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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8 14:18:35

오아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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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00><colcolor=#FFD700> 후궁견환전 등장인물
태후
오아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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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오아 성벽(烏雅 成璧)
배우 유설화(劉雪華)[1][2]
민족 만주족 정황기
거주지 수강궁[3]
가족관계 아들 : 옹정제
품계 성모황태후

1. 개요2. 출신3. 작중 행적4. 인간 관계
4.1. 황제4.2. 융과다4.3. 황후4.4. 후궁들
5. 원작에서6. 평가7. 실제 역사 이야기8. 기타

[clearfix]

1. 개요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의 등장인물.

2. 출신

효공인황후 오아씨. 강희제의 후궁 덕비로 옹정제의 생모. 생모이기 때문에 성모황태후에 봉해졌고 강희제의 황후는 죽었기 때문에 유일한 태후다.

순원의수는 모두 그녀의 표질녀(내종/이종/외종의 오촌 조카딸)이다.

태후로서 후궁에서 절대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만 평소에는 나서는 법 없이 황후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있다. 너그럽고 공정한 성품을 보여주지만 본인도 일개 수녀로 출발해 태후까지 된만큼 후궁 암투에 매우 빠삭하고 한번 손쓰면 매섭다. 게다가 남편 강희제가 아들이 많았고 재위내내 후계다툼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가문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청의 황후는 오라나랍씨여야 한다며 표질녀인 오라나랍 의수를 황후로 천거했다. 오아씨이지만 오라나랍씨도 자기 가문인 것처럼 말하는걸 보면 모계쪽이 오라나랍씨인듯 하다.[4]

3. 작중 행적

1화, 이제 막 등극한 황제의 건강을 챙기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3황자의 공부도 묻고 후궁도 당부하며 자연스럽게 수녀간택을 진행시킨다.

수녀간택 당일 황제와 함께 선발에 나온다. 안릉용이 약패를 받고도 의연하게 감사를 표하자 칭찬하고 황제가 통과로 바꿔주자 흡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5] 이후 수녀들이 줄줄이 떨어지고 황제가 뻔하다고 불평하자 세상에 완벽한 건 없으니 황손을 생각하라며 충고한다. 그러자 황제는 하동춘의 이름이 재밌다며 간택하는데 이를 보고 못마땅해한다. 심미장의 차례에 황제가 맘에 들어하는 눈치를 보이자 독서의 깊이에 대해 물어보고 단정한 심미장이 맘에 들어 직접 통과시킨다.

다음 차례인 견환이 인사를 올리자 순원황후와 닮은 모습에 황제와 같이 몹시 놀란다. 태후는 견씨는 폐하의 휘호와 발음같다고 지적하는데 견환이 이에 똑부러지게 대답하자 다음으론 물을 뿌리고 고양이를 던져 놀래켜본다. 이번에도 견환이 침착한 모습을 보이자 단정하다 칭찬한다.[6]

이후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 6화에서 밤에 불공을 드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당시 여답응이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 중이었는데 법도에 어긋나게 밤중 노래를 불러대어 태후의 불공에 폐를 끼친다. 태후는 단정한 심귀인같은 후궁이 좋다며 대놓고 심기 불편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 여답응이 흔상재를 신형사에 보내버리는 하극상을 벌이자 직접 벌을 내린다. 황후와 함께있다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한창 총애를 받는 비빈을 황후가 벌을 주었다 황제가 나서면 서로의 입장이 곤란해지니 제일 웃어른인 태후가 직접 나선 것이다. 얼마 후 또 짧게 등장하는데 비오는 날 황제를 처소로 부른다. 근데 하필 이 날이 황제견환이 어화원에서 보기로 약속을 한 날이라 둘은 엇갈리게 된다.

완귀인이 총애를 독차지하여 비빈들의 원성이 높아지자[7] 황제에게 과군왕의 어머니인 선황의 서비를 얘기하며 에둘러 총애를 나눠주라고 권유한다. 황제는 태후 앞에선 내색하지 않았지만 언짢았는지 태후를 모시는 상궁 손죽식에게 최근에 여빈이 태후를 찾아왔단 얘기를 듣고 여빈의 패를 경사방에서 빼버린다.

귀신 소동 이후 여빈이 미쳐버린 다음 날 경인궁화비와 함께 등장한다. 여빈이 정신을 놓고 견환 중독사건이 화비가 사주한 것임을 폭로할까봐 화비가 선수를 친 것. 황후와 독대하는데 여빈을 조사하려는 황후를 저지하고 여빈을 그냥 냉궁으로 보내버린다. 미친 사람의 말은 믿을 수가 없고 화비는 총애도 총애고 군권을 장악한 연갱요의 여동생이란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황후도 태후도 화비가 관련되었단 것을 눈치챘기 때문에 태후는 화비의 내명부 통솔권을 뺏어버리고 황후가 그동안 화비의 기세에 눌려 고생한 것을 위로한다.[8] 그리고 예뻐하던 심미장이 회임[9]하자 비녀를 하사한다.[10]

심미장의 회임이 가짜임이 밝혀졌음에도 견환안릉용대한 총애가 계속되자 화비가 태후를 찾아온다. 화비는 평소와 달리 소박하게 입고 태후를 찾아가 내피에 연꽃 문양을 넣은검은 여우털 모피를 진상한다. 태후는 모피를 받으며 화비의 옷이 왜 이렇게 소박하냐 묻는데 화비가 자신은 비빈들 사이에서 어린 편이 아니니 소박하게 입는다며 견환안릉용과 달리 화려한 색은 싫다고 말한다.그런 사람이 매일 화려하게 꾸며 위엄을 떤다화비가 계속해서 견환을 돌려까자 태후는 화비의 질투를 누르기 위해 달래준다. 본인이 덕비가 됐을 당시 효혜 태후가 하사한 비녀를 직접 꽂아주고 황제가 직접 제조한 환의향을 받는 건 화비 뿐이라면서 결국 황제가 가장 아끼는 사람은 화비고 아직 젊고 아름다우니 어서 단장하고 황제를 보러가라 일러준다. 화비가 돌아가자 태후는 한숨을 쉬며 왕부때부터 화비의 질투는 심했다 말한다. 그리고 정무가 파한 뒤 황제를 부른다. 황제가 도착하자 견환이 독차지하는 총애를 나누지 않으면 비빈들의 마음이 상한다 설명하며 은근히 검은 여우 모피를 보여준다. 황제가 모피를 아는 체 하자 화비가 진상했다 말하고 안감엔 연꽃이 수놓아져 있는데 안(내명부)밖(조정)이 모두 훌륭하니 더 돋보이는 것이라 말한다. 이 말뜻을 알아들은 황제는 화비를 보러 떠난다. 연갱요가 한창 승승장구 할 때라 연갱요가 교만해지지 않으면 중용하라는 등 정치적인 국면에서도 두루 살피는 모습도 보인다.

적출인 순원을 며느리로 맞이해야겠지만 순원이 너무 순하여 왕부를 잘 다스릴 것 같지 않아 독한 의수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11] 부찰귀인 유산 사건의 진상 등 황후의 온갖 악행을 알고 있었고, 그녀를 선택한 것이 옳은 일이었는가 내내 고민하고 후회했으나 결국 가문을 위해 황후가 절대 내쳐지지 않도록 죽기 직전 친필 서한까지 남기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황손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 황후에게 목숨을 위협 받는 4황자를 지키기 위해[12], 그리고 폭주하는 의수에게 제동을 걸기 위해[13] 본래대로라면 폐비된 견환이 환궁하는 것을 반대해야겠지만 오히려 지지하게 된다. 견환이 감로사에서 고생할 때 보호를 요청한 심미장의 부탁을 처음에는 거절하였지만 롱월공주를 언급하며 부탁하자 방약 상궁을 보내서 보호하게 한다.

죽기 전 황제의 친형제인 14황자 윤제를 구명해줄 것을 애원하지만 황제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숨을 거둔 태후 앞에서 황제가 자장가를 부르며 "어마마마는 한 번도 소자를 위해서 이 노래를 불러주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은 불러주시겠습니까?"라며 독백하는 장면은 황제의 외로움을 보여준다. 모자 관계가 서먹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융과다의 누이인 효의인황후는 옹정제가 막 태어났을 무렵 아이를 유산했고, 그녀를 아끼는 강희제가 옹정제를 효의인황후에게 줘서 양육시켰다. 효의인황후는 옹정제를 매우 아꼈고 강희제의 눈에 들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옹정이 다음대의 황제가 될 발판을 다졌지만, 8년 후에 효의인황후가 죽은 후 다시 덕비에게 돌아왔을 때 덕비는 옹정제보다는 동생인 14황자를 더 총애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14황자를 부를 자격도 없었다. 74화에서 언급된 바에 의하면, 황제와 태후가 황위를 쟁탈하기 위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때 두 사람의 살생부에는 이미 14황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권력에 눈이 멀어서 죽이려고 했던 주제에 태후 자신이 죽기 직전이 되자 그래도 친아들이 걱정된답시고 다시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실제로 덕비의 편애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로, 옹정제를 다루는 어떤 이야기에서도 덕비가 두 왕자를 차별하는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다. 같은 강희제~옹정제 시대를 다룬 중국 드라마 보보경심에서도 덕비(인수황태후)는 4황자 윤진은 매우 싫어하며 14황자 윤제를 매우 편애한다. 그리고 4황자가 옹정제로 즉위하고 14황자를 비롯한 8황자당을 숙청할 때는 아예 대놓고 "너 같은 건 아들도 아니다!"라고 폭언을 했을 정도다.

4. 인간 관계

4.1. 황제

황제와의 관계는 몹시 복잡한데 사랑, 증오, 죄책감 등이 한데 모인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친아들이기에 당연히 사랑한다. 황제의 건강을 챙기는 모습도 종종 나오며 견환, 미장에게 황제는 본인의 친아들이기에 불여우 같은 사람에게 홀리는 건 싫다고 말한다. 덧붙여 믿을만한 사람이 없으니 황제를 잘 다독여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옹정제를 황위에 올릴 때, 또 다른 친아들인 14황자를 황제와 함께 종인부에 구금했는데 이것이 내심 한으로 맺혔다. 옹정제가 어릴 적 14황자에게 차별받았다고 느꼈던 것도 있고 권력에 민감한 성격인 것을 알아 언급하지 않았지만 죽기 전에 14황자의 구명을 요청하기도 한다. 옹정제를 등극시키며 14황자도 살생부에 넣었다지만 진심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14]그리고 황제가 융과다를 숙청할때 둘의 관계로 압박하며 직접 융과다를 죽이게 만들었는데 태후는 이 때 마음의 병이 몸으로 번져 크게 앓아 누웠을 정도다.

융과다의 일로 황제에게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융과다의 문안을 일체 거절하며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이 초반부터 나온다. 그리고 황후순원을 죽이는 것을 알았지만 막지 못해 친아들이 가장 사랑한 여인을 평생 그리워하게만 한 점, 황후가 다른 여인에게서 난 자식을 미워해 황손과 후궁들을 죽이는 것을 알았지만 오라나랍 가문의 부귀영화를 위해 제대로 말리지 못한 점 등을 굉장히 미안해한다.

내 배로 낳았지만 어렵고 또 사랑하지만 서로를 너무 힘들게 한 모자 관계였다.

4.2. 융과다

입궁 전부터 융과다와 친밀한 관계였으며, 입궁 후에도 융과다와 관계를 유지한 모양이다. 옹정제는 태후와 융과다가 서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황후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태후도 이를 의식하여 본편 중 가끔 융과다가 알현을 청할 때마다 황제의 기분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거절한다. 또 한 번은 융과다가 황제에게 태후 좀 뵙겠다고 말하자 황제가 '멀리서 오셨으니 피곤하실 텐데 그냥 쉬시죠?'라는 말을 해서 커트한 적이 있다.

그래도 마음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는지 황제가 연갱요의 숙청을 도모할 때부터 융과다마저 숙청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다가, 연갱요 숙청 이후 우려한 대로 융과다에게 황제의 칼 끝이 향하자 융과다를 구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황제의 냉담한 반응과 분노를 재차 확인하고는 결국 자신이 직접 융과다에게 독주를 내려 목숨을 거둔다.

사실 그녀와 융과다의 관계는 좀 복잡한데... 오아 성벽은 입궁하기 전부터 융과다와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다. 성벽이 사고를 당했을 때 융과다가 성벽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다리에 깊은 부상을 입는 것을 감수할 정도로 헌신하는 관계였던 모양. 그러다 성벽이 황제의 후궁 간택에 나가게 되자 융과다는 황제가 하늘색 옷을 싫어하니 그걸 입고 가면, 간택에서 떨어지고 예정대로 자신과 함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정작 하늘색은 황제가 좋아하는 색이었다.[15] 융과다의 누이가 당시 황제의 정실인 효의인황후였는데 그녀의 편이 될 후궁을 들여 황궁 내 세력을 늘리기 위해 융과다가 성벽을 후궁으로 만들려고 술수를 부렸던 것. 그렇게 성벽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이용당해 황제의 후궁 덕비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효의인황후는 슬하에 아들 없이 황후 시절에 사망했고, 끝까지 살아남아 아들을 황위에 올려 황태후가 된 것은 덕비인 성벽이었다. 가문을 위해 융과다가 태후를 희생시켰던 것처럼 태후도 황제를 위해 융과다를 희생시킨 것. "당신이 내 인생을 망쳤듯이 내가 당신 인생을 끝냈어요."라고 융과다의 시체 앞에서 말하는 장면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 융과다를 독살시킨 후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언급이 있는 걸로 보아 마음 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원작에선 황제의 숙부인 섭정왕과 내연 관계였다. 드라마에선 융과다와 안았다 정도로만 나오는데, 원작에선 황제가 "이렇게 번개가 치고 비가 오던 날, 짐은 장막 뒤에 숨어 있었는데 모비는 왕숙에게 꼭 껴안겨있었고 왕숙의 손이 모비의 옷깃 안에 있었다."라고 말하며 피를 흘렸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황제는 이 일이 굉장한 트라우마가 된 모양인데, 당연한 게 모후가 아니라 모비라 칭한 걸 봐선 등극 전에 있었던 일인 모양으로 그렇다면 황제는 12세가 되기 전에 봤다는 얘기가 된다. 후에 후궁의 사통에 크게 노한 것 역시 단순히 배신감을 느낀 것뿐 아니라 이 일의 영향이 큰 듯. 나중엔 아들을 위해 섭정왕을 독살하는 것도 드라마가 원작을 따라가는 부분.

4.3. 황후

필요악으로 택했으나 그저 해악이었고 여러 상황때문에 내치지도 못하여 미워한 관계다.

오라나랍 가문의 영광을 위해, 암투가 난무하는 후궁을 다스리기 위해 직접 택한 황후다. 그래서 황후를 대외적으로 항상 지지해준다. 화비에게 눌려지내는 의수를 위로하고 밀어준다. 견환이 회궁했을 때도 황후를 항상 존중해야한다고 당부하며 황제에게도 국모의 중요성을 운운하며 황후의 체면을 항상 챙겨준다.

그러나 서로의 죄악을 모두 아는 사이이기에 둘이 있을 때는 적대감이 드러난다. 황후는 융과다와 태후의 사이를 알고 있고 태후는 순원황후의 죽음에 황후가 관련되어 있고 황후가 여러 비빈들 그리고 황손을 해쳤단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부찰귀인, 제비, 4황자 홍력을 해쳤을 때 마다 나무라고 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가문에서 의수를 대체할 황후감이 없었기 때문에 의수를 크게 제지하지 못하고 방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의수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견환의 출궁 이후 후궁을 장악한 이후엔 태후에게도 오만방자하게 굴며 융과다 일로 태후를 은근히 압박하기도 한다.

이런 의수의 독함을 잘 알고있고 의수를 몹시 싫어하지만 가문을 위해 끝까지 보호한다. 죽기 직전엔 '오라나랍씨'를 폐할 수 없다는 교지를 남기기도 한다.[16] 그렇게 증오하던 의수를 끝까지 지켜줄 수 밖에 없던 아이러니다.

4.4. 후궁들

태후로서 황제와 후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극 초반 황제가 수녀 간택을 하기 싫어하는데도 간택을 밀어붙여 성사시켰다. 또한 여답응이 황제의 총애를 믿고 설칠 때 태후가 나서서 직접 봉호를 박탈하며 조지자 여답응을 총애하는 황제마저도 아무 말도 못했다! 그 밖에도 황제에게 직접 "내가 보기엔 후궁 누구누구가 단정하니 괜찮아 보인다."라며 대놓고 밀어주기를 시전하고, 황후견환의 환궁을 막으려고 온갖 술수를 동원해 견환이 환궁하면 황후와 태후에게 문제가 생긴다는 말을 만들어내자 그걸 "나랑 황후는 복이 많아서 그딴 거에는 끄떡도 안 하는데?"라는 말 한 마디로 튕겨내버린다. 게다가 4황자 홍력 독살 미수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는 4황자를 수강궁으로 옮기라 명하며 "(내 구역 안에서) 어느 누가 감히 내 손주를 건드는지 보자!" 며 으름장을 놓는데, 진짜로 4황자를 수강궁으로 옮긴 후에는 그 누구도 감히 4황자를 건들지 못한다. 수강궁에 있는 4황자를 건드리는 것은 곧 태후를 건드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화비는 뒤에서는 망할 노인네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여러 가지 선물을 가져다 바치며 굉장히 잘 보이려고 하는데, 정작 태후는 황제의 공신인 연갱요 때문에 좀 배려해줄 뿐 미장이나 견환을 더 예뻐한다.[17] 화비가 방문했다가 나가자 공기를 맑게 한다면서 단향을 피우라고 지시했을 정도인데,[18] 사실 화비가 쓰는 환의향을 직접 제조하여 화비를 불임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태후다.[19] 그나마 화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건 예쁘다는 정도.

심미장은 다름 아닌 태후 자신이 직접 간택한 후궁인 만큼 처음부터 예뻐했으며, 미장이 황제에게 학을 뗀 이후부터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기 시작하자 더욱 소중하게 대했다. 총애를 받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미장을 위해 황제와 잘해보라고 자리를 만들어주고, 여러 가지 선물을 주기도 하고, 미장이 황후에게 밉보여 진급누락했을 때에는 태후 직권으로 품계를 올려주었으며, 미장이 딸을 낳으면 아이 이름은 자신이 붙여주고 싶노라 한 적도 있다.[20]

견환은 원래 순원을 닮은 걸 마뜩찮아했지만 견환이 강단이 있고 황제를 잘 보필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자 아끼기 시작한다. 다만 견환이 정치에 참견하는 것은 매우 싫어해 여러 번 타일렀으나[21] 황제와 견환 모두 태후 앞에서만 예예 한다.

재주로 황제를 섬기는 여앵아, 안릉용이나 미색으로 황제를 섬기는 기귀인 같은 후궁들은 단정치 못한 것들로 분류하며 매우 싫어한다. 일찍이 밤중에 궁 안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여답응의 묘음낭자라는 칭호를 박탈한 적도 있고[22] 황제가 중병에 걸려 쓰러졌을 때 간호하는 비빈들 중에서 이런 부류의 후궁들의 명단을 단호하게 빼버렸을 정도였다.

좋아하는 후궁 스타일은 단정한 스타일이다. 예를 들자면 심미장, 견환, 단비, 경빈처럼 학식이 좀 있고 이치에 맞는 생각을 하는 후궁을 좋아한다.[23] 허나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총애를 얻으려고 빙희를 배운다든가, 갖은 술수로 황제를 빼돌려 자기 처소로 유인한다든가, 권력을 휘두르며 궁 내외를 시끄럽게 만드는 무개념 후궁들을 몹시 싫어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화비, 여빈, 안릉용, 기귀인, 하상재, 여답응 등이 있다.

5. 원작에서

원작에선 현청의 양모이다.[24]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 5화에서 근석은 "17왕야는 폐하와 같은 어머니는 아니나 태후께서 키워 주셨죠."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원래 교서여사(校書女史)였다.[25] 그러다가 황제의 승은을 입고 황제 현릉을 낳았다. 현릉의 말에 의하면 섭정왕과 불륜 관계였다고.[26] 현릉이 황제가 되자 현릉과 합작하여 섭정왕을 죽음으로 내몰았는데, 이때 주씨는 고열로 앓아 누웠다.

의수를 현릉의 후궁으로 들인 것도 주씨였고, 유칙이 순원황후가 되게 허락한 것도 그녀다. 의수에겐 "난 궁 안에 널 들인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의수의 만행이 탄로났을 때 "너를 궁으로 들인 게 잘못이다." 라고 고백했다. 또한 원작에선 의수가 폐위될 위기에 있을 때 살아있었는데, 이러다가 의수가 불구가 될 것이라고 견환이 묘사할 정도로 금색 지팡이로 의수를 폭행하려고 했다.[27] 그런데 의수는 지팡이를 피하지 않고 꿋꿋이 맞으려고 했다. 교지를 통해 폐위하지 말라고 했던 드라마와는 달리 원작에서는 직접 주씨를 폐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의수와 순원의 가문이 같음을 상기시킨다. 드라마에서 죽식이 의수가 오라나랍씨이고 태후고 오라나랍씨의 혈족이고 황상이 몸에도 오라나랍씨의 피가 흐른다고 한 것이 원작에서는 태후가 황상에게 황상의 본처도 주씨고, 모후도 주씨고, 황상의 피에도 주씨의 피가 흐른다 말한다.

아들청하왕에게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태후도 은근 서태비에게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이 보인다.

여의전과 관련해서는, 원작 소설에서 오라나랍 의수의 대사에서 언급된다. "당시 효공인황후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오라나랍씨의 여식은 반드시 정실 중궁이어야 한다고. 이제 내가 이 같은 말을 에게도 한다면, 너는 어찌하겠느냐?"

6. 평가

황제와 더불어 후궁에 지옥도를 불러온 여자. 나름대로 사연 있는 불쌍한 여자이기는 하지만 비판 받을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우선 스토리에서 묘하게 대충 넘어가지만 이 여자는 엄연히 불륜녀다. 그것도 무려 자신의 부군이자 선황제인 강희제의 처남 융과다와 말이다. 아래에서 이야기할 황제와 황후의 관계 문제도 결국은 태후가 융과다와의 관계를 빌미로 황제와 황후에게 약점 잡혔기 때문이 크다. 태후가 여러 가지 문제에 나서려고 해도 그녀의 심복인 죽식 상궁부터가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태후 마마의 건강부터 신경 쓰라고 직언할 지경. 또한 융과다와의 관계는 황제가 여성 불신이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는 황후 오라나랍 의수순원황후 살해 방관이다. 순원의 죽음은 황제에게 있어서 여성관이 삐뚤어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이자, 황후에게 있어선 자신이 어떤 짓을 해도 태후가 자신을 지지할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황제의 삐뚤어진 여성관과 황후의 악행으로 내명부에 어떤 참사가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면, 사실상 견환전 내 모든 문제를 만든 만악의 근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순원의 죽음을 방관한 이유조차 순원이 너무 착해서 제대로 내명부를 통솔할 수 없을 거라는 어이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본인 스스로는 순원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도 컸던 모양이지만, 결국 비참하게 죽은 사람 입장에선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미 황후는 태후 본인이 바라던 대로 누구보다 악독하게 내명부를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는 황후 오라나랍 의수에 대한 방관이다. 설령 그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을지라도 황후가 황손에 손을 대는 순간 태후는 그걸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방귀인, 부찰귀인의 유산을 겪으면서도 아무런 방비가 없었다. 부찰귀인의 유산 때는 그나마 경고를 하고 넘어가긴 하지만, 이미 황후는 목적을 달성했는데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견환도 이를 통해 태후와 황제의 눈 밑에서는 황후에게서 안전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직접 황후에게 자신의 임신을 돌봐달라는 투서를 날려 연대책임을 지게 만든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섭답응의 대추탕 사건 때는 오아씨와 오랍나랍씨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황후를 감싸줄 수밖에 없는 걸 알지 않냐며 대놓고 황후에게 조롱까지 당한다.

네 번째로는 아들인 황제와의 관계이다. 우선 애초에 융과다와의 불륜 관계 때문에 황제 앞에서 떳떳하지 못했던 데다가, 그를 14황자와는 다르게 직접 양육하지 못해 서먹했던 모자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었다. 더구나 황후가 순원을 살해하는 걸 방관하면서 아들의 인생에 가장 큰 아픔을 남겼다는 죄책감 때문에 황제를 제어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순원의 빈 자리 때문에 황제가 비빈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다가 내치고 그 틈을 타 황후도 자기 마음대로 비빈들을 죽여버리는데도, 순원의 죽음에 대해 미안하기도 했을 뿐더러 스스로가 공범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비록 아들이 황제로 즉위하는 데에 가장 큰 조력자였다고 하지만, 어머니로서는 정말 최악이었던 여자인 셈. 어찌보면 의수보다 이 여자가 더 직접적으로 황제의 인생을 망쳤다.

화비와 황자들에 대한 태후의 책임에 관한 건 반론의 여지가 있다.

내명부에서 마구 날뛰는 화비를 억누르지 못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정치적으로 화비의 오빠 연갱요의 존재 때문이었다.[28] 또한 화비가 표면적으로 심각한 죄는 짓지 않았기도 했다.[29] 결정적으로 환의향을 이용해 화비를 불임으로 만들어 그녀가 아무리 날뛰어 봤자 책 잡힐 빌미만 만들 뿐, 결국은 황손을 생산하지 못해 훗날을 기약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든 것부터가 태후였다. 즉, 이미 안전장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굳이 태후가 나설 이유가 없었다는 것. 황후는 한 술 더 떠서 어차피 화비는 불임이어서 황자는 커녕 공주도 낳지 못해 황제 사후 나가리가 될 게 뻔하니,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화비가 멋대로 날뛰어 온갖 잘못을 저지르도록 방치했다. 황후의 의도는 그대로 적중해 화비는 제 성격을 못 이겨 갈수록 안하무인으로 날뛰며 자신은 물론 오빠 연갱요의 평판까지 깎아먹었고, 질투에 눈이 멀어 스스로 나서서 후궁들을 괴롭히면서 원래는 황후 본인이 비빈들을 견제해야 할 수고까지 덜어주고 있었다.[30]

또한 어린 4황자를 방치했던 것도 마냥 태후를 비판하기는 어려운 문제인데, 누구보다 황자가 필요했을 황후조차도 4황자는 황제가 싫어하니 눈 밖에 날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을 정도였다. 굳이 거두려면 거둘 수 있었을 테지만, 태후가 황제와의 관계 악화까지 감수하면서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나마 따지자면 자식 없는 비빈에게 4황자를 키우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도겠지만...[31] 그 외에는 아예 궁 밖에서 키워진 5황자를 제외하면 다들 자기 생모가 돌보면서 크고 있었으니 별 문제 없었다. 물론 황손에게 손을 대는 황후를 방치한 건 문제였지만, 이미 부찰귀인 때에는 사후에 알아차려 손을 쓰기 늦었었고[32] 그 이후에는 견환이라는 존재를 겪은 황후가 폭주할 대로 폭주한 뒤라 막을 수가 없었다.

7. 실제 역사 이야기

당나라를 모티브로 한 가상왕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실제 역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인수황태후 오아씨도 각색된 부분이 있는데, 실제 역사에서의 옹정제의 생모인 인수황태후[33]옹정제 즉위 원년에 죽어 강희제와 합장했다. 이미 즉위 원년이 한참 지났을 이 드라마의 시대 설정에서는 죽어서 등장하지도 않아야 할 사람이 나온 셈이다. 다만 모후와의 불화로 인한 어린 시절의 불행, 모후와 외삼촌(격)의 불륜을 지켜 본 이후 여성을 믿지 못하게 된 옹정제의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듯하다.

또한 인수황태후의 성씨는 오아(烏雅)씨로 오라나랍(烏喇那拉)씨가 아니다. 다만 이 부분은 조금 애매한 것이, 분명히 태후와 황후의 회동 중에 자신은 '오아'씨라고 밝히는 장면이 있다. 극중 설정만 가지고 보자면 오라나랍씨와 오아씨가 같은 가문에서 갈라져 나온 일종의 분파 관계에 있기 때문에 진짜 친척 관계가 아님에도 서로 고모-조카 하며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오라나랍씨와 오아씨는 역사적으로 그런 관계가 전혀 없다. 그런데 정말 진짜 친척 관계가 아니라면 굳이 황후의 악행까지 눈 감아주며 오라나랍씨 가문을 비호하는 건 의문. 굳이 극중 여러 설정을 짜맞추어보자면, 태후의 어머니가 오라나랍씨 가문의 여식이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순원의수의 조부에게 누이가 있었고, 그녀가 오아씨 가문에 시집 가서 태후를 낳았다고 치면 태후는 순원&의수의 부친에게는 고종사촌이 되고 순원과 의수에게는 내종고모가 된다. 또 오라나랍씨는 태후에게 있어 외가가 되니 오라나랍씨를 그렇게까지 위하는 것도 설명이 된다. 그리고 작중 후반부에 황제가 태후도 서출이라고 말하며 사실을 인증한다. 사실 이건 가공의 역사를 실제 역사에 끼워맞추다보니 생긴 문제로, 원작 소설에서는 둘 다 주씨로 같은 가문이었다.

역사상 효공인황후가 낳은 아이는 자신의 장남이자 4황자인 옹정제 윤진과 6황자 윤조, 14황자 윤제, 요절한 두 황녀 및 동가 순안안(효의인황후와 융과다의 조카)에 하가한 딸이 있다.

8. 기타

독실한 불교 신자라는 묘사가 작중에서 여러 번 나온다. 견환에게 불경을 필사해 달라고 한 적이 있고, 화비도 태후가 불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고 외투 안감에 연꽃 자수를 넣어 선물해준 적이 있다. 윤례도 어머니 대신 유람하다가 불상에 불공 드렸다고 말한다. 또한 불교 신자인 만큼 단향을 즐겨 사용한다.

융과다나 방약상궁이 인증한 바에 따르면 태후가 된 후로부터 건강이 좋지 않은 듯. 융과다는 약을 보내고 있지만 태후는 그 약을 먹지 않는다.

최종보스인 황제와 황후에 가려지고 후반부에는 견환과 미장을 지지해줘서 그렇지 사실상 진짜 빌런 중 하나다. 황후가 온갖 음모를 꾸며대는 데에는 태후가 어쨌든 자기를 밀어줄 거라는 확신의 영향도 컸다. 심지어 황후와 똑같은 조카딸인 순원의 죽음조차 방관하고 있었으니... 여답응의 독살 시도, 화비가 견환을 유산시킨 일, 마니옥 사건 같은 예상 밖의 사고나 소소한(?) 음모를 제외하면 굵직한 음모는 모두 이 사람이 직접 관여했던가, 최소한 알고도 방관하거나, 뒤늦게 알더라도 진실을 숨기고 넘어갔다.[34]

가끔 빨강 매니큐어를 칠하고 등장한다. 구단이라고 부른다.

태후가 비녀를 후궁에게 하사하면 그 후궁은 온갖 불행을 겪는 징크스가 있다. 화비는 태후가 후궁시절 덕비로 봉해졌을 때 효혜장황후가 하사한 봉황비녀를 받았는데 결국 임신도 못하고 자신이 왜 임신을 하지 못했는지 진상을 알게 되어 끝내 자살하였고, 심미장은 임신 축하 선물로 다복과 다산을 상징하는 신선이 새겨진 순금 여의 비녀를 받았으나 거짓 회임 사건으로 연금되었으며, 견환도 첫 임신 당시 앞서 미장에게 주었던 비녀를 보석으로 상감해 수리한 것을 임신 축하 선물로 받았으나[35] 그 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사실 심미장과 견환이 받은 비녀는 태후가 후궁 시절 14황자 윤제를 임신하고 있을 때 꽂았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태후 본인도 각별히 아꼈던 아들인 14황자 윤제와 생이별하고 죽을 때까지 아들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건 끼워맞추기에 가까운 게, 애초에 온갖 음모술수와 암투가 넘치는 작 중에서 안 불행한 후궁이 없기 때문이다. 화비는 비녀를 받기 전에 이미 태후와 황제의 계략으로 유산을 경험했고, 심미장도 화비의 견제에 시달리며 많은 고생을 하였다.[36] 그리고 비녀를 안 받은 후궁이라고 딱히 불행을 안 겪고 순탄하게 산 것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태후에게 비녀를 받는 후궁은 태후와 황제의 총애 혹은 중시를 받는 몸이라 음모술수의 표적이 되기 더 쉽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1] 궁쇄심옥에서 똑같은 역할을 연기했던 배우가 그대로 나왔다! 또한 같은 시기에 제작되던 신 황제의 딸에서도 태후 역을 맡았는데 관계상으로는 견환전 태후의 며느리, 견환전으로 치자면 바로 견환이다.[2] 중국에서 태후 전문 배우로 불리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젊은 시절 모습을 보면 청순미가 있는 미녀였다.[3] 사실 수강궁은 1735년 옹정제 재위 마지막해에 건설을 시작해서 건륭제가 즉위하고 완공되는 건물이라 이 시기 수강궁은 고증 오류가 있긴 하다[4] 그런데 청나라 때는 고모의 친정 조카딸이 고모가 시집 가서 낳은 아들과 혼인하는 일이 실제로 매우 흔했다고 한다. 이름하여 '고모를 따라 시집 간다'는 풍습인데, 이는 만주 기인들의 오랜 관습이었다고 한다.[5] 약패(꽃)을 받으면 탈락, 유패(향낭)을 받으면 통과다. 안릉용은 견환이 머리에 꽂아준 해당화에 나비가 앉자 황제가 향낭으로 바꿔주어 통과된다.[6] 순원황후와 닮았기 때문에 첫인상은 꺼려졌으나 단정한 모습에 일단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7] 견환이 여답응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을 황제가 구해준 직후다.[8] 여빈이 너무 쉽게 그리고 완전히 미쳐버려 그 말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됐고 화비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컸다. 하지만 태후도 이런 화비를 좋아하지 않는지 왕부때부터 뭣 모르고 설쳐댔다며 심미장같은 후궁을 더 키우라고 말한다.[9] 가짜회임사건[10] 회임이 가짜로 밝혀지자 다시 태후에게 회수되는데 훗날 다시 견환의 회임 때 하사한다.[11] "순원황후가 정말로 선량한가?"라는 의문에서 "적어도 성품만큼은 진심으로 선량했다"라는 것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인데, 태후는 본편 시점보다 더 치열했을 선대 후궁들 간 암투의 최종 승리자로 황제도 몰랐던 의수의 본성까지 꿰뚫고 있었다. 그런 태후가 보기에도 순원이 왕부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선량했다면, 순원은 정말로 착했거나 태후의 눈까지 속일 정도로 심계가 깊었다는 이야기가 된다.[12] 황후가 4황자의 녹두탕에 독을 넣어서 독살하려 했는데, 4황자가 먹기 싫다며 유모에게 먹여 유모가 독살 당했다. 그래서 4황자를 수강궁에 지내게 하여 지켜주지만 태후는 "애가(哀家)는 이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르는 늙은이인데, 손주를 지켜줄 시간이 얼마 없는 게 한이구나..."라며 세월을 한탄한다.[13] 그러나 이것도 궁극적으로는 양심적인 문제가 아니라 가문을 보전하기 위해서였다. 황후의 폭주가 계속되면 결국 오아와 오라나랍 가문을 파멸로 몰고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14] 물론 황제는 들어주지 않았다.[15] 이게 평생의 한이 되었는지 죽기 직전 혼수 상태로 하는 헛소리가 '약속했잖아요... 간택이 끝나면...'이다.[16] 태후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궁견환전의 후속작 후궁여의전에서 자신의 손자인 건륭제 홍력는 청앵의 사례 때문에 오라나랍씨는 수녀간택에 나갈 수 없다는 법을 정하고 만다.[17] 드라마에서 태후는 특정 후궁을 밀어주는 발언을 특히 많이 하는데, 화비를 밀어줄 때는 "황상께서 이렇게 화비를 냉대하면 연갱요와의 사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혹은 "화비는 연갱요의 누이니까 특히 신경 좀 쓰고 자주 찾아주세요."와 같이 정치적인 측면 때문에 밀어주지만, 미장과 견환을 밀어줄 때는 "내가 보기에는 혜빈이 단정하니 참 괜찮아 보이는데~", "심귀인은 총명하고 완귀인은 똑똑하지요~" 라며 사심을 다해서 밀어준다.[18] 오죽하면 태후의 죽식 상궁이 먼저 말을 꺼내며 욕할 정도. 이 죽식 상궁은 화비가 왔다 가니 신 냄새가 진동을 한다며 욕을 하는데, 중국어에선 질투를 신 맛의 대명사인 식초를 먹는다고 표현한다. 당태종과 그의 심복 방현령과의 일화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즉, 황제의 독점욕과 질투 때문에 내명부를 개판으로 만드는 화비를 우회적으로 조롱한 것.[19] 드라마 한정. 원작에서는 현릉과 의수의 합작품이다.[20] 그러나 태후는 죽는 순간까지 미장이 사통으로 아이를 임신한 줄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딸의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미장과 견환이었고.[21] 이 때문에 한 차례 견환을 불러서 크게 꾸짖은 적이 있었다.[22] 여답응이 총애를 믿고 기고만장해져 궁중 법도를 무시하고 오밤중에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댄 것도 모자라 흔상재와 시비가 붙자 자기 윗전인 흔상재를 신형사로 보내버렸다! 아무리 여답응의 총애가 한창이라고 한들 흔상재는 여답응보다 품계도 높고, 입궁도 훨씬 먼저 했으며 결정적으로 출신 자체가 한군기 귀족 출신이다. 명문가 출신 부찰귀인과 세도가 출신 화비에게도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흔상재의 태도나 작중 묘사로 보았을 때 안릉용이나 조귀인처럼 절대 한미하고 힘 없는 집안 출신이 아니다! 여답응도 한군기 소속일 수 있으나 후궁들을 모시는 일을 하는 게 아닌 의매원 가지치기 같은 잡일을 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한군기 출신이더라도 만주족의 가노 집안, 즉 한군기 포의 출신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무리 포의 중에 출세한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극소수임을 보았을 때 여답응은 사회적 신분, 집안의 위세, 후궁 품계, 나이 그 어느 것 하나 흔상재보다 위인 게 없는데 황제에게 총애 좀 받는다고 흔상재를 신형사로 보낸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죽을 날을 스스로 앞당기는 미친 짓을 한 거다.[23] 다만 너무 똑똑하면 좋아하지 않는데, 드라마 극초반에 미장의 후궁 간택 대면에서 미장은 자기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여칙'과 '여훈'만 읽고 다른 책은 읽지 못했다고 하자 지성미 넘치는 여자를 좋아하는 황제는 순식간에 심기가 불편했지만 태후는 "여자는 자수와 바느질이 우선이지. 글은 읽을 줄만 알면 됐다."라며 단번에 합격시켰다.[24] 주씨가 서태비에게서 현청을 빼앗아서 길렀다. 서태비는 태후 주씨와 서로 자매의 정이 있다 생각했으나 실상은 주씨에게 낚인 거였다고 한다.[25] 그래서 문학에 매우 박식하고 후궁일 때 친했던 서태비도 태후에게 문학을 조금 배웠다.[26] 현릉이 친모의 불륜을 폭로하는 상황이 가관이다. 당시 현릉은 4개월 동안 앓아 누워있었는데, 3개월 동안 부른 후궁 중에 왕귀인은 없었다. 견환은 강빈을 데리고 가고 현릉에게 강빈이 왕귀인이 임신한 지 3개월이라고 알려줬다. 현릉은 처음엔 좋아했다가 날짜를 세 보니 친자식이 아니란 걸 알자 충격을 받고 강빈을 때리다가 비가 내리는 데도 창문 쪽으로 뛰쳐나갔다. 이를 말리는 견환을 붙잡고 옷을 벗기다 태후와 섭정왕 간의 불륜을 폭로하고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27] 결국 중간에서 멈췄다.[28] 차라리 후궁 내에서 문제가 터지는 것이 낫지, 그것이 태후나 황후의 개입으로 비빈들의 친정끼리의 감정 싸움이 된다면 결국 조정에서 문제가 터지게 된다.[29] 기껏해야 황후 앞에서 반만 절한다던가 문안에 늦는 등, 상전인 황후에게 오만방자하게 행동한다는 것에만 국한됐다. 결정적인 뇌물수수가 터지기 전에는 언행이 조금 불손하긴 해도 폐서인으로 만들거나 냉궁으로 내칠 죄는 짓지 않았다. 화비가 자신이 일부러 문안에 늦게 만들어 놓은 심미장에게 내린 벌도 월봉을 2달간 정지한다는 것 뿐이었으니, 태후도 화비가 저지른 짓을 일일이 처벌해봐야 오히려 연갱요와 화비에게 원한만 샀을 것이다. 물론 복자 살해나 견환과 심미장에게 한 짓 등 들키지 않거나 어물쩍 넘어갈 수 밖에 없었던 죄는 수두룩하게 지었다. 화비도 심미장의 거짓 회임이나 견환의 유산같은 도를 넘어선 짓을 저질렀을 때에는 처벌을 피해가지 못할 걸 알아서 안절부절했고, 실제로도 견환을 유산 시킨 벌로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봉호까지 빼앗기고 품계를 강등 당했다.[30] 심미장과 견환에 대한 견제, 견환의 유산 등이 대표적. 이 외에도 황후는 심미장이 후궁 살림을 맡았을 때, 그녀의 지침대로라면 화비가 반드시 앙심을 품을 거라고 다 예상했으면서도 수수방관했다. 심미장이 화비에 의해 화를 입든, 심미장의 근검절약으로 화비가 약이 오르든 황후 입장에서는 둘 다 이득이었기 때문. 심미장의 근검절약으로 화비가 본격적으로 뇌물에 손 대기 시작한 게 이 시점이니, 어찌 보면 황후의 함정은 정말로 치밀했다.[31] 조귀인을 처리할 때 온의는 궁중에 많은 게 자식 없는 비빈이니 키우게 하면 된다고 했으니...[32] 손 대는 방식조차 치밀했다. 황제가 하사한 분가루를 안릉용이 뿌려서 제비가 바친 고양이가 달려들게 했으니 황후는 이래저래 책임을 덮어씌울 존재가 많았다. 심지어 그 분가루 자체를 바르고 나온 건 부찰귀인 자신이었다.[33] 강희제 시절 덕비, 사후 효공인황후로 추존된다.[34] 직접 관여 : 14황자 사건, 화비의 불임, 단비의 누명, 양빈(조귀인) 살해 / 방관 : 순원의 죽음 / 진실숨김 : 부찰귀인 유산, 제비의 죽음, 4황자 독살시도, 견환의 대례복 사건.[35] 정작 견환은 그 비녀를 보고 많은 고생을 한 미장이 떠올랐는지 복잡한 얼굴을 했다. 굳이 그걸 고쳐서 준 태후도 참...[36] 문제가 되는 거짓 회임 사건도 태후가 비녀를 하사한 뒤에 터진 것이긴 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이미 화비파의 음모에 걸려든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