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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초절임 방식 | 일본식 쌀겨절임(糠漬け) 방식 |
1. 개요
단무지 또는 타쿠안즈케(沢庵漬け)는 무를 절여 만든 일본의 절임 음식 '츠케모노(漬物)'의 일종이다. 17세기 에도 막부의 타쿠앙 소호(沢庵宗彭)라는 승려가 만든 채소 절임이 불가를 중심으로 수입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여러가지 요리의 재료나 밑반찬으로서 널리 사랑받고 있는 음식이다.표준국어대사전에는 무를 소금과 쌀겨를 섞은 데에 파묻어 만드는 일본식 짠지라고 말하지만, 이 설명에 해당되며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일본식 쌀겨절임(糠漬け) 방식 단무지는 한국에서 쉽게 구하기는 힘들다. 한국에서 생산 및 유통되는 것은 현지화 과정을 거쳐 초절임 방식이 일반적이다. 두 종류의 단무지는 제조법 및 외형은 물론 맛도 상당히 다르다. 이는 반대입장인 김치와 기무치의 차이와도 비슷하다.
피클의 범주에 속한다.
2. 역사
일본명인 '타쿠앙'은 타쿠앙 소호가 전란의 시대에 장시간 저장할 수 있는 형태의 야채 절임을 직접 고안했다는 설과 이미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 성행하던 야채절임을 타쿠앙이 간토 지방에 전파했다는 설이 있다. 이름은 본래 특별한 이름이 없던 이 음식을, 당시의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개발자격인 타쿠앙의 이름을 붙여주어 오늘날에 이른다고 한다. 과거 한국에서는 단무지를 '다꽝'(다꾸앙)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일본명인 타쿠앙에서 유래된 말이다.[1] ‘짠무지’라는 말도 허영만 만화 각시탈에서 등장한다. 맛이 달기도 하고 짜기도 해서 옛날엔 그렇게도 불렀던 걸로 보인다.일본에 흔히 전파되어 있는 단무지 제작 일화는 다음과 같다. 이에미츠가 토카이지에 방문하자, 타쿠앙 소호가 식사를 대접하는 중 쇼군이 매일 산해진미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담백한 것에 맛을 느낄 것이라 생각하여 타쿠와에즈케라는 무절임을 대접했다. 쌀겨와 소금에 절인 무절임인 타쿠와에즈케를 먹은 이에미츠가 맛있다면서 타쿠와에즈케를 선사의 이름을 따서 타쿠앙즈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2]
다른 루머로는 일본 전국시대 시절 병사들이 맨밥을 뭉친 것만 먹는 것을 불쌍하게 다쿠앙이 병사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만든것이 단무지였고, 이를 고맙게 여긴 병사들이 이 단무지의 이름을 승려에 이름을 따서 이런 명칭으로 불렀다는 말도 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부터 처음 대중화되었다. 한국명인 단무지의 뜻은 '단맛이 나는 무짠지'의 줄임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현지화된 단무지는 사실상 한국화된 일식이지만 특이하게도 짜장면 같은 한국식 중화 요리와 궁합이 매우 좋다. 짜장면을 먹을 때 항상 양파와 함께 곁들여지는 반찬이며, 심지어 이것이 없으면 짜장면을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중국집에서도 짜장면을 주문하면 항상 딸려나올 정도.
21세기에 들어서 분식점 반찬으로 단무지를 김치 대신 내는 경우도 흔해졌으며,[3] 휴게소 음식들에도 자주 딸려나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잘게 잘라서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살짝 쳐서 버무려 먹는 것도 밑반찬으로 별미이며, 김밥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재료. 꽁치김밥처럼 한 재료만 들어가는 김밥이 아니라면 무조건 들어간다. 대체로 연한 재료들이 들어가는 김밥에 단단한 단무지는 김밥의 모양을 잡아주는 뼈대 역할을 하고 아삭한 식감에 시큼한 맛이 간을 해주기에 단무지 없는 김밥은 김밥이라 부르기 미안할 정도. 그래서 아예 나머지 재료 다 빼버린 귀차니즘 끝판왕 단무지 김밥도 있다. 단무지가 반찬이 아닌 식재료로서 유일하게 들어가는 음식이 김밥이라 할 수 있다. 또 스시나 돈가스 등 일식집에서도 반찬으로 거의 대부분 제공하는데, 일본식 단무지를 내놓는 곳도 있고 한국식 단무지를 내놓는 곳도 있다. 그리고 닭갈비, 쫄면 등 매운 음식과 같이 먹으면 매운 맛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어 그런 음식들과 같이 내주는 곳들도 꽤 많다. 한국 라면은 대개 매콤한 맛이 곁들여져 있어 라면의 단짝인 김치 대신 시원하고 새콤한 단무지와 같이 먹는 것도 꽤 어울린다.
3. 한국과 일본 단무지의 차이
초절임 방식으로 제조되는 한국식 단무지는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나지만, 원조인 일본의 다쿠앙은 쌀겨절임(糠漬け) 방식으로 제조되는 탓에 단맛보다는 오히려 짠맛이 상당히 강하다. 식감도 한국 단무지는 무 자체의 수분이 많이 남아있어 아삭아삭한 맛이 있는 반면에 일본 다쿠앙은 수분이 대부분 빠져나가 꾸덕하게 씹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해외에서 만든 다쿠앙으로 김밥을 만들려고 하면 김밥의 한국식 단무지 맛이 나지 않는다. 이때는 설탕과 식초를 섞어서 절여 단맛과 신맛을 더 넣어주는 쪽이 좋다. 사족으로 김치가 일본에서 현지화된 기무치도, 특히 편의점에서 파는 것들이라면, 발효와 숙성을 거치지 않고 배추를 식초에 절이고 고춧가루를 약간 뿌린 수준이다. 즉, 겉절이에 가까운 정도다.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은 다쿠앙 스님이 절간에 보급한 일본의 초기 다쿠앙은 쭈글쭈글한 소금절임 이지만, 곧 전국으로 전파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담구는 것이 퍼저셔 큰 성공을 하게 된다. 당시에 이미 큰 카테고리로만 나눠도 10종 이상, 지역별로 따지면 수십가지의 다쿠앙이 있었다. 한국인이 많이 먹는 촉촉하고 시큼한 스즈케 다쿠앙도 일본에 당연히 있었고 짜지않은 다쿠앙, 단맛의 다쿠앙, 밋밋한 다쿠앙, 매운 겨자/고추 다쿠앙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한국 밥상에서 김치가 성공하면서 얼마나 빨리 많은 종류로 전국에 파생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 가능하다.
또한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대중화된 것은 초절임 방식이 아닌 꾸덕한 다쿠앙 스님의 방식이다. 여기엔 배경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조선은 다쿠앙의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었으나 취향과 생산방식 등 여러 이유로 본격적으로 도입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시작 이후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같이 들어왔지만 주반찬인 김치에 밀려[4] 가정에 자리 잡진 못했고 부반찬 내지는 외식점 위주로 선을 보인 외국 음식의 위상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당시 외식점 등을 탐방하며 일종의 리뷰어 노릇을 하던 문학인들의 글 등에서 서술된 다쿠앙(단무지)의 대중 인식을 통해 유추 가능하다.
일제의 통치 기간이 장기화 됨에 따라 외래음식이 익숙해지고 일본의 전쟁이 치열해 지면서 한국에서도 단무지 등의 각종 가공공장 공장이 밤낮으로 가동되었는데 이때 습득한 기술이 전후 한국의 식품가공기술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해방 후 한국 정부에선 낮은 국민소득을 증진하고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농가의 겨울 휴식기때 말린 무를 이용해서 다쿠앙을 담그라고 권장했고 많은 농가가 일제때 이미 접한 음식이므로 정부의 방침에 따라 집에서 상품성이 낮은 남은 무로 간단하게 만들어 먹거나 여러 이웃이 함께 만들어 팔기도 하였다. 이때 만든것은 초기 절단 단무지 즉 타쿠앙즈케로 수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김치보다 오래 먹을 수 있고 소금과 무만 있으면 간단히 만들 수 있어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다. 다만 쌀겨에 담그는 다쿠앙즈케가 만들기 번거로운 면이 있기 때문에 소금만으로 간단히 담그는 무짠지, 시오즈케 다쿠앙으로 담그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풍경이 1950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출생년도가 이 즈음인 조선,한국 사람들에겐 이렇게 꾸덕한 다쿠앙들이 익숙한 단무지였다. 동시에 정확한 년도를 알수 없으나 다쿠앙이란 일본식 외래어 대신 짠지란 이름으로 교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농가의 자급자족에 불과한 생산에 머물렀고 여전히 농가는 빈곤에 시달리다 설상가상으로 6.25까지 터지면서 세계 최빈곤국이라는 최악의 생활상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후 군사 정권이 탄생하면서 나라가 안정화 되고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군사 정권은 농촌의 부흥을 계획하게 된다. 이때 농촌에 권장되어 만들어 먹던 다쿠앙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나라에서 투자를 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1960년대 시작한 단무지 시범부락이며 부업수준에 머물던 생산에서 처음으로 산업화가 되고 최초의 단무지 공장이 설립된다. 또한 시대적 배경의 덕분으로 경제의 부흥과 함께 외식사업도 덩달아 발전하였는데 중국 집 같은 곳에서 김치보단 저렴한 다쿠앙을 선호 하였기에 수요가 맞아 떨어져 크게 성공한다. 당시 농촌단무지 공장 시범사업 년수입 2000환이라는 큰 소득을 거두게 되고 공장도 2곳으로 증설하였다며 각종 신문에 보도 되었다. 이 공장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것이 일제때 일했던 경력 노동자들과 일본 공장 견학등의 협력사업이다. 또한 이 즈음해서 달달하단 뜻의 단무지란 이름이 자리 잡는다.
개도국이란 사회 특징상 품질보단 양을 선택하였으데 손이 많이 가는 기존에 먹던 다쿠앙즈케가 아닌 쉽고 저렴하게 빨리 담글수 있는 스즈케 다쿠앙(초절임) 방식을 택하였고 손실되는 보관기간은 방부제를 투입하여 해결하였다. 또 저품질의 무의 흠을 가리기 위해 노란 치자색소와 MSG(아지노모도, 味の素), 사카린을 넣고 작게 잘라 만들어 은은한 맛의 일본의 초절임 다쿠앙과 다른 강한 단맛의 한국 버전 단무지가 완성된다. 짠 춘장면이 강한 단맛의 짜장면이 된 것과 비슷한데 한국인은 일제강점기 전까진 설탕을 접할 기회가 없었고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최초의 설탕공장이 설립되기 전까진 저렴한 조미료가 아니었기에 설탕이 서민 조미료가 되자마자 이렇게 단맛을 주축으로 하는 음식들이 크게 성공했다.
초기 단무지 공장에선 치자색소 과다 사용으로 각종 중독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이후 치자색소의 사용을 줄이면서 좀 연한 단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196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에겐 당시 다양한 시대배경이 녹아 있는 이 방식의 다쿠앙이 익숙해 진 것이다.
물론 이후 자리잡힌 단무지 공장 등에서 90년 즈음해서 일본의 다양한 다쿠앙을 소개한다든가 맛과 색을 독자적으로 변경 해본다든가 여러시도가 있긴 했으나 한국인에게 자리잡힌 60년대 버젼 공장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노란색의 강한 단맛 다쿠앙이 압도적인 매출을 내고 있어 다른 다쿠앙들이 판매 부분에서 힘을 못낸다고 한다.
일본식 쌀겨절임 단무지는 쌀겨에 숙성시켜 만들기 때문에 한국식 초절임 단무지에 비해 제조비용이 높다. 유명한 음식점에서는 직접 담그거나, 고급 단무지를 따로 구비하기 때문에 고급 반찬 취급. 일본에서는 물에 밥 말아먹을 때 타쿠앙을 곁들이는데, 일본에서는 품위있는 음식이라고 하니 문화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4. 기타
보통 단무지는 색깔이 노란색인 경우가 많다. 치자를 이용하여 만들기 때문인데, 치자 대신 그냥 식용 색소를 입히기도 한다. 요즘은 색소를 넣지 않은 흰색 단무지도 판매한다. 보통 그냥 반찬으로 먹기보다는 김밥용으로 쓰이도록 길쭉한 모양으로 나온다.불교의 식사시간인 발우공양때 필수로 나오는 식재료이다. 밥을 다 먹고나면 발우에 묻은 음식물을 닦기위해서이다. 일종의 수세미 같은 역할인 셈. 물론 이건 식당이 없어서 설거지가 곤란한 절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 한정이고 구내 식당이 있는 절에서는 단무지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익산시 북부시장의 수제 단무지가 유명하다고 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지주들이 시장 근처에 많이 눌러 앉아 단무지가 많이 소비됨으로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겨절임무우라고 한다. 북한군에서는 보통 염장무를 반찬으로 주는데 남한에서 북한군 식단을 재현하려는 탈북민들은 염장무를 구할 수 없어서 보통 단무지를 대용품으로 쓴다.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의 특산품이기도 했다. 한반도 최초의 단무지 공장 및 단무지용 무 재배지가 조성된 곳으로 한때 전국 단무지의 30% 이상을 조치원에서 공급할 정도였다. 현재도 전국 단무지의 10% 이상을 조치원에서 생산한다.#
단무지는 단가가 낮기 때문에 10명 이내의 영세업체들이 대부분이다. 직원이 300명이나 되는 일미농수산 같은 경우는 업계의 삼성 대접을 받으며 인건비때문에 단가를 맞추기가 어려워 업소용 단무지는 거의 손을 못 대는 수준이다.
백종원의 모든 프랜차이즈에서는 단무지를 얇게 썰어서 낸다.
틈새라면 점포에서는 파인애플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마침 색깔이 비슷하기도 하고.
KIA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노란 응원막대를 단무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KBS 스펀지의 첫번째 주제가 바로 단무지에 관한 것이었다.[5]
카카오프렌즈의 무지는 토끼 옷을 입은 단무지다.
8~90년대의 구식 농담으로, 몸을 쓰는 일이 많고 비교적 머리를 쓰는 부분이 적을 것 같은 계층을 일컬어 비하의 용도로 '단무지'(단순 + 무식 + 지랄)라 부르기도 했다. 차별과 비하의 의도가 짙어서 요즘에는 많이 사장된 말.
김밥으로써 교육심리학의 강화와 처벌을 설명할 수 있다. 아이들이 햄을 좋아하지만 단무지를 싫어하는 경향에 기인한다. 정적 강화/처벌은 무언가를 추가함으로써, 부적 강화/처벌은 무언가를 제거함으로써 이뤄진다.
(김밥) | 정적 | 부적 |
강화 | 햄 넣기 | 단무지 빼기 |
처벌 | 단무지 넣기 | 햄 빼기 |
밥반찬으로 쓰일 때에는 단무지에 고춧가루와 파, 참기름 등으로 양념을 버무려 먹기도 한다.
[1] 지금도 어르신들은 다꽝이라고 더 많이 부른다. 젊은층들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서, 중국집 가서 '다꽝 좀 더 주세요!' 라고 외치시는 어르신들과 그걸 못 알아듣는 젊은 알바생들이나 점주들의 대화도 꽤 재밌는 광경이다.[2] 이것과 밑에 만화 덕에 한국 드라마 MBC판 일지매에 타쿠앙 대사가 미야모토 무사시와 함께 등장한다. 배우는 야인시대 이승만으로 유명한 권성덕 옹. 주먹밥을 반찬없이 먹는 일지매 옆에 슬쩍 나타나 자신이 개발한 단무지를 얹어주고, 뒤이어 따라온 무사시와(황정리가 분했다.) 함께 자기 갈길 가는 역.[3] 김치와 단무지를 둘 다 내주기도 한다.[4] 현대 한국인이 김치 하면 으레 생각하는 배추김치는 사실 해방 이후에 우장춘 박사가 지금의 김치용 배추 품종을 발명해내면서 생긴 것으로 그 이전까지는 무를 이용한 김치가 '김치' 였다. 그러니 주 재료인 무가 생기면 김치를 담가먹지 단무지를 담가 먹는건 사치여서 별로 인기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우장춘 박사가 김치용 배추 품종을 개발하기 전에 갈라져나간 고려인, 조선족, 북한에는 배추 김치가 없고 무 김치가 대신하고 있다. 고려인은 그나마 강제이주로 무를 구할 수 없는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탓에 거기서 구할 수 있는 채소들 중 비슷한 뿌리채소인 당근으로 대신 김치를 담갔고 이 때문에 중앙아시아와 소련으로 묶여있던 구 공산권 국가들에 이 당근 김치가 알려져서 이들 국가에서는 본토 한국에서도 당근으로 김치를 담가먹는줄 안다. (한국인들이 중국집에서 파는 짜장면, 짬뽕 등이 본토 중국에도 있는줄 착각하는것과 같다)[5] 훗날 200회 특집에서 O X 뿅망치 문제로 재등장 했는데(단무지를 개발한 사람은 타쿠앙 스님이다) 유세윤이 의기양양하게 X를 들었다가 정답이 O여서 뿅망치를 맞고는 놀래서 "정말이에요? 진짜루요?"라고 되물었다.