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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colcolor=#000,#dcdcdc> 발생일 | 1962년 6월 3일 |
유형 | 기체 결함으로 인한 이륙 실패, 오버런 |
발생 위치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빌뇌브르로이 마을 |
기종 | 보잉 707-328 |
운영사 | 에어 프랑스 |
기체 등록번호 | F-BHSM[1] |
출발지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파리 오를리 공항 |
제1경유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뉴욕 아이들와일드 공항 |
제2경유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애틀랜타 애틀랜타 시립공항 |
도착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휴스턴 휴스턴 시립공항[2] |
탑승인원 | 승객: 122명 |
승무원: 10명 | |
사망자 | 승객 122명 전원 사망 |
승무원: 8명 | |
부상자 | 승무원: 2명 |
생존자 | 승무원: 2명 |
[clearfix]
1. 개요
사고 2년 전, 오를리 공항에서 촬영된 사고기의 모습. |
2. 사고기
사고기는 에어 프랑스의 13번째 B707이며, 1960년 8월 24일 생산되었다. 테일넘버는 F-BHSM이며 생산 번호는 159이다.3. 상세
사진은 사고 이후 찍힌 사진이다[사고기꼬리잔해다.]1962년 6월 3일 에어 프랑스 007편은 오를리 국제공항 8번 활주로에서 이륙을 시작했다. 이륙결심 속도(V1)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인기어가 뜨지 않자, 활주로가 910m 가량 남은 지점에서 파일럿은 엔진 역추진 및 급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로 인해 메인 기어 바퀴가 터졌고, 007편은 활주로를 이탈하여 앞에 있는 빌뇌브르로이 마을을 덮친다. 이 사고로 승무원 2명만이 생존했다.[5] 이 기록은 3년 반이 지난 1966년 2월 전일본공수 60편 추락 사고 이전까지 1960년대 최악의 항공사고로 남았다.
4. 사고 이후
사고 후 에어 프랑스는 보잉 707을 잘 운항하다 약 3주 뒤에 같은 기종이 낸 참사가 또 일어나서 큰 치명타를 입는다.5. 기타
-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 중에는 에디트 피아프의 초상화를 그린 예술가 더글라스 데이비스 주니어(Douglas Davis Jr., 1928~1962)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의 아버지 더글라스 헨리 데이비스[6]도 이 사고로부터 28년 전인 1934년 아들과 거의 같은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6. 관련 문서
- 전일본공수 60편 추락 사고: 이 사고로부터 4년 뒤에 일어난 1960년대 최악의 항공 사고 중 하나다(사망자 133명).
- 에어 프랑스 117편 추락사고: 이 사고가 일어난 지 약 3주도 되지 않아 같은 항공사의 같은 기종이 낸 사고다.
[1] 기체명 Chateau de Sully, 사고 당시 기령이 2년도 되지 않은 새 비행기였다.[2] 조지 부시 인터컨티넨털 공항 개항 전까지 휴스턴의 관문 역할을 했으며, 조지 부시 인터컨티넨털 공항 개항 이후 폐쇄되었다가 국내선 전용으로 재개장했다.[3] 이 기록은 4년 뒤 전일본공수 60편 추락 사고 이전까지 유지되었다.[사고기꼬리잔해다.] 이 사고 이후에 찍힌 영상에도 나온다.[5] 원래 3명이 살아있었으나 1명은 병원에서 사망했다.[6] Douglas Henry Davis, 1898~1934. 비행기 조종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