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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의 성 | |||||
광둥성 [ruby(广东省, ruby=Guǎngdōng Shěng)] | [ruby(广东省, ruby= Gwong2-dung1 saang2)] Guangdong Province | |||||
지역 | 중난 | ||||
면적 | 179,800km² | ||||
성도 | 광저우시 | ||||
청사소재지 | 광둥성 광저우시 웨슈구 둥펑중루305호 广东省广州市越秀区东风中路305号 | ||||
하위 행정구역 | 21지급시(2부성급시) 59구 21현급시 36현 3자치현 | ||||
시간대 | UTC+8 | ||||
인문 환경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 인구 | 1억 2,601만 명[1] | |||
인구밀도 | 700.8명/km² | ||||
민족 구성 | 한족 98.51% | 장족 0.67% 요족 0.24% | 토가족 0.16% | ||||
HDI | 0.784 (2017) | ||||
서기 | 황쿤밍(黄坤明) | ||||
성장 | 왕웨이중(王伟中) | ||||
GRDP | 전체 | $1조 9551억 (2021)[2] | |||
1인당 | $15,516 (2021)[3] | ||||
행정구역 약칭 | 粤 | ||||
행정구역코드 | 440000 | ||||
지역전화번호 | 020, 0660 0662, 0663 0666, 0668 0750 ~ 0759 | ||||
우편번호 | 510000 ~ 529500 | ||||
ISO 3166-2 | CN-GD | }}}}}}}}} | |||
광둥성 인민정부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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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둥성(广东省, 광동성)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성급 행정구역으로, 성도는 광저우시(廣州市)다.특별행정구인 홍콩, 마카오와 맞닿아 있으며 홍콩과 지척인 선전시를 비롯해 둥관시, 주하이시, 포산시 등 중국을 대표하는 경제도시들이 광둥성 해안 지대를 따라 자리하고 있다.
면적은 177,900km²로 남한의 약 1.7배에 해당한다.
2. 명칭
- 정체자: 廣東省
- 간체자: 广东省
- 한어병음: Guǎngdōng Shěng
- 주음부호: ㄍㄨㄤˇ ㄉㄨㄥ ㄕㄥˇ
- 광동어(Jyutping): Gwong2dung1 Saang2
- 영어: Guangdong Province, Kwangtung Province, Canton Province
- 한국어: 광둥성, 광동성[4]
'광둥'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황제 손권이 후한 13주 중 하나인 교주(交州)[5]를 갈라 광주(廣州)를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서기 226년에 기존 교주를 교주(交州)와 광주(廣州) 두 부분으로 나누었던 것에서 시작한다. 합포 서쪽은 여전히 교주(交州)라고 불렀고 합포 동쪽은 교주자사의 원치소 광신현(廣信縣)의 명칭을 따서 광주(廣州)라고 불렀으며 남해, 창오, 울림, 합포 4군(合浦)을 포함했다. 이것이 현재의 베트남과 양광 지역분치의 시초이자 "광저우"라는 명칭의 시초이다. 이때 사씨 정권이 이 조치를 취한것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면서 광주와 교주는 다시 합쳐졌다가, 오경제 손휴 시절인 264년에 광주가 다시 설치됨으로써 교주와 광주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송나라 시대에 이를 다시 광남서로(廣南西路)와 광남동로(廣南東路)로 분할하였는데 광남동로를 축약하여 광동로(廣東路)라고 하였고 이것이 '광둥'이 되었다.
약칭인 웨(粤)는 본래 중국 남부를 가리키는 말로, 춘추시대의 월(越)과는 다른 나라인 베트남계 고대 국가인 남비엣(남월)에서 유래한다. 지금은 이들 나라 역시 '越'을 사용하지만 '粤' 역시 광둥 일대를 가리키는 의미로 중화민국 시대부터 약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유지되고 있다.
3. 인문지리
3.1. 인구
성 단위로만 따진다면 중국 대륙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성으로, 그 수가 2021년 기준으로 무려 1억 2,601만 명[6]이나 된다. 인도의 우타르프라데시, 비하르, 마하라슈트라에 이어 세계에서 인구가 네 번째로 많은 행정구역이다.이는 근현대 이후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인원이 많아서 인구가 폭증한 것으로, 원래 역사적으로 인구가 많은 지역은 아니었다.[7] 이렇게 인구가 폭증할 정도로 유입된 인원이 많았던 이유는 광둥성이 중국 최대의 공업 지역으로 성장하여 중국 각지에서 노동자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며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다른 성들의 인구가 조정된 것도 요인 중 하나이다.[8]
2009년 인구 1억을 돌파한 후 서서히 인구 증가세가 둔화됐지만 매년 100만명이 넘는 인구 증가폭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출생아 수가 많은 성으로 2010년대 중반까지는 광둥성보다 출생아수가 많은 성이 일부 있었지만 2자녀 정책의 약빨이 다하고 광둥성의 출산율 하락이 상대적으로 더뎌서 광둥성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3.2. 경제
GDP는 1998년에 싱가포르, 2003년에 홍콩, 2007년엔 대만의 GDP를 추월했고 2013년 기준 약 1조 달러에서 2017년 기준으로는 이미 1조 4,400억 달러로 증가해 2018년 기준 1조 6,900억 달러인 한국을 턱 밑까지 쫓고있다. 중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GDP 1조 달러를 돌파한 성이다.# 2020년에 이르러서는 광둥성의 경제 규모가 1조 6,000억 달러에 이르러 대한민국 경제규모를 추월했다. # 이로서 싱가포르, 홍콩, 대만, 대한민국의 경제규모를 모두 제친 중국 최초의 성이 되었다. [9]흔히 미국의 부유한 지역인 텍사스가 독립한다면 세계 8위의 경제규모를 지닐 것이라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광둥성 역시 독립한다면 높은 수준의 경제대국 중 하나가 된다.
2021년 기준으로 1인당 GDP는 중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로 따져도 결코 작지 않은 수치이며 광저우시, 선전시 지역은 현지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인정받는다. 특히 광둥성 지역에 전폭적인 발전과 투자가 더해지며 선전시는 이미 홍콩을 넘어서 경제의 중심지 중 하나로 부상했고 광저우시는 중국의 대표적인 '일선도시(一线城市)'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어 중국인들 사이에서 광둥성 출신이라고 하면 '부자인가 보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경우가 많다.
관광 산업은 다소 밀리는 편이다. 광둥성에 볼거리가 없는 건 아닌데 역사 유적은 시안시와 뤄양시, 자연경관은 구이린시와 장자제시, 도시 경관이나 쇼핑 등의 인프라는 홍콩에 밀린다. 도시 역시 규모가 크고 스카이라인도 멋있지만 이 역시 홍콩 특유의 도시국가에 준하는 빌딩 숲을 따라갈 수는 없다. 사실상 그레이터 베이 계획에 의해 광동성은 홍콩의 부속품처럼 되어버려서 더욱 그런 감이 있다.
4. 광둥인
광둥성에 사는 사람들을 광둥인이라고 한다. 주 민족은 한족이며 중국 중심부 한족과 별개의 민족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다만 거리가 꽤 되다 보니 광둥성을 비롯해 중국 대륙 최남부에 거주하는 한족은 이북에 거주하는 한족과 유전적 차이가 있다.[10] 비교적 근래에 이주한 이들은 이북과 당연히 차이가 없겠지만 아주 오래 전에 이주한 한족의 후손은 토착민과 통혼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둥성에는 북부 베트남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꽤 많다고 한다. 다른 지역 한족과 달리 키가 좀 작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는 외모적 차이점이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지의 중원 사람들보단 오히려 베트남인이나 태국인, 그리고 필리핀인을 더 닮았다.[11]
대부분 한족이지만 소수민족도 존재한다. 야오족(瑶族)과 좡족(壮族)이 자치현을 각각 2개[12]와 1개[13]씩 가지고 있다. 야오족이 성 인구의 0.2%, 좡족이 0.7%.
4.1. 종교
광동성을 연고로 둔 광동인들의 종교는 본토 광동성의 중국 대륙인 및 광동 출신 대만인들은 도교 및 불교를 믿거나 무종교이다.광동 도교의 주 신은 남중국답게 틴하우(天后)인데, 이 틴하우 사당은 광동인이 진출한 곳마다 찾을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베트남의 다낭시나 호찌민시, 말레이시아의 페낭, 이포 및 쿠알라룸푸르 등지에 몇 백년 된 틴하우 사당이 있으며, 홍콩의 홍콩섬에는 MTR 역 중에 틴하우 사당에서 이름을 딴 틴하우역도 있다. 마카오의 어원이 된 마각묘 역시 틴하우의 사당이다. 이외에도 관우는 무신, 공자는 문신으로 각각 숭배한다.
중국 대륙 및 대만 외의 광둥인 및 광동 출신 화교들은 보다 다양한 종교를 믿는다.
홍콩 및 마카오는 유럽에 동화되어 그리스도교를 많이 믿는다. 가톨릭, 개신교가 대다수이고 개신교는 다시 성공회와 침례교, 감리회, 루터교회, 독립교회 및 일부 장로회로 나뉜다.[14] 그리고 영국/이베리아 반도 식 서양 이름을 쓰는 그룹과 도교 및 불교를 믿고 전통을 고수하는 그룹, 그리고 젊은 층이 대부분인 서구화된 무신론자/무종교인들이 혼재한다.
위의 서술은 광동 출신 화교 그룹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호주인, 중국계 미국인 중에서 광동인 출신 그룹들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홍콩과 달리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의 화교교회는 감리교가 제1교단이고 장로회, 성공회가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외의 10대 및 20대 광동 출신 화교들은 대게 무종교인[15]이라고 보면 된다.
- 홍콩은 홍콩섬에 원래 살던 사람들 혹은 젊은 세대에 그리스도인이 많은 경향이 있다. 중국에서 내려온 피난민이 주류인 구룡반도, 신계와 달리 홍콩섬은 일찍이 영국화된 곳이라 그만큼 그리스도교를 일찍 접할 수 있었다. 당장 아시아 유일의 오래된 성공회 교회인 성요한 성당도 센트럴에 있다. 젊은 세대는 영국, 캐나다, 미국에 유학한 경우도 많고 사립학교 중 기독교 미션스쿨들이 워낙 많아서 학교를 다니다 세례를 받는 경우도 많아 기성세대와 달리 기독교를 믿는 경우가 많다.
- 홍콩의 광동인들의 교회는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주류이며 감리회, 침례회, 루터교회 등도 꽤 있고 장로회도 소수 있지만 스코틀랜드 교회라서 북미식 장로회인 한국 교회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가톨릭도 서유럽과 다른 아일랜드 방식을 고수한다.
- 반대로 열렬 가톨릭 국가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던 마카오는 과거 가톨릭의 동방 선교 기지였으며 사실상 기독교는 가톨릭을 뜻한다. 도미니코 수도회 로사리오 관구가 마카오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홍콩 가톨릭도 기독교인의 절반을 차지해서 란터우 섬에 트라피스트회 수도원이 있다. 홍콩/마카오 둘 다 가톨릭을 들여온 건 포르투갈의 예수회 선교사들이다.
- 광동 출신 동남아시아 화교들의 경우 싱가포르는 가톨릭이 아일랜드 출신들을 통해 들어왔다.[16] 이는 홍콩과 비슷하다. 당연히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등 개신교는 영국의 영향을 받았다.[17]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기독교인들의 경우 신심이 매우 깊은 편이다. 싱가포르의 가톨릭은 라틴[18], 독일 남부식]과 달리 아일랜드식이다. 말레이시아는 가톨릭 전교 자체는 포르투갈이 식민지인 말라카를 통해 했으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기독교인 대다수는 가톨릭이 아닌 영국 영향을 받은 개신교 신자고 가톨릭은 주로 소수민족이나 인도계 말레이시아인 중에 포르투갈에 동화된 크리스탕들이 믿는 편이다. 이는 중국계 브루나이인들도 똑같다.
- 전술한 동남아시아는 물론 아메리카(앵글로아메리카 및 라틴아메리카) 및 오세아니아(호주/뉴질랜드)의 광동 혈통의 중국계도 현지에 동화되어 젊은 층은 그리스도인에 영어,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름을 쓴다. 라틴아메리카가 일찍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해 가톨릭이 철저히 이식된 덕에 이게 제일 심해 몇몇 광동계는 말만 광동계지 광동어도 모르고 현지인과 혼혈되어 있으며 이들을 구분하는 도구는 중국식 성 뿐이다.
- 가장 전통을 잘 지킨 대만의 본성인 그룹에 들어가는 광동계는 본성인의 추세에 맞게 도교, 불교를 주로 믿는다. 외성인이나 홍콩계 그룹의 광동인은 도교, 불교, 개신교, 가톨릭을 믿는다.
- 현재는 홍콩 및 마카오 그리고 화교(중국계 싱가포르인/중국계 말레이시아인/중국계 호주인/중국계 미국인) 등의 광동인 젊은 층 중 그리스도인이 아닌 경우는 거진 무신론 내진 무종교로 봐도 무방하다.
4.2. 성향
중원 문화권에 늦게 편입되었지만 중화사상과 한족 민족주의가 강한 지역이며 국수주의도 중국의 어느 지역보다도 강한데 그 이유는 이 지역 사람들이 자신들이 진짜 한족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광둥 지역의 분청들은 광동어야말로 고대부터 내려온 참 중국어라고 자랑하며 만다린, 즉 표준 중국어는 몽골어, 만주어가 섞인 짝퉁 잡어로 격하시킨다. 그러나 중국사에서 정치적·문화적 중심지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중원이므로[19] 광둥성에 대한 지역 자부심이 지나쳐서 생기는 해프닝으로 봐야 한다.역사적으로 북쪽에서 이민족이 많이 쳐들어오다 보니 한족들이 화를 피해 대거 남쪽으로 피난가기도 했다. 실제로 원나라 - 송나라 교체기에 남하한 한족의 일파인 객가인이 많이 사는 곳 중 하나가 광둥성이다. 청나라가 중국을 장악한 후 순치제에 의해 내려진 변발령 당시 저항하는 성을 통째로 팔기군이 도륙하는 소위 도성(屠城)도 광둥과 푸젠 지역에서 주로 행해졌으며 원나라가 처음 들어설 때도 여기서 저항이 가장 심했다. 당장 애산 전투의 무대가 광둥 지방이었다. 중화민국 시대에도 이는 마찬가지로 장제스가 대륙에 있을 시절에도 남경 정부에 호락호락하지 않고 여러번 반란을 일으켰다. 광둥은 장제스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해 평정에 애를 먹었다. 만주족의 청나라가 무너진 것은 이 지역 출신 객가인 쑨원의 신해혁명 때문이었다.[20]
중국사에 대한 시각에 있어 한족 왕조인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에 대한 평가는 높은데 북방 기마민족들의 정복왕조인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에 대한 평가는 낮다. 한 예로 송나라가 아닌 금나라 입장에서 저술한 책의 집필자가 물리적으로 공격받기도 했다.
이는 현대까지 이어져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 경향도 일국양제 하의 홍콩, 마카오나 소수민족 자치구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 티베트, 내몽골 같은 곳들을 제외하면 가장 강하다. 중국 본토에서 가장 과감하게 공산당을 까는 언론인 남방도시보와 남방주말도 광둥성 기반이다.
다만 역시 공산당 일당 독재인 중국 정부가 '허용'하는 범주 내에서만 이루어지므로 확대해석은 금물이다. 중국의 모든 언론은 근본적으로 권위주의 모델 하의 마르크스주의 저널리즘 이론을 기반으로 돌아간다. 자유주의 체제에서와 달리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언론은 프롤레타리아와 국가의 소유이며 국가 발전의 도구이다. 따라서 정권에 대한 감시자의 역할이 아닌 당과 국가의 입장과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나팔수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권위주의 독재 체제 하에서도 일부 불만을 해소하여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될 정도에 한해서는' 정권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을 허용하기도 하는데 광둥성의 기관지가 딱 이 케이스다. 따라서 이들도 중앙의 공산당이 허락한 선을 넘어가면서까지 정권을 비판하지는 못한다. 일각에서 기대하는 것처럼 이를 자유민주주의의 맹아로 볼 수는 없다. 이들 역시 근본적으로는 중국공산당 일당독재 정권의 치밀한 언론통제 시스템 하에 있는 존재일 뿐이므로 그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어쨌든 광둥성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다루기가 쉽지 않았던 것 자체는 사실인데 예로부터 중원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었기 때문에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약했던 데다 해외 세력과 교류가 활발한 지역이라서 중원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보고 다른 생각을 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이 경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광둥성을 수출입 기지로 적극 밀어주었기 때문에 평균 소득도 높아서 교육 수준도 높았다. 광둥의 중화 민족주의는 쑨원의 삼민주의 사상에 기초한 중화민국에 대한 애국심과 강한 반공사상이며 2019년 들어 중국공산당 체제가 이런저런 도전을 받자 광둥 지역이 다시 주목받았다.
중국의 지역색은 어디나 상당하지만 광둥성만이 지니는 독특한 특징이라면 별개의 역사를 거친 영향으로 독립시 상태로 있는 홍콩(그리고 규모는 작지만 마카오도)이 있다는 것이다. 광둥성의 지역어인 광둥어가 숱한 중국의 다른 방언들과 차별성을 보이는 점 역시 다른 언어와 달리 광둥어는 홍콩에서는 공용어의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콩 독립을 추구하는 홍콩인들이 광둥성 주민들의 독자의식을 자극시키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광둥의 독립을 주장하는 낙서가 광둥성 곳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중국 경찰은 홍콩 독립운동 지지자들의 소행으로 봤다.#
타 지역보다 부유하고 자부심이 강한 성향으로 인한 분리주의가 일부 나타난다는 점은 이탈리아 북부와 스페인의 카탈루냐-바스크, 독일의 바이에른, 미국의 텍사스, 캐나다의 퀘벡과 유사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4.3. 해외의 광둥인
전세계적으로 광둥성 출신의 화교가 많다.[21][22]대체로 산둥성 출신인 재한 화교, 과거 식민지인 대만의 본성인인 일본 화교를 제외한 전세계 화교는 이 성 출신들과 푸젠성 출신의 호키엔인[23], 객가 그리고 차오저우인 정도로 구분된다.
이는 원래 사람이 많은 것도 있지만 19세기 중반에 태평천국의 난 이후 청나라의 행정력이 붕괴하고 살기 어려워지자 광둥인들이 대거 바다를 통해 동남아시아 각 국가 및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그리고 미국, 캐나다 같은 앵글로아메리카+멕시코, 페루, 쿠바, 칠레, 베네수엘라 등 라틴아메리카 각국, 영국 등으로 이주한 탓이 크다. 이 중에서 캐나다의 밴쿠버, 페루 수도 리마, 그리고 해협식민지를 구성한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조호르바루, 말라카, 페낭, 이포, 쿠칭, 코타키나발루, 센다칸 등에는 광둥인들이 굉장히 많이 이주했다.
명나라 시절부터 이곳은 매우 해외 교류가 활발한 곳이었다. 서역인들도 자연히 빨리 와서 인도인 및 페르시아인은 이미 3세기, 포르투갈인과 스페인인 등 유럽인은 16세기에 이곳에 도달했을 정도이며 그 중 포르투갈인들은 마카오를 조차해 가기도 했고 스페인인들은 필리핀을 거점으로 해서 광둥성 연안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불랑기포와 조총을 몰수당하고 쫓겨나기도 했다. 심지어 이 와중에도 스페인은 정신 못 차리고(...) 중국 남부를 일본인 용병단과 필리핀인 현지인 부대를 동원해 정복할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실현하지 못했다. 중국에는 포르투갈이 이미 마카오를 조차한 지 오래였고 당시 스페인 식민지 중에서도 변방인 필리핀 도독령의 주둔군은 전력이 형편 없었기 때문이다.
5. 역사
중원과 물리적 거리가 멀어서 정통 중국 문화와 바다를 통해 들어온 외국 문화가 융합된 독자적인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유럽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게 된 뒤부터는 반체제적인 사고 방식이 형성되어 중국 내부의 정치 상황이 급변하는 변수가 생긴다면 이 곳이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진나라의 장수였던 임오(任囂)와 조타(趙佗)가 진나라 조정의 명으로 광둥성 일부 지역과 베트남 북부 지역을 평정하고 머무르다가 진나라가 멸망하자 남월(南越)이라는 국명으로 나라를 건국하기도 했다.
월(越)이라는 명칭은 당시 중원 지역에서 강남 이남을 부르는 광범위하고 가변적인 명칭이었으며 후에 베트남의 국명에도 들어가게 된다. 월(越)이라는 명칭 때문에 춘추시대의 월나라와 모종의 관계를 염두에 두는 시각도 있으나 애초에 남월은 진나라의 장수였던 조타가 건국한 나라고 건국 당시 으레 쓰이던 월(越)이라는 명칭을 국명으로 사용한 것 뿐이다. 애초에 월계 주민들이라고 해도 서로 정체성이 달랐기 때문에 반랑과 월나라가 관계가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후 남월은 중원과는 다른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다가 한나라의 군사력이 절정에 달해 흉노나 고조선 등 주변지역을 마구 침공한 한무제 때 정복당하여 한나라에 복속되었다.
한나라 시절에도 이 지역은 산맥과 밀림으로 막힌 미지의 영역이었으며 베트남 북부 교지, 중부 일남군 등과 함께 간접적인 통치가 이뤄지다가[24] 위진남북조시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개발된다. 본래 이 지역은 북부 베트남과 함께 같이 교주에 속했으나 삼국시대의 오나라 손권 황무(黃武) 5년(226년)에는 교주를 나누어 광주(廣州)를 두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광둥성, 광시 좡족 자치구, 하이난성, 홍콩 특별행정구와 마카오 특별행정구를 총괄하는 이름인 양광(兩廣)과 광둥성의 성도 광저우시의 이름의 기원이 된다.
이후 이 지역은 육조시대 말기에는 남해군으로 불렸는데 수문제가 이 지역에 남해군을 폐지하고 다시 광주 총관부(總管府)를 두었다. 이후 수양제의 휘를 피해 번주(番州)로 개칭되고 남해군으로 되돌리는 일을 반복하다가 당고조 시기에 다시 광주가 설치되었고 이후엔 영남도로 개칭되었다가 송나라대에 강둥성 지역에 광남동로(廣南東路)를 설치했는데 이로써 옛 광주에서 광둥성과 광서성이 분할되었다. 원나라 때는 광주 지역을 총괄하는 광서행중서성(江西行中書省)에 속하게 되고 광둥성에는 광동도(廣東道) 선위사(宣慰使)를 세웠는데 명나라 홍무제 때 광동도가 광동행성(廣東行省)으로 바뀌면서 광둥성(廣東省)이라는 명칭을 최종적으로 획득한다.
명나라 이후 기후가 좋고 해양 세력과 접촉하는 데 상당히 유리했기 때문에 점점 부유한 지역이 되었으며 만주족 청나라가 들어선 후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청나라 때는 광서성까지 통괄하는 양광총독(兩廣總督)의 관할 하에 있었다.
중국 남부 해안에 위치하여 오랜 기간 유럽인들과 접촉이 많았던 까닭인지 유럽인들의 조차지/식민지가 유독 많이 세워진 지역이기도 했다. 철도 연선이나 도시 내 소규모 구획들의 조차 사례를 제하고도 프랑스령 광저우만, 포르투갈령 마카오와 영국령 홍콩으로 셋이나 된다.
5.1. 중화민국
청나라 멸망 이후 국민혁명 이전까지는 중국국민당의 본거지나 다름없었다. 4.12 상하이 쿠데타 이후 호응하는 4.15 광저우 쿠데타가 발생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광둥성 정부주석 리지선이 광둥성의 군정대권을 장악하였다. 장파쿠이가 장황사변을, 중국공산당이 광저우 폭동을 일으켜 광둥성을 장악하고자 했으나 모두 진압당했다. 난징 국민정부에 그런대로 충성은 하지만 중앙과 적대적인 계계군벌의 수장 리쭝런, 바이충시가 리지선과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우호적인 동맹 관계에 있었다.1929년 2월, 호남 사건이 발생하자 장제스는 리지선을 광서파와 연대한 혐의로 투옥하고 천밍수를 신임 광둥성 정부주석에 임명하였고 광둥의 군권을 천지탕에게 맡겨 광둥성의 지배자를 천지탕과 천밍수가 양분하게 했다. 천지탕과 천밍수는 반장전쟁 기간 동안 남방에서 광서파와 장파쿠이를 상대로 큰 전공을 세우며 중앙에 충성했다. 1931년 2월, 탕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1차 양광사변이 일어났다. 장제스에 우호적이었던 천밍수는 천지탕에게 축출되었고 광둥성은 천지탕의 지배지역이 되었다.
9월 만주사변이 발생하면서 형성된 거국적인 협력 분위기 덕분에 광둥 지역은 현 광시좡족자치구인 광시성과 함께 1931년 12월, 제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자치를 인정받아 서남정치분회, 서남정무위원회, 군사위원회 서남분회를 설치하고 반독립적인 지역으로 남을 수 있었다. 1934년부터 1935년에 걸친 대장정, 1935년 법폐개혁을 거치면서 중앙의 영향력이 계속 강해졌고 1936년 5월, 광둥의 정신적 지주인 후한민이 사망하자 위기를 느낀 천지탕은 1936년 6월 2차 양광사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해 홍콩으로 망명했고 광둥성은 이후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중일전쟁 중 일본의 침략을 받아 광저우 등지가 함락당한 바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중일전쟁 및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하자 다시 중화민국의 통치에 들어간다.
5.2. 중화인민공화국
국공내전 중에는 인민해방군에 밀려 중화민국의 수도가 광저우로 이전되었지만 결국 여기도 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에 함락되었고 그 해 10월 1일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중국의 개혁개방을 선언한 덩샤오핑 집권 이후 홍콩과 가깝고 바다가 인접해 있다는 영향을 받아서 산터우, 선전, 주하이 등이 경제특구로 지정되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공업이 발전해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되었다. 주강 삼각주라는 거대 경제권이 형성된 현재는 여러모로 중국 경제의 핵심지역이다.
광시 좡족 자치구의 남부 해안가 지대[25]는 원래 광둥 소속이었다가 1952년에 광시성 소속이 되었다가 1955년에 광둥성 소속으로 되돌려졌다가 1965년부터 광시 좡족 자치구에 속하게 되었다. 하이난섬도 원래 광둥 소속이었다가 1980년 경제특구 지정으로 별개 성으로 분리독립했지만 광둥 문화권이 아닌 푸젠성, 그러니까 민남 문화권이다. 이쪽은 말도 민남어와 더 가깝다. 어디까지나 배가 광둥성 서부에서 출항해서 편의상 광둥성으로 넣었을 뿐이다. 당연히 지금은 완전 쌩판 남의 동네다. 한편 홍콩/마카오도 원나라 때 이후 역사적으로 광둥성에 속했으나 이 둘은 영국, 포르투갈의 통치 하에 놓이며 갈렸고 현재는 특별행정구로서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분리되었다. 이 둘은 당연히 이제는 쌩판 다른 동네다.
2022년 11월 15일 코로나 봉쇄 장기화로 인해 중국 인민들이 광둥성부터 시작해서 분노하여 백지 시위를 일으켰다. 이후 하나둘씩 억압적 방역정책이 철회되었다.
6. 지리와 기후
습하고 덥다. 태풍의 영향도 잦다. 겨울에도 평균 기온이 10도 안팎을 유지할 정도로 온난한 기후이다. 단적인 예로 광저우가 영하로 내려간 적은 1983년 1월 영하 5도를 비공식으로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관측 이래 한 번도 없다.그 때문에 한국에서는 긴팔을 입는 12~2월에도 반팔을 입을 정도다. 물론 맑을 때 그러고 비가 오면 쌀쌀해져서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파카를 입게 되는데 광둥성이나 홍콩, 마카오 등은 아예 난방 개념 자체가 없고 습도는 겨울에도 높아 한국식 추위와는 달리 뼈를 깎는 추위를 겪는다.
남서부는 충저우(琼州) 해협을 사이에 두고 하이난성과 닿아 있다. 역사적으로는 광시좡족자치구 지역과 함께 양광이라는 역사적 지명으로도 불렸다. 兩廣의 廣이 廣東, 廣西로 廣南大路를 기준으로 동쪽은 광둥성, 서쪽은 광시좡족자치구가 되었다.
7. 광동 요리
자세한 내용은 광동 요리 문서 참고하십시오.광둥성은 기후가 온난하고 남중국해와 연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주강(珠江) 삼각주를 보유하고 있어서 요리 재료가 될 수 있는 자원이 매우 풍부한 지역이다. 그 덕분에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요리의 종류가 수 천 가지다. 진짜다. 식채광주라는 말이 있는 게 괜한 게 아니다.
광동식 요리는 포르투갈인, 스페인인, 네덜란드인, 영국인, 미국인 등 서양 열강과의 접촉 창구였던 만큼 양식이 들어와 현지화되어 커리를 재료로 하거나 광동식으로 재해석된 샌드위치, 햄버거 등을 만들기도 했으며 스테이크도 광동식으로 현지화되었다. 스파게티 역시 伊飯이라는 이름으로 현지화되었다.
8.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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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color: #ffff00;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rowcolor=#fff> 지급행정구 지급시 21 | 현급행정구 시할구 65, 현급시 20, 현 34, 자치현 3 | |
광저우시 성도 广州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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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웨이시 汕尾市 | 청구 城区 루펑시 陆丰市 하이펑현 海丰县 루허현 陆河县 | ||
허위안시 河源市 | 위안청구 源城区 쯔진현 紫金县 룽촨현 龙川县 롄핑현 连平县 허핑현 和平县 둥위안현 东源县 | ||
양장시 阳江市 | 장청구 江城区 양둥구 阳东区 양춘시 阳春市 양시현 阳西县 | ||
칭위안시 清远市 | 칭청구 清城区 칭신구 清新区 잉더시 英德市 롄저우시 连州市 포강현 佛冈县 양산현 阳山县 롄산 좡족 야오족 자치현 连山壮族瑶族自治县 롄난 야오족 자치현 连南瑶族自治县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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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1개의 지급시(地级市)를 비롯해 55개의 시 직할구(直辖区), 23개의 현급시(县级市), 41개의 현(县), 그리고 3개의 자치현(自治县)을 관할한다.
광둥성 广东省 | ||||||
행정 구역 | (중국어) | (광동어) | 면적(km²) | 인구(`20) | 인구밀도(`20) | |
1 | 칭위안시 | 清远市 Qīngyuǎn Shì | Cing1jyun5 si5 쳉윈시 | 19,153 | 3,969,473 | 207명/km² |
2 | 사오관시 | 韶关市 Sháoguān Shì | Siu4gwaan1 si5 씨우관시 | 18,413 | 2,855,131 | 155명/km² |
3 | 허위안시 | 河源市 Héyuán Shì | Ho5jyun4 si5 호윈시 | 15,654 | 2,837,686 | 181명/km² |
4 | 메이저우시 | 梅州市 Méizhōu Shì | Mui4zau1 si5 무이짜우시 | 15,865 | 3,873,239 | 244명/km² |
5 | 차오저우시 | 潮州市 Cháozhōu Shì | Ciu4zau1 si5 치우짜우시 | 3,146 | 2,568,387 | 816명/km² |
6 | 자오칭시 | 肇庆市 Zhàoqìng Shì | Siu6hing3 si5 씨우헹시 | 14,891 | 4,113,594 | 276명/km² |
7 | 윈푸시 | 云浮市 Yúnfú Shì | Wan4fau4 si5 완파우시 | 7,779 | 2,383,350 | 306명/km² |
8 | 포산시 | 佛山市 Fóshān Shì | Fat6saan1 si5 팟싼시 | 3,848 | 9,498,863 | 2,468명/km² |
9 | 광저우시 | 广州市 Guǎngzhōu Shì | Gwong2zau1 si5 궝짜우시 | 7,434 | 18,676,605 | 2,512명/km² |
10 | 둥관시 | 东莞市 Dōngguǎn Shì | Dung1gun2 si5 둥군시 | 2,465 | 10,466,625 | 4,246명/km² |
11 | 후이저우시 | 惠州市 Huìzhōu Shì | Wai6zau1 si5 와이짜우시 | 11,343 | 6,042,852 | 533명/km² |
12 | 산웨이시 | 汕尾市 Shànwĕi Shì | Saan3mei5 si5 싼메이시 | 4,862 | 2,738,482 | 563명/km² |
13 | 제양시 | 揭阳市 Jiēyáng Shì | Kit3joeng4 si5 킷영시 | 5,266 | 5,577,814 | 1,059명/km² |
14 | 산터우시 | 汕头市 Shàntóu Shì | Saan3tau4 si5 싼타우시 | 2,248 | 5,502,031 | 2,447명/km² |
15 | 잔장시 | 湛江市 Zhànjiāng Shì | Zaam3gong1 si5 짬공시 | 13,225 | 6,981,236 | 528명/km² |
16 | 마오밍시 | 茂名市 Màomíng Shì | Mau6ming4 si5 마우밍시 | 11,425 | 6,174,050 | 540명/km² |
17 | 양장시 | 阳江市 Yángjiāng Shì | Joeng4gong1 si5 왱공시 | 7,955 | 2,602,959 | 327명/km² |
18 | 장먼시 | 江门市 Jiāngmén Shì | Gong1mun4 si5 공문시 | 9,541 | 4,798,090 | 503명/km² |
19 | 중산시 | 中山市 Zhōngshān Shì | Zung1saan1 si5 쭝산시 | 1,784 | 4,418,060 | 2,477명/km² |
20 | 주하이시 | 珠海市 Zhūhăi Shì | Zyu1hoi2 si5 쮜호이시 | 1,724 | 2,439,585 | 1,415명/km² |
21 | 선전시 | 深圳市 Shēnzhèn Shì | Säm1zäng si5 삼잔시 | 1,997 | 17,560,061 | 8,565명/km² |
8.1. 대표 도시
9. 산업
평야가 30%밖에 안 돼서 농업 생산력은 부족했고 1978년 전까지는 공업으로도 침체된 지역이었지만 내륙 대신 해안을 개발하는 것을 포함하는 덩샤오핑의 개혁 및 개방 정책 덕에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5개의 경제특구 중 선전, 주하이, 산터우의 3개 경제특구를 가지고 있다.홍콩과 마카오는 원래 광둥성 소속이었다가 영국과 포르투갈에 귀속되었고 중국은 오랫동안 이 지역을 미수복 지구 비슷하게 취급했다. 중국에 반환된 지금도 홍콩과 마카오는 광둥성과 교류가 많아 1979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홍콩 및 마카오와 중국의 2중 차적을 발행했으며 이 차적을 이용해 화물차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2020년대부터는 홍콩과 마카오 경제 통합을 위해서 금융상품 교차판매를 하는 중이다.#
전자 산업이 성한 곳으로, TECSUN, DEGEN, Kchibo 등의 회사가 광둥성에 본사를 두고 있다.
10. 역대 영도인
광둥성 영도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ffff00 {{{#!folding [ 성장 ] {{{#!wiki style="margin: -6px -1px;" {{{#FFF | 광둥성 인민정부 주석 | ||
초대 | 제2대 | ||
예젠잉 | 타오주 | ||
광둥성 인민위원회 성장 | |||
초대 | 제2대 | 제3대 | |
타오주 | 천위 | 황융성 | |
광둥성 혁명위원회 주임 | |||
초대 | 제2대 | 제3대 | |
황융성 | 류싱위안 | 딩성 | |
제4대 | 제5대 | ||
자오쯔양 | 웨이궈칭 | ||
광둥성 인민정부 성장 | |||
초대 | 제2대 | 제3대 | |
시중쉰 | 류톈푸 | 양링광 | |
제4대 | 제5대 | 제6대 | |
예쉬안핑 | 주선린 | 루루이화 | |
제7대 | 제8대 | 제9대 | |
황화화 | 저우샤오단 | 마싱루이 | |
제10대 | |||
왕웨이중 |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ffff00 {{{#!folding [ 중국공산당 지방위원회 서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FFF | 초대 | 제2대 | 제3대 |
예젠잉 | 타오주 | 자오쯔양 | |
제4대 | 제5대 | 제6대 | |
황융성 | 류싱위안 | 딩성 | |
제7대 | 제8대 | 제9대 | |
자오쯔양 | 웨이궈칭 | 시중쉰 | |
제10대 | 제11대 | 제12대 | |
런중이 | 린뤄 | 셰페이 |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
리창춘 | 장더장 | 왕양 | |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
후춘화 | 리시 | 황쿤밍 | }}}}}}}}}}}}}}} |
상하이시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엄청난 요직이다.
11. 출신 인물
뒤늦게 중원 문화권에 편입된 탓에 명나라 이전 유명 인물은 매우 적다.11.1. 중세
11.2. 근대
11.3. 현대
11.3.1. 정치인
11.3.2. 연예인
홍콩 배우들은 광둥성 출신이 홍콩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고 홍콩 출생이라도 본적이 광둥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견자단: 광저우 출신이다.
- 곽부성: 둥관 태생이다.
- 류셰닝(경당소녀 303): 선전 출신이다.
- 성소(우주소녀): 선전 출신이다.
- 샤오쥔(WayV): 둥관 출신이다.
- 옌하오샹(시대소년단): 광저우 출신이다.
- 준(세븐틴): 선전 출신이다.
- 크리스 우: 광저우 태생이다.
- 쉬카이: 선전 출신이다.
- 승뢰: 둥관 출신이다.
- 증순희: 선전 출신이다.
- 진철원: 선전 출신이다.
11.3.3. 재계
11.3.4. 스포츠 선수
- 쑤빙톈: 육상선수.
- 샤오하이: 격투게임 프로게이머.
- 러원쥔: Bilibili Gaming DreamSmart 소속 프로게이머.
11.3.5. 예술인
12. 여담
- 서방에서 중국의 풀뿌리 민주주의이라고 극찬했던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어촌마을 우칸촌이 바로 광둥성 루펑시에 있다. 2011년 9월 현지 당 지도부가 마을 공동 소유 땅을 개발업자에게 몰래 헐값에 넘긴 데 격분해 시위를 벌여 비리 관리들을 내쫓고 이듬해 3월 직선을 통해 촌민위원회를 구성했다.
2014년에 있었던 선거에서 당국이 노골적으로 개입하더니 2016년에 직선 선출된 린쭈롄 당위원회 서기가 비리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촌 주민들은 당국의 방해로 보고 있어 시위를 벌였다. 2016년 7월 22일에 결국 구속되어서 5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참여한 촌 주민들이 구속되면서 대치 상태가 되었고 홍콩 기자가 불법적으로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수수를 인정한 자백을 돌연 철회해 수사당국의 강압·회유 의혹이 일었다. # # #
촌민 전 지도자에게 징역 3년 1개월과 20만 위안(약 3,340만 원) 벌금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확정했으며 주민들에게도 무더기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 때 많은 수의 홍콩인들이 우칸 촌 사건을 비판했으며 지역 주민들과 연대했다.#
- 중국에서 손꼽히게 경제와 산업이 발달한 곳이지만, 한국인은 많이 거주하지 않는 편이다. 한반도와 아주 가까운 다롄, 칭다오는 물론이고 북경, 상하이보다 너무 멀기도 하고[26] 광동어가 생소한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남쪽에 인접한 홍콩에 밀리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한인들은 아무래도 더 편안한 생활이 가능한 홍콩 거주를 당연히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밖에 어학연수로는 동북 3성이나 산둥 반도가 더 유리하다. 그래서 광둥성 내 한인 사회는 광둥성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한국 회사들의 주재원 및 홍콩 영주권을 소지하며 광동성에 사업장을 차려서 사업 차 광동성-홍콩을 오가며 거주하는 사람들로 주로 구성된다.
- 2024년 11월 11일 주하이시 체육센터 차량 돌진 사건이 발생해 35명이 사망하고 43명이 부상을 입었다.
[1] 국가통계국 2021년 제7차 인구센서스 결과로, 일본의 인구를 넘어섰다.[2] 중국 행정구역 중 1위로, 2021년 10월 기준 세계 10위권의 규모이다.[3] 증권시보[4] 한국식 한자음.[5] 지금의 광둥성과 광시좡족자치구, 베트남 북부 일대[6] 일본의 인구를 넘어섰다.[7] 물론 명청대에도 발전된 곳이었지만 지리적 특성상 타이완섬과 동남아 지역들로 이주하는 인구가 많았다.[8] 쓰촨성 인구 중 3,000만 명이 충칭시 인구로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광둥에서도 하이난성이 떨어져나가긴 했지만 거기는 충칭보다는 인구가 훨씬 적어서 인구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았다.[9] 바로 다음 해인 2021년에는 화둥 지방의 장쑤성이 대한민국 경제규모를 추월하였다.#[10] 흔히 알려져 있는 관념과는 달리 민족 개념은 혈통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단일민족성을 부정할 때 '혈통이 이리저리 섞였다'를 언급하는 것은 그래서 별 소용이 없다. 민족의 기준은 언어/혈통/문화 등이 기준이 되지만 근본적으로 매우 관념적이어서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린 같은 민족이다'라고 생각하면 같은 민족이다. 마찬가지로 광둥인들도 자신들이 한족임을 부정하지 않고 다른 지역의 한족도 광둥인을 같은 한족이라고 생각하므로 그들은 같은 민족이다.[11] 한 예로 홍콩 영화의 단골 여배우인 원영의나 이약동 등의 외모는 혼혈로 오인할 정도로 서구적인데 광둥 쪽의 특징이다.[12] 렌난야오족자치현(连南瑶族自治县), 루위엔야오족자치현(乳源瑶族自治县)[13] 롄산 좡족 야오족 자치현(连山壮族瑶族自治县)[14] 홍콩은 한국과 달리 영국 개신교가 들어와 개신교=성공회 및 침례교이다시피 하고, 감리교, 루터교 및 회중교회가 그 다음이다. 한국은 침례회가 극소수인 것과 다르며, 침례회 교세가 꽤 강한 편이다. 장로회는 홍콩에선 소수다.[15] 싱가포르/말레이시아는 다문화/다인종 사회에 원래 이슬람을 믿는 말레이인이 원주민인지라 이슬람에서 금기하는 무신론/무종교라는 말을 안 좋아해서, 자유사상가(Free Thinker)라고 순화한다.[16] 사실 싱가포르도 원래는 말라카의 일부였는지라 포르투갈인들이 가톨릭을 먼저 소개했으나 말라카가 네덜란드, 영국 등 개신교 국가 수중에 떨어지고 싱가포르가 조호르 술탄국으로 떨어져 나가자 잊혀져서 영국이 해협식민지를 개척한 이후 아일랜드인 사제들이 선교사로 건너와 싱가포르 가톨릭교회를 다시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쿨리로 유입된 광동인을 포함한 수많은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가톨릭 신자가 되고, 가톨릭계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게 된다.[17] 홍콩과 달리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중국계 싱가포르인/중국계 말레이시아인 개신교 신자들의 제1교파는 감리교이고 그 뒤를 장로교, 성공회, 구세군 등이 따르며 장로교회 찾기 힘든 홍콩과 달리 장로회가 흔하다.[18]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19] 그런데 정작 진정한 중원인 허난성은 오늘날 그다지 썩 이미지가 좋지는 않다. 중국 역사의 중심지가 점차 강남과 해안가로 이동한 탓이다.[20] 다만 신해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은 현재 후베이성 우한시인 우창과 한커우의 무창봉기다.[21] 다만 출신이 아닌 민족으로 분류하면 대다수가 객가인으로 분류된다. 양광 지역 자체가 푸젠성 못지않게 객가 비율이 높기 때문. 장먼시, 잔장시 등 해안 지역은 해상 무역을 하던 객가인이 키운 도시이고, 메이저우시, 차오저우시, 산터우시 등의 성 동부는 애초에 주강 삼각주 지역보다 푸젠성 남부와 교류가 더 많았던 완전한 객가 문화권이다.[22] 리콴유, 탁신 친나왓 등이 대표적 광둥 출신 객가인 화교이다.[23] 이들은 유독 해협식민지로 많이 가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등에 흔하다.[24] 삼국지에 나오는 사섭이 교지와 일남을 다스렸다.[25] 베이하이시, 친저우시, 팡청강시[26] 사실 한국과의 거리가 광둥성과 비슷한 홍콩도 인천국제공항-홍콩 국제공항이 3시간 30분 정도로 그렇게까지 멀진 않다. 다만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다롄, 칭다오 등이 보통 1시간 30분 ~ 2시간 정도 걸리는 것에 비하면 꽤 먼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