 얻지 못했는데요.

황제: 짐이 원했던 것이나 가진 것[64]은 손바닥에 얹은 모래처럼 모두 사라졌다. 환환, 4랑이라고 불러준 적이 오래됐구나. 한 번 불러다오. 싫으냐?

견환: 피곤하실 테니 쉬십시오. 신첩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황제: 한 번만 4랑이라고 불러다오... 처음 입궁했을 때처럼...

견환: 그 시절의 견환은 죽었습니다. 잊으셨습니까? 폐하께서 죽이셨습니다. 신첩은 뉴호록 견환입니다.

황제: 돌아갈 수가 없다... 돌아갈 수가 없어... 짐과 환환, 순원이 있었던 때로... 돌아갈 수가 없어... 넌 윤례 때문에 짐을 미워하는 거겠지?

견환: 폐하... 영명하십니다. 허나 염려 마십시오. 죽은 미장 언니는, 언니와 온실초의 아이를 폐하께서 친자식처럼 키우신 걸 알면 구천에서도 기뻐할 것입니다.

황제: 이런 독한 것! 널 죽여버리겠다...

견환: 형제를 죽인 폐하에 비하면 신첩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했습니다. 신첩은 폐하의 십분의 일도 못 따라갑니다.

황제: 이런 건방진 것...! 역시 윤례와 사통했군... 감히 짐을 배신해!

견환: 이제 말씀 드려도 되겠군요. 환궁 후, 폐하께서 저를 만지시는 그 순간마다 저는 역겨웠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진심으로 황제를 사랑한 적이 있기도 했고, 황제가 죽은 뒤 4랑이라 부르며 눈을 감겨주고 "폐하께서 붕어하셨다."고 몇 번이나 중얼거리다 감정에 복받쳐 소리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 수많은 애증이 교차한 듯 하다.

황제가 죽은 뒤 "그때 살구나무 아래서 과군왕이라고 속이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라고 울먹이며 탄식하기도 했다. 원작에서는 황제가 처음부터 견환을 속였기에 거짓으로 시작된 사랑이니 서로 믿을 수 없게 됐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았다고 묘사된다.

황제와의 사랑의 비극적인 결말은 초반부에 이미 복선으로 제시된 바 있다. 당시 견환이 총애를 못 받는 완상재 시절이었고, 황제도 과군왕으로 속이고 만났을 당시에는 황제가 "살구꽃을 좋아하오?"라고 물었을 때 견환은 "살구꽃은 예쁘지만 열매는 시고 씨앗은 쓰니, 시작만 예쁘고 끝이 쓰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이것이 복선이 되어 두 사람은 살구꽃의 초창기처럼 사랑을 했지만 열매를 맺으면서(중반부) 신맛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결국 쓰디쓴 애증의 끝으로 치달았던 것이다.

2.4. 결말

결국 유일한 황태후가 되어 승리자가 되었으나 그토록 원했던 낭군과의 행복은 얻지 못했다. 진심으로 사랑한 윤례도 죽고,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친언니 같은 존재였던 심미장 역시 세상을 떠났다. 순수하고 온화롭던 성격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면서 점차 변모했고, 후궁들을 상대하며 더러운 일에 손을 적시게 되었다. 연답응으로 몰락한 화비기귀인에게 당한 모욕을 갚기 위해 쇄옥헌의 기귀인 처소에 불을 지르자 아예 자신의 처소에도 불을 질러 화비의 죄를 더하여 자진하는 길로 몰아넣었고, 안릉용이 겉으로는 자신을 위하는 척 하면서 첫 아이를 유산시키자 그에 대한 복수로 목소리를 잃고 총애까지 잃었을 땐 "궁중에서는 죽음이 최고의 해탈이다."라면서 관망하다 최후의 일격으로 최음향을 뿌린 백합을 써서 똑같이 유산하게 만들었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던 단황귀비와의 차이이다. 안릉용의 임신을 알았을 때 견환은 릉용이 황자를 낳으면 황후의 수중에 황자가 둘이 되니, 그 중 하나가 태자가 된다면 견환을 비롯한 견환파 후궁들을 살려둘 리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정략적인 이유든, 복수심이든 처음부터 릉용의 아이를 불편한 시선으로 보고 있던 것.

또한 황후를 도발하고 몰아세워[65] 분노한 황후가 손을 잡은 것을 뿌리칠 때 일부러 넘어져 뱃속의 아이를 희생시켜가며 황손을 죽였다는 누명을 씌웠다. 하지만 황후의 위치 때문에 일단 금족령만 내려지자 결국 황후가 순원황후를 살해한 내막이 밝혀지도록 유도해 황후 스스로가 진상을 밝히고 파멸하도록 만든다.

다만 본인과 가족이 계속 위협 당하는 상황에서 반격하지 않고 계속 성정을 유지하고 살았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화비나 황후처럼 나서서 남을 음해하기 보단 그들의 죄를 밝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게 한쪽에 가깝다. 자신의 아버지가 안릉용의 술수로 인해 쥐에 물려 역병에 걸렸지만 릉용에겐 쥐 이야기를 꺼내 조롱만 했을 뿐 똑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황후의 지시로 릉용이 본인의 아이를 견환이 유산시킨 것으로 꾸미려고 했기 때문에 카운터를 날린 셈이고[66], 안릉용이나 본인의 유산은 모두 허약하여 자연적으로 유산될 아기였지만 이용한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견환도 상당히 죄책감을 품었다.

황제가 병으로 쓰러진 후, 앞으로 천하가 견환의 것이라는 황제의 비꼼에 "제게 천하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폐하?"고 말했듯 그녀는 천하를 원하지 않았고, 단지 자신을 사랑해주는 낭군과 백년해로 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다. 심미장이 죽음을 앞두자 태의들에게 "미장 언니가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엔 너희들 모두 순장시킬 것이다!"라고 협박하였고, 녕빈황제를 독살하기 직전에 황제의 병이 깊어지자 울고 있는 후궁들에게 "폐하의 옥체가 우선적이니 행여나 폐하의 요양을 방해하는 년들은 옛정이고 뭐고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며 마냥 순수하고 착했던 완빈 시절이었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악독한 말을 서슴 없이 내뱉게 되었으,니 그 타락의 과정이 얼마나 뼈저린 고통으로 이루어졌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게 황제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사망하고, 후에 홍력이 건륭제로 등극하면서 표면상 생모의 신분이었던 견환은 성모황태후로 승격되어 유일한 황태후로서 내명부 권력의 정점에 오른다.

황태후 등극 후에 여의전의 주인공이 될 청앵황후 부찰씨를 불러서 "앞으로 후궁이 몇 명이나 더 들어오던 간에 내 앞에서 감히 헛짓거리를 하면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선언과 함께 홍염의 처소를 응휘당으로 바꾸고 대놓고 홍염에게 17황숙과 같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황제가 된 홍력이 이후 홍염이 장성하여 황위를 위협할까 걱정하자 원철은 아들이 없는 신군왕 부부의 양자로 주고 홍염을 과군왕부의 대를 잇게끔 제안한다. 그리고 홍염이 윤례의 양자가 됐으니 더 이상 홍염이 황위에 대한 위험 요소라 생각하지 말라는 것을 끝으로 새 처소인 자녕궁에서 피곤하다며 잠시 잠을 자는 것으로 끝난다. 이 장면에서는 옹정황제의 여인의 모든 화를 보여주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데, 첫 화에서 그렇게나 순수했던 견환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행한 과정 속에서 얻게 된 결과물은 결코 원하지 않았던 부귀영화를 손에 쥐게 된 것 뿐이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견환의 마지막 대사는 "피곤하구나. 좀 쉬어야겠다." 였다.

3. 원작에서

파일:서화열_견환.png
품계(원작)
정6품
완(莞)귀인
정5품
완빈
종4품
견완의
종3품
견첩여
정3품
완귀빈
종2품
견소의[67]
폐비 정2품
완비[68]
정1품
완숙비[69]
황귀비 황태후[70]


원작의 견환은 드라마보다 더욱 냉철한 면과 자기안위적인 속물스러움[88]이 묻어나온다. 원작의 견환도 악역이라 하기엔 어폐가 있으나 까이는 이유가 이것.

원작은 드라마보다 주동적이고 입체적이나 안티가 상당히 많은데[89] 대체로 독하고, 위선적이며, 가식적이고, 거만하며, 메리수고, 사이운(사미인)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벌 주는 등 악역들과 별 다를 바 없으면서 결국 승자가 되어서이다. 아예 흑환당이라는 견환 안티 티에바도 있다.

원작 견환은 드라마 견환보다 먼치킨이고 더 계산적이며[90] 가문의 세력도 강한 편인 데다 자신감을 넘어서 거만함이 느껴지는 탓이 크다. 심미장 등 자신과 동격이라 생각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죄다 속으로 깔본다.

덕분에 원작 팬덤에서 상당수가 견환을 싫어하고, 아예 드라마 견환은 다른 인물로 취급할 정도니 말 다한 셈. 그래서 원작을 보고 드라마를 본 사람과 드라마를 보고 원작을 본 사람의 반응이 말 그대로 상극이다.

초반에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장면은 드라마에서 짤리거나 각색되었다. 간택된 후 견형온실초의 러브레터를 전해주자 "그 사람도 바보고, 오빠도 바보야?"라며 화를 내고 편지를 조금 읽다가 "지 혼자 김칫국 마시고 있네..."라는 반응을 보이고는 화내며 편지를 불태워 버렸으면서 온실초에게 계속 도움을 받고 조금묵의 독살을 부탁한 것이라든가, 안릉용이 궁에 들어온 후로도 견형을 잊지 못하자 '릉용이 오빠를 너무 좋아하는데 내가 어떻게 끊어?'라고 생각하면서 릉용의 마음을 모르는 척하며 릉용에게 견형이 결혼한다고 알려주고, 남들의 마음을 끊어놨으면서 현청을 사칭한 현릉에게 호감을 느끼고 나중엔 현청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셋이나 둔 것이 주로 욕 먹는다.

그리고 가장 비판 받는 점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변명하고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대적한 인물들이 '내가 몰락한 건 네 계략 탓이다' 하면 '네가 한 짓이 있는데 그게 어때서?' 라는 식으로 답한다.

순원황후가 "이 정도로 이상적인 인간이 있을 수 있는가?"라면 견환은 "이 정도로 계산적인 인간이 있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이 원작 독자들의 평이다.[91]

작가는 견환이 속이 좁은 면이 있으며 사치스러운 사랑을 꿈꾸기에 고생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7권 후기와 어떤 인터뷰에선 견환의 용감하지 못한 점은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견환이 용감했다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면서.[92]

4. 가족 관계

견원도와 운신라의 장녀. 원작에서는 오빠 견형과 두 여동생이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옥요 하나만 나온다. 이복자매로 완벽이 있다. 매부로는 완벽의 남편인 윤례와 옥요의 남편인 윤희가 있다. 옹정제 윤진을 남편으로 두고 있으며, 총애 받는 후궁답게 어느 후궁보다 자식을 많이 두고 있다. 자식이 많다는 점은 후반부 희귀비 시절 황제의 총애를 잃은 이후에도 그녀의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준다.

롱월공주는 견환 소생의 다섯 아이 중 유일하게 견환과 황제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태어난 후 견환이 출궁하며 경비의 손에 키워졌고, 환궁 이후에도 경비 밑에서 크고 있다. 조귀인 사후 온의공주를 양딸로 삼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던 단비와 함께 경비가 견환파의 공고한 조력자로 남은 것은 이 이유가 크다. 견환의 딸답게 굉장히 총명하고 황후의 몰락 당시 결정적 한 방을 날릴 정도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환궁 후 출산한 남녀 쌍둥이 6황자 홍염과 영서공주는 윤례 소생. 견환이 막수였을 당시 가진 아이들로 윤례가 탄 배가 침몰하여 죽었다는 오보를 받고 견환은 자식들을 지키고 윤례의 복수를 위해 자신에게서 순원황후의 흔적을 찾으려 한 황제와 억압되고, 숨 막히는 궁중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궁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영서공주는 딱히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순원황후와 현 황후인 의수 자매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롱월공주와 잡기 놀이를 하던 영서공주를 보고 안릉용이 유언으로 남겼던 문장의 진정한 의미를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

홍염은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아들로 성장했으며, 3황자 홍시가 뻘짓으로 황자로서의 지위를 박탈 당한 후부터는 4황자 홍력과 함께 차기 황제 후보로서 여러 번 거론되었다. 이미 이 시점부터 견환은 성모황태후의 지위는 보장 받았다는 소리.[93] 후에 홍염이 윤례 소생이란 사실을 황제는 알아차리지만 이미 녕빈과 견환의 계략으로 몸이 쇠약해진 뒤였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그 외에도 두 번의 유산을 했는데, 한 번은 폐서인 되기 전 가장 총애받던 완빈 시절 안릉용의 계략으로 사향이 든 연고를 오랫동안 사용했기에 결국 유산했다. 화비가 화귀비였을 당시 트집을 잡혀 더운 여름날 익곤궁 앞마당에서 꿇어 앉아있는 벌을 받게 되었고, 유산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람에 견환은 화비의 환의향 때문에 유산한 줄 알았다. 이후 온실초가 연고에 사향 성분이 다량 들어 있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견환은 안릉용과 황후의 계략임을 눈치 챈다. 두 번째 유산은 희귀비 시절. 그동안의 임신과는 다르다는 묘사가 있었고, 온실초는 쌍둥이 출산과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5개월 이상 임신을 유지하면 위험할 거라는 진단을 한다. 잠시 충격 받았던 견환은 자신의 마지막 자식을 황후를 쳐내는 데에 이용했고, 결국 누명을 씌워 황후의 유폐라는 결과를 이끌어낸다. 유산 후 죄책감을 느끼며 죽은 아이를 위해 향을 피우는 모습이 나온다.

3명의 친자식 외에도 양자 2명이 더 있다. 4황자 홍력은 폐비 출신인 견환이 환궁할 당시 워낙 말이 많자 황자의 생모로 신분 세탁하기 위해 양자로 들였다. 친모의 출신이 미천하여 황자로서의 취급을 받지 못할 당시, 견환만은 친절하게 대해줬기에 홍력은 자기에게도 드디어 어머니가 생겼다고 굉장히 기뻐했다. 따라서 둘의 관계도 여느 모자 사이를 떠올릴 정도로 꽤 좋은 편. 건륭제로 즉위한 이후에는 강력한 황제 후보였던 홍염을 경계하는 눈치였기에 사이가 조금 틀어지려나 싶었지만, 견환이 홍염을 윤례의 양자로[94] 만들어버려 위협을 배제하는 모습에 의심을 거두는 모습이 나온다. 정화공주는 온실초와 심미장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난산 끝에 미장이 죽자 견환이 양녀로 들여 키우게 된다.

5. 취미와 특기

취미로는 독서가 있다. 또 바둑을 들 수 있다. 쇄옥헌 방화사건 당시 심미장과 대국하는 모습으로 나오며[95], 유산의 아픔을 이겨내고 황제와 사이가 좋아졌을 때 황제와 밀당을 할 때 바둑을 두고[96], 희비 시절에는 단비와 바둑을, 희귀비 시절 경비와 바둑을 두면서 과이가씨 가문의 몰락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가지치기(분재) 취미도 있다. 그런데 특기로 분류할 수 있을지는 불명. 일단 심복인 근석은 견환의 분재 실력을 칭찬해준다. 딱 두 번 나오는데, 릉용이 승은을 입은 다음날인 완귀인 시절에 한 번, 희비 환궁 이후 내명부 정리는 가지치기와 같다며 말할 때 한 번이다. 그 외로 향을 제조하려는 취미도 붙여보려고 한 적이 있다. 귀인 시절 황제가 오지 않는 긴긴 밤을 릉용과 같이 향 공부를 하며 (정확히는 릉용에게 배우며) 겨울에 쓸 백화향을 만들겠다고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이후에는 향과 인연이 없다. 다만 기귀인의 홍마노 목걸이를 보고 사향임을 알아차리는 걸 보면 향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듯하다.

특기로는 경홍무를 먼저 들 수 있다.[97] 조귀인이 "여자라면 누구나 다 배우는 것일 텐데?" 라고 했으니 딱히 희귀한 특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실력이 우수하긴 한 것 같다. 작중 심미장이 "네가 춤이 특기인 걸 다른 사람이 알았으면 이런 계략은 꾸미지 못했을 거야.", "네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네가 춤을 배웠을 때 난 금을 배웠다." 라고 하는 걸로 보아선 주특기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 황제 또한 견환의 경홍무를 보면서 좋아했다. 원작에선 황제가 무보는 매비보다 낫고 천추에 달했다고 했고, 경비가 춤에 있어선 국수라는 평을 내렸다. 돈친왕에게선 "내 왕부의 무희에 비할 바 정도 된다."[98] 라는 평을 받았다. 애석하게도 후반부에 윤례를 독살하고 나오는 길에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서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다시는 경홍무를 출 수 없게 된다. 견환은 항상 경홍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아직 그녀가 황제를 사랑했던 순수한 시절에 사계절마다 황제와 같이 하고픈 일을 쭉 늘어놓을 때 여름에 하고 싶은 일로서 경홍무가 언급되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추는 춤이라는 뜻. 이후 윤례가 죽자 경홍무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라는 어머니의 말을 언급하면서 이제 출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특기는 시를 읊는 것이다. 처음 수녀 간택에 나아갔을 때부터 시구를 가지고 자신의 이름자를 설명한 탓에 황제의 눈길을 끌었다. 시 자체에도 해박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가탁할 수 있는 시를 음악에 실어 연주하는 것에 굉장히 능한데, 마흔의 아저씨인 황제를 사랑하게 된 계기도 그가 그녀가 연주한 피리 소리에 담긴 시구와 감정을 간파해내었기 때문이었다. 안릉용을 구하려 할 때에도 금을 타며 시구를 읊으며,[99] 롱월공주를 낳고 황제에게 이별을 고할 때도 시[100]를 읊었고, 윤례와의 연애 편지도 시였고, 여름이면 부채를 손에 쥐고 놓지 않다가 가을이 되면 손에서 벗어나 거들떠도 안 보지, 이것도 시다.[101] 영서공주의 이름도 시에서 따온 것이다. 준가르로 갈 뻔했을 때에도 시를 읊었다. 75화에서 앓아누운 옹정제가 "옛날에 네가 내 무릎 위에 누웠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 넌 아무 장식도 하지 않았는데도 정말 예뻤지..."라며 아련하게 추억팔이를 하자, "당신 무릎 위에 있는데 어찌 안 예쁘겠어요?"라고 쿨하게 답해주는데 사실 이것도 시.[102] 틈만 나면 감상에 젖으며 시를 읊는 것이 시가 생활화된 듯 싶다.

세 번째 특기로는 칠현금인데 황제가 자기 입으로 심미장이 더 잘 탄다고 말했다. 스킬 쪽에서는 미장이 앞서나 그래도 견환도 상당히 괜찮은 실력인 듯, 작중 세계관에서는 단황귀비의 비파, 영귀인의 쟁과 더불어 견환의 칠현금을 높이 살 정도로 그 실력이 우수한 편. 일단 상재 시절의 안릉용이 황제와 화비에게 불려가서 고생할 때 금으로 반주를 해주기도 했고, 금의 가락에 맞추어 시도 읊어 본 적이 있다.

네 번째 특기로는 퉁소가 있다. 살구꽃 아래서 시를 떠올리며 퉁소를 불다가 황제와 마주친 것이 실질적인 첫 대면. 황제는 순원황후가 죽은 이후 이렇게 아름다운 퉁소 소리는 처음 들었다고 윤례에게 말했다.

6. 성격

늘 배신과 암투가 벌어지는 작품의 주인공인 만큼 많이 구르다 보니 주변인이 죽거나 배신 당하는 일이 자주 생겨 울거나 좌절하는 장면이 가장 많은데, 맨 처음 익곤궁에서 유산했을 때 정도만 멘붕이 좀 오래 가고 다른 일은 금방 일어서는 걸 보면 멘탈 회복력이 굉장한 듯. 크게 격노하는 경우도 드문 편인데, 제일 크게 화를 낸 적은 온실초가 자진 거세를 했다는 소식에 심미장이 쓰러지는 바람에 사태의 원인이었던 안릉용에게 따귀를 날린 것과 그 직후에 미장이 조산으로 위독해지자 태의들에게 "미장 언니가 죽는다면 모두 순장해버리겠다!"라고 외칠 때, 그리고 익곤궁에서 유산했을 때[103]였다. 그 외에는 분노를 표출해도 냉소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은 편이다.

사랑에 상처 받았으면서도 낭만적인 사랑을 끝까지 꿈꾼다. 출궁할 때 다른 건 다 두고 가면서 황제가 진정한 사랑의 증표로서 준 장상사만 들고 가고 윤례의 진심 어린 애정 공세에 끝내 사랑을 받아들이는 등에서 알 수 있다. 작가는 견환을 사랑을 위해선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라고 한다. 배우 쑨리는 "견환은 차라리 부귀영화를 원했다면 덜 불행했을 것이다. 그는 너무나 정에 집착했다."라고 말했다.

심미장만큼은 아니라도 자존심이 상당히 강하다. 화비에게 벌을 받다 유산한 사건 당시 안면몰수하고 존버했으면 상대가 단순한 화비인 만큼 그 자리를 모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총애를 되돌리기로 결심한 계기도 제비부찰귀인에게 수모를 당했기 때문이며, 총애를 되돌릴 때에도 굽히고 들어가기 보다 미색과 나비를 써서 황제가 애간장이 타서 자신을 찾도록 만들었다. 또한 자신이 순원황후의 대용품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딸도 낳았고 하니 포기하고 후궁으로 살았더라면 다소간의 부귀영화는 누리면서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단호하게 궁을 버리고 떠난다. 물론 남았더래도 황후의 수작으로 심한 꼴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작가가 말하길 견환은 자신의 힘으로 대적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의 가족이 이미 감금되어 황제가 그들이 죄가 있다고 확신한 상태에 후궁에서 자신의 힘은 미약한 데다 그가 낳은 것은 딸이었기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견환은 자신이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색을 이용하는 것은 굉장히 싫어한다. 방약 상궁에게서 교육을 받을 때 미색으로 사람을 섬기는 건 오래 못간다고 한 적이 있다. 또 황제에게 자신의 용모에만 관심을 주냐고 쏘아붙인 적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볼 때 외모가 아닌 인격적으로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도 원인인 것 같다.

7. 현실적인 사고

첫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상황에 가장 적합하다 싶은 선택을 한다. 초반엔 어느 정도 감정이 휘둘릴 때도 있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부각되는 부분. 출궁할 때는 이미 가문이 몰락했으니 자신이 궁을 나가도 딱히 해가 될 것은 없었고, 자신이 모든 걸 포기해야 황후가 가문과 롱월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경비에게 롱월을 맡겨 딸의 안전을 지키고, 윤례와 도망치려 할 때는 자신의 가문을 생각해서 죽음을 가장하고 떠나려 했으며, 윤례가 살아돌아왔을 때는 자신이 이대로 도망가면 모두의 안전이 위험하기에 감정을 억누르고 환궁한다. 능운봉에 있을 무렵 윤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끝까지 온실초에게 의탁하지 않은 것도 온실초가 일개 태의이기 때문에 영고탑에서 고생하고 있는 부친 견원도를 도울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안릉용의 아버지의 비리를 제보해 하옥시켰을 때, 안릉용이 임신하면서 계략이 실패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안릉용의 봉호를 꾀꼬리 리로 정하게 만들면서 모욕을 주고 안릉용을 승급시키는 김에 자기네 파벌 후궁들을 대거 승급시키면서 위기의 상황에서도 최대한의 이득을 끌어냈다.

둘째, 생존과 적응을 위해서 자신의 사고를 바꾼다. 황제에게 처음엔 마음을 원했다가 나중엔 진심을 바라게 되는 것도 그렇지만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정적들을 배우는데 황제의 사람을 1번 떠보고 믿는 것이나 하인 끌고 가서 조용한 데서 죽이기가 대표적이다. 황후에게도 배운 바가 많은 듯 마지막 대면에서 가르침에 감사 드린다고 하였는데 일전에도 견환은 조귀인에게도 화비에게 배울 부분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셋째, 굉장히 냉철한 상황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여답응이 탕약에 독을 넣은 걸 알았을 때는 궁에 갓 들어온 18살짜리가 하마터면 자신이 미칠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냉정하게 궁리한다. 친자확인사건에서 처음에는 윤례와의 관계가 들켰다고 생각해 순간 긴장하지만 윤례가 아닌 온실초로 헛다리 짚었다는걸 깨달은 후에는 침착하게 상황을 이끌어 간다. 친자 검사[104]를 위해서는 피를 뽑아야 했다. 황제의 옥체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된다며 온실초와 홍염의 피로 검사해달라는 말로 황제의 연민을 자극하면서도 홍염의 아버지가 아닌 온실초와 검사하게끔 만드는 냉철한 상황 판단의 절정을 보여준다. 검사에서 온실초와 홍염의 피가 섞이자 거의 죽을 게 확정된 상황인데 패닉에 빠지지 않고 물에 문제가 있다는 걸 지적해내 결국에는 상황을 모면한다.

넷째, 황제를 사랑했을 때는 그가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믿으며 황제를 위해 돈친왕을 처리하는데 적극적으로 돕는 등 정성을 다했으나, 진실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접고 (약간의 미련을 보이긴 하지만) 윤례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걸로 봐선 사랑에 헌신적이긴 하되, 지나간 사랑에 집착하진 않는 타입인 듯하다. 순원과 견환의 대역을 들이면서까지 집착하는 황제와 황제를 독차지하고 싶어하고, 황제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화비와는 대조되는 부분.

이런 면모 때문인지 작가가 작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로 꼽았다.

7.1. 가족애

견환의 행동의 이유는 거의 대부분 가족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이다. 소원을 빌 때도 첫번째로 가족의 안녕을 빌었고, 황제에게 진심을 배신 당하고 아버지가 흑사병에 걸려 정신적인 대미지가 절정에 달해 쓰러지기 직전이었음에도 황제에게 아버지를 살려주겠다는 약조를 받아내기까지 한다. 혈육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의자매인 심미장에게도 매우 헌신적이다. 미장을 항상 신뢰하고 서로 의지하며 돕고, 원작에선 미장의 아들을 자기 친자식들보다 아끼며 키울 정도. 또한 완벽이 자신을 배신해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가로채 결혼해도 윤례에게 완벽을 자신의 친동생이니 잘해달라고 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건 다해준다. 원작에선 완벽이 청하왕에 대한 마음을 접으라고 요구하지만 역시 봐준다. 완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황제에 대한 증오가 강해지기까지 한다.

황제의 임종 때 "누구도 형제를 죽인 황상만큼 나쁘지 않습니다."라고 쏘아붙이고, 자신의 언니를 죽인 황후에게 전혀 동정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성격 때문일 듯.

8. 특징

8.1. 재색겸비

미모와 재능을 겸비했다. 옹정황제의 여인등장인물들은 재능, 혹은 지능이 있으면 미모가 딸리고 미모가 있으면 재능이 딸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특기가 가장 많지만 못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안릉용, 계략은 잘 짜지만 얼굴은 별로인 조귀인, 아름답기로 비할 자 없는 화비랑 그에 버금가는 기귀인은 둘 다 멍청하다. 물론 예쁘지도 않고 재능도 없는 제비도 있긴 하다. 이렇게 보았을 때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것은 견환과 심미장 정도밖에 없는데 심미장은 작중 설정상 미모와 재능 면에서 모두 견환보다 뒤떨어진다.[105] 순원황후가 유일하게 견환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능력치를 가졌지만, 단명하고 말았다.[106]

이 아래 내용을 전부 마격 칸께서 친히 한 줄 요약해 줬는데, "희귀비는 총명한 데다가 얼굴도 예쁘군. 이러니 남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지!" 라고 말했다.

우선 미모부터 말하자면 화비를 제외하면 황후가 아리땁다고 두 번 이상 칭찬해 준 후궁은 기귀인을 제외하면 견환이 유일하다.[107] 하상재는 간택 전에 견환에게 "얼굴 좀 반반하다고 간택될 줄 알고 그러는 거야?"라고 말했고, 제비 역시 "완상재는 얼굴은 선녀 같은데."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안릉용 역시 유산해 상심한 견환을 달래며 "언니가 이렇게 예쁜데 폐하께서 어찌 언니를 잊으시겠어요?" 라고 말했고, 이후 죽음을 앞두고 견환에게 "언니는 모든 걸 다 가졌죠. 고귀한 신분, 아름다운 얼굴까지..." 라면서 인증했고, 롱월공주 역시 희비로 환궁한 견환을 보며 경비에게 "희비마마? 그 예쁘신 분 말이에요?" "저도 희비마마는 너무 예뻐서 좋아요!"라고 말한 바 있다.[108] 견환 자기도 스스로가 예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예쁜 외모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싫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첫 아이를 유산한 후 소원해진 황제의 마음을 다시 돌려놓기 위해 치장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또한 피부 미인이다. 황제가 말하길 피부가 눈보다 희다고. 그것도 두 번씩이나. 한 번은 견환이 자기 치장에 홍옥이 어울릴까 까만 보석이 어울릴까 물을 때, 다른 한 번은 흰 배꽃이 견환의 피부에 비해서는 무색으로 느껴진다고... 황후도 롱월이 엄마를 닮아 피부가 백옥 같다고 말한다. 태후는 홍염과 영서가 까무잡잡한 황제와는 달리 희다고 말했고, 또한 설정상 이마가 넓다고 한다. 오랜 세월 궁에 있었다는 노(老)상궁[109]이 빈으로 올라가는 견환의 치장을 직접 해주면서 "이렇게 이마가 넓은 소주는 처음 봤다." 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마가 넓은 것은 복이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대단한 찬사.

작중에서 자주 아픈 모습을 보이기에 병약 속성 보유자이다.[110] 안릉용도 "언니가 몸이 원래 약하긴 해도 반 시진만에 유산이라니..." 라고 말했고, 온실초나 다른 태의들의 증언 역시 그녀가 원래 몸이 약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111] 이 병약한 컨셉을 이용한 적도 있는데, 감로사에 있다가 환궁을 결정했을 때, 아프고 초췌해진 모습을 일부러 보여 황제의 보호본능을 일으켰다.

그 다음이 지능 스탯. 견환은 엄청나게 똑똑하다. 황후안릉용에게 뒷담을 깔 때 "화비는 오만해서 싫고, 견환은 똑똑해서 싫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황후는 대외 이미지 관리를 하며 "완귀인은 똑똑해서 좋습니다."라는 똑같은 말을 한 번 더 한다. 황후에게 똑똑하다는 평을 받은 유일한 여인이 견환이다. 지식과 계략 둘 다 높다. 지식 면에서는 문학과 역사에 박학다식하다. 문학은 특기가 시 읊는 것이라는 점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겠고, 역사에 관해서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수준. 황후도 이렇게는 못하며, 실제로 황제의 서재에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후궁이다. 돈친왕의 무리한 요구를 담은 상소로 황제가 대노하자 소배성은 황제의 화를 잠재울 수 있는건 견환뿐이라며 견환을 데려왔다. 원래는 화난 황제를 달래는건 황후가 하는 일이었던듯.[112] 적에게 가혹하고 벌에 엄격하지만 명군이 되고 싶어하는 황제에게, 옛 성군과 명군의 고사에 빗대어 온건한 대안을 내놓는 견환의 의견은 황제에게도 크게 의지가 되는 듯. 황제는 견환을 '나의 말하는 꽃'이라고 추켜세우며 녹봉을 받는 조정대신들은 하루종일 누구를 처벌하라 처벌하지말라만 가지고 씨름하는데 견환은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제 3의 대안을 내놓는다며 극찬했다. 황후도 칭찬하기를, "견환은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모르는 게 없다." 고 한다.

특히 말싸움 스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견환에게 가장 시비를 자주 거는 화비를 매일 발라먹는 것은 기본으로 하상재, 기귀인, 부찰귀인에 나름 똑똑한 조귀인까지 발랐다! 다른 후궁의 말실수까지 재빠르게 커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113] 이 능력으로 황후의 체면을 세워주거나 옥요의 결혼을 설득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패배한 적도 딱 한 번 있다. 그 상대는 다름아닌 제비. 물론 논리나 말빨이 딸려서 진 게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길 자신이 없었던 거였다.

심미장처럼 실무에도 능하다. 환궁한 후 온갖 음모를 돌파한 견환이 내명부의 통솔권을 갖는데, 견환이 꾸려가기 시작하자 후궁의 경비가 7천냥[114]이나 줄었다고 한다. 다만 견환은 그것을 칭찬하는 황제에게 "폐하가 또 후궁을 들이시면 만 냥이 나갈 건데요, 뭘..."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단순히 많이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지혜(나쁘게 말하자면 계략, 음모, 잔머리, 처신술 등을 전부 포함한 능력이다.)도 뛰어나다. 황후와 다른 비빈들에게 첫 선을 보일 때에도 일부러 수수하게 차려서 후궁들의 질시를 받지 않도록 하고,[115] 시침을 피할 시기에 강록해 등 아랫사람들이 견환을 버리고 갔는데도 은자까지 챙겨주면서 보내고는 나중에 심미장에게 하는 말이 "하인들은 성실하고 착한 것보다는 충성스러운 것들이 제일이야."였다. 이 시기에는 견환이 아직 본격적으로 암투에 뛰어들지 않은 시점임에도 궁중 내부의 상하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초반부터 학식면에서는 후궁에서 견줄 사람이 없다. 시나 고사를 인용하며 황제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황제의 어서방에 들어가 먹을 갈고 상소문을 정리하는 등 황제의 공무를 시중드는걸 허락받는다. 작중 황제가 즉위한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오랜기간 축적된 관행은 아니지만 후궁이 어서방 출입을 허락받은 전례가 없는듯 하고 작중 서예에 능한 황후마저도 황제가 크게 분노했을 때 달래러 몇번 들어갔던게 전부인듯하다. 후궁이 정사에 개입하는건 금지되어 있지만 한담을 나눈다는 핑계나 후궁의 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핑계로 조정 현안에 대해 조언을 하기도 한다.[116] 연갱요, 융과다같은 권신들이 붕당을 결성해 황제가 고심하고 있을 때는 구양수의 붕당론을 인용하며 조언했다. 황제는 붕당론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며 견환에게 써달라고 하는데 이 때 심지어 견환을 자신의 의자에 앉히고 황제가 곁에 서서 직접 먹을 갈며 견환의 시중을 들었다! 특히 감로사에 갔다가 희비가 되어 돌아온 후에는 심리적인 약점까지 극복하여 완전체가 되어서 당해낼 자가 없어진다. 기귀인, 안릉용, 황후가 모두 견환을 상대로 계략을 꾸미지만 거의 가지고 노는 수준으로 분쇄해 버린다.

8.2.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입궁 전에는 해당화를 좋아했다. 수녀 간택 때 안릉용에게 해당화를 장식해주는 것도 그렇고, 입궁 후에도 이따금 해당화 자수가 놓여있는 옷을 입는다. 안릉용을 황제에게 추천하고 나서 "해당화의 계절은 끝났지."라고 읊조리는 장면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막내동생 견옥요가 황제에게 해당화 떨잠을 받자 언니가 좋아하는 거라서 안 쓰겠다고 거부하기도 한다.

연꽃도 좋아한다. 완귀인 시절에도 가까이에서든 일부러 호수를 산책하면서든 감상했던 걸로 보아 원래부터 좋아했다. 부처님의 상징이라서 자애로운 어머니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다만 결정적인 계기는 윤례. 견환의 생일 잔치 당시 윤례가 파티 장소를 꾸몄는데 그때 그는 하늘에는 연을, 호수에는 연꽃을 가득 깔아놓았다. 견환에 대한 그의 정성이 드러난 꽃이기 때문에 더욱 좋아진 듯. 희비로 돌아왔을 때 황제가 마련해 준 연꽃도 영수궁 앞마당에 가득했는데, 견환은 이 연꽃이 벌레가 끼는 데다가 생일 잔치 때의 그 연꽃을 베낀 것 같다고 하여 오히려 마뜩찮은 반응을 보였다.

또한 석안(나팔꽃)과 자귀꽃과도 연이 있는데, 이는 윤례가 당시 완귀인이었던 견환이 밤에 우연히 단 둘이 만났을 때[117] 석안이 화제에 올랐기 때문이다. 윤례는 담에 붙어사니 천하고, 밤에만 몰래 피는 꽃이라 불길하다 여겨진다고 말하나 견환은 그렇기에 특별하다고 말한다. 후에 화비가 석안이 수놓아진 촉금 비단을 받고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며 갈가리 찢어 되돌려 보내려다가 견환에게 줘버리는데[118] 견환은 화비가 무슨 꿍꿍이로 이런 귀한 걸 주냐고 미심쩍어하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받았다.

자귀꽃은 윤례가 황궁에 머물 때의 거처인 응휘당에 강희제의 명으로 심어진 것이었으며, 윤례가 최후를 맞이했을 때 부부의 정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이야기를 나눈다. 희귀비 시절에도 종종 자귀꽃이 새겨진 옷을 입기도 했다. 황제가 윤례의 자귀나무를 베어버리려 할 때 막을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해 몹시 자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 자귀꽃도 황제 사후에는 윤례의 처소였던 응휘당으로 도로 옮겨 심었으며, 응휘당에서 지내게 된 아들 홍염과 함께 자귀나무를 바라보며 조용히 윤례룰 추억했다.

좋아하는 음식우유를 넣은 제비집인데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는 것 같다.

새 종류도 좋아하는 듯 싶다. 완빈 시절 황제에게 하얀 앵무새를 받았는데 희비로 돌아왔을 때에도 궁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아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능운봉에서 외롭게 살 때에도 온실초가 상사조를 갖다줘 마음을 위로하도록 했는데, 이 상사조 때문에 능운봉의 들고양이들이 습격해와서 굉장히 고생했다. 물고기도 좋아한다. 나중에 태후가 되었을 때 수강궁에 커다란 어항을 가져다 놓았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앞에서 기술한 대로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충성스러운 사람, 수평적인 관계에서는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섭란의가 초반에 굉장히 싸가지 없이 굴었고, 자기를 끌어내 죽이려고 했는데도 그녀에게 호의를 보였고, 여빈도 중독 사건 이전에는 여빈의 불 같고 직설적인 성격을 보고 "그래도 나는 여빈의 그런 성격이 좋다."라며 호의적으로 평한다. 허나 반대로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는 성격의 보유자들은 싫어한다. 때문에 견환은 조귀인의 그러한 성격을 종종 돌려까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견환 또한 의뭉스러운 성격으로 변해간다.

두말할 것도 없이 고양이를 싫어한다. 참고로 고양이는 원래부터 싫어하는 것이다. 극초반부에 견환이 의매원에 종잇조각 끼우러 혼자 갔을 때, 놀라서 돌아오자 완벽유주가 왜 이리 놀랐냐고 물었을 때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났다고 견환이 얼버무리자 완벽과 유주는 "하긴 소주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셨지." 라면서 깔깔거리는 걸 봐서 사가에 있었을 때부터 싫어했다. 수녀 간택 때 태후가 그녀를 시험하기 위해 발치에 물을 뿌리고 흰 고양이를 던졌을 때는 잘 버텼으나 그것은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근성으로 해낸 듯하다.[119] 이에 최근석은 "고양이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무서워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견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고양이에게 험한 꼴을 당하는 일이 많은데, 황후의 고양이 송자, 능운봉의 들고양이들과 녕귀인의 고양이 단융 때문에 걸핏하면 할퀴어지거나 습격 당하거나 조산하게 된 적이 있으니 고양이와는 보통의 악연이 아닌 셈.

천둥도 무서워한다. 입궁 전에는 어머니가 함께 있어주곤 했지만 입궁 후에는 홀로 견뎌야 했기 때문에 괴로워했고, 그때 황제화비와의 시간을 포기하면서 견환을 찾아온 덕분에 더욱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120] 윤례 또한 그녀가 천둥을 무서워하는 것을 알고 능운봉에서 비를 무릅쓰고 피리를 부는 바람에 그때까지도 형수와 시동생이라는 사이라며 어째어째 마음을 다잡고 있던 견환이 윤례에게 마음을 열어주게 되었다.

8.3. 전적(?)

견환의 적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한 악행을 그대로(혹은 유사하게) 돌려받거나 자신이 원한 것을 갖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인과응보, 자업자득을 당한다.
상대 악행 및 소망 업보
여답응 사칭으로 견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견환이 마지막에 진상을 밝히며 자기 자리에 돌아온다. 기군망상죄가 아니었으면 여답응도 죽지는 않고 냉궁으로 쫓겨나는 선에서 끝났을 것이다.
여빈 여답응이 견환의 약에 독을 섞어 견환을 미치게 만들려 할 때 약을 제공한 공범. 안릉용과 합작한 귀신 장난 때문에 오히려 자기가 미쳐서 냉궁으로 보내진다.
부찰귀인 자신이 유산한 것이 견환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제비를 부추겨 지나가던 견환의 뺨을 때리게 했다. 견환이 총애를 되찾자 전전긍긍하다 여후와 척부인의 고사를 듣자 미쳐버린다.
제비 아들을 위해 견환의 아이를 유산시키려 했고 녕귀인을 불임으로 만들었다. 견환의 아이를 경계한 나머지 황후가 흘린 꼬드김에 넘어가 그 대가로 아들을 빼앗기고, 아들의 황위 계승을 염려한 나머지 또 황후가 흘린 꼬드김에 넘어가서 새로이 입궁한 녕귀인도 불임으로 만들고 자결을 강요 받아 생을 마감지었다.
화비 견환과 그 주위의 인물들을 시도 때도 없이 괴롭혔다. 아이를 원했고 사랑 때문에 악행을 했다며 정당성을 내세운다. 견환은 화비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일부러 아이를 유산시키고 화비를 불임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까발려 멘붕시켜 자살하게 만들었다.
안릉용 사향으로 견환의 아이를 유산시켰다. 총애와 권력을 잡기 위해 견환과 심미장을 음해했다. 견환에게 똑같은 일을 그대로 당한다. 견환에게 미워하지도 용서하지도 않으며 그럴 가치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
기귀인 견환의 가문을 몰락시켰다. 견환이 환궁하자 친자 확인 사건을 일으켰다. 견환이 가문을 몰락시키고 소배성을 시켜 죽게 한다.[121]
정백 기귀인의 사주를 받아 감로사에서 견환을 괴롭혔다. 친자 확인 사건 때 기귀인 측 증인으로 왔다. 친자 확인 사건으로 기귀인이 몰락하자 처형 당한다.
황후 측복진의 유산으로 언니가 충격에 쓰러진 틈을 타서 언니와 그녀의 아이를 해쳤다. 릉용을 이용하여 릉용이 유산을 한 죄를 견환이 뒤집어 쓰게 하려고 했다. 간접적으로 견환이 황제에게 존재 부정을 당하게 했다.[122] 유일한 태후가 되길 원했다. 견환의 계략에 넘어가 견환의 아이를 유산시킨 누명을 쓴다. 역사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게 된다. 언니를 죽이고 차지한 황후 자리를 언니에게 뺏겨 태후가 되지 못하게 된다.
호온용[123] 의수가 권력을 잃자 황제에게 현청과 견환의 관계를 흘렸다. 견환에게서 여윤의 양육권을 뺏어오려 했다. 지병인 천식이 도지게 하는 방법으로 견환에게 죽는다.
황제 의처증 환자로 견환을 비롯한 여러 여자에게 상처를 주고 여자들의 진심을 외면하거나 무시했다. 견환에게 윤례를 독살하라고 지시했다. 녕귀인에 의해 독을 먹고 견환에게 4랑이라고 불러달라며 진심을 애걸하다가 견환의 진심과 후궁들의 배신에 대해 듣고 화병에 걸리게 되어 생을 마감한다.


완벽의 경우 견환 편은 맞고[124] 릉용처럼 선을 완전히 넘기 전에 사과했으나, 조귀인과 내통+속임수를 써서 과군왕과 결혼한 일로 견환의 속을 썩였다. 그래도 조귀인 때는 가족을 중시하는 견환의 가치관 덕분에 용서를 받을 수 있었고, 과군왕과 결혼할 때도 견환에게 축하 받았다. 조귀인은 화비파였을 때는 적이었으나, 화비를 몰아낼 때 잠시 손을 잡았지만 견환은 조귀인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고[125] 조귀인 역시 필요하다면 견환까지 배신할 마음이었다. 결국 견환의 충동질[126]에 조귀인은 황제에게 연답응을 죽여야 한다는 얘기를 꺼냈다가 황제와 태후의 미움을 사서 독살당한다.
상대 악행 및 소망 업보
완벽 서출이라서 신분 상승을 꿈꾼다. 조귀인에게 약점[127]이 잡혀서 화비파의 첩자 노릇을 했다. 속임수를 써서 윤례(현청)와 결혼했다. 첩자 짓은 견환에게 용서 받아서 넘어갔고, 황족과 결혼하며 신분도 상승하나 남편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조귀인 화비를 도와 악행을 저지른다. 딸 때문이라고 자신을 정당화하며 화비를 배신했다. 화비 사후 독살 당하며 온의는 단비가 키우게 된다.


이들은 오해로 견환과 사이가 멀어졌지만, 화해하며 큰 일 없이 끝났고 견환에게 보답을 받았다.
상대 오해한 이유 화해
심미장 화비에게 봉호를 돌려달라고 견환이 황제에게 청했을 때 잠시 오해했다.[128] 오해였을 뿐이라 안릉용의 이간질에 넘어가지 않았으며, 견환이 봉래주에 갇혔을 때에도 안릉용에게 준다는 구실로 의복 등의 생필품을 보냈다. 봉래주에서 돌아온 후 오해를 풀고 견환의 아군으로 남았다.
경비 환궁한 견환과 롱월의 양육권을 두고 잠시 불편해지며[129] 소배성×근석 스캔들이 터지게 했다. 단비의 중재 및 상황을 파악한 견환이 양육권을 경비에게 양보하면서 별 탈 없이 끝났다. 평소에 견환과 미장에게 잘해준 것도 있었으며 경비가 스스로 영수궁을 찾아와서 먼저 사과했다.

9. 변화

9.1. 입체적인 인물

작중에서 가장 큰 성격 변화를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처음엔 착하고 모두에게 친절한데,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단순히 착한 것을 넘어서 사려 깊고 총명하고 올곧다. 수녀 간택 때에 하동춘이 기세등등하게 날뛰고, 아무도 나설 생각을 못하는데 혼자서 나서서 달변으로 하상재를 막아낼 정도였고, 입궁 직전에 부친 견원도가 완벽이 견환의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을 때에도 자신이 받은 충격은 억누르고, 그녀를 좋은 데에 혼인시키겠다고 말하며 도리어 견원도를 위로해주는 속 깊은 모습을 보였다.

반면 10대 후반 나이대에 어울리는 호기심 많고 대담한 모습도 보이는데, 어화원 우물에서 복자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궁녀와 환관들이 정신을 놓고 대답하지 못하니 스스로 가서 복자의 시체를 눈으로 확인하고 말았다. 게다가 소원을 빌겠답시고 밤중에 혼자서 의매원까지 가는 것이나 후궁의 신분이면서 신발을 벗고 물장난을 치는 모습[130] 등으로 미루었을 때, 이 시기에는 말괄량이 기질도 있었다. 게다가 극초반에는 열혈적인 면모도 있었다. 안릉용이 하상재와의 충돌이 벌어지자 견환이 대담하게 나서려 것이 대표적인 일화다. 한 마디로 말해 아름답고, 마음씨도 고우며, 지혜로운 한편 그 나이대 소녀의 발랄함과 귀여운 고집도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완전체에 가까운 미소녀였다.

그러나 궁중에서 온갖 암투에 휘말리고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서 사람들을 경계하고, 일단 믿어주기 전까지는 의심을 해보고, 자신과 자신의 주변인을 건드리면 그 누구도 가만 두지 않는 독한 성격으로 변한다. 게다가 견환은 심미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존심이 꽤 강해서 그런지 그냥 당하고 살 만한 성격은 아니다.

그러다가 여답응을 사사시킬 때부터 견환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첫 번째 유산 직후에는 잠시 상심에 빠졌지만 냉궁에 내쳐지면 어떤 꼴이 되는지 확인한 후 더 이상 당하지만 않겠다고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숨어있던 적 황후의 계략에 당해 황제에게 자신의 진심을 배신 당하고 윤례를 잃고 가족이 위험에 빠지면서 생존과 복수를 위해 완전히 흑화한다. 그러나 여러 모로 독하기는 했지만 원래 천성이 선한지라 화비가 죽고 난 뒤엔 단비에게 화비가 불쌍하다고 동정했으며, 끝내 몰락하고 자살한 안릉용을 위해 슬퍼해준 적도 있고, 황제의 임종에서 황제를 밀어냈어도 그가 죽고 나서는 눈을 감겨주면서 결국엔 4랑이라고 불러주며 울음을 터트리는 등 아주 매몰차지는 못했다. 그러나 도대체 구제할 여지가 없었던 황후에게는 일말의 연민도 없었다.

견환의 그 유머러스한 성격만 두고 봐도 이런 변화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녀는 상당히 재치 있는 성격이기 때문에 완상재 시절 등 입궁 초기 시절에는 그 재치를 종종 농담, 재담하는 데 사용했다. 1화에서 완벽유주가 "얼레리꼴레리~ 온실초 나으리가 우리 아가씨를 좋아한대요~" 라고 킥킥거릴 때 "실초 오라버니에게 부탁해서 너희들을 벌 줄 약을 달라고 해야겠다."면서 웃어넘길 때라든가, 유주가 "왜 완벽이랑 아가씨는 닮았는데 왜 나랑 아가씨는 안 닮았어요?" 라고 떼를 쓰니 "사람들이 다 닮으면 그것도 웃기잖아? 대신 너랑 나는 노는 걸 좋아하는 게 닮았네?" 라고 농담을 하며 유주를 달랬다. 하다못해 주위 사람들이 아니라 적, 예를 들어 여답응을 꾸짖을 때에도 재치 있게 돌려 말했다. "여답응 자네는 똑똑하니까 말이야." 라면서 어디까지나 좋게좋게 말해주는 편.

하지만 이 유머러스한 성격은 희비로 환궁하고 나서 가장 많이 타락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 재치는 이제 하나의 비수가 되어, 재치를 농담하는 데 사용하는 게 아니라 비꼬고, 진실을 교묘하게 숨기는 화법을 쓰는 데 사용한다. 석고대죄하는 안릉용에게 "이제 좀 들어가는 것이 어때? 에게 물리면 어떡하려고 그러니?"라며 일전에 릉용이 견환의 아버지가 갇힌 감방에 쥐를 풀어 흑사병에 걸리게 한 일을 비꼰다든가, "수수하게 꾸미니 동생이 더 아리땁군요. 그렇지만 흰색은 순백의 색이라 욕망과는 어울리지 않네요."라고 말한다거나, 황제의 임종을 지켜보며 황제가 "6황자 홍염이 내 자식이 맞느냐?" 라고 물을 때 견환은 특유의 재치로, 그러나 이번에는 더할 나위 없이 냉소적인 어조로 "그렇습니다. 폐하의 자식이지요. 천하 모든 사람이 황제 폐하의 자식이니까요."라고 말했다. 이후 견환은 태후가 된 후에 의수를 만나 "우리 4황자는 효자니까 당신에게 황후로서의 예를 다할 겁니다. 물론 살아있는 동안만 말이죠." 라고 말하고, 그녀에게 만수무강하시라고 비웃는다.

물론 흑화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적에게 무자비한 것이지 아군이나 심복에게는 진심으로 잘해주고, 중립파들도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131] 황후나 화비와는 다르다.[132] 이러한 마음씨 덕분에 여러 사람들을 아군으로 만들며 최종적으로 승자가 될수 있었던 것이다.

9.2. 극적인 변화

배우의 열연에다가 분장의 힘이 더해져, 초반부의 견환과 마지막의 견환을 비교해보면 동일인물이 맞는가 싶을 정도이다. 앞머리를 까고, 눈꼬리에 음영을 넣고 진한 스모키를 하고, 입술을 새빨갛게 칠하자 타락의 완성이 되었다. 초반의 모습[133], 첫 아이가 죽은 후에 다시 일어섰을 때의 모습, 환궁 후의 모습, 태후가 된 모습의 화장이 다 다르고 점점 진해진다. 자세한 분석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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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초반부
입궁 초기에는 황제를 피하기 위해 병자 코스프레 중이라 수수하게 꾸미고 다녔다. 아이라인도 짙은 검은색이라기보다는 아직 소녀스러운 갈색이고, 눈가와 입술에는 자연스러운 분홍색이 감돈다. 또한 사랑스러운 양파두, 파스텔톤의 앙증맞은 꽃으로 소녀 감성을 잘 살렸다. 과하지 않고 자연화를 바로 따다 머리에 꽂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다.

귀걸이는 진주 하나가 달려있을 따름이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양파두 한쪽에 내려뜨린 줄을 최소한의 길이로 하여 위엄보다는[134] 달랑거리는 모습이 생기발랄하다. 금속 재질의 장식은 금이 아니라 은이라 눈 아프게 강렬하기보다는 소박하다. 입궁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착하고 생기 넘치는 여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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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입궁 1~2년 후
원명원에 첫 피서를 간 시절부터 이마를 까기 시작했고 장신구가 더 화려해졌다. 대랍시에 꽂은 비녀는 은으로, 희비로 환궁했을 때부터 대랍시 비녀를 금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모든 장식들이 더 화려해지고 옷도 밝은 파스텔톤에서 더 어둡고 진한 색깔로 바뀌었다. 점취로 이루어진 가자두는 입궁 초기 시절처럼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소녀 같은 생기가 아닌 우아하고 성숙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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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사에서 막수로 지낼 때의 모습. 이때가 작중 견환이 가장 몸이 안 좋았던 때인지라 안색이 굉장히 창백하다. 완빈 때까지는 이마를 깠지만 막수로 지낼 때는 깻잎머리 앞머리를 만들고 머리카락을 길게 뒤로 늘어뜨려 성숙한 여인의 청순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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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완비 책봉 희비 책봉
완비가 될 뻔한 때나 희비 때나 같은 대랍시지만 견환의 눈 화장과 입술 화장이 달라져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완비가 될 뻔한 시절 때에는 이 대랍시를 쓰고 입술을 오렌지색과 핑크색의 중간 톤으로 화장해서 대랍시의 붉은 장식이 그렇게 강렬하게 불타오르지는 않았고, 아이라인과 블러셔를 진하게 넣지 않았기 때문. 아무튼 금색으로 눈부시게 강렬해졌다. 황후만 사용하던 화려한 금색을 대놓고 사용하여 권력의 절정에 있음을 보인다. 또한 금색과 더불어 붉은색을 써서 위엄이 넘쳐흐른다. 대랍시의 술과 정중앙의 봉황이 물고 있는 구슬의 붉은색은 입술의 새빨간 화장과 조응하여 더욱 타오른다. 이 때부터 눈 주위에 분홍색이 아니라 갈색과 검은색으로 진한 음영을 넣고, 눈꼬리를 길고 날카롭게 빼어 뭔가 눈이 작아진 듯한 느낌이 들지만 강렬한 위압감이 느껴지며 악독한 느낌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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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환궁 이후
붉은 입술과 함께 진해진 아이라인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눈썹 화장이 완 봉호를 쓸 때와는 달리 뭔가 동글동글했던 눈썹 화장이 날렵해졌고 날카로워진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감로사에서 다시 환궁을 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독해지기를 결심하여 이렇게 변했다.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독해지고 수많은 음모에 시달린 끝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거쳤는지 알 수 있는 부분.

토르말린과 점취, 옥 등 여러 가지 보석으로 이루어진 언밸런스한 전자. 점취는 완귀인 때부터 그녀가 청아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자주 사용한 소재지만 이렇게 보니 또 색다르다. 여기서의 청색은 고귀하고 차가우며, 무엇보다 붉은색을 강조한다. 청색과의 보색인 붉은색을 포인트로 사용하여 전자의 정중앙에 배치했다. 그 붉은 포인트 직선으로 밑으로 내려온 지점에 견환의 붉은 입술이 위치해 있기에 더욱 돋보인다. 귀걸이는 2단의 보석(진주와 비취)으로 더욱 길고 치렁치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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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프닝에도 나왔던 유명한 장면. 안릉용의 아버지 안비괴가 비리로 고발 당해 릉용이 무릎을 꿇고 양심전 앞에서 빌고 있을 때 하옥을 명하고 뒤돌아서는 황제 옆에 서서 지은 표정.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말 한 마디 없이 릉용을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든 견환의 포스와 함께 초반의 순진무구한 완상재와 현재의 희귀비로써의 견환의 차이를 무섭도록 느끼게 하는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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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성모황태후
황제의 상징인 금봉황이 전자 오른쪽에 보인다. 마찬가지로 대놓고 화려한 금색을 베이스로 깔고 여러 색깔을 포인트로 사용했는데, 그 색깔들은 전부 반짝임이 남다른 보석이라 비비드톤이다. 화장은 전체적으로 골드톤이고 귀밑머리를 그렸으며, 립스틱은 검붉은 색에다 초창기와 달리 펄 아이섀도를 써서 눈가가 반들거린다. 화장기 없고 파스텔톤의 수수하던 완귀인 시절과는 대비된다.

물론 화장에 맞추어 장신구와 머리스타일도 변한다. 작중 가장 다양한 장신구를 하고 사실상 일자두를 제외한 모든 청대 헤어스타일을 소화한다. 초기엔 양파두, 가자두, 대랍시를 하다가 환궁 후엔 전자와 대랍시만 한다. 상재부터 시작해서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귀비를 거쳐 태후까지 되니 갈수록 화려해지는 게 가장 뚜렷하다. 엄청난 총애를 바탕으로 비가 되었을 때 그 화비도 못 써본, 황후급의 지위만 달 수 있는 금봉황 대랍시까지 썼으니 차이점은 크게 두드러진다. 장신구는 초기 완빈 시절까지는 청아하고 섬세한 맛을 살렸고, 희귀비 환궁 이후에는 화려해지고 짙어진 눈과 입술 화장에 맞추어 여전히 섬세하고 우아하지만 더 강렬해졌다.

스타일이 계속 바뀌다 보니 어느 시절이 가장 예쁜지 의견이 갈리긴 하지만, 대체로 전반부에는 별로 안 예쁘다고 하다가 타락한 후에 미모를 찬양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청초한 소녀적인 모습이었던 초반부의 앞머리 내린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옷 스타일이 바뀌는 것처럼 목소리 톤도 자주 변하는데, 소녀적인 이미지와 타락 이후의 이미지와의 연기 톤이 급격하게 달라진다.

10. 여담

중국 팬들 사이에서의 애칭은 견환마마. 흑화 후엔 흑견환이라 부른다. 흑화 전은 그냥 견환이나 환환이라고 부른다. 혹은 극 중에서 견환이 임종 전의 옹정제에게 했던 대사[135]를 인용하여 흑화 버전을 뉴호록 견환이라고도 하며, 더 나아가 뉴호록이라는 성씨는 착하던 캐릭터의 흑화를 상징하는 밈으로 자리잡았다.[136] 안티(주로 원작)들은 위선과 자기합리화를 비꼬는 의미로 대정(大貞)[137]이라고 부른다.

황제윤례 상대로 아양을 떨 때 새침데기처럼 일부러 토라진 척하고 츤츤거리는 연출이 많이 나온다. 물론 츤츤대면서도 위를 올려다보며 귀엽게 깜빡거리는 속눈썹과 미소 짓는 입은 덤. 다음에 또 이러면 옷을 안 꿰매주겠다고 하는데 이래도 남자들은 껌뻑 죽는다. 하지만 희비가 된 이후부터는 이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완빈 시절까지만 해도 홍색 계열 옷을 잘 안 입었다. 유주가 인증한 사실. 원래는 흰색이나 푸른색 계열의 청초한 파스텔톤 옷을 자주 입었으나, 환궁 후에는 노란색이나 홍색 계열의 강렬한 원색 옷을 많이 입는다. 두 색 모두, 특히 노란색이 중국에서 황제를 상징하는 색인 걸 생각해보면 뉴호록씨로 환궁한 후에 권력에 가까워지는 그녀의 목적을 대변한 셈.

근석이나 완벽과 같은 최측근 시녀들이 아닌 견환의 양산형 시녀들은 모두 하늘색 옷을 입는다.

설정상 목소리안릉용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안릉용이 노래하는 것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 다 견환이 부른 것으로 착각한다. 안릉용이 원명원에서 노래를 부르자 화비는 "완귀인은 춤이면 춤, 노래는 노래, 못하는 것이 없군."이라며 견환이 부른 것으로 착각했고, 양심전에서 노래를 부르자 바둑을 두러 찾아온 윤례가 창문 밖으로 노랫소리만 듣고 "아, 완귀인인 줄 알았군..."이라는 장면이 나온다.

희비로 환궁한 이후 지병으로 동상이 생겼다. 감로사에서 한겨울 빨래를 한 것의 후유증. 손의 괴사한 조직을 완전 제거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 부분이 약간 낮은 온도(겨울 공기 등)에 접해도 다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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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포스터에서 나온 의상이나 장신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좀 있다. 대표적으로 위의 포스터에서 나온 전자를 본편에선 조귀인이 대신 썼다.

견환을 연기한 배우 쑨리옹정황제의 여인의 감독인 정효룡과 미월전을 찍게 되었다.

쑨리가 견환을 연기하면서 정말 힘들었던 적이 언제냐는 인터뷰 질문"다른 배우들이 하나 둘 죽어가면서 하차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 나는 주인공이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데 다른 배우들이 극중에서 하차할 때마다 뭔가 외로워지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여담으로 화비, 황후, 황제 모두 죽기 직전에 견환과 1:1 면담을 갖는다. 그리고 3명 모두 멘붕을 겪으며 사망한다.[138]

미국 넷플릭스판과 Wavve의 극장판에는 노년 시기의 견환이 나왔으나 정식 TV판에서는 노년의 견환은 등장한 적이 없었다. 참고로 노년의 견환이 등장했던 시기는 1화부터인데, 옹정제가 어떻게 즉위를 했는지와 견환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을 속으로 털어놓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참고로 미국판을 위해서 추가 촬영을 한 거라고 한다. 76회분의 드라마를 6화로 줄이느라 생략된 부분이 많다. 화비가 귀비가 되는 것과 연비 강등 이후 화비 복귀 등등.

견환은 울기도 참 많이 울었지만 제일 크게 슬퍼한 것은 소중한 친구이자, 친언니처럼 여겼던 심미장이 사망했을 때였다.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통곡을 했을 정도였다. 윤례가 죽었을 때도 크게 슬퍼하기는 했지만 대놓고 통곡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황제는 윤례가 죽은 그 순간에도 견환과 윤례가 사통했을 거라 의심하여 그렇다.

견환이 가장 크게 멘탈이 붕괴된 시기는 다름아닌 첫 아이를 유산했을 때다. 그냥 펑펑 우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왜 내가 총애를 얻었을까? 그렇지 않았으면 연비[139]가 나를 해치지 않았을 텐데... 연비는 백번 죽여도 분이 안 풀리지만 나도 큰 죄를 지은 거야... 이 옷[140]은 내 아기에게 입히려고 했는데 옷만 남고, 아기는 이제 세상에 없구나..." 라고 말했고, 근석이 "울지 마십시오, 소주. 소주께서 자꾸 이렇게 우울하게 지내시면 폐하의 총애를 잃게 될 것입니다." 라며 진정시켰지만 견환은 "아이를 잃은지 열흘도 안 됐는데 엄마라는 년이 비단옷에 꽃단장이라도 하고서 웃으라는 것이냐?" 라고 대답하였을 정도로 우울함이 최고조에 달했다.

갓 빈으로 승격했던 시절의 견환은 본궁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았지만 첫 아이를 유산하고, 타락하면서 부찰귀인을 미치게 만들어버린 이후부터는 말마다 본궁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게 된다.

생일이 4월 17일인데, 옹정제와 윤례의 형제 중 서열이 각각 4와 17이다.

견환의 성우는 지관린이다. 중드를 본다면 은근히 자주 듣는 목소리이며 대표작으로는 유역비가 연기한 2006년 버전 신조협려소용녀, 안이헌이 연기한 2009년 버전 의천도룡기조민, 금수미앙의 이미앙, 미인심계의 두의방 등이 있다. 특히 쑨리임심여가 맡은 역할은 거의 고정으로 더빙하고 있는데 지관린은 훗날 손려가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인 미월전미월의 더빙도 담당했다.

11. 실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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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환의 모티브는 건륭제의 생모인 효성헌황후 뉴호록씨[141] 혹은 겸비 유씨[142]로 보인다.[143]

또한 측천무후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들이 있다. 고양이를 무서워 하고 절에 들어갔다가 환궁한다든가, 자신의 아이의 죽음을 이용해 황후를 끌어내는 등으로 보아서. 실제로 견환이 희귀비 시절 유산할 예정인 아이를 이용해서 황후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울 때 황후가 스스로를 변호하며 한 말이, 측천무후가 자기 딸을 목 졸라 죽여서 왕 황후에게 누명을 씌운 고사가 있는데, 황후의 입장이 왕 황후와 같다고 했다. 그럼 견환은 무측천인 셈.

은근히 문소황후 견씨(文昭皇后 甄氏)와도 겹치는 면이 많은데... 문예에 뛰어난 동생(윤례)이 아름다운 형수(견환)를 사모하게 되고, 이를 형(옹정)이 몹시 질투하는 이 구도는 삼국지의 조식-견씨-조비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144] 특히 견환이 경홍무를 출 때 안릉용이 부른 노래 가사가 바로 다름 아닌 낙신부[145]였고 그 때 윤례가 나타나 피리를 연주했던 점을 생각하면 절묘한 면이 있다. 실제로 견환의 견(甄)은 작가가 견씨의 성(姓)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작가가 채소분 팬이라 이 야사를 소재로 한 채소분 주연의 드라마 <낙신>의 등장인물 견복(문소황후 견씨)에게서 성을 곽현에게서 이름(嬛)을 따왔다고 한다. 실제로 수녀 간택 때 옹정제도 태후에게 "한나라 때 강남에 이교가 있고, 하북에 견밀이 있다고 했지요"라고 했는데, 밀은 견씨의 본명으로 추측되는 한자인 복(宓)의 또다른 발음이다.

광서제의 진비(珍妃, 각순황귀비 타타랍씨)와도 비슷한 설정이 많다. 옷을 모두 벗고 태감에게 업혀서 황제의 침소로 들어가는 다른 후궁들과는 달리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이나, 다른 후궁들은 모두 황제의 집무실 출입이 엄금되었는데 홀로 황제의 집무실에 드나들며 황제를 위해 먹을 갈아주고 황제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등은 모두 광서제 때 진비가 실제로 받은 특혜였다. 태후로부터 후궁은 정사에 간여하면 안된다고 지적을 받은 것이나, 태후의 친정 조카인 황후와 대립했다는 것 역시 두 사람의 공통점.

그런데 작가는 견환의 특별한 모티브가 된 인물은 없고, 그냥 여러 후궁들의 모습을 집어넣은 것이라 말했다.


[1] 감로사에 거주할 당시 썼던 법명.[2] 이 당시는 음력을 사용했으므로, 실제 양력 생일은 5월 28일.[3] 17세 입궁
18세 첫 회임
20세 출궁
22세(32세) 회궁
27세(37세) 윤례 사망
30세(40세) 황태후 즉위
[4] 순상재, 기귀인과 동거. 승건궁으로 가기로 황후가 정했지만 화비가 중간에 멋대로 고쳐버렸다. 게다가 쇄옥헌은 원래 황실 극장이었고 양심전과도 몹시 먼데 이에 반해 승건궁은 순치제 때 순치제가 가장 사랑했던 효헌단경황후가 살았던 곳. 나중에 이 쇄옥헌은 불길하다 꺼려지지만 결국 심미장의 거처가 된다.[5] 화비 때문에 쇄옥헌에 불이 났을 때 잠시 거주했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존국당은 심미장의 처소이니 두 사람이 함께 지냈었다.[6] 폐비되어 출궁.[7] 희비로 책봉되어 환궁. 황후가 견환 반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일부러 엄청나게 화려하게 꾸며서 굉장히 화려하다.[8] 옹정제 사후, 성모황태후.[9] 완벽의 어머니다.[10] 견원도의 사생아다.[11] 양자다.[12] 유일하게 황제와의 정상적인 관계에서 낳은 자식이다.[13] 윤례와의 불륜으로 얻은 쌍둥이 자식들이다.[14] 심미장온실초와의 불륜으로 얻은 자식이다. 그 직후에 심미장이 사망하면서 견환이 정화공주를 양녀로 삼은 것이다.[15] 감로사로 출궁[16] 과거 국운을 위해 4황자 홍력을 낳은 후에 궁을 떠나 절에서 수행을 했었고, 이에 황제는 감사를 표한다면서 희비로 봉한다는 방식으로 신분은 바꿨다. 또한 성씨도 뉴호록씨로 바뀌었다.[17] 윤례독살한 이후에는 부황후의 대우를 받게 된다.[18] 청나라 황실에서 후궁인 현 황제의 친모는 성모황태후로, 선황제의 정실인 선황후는 모후황태후(母后皇太后)로 칭했다. 아무래도 선제의 정실이다 보니 성모황태후보다 모후황태후의 권위가 더 높았다고 한다.[19] 원작에선 세상에서 제일 잘난 남자. 사실 자신만을 사랑해 줄 남자라고 하면 어색한 게, 그럼 온실초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허나 온실초가 후반부에 심미장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 온실초가 거절당하는 것은 일종의 복선이다.[20] 소원 내용을 말하면 효과가 없다고 하는데, 유주가 견환이 빌었던 소원 내용을 말해버린다.[21] 그런데 역사적으로 본다면 수녀 간택은 가기 싫다고 안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시 팔기에서 적령기 여성들은 모두 수녀 간택에 무조건 참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사실 본인 의지로 안 참가할 수 있는 거였으면 견환이 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리도 없고, 정황상 견원도가 억지로 견환을 보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기한 규정은 극 중에서도 존재한다고 봐야 하며, 온실초가 좀 이상한 놈이 되어버린 거다.[22] 심미장이 견환 옷을 보고 수수하다고 했고, 그나마 걸고 있던 귀걸이는 하동춘(하상재)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을 구해주다 친해진 안릉용에게 줘버렸다.[23] 원문은 견환의 성씨가 옹정제의 휘를 범했다는 지적인데, 중국어에서는 견환의 견자와 옹정황제의 본명인 윤진 진자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는 이를 살릴 수 없으므로 대신 강희제(현엽)의 현자가 견자와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바뀐듯하다.[24] 순원황후와 닮은 것도 문제였지만, 견환이 너무 똑똑한 것도 태후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요소였는데, 머리가 좋고 학식이 넓으면 그만큼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미장도 사서오경을 읽었지만 어머니가 미리 이를 알려줘서 수녀 간택 때에는 여칙과 여훈 외에는 읽은 책이 없다고 거짓말 했고, 태후는 이 점을 마음에 들어했다.[25] 견환이 인용한 시구에 감명을 받은 황제가 마찬가지로 시구에서 따서 지어줬다. 사실 굳이 '완'이란 봉호를 준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순원황후의 애칭이기 때문이다.[26] 검사는 온실초가 했다.[27] 당시 황제는 마흔을 넘긴 나이..[28] 여답응이 총애만 믿고 자신보다 품계가 높은 견환에게 "겨우 한 단계 높은 것 가지고 난리냐?"며 욕을 하다 황제가 보고 여답응은 강등시키고 견환은 귀인으로 품계를 올려준다.[29] 다른 후궁들은 최소한의 장신구도 하지 않는 알몸으로 김밥말이처럼 이불에 돌돌 말려져 양심전에 배달되어 첫 시침을 들었다. 행여나 시침을 드는 그 후궁이 그릇된 마음을 품고 무기를 숨겨서 황제를 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의 처소에 가구가 별로 없고, 방 배치를 단순하게 해놓는 것과 일맥상통하다.[30] 작중 금실로 수를 놓은 촉금은 스무 명이 석달 간 수를 놓아야 겨우 한 필이 나온다는 언급이 있으며, 1년에 딱 1번인 2월에 황제와 태후에게만 진상된다고 한다.[31] 영원이라는 뜻을 지닌 매듭으로, 혼인 시 주고받는 사주단자의 매듭이나 남녀 간의 진실된 사랑의 정표로 주고받는 물건이다. 작중 황후가 황제가 견환에게 동심결을 줬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대단한 사랑의 표시인 것이다.[32] 윤례의 어머니인 서태비가 선황 강희제에게 사랑의 뜻으로 받았던 선물.[33] 일단 황제태후화비에게 내준 환의향과 견환이 몸이 약해진 일이 겹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생각하나, 유산의 주범은 황후안릉용이었으며 견환도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다.[34] 화비의 오라버니인 연갱요가 서북 전쟁에서 승리를 거듭해 군의 사기가 바짝 올라 있는 상태였고, 군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비를 죽이거나 폐하거나 냉궁에 가두면 연갱요가 폭주할지 모를 상황.[35] 견환이 자신과 부딪혔다는 이유로 시종을 시켜 입 안에 피가 터질 때까지 싸대기를 때린다. 그래놓고 몇 시간을 꿇어 앉게 한다.[36] 그런데 자세히 보면 순원의 예복은 사실 화비가 온의 돌잔치 때 이미 입은 옷이고, 나중에 견환의 환궁하는 날 당시에 안릉용도 입는 옷이다. 제작비 문제 때문인지 예복은 옷깃과 털장식만 바꿔서 많이들 돌려 입은 듯하다.[37] 순원황후를 그렇게나 사랑했던 황제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아련한 첫사랑인 순원을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누구라도 순원을 모욕하거나, 함부로 언급하거나, 유품에 손을 댄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38] 황후가 "완비는..." 하면서 거짓 실드를 치려 하자, 황제는 "아직 황후에게 인사를 드리지 않았으니 비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화를 냈고, 비 책봉을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렸다.[39] 사실 그 이전에도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연갱요 잔당에 대한 처벌 문제로 견원도 부녀와의 견해가 엇갈렸고, 과이가 악민도 조정에서 신나게 이간질을 하고 있어서 황제의 불만이 쌓여가던 중이였다.[40] 물론 한자는 전혀 다르다. 견환도 어찌 감히 선황후의 아명을 따르겠냐는 말을 했고. 순원의 아명은 宛宛(완연할 완), 롱월의 아명은 綰綰(얽을 관). 한국식 한자 독음은 전혀 다르고 뜻도 다르지만 중국어 발음이 두 글자 모두 완이다.[41] 시름하지 말라는 뜻인데, 신조협려에서 이막수가 이 이름으로 유명하다.[42] 옹정황제의 여인 극장판은 노년의 견환이 등장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43] 이 둘은 동향이라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사이인데, 소배성이 최근석을 마음에 두었지만 근석은 소배성에게 딱히 마음이 없고 궁녀와 태감의 대식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무시하고 있었다.[44] 국상이 있다면 어차피 천하에 널리 퍼질 것이라고 상궁에게 말했다. 부고 외에는 황제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45] 사실은 황후의 수작. 이걸 위해 태후궁인 수강궁에 불까지 질렀다.[46] 안 그래도 태후는 4황자 독살 미수 사건을 벌인 의수에게 감정이 상한 상태였다. 마침 심미장은 "견환의 아이도 잘못되기 전에 궁으로 데려와야 할 텐데... 위수가 범하는 게 달인지 황손인지 모르겠네요..."라며 운을 띄운 상황. 태후는 이 기회에 4황자에게 모친을 만들어주고 폭주하는 황후를 견제할 사람이 필요하다 생각해 견환의 환궁을 돕기로 했다.[47] 양황기는 상3기 중에서도 가장 우두머리 급이다.[48] 황자를 낳았다는 공로가 생겨서 재입궁 시킬 이유도 생겼고, 태후의 분부에 따라 4황자를 보호할 수 있는 어머니도 만들어주면서 일석이조가 되었다. 나이를 조작한 건 둘의 나이차이가 불과 7세였기 때문.[49] 이 드라마에서도 나온 돈친왕 윤아가 바로 온희귀비의 아들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친왕이 아니라 돈군왕(敦郡王)까지 진봉되었다. 하지만 윤아는 이런 대단한 명문가 출신의 모친을 두었음에도 사서에 기록될 정도로 공부를 못해 태자 후보에도 끼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옹정제가 증오해 마지않는 8황자당이었기 때문에 옹정제 즉위 후 보복을 정통으로 맞아 작위까지 박탈되었다. 그나마 윤아의 외숙모가 옹정제의 양이모와 친이모였기 때문에 목숨만은 부지했고 건륭제 때 겨우 복권되었다.[50] 사실 방계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한국에서 같은 이씨라고 해서 같은 가문이 아닌 것처럼 만주족 역시 성씨가 같다고 같은 가문인 게 아니다.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조상이 있긴 하겠지만, 후대에 내려와서는 그저 동성동본 정도의 관계일 뿐이다. 따라서 같은 성씨라도 소속된 팔기가 다른 경우가 제법 흔했다. 뉴호록씨 유명인들 중에서 알필륭은 양황기, 숭경황태후는 양백기에서 양황기로 승격, 허션은 정홍기에 불과했다.[51] 당시 만주족은 가(佳)로 끝나는 성이 흔했기에(예: 과이가씨, 동가씨 등) 만주족으로 귀화하는 한인은 원래의 성씨에 가(佳) 자를 더해 O佳씨로 고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건륭제의 후궁인 효의순황후 위가씨, 혜현황귀비 고가씨, 숙가황귀비 금가씨 등등.[52] 친자확인 검사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물 떠다 놓고 피를 한 방울씩 떨어트려 섞이면 친자이고 섞이지 아니면 친자가 아니라는 방식이었는데, 물에 백반을 넣으면 친자가 아니어도 피가 섞이고 유채 기름을 넣으면 친자여도 피가 섞이지 않는다. 첫 검사에서 6황자 홍염이 온실초의 자식이라는 결과가 나오는데 견환이 물에 이상이 있음을 눈치챈다. 견환이 소배성의 손에서 피를 내어 떨어트리자 물 안에서 섞이고 이에 근석까지 피를 넣어보자 네 사람의 피가 모두 섞인다. 이후 온실초의 기미로 검사 결과 조작을 위해 누군가 물에 백반을 탔음이 밝혀지는데, 이 물은 친자 검사의 공정을 위해 황후가 직접 준비한 것이었다. 당연히 견환은 물론 황제까지 즉시 황후의 계략임을 간파한다.[53] 회춘이 스스로 뒤집어쓴 것도 있고, 태후의 체면 때문에 결국 공식적으로 처벌하진 못했지만 황후의 건강을 핑계로 내명부 통솔권을 견환에게 넘긴다.[54] 견환은 아버지 견원도가 유배간 것이 억울한 누명이라며 재조사를 청했는데 황제가 조정의 안정을 위해선 기귀인이 죄를 짓기 전까진 함부로 그 가문과 관련된 일을 조사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55] 당시 안릉용은 아버지 안비괴가 부정부패를 저질러 하옥되자 이를 구명하기 위해 석고대죄까지 했지만, 부정부패를 혐오하는 황제에게 대놓고 외면 당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이때문에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황제의 총애를 되찾으려면 회임밖에 방도가 없다는 황후의 강요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56] 리비란 봉호는 꾀꼬리처럼 목소리가 아름답고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좋은 의미로 내려준 봉호이다. 하지만 당시 안릉용은 기귀인의 약으로 인해 아름답다는 목소리를 잃어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 데다 그동안 다량의 사향과 식기환까지 복용한 결과 불임이 되었고, 겨우 임신한 아이마저 황후의 계략으로 유산이 예정되어 있는 정반대의 상황에 처해있었다. 이 모든 게 처음부터 안릉용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견환의 조롱이었다. 당연히 릉용도 자신은 황제의 꾀꼬리에 불과하다며 리비란 봉호를 매우 싫어한다.[57]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릉용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숙면에 좋다는 여우꼬리 백합을 매일 보내다가, 황제가 그녀를 찾는 하루만 최음제를 백합의 꽃술처럼 숨겨보낸다. 릉용의 처소를 찾은 황제는 이 최음제에 넘어가 이제 만삭이니 뱃속 아이는 괜찮을거라며 릉용과 관계를 가지지만 태의를 매수해 괜찮은 척한 것뿐, 릉용의 태아는 이미 이전부터 여러번 출혈이 일어날 정도로 언제 잘못되도 이상하지 않은 위험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대로 유산된다.[58] 이미 독성이 있는 살구씨를 과다복용한 상태였기에 힘겹게 "황후가... 황후를 죽였어요..."라는 단말마를 남겼다. 릉용 사후 견환과 다른 후궁들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고민했는데, 이는 다름아닌 순원황후와 현 황후인 의수에 관한 진실이었다.[59] 당시 안릉용이 한 말을 중국어 원어로 들으면, 듣기에 따라서 "황후... 황후를 죽이세요..."라고 들리기도 한다. 그 때문에 견환은 처음 들었을 때 황후를 죽여 복수해달라는 말로 오해한 것이다.[60] 작중에서 견환을 괴롭힌 악역들 중 유일하게 견환에게 사과했다.[61] "영서랑 홍염이 엄마를 못 봐서 우울한 것 같아요... 애기들은 엄마를 보고 싶어하고, 저는 효도를 못해서 속상해요."라면서 6~7살짜리가 맹자 얘기를 꺼냈다. 롱월이 맹자까지 줄줄 외우며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니 황제는 이걸 어쩌나 심란해 하고, 뒤에서 지켜보는 경귀비는 몹시 뿌듯해한다.[62] 사실 견환이 자신을 희생했더라도 윤례는 살아날 수 없었다. 황제는 희귀비가 아닌 다른 사람, 즉 윤례가 나오면 견환이든 누구든 이유불문 죽여버리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63] 이땐 이미 태후는 죽고 황후가 경인궁에 연금 당하고 모든 권한을 빼앗긴 상태인지라 사실상 내명부 서열 1위다. 또한 황제가 후계 문제를 의논할 때 4황자에게 더 좋은 신분의 양모를 붙여도 된다는 대인배스러운 발언을 해서(대신들이 홍력은 자질이 있지만 견환의 출신(폐비)이 낮아서 문제라는 주장을 했기 때문) 중궁, 즉 황후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 태후의 유조가 없었다면 의수 대신 정식으로 황후가 되었을 수도 있다.[64] 어머니인 오아씨의 애정, 순원과의 사랑, 윤례와의 우애, 견환의 마음 등등[65] 무슨 말을 했냐면 "우리 모자의 운명은 마마 손에 달렸습니다. 마마의 뜻에 맞으면 둘 다 살 것이고 아니면 둘 다 죽겠죠.", "부처님 앞에서 맹세할 수 있나요? 다른 비빈과 황손을 해친 적 없다고!", "제비는 왜 죽었죠? 녕귀인은 왜 불임인 거죠? 부찰귀인과 신첩의 첫 아기까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본인만 알 겁니다!"라고 따졌다. 근데 이게 전부 사실이다 보니 황후는 변명도 제대로 못했다.[66] 결국 견환이 자연적으로 유산될 자신의 아이를 황후에게 덮어씌웠으니 황후 본인이 꾸미던 계략에 역으로 당한 셈이다.[67] 책봉식 도중 무산[68] 환궁 때 소의 신분을 인정 받았고, 1계급 진봉되어 비가 되었다.[69] 원래 정1품의 귀숙현덕 중에 귀비를 제외하고는 봉호가 붙지 않는다. 그러나 현릉이 고집을 부려 완의 봉호를 붙인다. 그 말에 견환의 얼굴이 싸해진 건 덤[70] 명의황태후(明懿皇太后).[71] 서녀는 여(如)를 쓴다.[72] 황제가 작은 옥요에게 옥완으로 개명하라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73] 덤으로 만화판에선 순원과 전혀 다른 인상으로 그려져서 그 3할도 찾아보기 힘들다. 만화판 견환전 서화열의 순원은 눈이 쳐졌고 작게 묘사되며, 순하고 여리여리한 강아지상/토끼상인데 견환은 눈도 크고 눈매도 날카로우며 인상이 드세보이는 고양이상.[74] 기귀인에게 피해를 받아 견환의 편이 되고, 나중에 친정이 안릉용의 아버지인 안비괴를 탄핵한다. 여영풍 같은 느낌의 인물이다.[75] 수정판에서는 진혜생이 견형과 만나지 않고, 견형은 재혼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76] 원래 한 손을 못 폈는데 현릉이 만지자 만세영창이라고 새겨진 옥돌이 나왔다.[77] 수정판에서는 주패가 삭제되어 흔공태비 여영풍이 나온다.[78] 천우는 숙부인 현분(드라마의 신패륵)과 함께 사냥을 다녀 활 솜씨가 좋았는데, 부마 간택 의식에서 부마들의 머리 위로 활을 쏘자 다른 사람들은 다 기겁을 했으나 누귀원만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채는 용기를 보였다.[79] 외척을 견제하기 위해, 그리고 후궁의 암투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후궁을 많이 두지 않았다. 황제가 근비만을 총애하여 수녀 간택을 원하지도 않았고.[80] 사려 깊고 현숙한 것으로 묘사된다. 외모나 집안이 뛰어나지 않으나(작중 묘사로 보면 미인인 건 맞지만 다른 후궁들보다는 처지는 듯) 총애를 독차지하는 건 이 때문인 듯. 경빈에 의해 독살+교살될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걸 보아 멘탈이 대단한 건 사실인 듯.[81] 세도가 출신이라 한미한 가문의 출신인 근비와 다르게 집안 배경이 좋으며 외모도 근비보다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정장제가 근비를 단순히 총애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자신이 근비를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 괜히 투기하다 온유황후(주의수)나 화비처럼 되느니 차라리 화경덕태비(풍약소)처럼 존중이나 받자는 생각으로 얌전히 지낸다. 상당히 현실적인 인물.[82] 기산왕숙의 생모인 흠인태황숙태비의 손녀뻘 되는 인물이다. 경빈을 아끼는 황태비는 태후인 견환의 처소에 와서 황제가 만삭인 근비의 궁에만 있으니 다른 후궁들이 황제를 볼 수가 없다며 황손을 위해서 황제를 다른 궁으로 가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견환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린다. 황태비가 자신의 입지를 위해 경빈을 밀어주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덤으로 서귀비(현청의 생모)를 비하해서 빡친 것도 있고...[83] 자신이 근비보다 집안도 빵빵하고 황제의 첫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정 5품 빈에 불과한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견환에게 직접 토로할 정도로 생각이 짧고 개념이 없다. 심지어 아이를 낳고 귀비로 책봉된 사윤을 질투하여 그녀의 음식에 비상을 넣어 독살하려 했는데, 비상을 직접 썼다는 것을 안 견환이 "선대에 비하면 참으로 우습다"라고 했으며, 옆에 있던 풍약소 역시 "온유황후나 리비 시절이었다면 사람들이 이가 빠지도록 웃었을 것."이라며 그녀의 짧은 식견을 비웃었다.[84] 외척을 견제하기 위해 배경이 없는 근비가 황후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정장제가 좋아하기도 했고.[85] 이 부분에 대해 천우가 누귀원에게 너무했다는 평이 많았다. 누귀원은 심지어 천우가 직접 고른 부마였으며(다만 천우는 부마 간택 의식 자체를 안 내켜하긴 했다.) 그렇게 소인배같이 군 것도 아니고 할 만큼 했는데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진심이 안 보이고 자신을 공주로만 본다며 지나치게 소인배로 취급한다는 게 중론. 게다가 부마로 간택된 상태에서 혼인 취소를 당해 망신을 살 누귀원의 체면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빚진 게 없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86] 견환이 후궁이었던 시절 정적을 핍박하던 이야기를 들었던 천우는 모후가 지일을 죽일까봐 두려워하지만 견환은 그렇게까지 손 쓰지는 않는다. 첫째 천우가 지일이 죽는다면 따라서 죽겠다고 공언했고, 둘째로 지일의 눈동자가 현청과 매우 닮았다고 천우의 꿈과 근석의 말로 암시된다.[87] 의수는 작중 공식 팔방미인 언니보다도 서예를 잘 한다.[88]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원작에서도 견환은 부귀영화를 추구하지 않는다.[89] 중국 현지에서 원작의 안티 수는 견환>현릉>순원황후>=현청>완벽>안릉용>그 외 순이다. 다만 견환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르게 나올 때도 있다.[90] 특히 온실초를 대할 때 그렇다. 중반부엔 자신이 어장관리하고 있음을 독자에게 대놓고 까발린다. 조금묵을 독살한 후 온실초의 마음은 괴로울 것이고, 그의 행동에 감동 받았으나 결코 그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세상 여자들이 나와 같은지 모르나 사랑하지 않는 남자가 다시 헌신해도 역시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고 하였다.[91] 견환은 10대 중반인 시절에도 그 행동 방식이 사회에서 몇십 년은 닳고 닳은 사회인보다 치밀하다. 계산적인 사람은 많지만 견환만큼 항상 매사에 계산적이기는 힘들다. 그래서 순원황후와 다른 의미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92] 어쩌면 자기도 만만찮게 남에게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도 자기 행동을 끝없이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것도 용감하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있다. 애초에 합리화 자체가 방어기제니까.[93] 선황제의 황후를 모후황태후, 황제의 생모를 성모황태후라고 불렀으며, 당연히 선제의 정궁이었던 모후황태후가 더 우월하고 지위도 높다.[94] 사실은 윤례의 친아들이다. 홍염을 라이벌로 여기는 홍력의 시선을 거두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사실은 친아버지를 모시게 만들기 위해 그를 윤례의 아들로 입적시켰다.[95] 심미장의 판정패였다.[96] 견환이 졌으니 쇄옥헌에 머무르게 해주겠다고 말한다.[97] 견환 역할의 배우 쑨리가 경홍무를 익힌 시간도 겨우 10분밖에 안 걸렸기 때문에 이런 설정을 넣은 것이다.[98] 설령 돈친왕부의 무희가 견환보다 춤을 잘 춘다고 해도 돈친왕이 도를 넘어선 것이다. 견환이 아무리 일개 후궁이라고는 하나 황제의 여잔데 황제의 후궁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을 높이는 말을 해버린 것. 비록 돈친왕이라는 칭호를 받긴 했지만 황위쟁탈전에서 밀려난 자신의 처지 때문에 여전히 황제에게 날이 선 대응을 하는 것이 보인다.[99] 이때 읊은 시가 송나라 시인 진관(秦觀)의 시 <작교선(鵲橋仙)>이다. 보보경심에도 등장하는 시.[100] 탁문군이 사마상여에게 썼다고 알려진 시이다.[101] 반첩여가 총애를 잃고 쓴 시.[102] 자야가(子夜歌). 동진(東晋)대의 악부(樂府)이다.[103] 이때는 슬픈 감정 때문에 가려진 감이 있으나, 황제에게 왜 저 천한 년(화비)을 죽이지 않냐고 말할 정도로 분노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극 중에서 견환이 쌍욕을 날리는 장면은 이게 유일하다.[104] 물에 아버지와 아들의 피를 한방울씩 떨어뜨려서 섞이면 친자 안 섞이면 친자가 아니라는 현대인의 눈에는 말도 안되는 방법이다.[105] 일단 이쪽도 지식 스탯은 높은데 견환이 정치에 참여하다 보니 더 부각되었고, 계략 면에서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함정에 걸리는 걸 봐서 견환보다 확실히 밑이다. 즉, 심미장은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에는 강한 편이나 남을 해하거나 임기응변을 요구하는 계략은 약하다는 소리다.[106] 허나 순원황후도 내명부를 관리하는 능력이나 계략을 꾸미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을 상대로 암투에서 승리했으며 황후 유폐 후 부황후로써 내명부를 완전히 장악한 견환보다 못하다고 볼 수 있다.[107] 견환이 수녀 간택에서 합격을 받은 직후, 황후는 황제에게 "축하드립니다, 황상. 미인을 얻으셨다지요?" 라고 이야기했고, 한참 후에 견환이 희비로 환궁한 이후에는 "세월이 희비만 봐주고 본궁에게는 매몰차군."이라는 말을 했다. 기귀인에게는 그녀의 첫 인사 때 "정말 아름답구나. 더 잘 볼 수 있게 가까이 오거라."라고 했고, 안릉용과 기귀인의 뒷담을 깔 때 "기귀인은 얼굴은 예쁘지만 머리는 텅 비었어." 라고 그녀를 평했다.[108] 의외로 애들이 외모지상주의이다. 실험으로 입증된 결과. 게다가 이때 롱월은 견환이 친어머니라는 것을 알기는커녕 말 한 마디 해본 적 없었으니 립서비스일 가능성도 없다.[109] 수녀 간택일에 지각한 안릉용에게 어서 들어가라며 얘기해준 바로 그 상궁이다.[110] 자주 아플 수밖에 없는 게, 심심하면 정적들이 견환에게 툭하면 독살 시도를 하거나, 때리거나, 벌을 내리거나 해서...[111] 그런데 정작 견환 배우인 손려는 아주 건강한 사람이다.[112] 단, 원래 법적으로 후궁은 정치에 관여할 수 없게 되어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단순히 능력만으로 봐서는 심미장이나 조귀인도 정사에 관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화비는 집안 권력 때문에 예외적으로 조카의 관직 등에 관여한 적이 있지만, 다른 후궁들은 황제가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안 했다고 보는 쪽이 옳다. 그만큼 황제가 견환에게 의지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며, 그래서 태후는 이것 때문에 견환을 크게 꾸짖은 적이 있다. 그나마도 잠깐은 혼났지만 견환의 설명에 진상을 파악한 태후는 칭찬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113] 심미장안릉용이 그 수혜자. 미장은 화비의 외모를 칭찬하다가 꼬투리를 잡혔고, 릉용은 "사랑" 운운을 하다가 화비에게 "너도 후궁인데 감히 어디서 사랑을 논하냐?" 라고 당할 뻔했다.[114] 청나라 기준으로 1냥은 쌀 두 석을 살 수 있는 거금이다. 대강 계산해보면 7천냥은 현재 현금 가치로 10억이 넘는다.[115] 물론 이미 입궁 전부터 유일하게 봉호를 하사받았다는 것을 화비가 알았고, 궁을 배정할때도 황후가 양심전과 가깝고 화려한 승건궁에 배치시켜 화비를 견제하려 한다는 것을 간파한 상태였기에 크게 소용은 없었다.[116] 하지만 이조차도 역사 얘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돌려서 말할 뿐, 자신의 견해라며 직설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본인과 연관된 이슈일 경우, 최대한으로 양보, 인내, 자제, 겸손을 보여서 황제의 의심을 피하는 편.[117] 나팔꽃은 새벽 3시에 피어서 한낮이 되기 전에 진다. 연회가 새벽 3시까지 이어진 듯하다.[118] 당연히 선의로 준 것일 리 없고, 자신은 수수하게 꾸미고 태후를 만나러 가서 완귀인은 촉금 비단으로 두르고 다닌다고 고자질하는 데에 써먹었다.[119] 그런데 견환의 옆에 서 있다가 놀라 자지러진 낭자는 영원히 수녀 간택에 나갈 수 없는 벌을 받았다.[120] 물론 화비도 "황제 폐하께서 나한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며 견환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공존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121] 기귀인이 죽는 장면에서 견환, 소배성, 기귀인이 번갈아 나온다. 암시인 듯.[122] 견환의 완비 책봉일에 대례복을 훼손하여 순원황후의 대례복을 입고 가게 만들었다.[123] 원작인 소설에서만 등장한다.[124] 충성심이 아예 없었다면 견환이 가장 힘들었던 감로사 시기에 따라올 일이 없었다.[125] 온의공주가 조귀인을 닮아 잘못 성장할가봐 걱정하는 단비한테 온의공주의 어머니를 바꿔주겠다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견환도 조귀인을 제거할 마음이 있었다.[126] 양은 돕는다는 뜻이다, 언니가 화비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폐하가 양이라는 봉호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세란은 답응으로 강등되는 데 그치고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폐하께서도 더이상 몰아붙이지 못하고 계신다(=체면 때문에 황제 본인이 연세란을 처형하라고 명령하지는 못하니 누군가 명분을 제공해줄 이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127] 생모 기일에 궁에서 지전을 태웠는데, 황족이 아닌 완벽이 지전을 태우는 건 예법에 어긋난다.[128] 견환도 미장 못지 않게 화비에게 당한 게 많고, 화비가 봉호를 돌려받은 뒤에는 조귀인과 임시로 동맹을 맺어 화비를 보내버렸으나 그걸 곧바로 이해하기엔 미장은 고지식한 성격이다.[129] 면전에서 대놓고 다투진 않았지만 견환이 롱월에게 보내는 음식을 먹여주는척 하다가 치우는 등, 속으로 불편하게 생각했다.[130] 단순히 물장난을 친 것이 아니라 신발을 벗고 물장난을 친 거다. 옛 시대의 중국은 여자가 발을 대놓고 내놓는 것을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수준으로 금기시했기 때문에 견환의 행동은 무척 파격적인 것이었다.[131] 견환파가 먼저 건드린 중립파 인물은 초반의 부찰귀인 정도(귀신소동) 밖에 없다.[132] 황후는 수하 후궁들을 장기말로 이용하려고만 하고, 화비는 수하 후궁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한다.[133] 생일 잔치와 같이 예복을 입을 때에는 일시적으로 화장이 살짝 진해진다.[134] 길게 할수록 위엄 있게 보인다고 한다.[135] 그 시절의 견환은 죽었습니다. 잊으셨습니까? 폐하께서 죽이셨습니다. 신첩은 뉴호록 견환입니다.[136] https://baike.baidu.com/item/%E9%92%AE%E7%A5%9C%E7%A6%84/58947640[137] 정 자가 견환의 견과 발음이 같다.[138] 화비는 그렇게나 사랑했던 황제가 오히려 화비의 임신을 원하지 않아서 환의향을 하사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황후는 기록말살형에 충격을 받으며, 황제는 심미장온실초의 사통과 견환과 윤례의 사통을 확인함으로써 충격을 받는다.[139] 화비가 견환에게 벌을 줬기 때문에 견환이 유산된 바람에 화귀비는 도로 비로 강등 당하고, 봉호도 박탈 당했다.[140] 견환이 곧 태어날 자기 아이를 위해 만든 옷이다.[141] 숭경황태후 뉴호록씨, 황후는 사후 추존.[142] 실제 역사에서의 홍염의 어머니. 답응이 된 후 몇 개월 만에 상재와 귀인을 거쳐 홍염을 낳은 후 빈의 자리에 올랐다. 말년에 옹정제로부터 가장 총애를 받았으며, 왕부 시절 측복진 혹은 격격 출신이 아닌 후궁들 중 유일하게 빈 이상 올라갔다.[143] 이로 인해, 완상재부터 완빈 시절까지는 겸비 유씨를, 희비부터 부황후까지의 시기는 희귀비 뉴호록씨를 모티브로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144] 물론 조식과 견씨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야사일 뿐이다.[145] 조식이 형수 견씨를 사모하여 지었다는 전설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