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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03:17:51

천카이거

천카이거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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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칸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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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려상
제45회
(1992년)
제46회
(1993년)
제47회
(1994년)
  빌레 아우구스트
(최선의 의도)
천카이거
(패왕별희)

제인 캠피온
(피아노)
쿠엔틴 타란티노
(펄프 픽션)

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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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영화상
제46회
(1993년)
제47회
(1994년)
제48회
(1995년)
장이머우
(홍등)
천카이거
(패왕별희)
장이머우
(인생)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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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영화상
제76회
(1993년)
제77회
(1994년)
제78회
(1995년)
레지스 와그니어
(인도차이나)
천카이거
(패왕별희)
제라르 코르비오
(파리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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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카이거
陳凱歌 | Chen kaige
파일:chenkaige.jpg
이름 천카이거[1] (번체: 陳凱歌, 간체: 陈凯歌)
영문명 Chen Kaige
출생 1952년 8월 12일 ([age(1952-08-12)]세)
베이징시
신체 186cm
국적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학력 베이징전영학원
배우자 쑨자린 (1983~1986)
훙황 (1989~1993)
천훙 (1996~)
자녀 천위앙, 진비우

1. 개요2. 생애
2.1. 초기 이력2.2. <패왕별희>까지2.3. <패왕별희> 이후
3. 필모그래피
3.1. 연출
4. 기타

[clearfix]

1. 개요

중국영화감독이다. 중국 영화 세대 구분에서 장예모와 함께 제5세대 감독이라고 부르는 감독의 대표주자이다.

2. 생애

2.1. 초기 이력

영화 감독 천화이아이의 아들로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시절 그는 중학생이었고, 홍위병에 가담하여 아버지를 비난했다. 이 당시의 경험은 패왕별희에 잘 묘사된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그는 대학입시를 치러 베이징전영학원에 입학, 1982년에 졸업한다. 이때 동문이 장예모와 톈좡좡.[2]

2.2. <패왕별희>까지

졸업후 동문 장예모와 함께 광시영화제작소에 입사하여 영화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다. 1984년 내어 놓은 <황토지>는 제5세대 영화의 효시격으로, 중일전쟁 시기의 농민들의 삶을 다룬 영화였다. 이 영화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대열병>과 <해자왕>을 내놓는다.

<대열병>은 국경절 열병식을 위한 훈련 과정을 다루는 영화로, 얼핏보면 배달의 기수식의 선전 영화 같지만, 실제로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관계를 영화적으로 풀어내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해자왕>은 과거의 홍위병상산하향 운동으로 산간 벽지 교사로 발령나서 겪는 이야기이다. 두 작품 모두 호평을 받았고 천카이거의 영화적 위상은 확고해진다.

그는 영화를 더 공부하러 뉴욕 대학교의 영화학과에 방문학자로 유학했고, 그 때 듀란 듀란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어 <현위의 인생>(중국제목 변주변창, 1991)으로 서양 비평계의 상당한 호평을 받는다.

1993년 장국영공리(배우)를 기용해 내놓은 <패왕별희>는 대호평을 받았고,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3. <패왕별희> 이후

하지만 <패왕별희> 이후의 필모그라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명성을 얻어 막대한 제작비와 유명배우를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도리어 작품성은 더 떨어지는 기묘한 현상을 보인다.

1996년 다시 공리장국영을 캐스팅하여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풍월>을 내놓았으나, 중국 당국이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주인공을 위해 제3자와 성관계를 맺는 장면이 "풍속에 어긋난다"고 판단하여 본토 상영을 금지하였다.[3]

1999년작 <시황제암살>도 공리가 출연하나 범작이었다. 같은 주제를 다룬 장예모의 <영웅(2002)>이 정치적으로는 욕을 먹었지만, 흥행과 작품성에서는 성공을 거둔 것과 대조적이다.

2002년에는 헤더 그레이엄을 기용해 영어 영화인 <킬링 미 소프틀리>를 내놓지만 이 작품은 천카이거의 흑역사로 꼽힐 정도로 망작이 되었다.

2005년에는 장동건장백지를 캐스팅하여 <무극>을 연출했으나, 이것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2008년에는 다시 여명을 캐스팅하여 유명 경극 배우 매란방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매란방>을 연출, 이 영화의 홍보를 위해 한국에도 방문했지만 또 망했다.

2010년에는 갈우, 판빙빙, 황효명 등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조씨고아(한국 개봉명: 천하영웅)>를 내놓지만, 이것도 평이 미지근했다.

2019년에는 중국 정부가 기획한 옴니버스식 어용 선전 영화 <나와 나의 조국>의 한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2021년에는 또다시 어용 선전영화를 연출하였다. 장진호 전투를 다룬 영화 <장진호(영화)>를 연출하였는데, 노골적으로 유엔군을 침략자로, 중국군을 북한을 구원하는 구원자로 묘사하고[4], <패왕별희>의 배경인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주범인 마오쩌둥을 우상화하였다. 또한 마오안잉을 우상화하는 등 상당한 역사 왜곡이 가해졌다.

2023년에는 한국 전쟁 정전 협정 70주년을 맞이해서 장진호에 이은 또다른 항미원조 어용 선전영화를 연출하기로 확정이 났다. 제목은 <지원군 : 웅병출격>으로 아들 진비우주일룡, 장쯔이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10월 1일 국경절날 개봉했지만 장진호 흥행 20%에도 못 미치는 부진한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관객들은 장진호 줄거리 재방송이라 지겹다는 평이다. 장진호의 등장인물들은 후속작인 장진호지수문교에서 거의 다 끔살엔딩이 났기때문에 더이상 후속작을 더 만들기 힘들다

3. 필모그래피

3.1. 연출

연도 제목 관객수 흥행
1984 황토지
1986 대열병
1987 해자왕
1991 현위의 인생
1993 패왕별희
1996 풍월
1999 시황제암살
2002 킬링 미 소프틀리
2005 무극
2008 매란방
2010 조씨고아
2017 요묘전: 레전드 오브 더 데몬 캣
2019 나와 나의 조국
2021 장진호
2023 지원군 : 웅병출격
2024 지원군 : 웅병출격 2

4. 기타


[1] 한국식 독음으로는 진개가로 읽는다.[2] 한국에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중국의 국민 배우로 근래 소개된 작품으로는 먼 훗날 우리의 아버지 역으로 나왔다.[3] 비공식적으로는 이 영화의 주요 소재가 아편이라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4] 실제 역사에서는,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여 유엔군이 결성되었고, 미군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인데, 중국에서는 미국의 침략을 북한이 당한 것으로 역사왜곡을 한다.[5] 여담으로 前부인 홍황은 전 외무부장 차오관화의 의붓딸이자 신중국 최초의 미국 국비유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